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공공데이터를 공익데이터로

지역

공공데이터를 공익데이터로

admin | 월, 2019/12/30- 22:44

박지환 변호사 (정보공개센터 운영위원)

프랑스에는 색다른 데이터가 존재한다. 바로 공익데이터다. 2016년 제정된 디지털공화국을 위한 법(디지털공화국법)에 정의된 공익데이터는 민간에서 나온 데이터이지만 공공정책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공개와 공시가 정당화되는 데이터를 말한다. 이번 글에서는 민간과 공공의 이분법을 넘어 공익 목적으로 누구나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데이터를 공익데이터라 칭하겠다.

공익데이터 활용 사례로는, 맛집 평가 플랫폼인 옐프(Yelp) 알고리즘 사례가 있다. 옐프에 이용자들이 올린 평가 데이터를 분석해 보건위생 위해요소가 있는 상점을 사전에 판단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보건당국이 해당 상점에 대해 선제 조사 또는 조치를 해서 보건행정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언론보도도 뒤따랐다. 이처럼 공익데이터로 사회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활동을 이른바 ‘데이터 포 굿’(Data for good)으로 분류한다.

데이터 포 굿이 활성화되려면 시민이 데이터를 읽고, 데이터에 기반해 사고하며, 더 나아가 데이터에 기반해 행정과 정치에 참여하는 기제가 완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데이터 문해력, 즉 데이터 리터러시다. 필자는 시민의 데이터 리터러시를 높이기 위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중심으로 오픈 데이터랩 프로젝트를 통한 시민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교육 관련 내용은 dataforgood.kr 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

내가 생각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시민 데이터 리터러시는 단순한 의견수렴이 아닌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민참여의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시에서 심야버스인 올빼미버스 노선 결정을 위한 빅데이터 분석 과정에 시민이 주체로 참여하고 데이터 분석 결과를 논평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분석위원회에서 디지털공화국법의 성과로 공공의 결정에 사용되는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앞에서 소개한 옐프 사례에선 드리븐데이터(drivendata.org)라는 데이터 중간지원조직이 큰 역할을 했다. 드리븐데이터는 알고리즘 경진대회를 주관하고, 옐프사의 데이터와 보건당국 그리고 데이터과학자를 연결하는 일을 했다. 오픈 데이터랩 프로젝트도 이처럼 여러 이해당사자 간 가교 구실을 하는 데이터 중간지원조직을 지향한다.


최근 서울디지털재단과 함께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 협업을 하면서 민간과 공공을 아우르는 데이터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재단의 가능성을 목격했다. 시민사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오픈 데이터랩과 같은 당사자들과 재단이 가진 전문가 네트워크, 지방자치단체와의 연결지점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재단과 진행한 데이터 액티비즘 스쿨에서는 시민단체 활동가와 공무원이 함께 교육을 받으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민관교류의 장이 열리기도 했다. 재단은 공익데이터를 폭넓게 확보하고 해당 주제로 활동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민이 원하는 데이터 관련 프로젝트를 제공함으로써 시민의 데이터 리터러시를 완성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단이 시민과 데이터 전문가 그리고 지방자치정부를 이어주는 마중물 구실을 넘어 데이터 기반 행정혁신과 시민참여를 뒷받침하는 명실상부한 데이터 중간지원조직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박지환 변호사

* 이 글은 한겨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22109.html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 정보공개센터가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


코로나 감염 상황이 악화된 최근 몇 주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회의를 비롯한 주요 의사소통은 '구글 미트'로 진행하고, '생존신고'라고 이름을 지은 그룹채팅방에서 동료들과 각자의 점심 메뉴를 공유한다. 개인적으로 참여하던 세미나와 모임 역시 화상으로 진행하거나 무기한 연기되었다. 식당이나 카페를 가는 것도 부담스러우니 먹거리와 생필품은 온라인 마켓 배송이나 배달 어플로 해결한다.

코로나의 창궐과 함께 등장한 이른바 '언택트'시대. 우리의 일상을 이루던 물리적인 만남과 체험이 정보통신으로 대체될 수 있지 않겠냐는 이 공세적인 물음은 어느새 '어쩔 수 없는 변화'라는 위협으로 변모해있다. 시장은 이미 마트와 점원 대신 'e-커머스'와 '키오스크'로 어느때보다 빠르게 재편되고 있고,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위한 펀드까지 조성해 디지털, 비대면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제야말로 '언택트' 문화를 '뉴 노멀'로 받아들이자는 기획 앞에서, 고민과 우려가 깊어진다. 마치 모두가 이러한 흐름을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저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에도, 어떤 목소리들은 수면 아래 묻혀있기 때문이다.

'이거는 아무나 쓸 수 있는겨? 어떻게 쓰는 거여?'

자가격리에 가까운 생활로 몸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위기감이 들때,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강변을 한바퀴 돌고 오는 것이 나의 낙이다. 시내에는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빌려 탈 수 있는 자전거가 무려 2만여대, 1200여 곳의 대여소에 설치되어 있으며, 그것은 서울에 대한 나의 애정도를 20%는 상승시키는 요인이었다. 하루는 신나게 따릉이를 빌리는 나에게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이건 어떻게 쓰냐'고 물었고, 그에 나는 '아 이거 아무나 쓸 수 있어요. 핸드폰으로 하시면 돼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말을 뱉은 그 순간, 나는 그것이 거짓말임을 느끼고 있었다. 따릉이 앱을 설치하고 카드를 등록해 실제 빌리기까지 과정이 꽤 까다로운데, 과연 견디고 할 수 있을까? 스미싱이라고 생각하려나? 아니 일단 스마트폰을 안 쓸 수도 있잖아? 심지어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새롭게 설치하고 있는 '뉴따릉이'는 QR코드를 이용해서만 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예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서울시의 공공자전거 따릉이ⓒ서울시 제공서울시의 공공자전거 따릉이ⓒ서울시 제공

신기술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례는 따릉이뿐만은 아니다.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도입되고 있는 무인 점포의 '키오스크'는 일정한 키를 넘지 않으면 사용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글자의 크기, 터치패드의 감도나 음성서비스 제공에 대한 표준도 없다. 삼성 '갤럭시' 시리즈처럼 일반적으로 쓰이는 스마트폰도, 콘텐츠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도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장애인이 접근권과 관련해 겪는 '웃픈' 상황에 대해서는 유튜브 채널 '당장만나'를 살펴볼 것을 추천한다.)

생각해보면 인터넷에 연결된 전자기기를 사용해 원하는 정보를 얻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많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등의 물리적 기기를 살 수 있어야 하고, 인터넷에 연결되기 위해서는 매월 통신요금을 지불 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환경에 대한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에 이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기와 인터넷 사용법을 배울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정보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일정한 서비스가 제공 되지 않으면 앞서 말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도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다.

'디지털 포용'이 아닌 '정보접근권의 보장'을

'언택트'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자는 기획의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현재 진행형의 현실을 무시한 채 인터넷, 전자기기 사용을 누구나 가져야 하는 '기본적 소양'으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사실 디지털 사용환경에 따른 정보불평등은 전자매체를 통한 정보전달이 주류화 되면서 계속 존재했고 점점 심화되어 왔지만, 그동안 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고민과 정책적 의지는 미미했다. 이제까지 정부는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기기 접근 및 활용 수치가 늘었음을 근거로 매년 정보격차가 완화되고 있다고 발표하는 한편, 취약계층을 교육시켜 '디지털 포용'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내세워왔다. 하지만 점차 인터넷 사용자가 늘어나는 것과 현존하는 정보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에 외식업체의 필수품이라 할 키오스크 주문기가 전시돼 있다.ⓒ뉴시스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에 외식업체의 필수품이라 할 키오스크 주문기가 전시돼 있다.ⓒ뉴시스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정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공론의 영역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이고, 사회전반의 ‘정보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알 권리'의 보장 여부는 사회문화적 차별, 개인의 구체적인 불이익, 나아가 생명과도 직결된다. 때문에 우리는 디지털 중심의 정보전달 체계를 '지금 현재, 이 정보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존재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성찰해야 한다. 만약 '언택트' 시대, 혹은 정보산업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정보를 수집하고 필수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막혀버린다면 그것은 '정보격차'가 아닌 '기본권 침해'와 차별로 불려야 할 것이다.

디지털 산업은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발전하겠지만, 정보화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규칙을 정하고 이를 실행시키는 것은 입법과 행정, 공공의 권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가 '디지털'과 관련한 정책을 세운다면 먼저 공공을 중심으로, 기관이 생산하는 정보 및 서비스의 특징이 무엇인지, 각 계층과 상황에 따라 접근을 보장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설계 단계부터 필수적으로 고려토록 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구시대적'인 대면, 우편, 전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이러한 방법을 유지하고 사용해야 한다. 코로나19가 보여주었듯 재난은 언제나 현재 상황이 될 수 있고, 이때에 우리가 설정해야 할 기준은 가장 취약한 사회 구성원이 정확한 정보를 적절한 때에 알고, 대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 2020/10/13- 22:24
2
0

[시론] ‘인사청문회 제도’는 죄가 없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



2014년 6월, ‘영원히 고통받는 정홍원 총리’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제도가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후보자의 국정수행 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비판이 반복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당시 야당과 언론은 대통령 스스로의 인사검증 실패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제도를 문제 삼는 ‘유체이탈’ 화법을 일제히 비판했다. (링크)

2020년 6월,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과도한 신상털기와 망신주기로 현재 인사청문회는 정쟁 도구로 변질됐고 국회 파행과 공직 기피 등 부작용도 크다”며 ‘공직윤리청문회’와 ‘공직역량청문회’를 분리하고, 그중 ‘공직윤리청문회’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링크) 보통 법안을 발의할 때 10~20명의 공동발의자가 함께하는데, 이 법안에는 무려 45명의 여당 의원들이 공동발의자로 나섰다. 이는 그만큼 여당이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 헌정사상 첫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인사청문회 제도는 우여곡절 끝에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인사청문회법이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국회 개원 연설을 통해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하겠다고 선언했고, 치열한 논의 끝에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검찰총장, 국정원장 등 권력기관장과 국무위원까지 청문회 대상이 확대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청문회도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일하기 곤란하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의 공정성, 객관성, 절차의 신중성을 높이는 방안”이라며 인사청문회 제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링크)

이처럼 인사청문회는 민주당 정권에서 도입하고, 확대한 제도였다. ‘자기 목에 방울 달기’ 아니냐는 도입 초기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야당이 된 민주당이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했다.

그동안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능력보다는 도덕성을 판단하는 과정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물론 누가 여당인가에 따라서 발화자가 달라졌다는 것이 ‘웃픈’ 지점이지만, 인사청문회가 고위공직자의 자질 검증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르는 정쟁의 장으로 변했다는 비판은 충분히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청문회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 간의 신뢰와 합의가 사라진 한국 정치문화의 문제이다. 인사청문회 제도의 원조 격인 미국의 경우 한국보다 검증 절차가 더 까다롭고,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 공직 취임자는 수천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미국의 청문회 제도가 역량 검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후보자를 지명하기 이전에 백악관 인사관리처, 정부윤리처, FBI, 국세청 등에서 1년 가까이 중복 검증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정쟁에 치우치기보다는 후보의 능력과 정책을 검증한다는 청문회 과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링크)

정말로 인사청문회 제도가 ‘신상털기’로 변질되고 있다면 그것은 국회 내의 토론과 협의로 ‘꼬투리 잡기’식 정치문화를 바꿔나가야 할 문제이지, 청문회의 일부를 비공개하여 시민들의 눈을 가리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직자 윤리 역시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공직자의 자질일뿐더러, 주권자인 시민들이야말로 다른 누구보다도 고위공직자의 적합성을 직접 살펴보고 판단해야 할 주체이기 때문이다.

‘공직자 윤리’ 문제는 비공개하는 법을 대표발의한 홍영표 의원, 그리고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45명의 국회의원들은 스스로를 다시 한번 돌아보길 바란다. 이번 개정안의 취지가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고 확대했던 김대중·노무현의 정치와 가까운지, 아니면 인사검증의 실패를 제도 탓으로 돌리던 박근혜의 정치에 가까운지. 공개적인 검증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인사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인사청문회의 도입 이유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2020년 6월 24일자 경향신문 기고글

수, 2020/06/24- 23:47
2
0

 

※ 정보공개센터가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

국내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곧 시작된다. 백신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나타낼 것인지,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백신을 둘러싼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다행히 백신 접종률이 60%를 넘어선 이스라엘에서는 백신이 92% 이상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져오지만, 일부 부유한 국가가 아닌 지역의 사람들의 경우 언제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조차 좀처럼 기약이 없다.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확산되면서 '백신이 언제쯤 개발될 것인가'는 모든 이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세계 각국은 백신 연구개발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임상실험과 약품허가 관련 규제 완화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은 10개월 남짓 만에 상용화 수준에 도달했다. 그런데 백신이 개발된 이후 수개월이 지났음에도, 백신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지 못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레니힝의 세보켕에서 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사용을 홍보하는 벽화 앞을 지나고 있다.ⓒ뉴시스/AP
 
 

물론 모든 국가들이 동일한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용화 초기부터 부유한 나라들은 제약회사와 선구매계약 경쟁에 뛰어들며 앞다투어 백신 확보에 나섰지만, 최빈국에 속하는 나라들의 경우 아직까지 단독적인 백신 구매 계약을 단 한 건도 맺지 못했다. 이에 지난 1월 WHO는 세계 14%에 해당하는 인구가 백신 생산량의 과반수를 독점하도록 만든 부국의 '사재기' 행태를 지적하며 '세계는 도덕적 실패 직전'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백신이 개발되면 코로나가 곧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세계 대다수의 인구가 백신에 접근할 수 없고, 따라서 코로나의 종식 역시 계속해서 멀어져만 가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백신의 공급량이 전 세계 인구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니 이 같은 현상은 당연한 것일까? 과연 공급을 늘릴 방법은 없는 걸까?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도덕적 실패'의 중심에는, 단언컨대 '지식과 정보의 독점'이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공개되지 않는 정보, 공유할 수 없는 지식

특정 국가나 기구가 백신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백신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제약회사와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절대 공개되지 않는 것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백신의 가격이다. 한국의 백신계약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약회사들은 계약을 맺는 모든 국가 혹은 기구에 대해 가격에 대한 비밀유지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약가 협상에 있어, 제약회사들은 마음대로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반대로 구매를 하려는 측에서는 약가가 적당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시세'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둘째는 백신에 소요된 연구개발비용과 자금의 구성 내역이다. 약을 구매하려는 국가는 해당 의약품의 제조원가가 얼마인지, 약품 개발에 있어 공적자금이 얼마만큼의 비율을 차지하는지를 가늠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국가들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약가협상을 체결할 수밖에 없고, 협상에서 제약회사들은 절대적인 우위에 서 있다.

이렇게 '눈 뜨고 코 베이는' 식의 계약이 이루어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제약회사가 기술을 독점하고 있어 약을 희소하게 만들기 때문인데, 언뜻 보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경제 상식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제약회사들의 기술 독점은 특허라는 고유한 제도를 통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는 특정한 지식에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발명자가 이윤을 가져가게 하고, 이러한 보상을 동기 삼아 더 많은 혁신과 과학적 연구를 하도록 장려하는 제도다. 특허제도는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생산의 동기를, '지식을 상품화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조건 짓는다는 데에서 굉장히 문제적이다. 이는 정보와 지식을 사회적 필요에 따라 생산하기보다는 산업적인 이윤의 가능성에 따라 생산하도록 만들며, 지식 및 그 결과물을 '공공의 자산'으로 유통될 수 없도록 강제한다. 또한 자본이나 개인 발명가에게 모든 권한과 보상을 귀속시킴으로써, 지식을 생산하는데 기여 하는 여러 주체들을 지식의 결과물로부터 소외시킨다.

코로나19 백신 기술을 예로 들면, 이러한 기술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제약회사의 노력 뿐 아니라, 백신 개발을 앞당기려는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의 자금지원, 임상실험에 기꺼이 참여한 개발도상국 거주민, 혈장을 기증한 감염병 환자 등 다양한 주체들이 기여한 결과다. 그러나 특허는 이렇게 구성된 전 인류의 지식을 제약회사가 홀로 독점하고 사유화하도록 함으로서, 백신이 공공재로 유통될 수 없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팬데믹을 장기화시켜 모든 사회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상품화 되어서는 안 될,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특허출원은 매우 활성화되어있다. 그리고 이윤 추구를 우선하는 제약회사의 입장은 지금과 같은 팬데믹 속에서도 굳건하다. 코로나19에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치료제로 지목된 '램데시비르'를 만든 미국 길리어드 제약사는 1만 2천원으로 만들 수 있는 약을 약 46만원으로 책정해 판매하고 있고, 특허를 7년 더 연장하기 위해 희귀의약품 지정을 신청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철회한 바 있다. 백신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백신에 대한 특허를 내지 않거나 포기한 제약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지난달 19일 독일 대도시의 백신 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비오엔테크 코로나 19 백신 주사약병을 들고 있다. 2021.1.19.ⓒ사진 = AP/뉴시스

 

코로나 백신 및 치료제에 대한 '특허 면제' 조치 지지해야

특허로 보호되고 있는 백신의 높은 가격과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10월,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에 대해서 특허권 조항을 면제하자는 제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상정했다. 현재까지 164개국 이상의 국가들이 찬성 의견을 냈지만,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선진국이 반발하면서 '특허권 면제' 안은 계속해서 결렬되어 왔다. 한국 정부 역시 말로는 '코로나19 백신의 평등한 국제적 분배를 촉구' 한다면서도 실제 제도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코로나 종식은 어렵다. 이미 남아공, 영국, 브라질 등 세계 곳곳에서 변이 바이러스들이 나타나고 있고, 백신 공급이 최대한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변이가 심화될 수 있다. 만약 특허라는 장벽이 없어지고 전 세계가 기술을 공유할 수 있다면, 인도 등 이미 대형 위탁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나라나 한국처럼 생산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많은 나라에서 최대한 많이 백신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3월 WTO 각료회의에서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특허권 면제 안'에 반드시 지지를 표명해야 한다.

한편으로 특허로 인한 건강권 박탈의 문제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허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조건 지어왔다. 우리는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삼아 과학적 지식과 기술, 그리고 그 결과물들이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지식의 독점’에 대해 공공의 관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가 가능하도록 체계를 바꿔나가야 한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이미 누군가에게는 늘 자행되고 있었던 ‘도덕적 실패’를 가시화한 사건일 뿐이며, 이런 식의 ‘도덕적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의약품 접근의 문제를 ‘도덕’에만 맡겨 두지 않는 것이다. 

목, 2021/03/11- 00:10
1
0

정보공개센터가 앞으로 [민중의 소리]에 한 달에 한 번씩 '공개사유'라는 이름의 칼럼을 연재합니다. [이화동 칼럼] 카테고리로 홈페이지에도 함께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김조은 활동가가 'n번방 가입자 신상공개'를 주제로 첫번째 칼럼을 썼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공유와 후원 부탁드려요!


-----------------------------------------------------------------------------------------------------



[공개사유] N번방 가입자 신상공개, 왜 필요한가?


김조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최근 'N번방 사건'으로 대표되는 성 착취 동영상 제작 및 유포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주범들뿐만 아니라 혐오범죄가 자행될 수 있도록 돈을 지불하고 영상을 시청한 가입자 모두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다. 신상공개는 사실 인권과 범죄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이 직결된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며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신상공개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최소한 유보적 태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번 ‘N번방 사건’만큼은 지금까지의 신상공개 요구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흉악범의 신상공개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한 조치로서 어김없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범죄자에게 낙인을 찍어 재사회화를 어렵게 한다는 측면에서 범죄예방의 효과도 크지 않으며 이미 법적 처벌을 받은 범죄자에 대한 이중처벌의 소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 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03.25ⓒ민중의소리텔레그램에서 불법 성 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03.25ⓒ민중의소리





나는 그동안 정보공개 운동에 몸을 담아온 활동가로서, 시민의 알 권리가 흉악범의 신상공개 문제에서 유독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종종 신상이 까발려지는 것 자체가 공익인 것처럼 호도함으로써 '알 권리'가 본디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정보에 대한 접근과 정치적 의사형성을 다룬다는 데에서 담지하고 있는 공공성을 삭제시켜왔기 때문이다. 흉악범의 모습, 가정환경과 교우관계, 그동안의 언행 등 범죄자의 서사에 몰두한 수많은 보도들은 범죄가 드러내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공론장을 형성하기보다는 '특별한' 개인에게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더욱이 신상정보의 공개가 '공익'의 종착지로서 제시되는 구도는 피해방지와 안전을 위한 해결책을 '알아서 피하라'는 식의 개인적 차원에서 머무르게 만들어 오히려 공권력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제공하기도 했다.




N번방과 성 착취 관행의 민낯,

어떤 사례를 남길 것인가


이와 같이 신상공개의 '부작용'에 대한 합리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N번방 가담자에 대한 신상정보공개 요구는 보다 전환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성 착취 동영상 구매자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는 수많은 여성들의 구체적인 현실 진단과 정치적 결단 속에서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요구는 성 착취라는 극도로 폭력적인 범죄를 '야동' 제작쯤으로 축소시키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인식과 '본 것만으로는 절대 처벌되지 않는다'는 남성들의 공공연한 공모, 그리고 성범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처벌의 역사 속에서 점점 더 크게 자라온 성 착취 관행과 범죄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또 이제는 '죽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이 사회와 인식구조를 바꿔내야만 하며, 그 선행 조치로서 처벌 형량 강화, 구매자를 포함한 철저한 처벌, 그리고 전례 없는 대규모 범죄집단에 대한 신상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N번방 신상공개 청원에서 청원자는 "가담자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을 거라면 신상이라도 알려 달라"고 말하며 신상공개 이전에 공식적인 처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까지 성범죄자가 실제로 받는 형량은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에도 2, 3년만 지나면 사회에 복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상공개는 최소한의 방어 및 응징 수단으로서 요구되는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의 구형과 판결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행 법제도는 전혀 신뢰할 수 없고, 이 때문에 여성들은 자구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해결방법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번 사건에서 '신상공개'는 익명성에 기대어 성범죄를 저지르고, 아마 걸리지 않을 것이며 걸리더라도 벌금이나 집행유예 정도로 마무리될 것이라 예상한 많은 가담자들에게 엄청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신상공개가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는 매우 크고 중요하다.



3월 20일 시작된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00만명을 넘기며 역대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청원이 됐다.ⓒ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3월 20일 시작된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00만명을 넘기며 역대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청원이 됐다.ⓒ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범죄 가담자들의 사이에서는 신상공개가 인권침해라는 여론이 높다. 하지만 모든 범죄에는 어느 정도의 기본권 제한이 따라붙는다. 심지어 범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기본권들이 충돌할 때에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보장의 여부가 조정된다. 이를테면 신상공개에는 취업의 제한이 병행되는데, 성범죄자에 대해 교사, 청소년 관련 업종 등 특정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아동청소년이 최대한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권 제한의 정도와 양상은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범죄인지,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이와 같은 범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만약 그 범죄가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성범죄,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조직적인 혐오범죄라면 범죄자의 처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지금보다 단호하고 엄격한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사람들의 분노는 N번방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 신상털기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제도가 사회적인 공분을 적절하게 중화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더욱 공권력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N번방의 사건에서 가담자 개인은 단순히 특정 개인만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파악된 수만 약 6만여 명, 아마 실제로는 이를 훨씬 넘어서는 수의 사람들이 성 착취에 가담해왔을 것이고, 이는 우리 사회의 상당수가 여성에 대한 혐오문화를 공유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때문에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동일한 종류의 성범죄를 허용할 것인지, 허용하지 않을 것인지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과 일련의 처리 과정들은 주요한 경험으로서 사회구성원들에게 학습될 것이다. 그리고 N번방 사건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성 착취물을 구매하고 영상을 시청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메시지로 남게 된다면 이는 또다시 혐오문화의 자양분이 되어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신상공개가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지금은 성범죄 영상을 구매하는 것 자체, 보는 것 자체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비난이 필요하다. 적어도 가담자들이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현실세계의 엄중함을 보여주는 것이 보다 중요한 때이다.

수, 2020/04/08- 23:19
1
0

※ 정보공개센터가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강성국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 및 고위 공직자들이 국민의 공복으로서 신뢰감과 명예보다 개인의 부동산 재산을 선택하고, 여기에 더해 여당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집값수호에 나섰다. 그러자 정권 자체에 대한 비판적 평가들이 잇따르고 있다.

부산지역 문화예술계, 학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로 이루어진 북항 오페라하우스 건립반대 대책위가 24일 부산시청 앞에서 공익감사 청구 입장을 밝히고 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 기자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23일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법무부에 ‘전문수사사자문단 회부에 관한 민언련 의견서’를 제출했다.ⓒ민주언론시민연합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패착은 부동산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그것을 실현할 정교한 정책 없이 부동산 가격 변동에만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처럼 당장 사람이 먹고 사는 공간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민주주의와 국정의 근간이 되는 정보공개 역시 같은 종류의 문제를 안고 있다. 정권 시작부터 지금까지 정보공개의 가치를 강조할 새로운 패러다임과 그것을 실현할 정책이 부재했다. 최근엔 일선 공공기관들의 정보공개에 대한 태도가 급격하게 보수화 되고, 심지어 위법한 정황까지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다. 아래 몇 가지 사례들이 그렇다.

안일규 전 부산경실련 의정·예산감시팀장은 지난해 12월 부산오페라하우스와 관련해 기획재정부와 부산시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시민사회 출신 부산시 정무직 인사 2명이 안 전 팀장에게 직접 전화를 해 정보공개청구를 취하하라고 압박한 것이 드러났다. 이는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에 적잖은 충격과 회의감을 주었다. 안일규 전 팀장은 지역시민사회 선배들이 직접 정보공개청구를 취하하라고 요구해 큰 압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같은 행태는 당연히 부당한 협박·회유이며,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는 위법한 행위이다.

지난 1월 17일 시민단체 ‘성남을 바꾸는 시민연대’는 성남시가 특정 정당과 주민단체 등 활동 내용을 담아 작성한 ‘지역 여론·동향’이라는 문건을 정보공개청구 했다. 그런데 성남시 측은 자료를 파기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통지했다. 이에 해당 시민단체는 감사원에 감사청구까지 진행했고 경기도가 이를 넘겨받아 감사를 실시한 결과, 시측은 해당 문건이 존재함에도 자료가 없다고 허위통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단순한 알권리 침해를 넘어 시민을 심각하게 기망한 행위이다. 해당 시민단체가 감사를 청구하지 않았다면 성남시는 끝까지 문건의 존재를 감출 심산이었을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23일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법무부에 ‘전문수사사자문단 회부에 관한 민언련 의견서’를 제출했다.ⓒ민주언론시민연합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23일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법무부에 ‘전문수사사자문단 회부에 관한 민언련 의견서’를 제출했다.ⓒ민주언론시민연합

지난 4월 ‘은평구정개혁시민모임’이 은평구청을 자체 조사한 결과 정보공개의 주요한 권리구제 불복절차인 이의신청이 열리지 않는 정황을 발견했다. 이에 대해 서울특별시 시민감사 옴부즈만위원회가 은평구청 감사를 진행했다. 감사 결과 2017년 7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정보공개 이의신청 143건 가운데 정보공개심의회를 개최한 사례는 18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의가 필요한데도 열지 않고 부서가 임의로 결정한 경우가 77건이나 있었다. 행정기관의 결정통지에 대한 이의신청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정보공개심의회를 개최하지 않은 것은 청구인의 법적권리를 박탈하고, 은평구가 위촉한 정보공개심의회의 심의위원들까지 기만한 것과 다름없다.

최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유착 의혹사건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문수사자문단을 구성하는 것을 밝혀내고, 자문단 운영의 근거가 되는 대검찰청 예규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 본문에 대해 정보공개청구 했다. 그러자 대검찰청은 수사와 관련된 사항이라는 이유로 단순한 공공기관 운영 지침인데도 이를 비공개했다. 대검찰청의 업무와 행정정보 어느 것 하나 수사와 관련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전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에 대해 운영되는 전문수사자문단의 정확한 기능도 구성방식에 대해서도 일반 시민들은 알 권리가 없다는 권위적인 처분이다.

앞선 사례에서 드러나듯 사례 면면이 권위적이며 단순한 위법행정으로 치부하기에는 질적으로 반민주적이다. 정보공개에 있어 모세혈관에 해당하는 일선 공공기관들의 투명성이 이처럼 심각하게 썩어나가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왼쪽)와 김태년 의원(자료사진).ⓒ정의철 기자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왼쪽)와 김태년 의원(자료사진).ⓒ정의철 기자

더욱 걱정되는 부분은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여당에 등극하고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입법하고 있는 주요 법률안들의 내용에 폐쇄적인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9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사청문회법』 일부개정안의 주요 내용에는 현재의 인사청문회를 ‘공직윤리청문회’와 ‘공직역량청문회’로 나누어 실시하고 공직윤리청문회의 경우에는 비공개로 실시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형식적으로는 인사청문회가 정쟁과 인신공격으로 치우치는 걸 방지하고 공직후보자의 가족·친인척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이는 대통령비서실이 사전 검증을 철저히 하고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청문회의 목적에 충실하게 청문회에 임하면 해결될 일이다. 성찰 없는 입법에 애먼 국민들의 알 권리만 축나는 격이다.

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7월 14일 발의한 『국회입법조사처법』 개정안에는 국회의원들의 요구에 따라 국회입법조사처가 작성해 제공하는 자료에 대해 해당 국회의원 또는 위원회가 비공개를 요청하는 경우 일정기간 비공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국회의원에 대해 정보에 대한 공개여부 권한을 필요 이상으로 부여할 뿐이지 그밖에 공익적 개선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 정보공개법에 따라 자료의 공개여부를 결정해도 공익적 측면에서는 하등 지장이 없다. 오히려 별다른 정보요청이 없더라도 법률안 발의 즉시 관련 국회입법조사처 자료를 함께 공개하면 국민들은 입법맥락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폐쇄적인 방향으로 입법안을 발의하는 데 대해 동의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현 정부에서 추진중인 정보공개 관련 정책 중 긍정적인 내용을 찾아 보자면, 최근 행정안전부가 입법예고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있겠다. 이번 개정안에는 주민번호 수집 폐지, 정보공개심의회 외부위원 비중 강화 등 그간 시민사회에서 수년간 요구해 온 개선점들이 일부 반영되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만으로는 현재의 퇴행적 폐쇄성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공공기관 및 공직자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보공개에 대한 가치를 근본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또 이를 실천하기 위한 견고한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향후 문재인 정부의 정보공개에 대한 평가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겠다.



화, 2020/10/13- 22:16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