2010년대의 시간대에서 2016-17년의 촛불항쟁은 다수 학자들의 주장처럼 어떤 단절적인 지점으로 형상화됩니다. 촛불을 계승했다고 자임하는 현정부의 미비한 개혁성과를 두고, 촛불시민의 열망을 손쉽게 꺼내들곤 합니다. "촛불시민이 원했던 건 이런게 아니다". 하지만 잘 알려져있다시피 '촛불시민'은 간단히 하나의 균일한 주체로 호명하기 어렵습니다. '촛불시민'이라고 찬탄했던, 그리하여 '민중'에서, '깨어있는 시민'으로, 이제는 '촛불시민'으로 호명하는 '민주주의의 계승자'라고 상상되는 이들의 산발적 떨림에 당혹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많은 이들이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를 연호했지만,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비단 대표의 위기로 상징되는 의회정치의 무능력 탓만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현정부의 집권 4년차 그리고 소위 '조국 사태'를 경유하면서 시민사회가 던져야할 질문은 '촛불시민' 또는 민주주의와 등치되었던 '촛불'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운동은 누구를 호명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곧 다가올 4월의 총선은 현재의 답보를 역전시킬 계기가 될까요? 불평등이 심화되고 '공정'이 화두가 되는 시점에, 우리 모두는 이 사회의 차별과 격차, 불평등이 사람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는 현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를 역전시켜낼 키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곡선을 그리듯 변화할 수도 있고, 계단처럼 단절적으로 변할 수도 있겠지요. 시민사회운동이 이 변동의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고민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위기의 국가>에서, 당대 국가의 위기는 권력이 정치에서 시장으로 이동한 데 있다고 말한다. 더하여 지금의 시대를 설명하는데 있어 전통적으로 쓰인 정치권력은 더 이상 적절한 용어가 아니며, 시장권력이란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밝힌다. 이런 분석에는 시장권력이 문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왜 정치권력이 아닌 시장권력이 문제가 될까? 기본적으로 정치는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활동이다. 권력은 그런 결정을 이행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그런데 이 결정을 이행할 수 있는 힘이 정치를 떠나 시장으로 이동한다면? 그렇다, 정치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시장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왜 시장의 허락을 받는 것이 문제인가? 유르겐 하버마스의 한마디는 이에 대한 명료한 답을 준다. "(정치 옆에 있는) 권력은 민주화될 수 있지만 돈(옆에 있는 권력)은 그렇지 않다." 시장에서 최상의 가치는 평등이나 자유가 아니라 이윤이다. 만약 시장이 평등이나 자유를 갈망한다면 인간의 더 나은 삶 때문이 아니라 그건 지속적 이윤의 실현 때문이다. 바우만은 당대 민주적 국가에서 정치가, 선거에서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과 막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장권력 사이에서 눈치나 보는 활동으로 전락해버렸다고 개탄한다.
지난 8월 9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 되었다. 이번 가석방 결정은 바우만이 지적하는, 권력이 정치에서 시장으로 온전히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환호했던 박근혜 탄핵심판 결정문에도 이런 이동은 이미 명시되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생명권 보호의무의 위반도, 국정농단과 관련된 공무원 임면권 남용이나 언론의 자유 침해도 아닌, 상식적으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기업의 자유 침해'였다. 이 결정문에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삼성의 뇌물 관련 문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대통령의 강압적 요구 앞에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거의 없었다"거나 "출연 요구를 받은 기업이...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문장이 결정문을 채우고 있다. 기업의 뇌물로비 사건이 기업이 부당한 억압은 받은 사건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런 탄핵결정문의 내용과는 달리 촛불민심을 등에 업은 현 정부는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약속했다. 국정농단에 관련한 이들이라면 그들이 정치세력이든, 재벌이든 상관없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그 약속 중 하나가 이들에 대한 대통령 사면권의 제한이었다. 그 약속에 대한 신뢰는 최근 불거진 전직 대통령 사면을 국민들이 단호히 거부한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국정농단의 주요가담자인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현 정부의 약속을 믿고 지지하던 대다수 지지자들에겐 자괴감에 빠질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더 실망스러운 점은 현 정부가 가석방이라는 제도를 활용해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척 하고 있는 기만적 모양새다. 자신들이 권력을 잡도록 해준 시민들과 맺은 정치적 약속을 어기면서도, 이에 대한 사과나 이해를 구함 없이 가석방이라는 법의 절차를 밟아 이재용을 풀어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사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사면이 아니고 가석방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아닌 법무부의 결정일 뿐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이런 중대 사안을 법무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일단 그 말을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법무부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이 결코 특혜가 아님을 강조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석방은 형기의 80% 이상이 지나야 가능했다. 그런데 지난 4월 이 가석방 심사 기준이 60%로 완화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 7월 26일에 이 기준을 채웠다. 그리고 8월 9일 가석방이 결정됐다. 이 부회장을 위한 맞춤형 가석방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의심받아야 할 정황이다. 누가 보아도 일종의 편법인 것이다.
이 부회장 가석방을 지켜보며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정치하는 이들이 이 문제를 정치 대신 '법의 이름으로 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정치와 법치를 혼동하지만 정치와 법치는 명백히 다르다. 사면권 자체가 '사법부가 법을 통해 결정한 일을 행정부 수반이 뒤집는 권한'이라는 점에서 최고 대표자에게 주어진 사실상의 정치적 권리다. 만약 이 부회장의 사면이 절실했다면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어야만 한다. 이런 정치적 행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재용에 대한 사면이 옳지 않기 때문이거나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탈원전과 둘러싼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정치적 결정에 법이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치가 법의 이름으로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번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시장권력과 유권자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약속과 관련해 행해야 할 '정도' 대신 편법, 침묵, 기만을 택한 우리 정치의 비굴한 자화상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https://www.pressian.com/pages/author/10069" rel="nofollow">클릭https://www.pressian.com/pages/search?sort=1&search=%EC%8B%9C%EB%AF%BC%E... rel="nofollow">)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어긴 책임을 국민여론에 핑계대며 법치주의, 사법정의, 시장질서, 공정경제를 짓밟아버린 ‘삼정유착’ 의 책임자로 기억될 것
국정농단 중대경제사범 삼성 이재용 가석방 반대 과천 정부청사 및 청와대 앞 경실련 등 1,056개 노동‧인권‧시민사회 1인 시위
(종합)
경실련은 8월 4일(수)부터 8월 9일(월)까지 법무부가 있는 과천 정부청사 앞과 8월 10일(화)부터 오늘 8월 13일(금)까지 청와대 앞에서 윤순철 사무총장을 주축으로 임원‧활동가‧회원들과 함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삼성 이재용 가석방 허가의 부당함을 알리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고, 1,056개 노동‧인권‧시민사회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해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릴레이 1인 시위를 종료했다.
☞“가석방심사위는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 불허하라”1,056개 노동•인권•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영상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에 대한 입장을 밝혀라!”경실련 윤순철 사무총장 1인시위 및 인터뷰 영상
☞“이재용 특혜 가석방 강행한 문재인 정부 규탄”노동•인권•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 영상 (8월 13일)
최순실-이재용-박근혜 등이 개입된 국정농단 사건에서 많은 시민들의 촛불시위를 계기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중대경제범죄자 무관용 원칙’에 대해 경실련 등 노동‧인권‧시민사회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재용 가석방에 대해 국민여론 핑계대지 말고 명백한 입장을 밝혀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끝내 문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며 결국 재계의 입장만 대변했다.
(사법정의‧법치주의 몰락) 이재용의 구속 이후, 재계와 언론은 ‘K-반도체 산업의 위기(론)’를 핑계삼아 사면을 거론하면서 여론조작까지 일삼아왔다 (https://youtu.be/LD1u3DCq0KE). 이에 법원(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재판부)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86억 8천만 원의 배임·횡령·뇌물공여 등 중대경제범죄를 저질렀던 이재용 총수의 개인범죄에 대해 이례적으로 법적 근거도 없이 이재용의 형량을 깎아주기 위해 기업범죄의 양형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전문심리위원단’을 구성하여 ‘삼성준법감시위원회’로부터 양형 의견을 구하는 등 법경유착을 범했고, 그 후 2021년 1월 28일에 있었던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5년형에서 소위 “3․5법칙(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넘어선 2년 6월로 감형 특혜를 이미 줬던 바 있었다 (http://ccej.or.kr/66765).
이도 모자라, 이번에는 사실상 이재용을 가석방 시켜주기 위해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가석방 조건을 형기의 50%로 특별히 완화하면서까지 박범계 장관이 이재용의 가석방을 허가하여 특혜의 특혜 논란을 빚게 된 것이다.
하물며, ‘프로포폴 불법투약’ 등 이미 2개의 재판이 현재 진행중인 이재용과 같은 재범우려가 있는 범죄자들에게 가석방이 허가됐던 전례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군다나, 중대경제범죄사범 이재용은 특경가법상(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 향후 5년 동안 취업이 제한되기 때문에 법무부 허가 없이는 경영에 관여 할 수 없다 (서울행정법원 2021.02.18. 결정 2020구합67681 판례 참고).
그런데도, “이번 가석방의 결정 자체도 법무부가 법과 절차에 따라서 한 것이고, (이재용의 경영 복귀여부는) 법과 절차에 따라서 법무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중대경제범죄자 무관용 원칙’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아무리 가석방 권한이 법무부 장관에게 있다고 하지만, 과연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책임이 없는 것일까?
촛불정부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 이제 우리는 문 대통령의 리더십을 의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오직 이재용만을 위해 삼성 재벌의 입맛에 짜맞춰 법과 규정을 제 맘데로 고쳐가면서까지 가석방을 허가해 주는 게 과연 ‘법과 절차’에 따른 결정이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던지는 많은 시민들의 질문은 간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 문 대통령의 답변은 “‘국익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었다. 그게 과연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국익을 위한 선택’이 도대체 뭔가? 조작된 국민여론만 끝까지 핑계대며 법무부장관과 국민들에게까지 그 책임을 떠밀어버린 문 대통령의 모습은 정말 비겁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범계 장관은, “현 우리 세대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악순환의 고리 이제 단죄하자“ 많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한 채, ‘삼정유착(삼성과 정부의 유착) 유전무죄’ 동조자, 삼성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전락해버렸다. 이재용에 대한 가석방 결정으로써 많은 시민들은 재벌 총수에게는 똑같은 법이 다르게 적용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문재인 정부 들어 또 다시 마주해버렸다.
이재용의 중대경제범죄가 가석방 고려요건 어느 하나 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민들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제 사법정의는 땅에 떨어졌으며 법치주의는 역사적 퇴행을 맞이하게 됐다. 정경유착의 문제를 넘어 삼정유착이 있었던 과거 시대로의 회귀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정경제‧시장질서 붕괴) 이재용 가석방 논란은 비단 국정농단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이후, 경제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고, 검찰은 재벌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버렸다는 평가가 많은 시민들과 다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대경제범죄자 이재용은 지난해 2020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사건’ 등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이 ‘검언유착’ 의혹 속에서 핵심인사 3인(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지성 삼성그룹 전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팀장)이 불기소 처리되면서 면죄부의 특혜를 받았고 이에 대국민 앞에서 사죄를 해야만 했다. 정치권과 노동‧시민사회에서 삼성 이재용의 불법 승계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개혁의 여파 속에 검찰의 기능은 마비돼버렸다.
그리고 올해 2021년 6월 24일에는 ‘삼성웰스토리 부당지원’ 사건을 조사했던 공정위가 삼정유착 속에서 핵심인사 2인(최지성 전 실장‧정현호 삼성전자 사장)에 대한 형사처벌을 축소‧제외하면서, 또 삼성 봐주기 식의 ‘솜방망이’ 논란이 붉어졌다. 삼성에서 먼저 손을 썼고, 공정위에서도 이미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경실련은 8월 12일(목) 삼성웰스토리 부당지원 관련 핵심인사들을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http://ccej.or.kr/71512).
문재인 정부의 박정희식 재벌중심 경제성장 전략으로 인해 재벌의 불공정행위, 사익편취, 일감몰아주기 등 황제경영 체제가 만연하면서 여전히 경제력 집중은 해소되지 못했다.
물론, 지난해 ‘공정경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을 개정했지만, 오히려 재벌개혁을 후퇴시켜버렸다. 시민들의 요구는 무시한 채, 법과 규정을 또 제 멋대로 고쳤던 것이다. 원칙과 기준 없는 문재인 정권의 공정경제 정책은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재벌의 전횡으로 인해 약자에 대한 재산권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곧 시장질서의 붕괴만 가져올 뿐이다. 국민들에게까지 그 피해를 떠밀어버린 문 대통령의 모습은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다.
(현재 진행중인 삼정유착‧불법경영) ‘K-반도체 투자와 위기 돌파,’ ’국익을 위한 선택,‘ ’재범우려가 없다‘던 정부와 재계의 말들은 전부 거짓으로 들어났다. 2021년 8월 13(금)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핑계로 이재용이 가석방됐지만, 출소 당일 삼선전자 시가총액은 급락을 면치 못하며 작년 1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보통주 ▼3.38%, 우선주 ▼3.06%). 시장 역시 이재용의 출소를 반기지 않았다. 그리고 출소 직후, 이재용이 향한 곳은 바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이었다. 가석방 중인 중대경제사범이 특경가법 제14조 위반죄를 재범한 것이다. 이재용에게 법이란 안중에도 없었고, 대통령의 은사는 참으로 우습게 되어 버렸다.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재범자가 반성과 자숙은커녕 사실상 경영 복귀를 선언하면서 불법 경영은 현재 또 다시 진행 중이다.
이번 이재용 가석방을 끝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어기고 그 책임을 국민여론에 떠밀며 핑계대고 법치주의, 사법정의, 시장질서, 공정경제를 짓밟아버린 ‘삼정유착’의 책임자로 기억될 것이다. 남은 임기동안 몰락한 법치주의와 사법정의를 바로잡고 붕괴된 시장질서와 공정경제를 회복시켜서 더 이상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으로서 남길 바란다.
경실련은 오늘(8/19) <문케어 시행 3년, 종합병원 건강보험 보장률 목표 이행 실태>를 발표했다. 문케어는 문재인정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으로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올리는 국정과제다.
(조사목적) 정부는 문케어 시행을 위해 약 30.6조원의 건강보험료를 투입할 계획으로 이미 9.2조원 지출했다. 막대한 예산투입에도 비급여 관리대책 부재로 보장률 증가는 답보 상태에 있고,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된 비급여 관리를 위한 보고 의무제도는 정부의 고시 개정 중단으로 연내 시행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이에 문케어 최대 수혜대상인 종합병원의 목표 보장률 이행실태 발표를 통해 의지도 전략도 없는 무능한 관료와 정책의 문제를 알리고 비급여 관리제도의 조속한 시행을 정부에 촉구하고자 한다.
(조사대상) 233개 종합병원(공공 53개, 민간 180개)의 연도별(2016년~2019년) 건강보험 보장률 현황과 문케어 목표 보장률(70%) 이행 여부를 분석했다. (재정계획) 정부는 문케어에 6년간 건강보험 재정 30.6조원 추가 투입 ′17년부터 ′19년까지 3년간 총 재정 소요의 1/3인 약 9.2조원 투입
(보장률 현황)문케어 시행으로 종합병원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은 ’19년에 68.5%로, ’16년 대비 7.3%p 증가했다. 재정투입이 시작된 ’18년에는 전년 대비 7.5%p 증가했으나 ’19년엔 1.3%p로 둔화세였는데, 비급여 풍선효과로 추정된다.
(문케어 이행률) 문케어 시행에 따라 보장률 70%에 도달한 종합병원의 비율도 점차 증가했는데, ’16년 6.6%에서 ’19년 25.9%로 약 19.3%p 증가했다.
(문제와 개선방안) 문케어 시행 3년, 목표 보장률 이행 종합병원은 4곳 중 1곳 뿐.
문재인대통령은 문케어(건강보험 보장성강화대책)를 통해 국민의료비 직접 부담률을 30%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지만, 문케어 예산이 집중 투입된 대형 종합병원의 보장률은 68.5%로 개선되는데 그쳤고, 이행율은 25.9%(58개)로 저조했다.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개인소유 종합병원과 병∙의원의 보장률이 전체 의료기관 평균 보장률보다 낮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문케어의 목표 보장률 이행은 문대통령 임기 내 실현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3]의 종합병원 보장률 분포를 보면 166개(전체 중 74.1%, 공공병원 24개 포함) 기관이 문케어 목표 보장률 이하이며, 시행 3년 이행률 추세에 의하면 계획이 종료되는 ’22년에는 50%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문케어 저조한 성적은 비급여 관리대책 없이 밀어붙인 여당과 관료 책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진료에 병행하는 비급여에 대한 관리방안이 마련되어야 ‘비급여 풍선효과’를 방지할 수 있다. 공공병원이 전체 의료기관의 10%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보장률이 낮은 민간 의료기관의 비급여 관리 기전 마련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문케어의 초라한 성적표는 예견된 결과다.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면서 병원에 막대한 재정을 퍼줬고, 늘어나는 비급여에 대해서는 속수무책 상태다. 이는 비급여 대책 없이 정책을 밀어붙인 무능한 민주당과 정부 관료의 책임이 크다.
최근 문케어 4년 성과발표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청와대는 “다음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뛰어가야 할 길이어야 한다”고 실패를 시인했다. 즉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실효성 있게 지속되려면 문대통령 임기 내 비급여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비급여 보고는 타협의 대상 아닌 의무, 정부는 고시 즉각 개정해야
국회는 2020.12월 의료법을 개정하고 2021.06.30까지 정부가 하위법령을 마련하여 시행하도록 공포하였으나, 정부는 의료계 반발에 고시개정을 2개월째 미루고 있다. 이는 국회의 입법명령을 행정부가 무시하는 행위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경실련은 정부가 국회의 입법명령을 어기고 지난 ‘의대정원 증원 중단’과 같이 의료계와 타협하거나 후퇴하는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 국민 의료비 경감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끝.
온 나라가 도덕정치, 엄밀히 말하면 '도덕적 단죄 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과거에 수없이 보아왔던 모습이다. 조국 장관이 사퇴했으니, 그 결말도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후보자 시절부터 시작된, 조국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그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며 그를 지키려는 사람들 간의 진실과 가치를 둘러싼 싸움이 끝을 모르고 지속되었다. 아마도 사퇴가 그 대결의 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다투어야 할 진실이 있고 따져야 할 가치들이 있고, 성찰하고 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서초동 조국수호 및 검찰개혁 촛불'이 타올랐고, 다른 한편에서는 '광화문 조국 사퇴 태극기'가 출렁거렸다. 이것을 두고 국론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되었는데, 아쉽게도 국론 분열의 근원을 제대로 따지고 있지 못하고, 또 원래 국론이란 분열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로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대부분 이러한 우려를 조국 사퇴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로 제시하려 했다. 사실 이익과 가치가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론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저 국론은 분열되어 있으며, 이 사실이 국면에 따라 좀 더 격렬하게 표출되기도 할 뿐이다. 그래서 국론 분열을 우려하려면 이러한 분열의 원인을 따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론 분열의 근원을 따져 들다 보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그것은 '도덕 정치'의 폐단이다. 개인에 대한 도덕적 단죄의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정치권에서든 시민사회에서든 너도나도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몰두하면서 정치를 후퇴시킨 것이다. 도덕적 비난은 대중들로부터 당장의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유용하지만, 이러한 감정에 매몰될수록 사람들은 합리적 판단이 어려워지고 개인이 아닌 제도나 정책에 대한 관심도 희석되기 쉽다. 그러는 동안 진정 추구해야 할 도덕은 사라지고 정치는 거짓과 음모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된다.
도덕 정치가 위험한 것은 '도덕'이 위험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치'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도덕을 정략적 수단으로 만든다. 여기에는 좌도 우도 없고, 위도 아래도 없다. 대중에게서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나 인식을 끌어내고 또 공격하는 데에 도덕만큼 손쉬운 수단은 없으며, 그런 만큼 정치인들이나 정치적 의도를 지닌 사람들에게 도덕은 매력적인 공격수단이 된다. 하지만 그 진실에 도달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감정에서 이성으로 움직이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제 도덕적 단죄(비난) 정치가 얼마나 정당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도덕적 단죄의 근거가 얼마나 타당한지를 따져보아야 하며, 또한 상대방에 대한 공격에 도덕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또 그 이면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자리 잡고 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조국 가족의 위법행위에 근거한 도덕적 비난은 정당했나?
얼마 전 '나눔문화'가 낸 성명은 조국에 대한 법적, 도덕적 의혹을 둘러싼 비난이 지닌 과도함을 잘 지적한 바 있으며, 검찰개혁과 진보의 성찰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조국 가족의 위법행위 의혹에 근거한 도덕적 비난은 타당했는지를 따져보자. 조국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조국 가족에 대한 각종 위법행위에 관한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비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위법행위의 근거가 타당한지를 따져보기도 전에 마치 사실인 것처럼 언론을 통해 확산되기 시작했다. 언론은 표창장, 장학금, 논문, 사모펀드 등 의혹들을 마치 확증된 불법행위인 것처럼 단정하면서, 그와 그 가족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도덕적으로 단죄했다.
그 배후에는 검찰이 있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내세우며 인사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수사를 개시하고 압수수색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피의사실을 언론을 통해 흘리기 시작했다. 조국의 자녀들은 표창장을 위조하거나 논문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대학에 진학하고 또 부유층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받아 챙긴 파렴치범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입학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조국가족은 특혜와 특권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고, 이것은 법적 단죄를 넘어 도덕적 단죄를 하는 근거가 되었다. 사모펀드로 돈벌이를 했다는 의혹도 여기에 한몫했다. 특히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과거에 쏟아냈던 사회비판의 목소리와, 특혜와 특권을 누린 개인의 삶 간의 불일치가 부각되면서, 조국은 언행이 불일치한 위선자로 낙인이 찍혔고, 특히 진보좌파 지식인들이나 언론으로부터는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개인에 대한 숱한 도덕적 비난과 인격적 모욕이 이루어졌지만, 그 과정은 결코 정당하지 않았다. 검찰이 소위 먼지털기식 수사나 엄청난 횟수의 전방위 압수수색을 한 과정은 정당하지 않았으며, 명백한 불법의 근거가 제시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타당하지도 않았다. 검찰의 언론플레이가 난무하고 언론의 모욕주기 기사들이 흘러 넘쳐났지만, 다툼의 여지가 있을 뿐 확증된 범죄 사실은 없었다. 법을 지켜야 할 검찰이 앞장서서 피의사실공표금지법을 어기는 꼴이 되었고, 무죄 추정의 원칙은 언론기자들의 기사 작성에 아무런 지침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소위 진보언론이라고 얘기된 <한겨레>나 <경향신문>도 예외가 아니었고, 오히려 비난에 더 열을 올렸다.
법으로 보나 증거로 보나 확증된 위법행위가 없는 상황에서 공인이라는 명분으로 개인과 그 가족에게 도덕적 비난, 조롱, 모욕을 퍼부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물론 의심의 여지가 있으니 비난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싫은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근거도 없이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 인격적 모욕을 퍼붓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나중에 불법이 확증되면 이에 따른 책임을 묻고 비난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확실한 근거에 기초하여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언론과 지식인들은 개인에게 온갖 인격적 비난과 모욕을 퍼부었다. 그래서 최소한 불법의 근거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잘못된 판단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옹졸하게도 사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조국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정당한가?
조국을 법적으로 단죄했던 사람들은 법적 판단의 과오를 도덕적 비난으로 희석시키는 길로 나갔다. 그리하여 사회정의를 내세워 입바른 소리를 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특혜와 특권을 누리며 살지 않았느냐며 도덕적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 수시입학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스펙들이 일반 학생들과 비교되면서 부당한 특혜로 몰렸고, 공식적인 대답을 얻고 투자한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그 적절성을 의심받았다. 조국 가족의 특권과 특혜를 부각시키기 위해 힘없고 '빽'없는 청년들,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환되었고, 이를 통해 조국가족을 특혜와 특권, 불평등의 화신으로 만들어놓았다. 조국 가족은 이제 야당 정치인들, 지식인들, 언론인들이 합심하여 물어뜯고 모욕할 수 있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들은 아무런 사생활도 인격도 보장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고등학교 교사가 조목조목 반박한 바가 있듯이, 그 시절 입시제도에 맞춰 대학을 가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은 단지 조국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을 언론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개인적 특혜와 특권으로 몰아가며 인격적 모욕을 주기에 바빴다. 오히려 네티즌이 입시제도의 성격과 특권 구조를 파헤치면서 이것이 개인의 문제로 돌려 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제도의 문제임을 보여주었고, 조국 자녀만이 아니라 '조국 사퇴'를 외쳤던 명문대 학생들도 그러한 구조 속에서 특권을 누렸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혜와 특권을 겨냥한 도덕적 비난은 시민대중의 도덕적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부유층이 아니면 쉽게 동조할 수 있는 비난이었기에 언론은 도덕적 비난을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수우파 언론이나 지식인들이야 원래 조롱거리를 찾아 나서는 하이에나들이라는 게 별반 새롭지 않다고 하더라도, 검찰개혁을 좌절시키려는 이들의 조국 죽이기 의도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일부 진보좌파가 지나친 도덕적 기준을 내세워 도덕적 비난을 넘어 인격적 조롱과 모욕주기 대열에 참여한 것은 씁쓸함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과연 개인을 인격적으로 조롱하고 모욕하면서 온 국민의 껌딱지로 만드는 것이 인권을 중요시해온 진보좌파의 바람직한 태도일까? 개인에 대한 조롱과 모욕을 더 잘하는 것이 더 진보적인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물론 조국 장관이 과거 젊은 시절 운동권에서 함께 추구했던 가치를 성찰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고 적응하며 살았다는 사실은 진보좌파의 괘씸죄를 살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인격적 모욕을 당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그 속에서 직장을 얻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키우게 된 사람이 사회적 지위와 처지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심각한 범죄인 것도 아니고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한 특혜와 특권도 누리며 사는데, 높은 도덕적 기준을 앞세워 인격적 모욕주기를 하는 것이 과연 진보좌파가 취해야 할 입장인지 묻고 싶다.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놓치고 있는 것들
일부 진보좌파가 주도한 도덕적 단죄 정치는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좌파 세력에게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우선 개인의 도덕적 흠결에 초점을 맞춘 정치전략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개인의 도덕적 비난에 몰두하는 도덕정치에 빠져들수록 그들은 보수우파의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보수언론의 전략에 동조하고 검찰개혁의 필요성마저 의심하면서 냉소주의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전략은 진보좌파가 도덕정치에서 벗어나 불공정한 제도와 구조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회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실패했다. 이것은 도덕과 정의를 혼동한 결과였다. 도덕으로는 개인을 단죄할 수는 있지만 정의의 실현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정의는 사회관계, 사회제도를 통해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진보좌파의 도덕적 단죄 정치는 조국 개인에 대한 감정을 앞세워 개혁과 진보 연합세력이 내세운 조국수호와 검찰개혁과 거리를 두게 되면서 검찰개혁을 의심하고 심지어 윤석열 검찰총장을 옹호하는 길로 나아갔다. 두 세력 간의 논쟁과 갈등은 '진보의 분열'로 이어졌으며, 이것은 진영논리를 강화하면서 연대의 균열을 낳았다. 차별화를 내세운 일부 진보좌파의 전략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불만을 조국 장관에게 과도하게 투사함으로써 쟁점을 흐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치중하면서 제도적 정의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보수세력의 도덕적 단죄 정치에 흡수되어갔고, 이로 인해 검찰개혁을 위한 연대도 놓치고 제도개혁에 대한 공감 확산에도 실패하는 이중적 실패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조국 죽이기'에 대한 집착은 청년세대의 분노에 공감해야 한다는 과도한 감정적 대응의 결과인 듯하다. 사실 불평등, 특혜, 특권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고, '조국 사태'와 관계없이 늘 제기되어야 할 문제였다. 그런데 조국 가족의 특혜와 특권 문제가 갑작스럽게 부각되자, 일부 진보좌파 지식인들이나 언론인들은 청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소환하면 조국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과 인격적 모욕주기에 몰두했다. 당장에는 청년들과 비정규직의 분노에 호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검찰개혁과 특권 및 사회불평등 구조는 서로 환원할 수 없는 각각의 과제이며, 조국 가족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통해 해결할 수는 없는 과제이다. 언론권력과 검찰권력의 개혁 좌절 선동과 모략에 맞서 검찰개혁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또 조국 장관이 그 중심에 놓여있는 상황임에도, 일부 진보좌파는 조국 개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며 사퇴시키는 것을 급선무로 생각하는 감정적 대응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결국 보수우파의 도덕적 단죄 정치에 흡수되는 결과를 낳았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http://www.pressian.com/news/review_list_all.html?rvw_no=1661" rel="nofollow">클릭)
조국이 모든 특권과 불평등의 근원인 것도 아니고, 또 개인을 단죄한다고 해서 이러한 특권 구조와 불평등 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좌파라면 청년들의 분노를 앞세워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몰두할 게 아니라 조국을 통해 드러난 특혜와 특권의 불평등 구조를 폭로하고 제도개혁과 불평등 구조해체를 위한 공감을 확산시키는 전략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진보좌파의 이론적 선구자인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개인들을 비난하려고 하기보다는 자본주의 계급관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개인의 특권보다는 특권과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특혜와 특권에 대한 비판을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으로 몰고 간 것은 진보좌파가 보수우파가 만들어놓은 도덕 정치의 틀로 빨려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를 조국 죽이기로 포섭하고자 한 좌파의 전략은 일시적인 감정적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진보적 제도개혁에 대한 이성적 공감을 얻어내는 데에는 별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진보좌파는 조국을 사퇴시키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몰아붙였고, 마치 한 사람을 왕따 시키듯이 물어뜯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려는 진보좌파의 올바른 태도이며 전략일까?
아무리 과거에 정의를 외쳤던 운동권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이러한 높은 도덕적 기준에 맞추며 살아가기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 어차피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누군가는 특혜와 특권을 누리게 된다. 지금 조국 가족의 특혜와 특권을 비판하고 있는 소위 진보좌파 지식인들이나 언론인들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1980년 전후에는 대학을 간다는 사실 자체가 특혜였고, 공부를 해서 학자가 되고 지식인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특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업에 종사하며 힘들게 살아갈 때, 돈벌이에서 벗어나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특혜가 아니었나? 그리고 이런 특혜가 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닐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었나? 그리고 그런 학자나 지식인 집안에서 자라난 자녀들 역시 부모의 교육자본이나 문화자본을 물려받는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특혜와 특권들은 비난할 수 없는 것이고, 조국 가족의 특혜와 특권은 비난받아야 하는가? 남을 비난하기 이전에 자신을 비난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도덕적 비난에 몰두한 진보좌파 지식인들은 조국 가족의 특권과 특혜를 드러내는 과정이 결코 공정하지 않았다는 점에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일부 진보좌파들의 도덕적 단죄 정치는 결코 도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선 검찰이 흘린 일방적 피의사실과 언론의 일방적 보도만 보고 법적, 도덕적 단죄를 했던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법적 판단이 성급했고 잘못 되었음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다. 게다가 맥락에 맞지 않게 청년들의 분노를 부각시키며 특혜, 특권, 불평등과 같은 거대담론을 앞세워 조국에 대한 자신들의 도덕적 비난을 정당화하는 데 급급했다는 점에서도 비도덕적이다. 그리고 특혜와 특권을 지나치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시각이 비판을 받자 이제는 능력도 부족하고, 의지도 부족하며, 검찰개혁의 방향에도 문제가 있다는 식의 정치적, 정책적 비난으로 과오를 만회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도 비도덕적이다. 그들은 조국의 검찰개혁 방안을 못마땅해하면서, 심지어 정치검찰의 모습을 보여준 윤석열 검찰총장을 옹호하기까지 했다는 점에서도 비도덕적이다. 또한 조국수호 및 검찰개혁을 외친 촛불시민들을 '조빠'니 '중우정치'니 '파시즘'이니 '진영논리'니 하는 어설픈 논리로 폄하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비도덕적이다. 아무리 조국이 아무리 싫어도, 검찰개혁은 부르주아적 과제로 우리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누가 도덕 정치의 프레임을 원하고 있나?
도덕 정치가 보수우파의 진보좌파 죽이기 전략으로 작동해왔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그동안 보수언론은 진보세력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면서 사회개혁을 통한 정의의 실현을 저지하는 데 몰두해왔다. 검찰 역시 자신의 조직을 보호하는 데 권력을 이용해왔고, 독점적인 기소권과 수사권을 검찰개혁을 내세우는 세력들을 견제하는 데 이용해왔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국은 검찰개혁에 대한 강한 소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서 검찰과 언론으로서는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은 당연히 조국을 죽여야 했고, 이를 위해 도덕 정치가 동원되었다. 검찰과 언론은 개인에 대한 도덕적 흠집을 부각시켜 부정적인 선입견 한번 만들어놓으면 쉽게 그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검찰은 먼지털기식 수사로 피의사실을 흘리고 언론은 의혹 부풀리기로 도덕적 흠집을 내어 조국 죽이기에 적극 나섰다. 이것은 현재 도덕 정치의 프레임이 검찰개혁 저지를 위한 검찰과 언론, 그리고 보수야당의 프레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도덕적 순결주의를 앞세운 도덕 정치는 양날의 칼이지만, 진흙탕 싸움으로 빠지는 순간 그것은 결코 진보좌파의 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일부 진보좌파는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피의사실 흘리기, 과잉수사 등 검찰의 문제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검찰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취하기보다 오히려 도덕 정치를 통한 조국 죽이기에 앞장섰다. 이것은 결국 보수를 돕고 스스로를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한번 내려진 판단을 끊임없이 정당화하기를 원했던 그들은 심지어 언론 권력과 검찰 권력의 불법과 부도덕에도 눈을 감으려 했다. 이것 역시 도덕 정치의 위험성을 말해준다.
그동안 인권을 강조하고,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를 비판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옹호했던 진보좌파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왜 동일한 원칙이 다른 사람에게는 적용되고 조국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진보와 정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나 정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어떤 인격적 비난, 조롱, 모욕주기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무슨 대단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대단한 도덕적 흠결을 지니고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렇게 인격적 모욕을 주는 것이 진보좌파가 추구하는 정의의 길이고 인권실현의 길인가? 이런 편협하고 독단적인 생각은 진보좌파의 이념적, 정책적 주장에 대한 공감의 확대를 가로막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비도덕적인 도덕 정치, 도덕적 모욕 정치에 몰두하고 있는 진보좌파는 도대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전 의원의 죽음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개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것에 둔감해 온 한국 사회는, 개인의 도덕성 시비를 내세워 쉽게 사회개혁과 제도개혁을 좌절시켜 왔다는 점에서 진보정치의 커다란 방해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것은 사회정의와 사회개혁을 추구해온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 순간의 실수로 엄청난 도덕적 비난을 감수해야 했으며, 이것이 진보정치에 가져올 충격에 대한 죄책감과 자책감이 죽음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는가?
정치에 도덕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도덕적 이상의 요구는 정치를 진흙탕으로 빠뜨린다. 만약 노회찬 의원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해보자.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이 정치자금을 신고하지 않은 그의 행위가 위선임을 부각시키며 도덕적 비난에 몰두했을 게 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도덕적 우월감을 지키기 위해 진보좌파 지식인들은 지금 조국 장관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듯이 노회찬 의원이 위선적이었고 또 자신의 과오를 숨겨서 진보정치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인격적으로 모욕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그를 옹호하려고 했다면 '내로남불'이나 '이중적 잣대'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모든 정치 행위를 과도한 도덕적 기준에 따라 단죄하려고 하는 도덕적 순결주의는 진보정치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과, 보수언론, 검찰, 보수야당 등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세력의 밥이 되기에 십상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도덕적 판단을 지나치게 앞세우면 정치적, 정책적 판단들이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그래서 현명한 시민들은 소위 '조국 대전'을 통해 도덕 정치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검찰과 보수언론의 여론정치 도구임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었고, 이것이 바로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을 분리시키기 어려웠던 이유였다. 반면에 이러한 도덕 정치의 프레임에 소위 진보언론과 일부 진보좌파가 쉽게 빨려 들어간 것은 진보정치가 도덕 정치의 성찰에 얼마나 불철저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도덕 정치에서 덫에서 빠져나와야 진보정치가 산다
한국 정치는 지금까지 제대로 도덕적이었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은 늘 상대방을 공격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그리고 개혁과 진보를 내세운 세력일수록 더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보수정권 하에서는 온갖 비도덕적 행위를 하고 심지어 불법적 행위를 한 사람들조차 장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개혁정권 하에서는 약간의 도덕적 흠결도 쉽게 비판과 비난의 표적이 되었고, 언론권력은 자기 입맛에 맞지 않은 공직자들을 도덕적 잣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해왔다.
물론 도덕적 정당성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며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 역시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도덕적 비난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시민적 덕성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을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인격적 모욕은 결코 도덕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그런데 스스로 도덕적이지도 못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쉽게 도덕적으로 단죄하고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모습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사실 이것은 진보와 정의 이전에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적 예의이자 덕성의 문제이다. 자신도 지키기 어려운 과도한 도덕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개인적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시민의 기본적 예의이며 덕성이 아닌가? 정의 없는 시민적 덕성이 공허하다면, 시민적 덕성 없는 정의는 맹목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과도한 도덕적 단죄 정치는 정치가 개인의 도덕성 논란에 빠져들도록 함으로써 이념적, 정책적 논쟁, 사회제도와 구조에 대한 관심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정치, 특히 진보정치의 방해물이 된다. 진보정치가 추구하는 정의의 실현은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직 사회관계, 사회제도의 개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쟁점을 둘러싼 이념과 정책의 대결이 개인에 대한 도덕적 논란 속에 파묻히면 정치는 실종되고 시민대중의 이성적 판단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조국 죽이기'는 결국 보수세력,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의 방패막이 되어온 보수 언론권력과 검찰조직 이익을 보호하고자 한 검찰권력이 검찰개혁에 저항하기 위해 불을 지핀 도덕 정치, 도덕적 단죄 정치의 산물이며, 이에 동조한 진보언론과 진보좌파세력은 결과적으로 검찰개혁을 저지하는 데 동조한 셈이 되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점은 조국 후보자가 도덕적 비난으로 온갖 수모를 겪는 과정에서 특권과 불평등이라는 사회개혁의 과제를 노출시켰고 또 언론과 검찰의 공작을 뚫고 장관으로 임명되어 검찰개혁을 위한 주춧돌을 놓고 사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시민들의 관심 속에 검찰개혁이 지속되고 의회를 통한 법 개정도 이루어지겠지만, 또다시 도덕적 단죄의 시도가 언론과 검찰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도 단정하기는 어렵다. 검찰은 한풀 꺾였지만, 언론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시민들은 조국에 대한 부당한 법적 비난과 과도한 도덕적 비난이 검찰과 언론의 전략임을 이해했고, 인터넷에서 온갖 정보들을 찾고 공유하면서 검찰개혁 저지 카르텔의 전략적 동맹을 확인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담론들을 만들고 공유하였다. 그리고 조국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보여준 반인권적 수사 관행을 계기로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면서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에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검찰개혁을 촉진하는 힘이 되었다. 검찰개혁을 위한 동력은 만들어졌지만, 검찰과 언론이 주도한 도덕적 단죄 정치가 시민대중의 마음속에 각인해놓은 부당한 선입견들을 해체하고 진실을 밝혀 시민들의 오해와 오판을 되돌려 놓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조국 장관은 사퇴했지만 우리는 작금의 사태의 뿌리가 어디에 있었으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차분히 되돌아보는 이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물론 도덕적 단죄 정치의 효과는 부정할 수 없으며, 그 결과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낮아졌고 정의당의 지지율로 함께 낮아졌다. 이것은 민주당이든 정의당이든 개인에 대한 도덕적 단죄 정치의 프레임이 가지는 위험성에 주목해야 하면서, 제도 개혁에 주목하는 합리적 정치의 프레임으로 적극적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어쨌든 조국 장관이 사퇴한 현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며, 그 돌파구는 결국 검찰개혁을 비롯한 일련의 정치개혁 및 사회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특히 후보자 검증과정에서 드러난 교육개혁, 불평등 해소, 언론개혁 등의 과제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보정치 역시 시민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연대와 차별화를 유연하게 사고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http://www.pressian.com/news/review_list_all.html?rvw_no=1661" rel="nofollow">클릭)
2016-2017 촛불혁명의 불빛이 흔들린다는 원성이 높다.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빛바래져 있다는 말도 있고, 적폐청산 불만세력의 방해가 많다는 소리도 있다. 남북관계가 경직된 탓은 미국 때문이라는 국수주의적 지적도 나온 상태이다.
거룩한 촛불혁명을 촛불항쟁이라고 자기 비하하며 스스로를 폄하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어느 혁명사의 경우를 보더라도 밋밋하게 완결된 혁명은 없었다. 혁명의 완성을 훼손하려는 반혁명 물결이 나타나 역사의 전진을 가로막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는 혁명은 점진적 변화를 뜻하는 개혁과 구분한다. 그러나 역사 현실을 잘 살펴보면 혁명은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일상의 진화과정과 점진적 변화의 축적위에 근본적 변화과정을 수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은 어떤 한 사건의 발생이나 영웅·호걸의 돌출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혁명의 완성과 후퇴, 전진과 역진이라는 과정들의 연속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어떤 경직된 사고의 소유자들은 역사 변화과정을 보며 일희일비하고, 혁명이 더딘 행보를 한탄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들이 일구어낸 위대한 역사적 대변화를 촛불항쟁이라고 경시하면서 헛발질만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우리의 물관리 행정과 입법사례는 촛불혁명 완성은 고사하고 어떤 개혁 정책하나, 법률 하나를 개정하고 시행하는 일조차 매우 어렵고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논의, 추진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어떻게 하면 촛불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지나간다는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한 접근을 하는 이에게만 촛불혁명의 완수라는 대업 실현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군사문화의 유습이 짙게 깔려있는 관료조직문화의 전면적 쇄신과 자기수정이 없는 한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기술관료 자신이 국정목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오로지 국민만을 위한 행정가의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일부 특정부서 관료들은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여전히 많은 예산과 낡은 정책을 움켜주고 촛불혁명에 반하는, 개혁을 거스르는, 변화를 부정하는 데 골몰하고 오로지 납작 엎드려 눈 운동만 한다는 복지부동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어 국민들의 빈축과 비난을 사고 있다는 게 오늘날 관청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쾌적한 환경의식과 바램은 맑은 공기와 물, 쓰레기 없는 세상에 있다. 탁한 공기와 더러운 물, 지저분한 주위 환경에 염증을 느끼지 않거나 거부감을 표하지 않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물은 가장 흔한 자원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낭비가 심한 자를 빗대어 ‘돈을 물 쓰듯 한다’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한국은 강수량이 풍부해 벼농사하기에 충분한 물을 가진 수자원국가였다. 그래서 치산치수정책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해 왔다는 말을 쫓아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우리의 치산치수정책은 성장주의자의 손에 모든 걸 내맡기는 꼴이 되어버렸다. 경제성장시대이래 물 관리는 이원화되어 있었다. 수량은 건설부 소관이었고, 수질은 환경부 소관이었다. 1994년 영남 주민들의 젖줄인 낙동강물이 못 먹을 정도로 더렵혀졌다. 이 대형 환경사고는 대구지역 공단에서 무단 배출한 페놀에 의해 오염된 것이었다. 이 낙동강오염사태를 겪으면서 물관리 일원화를 요구하는 주장이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물관리 일원화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집권 후 주요추진정책의 하나로 이를 채택했다. 2018년 5월에 가서야 국회는 여야 합의에 의해 물관리기본법을 의결했다. 지난 40년 동안 양분되어 온 수량·수질관리가 일원화되어 드디어 물관리 행정 책임은 환경부로 일원화되었다. 말하자면 국토부가 장악해 왔던 댐관리 기관인 한국수자원공사 등을 환경부가 관리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물부족 국가라면서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들었을 때 토목공학자와 건설업체는 댐 건설과 수량 확보만이 대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운동가들은 거대한 댐이 성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효과가 많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기업 프렌들리를 외치며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사실 4대강 토목공사를 추진하기 위해 녹색성장을 국가 최우선정책을 밀어 붙인 셈이었다. 이 4대강 사업의 주무기관이 한국수자원공사였다. 그리고 농업용수 확보와 운영은 농어촌공사가 담당했다.
물관리기본법이 제정되어 조직은 통합되었으나 사업과 예산은 통합되지 않아 통합물관리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소하천은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맡게 되었으나 이를 감당한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과 어쩌다 투입되는 예산 등에 대한 모니터링 체제가 불비하다는 것이다.
특히 통합물관리의 기초라고 말할 수 있는 물관리에 필요한 관련 정보들을 여러 기관에서 수집, 이용함으로써 디지털 전환시대에 걸맞지 않는 체계를 보이고 있다. 현재 물관리 정보 체계를 보면 환경부, 행안부, 국토부, 기상청, 국토지리정보원, 국립농업과학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농어촌공사, 한국환경공단이 25개의 정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표 2>.
<표 2> 물관리 정보 시스템
지난 제20대 국회 말기였던 2020년 5월 12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정부조직법에 대한 법안심의를 했다. 당시 국회 속기록을 통해 드러난 국회의원들과 관료의 발언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다.
김종민 의원의 정부조직법 개정 제안 이유는 지표수와 지하수, 수량과 수질, 재해 예방을 환경부가 효율적으로 통합관리하고자 하는 물관리 일원화의 취지에 따라 국토교통부 소관의 하천에 관한 사무를 환경부에 이관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즉 2018년 6월 이전엔 국토교통부가 물관리 업무와 하천관리 사무를 일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6월 이후 물관리 업무는 환경부가, 하천관리 업무는 여전히 국토교통부가 쥐고 있었다.
첫째, 국회 수석전문위원 조의섭은 검토의견을 통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현재 물관리 정책, 유역 및 수질․수량 관리는 환경부가, 하천계획 수립, 공사 및 유지관리는 국토부가 담당하고 있는데 물관리와 하천 업무의 이원적 구조를 환경부로 일원화함으로써 조직 운용 및 업무 수행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일관된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보아 타당하다고 보았다.
둘째, 행정안전부 차관 윤종인은 물관리 일원화를 위한 행정조직 개편을 요청했다.
셋째,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은 찬성과 반대 의견을 말하지 않고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정부조직 개편안 결정을 일임하였다.
셋째, 국민의 힘 윤재옥 의원은 여야간 국회 협상과정에서 국토부의 의견을 두둔하는 차원에서 하천관리 업무의 국토부 존치를 유지하는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넷째,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장 국민의 힘 이채익 의원은 부처 협의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정부조직법안 의결을 유보하였다.
결국 이날 회의에서 물관리 일원화를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끝내 처리되지 않았고, 제20대 국회 폐회에 따라 법안 역시 자동 폐기되었다. 이 정부조직법 개정은 7개월 뒤 2020년 12월에 국회에서 의결되었고, 2021년 1월에 가서야 정부조직 개편에 적용되었다(표 1 참조). 국회는 국민 다수의 이권을 대표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국가 핵심기구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협의민주주의와 절차민주주의에 의해 좋은 정책은 하루아침에 이름과 형식만 남게 되는 덜 좋은 입법이나 나쁜 입법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질 나쁜 야당의 존재를 우유부단한 집권여당 일부 의원들과 함께 촛불혁명의 위업 달성에 커다란 장애물이다.
부처협의는 정부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절차요 과정이다. 그러나 부처협의과정에서 좋은 정책의 알맹이는 빠지고 좋은 정책은 간판으로만 남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회 입법정책을 통해서만 해결되어야 할 만큼 부처협의가 부실한 경우가 많아질수록 관료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부처협의가 좋은 정책 추진과 집행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야 할 것이다.
부처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었더라면 남북공동선언 등을 조약 체결과 같은 수준으로 제도화할 수 있는 국회 비준 역시 그 실현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알려진 소식에 따르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선언 등 남북공동선언의 국회 비준을 위해 국회의원 180인은 동의 의사를 모았다고 한다. 그런데 국방부와 기획재정부 등이 부처협의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정부의 남북공동선언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도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부처협의가 공무원의 철밥통을 고수하는데 암약하는 부처 이기주의의 피난처가 되어선 안된다. 부처협의는 말 그대로 정책 조정과 합의를 통해 정부 효율을 극대화하는 통과의례여야만 한다. 부처협의는 충돌하는 가치와 이권을 조율하여 국리민복과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만 운용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참고자료>
제20대 국회 제377회–행정안전소위 제3차(2020년 5월 12일)
19.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김종민 의원 대표발의)
20.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정부 제출)(계속)
(14시40분)
◯ 소위원장 이채익 다음은 의사일정 제19항 및 제20항, 이상 2건의 정부조직법 개정법률안을 일괄하여 상정합니다. 수석전문위원께서 사항별로 세부 내용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수석전문위원 조의섭 소위 심사자료 3페이지부터 보고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하천에 관한 사무를 환경부로 이관하는 내용입니다. 검토의견 말씀드리면 개정안은 현재 물관리 정책, 유역 및 수질․수량 관리는 환경부가, 하천계획 수립, 공사 및 유지관리는 국토부가 담당하고 있는데 물관리와 하천 업무의 이원적 구조를 환경부로 일원화함으로써 조직 운용 및 업무 수행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일관된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보아 타당하다고 보았습니다.(중략)
검토의견 말씀드리면 부칙의 시행일과 관련해서 국토부 소관의 기구․정원․인력 등을 환경부로 이관하기 위해 공포한 날부터 시행하기에는 다소 촉박한 문제가 있다고 봐서 일정 기간 시간을 둘 필요가 있다고 보았고요. 그밖에 소관 사무및 경과조치 등의 부칙 개정안은 문제가 없습니다마는 물관리 일원화에 따른 관련 개별 법률의 인용조문 중 ‘국토부장관’을 ‘환경부장관’으로 개정해야 될 사항들이 물환경보전법, 소하천정비법 등 26개 법률에 걸쳐 누락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서 수정의견을 조문대비표로 해서 14페이지에 붙여 놓았습니다. 이상 보고 마치겠습니다.
◯ 소위원장 이채익 정부 측이오.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전문위원이 제시한 수정의견에 동의합니다.
◯ 소위원장 이채익 위원님들, 의견 개진해 주십시오.(중략)
◯ 윤재옥 위원 차관님, 국토부하고는 다 이야기가 됐어요?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예, 지금 국토부 국장님 와 계십니다. 의견을 청취하시려면 청취하십시오.
◯ 윤재옥 위원 국토부 입장을 설명해 주십시오.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위원님들이 다 아시다시피 물관리 일원화가 2017년 정부조직법 개정 때부터 논의가 돼서 2018년 6월 달에 여야 4당 합의에 의해서 일단 수자원 부분, 물 부분은 일원화되고 하천 부분은 남겨 두었습니다마는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논의해 주시면 그 결정에 따르겠다는 것이 국토부 입장입니다.
◯ 윤재옥 위원 국회의 논의 결과를 따르겠다는 입장입니까?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예, 그렇습니다.
◯ 윤재옥 위원 정부가 제출한 안에 대한 찬성 입장은 아니고요?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국토부 입장에서 찬성․반대보다는 국회의 논의 결과에 따르겠다는 것이 저희 입장입니다.
◯ 윤재옥 위원 그러면 행안부차관님, 국토부하고 회의 안 했나요?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이것이 사실은 상당히 오래 전에 여야 합의로 하천 관련 기능을 다 환경부로 이관하기로 결정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 추가적으로 이 법 심의 전에 이야기한 적은 없고요. 그때 정부 내에서는 의견을 다 조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조직실장이었기 때문에요.
◯ 윤재옥 위원 국토부 무슨 국장이시지요?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국토정책관입니다.
◯ 윤재옥 위원 국토부는 지금 뉘앙스가 흔쾌히 찬성하는 입장은 아닌 것 같아요. 정부의 물관리 일원화 방향에 반대할 수는 없지만 찬성하지도 않는 입장인 것 같아요. 저의 말이 틀렸습니까?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물관리 일원화에 대해서 국토부는 찬성입니다. 다만 이 부분 정부조직법 개정안 자체가 지난 1년 반 전에 여야 합의로 논의가 되었고 이번에도 여야가 논의되는 대로 따르겠다는 것이 저희 입장입니다.
◯ 윤재옥 위원 되게 애매해요. 왜냐하면 이 협상을 제가 주도했습니다, 원내수석 하면서. 그 당시에 물산업 진흥에 관한 물기술산업법과 또 물관리 일원화를 위한 정부조직법을 여야 간 협상에 의해서 타결해 가지고 물관리 일원화를 수용해 주되 하천관리 부분만 국토부에 남기는
것으로 여야가 합의됐던 사안입니다, 그 당시에. 그렇지요?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제가 그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윤재옥 위원 지금 그렇게 법이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돼 있는데 이것이 오늘 상임위에 올
라오기는 했지만 여야 간에 남은 하천관리 업무를 환경부로 넘길 것인가에 관해서는 약간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인데 논의가 안 됐어요. 그래서 상임위에서 단순히 이 법안을 처리하기에는 저는 조금 숙성이 덜 됐다 이렇게 봅니다. 차관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 행정안전부 차관 윤종인 위원님 말씀하신 취지는 알겠습니다만 2018년 6월 이후 하천에 관한 사무를 환경부로 이관한다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이어서 전문위원 의견처럼 또 저희 정부가 말씀드리는 것처럼 일원화를 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희 입장입니다. 다만 국토부에서 찬성도 않고 반대도 않는 어중간한 입장을 지금 표현을 해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요, 그것은 발언이 조금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소위원장 이채익 이 부분은 우리가 국토부의 입장도 지금 현 시점에서 존중을 해야 되고 또 여야 합의사항, 아까 국토부의 입장도 여야 합의 사항이 존중돼야 된다고 했는데 그때 당시에 실무를 맡았던 윤재옥 위원님이 그런 말씀도 하니까 이 부분은 부처끼리 조율하고 또 여야 간에도, 관련 상임위하고도 조금 공감이 돼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계속 심사를 하고자 하는데 위원님들……
◯ 김민기 위원 이의 있어요. 이것을 공급자 관점이 아니라 소비자 관점으로 보면 소비자는 지방자치단체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환경부와 국토부로 나뉘어 있는 것이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여야 합의로 이것이 되기로 했었는데…… 저는 이것이 되기로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하천이 빠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국토부의 국장님께서 답변을 하셨는데, 국토부 국장님의 답변이 국회에서 결정되는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고 인정을 했는데 또 그렇지 않게 해석이 되는 모양이에요. 관심법까지 쓰셨어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인가까지 보신 것 같은데 저는 이것의 일원화를 이제 완결 지을 때가 됐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그리고 특히 행안부의 입장에서, 지방자치단체를 관할하는 행안부의 입장에서 이것은 반드시 통과가 돼야 된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국토부 국장님의 답변을 저는 긍정적으로 봤습니다만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도 계시니까 그러면 지금 국토부의 입장을 다시 전화해서 알아보시고 오세요.
◯ 소위원장 이채익 잠깐만요, 나는 그것이 좀 맞지 않다고 보는 것은 국토부의 국장이 국회에서 답변하는 것은 국토부의 공식입장으로 봐야지 그것을 지금 또 어디에 확인을 합니까? 국장이 와도 그것은 국토부의 공식입장으로 우리는 이해해야 된다고……
◯ 김민기 위원 아니, 저는 공식입장을 긍정으로 봤는데 지금 부정으로 보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명확히 해 달라고요.
◯ 소위원장 이채익 아까 분명히 여야 합의사항이 준수돼야 된다, 그 부분이 존중돼야 된다 그 얘기를 분명히 내가 들었는데.
◯ 김민기 위원 그것이 국회 입장 아닙니까? 지금 그것을 반대했다고 보시는 것이잖아요.
◯ 윤재옥 위원 아니, 반대도 아니고 찬성도 아니고 입장이 애매하다 그랬지.
◯ 김민기 위원 그런데 그것을 근거로 해서 지금 이것을 계속심사로 둘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요.
◯ 윤재옥 위원 그것은 김민기 위원님 발언 끝나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 김민기 위원 말씀해 보세요.
◯ 윤재옥 위원 우선은 정부 내의 물관리 일원화와 관련된 쟁점이 약 2년 전에 정리가 된 것입니다. 사실 야당한테는 논의를 일체 하지 않고 합의사항을 변경하는 법을 오늘 제출해서 심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당 입장에서는 합의사항의 변경이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서로 양해가 된 사항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상임위 차원에서 이것을 오늘 처리하기에 부담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저도 개인적으로는 물관리 일원화의 방향성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 국토부는 정부 전체의 물관리 일원화 방향에 반대할 수는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이 업무를 넘기는 데 반대하는 분위기가 많이 있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 김민기 위원 법이라는 것 자체가 국민을 위한 것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환경부가 관할권을 갖든지 국토부가 관할권을 갖든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일을 지방자치단체가 행함에 있어서, 관리함에 있어서 어디가 더 효율적이냐 이런 문제였는데 물관리 일원화라는 대명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하천이라는 부분이 빠져 있었던 것을 이제는 바로잡는 개념으로 보시면 저는 오늘 바로 통과가 되어야 되고 또 통과가 이제까지 안 됐기 때문에 오는 불편함에 의해서 지금 개정안이 나왔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오늘 이것을 통과시켜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윤재옥 위원 하천을 환경적인 측면에서 볼 것인가 또 개발해서 활용하는 측면에서 볼 것인가 이런 양쪽의 상반된 입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이 문제는 우리 상임위에서 공박을 하기보다는 새로 국회가 구성되면 질병관리청도 새로 신설한다고 하니까 정부조직법 중에 같이 할 것들을 모아서 그때 같이 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 소위원장 이채익 존경하는 위원님들, 오늘 심사할 안건이 사실 많습니다. 윤재옥 위원님이나 저나 물관리 일원화에 대해서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하천 관리 기능을 국토부로 존치한 부분도 그 나름의 근거가 다 있고 또 여야 지도부들이 합의한 사항을 여야 지도부가 완전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 상임위원회가 이 부분을 뒤엎는 법안을 20대 국회가 끝나가는 무렵에 이렇게 하는 데 대해서 저희 당 입장에서 상당히 심리적으로 부담이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좀 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고 또 관련 부처가 국회에 대해서 이해를 구한다면 하천 이 부분까지도 통합해야 된다는 논의가 많기 때문에 좀 더 숙성시키고 합의를 이끌어서 그렇게 하면 시간의 문제이지 크게 어려움도 없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김민기 위원님께서 대승적으로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위원장님, 정부가 제출한 정부조직법은 하천 관리 일원화에 관한 사항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위원님들 이견이 없으시면 그것은 통과시켜 주시면……
◯ 윤재옥 위원 차관님, 전문위원님이 그것은 안된다는……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아닙니다. 그것은 수정의견에 다……
◯ 윤재옥 위원 지금 그 부분은 전문위원님 검토 의견대로 수용하시면 저희들이 굳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수용하고 있습니다.
◯ 윤재옥 위원 그것은 다시한번 봅시다.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위원님, 정부가 낸 안은 5페이지 나번부터입니다.
◯ 수석전문위원 조의섭 제가 보충설명드리겠습니다. 나번의 경우에는 정부 개정안대로 갔고 7페이지 다번 중에서 첫 번째 경찰공무원, 교육공무원 보임 제한 완화는 정부안대로 가고 별정직공무원의 국장 보임 제한 완화는 개정안을 받지 않고 현행대로 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앞의 것은 정부조직 개편에 관한 내용이니까 그것은 빼놓으시면 될 것이고요.
그렇게 정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윤재옥 위원 별정직공무원 국장 보임 제한 완화는 전문위원께서 좀 신중하게 검토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 수석전문위원 조의섭 그렇습니다.
◯ 윤재옥 위원 그런 부분은 정부에서 수용하는 겁니까?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예, 수용한 겁니다.
◯ 윤재옥 위원 전문위원 검토의견을 수용하면 저는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 소위원장 이채익 의사일정 제20항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수정한 부분은 수정한 대로, 기타 부분은 원안대로 의결하고자 하는데 이의없으십니까?
10월17일은 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로 ‘1017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는 매년 이날을 기리며 “빈곤철폐의 날” 투쟁을 전개해오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규모 12위, 30-50클럽 7번 째 가입국인 한국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은 굶어죽고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하고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집에서 화마에 휩쓸리고 대책없는 개발폭력에 목숨을 끊는 등, 가난을 이유로 한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빈곤과 불평등은 구호와 원조에 의해 해결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삶의 공간에서 쫓아내려는 자본과 권력,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처벌을 정당화하며 빈곤과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는 사회구조에 맞서, 함께 연대하여 목소리 내고 행동할 때 끝장낼 수 있을 것입니다.
10월17일(목) 1017 빈곤철폐의 날 당일 오전 11시 종로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노점상, 철거민, 임차상인, 장애인, 홈리스, 쪽방주민 등 빈곤철폐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개발 때문에 쫓겨나지 않는 세상,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 빈곤과 불평등 없는 세상을 외치며 1017 빈곤철폐의 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하며 100대 국정과제에 담았지만 최근 복지부가 공약파기를 공식 선언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의 공약이행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지역별 소득 상위0.1%와 하위10%의 소득격차가 가장 높은 서울의 경우 3,056배, 가장 낮은 전남의 경우에도 1,456배에 달한다. 소득 상위20%의 가구당 소득을 하위20%의 가구당 소득으로 나누어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이 2019년 2분기 5.30배로, 2003년 통계작성 이후 역대 최대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30명의 부유한 사람들이 1만1천호의 임대주택을 보유하며 부동산 장사를 통해 불로소득을 챙기는 동안 227만여 가구는 거리‧쪽방‧고시원‧옥탑‧반지하와 같이 집이 아닌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사회안전망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사회안전망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예산에 가로 막히고 있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예산과 저울질하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굶어 죽고,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하고, 최소한의 안전조차 담보되지 않는 집에서 화마에 휩쓸리고 있다. 더불어 화려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개발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생계수단인 노점상인들의 생존권을 빼앗고, 개발지역의 원주민과 상인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며 개발폭력에 의한 죽음까지 발생시키고 있다.
우리는 UN에서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인 10월17일 오늘을 빈곤철폐의 날이라 명명하고 빈곤 없는 세상을 향한 요구를 외치며 투쟁할 것을 선언한다. 빈곤은 가난을 동정과 시혜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가난한 사람의 삶을 전시하며 호소하는 구호와 원조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한 방식은 가난에 대한 차별과 처벌을 정당화하고 고착시켜왔을 뿐이다.
우리는 빈곤을 만들어내는 사회에 맞서 싸우고 있는 노점상, 철거민, 임차상인, 장애인, 홈리스, 쪽방주민들이다.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빼앗는 사회에 저항하고 연대하여 싸울 때 끝장낼 수 있다. 우리는 개발 때문에 쫓겨나지 않는 세상,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빈곤과 불평등 없는 세상, 평등과 평화가 도래한 세상을 만들 것이다.
개발 때문에 쫓겨나지 않는 세상! 빈곤을 철폐하라!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 빈곤을 철폐하라!
2019년 10월17일
1017 빈곤철폐의 날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공약이행 촉구 공개 질의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공약이행 촉구 공개 질의서
문재인대통령은 지난 19대 조기대선 당시 시민사회가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하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선언하였고, 이후 100대 국정과제에 담았습니다. 당시의 공약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2012년 8월21일부터 서울 광화문 지하도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기준의 폐지를 외치며 농성한 투쟁의 결과였습니다. 문재인대통령 당선 이후 2017년 8월28일 박능후보건복지부장관이 광화문농성장을 방문하여 가난과 장애를 이유로 생을 마감한 영정들에 조문하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다시 한 번 선언하며 민관협의체를 구성,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논의를 함께 하기로 약속하며 2019년 9월4일 광화문농성장은 농성 1,842일로 마무리 했습니다.
문재인대통령 당선 이후 2년이 더 지나는 동안 주거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2018년10월)되었을 뿐,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는 완화조치만 취해졌고 구체적인 폐지 계획은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의 예상대로라면 <제1차 기초생활 종합계획(’18~’20)>의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조치로 인해 12만6천 가구의 생계‧의료급여 수급자가 증가했어야 하지만 실제 신규수급자는 65,829가구에 불과합니다. 부양의무자기준 완화로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은 2003년 정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발표된 내용입니다.
박능후 장관과의 약속에 따라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방안 마련을 위한 민관협의체’는 2020년 발표될 <제2차 기초생활종합계획(’21~’23)에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계획을 담을 것을 목표로 논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장관 역시 2019년 4월 16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양의무자기준 전면 폐지를 다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9월2일 한겨레신문에서 기획한 기초법제정 20년 좌담회에 참여한 배병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2023년 안에 이뤄내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다만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발언했습니다. 이후 9월5일 복지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복지 위기가구 발굴대책 보완조치⌟에 <제2차 기초생활 종합계획(’21~’23)>에 생계급여에서 단계적 폐지 계획을 담을 것이라고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정부의 공약파기 입장을 밝혔습니다.
복지부의 공약파기를 발표했던 9월5일 같은날,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에서 발표한 ⌜소득격차 완화 정책의 효과 분석⌟보고서가 발간되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주요 재분재 정책 가운데 예산 1조원 대비 5분위 배율 축소에 가장 높은 효과 있는 제도 개선으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부양의무자의 소득이나 재산에 따라 빈곤층의 생사가 결정되는 야만이었습니다. 지난 20년간 가장 넓은 사각지대를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불러온 대표적인 악조항 이었습니다. 빈곤문제의 사회적 책임과 해결을 선언하고, 복지가 모든 인간의 권리임을 선언한 기초생활보장법의 가치와 방향을 훼손시키는 구시대의 산물입니다.
문재인대통령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관악구에서 탈북모자가 사망했습니다. 모자는 사망 전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부양의무자기준에 가로 막혀 신청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8월 강서구에서는 부양의무자가 노모와 장애가 있는 형을 살해한 뒤 자살했습니다. 당시 2인가구로 수급권을 보장받고 있었던 노모와 형에게 지급된 수급비는 15만원에 불과했습니다. 노모의 둘째 아들, 노모와 형을 살해한 그의 지난 해 소득 때문에 수급비가 삭감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지부의 발표는 단순한 공약파기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을 방치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생계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기준의 폐지를 통해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필요도가 높다는 것은 상식적이며 의료급여 수급자가 된다고 해도 비급여로 인해 치료를 미루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생과 사를 오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긴급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1. 지난 9월 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제2차 기초생활 종합계획>에 2023년까지 생계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기준 단계적 폐지안을 담을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문재인대통령의 공약파기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복지부의 공약파기 발표에 대한 문재인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2. 문재인대통령이 공약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계획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공약파기 입장이 발표되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의지와 계획이 있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죽어야 하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우리는 문재인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여전히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가족관계 해체를 소명하며 수치심을 느껴야 합니다. 또 누군가는 가족에게 연락 가는 것이 두려워 수급신청을 포기해야 합니다. 가족이 없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다는 원망마저 품게 되는 가난한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대통령은 공약파기 발표에 분노하며 불안과 공포를 겪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빠른 공약 이행을 통해 국민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심각한 위기에 있는 빈곤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4년차 예산안을 제출했다. 집권 4년차의 예산안에는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지만, 지난 3년 동안 실현하지 못했던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실현할 비책이 담겨있을까? 2020년 예산안을 통해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속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 분야의 예산안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에 앞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기조를 담은 전체 예산안에 대한 평가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 분야의 예산안은 평범한 시민들이 직면한 실업, 질병, 노령, 돌봄 등 사회적 위험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실행계획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건복지예산은 문재인 정부가 한국 사회가 직면한 경제·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떻게 대응할지를 담은 ‘국가재정운용계획’이라는 큰 틀의 원칙과 방향에 구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복지 예산안에 대한 평가에 앞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기조에 대한 개략적인 평가가 선행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재정운용계획은 문재인 정부가 시민이 직면한 삶의 문제를 경제성장이라는 방식으로 풀어갈지, 아니면 복지국가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풀어갈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준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정부의 중기 국정운영기조를 담은 「2019~2023년 국가재정운영계획」을 기초로 집권 4년차 정부의 예산안을 평가했다(대한민국정부, 2019). 주목할 변화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했던 2017년에 작성된 「2017~2021년 국가재정운영계획」의 방향과 지난 9월에 작성한 「2019~2023년 국가재정운영계획」을 비교해보면 국정운영기조가 현격히 변화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에 작성한 국가재정운영계획은 저성장 기조로 인해 나타나는 분배구조의 악화에 대응해 물적자본 중심의 투자에서 사람중심의 지속성장 경제로 성장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한다고 천명하고, 이에 기초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복지지출 확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강화하겠다는 재정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반면 「2019~2023년 국가재정운영계획」을 보면 분배 악화와 소득양극화에 대응한다는 언급은 최소화되고, ‘혁신적 포용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경제 활력을 재고하는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출범 당시 사람에 대한 투자와 양극화를 개선해 지속성장이 가능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이 경제중심의 재정투자를 통해 수출·투자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보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복지국가의 확대를 통해 시민의 구매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내수를 활성화시켜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겠다는 기조는 약화되고, 지난 보수정부의 국정운영기조, 더 멀리는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개발국가 복지체제를 복원하겠다는 것으로 불과 3년 만에 국정운영기조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수출과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것과 시민의 구매력을 높여 내수를 진작 시키는 과제가 이분법적 선택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을 반드시 대비해서 볼 필요는 없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019~2023년 국가재정운영계획」이 집권 초의 국정운영기조와 달리 (집권 초에 스스로 지향하겠다고 밝힌) 물적 투자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국정운영기조의 전면적 전환은 2020년도 예산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표 1-1>을 보면 2019년 대비 2020년 예산 증가율은 9.3%로 작년의 9.5%보다는 0.2%P 낮지만, 2017년에 편성된 2018년 예산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증가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국채의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아지는 금리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등 경기 침체의 전조로 읽힐 수 있는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Wheelock, 2018) 확장적 예산편성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확장적 예산편성이 증세와 같은 안정적 재원확대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자재정을 근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란은 남아있다. 「2019~2023년 국가재정운영계획」을 보면 확장적 예산은 증세 없이 재정적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조달되고 있다. 연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로 본 한국의 국가채무가 2019년 현재 GDP 대비 39.4%로 낮다는 점을 고려해(통계청, 2019) 당분간 국가채무를 늘리는 방식으로 확장적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복지지출의 확대를 위해서는 증세가 수반되는 예산 확대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예산구성과 관련된 특성을 살펴보면, 보건·복지·고용을 아우르는 예산은 전체 예산 증가율 9.3%보다 3.5%P 높은 12.8%였다.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하지만 예산 증가율의 전체 그림을 보면 2020년도 예산편성이 2017년 이후 편성된 예산안과 확연히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1>에서 보는 것과 같이 2019년 지출 대비 2020년 예산안 중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을 보인 상위 5개 항목의 대부분은 경제 관련 항목이었다. 세계경제의 둔화와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일본이 취한 수출규제조치가 경제 관련 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의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증가폭을 보면 ‘국가재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개발국가 시기로 되돌린 듯하다. 재정기조가 수출과 투자 증대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전환되면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부문 예산이 2019년과 비교해 무려 27.1%나 증가했고, R&D 예산도 17.6%나 증가했다.
<표 1-1> 문재인 정부의 분야별 재원배분 계획의 추이, 2017-2020 (단위: 조 원, %)
극적인 변화는 SOC 투자에서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1년차였던 2017년에 편성한 2018년 예산을 보면 SOC 부문 예산은 14.0%나 감소해, 문재인 정부가 공언한 사람 중심의 경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집권 4년차 예산을 보면 1년차의 기조는 사라지고, SOC예산은 무려 12.6%나 증가했다. 2018년 –14.0%에서 2020년 +12.6%로 극적으로 변화했으며, 문재인 정부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와 보수정부의 재정운영 패러다임인 ‘경제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개발국가 복지체제의 기조로 돌아선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환경 분야의 예산도 구체적으로 보면 전기차와 수소차에 대한 예산과 상하수도 등 인프라 개선과 관련된 실질적인 SOC 예산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어(대한민국정부, 2019: 142), 사실상 경제개발을 위한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지출을 통해 시민의 소득을 늘려 내수를 활성화시키고, 이를 통해 성장을 이루겠다는 국정기조는 약화되고, 다시 수출과 투자 중심의 성장전략으로 되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집권 4년차의 예산은 문재인 정부가 공언했던 사람 중심의, 복지국가를 확대하는 예산이 아니라 다시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과거 개발국가 시기의 패러다임으로 되돌아갔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다만 실질금리가 계속 낮아지고 있고, 성장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 교육, 의료, 돌봄 등 사회서비스의 공적인프라를 강화하는 방식의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라면 이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검토는 필요해 보인다.
보건복지부 예산에 대한 평가
보건·보건·일자리 예산 중 보건복지부가 집행하는 예산은 2019년 대비 14.2% 증가한 82.8조 원이 편성되었다. 2018년 대비 2019년도의 예산 증가율 14.8%와 비교하면 증가율이 0.6%P 낮아졌지만,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연도인 2017년에 편성한 2018년의 예산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증가율을 유지했다. 2019년과 비교해 10.3조 원이 증가한 규모다. 이는 정부예산 증가율 9.3%는 물론 보건·보건·일자리 예산 증가율 12.8%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예산 구성을 살펴보면 노인 관련 예산 증가율은 18.7%로 보건복지부 예산 구성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러한 노인 관련 예산 증가는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소득하위 20%에게 우선적으로 5만 원 증액해 지급하던 30만 원의 기초연금을 2020년부터 소득하위 40%로 확대한 것과 노인일자리 사업의 대상을 2019년 64만 명에서 74만 명으로 10만 명 확대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일자리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국민연금 수급자가 2019년 518만 명에서 2020년 561만 명으로 늘어남에 따라 공적연금과 관련된 예산 증가율이 17.0%를 기록한 것은 자연스러운 증가라고 판단된다. 국민연금의 수급자가 증가한 만큼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이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를 생각하면 여전히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한국 노인의 빈곤문제는 감소하는 가족 간의 사적이전을 공적이전이 대신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만큼 공적 노후소득보장제도를 안정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예산이 2018년 이후 높은 수준의 증가율을 보이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시기에 편성된 2017년도 기초생활보장 예산의 증가율이 –2.1%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0년 예산 증가율 12.5%는 문재인 정부 출범이래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부양의무자기준의 단계적 폐지에 따라 2020년부터 중증장애인 수급자 가구에 부양의무자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수급자의 재산기준을 완화한 것이 주요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수많은 빈곤층이 수급가구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기초생활보장 예산 증가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실제로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부양도 받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이 부양비를 지급한다고 간주해 생계급여의 수급대상에 배제되는 인원이 6만여 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기동민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간주부양비 기준을 생계급여에 적용하지 않을 때 소요되는 예산이 553억 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회에서라도 이 부분의 예산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은 기준이 폐지되는 2021년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빈곤층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즉각 폐지될 필요가 있다. 만약 폐지가 어렵다면, 실질적으로 생계급여의 지원이 필요한 가구에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되지 않도록 부양의무자 기준을 (예를 들어, 기준 중위소득의 300% 수준까지) 대폭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2020년부터 수급자 가구의 임금소득 중 30%를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하기로 한 방안도 늦었지만,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과 관련해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역대 최대 규모인 1조 895억 원을 증액했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예산확대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방식이 명확한 한계가 있고, 보건의료 지출의 효과적인 지출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인프라 확충과 효과적인 관리 등 적극적 수단들이 예산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것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반면 바이오헬스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목적하에 데이터 플랫폼, 제약산업 육성, 의료기기산업 육성 등 의료산업화와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연계될 수 있는 예산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편성되고 확대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돌봄 정책과 관련해서는 그간 통합적으로 제공되지 못해 비효율성이 높았던 노인 돌봄 서비스를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통합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예산은 2019년 2,458억 원에서 2020년 3,728억 원으로 무려 51.7%나 증액되었다. 그러나 서비스 전달과 관련해 공공인프라가 부족한 한국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고질적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편성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동보육 관련 예산의 증가폭이 둔화된 것은 그간 사회서비스 예산이 아동보육에 집중되었다는 점과 최근 몇 년 동안 출생아동 수의 감소를 고려하면 예상되는 조정이라고 판단된다. 아동돌봄 예산은 그간 양적 확대를 위한 예산편성에서 질을 높이기 위한 예산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회서비스 관련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이 중요한 의제로 설정되지 않은 것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양질의 사회서비스는 양질의 돌봄 노동자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서비스 종사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예산 증액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보건복지부 관련 예산 구성을 평가하면 큰 틀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이래 지속되었던 예산 증가의 기조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예산이 복지수급의 보편성을 얼마나 담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울 것 같다. 2020년부터 7세 미만 아동까지 확대되는 아동수당과 아동보육 예산을 제외하면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의 대부분이 자산소득조사에 기초한 선별적 급여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공적연금의 수급대상자가 증가했지만, 수급비율이 2017년 기준으로 44.3%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 또한 보편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사회보험 자체가 상대적으로 안정적 고용을 보장받고 높은 임금을 받는 계층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영세자영업자와 불완전 고용상태에 있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건복지부의 예산이 사회적 위험에 대해 보편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증액 및 편성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계속 증가하고 있는 사회서비스와 보건의료 예산의 효과적인 집행을 위해서는 공적인프라의 확충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관리체계의 확대를 위해 보건복지부의 예산이 편성될 필요가 있다는 점 또한 지적할 필요가 있다. SOC에 대한 투자가 문재인 정부가 이야기한 생활SOC라는 형태로 집행되고, 그 핵심이 의료, 교육 등 사회서비스의 공공인프라를 강화하는 방식이라면,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금리가 계속 낮아지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고용확대를 위한 방식 중 하나로 사회서비스의 공공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한 예산은 논란은 있지만, 필요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기조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국민의 구매력의 확충을 통해 복지국가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전략에서 민간기업의 수출과 투자와 관련된 물적 자본을 직접 지원하는 전통적인 개발국가의 성장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복지예산에서 선별성이 강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판단된다. 중산층의 복지가 성장을 통해 담보되는 사회에서 복지는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우리가 확인한 것은 개발국가의 성장방식은 국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하기 보다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작년 연이어 하락한 빈곤층의 소득하락이 2019년 2/4분기로 멈추었다. 하지만 하위20%의 처분가능소득은 86만원에 불과하다. 상위20%의 소득을 하위20% 소득으로 나누어 불평등 격차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이 5.30배로, 2003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치를 보이고 있다. 범위를 좁혀서 상위10%의 소득 비중은 50.6%, 자본주의 발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위 0.1%의 연평균 소득은 14억 7,400만원 에 달한다. 국세청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소득까지 감안한다면 그 액수는 더 클 것이다. 상위0.1% 2만 2천여 명의 연소득의 합이 하위27%의 629만 5천여 명의 연소득의 합과 같다. 불평등은 소득뿐만 아니라 점유하고 살아가는 공간에서도 심각하다. 30명의 가진 사람들이 1만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반면 227만여 가구는 거리·쪽방·고시원·반지하·옥탑과 같은 건강을 갉아먹고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집답지 않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경제가 불황이어서 살기 어렵다는 말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진 않는다.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쌓아가는 동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계속 더 가난해지며 삶의 공간에서, 거리에서,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
10월 17일은 UN에서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1992년 세계적인 기아와 빈곤 문제를 없애겠다고 선언했고, 2000년 UN총회에서 2015년까지 절대빈곤 대폭감소를 목표로 ‘새천년개발목표’를 설정했다. ‘화이트밴드 캠페인’은 빈곤퇴치의 날의 대표적인 행사이다. ‘END POVERTY’라고 적힌 흰색 실리콘 팔찌를 착용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앉았다 일어서는 퍼포먼스로 ‘가난의 굴레에서 스스로 일어나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국제기구와 자선단체를 중심으로 아픈데 치료받지 못하는 아이나 노인, 가난하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시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호와 원조를 호소한다. 다소 불편하다. 가난이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빈곤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회구조 속 오만가지 문제가 다양하게 얽히고설켜있다. 세계적으로 심각한 빈곤문제가 구호와 원조의 부족이 아니라 소수의 기업과 탐욕스러운 자본 그리고 빈곤문제 해결에 의지 없는 정치권력의 결착에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빈곤을 만들어내는 고리들을 끊어내지 않는다면 운 좋게 구호에 의해 구조된 누군가도 다시 빈곤의 늪에 빠질 가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10월 17일을 <빈곤철폐의 날>이라고 부른다. 노점상, 철거민, 임차상인, 노동자, 홈리스, 쪽방주민, 장애인, 청년 등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빈곤을 만들어내는 폭력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 내고 연대하여 싸운다. 빈곤을 없애는 방법은 가난을 동정거리로 소비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처벌을 정당화하는 구화와 원조가 아니다.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여 행동할 때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은 세계주거의 날인 10월 첫째 주 월요일을 시작으로 한 달 동안 진행된다. 올해 1017 빈곤철폐의 날에 우리는 “개발 때문에 쫓겨나지 않는 세상,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 빈곤을 철폐하라!”라는 슬로건과 10가지 투쟁과제를 내걸고 함께 싸웠다.
△ 2019 1017 빈곤철폐의날 투쟁과제
▴ 부양의무자기준, 장애등급제, 장애인 수용시설 완전 폐지!
▴ 노점상강제철거·노점관리대책 중단, 용역깡패예산 전면삭감!
▴ 선대책 후철거, 순환식개발 시행!
▴ 고시원‧쪽방 등 비적정 거처에 대한 주거, 안전 대책 마련!
▴ 사회복지 공공인프라 확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 노동기본권 쟁취! 노동개악 저지! 비정규직 철폐!
▴ 공공임대주택 확대! 전월세 상한제 도입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 누구도 배제하지 말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 반인권적 공공개발 중단! 강제퇴거 전면 중단!
▴ 상가법 개정으로 임차상인 생존권 보장!
개발폭력 철거폭력에 쫓겨나는 사람들
2018년 12월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이 한강에 투신했다. 개발지역에 동절기 강제철거를 금지한 서울의 경우 겨울을 앞두고 철거폭력이 몰아친다. 원 주민과 상인들의 삶이 아니라 건설사와 투기꾼들의 이윤만을 위한 개발사업은 가난한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려 한다. 대책 없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사람들, 갈 곳 없는 사람들 앞에는 용역깡패를 동원한 철거폭력이 등장한다. 철거민들이 온갖 욕설과 희롱, 물리적 폭력과 매일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해지는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은 쫓겨나야 하고 밀려나야 하고 가려져야 한다. 박준경의 죽음으로부터 1년, 최근 강서구 재건축 지역 세입자였던 50대 남성이 ‘힘들었다.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생을 등졌다. 이웃 주민은 조합 측으로부터 ‘명도소송을 할 것이라는 협박에 심리적으로 힘들고 겁이 났다, 그이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경의 죽음 이후 서울시 차원에서 재건축 세입자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현장에서 변한 것은 하나 없었다. 다섯 명의 철거민과 한 명의 경찰이 사망한 용산참사로부터 근 11년이 지났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미아3구역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 투쟁하고 있다. 방배5구역, 자양1구역을 비롯한 전국각지에 개발현장의 철거민들은 매일을 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우리가 박준경이다”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개발폭력은 정부에서 진행하는 공공개발에서도 다르지 않다. 도시나 지역의 발전을 내세우고 ‘도시재생’과 같이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밀어내려 한다. 공공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파렴치한으로 매도되며 철거폭력과 마주하게 된다. 청계천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난 상인들, 현대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날 위기에 저항하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상황이 그렇다. 또한 철거폭력은 개발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심지어 인기 있는 연예인까지 건물주를 꿈꾸는 사회에서, 건물주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야만에 임차상인들이 철거폭력과 마주하게 된다. 더 화려한 도시공간을 만들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거리와 공공공간에서도 치워진다. 문재인정부에 들어서 국가폭력에 의한 첫 번째 희생자는 강북구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하던 노점상인 이었다. 디자인, 거리미화 등을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생계수단 노점상인들은 자치구가 구입한 용역폭력에 의해 철거된다. 서울로 7017 고가공원에 공사가 시작되어 개장되기 까지 서울역 지하도에는 노숙금지 팻말이 하나둘 붙기 시작했고 결국 그곳에서 생활하던 거리홈리스들은 치워졌다.
반복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
지난 7월 관악구에서 탈북모자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발견당시 모자의 집에 있던 식료품은 고춧가루가 전부였다고 한다. 모자는 생전 생활고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을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이혼한 전 남편이 아들의 부양의무자로 되어있어 수급신청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9월 강서구에서 50대 남성은 치매가 있는 노모와 장애가 있는 형을 살해한 뒤 자살했다. 세계 경제순위 12위, 30-50클럽의 7번째 가입국인 2019년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죽고 가족에게 살해당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이후 사회보장 이용 및 발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개정되는 등 복지제도의 신설, 개선조치가 계속 있어 왔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으로 장애등급제폐지와 부양의무자기준폐지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으로 만들어 냈지만 장애등급제는 이름만 바뀌었고, 부양의무자기준은 완화조치만 취해지고 있다.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제도에 필요한 예산을 반영해야 하지만 예산에 복지제도를 끼워 맞추는 작당만 계속되기 때문이다.
‘햇빛이 들어오고 주방이 있는 집에 살고싶다’ 피켓을 제작한 참가자 <사진 = 빈곤사회연대>
치솟는 집값에 선택 가능한 머물 공간이 적은 가난한 사람들은 쪽방‧여인숙‧고시원 등 최소한의 안전조차 담보되지 않는 비주택에서 살아간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방음과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비주택은 건강을 갉아먹으며 삶까지 집어삼킨다. 작년 1월 종로구 쪽방촌에 난 화재로 1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12월 종로 국일고시원에 난 화재로 7명이 사망했다. 화마에 휩쓸린 7명은 4만 원 더 저렴한 창문 없는 방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8월 전주의 한 여인숙에 난 화재로 또다시 3명이 사망했다. 비주택에서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지만 사망사고 이후 발표되는 대책은 비상벨 설치나 스프링클러 설치와 같이 굉장히 지엽적일 뿐이다. 비주택에서 발생되는 죽음에 대한 대책이 안전과 안정되지 못한 주거권에 초점 맞춰지지 않는다면 삶을 삼키는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빈곤없는 세상, 평등과 평화가 도래한 세상을 향해
2000년 UN총회에서 목표한 ‘새천년 개발목표’는 실패했다. 2015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도시가 화려하게 변화했지만 화려한 도시에 가려진 빈곤과 불평등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UN은 목표기간을 2030년으로, 이름을 ‘지속가능개발목표’로 재설정했다. 하지만 원조경제 중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력갱생을 요구하는 기존과 다르지 않은 방식은 빈곤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는 이러한 폭력과 죽음을 멈추고 빈곤과 불평등을 끝장내는 싸움에 동의하고 연대하는 단체와 개인들로 구성된다. 2019년 빈곤철폐의 날에는 2019 주거의 날을 맞아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 발족에 함께 하며 모두를 위한 주거권을 함께 소리 냈고 민중열사 묘역참배, 무연고사망자 합동 추모제,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와 기자회견을 통해 “개발 때문에 쫓겨나지 않는 세상,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 빈곤을 철폐하라!”라는 슬로건과 10가지 투쟁과제를 함께 외쳤다. 그리고 1017빈곤철폐의 날 당일,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는 부양의무자기준 진짜폐지 공약이행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가난은 죄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을 선뜻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렵다. 가난은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무엇이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차별하고 처벌하게 만드는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일정은 끝났지만 각각의 현장에서 빈곤없는 세상,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싸움은 계속된다.
우리는 지난 10월 17일, 부양의무자기준 공약 이행 계획을 물으며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단 하나, "복지부는 계획을 계속 후퇴시키는데, 청와대는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의지가 있는가?" 였습니다.
청와대의 답변이 왔습니다.
'재정적 뒷받침'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공약인데 어떤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합니까, 대통령의 공약인데 재정적 뒷받침은 국가가 계획을 마련해야하는 일 아닙니까.
우리는 농성을 마칩니다. 그러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여전히 되지 않았습니다. 복지부의 계획은 너무나 부족하고, 대통령은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분노의 마음으로 농성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복지부와 기획재정부, 국회를 상대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요구하며 싸움을 이어 갈 것입니다.
지난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 이곳 청와대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사각지대를 꼼꼼히 살피겠다고 발언했다. 지난 10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서울신문과 인터뷰 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의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2017년 8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농성장>에 방문해 ‘2020년 기초생활보장제도 2차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안을 담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이 약속은 미묘히 바뀌었다.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등’을 담겠다고 계획을 수정함으로써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은 사라져버렸다. 중증장애인, 노인 등 일부 인구만을 거론하며 반복해온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안은 효과를 낸 바가 없다. 빈곤은 누구의 문제인가? 나이나 장애유무가 아니라 ‘현재 빈곤한’ 사람의 문제다.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장해야 한다는 말로 빈곤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라. 빈곤은 누구에게나 긴급한 위기상황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가족들이 그들의 부양의무자가 되어 빈곤의 족쇄가 된다. 1인가구가 30%가 넘는 현재 ‘정상가족’을 가정한 복지는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마땅한 시대적 변화이며 가난한 이들을 세상에서 내쫓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빈곤문제 해결의 첫번째 과제라고 밝혀왔다. 이조차 이행하지 않는 정부가 어떤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농성을 중단하는 이유는 더 이상 이 곳에서 대화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문재인정부는 우리의 공약이행 요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두달이 걸려 겨우 돌아온 답변에는 ‘사회적 합의’를 운운했다.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은 빈곤층을 염려한다는 백번의 선언이 아니다.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이를 위한 예산 마련이다. ‘사회적 합의’ 라는 실체없는 말 뒤에 숨어 전 국민의 가장 마지막에 변화하겠다는 대통령의 태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아무도 대표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곳을 떠난다. 정치가 실종된,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마련할 의지가 단 한명도 없는 청와대를 떠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단 한 걸음도 위정자들의 호의로 나아간 적이 없다. 언제나 부양의무자기준에 맞서 싸운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변화했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필요한 사람들에 의해 결국 역사 속에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요구한다. 국회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법안을 발의하라. 보건복지부는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계획 마련에 나서라. 기획재정부는 이에 걸맞는 예산을 마련하라.
우리는 홀로 싸우지 않는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애타게 바라는 우리 사회 가난한 사람들과 손잡고 함께 나아간다. 부양의무자기준때문에 세상을 등져야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절망을 가슴에 품고 싸운다. 거리에 선 우리의 심장에는 수많은 가난한 영정들이 깃발이 되어 휘날리고 있다. 당신들의 거짓 선언에 속지 않는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진짜 폐지되는 그 날까지 우리는 이 기만을 폭로하고 투쟁할 것이다.
오늘(1/15) 경제민주화, 양극화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이하 99%상생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2020 경제대개혁 민생살리기 대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대담회는 재벌개혁, 양극화해소(노동존중), 경제민주화와 민생살리기 이렇게 3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3개의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현 경제 현황을 진단하고 평가하여 문제점을 해결할 주요 개혁과제를 모으고자 마련된 것입니다. 아울러 모아진 개혁과제를 다가오는 21대 총선에서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전달하여 국회가 본연의 책무를 다하도록 함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도록 할 것입니다.
1부 : 재벌개혁
재벌개혁 분야에 대한 발제를 맡은 김남근 변호사(민변 부회장)는 재벌개혁의 필요성부터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의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설명하면서 재벌개혁을 역설했습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심화으로 인한 독과점문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등 폐해를 확인하면서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꼭 개혁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금융부실이 경제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 만큼 금산분리의 원칙도 더 이상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일감몰아주기 근절을 위해서 간접지배 계열사 부당지원행위도 규율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에 따른 적극적 의결권행사도 필요함을 역설했다. 강력한 입법과 함께 지자체 공정위 등 전방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토론자로 나선 채이배 국회의원은 경제민주화를 통한 재벌개혁 기반 마련을 위한 시행령 등 개정방향을 설명하였습니다. 이사회의 독립성강화, 주주권 강화, 이해관계자에 대한 정보공개 확대, 회계감사투명강화, 일감몰아주기 부분으로 나누어 꼭 입법에 의한 개혁이 아니더라도, 시행령 등의 개정을 통해 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조항들을 지적하였습니다.
홍명수 명지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대규모기업집단의 구조, 지배구조의 개선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언급하였습니다. 현행 독점규제법상 경제력집중 억제를 위한 규제는 재벌의 해체가 아닌 지나친 확장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공정위의 지주회사 권장정책과 경제력집중 억제 수단의 완화가 문제를 더 키워 관련 규제의 체계 정합성 문제가 발생했음을 말했습니다. 중소기업 정책과의 조화도 중요함을 지적했습니다. 공정위의 일부 기업집단과의 소통을 통한 개선노력은 의미가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음으로 기존 법집행의 강화와 규제역량 집중에 노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권오인 경실련 재벌개혁본부 국장은 기업수, 매출액 영업이익 등에서 재벌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심화되고 더욱 공고하게 되고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재벌의 토지자산의 증가 규모 추이를 설명하면서 제대로 된 투자의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경제구조는 취약해지고 대중소기업간 격차는 심화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출자규제를 정상화하고 금산분리와 금융그룹통합 감독 등을 통해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배주주 사익편취방지를 위한 소수주주동의제 도입과 일반원칙으로서의 징벌배상과 디스커버리제 도입의 필요성도 언급했습니다.
2부 : 양극화해소(노동분야)
양극화해소 분야에 대한 발제를 맡은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인구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고 있고, 가장 적게 태어나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일과 산업의 디지털화로 인하여 빠른 업종전환과 산업간 융합으로 산업생태계가 급변하고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자동화가 확산돼 노동시장 내 고용불안을 가중하는 한편 디지털 플랫폼 산업의 출현은 전통적 산업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에서, 오랜 기간 감세와 규제완화 노동유연화 등으로 인해 누적된 국민들의 부채는 심각함을 지적했습니다.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중심으로의 전환과 함께 녹색경제로의 진행과 분권화 파편화된 노사관계의 다층화를 통한 실질적 사회적 대화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회연대적 노사관계 구축을 바탕으로 노동중심 임금소득주도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노상헌 경실련 노동위원장(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양극화해소를 위해 풀타임 노동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근로빈곤층 대책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가난이 대물림 되는 절망의 빈곤이기에 심각함을 언급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장내 근로자수와 별개로 전면적인 근로기준법 적용이 필요함을 역설했습니다. 근로시간 제한 연장, 야간 휴일근로 가산임금, 부당해고 제한 등의 중요 조항의 배제되어 있는 근로자가 임금근로자의 1/3에 달하고 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또한 고용보험의 확대적용과 실업부조 실시, 연금제도에서의 최저연금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생산적인 일자리의 보급과 유지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3부 : 경제민주화와 민생살리기
홍춘호 한상총련 정책본부장은 경제민주화와 민생살리기 분야의 발제를 맡았다. 재벌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과 종속적거래구조로 인하여 경제민주화운동은 이제 산업영역전반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심화되는 유통대기업의 독과점 양상과 골목상권 진출로 도소매업, 음식점업, 서비스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재벌대기업의 계속되는 불공정거래행위(판매강제, 부당반품, 부당단가인하, 기술탈취 등)로 중소상인자영업자들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유통분야 독과점 규제 및 보호정책을 위하여, 대기업 유통업태에 대한 체계적 관리, 골목상권 진출 규제, 대규모점포 의무휴업 확대, 사업조정제도 및 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 제고등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토론에 나선 양창영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은 민생살리기의 중요성을 여야가 따로없이 이야기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성과는 요원한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정부도 여러 가지 민생살리기 정책을 제시하지만, 한계가 있음을 언급하면서 중앙집권적인 접근을 넘어서 지방정부의 역할과 과제가 확대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수도권공정경제협의체 출범과 같은 예를 통해서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구체적인 협력을 통한 민생살리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호준 한국편의점네트워크 사무총장은 가맹업 분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여전히 불평등과 불공정이 만연한 상황에서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함을 역설했습니다. 가맹본부와 가맹점(점주)이 분쟁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가맹점 사업자단체의 협상권, 차액가맹금 공개 및 총매출대비 수익구조 분석 및 공개, 가맹본부와 가맹점간의 공정한 표준가맹계약서 채택 등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주거권 보장을 위한 4대 정책 요구안 발표 ▲부동산 불로소득의 철저한 환수, ▲ 공공임대주택 확대 및 주택 매매시장 개혁, ▲주택세입자 보호 강화,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복지 강화
일시,장소 : 2020년 2월 13일(목) 오전 11시,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
1. 취지와 목적
최근 서울과 일부 지역에서 집값 폭등 현상이 발생하고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그 어느 때 보다 부동산, 주거 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들이 관심이 높은 상황임.
다가오는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60여일 앞두고, 민달팽이유니온, 전국세입자협회, 참여연대 등 60여개의 주거·시민단체들은 ‘부동산 투기와 자산불평등’을 부추기는 정당과 후보들을 심판하고, ‘세입자 권리’, 우리의 ‘주거권’에 투표하기 위해 “2020 총선주거권연대”를 출범하여 각 정당에 주거권 보장을 위한 4대 정책요구안을 제안하고자 함.
아울러 총선주거권연대는 각 정당 공천에서 제외해야 할 후보자 기준과 향후 주요 활동 계획을 발표하고, ‘심판! 주거불평등, 투표! 주거권’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임.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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