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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을 준비하는 중소기업 정책제안(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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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을 준비하는 중소기업 정책제안(요약)

admin | 수, 2019/10/30- 23:07

1. 한국 자본주의는 그 발전도상에서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다.

중소제조업 현장의 목소리는 대부분이 죽는 소리들이다. 원청/하청관계, 부품제조와 제품생산을 막론하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장기적 불황 상황에서 쉬운 분야는 아무데도 없다. 하지만 최저임금, 52시간 노동에 대처하는 방식에 이 정부의 산업정책은 없다. 소위 ‘4차산업혁명’, 일본으로부터 소재부품산업의 독립… 단선적이고 대기업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의 GDP 기여 비중이 30%가 넘는 유일한 산업국가이고 고용에서도 20%를 넘는 몇 안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특히 고용과 관련하여 중소제조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 비교대상인 독일, 일본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런데 지금처럼 아무 대책없이 산업현장을 내버려두어 중소제조업의 살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고용의 기반도 무너지고 전체 산업의 기반이 망가져 버릴 것이다. 중소제조업은 지금 기로에 있고 그래서 한국 자본주의도 기로에 있다.

이는 노동자집단의 미래와도 관련된 문제이다. 최대 30%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며 비정규직을 양산해내는 구조적인 문제를 내버려 놓고서는 30시간대의 주간노동과 동일노동/동일임금으로 가는 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중소제조기업의 경영주 입장에서 보자면, 전체적인 불황 국면에서 살아남을 방도는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비중을 줄이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자동화 시도나 설비의 증설은 대단한 모험이기는 해도 물량은 줄어드는데 단가압박은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서 막판에 몰려 살아남는 방법을 구하는 노력이라도 해 보아야지 않을까? 더욱이 Industry 4.0 – 자율주행 바람과 자율공장의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야에 중소제조업 경영주들이 어떻게 바람에 맞설 수 있겠는가?

 

2. 한국 중소제조업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리먼사태와 이명박/강만수 체제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 대비 중소제조업의 임금비율은 100대 30으로 고착하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생산성과 임금의 틀을 깨뜨리는 방법은 오로지 중소제조업의 생산성의 향상 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금은 생산성대비 결코 낮지 않다. 다만 이것이 환률의 인위적인 조정을 통해 대기업에 쌓인 부를 사회적으로 순환시키지 않고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만 한정적으로 분배해서 벌어진 일이다.(그 과정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협력업체, 하청중소제조기업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중소제조업은 그 적은 돈에 걸맞게 낮은 생산성, 낮은 임금에 적응해야 했다. 단순직 위주, 단순공정만 하청받는 방식, 외국인 노동자…

하지만 지금 외부로부터의 충격, 최저임금, 52시간 노동, 그리고 Industry 4.0과 스마트공장에 대처하여 중소제조업은 변화의 조짐들을 보이고 있다. 자동화와 로봇화, 아니면 품질과 관련하여 규모를 키우거나 망하거나…

이 변화의 조짐이 제대로 방향을 타려면 2차업체까지 대기업 대비 70%선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숙련화된 노동의 조직화를 이루어야 한다. 사회적 합의과정,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의 도출(규모, 업종 조정, 교육, 노동), 예산의 확보 등은 만만치 않다.

 

3. 구조조정은 어떻게 하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합의된다면 이제 어떻게 구조조정을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이에 (1) 규모의 조정 (2) 업종의 조정 (3) 노동, 교육의 조정 (4) 산업생태계 구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1) 규모의 조정은 기술적 자본적으로 취약한 제조기업은 집단화를 유도하되 그렇지 않으면 자연도태되거나 병합되도록 조치해야 한다. 더 이상 10명 미만의 소규모 기업이 중소기업의 주류를 이루도록 놔두어서는 안된다.

(2) 업종면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의 제조업에 대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기계설계와 제작, 로봇산업, 금형산업 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3) 노동인력의 재편이 시급하다. 기계제작/제품설계(CAD/CAM/CAE)와 산업디자인, 기술기반의 제조업이 가능토록 하는 엔지니어의 양성, 스마트제조에 적응하는 생산관리, 품질관리 전문가들을 키워내는 교육/재교육 시스템이 당장 마련되어야 한다. 전문대학, 대학교, 특수고등학교 등을 연계하여 정부가 지원하는 산업 교육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기존의 노동인력을 재교육시키는 보다 과감한 정책, 생활비 보조를 포함하고 취업도 주선하는 인력재배치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4) 제조산업의 특정분야들은 스스로 시장의 요구에 맞춰 생겨나고 발전하고 소멸하기도 하지만, 후발인 까닭에 진입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더욱이 기술, 숙련이 요구되는 분야, 중소중견업체가 중심이 되는 업종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많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진흥정책이다. 일정기간동안 시장을 만들고, 기술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중소제조업의 규모와 업종, 노동재편 모두가 진흥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현재의 기술연구관련 정책들은 전면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 다른 산업국가들의 경우와는 너무도 다르게 현장과 연관이 없는 여러 연구소들, 진흥조직들이 세금, 정부 R&D 자금을 축내고 있다. 이들은 산업연관성이 없다면 문을 닫던지 아니면 산업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기술연구단체로 탈태환골 하여야 할 것이다.

 

본 연구보고서는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인 정의정책연구소의 정책연구비 지원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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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과 소비 경제모델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증가에 대한 반응은 미디어의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보도 차단과 교육과 정책토론에서의 심각성 경시풍조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사회는 물론 경제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헌신적인 기후 운동가들, 심지어 구속되거나 신체 부상을 입을 각오가 되어 있는 기후환경운동가들조차도 여전히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가열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디젤 동력 화물선과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트럭으로 배달되어 석유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야채를 먹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사용되는 컴퓨터와 전화기같은 부품들도 석탄 및 다른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인도, 중국, 태국의 공장에서 제작됩니다. 함께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을 작동시키는 전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퇴직기금은 화석연료 수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의 주식에 묶여 있습니다. (관련성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음)

화석연료산업을 비난하는 시위표지를 작성하기 위해 석탄으로 가동되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펜 부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트럭과 비행기로 운송된 일회용 펠트펜을 사용한다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환경시위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주목하지만 행진이 끝나면 우리는 화석연료를 피할 수 없는 악몽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육식을 선택 또는 거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와 성장의 파산 개념과 일치하는 산업경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화석연료의 사용을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이 주어진다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시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화석연료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또는 관련한 산업으로 발생한 돈과 관련 없는 경제 체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것부터 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것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도덕적 시민들의 시위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추출적이고 약탈적인 경제 질서의 중간에 있는 약간의 환경보호적 활동이 아닌 새로운 대안 경제의 문을 열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시위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세계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화석연료를 100% 사용하지 않는(FFF) 지역사회 형성이어야만 합니다. 초기단계에서 100명 또는 500명만 지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경제, 사회 및 정치 구성단위를 만든다면 대중에게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는 화석연료 사용금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언행을 일치 시킬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단지 슈퍼마켓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닌 플라스틱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써 말입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첫 단계는 즉시 실행 가능합니다. 냉소적인 정치가들이 20년 30년 걸려 실행할 탄소중립 경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FFF 커뮤니티 창조

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초반에 상당한 용기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며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임계질량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FFF 커뮤니티가 음식, 에너지, 협동조합의 재정, 또는 화석연료와 연관된 은행들에 대해 100% 독립적일수는 없기에, FFF 커뮤니티는 오늘날의 단체들이 할 수 없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껏내며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은 설립 초기 단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사회에 모델이 될 것이며, 화석연료와 관련된 자금 의존으로 인하여 실행단계에 옮길 수 없었던 저널리즘과 교육시스템을 생산할 것입니다.

소규모 FFF 커뮤니티가 다국적 투자은행 및 석유회사를 인수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 및 정치 플레이어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수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화석연료 문제에 맞서는 데 있어 모호하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대안이 아닌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화석연료 사용 종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의 보고서에 제시된 2050년 탄소 중립 경제 창출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기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홍수와 폭풍, 해수면 상승, 사막 확산, 기아, 견딜 수 없는 폭염, 지구에 남아있는 부족한 자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인해 수십억의 인간(및 다른 종)이 죽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몇 년 또는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주류 미디어는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시위와 정부의 선언문을 다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지붕 위에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모든 식품을 현지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태양열 및 풍력을 이용하여 모든 건물을 완벽하게 단열시키며, 100 %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중교통의 동력을 공급하게 하는 법률은 (시행은 고사하고)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서로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사회에서 생산되는 FFF 제품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약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100% FFF 수송체계가 설립될 때까지). 만약 체포될 위험까지 감수하는 열렬한 환경운동가들이 있다면, 그 중 FFF 공동체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와 공동체간의 협약은 진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들과 커뮤니티 간에는 반드시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FFF 공동체는 애초에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 피상적인 소비문화, 분열, 단편적 사고와 같은 문화에 일치하여 운영될 수 없습니다.

신규회원은 평생동안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FFF 커뮤니티에 자산을 위탁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형태의 깊은 사회적, 윤리적 약속 또한 가능합니다.

 

자본주의와 글로벌 농업: 포드(Ford)부터 몬산토(Monsanto)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화석연료해방 공동체(FFF)는 초반에는 작은 범위로 시작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채택했을때 어떠한 사회가 될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당 모델이 거의 없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FFF 커뮤니티 경제의 핵심은 100% 유기농 식품을 생산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송하는 유기농 농장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의 식생활에 대한 다양성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진정한 화석연료 자유경제의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음식들은 집, 옥상, 인근 빈 공간에서 재배되거나 지역 농장에서 들여올 것입니다.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에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행위가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권력가나 재력가들을 로비하거나 환경 NGO 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플라스틱,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제품,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운송 된 제품이 없는 상태)은 FFF관련자들에게 결정적인 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가 아닌) 농부와 시민 간의 협력을 장려하는 공동 시장에서 식품을 판매(또는 물물 교환을 통해 교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장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교환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기 농업 공동체는 전혀 급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기후를 파괴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계나 인공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그들을 제외한 미국의 지역들이 세계무역과 연관된 산업화된 비정상적인 농업 생산 시스템을 수용하는동안 이 공동체들은 지속적인 경제를 추구해오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유기농업 방식은 농업과 유통에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일자리를 제공 할 것입니다. 지구의 파괴에 기여 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그 노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도덕적 행동입니다.

공동체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음식 및 기타 물품에 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FFF) 운송수단의 창출입니다. 초기에 제공된 FFF 운송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이 심하게 제한적이더라도 시민들은 그것을 불쾌한 불편으로 간주하지 않고 도덕적인 용기의 서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치인들은 천연가스, 전기 및 심지어 원자력이 당연히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FFF커뮤니티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제조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제조업에 관하여 완전히 다시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및 사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어떻게 물품들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하여 반드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경박스럽고 사치품과 같은 제품들의 마케팅과 소비를 완전하게 종료해야 합니다.

FFF공동체의 제조업은 100% 현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지역 및 세계적으로 공동체를 연결 할 수 있는 화석연료를 100% 쓰지 않는 운송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화석연료를 제거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물품을 사용을 줄여야 하며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품목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20-50년 이상 지속될 책상과 의자, 책장과 도마, 셔츠와 스웨터, 컵과 냄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이러한 변화는 상업적인 소비 중심 문화의 종식과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에 중점을 두며,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FFF 커뮤니티에서 이케아(IKEA)나 갭(GAP)과 같은 관련 상품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00% 화석연료 비사용 제품의 생산과 유통은 우리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장기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제조는 현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내구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우리 환경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 자유 무역 및 산업화의 위험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장에 관한 잘못된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 개념, 태도의 변화

FFF 지역사회는 화석연료에 관한 선전과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충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기업의 사상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기술과 거버넌스의 진보적 혁신이 아니라 태도의 혁명에서 시작됩니다. FFF 공동체는 자동차를 홍보하고 분별없는 음식 소비를 장려하는 광고가 없는 문화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후변화가 지역사회에 있어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위협임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짚 깔기, 유리 재활용, 금속 해체, 비료사용을 위한 인분 수집, 카트를 통한 식품 수송, 또는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자전거를 통한 전기 생산 활동이 엄연히 도덕적인 것이며 가치 있는 사회적 기여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문화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상업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만족감과 즉각적 만족에 대한 숭배는 도덕적 철학, 절제, 겸손 및 정직한 선행으로써의 사회적 참여에 기초한 문화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완전하게 “진보적인”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겸허, 절제, 지적 및 영적 참여의 중요성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와 결부됩니다. 이러한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업 문화에 대한 대안이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전기, 소비, 재산의 막대한 증가, 도시화 및 개인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에 의해 인간의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현대의 관념에서 비롯된 잘못된 추측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더 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시스템 생성에 도전하지 않으면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친환경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입각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생산과 유통에 뿌리를 둔 경제의 겉치레적인 변화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화와(그리고 영화 전후에 나오는 광고들) 뉴스 보도에서 강조하는 현대화의 신화 뒤에 감추어진 체계를 반드시 가시화해야 합니다. 사회의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비싼 자동차나 전용 비행기로 전 세계의 수도에서 수도를 누비는 사람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나르고, 공공장소를 청소하고, 우리의 식량을 재배하며 요리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더욱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되는 자원낭비,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 부는 상업적 미디어에서 마치 선량한 도덕적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FFF 공동체는 부동산, 개인 재산, 소유권에 관한 오해 소지가 많은 개념에 대해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언론에 의해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계약법과 기업 법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돕거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커뮤니티 회원 간 구속력 있는 계약이 없습니다. FFF 커뮤니티는 이러한 계약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FFF 공동체에 가입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을 끊고자 하는 충성 서약이 회원자격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동산과 소수의 사람에 자본이 집중되기 전에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농업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마을 계약과 동등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을 계약은 상징적이라기보다는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각 개인이 식품, 도구, 가구, 운송 및 거버넌스의 생산에 기여해야하는 책임과 구성원들에게 평생동안 커뮤니티를 갖추어준다는 공동체의 책무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중심 환경과 인간 정착의 관계를 형상하는 이로쿼이 부족 (Iroquois Nation)의 헌법 부활은 금융, 재산권 및 부동산에 중점을 둔 법적 왜곡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현재 혁신주의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는 동시에 화석 연료와 관련된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행을 없애고 모든 투자가 지역사회 활동과 관련이 있고 FFF 경제 창출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FFF공동체 회원가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자산, 교육 수준, 문화 감수성 정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Teslas를 구입하거나 태양 전지판 패널을 구입할 수 있는 상류・중산층 사람들에게 포커스된 녹색 경제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과 주변 매체를 통하여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빈곤층과 노동 계급에게 기후위기를 설명하고 응답에 참여한 대가로 양질의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 디너, 억만장자의 기부 및 기타 활동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연설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FFF 화폐를 만드는 것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화폐는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나타내며 지역 사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및 기타 제조 제품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사용에 극히 제한적일 지라도 이 통화가치는 화석연료와 연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즉, FFF 화폐는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사용이 확대되고 결국 세계경제로 확장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연결되지 않고 유사한 독립적 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무역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침묵입니다. 투자은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지구를 가로질러 상품을 운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탄소배출과 공장지대 설립을 위한 산림 및 정글파괴, 자연을 희생하여 끊임없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공장의 설립으로 인해 엄청난 환경의 파괴를 가져다줍니다. 세계 무역에서 추진되는 식량(특히 육류)의 비생산적인 대량 생산은 토양, 산림 및 강과 바다에 장기적인 피해를 줍니다. 또한 식품 및 제품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산업적 접근 방식은 지역 경제를 파괴하고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을 조장하였습니다. FFF공동체는 시민들에게 이 파괴적인 악몽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제공합니다.

 

결론

우리는 미디어와 토론회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관행을 바꾸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배출량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삶에 탄소 발자국이 적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쟁을 목격하곤 합니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깊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매일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세계 문화를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그 문화는 즉, 최선의 길은 두 가지 전략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선택을 지역 사회의 선택으로 만들고 그 지역사회를 대체 경제의 기초가 될 경제 단위로 만드는 것입니다.

화, 2020/03/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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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해야 우리는 국회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인가?

‘국회’라는 말이 나오게 되면 누구든지 목소리를 높여 맹비난한다. 모든 사람들이 국회를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긴급하게 개혁할 대상 1호로 지목한다.

그러나 막상 우리 모두의 ‘사고뭉치 국회’를 과연 어떻게 개혁해나갈 것인가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정작 명쾌한 방안이 없이 수십 년 째 “그 밥에 그 나물”, 도돌이표 레토릭일 뿐이다.

국회 개혁, 이제 추상적이고 원론적이며 환원론적 논리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야 한다. 국회 개혁의 진실을 분석하고 실제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학생의 본업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수업, 즉 학습이다. 그런데 만약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고 대리 수업을 한다든지 대리 시험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학생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학습과 수업을 하지 않고서 나가서 연애나 하고 패싸움하고 게임하고 놀 수밖에 없다. 패싸움 금지규정을 만들어본들 막을 수 없다. 수업을 하지 않고 시간이 남고 남아돌아서 날이면 날마다 패싸움하고 연애하고 게임하는데, 예를 들어, 패싸움금지법, 연애금지법, 게임금지법 등등을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본들 그것들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또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학생을 선발해본들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는 그 본질을 고치지 않는다면 선발된 그 좋은 학생들도 수업을 안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교사를 초빙한다고 해도, 수업을 하지 않는 그 자체를 고치지 않고서 왜곡된 이 상황을 결코 바꿀 수 없다.

동일한 논리로 나는 오늘 국회 문제의 핵심이 바로 국회가 국회의 본분, 즉 입법을 국회의원들 스스로 하지 않고 ‘방기’ 혹은 ‘피동적으로 배제’된 데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국회처럼 이렇게 입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또는 ‘소외된’ 의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입법이야말로 의회의 본령이고, 이 본령을 방기한다면 그것은 이미 의회가 아니다.

 

인식하지 못하면,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해내지 않고서는 아무리 유능하고 의욕에 넘치는 국회의원을 선출해본들 모든 국민들이 바라마지 않는 ‘좋은 국회’, ‘신뢰받는 국회’로 발전할 수 없다. 그렇게 ‘입법’을 방기하는 객관적 조건을 바꿔내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좋은 선거법에 의해 좋은 인물을 선출해도 ‘좋은 국회’, ‘좋은 국회의원’이 나올 수 없다.

지금 ‘국회 문제’를 말하면, 모두 입을 모아 “지긋지긋한 정쟁(政爭)의 종식”을 말하지만, 의원들이 자신들의 본업인 ‘입법’에 몰두한다면 솔직히 ‘정쟁’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국회 문제의 ‘진실’이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숨겨진 진실

얼마 전 국회의 한 의원실에서 ‘검토보고서’가 처음엔 찬성 취지였다가 중간에 부정 취지로 바뀌는 바람에 법안 통과가 무산되자 의원이 수석전문위원을 의원실로 불러 문제를 제기하던 중 보좌관과 입법조사관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빚어져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건은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신의 영향으로 “국회의원의 갑질 사건”으로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사실이 있다.

해당 사건에서 수석 전문위원은 항의하는 보좌관의 태도를 문제 삼아 “건방지다”라고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은 그야말로 “갑중의 갑”으로 통하는 위상이다. 그런 ‘높으신’ 국회의원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좌관에게 “건방지다”라는 말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실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듯, 국회 수석전문위원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수석전문위원의 힘이 얼마나 센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 ‘검토보고서’가 바뀌는 바람에 결국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고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국회의원과 전문위원 중 과연 누가 입법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하여 입법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것이 곧 대의민주주의다. 그렇다면 국민이 입법권을 부여하지 않은 국회 전문위원은 어떻게 하여 이렇게 “국회의원보다 더 큰” 입법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일까?

이전 시기에 기업들은 재경부(지금의 기획재정부, 기재부)에 로비를 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회에 로비를 한다. 기재부 관료에게 해봤자 다시 국회의 문턱에서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다시 반전이 존재한다. 바로 국회에 대한 로비에서 그 로비의 대상이 국회의원이 아니라 바로 ‘국회 전문위원’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국회 전문위원은 각종 법안만이 아니라 예산 심의에 대한 검토보고 권한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회 공무원인 예산결산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에게는 장관들이 머리를 숙이고 부탁한다. 나아가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을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가히 무소불위 ‘권력의 핵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국회 주변에서는 “(국회공무원인) 수석 전문위원이 초선 의원 5,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라는 말이 널리 퍼져있었다.

“일하지 않는 국회”,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금 우리 국회는 국민들의 불신 대상 1위다. 하지만 국민들은 비록 그렇게 불신을 받는 국회지만 입법이라는 본연의 업무는 미흡하지만 그럭저럭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입법이라는 의회의 본연의 직무 수행에 있어 우리 국회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왜곡과 비정상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나마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싫어할 경우 투표로써 심판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뒤에 가려져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권력 ‘국회 전문위원’은 알려지지 않은 숨은 권력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본업인 입법에서 분리된 국회의원

오늘의 우리 국회를 명실상부 국민 의사를 대표하는 기구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아마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완강하게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회는 정확하게 민의를 반영하여 올바르게 구성되어 있을까? 그러나 한마디로 유권자의 민심은 국회 의석수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과반이 넘는 표가 사표(死票)로 되고 있고, 18세 청년들의 투표권은 계속 거부당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철저히 저지된 채 거대 정당들의 독과점 체제만이 군림하고 있다.

오늘 우리 국회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그야말로 첩첩산중 쌓여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어떠한 문제부터 풀어야 이 국회를 바꿔낼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 것인가?

시민운동은 이제까지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에서 입법건수 발의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이는 한 마디로 방향 착오다.

흔히 법률안에 대한 ‘검토보고’라고 하면 당연히 국회의원이 그 책임 주체가 되어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검토보고의 ‘준비’와 그 ‘발언’까지 모두 담당한다.

우리 국회법은 제58조에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먼저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검토보고’란 국회의원이 제출하는 법률안에 대해 국회 공무권이 ‘검토’하는 것으로서 예·결산에 대한 검토도 모두 그들의 몫이고 권한이다.

사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된 현실에서도 국민을 위해 진정성 있게 열과 성을 다하려는 국회의원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 입법과정에서 의원 개인이 높은 의욕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보려 해봐도 그 역할은 대부분 입법발의의 단계에서 끝나게 된다. 결국 현 국회는 근본적으로 의원의 의욕과 능력이 발휘될 수 없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아무리 똑똑하고 열의에 불타는 사람이라도 사실상 할 일이 없게 된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어느 누가 국회의원이 되어도 예외 없이 모두 아무 탈 없이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한 지인은 초등학생을 국회에 갖다놔도 충분히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유치원3법’이나 ‘김용균법’ 등을 둘러싸고 의원들이 갑론을박, 거칠게 논란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의원들이 입법을 주도한다고 쉽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빙산의 일각’처럼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로 부각된 극히 일부 법안에만 해당될 뿐이다. 왜냐하면 현재 국회 입법은 법안 발의 그 단계에서 의원들의 개입은 사실상 종결되기 때문이다. 대다수 법안들은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법안 검토부터 모두 철저히 입법관료들의 손으로 넘어가 처리된다.

그리하여 결국 국회개혁의 핵심은 바로 국회의원들과 ‘분리’된 국회의 본업, 즉 입법 활동을 다시 ‘복원’하여 결합시키는 것에 있다. 즉, 입법의 전 과정을 국회의원이 그 ‘검토’부터 모두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화, 2020/01/1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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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저술한 『진보의 미래』에서 “(자신이) 그냥 앉아서 관료에 포획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에서도 실패하고 있는 관료 문제에 대해 어느 교수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들은 ‘늘공(늘 공무원인 사람들)’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사실 현재의 5년 단임제는 ‘영원한 관료지배의 충분조건’일지도 모른다. 각 분야 관료개혁의 세부적인 각론 없이 허허벌판에서 총론만 들고 적폐청산을 외치다 보니, 청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관료들에게 각론을 의지하게 된다. 개혁적인 정권이 들어서서 장·차관, 기관장 몇 명 바꾸고 새로운 정책을 편다 해도 관료사회는 꿈쩍하지 않는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문재인 정부, 아직 임기 500여일이 남았다”, <오마이뉴스> 2021. 1. 10.)

우리 사회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대통령 한 사람이 홀로 우뚝 서서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채 온 나라를 좌지우지 통치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청와대 권력이란 단지 전체 공무원 조직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권력은 5년마다 바뀌지만, 관료들은 바뀌지 않은 채 언제나 강고하게 온존하면서 그 핵심적인 자리를 장악한다. 국민들이 이름을 아는 장관은 거의 없을 만큼 너무도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 행정부 부처의 실질적 주인은 필연적으로 관료일 수밖에 없다. 환경정책이나 노동정책도 대통령과 장관이 지휘하는 듯 보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불과 몇 가지 정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정책들을 관료들이 행사하고 있다.

국회 역시 겉으론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온갖 비난을 모두 들으면서 정치와 입법을 좌지우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국회 입법관료들이 보이지 않은 실권을 행사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사실상 관료들이 지배하는 관치(官治), 관헌(官憲) 국가이다. 이 나라는 대표적인 행정 비대 국가다. 정책 하나하나마다 수백 수천 명의 이해가 걸려 있다. 공무원이 가진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 법제가 입헌군주 국가인 일본의 식민지 강점기에 만들어졌고, 그 뒤에도 그것을 벤치마킹했기 때문에 우리 법제에는 관헌국가적 잔흔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을 하고자 하는 자는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식으로 행정청의 권한을 간접적으로 규율하는 방식이 그 예이다. 이는 국민을 행정권 발동의 단순한 수동적 존재로 설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관(官)주주의다.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법’과 ‘규정’이 사회를 일상적으로 지배하게 된 이른바 ’87체제 이후 ‘법치주의’의 이름하에 결국 이들 관료집단의 지배력이 갈수록 확고해져왔다. ‘시험 권력’이 ‘선출 권력’을 사실상 조종하고 지배하는 이러한 사회는 민주주의가 실종된 사회다.

 

행정사무그리고 규정만이 군림하다

원래 행정사무 업무란 보조적 업무여야 한다. 그리하여 사무 및 관리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함으로써 그 명(名; 이름)과 실(實; 내용)이 부합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전반적으로 행정사무 업무가 오히려 상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그 대표적 사례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인사관리와 기획조정 업무를 장악하면서 스스로 법관에 대한 감독기관으로 군림하였다. 국회사무처 역시 전형적 사례이다. 독재 권력이 국회를 하수인 혹은 거수기로 전락시키기 위하여 도모한 국회사무처 소속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기제는 국회 입법관료에게 과도하고 ‘위헌적인’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관료 조직은 대부분 행정사무 부서가 인사와 예산 그리고 각종 사무분담 업무에 의거해 원래 보조기관이지만 실제로는 상위에 군림하면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객전도요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공공성과 가치와 철학은 사라지고, 대신 오직 사무와 규정이 군림하면서 상명하복과 형식주의만이 만연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국회를 비롯하여 감사원, 대법원, 정당 등등 국가의 공공 시스템과 기관 중 자기의 명칭에 부합하는 위상을 지니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국회 전문위원’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전문가’들이 임명되어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모두가 국회에서 순환 근무한 국회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검토보고’라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 국회 공무원이다. 미국 의회의 위원회에 근무하는 전문가 스태프 조직은 모두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독일 의회에서 이들 정책 ‘전문위원’은 독일 사회의 각계 전문가 출신으로서 자부심이 높은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시 정당 소속이다.

미국 의회 소속기구인 법제실의 법제관은 변호사나 법학박사 등 모두 법제 전문가로 구성된다. 반면에 우리 국회의 경우, 모두 순환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또 미국 의회예산처의 처장은 주로 경제학을 전공한 인사가 임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주로 국회사무처 공무원인 수석 전문위원 출신이 임명된다. 부실하고 왜곡된 우리 입법지원 기구의 모습이다.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관료집단을 새롭게 바꿔내야 한다

엉망이 된 우리의 정치과 경제, 사회, 노동 그리고 환경문제의 저변에는 언제나 관료집단이 도사리고 있다. 관료집단은 본질적으로 현상 유지와 친(親)재벌 사고방식의 보수적이고 기득권 편향으로서 대부분의 경우 변화와 개혁에 저항한다. 더구나 외부로부터의 진입이 철저히 차단된 독점구조에서 감시견제 기제가 부재한 채 책임감과 의식 부재가 더해져 스스로도 갈수록 무능해질 수밖에 없다. 대체로 관료집단은 일반 시민과의 접촉은 별로 없고(혹 만나더라도 부정적이거나 거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반면 기업 측 인사들은 빈번하게 만나게 된다. 그래서 관료집단은 ‘시장 친화적’이며 시장경제 옹호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등등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이 고착화되고 보수화가 강화되며 한 치의 변화와 개선조차도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은 바로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관료지배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심각하기 짝이 없는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의 문제에서도 관료집단은 아무 의식 없이 그저 규정과 관행만을 내세우고 모르쇠, 시간끌기로 일관할 뿐이다. 참으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관료개혁 없이는 우리 사회의 어느 것 하나도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 우리의 미래 역시 없다. 우리의 미래를 이들 낡은 관료조직에 맡길 수 없다.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관료집단을 새롭게 바꿔내야 한다.

 

시험에 의한 공무원 선발, 과연 공정한 것인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오로지 시험에 의하여 공무원을 선발하는 방식이 최고의 미덕으로 치부된다. 그렇지 않은 그 어떤 공무원 채용도 불공정성으로 매도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공무원 선발제도를 일률적으로 중앙인사기관이 독점하여 고스란히 관리하는 시험제도만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라는 없다. 거의 모든 선진국들은 각 부처별로 인력을 충원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에는 1993년 정부혁신처(NPR; National Performance Review)가 설치되면서 인사관리의 분권화와 권한 위임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각 부처에 채용권한을 위임하고 각 부처는 자체 실정에 맞게 채용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운영 형태가 각기 상이하다.

일본의 공무원제도는 우리나라와 많은 측면에서 유사하지만 우리의 경우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일괄적으로 선발하여 각 기관에 배분하는 형식을 취하는 반면, 일본은 시험을 중앙 인사원에서 일괄적으로 실시하지만 각 기관별로 채용후보자 명부를 작성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바로 임용되지 않고, 우선 ‘채용후보자 명부’에 등록되어 명부 순으로 각 행정기관에 추천된다. 따라서 성적이 좋을수록 희망하는 기관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각 기관은 엄격한 면접과 심사로 임용을 다시 결정하기 때문에 어려운 관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미국에서 시행하는 ‘대통령 공공관리 인턴(PMI: Presidential Management Intern)’ 프로그램이라는 고급공무원 임명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공공정책 분야에 우수한 석․박사 인력을 충원하기 위하여 1977년 카터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의하여 도입된 제도이다.

매년 공공정책 프로그램의 분석 또는 관리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약 200명 이상의 젊은 인재들이 미국 국민에게 연방정부 공무원이 되는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2년 동안 연방정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다. 이들은 ‘순환 인턴십 기회’를 통하여 거의 모든 정부 부처에서 근무하게 되며, 이 프로그램에 의하여 우수한 석․박사 인력들이 연방정부에 채용되고 있다.

프랑스는 유명한 국립행정학교, 즉 에나(ENA)를 통하여 고위공무원을 채용한다. 2003년의 경우 총 선발인원은 100명으로서 이 중 50명은 외부 경쟁시험, 41명은 내부 경쟁시험, 9명은 ‘제3의 시험’을 통하여 선발된다. 외부경쟁 시험은 28세 이하이고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에게 주어진다. 내부경쟁 시험은 현직 공무원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지고, 학력 제한 없이 5년 이상의 공공 부문 근무경력을 충족시킨 자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한다.

‘제3의 시험’은 40세 미만이고 전문직 또는 지방자치단체 의원으로 8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자에게 응시자격을 준다. ‘제3의 시험’은 고위 공무원의 사회적, 지리적 배경을 다양화시켜 공무원 충원의 민주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이다. 프랑스는 이렇게 하여 고급 공무원의 사회적 배경의 균형을 추구하고 전문가의 공직 진출 가능성을 제고시키기 노력하는 한편, 그밖에도 계급제의 단점인 충원 형태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하여 공개채용시험 외에 다양한 충원 형태를 운영하고 있다. 특별채용과 전체 공무원의 20%에 이르는 계약직 공무원 제도의 활성화로써 계급제 하에서 인력운영의 탄력성을 높이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한편 영국의 경우에는 속진(速進) 임용제를 적용하여 공무원 중 고위직 공무원 직위에 도달할 수 있을 우수 인재를 선발하여 별도의 훈련 및 능력개발기회와 조기승진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 영국 고위공무원단의 1/3에 가까운 인원이 속진 임용제를 통하여 선발된다.

 

고시 출신의 군림과 육두품 출신의 슬픔

공무원이 기피대상으로 되던 시기가 있었다. 공무원 임금이 너무 낮고 대우도 좋지 않아 일반 대졸자들이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시기에 5급 고시는 우수한 인력을 공무원 조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일종의 ‘유인책’의 제도였다.

그러나 이제 공무원은 이 나라 모든 젊은이들의 꿈으로 되었다. 9급 공무원 시험도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이다. 가장 우수한 인력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려들고 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이 밀집해있는 노량진역 부근은 공시족으로 언제나 인산인해다. 몇 년 전부터 이제 5급 공채(고시)나 7급 시험이나 차이가 없다는 주변의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 우수한 인력들을 공무원으로 선발해 잘 운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문제는 고시 출신, 고시족들이 전두환 시절의 군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처럼 공무원 사회를 장악하고 독점하는 데 있다. 모두 고시 몇 기 몇 기로 통하고, 이들끼리 모든 요직과 지휘계통을 장악한다. 고시 출신이 아닌 다른 공무원은 마치 신라 시대의 ‘육두품’처럼 들러리로 전락한다. 진골과 성골 그리고 육두품의 출신 성분은 너무도 명확하다. 서슬이 퍼런 이런 계급 사회에서 기상천외하게 아부하는 재주가 있지 않는 한, 육두품 출신이 요직에 오르기 어렵다. 비(非)고시 출신으로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여 요직에 오르게 될지라도 이미 비고시로서의 정체성은 상실된다. 아니 오히려 비고시 집단에 적대적으로 스스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시족 집단에 대한 높은 충성심이 이미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에서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을 위한 역동성이나 미래지향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국회사무처의 경우를 살펴봐도 수석 전문위원과 전문위원을 비롯한 요직과 국장급에서 5급 공채, 즉 ‘입법고시 출신’의 비율은 매우 높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강화된다. 최근에는 과장급까지 고시 출신의 독점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 국회사무처의 주요 보직 중 고시 대 비고시 출신 비율은 2006년 48: 52였는데, 2011년에는 58: 42였고 2016년에는 80: 20으로 그 독점 현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5급 공채로 관료사회에 진입하면 30대에 이미 3급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은 지나치게 빠른 승진이고, 국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심지어 사회 경험이 적은 본인에게도 불행이다. 최근 판사 임용도 최소 3년 내지 5년의 법조 경력이 요구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이 5급 공채라는 ‘특급 대우’를 제도적으로 제공하는 나라는 없다.

다양한 나무 품종으로 이뤄진 숲이 가장 번성한 숲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시험이라는 한 가지 단일한 형태로만 공무원을 선발하는 현재의 방식은 “우리가 남이가”의 가족주의와 온정주의를 낳고 이는 결국 부패와 무능을 심화시키게 된다. 그것은 오직 특권과 독점의 상징으로 되었고, 상명하복으로 권력에 무조건 아부하고 줄서기와 승진에만 몰두해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 고위 공직자로 있던 어떤 후배는 필자에게 4급 이상의 고위공무원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는 대부분의 4급 이상 공직자들에게 ‘승진’에만 필요한 비상한 능력을 보유하고 발휘한다는 점 이외에 그들에게 특별히 대단한 능력을 가졌거나 실행하는 모습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공무원 조직도 과거와 같은 일반 행정가로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곤란하다. 앞으로의 공무원은 ‘일반 행정가(generalist)’ 보다는 공직사회 내에서 특화된 전문 능력을 보유하면서 유능한 행정가로서 종합적인 관리 능력을 보유한 ‘전문성을 지닌 행정가(specialized generalist)’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은 1940년대 이후 지역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가능한 ‘대표관료제(representative bureaucracy)’를 채택하고 있다. 대표관료제란 한 나라 전체의 인구 구성에서 여성이나 장애인 등 사회집단별 인구비례에 따라 정부 공직이 배분되어야 한다는 인사 원칙이다. 미국에서는 이 대표관료제를 적용하여 고용평등조치, 차별철폐조치 그리고 적극적인 고용할당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인재의 지역할당제 역시 이러한 적극적인 인재할당 대표관료제의 일종으로서 인력충원에 지역이라는 변수를 적극적으로 고려함으로써 일종의 ‘지역주권’의 신장을 추구한다. 대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지역별 비례에 의하여 국가 인재를 선발하는 것은 선발된 인력이 국가 공직사회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출신 지역과 관련된 이익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하는 ‘정치적 대표성(political representativeness)’, 혹은 ‘정치적 대의성’을 수행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시험만에 의한 공무원 선발, 현대 국가에 적합하지 않다

고시제도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각급 공무원 시험제도는 사실 과거제도를 계승한 것이다.

흔히 과거제가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공평성의 측면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왔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서 과거제도는 본래 치국의 인재를 배양하고 선발할 수 없고 도리어 황제 전제정치의 필요에 충실하게 부응한 제도이기도 하였다. 명나라 말기의 학자 고염무는 팔고문(八股文: 과거 시험이 엄격하게 요구했던 여덟 가지 형식)의 폐해가 진시황의 분서(焚書)와 같으며 인재에 대한 파괴는 오히려 진시황의 갱유(坑儒)보다 더 심하다고 갈파하였다. 그리고 결국 중국은 크게 낙후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선진국들은 공무원을 직무별로 수시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직 암기식의 단일시험 제도를 통해 일시에 공무원을 선발한다. 그리고 연공서열에 의하여 결정되는 승진과 급여 체계 대신 이제 성과와 실적에 의하여 결정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시험만으로 우수하고 도덕적이며 유능한 공무원이 선출될 수는 없다. 시험으로만 선발되는 현 공무원 제도 그리고 연공서열에 의하여 모든 시스템이 운영되어서는 전문성과 창의성 그리고 역동성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수요에 결코 효과적으로 부합할 수 없다.

 

소준섭

화, 2021/03/0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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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람들은 국회 공무원인 국회 전문위원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또 국회의원과 전문위원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필자는 이 문제를 널리 알리고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항상 고심한다. 그러다가 최근 괜찮은 교재 자료를 발견했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언론기사가 눈에 띈 것이다.

바로 7월 12일자 <아시아경제>에 게재된 “정무위 전문위원실 단톡방·유튜브發 불량코인 유사투자자문업 단속해야”란 제목의 기사였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회 정무위원회 전문위원실이 가상자산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오픈채팅방·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되는 불량코인 투자자문 영업형태에 대한 규제와 단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현재 발의된 4개 법안(이용우·김병욱·양경숙·강민국 의원안)SNS 관련 내용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며, 단체채팅방을 통한 불량코인 투자자문 행태가 만연하니 규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제언이다.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법안1소위원회 법안 심의 과정에서 사실상 가이드라인이 되는 자료, 향후 법안 병합심사 과정에서 관련 규정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 이용준 수석전문위원의 가상자산 관련 법안 검토보고서“4개 법안에는 관련 규제 내용이 없지만, 최근 오픈카톡, 유튜브 등 SNS를 통해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가상화폐 투자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료를 수취하는 영업행태가 있다이에 대한 규제 방안도 필요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코인 발행업체 심사에 금융위원회 뿐만 아니라 기술 이해도가 높은 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3개 법안(김병욱·양경숙·강민국 의원안)이 코인 발행업체에 대해 금융위원회 신고·인가·등록을 규정한데 따른 보완 조치 성격이다. 검토보고서는 심사를 금융위원회 (혼자) 수행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코인 개발이 충실히 이뤄진 것인지 기술적인 면을 심사하려면, 산업 이해도가 높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부 등도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료: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용우·김병욱·양경숙·강민국 의원안)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이용준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

3개 법안(이용우·김병욱·양경숙 의원안)이 규정한 피해보상 규정과 관련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법에 명시해 투명성과 안전성을 제고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손해 방지를 위한 주의 의무이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했다. 또 김병욱 의원안이 담고 있는 역외조항(자국 영역 외에서 발생한 법률 문제에 대해 자국법을 적용하는 일)을 제시하며 해외요인으로 시세조종 등이 발생해 피해가 야기되는 경우도 있으니 효과적인 불공정행위 제재를 위해 국제적인 협력과 공조도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용우·김병욱·양경숙·강민국 의원안)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이용준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

한편 가상화폐 관련 4개 법안(이용우·김병욱·양경숙·강민국 의원안)13일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1소위원회로 회부된 뒤 이달 중 본격적인 법안심사가 진행된다. 법안 1소위 심의 과정에선 수석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야 모두 당내 가상자산 태스크포스(TF)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안의 필요성에 대한 큰 틀의 합의는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국회 공무원이 지원차원을 넘어 입법을 판단하고 결정하다

본래 국회 공무원은 국회의원을 ‘지원’하는 위치에서 ‘지원’하는 업무에 종사해야 한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우리 국회도 당연히 그렇게 운영되고 있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용한 위의 기사에서 우리는 국회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위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국회는 국회 전문위원이 ‘지원’ 차원이 아니라 명백하게 국회의원의 ‘상위’에 존재하면서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하고 있다.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훼손’하면서 사실상 입법의 ‘주인공’ 역할을 담당하며 입법권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선출하면서 국회의원에게 입법권을 부여한 것이지 이들 국회 공무원에게 입법권을 부여한 적이 없다.

필자는 이렇듯 국회 공무원이 명실상부하게 입법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재의 국회 시스템은 명백하게 위헌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왜 이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우선 이 시스템이 국회의원에게 너무 편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가만히 있어도 옆에 있는 국회 공무원, 입법관료들이 다 알아서 해주니 편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독일 의원들은 스스로 수행해야 하는 법안 검토보고를 위해 분주히 활동하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의원들은 그렇게 고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 제도인가! 우리 국회에서 초등학생을 국회의원 시켜도 아무 문제 없다는 말은 바로 이 같은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다음으로 이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가 박정희 유신정권 무렵부터 존재한 시스템이라 이미 수십 년이나 ‘관행’으로 굳어졌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은 어느 나라든 본래 법안 검토가 국회 공무원들이 담당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미 국회 공무원의 ‘파워’가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비대화되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은 국회 공무원들이 입법을 좌지우지하는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이 시스템을 바꾸라는 문제 제기와 시정 요구도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렇게 문제 제기도 없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에게 너무 편하고 귀찮은 일 할 필요도 없는 현 시스템을 바꿀 필요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듯 전문위원이 국회의원의 상위에서 입법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정보와 로비도 국회의원이 아니라 전문위원으로 몰리게 된다. 각 상임위 소관 행정부처를 비롯하여 이를테면, 법원행정처나 검찰의 각종 자료와 정보가 전문위원실로 보고되며, 각종 로비단체와 이익단체의 주장과 로비도 전문위원실로 쏠린다. 김&장 법률사무소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오늘 국회 전문위원실은 국회 입법의 핵심이요 꽃이다.

국회의원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법안 발의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구나 법안발의 건수로 소속 정당의 공천 점수도 결정되고, 또 시민단체로부터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있으니 ‘무책임한’ 날림 법안발의 건수는 엄청나게 많아진다. 그래서 우리 국회의 법안발의 건수는 세계 의회에서 당당 1위다. 겉으로 보면, ‘일하는 국회’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그야말로 ‘소리만 요란한 깡통’, ‘빛 좋은 개살구’ 그 자체이다. 그러면서 국회는 점점 더 왜곡되어 간다.

 

국회의원이 그 직무를 방기하는 국회, 그것은 국회가 아니다

분명한 점은 우리처럼 국회 공무원이 이렇게 법안 검토를 하면서 국회의원의 윗자리에서 법안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경우는 전 세계 어느 의회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국회처럼 국회 공무원이 법안을 좌지우지, 결정권을 보유하고 사실상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은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것이며 의회 시스템 기본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행태이다.

이것이 비정상적인 우리 국회의 본질이요, “일하지 않는” 국회의 ‘숨겨진’ 진실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의 본업을 수행하지 않는 국회, 국회의원이 자신의 직무를 방기하는 국회, 그것은 ‘국회’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국회’일 수 없다.

 

소준섭

화, 2021/07/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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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타인, 환경과 살아가는 방식이다

생태문명’이란 맥락에서 ‘문명’이란 용어는 대개 ‘공유된 가치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뜻한다. 문명은 농업부터 경제, 거버넌스, 교육, 종교, 교통, 의학, 건축, 예술, 음악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이 타인, 그리고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방식이다.

(생태문명이라는 대안이 필요한) 현재 우리의 문명은 ‘현대문명’ 혹은 줄여서 ‘현대성’으로 불린다.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현대문명을 탐구한 뛰어난 학자인데, 그는 주류 제도들이오늘날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지 설명한다.

내 가정은 서구 현대성의 핵심이 사회의 새로운 도덕적 질서라는 것이다. 처음에 도덕적 질서는 몇몇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의 정신에 있는 단순한 아이디어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광범위한 사회적 상상력을 형성하며 사회 전체로 퍼진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자명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중 하나의 가능한 개념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도덕적 질서에 대한 이런 관점의 전환은 서구 근대성을 특징짓는 사회적 형식을 발전시켰다. 시장경제, 공공영역, 자율적인 인간이 그것이다.

테일러는 현대문명의 세 가지 명백한 특성을 강조한다. 1)우리는 상호번영을 증진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경제로서 사회를 상상하게 됐다. 2)우리는 낯선 사람끼리 상호관심사를 숙고하고 토론하는 은유적 장소로서 공공영역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우리는 초월적 원리에 의지하지 않고 세속에 “기초”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이라는 아이디어를 발명했다.

이런 실천과 가치는 현대인에게 너무 자명해서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과연 그럴까? 현대성의 개념적 토대를 생각해보자. 이른바 현대사상의 아버지인 르네 데카르트는 인간 주체를 의미와 가치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는 전환을 감행했다. 데카르트는 동물을 단지 기계로, 자연을 정신과 사고의 모험을 위한 배경으로 간주했다. 그럼으로써 세계를 “사고하는 존재”와 “확장된 존재”둘로 나눴다. 데카르트의 인간중심주의는 “자아”를 생각하는 주체로 특권화하는 개인주의와 쌍을 이뤘다.

개인주의는 자연스럽게 경쟁과 지배의 모델로 흘러갔다. 1649년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조건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며 따라서 지구상의 생명은 “추잡하고 짐승 같고 단순하다”고 단언했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곧바로 그의 동료들에 의해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든”(앨프리드 로드 테니슨)자연으로 해석됐다. 이런 지배의 태도가 인간 존재와 사고의 전 영역에 만연하면서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대국과 소국, 과학과 종교, 인간과 비인간, 부자와 빈자의 위계를 가져왔다. 물론 다양한 형식의 협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게 성공을 위한 더 근본적 전략이라는 공생(symbiosis)의 아이디어는 대개 배척당했다.

현대문명에서 사회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며, 유사하게 국가는 시민을 위해 배타적으로(“아메리카 퍼스트”) 존재한다. 존 로크는 그의 『통치론』 제2논고에서 국가는 재산권을 가진 (남성)시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지켜주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했다. 존 스튜어트 밀이 국가의 목표는 각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는 이런 현대적 이상의 대변인이 됐다. 밀은 이 전통을 확장시켜,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해로울 때만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의 행동은 살인처럼 다른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쳐 국가가 규제해야 할 때까지는 “사적 영역”에 속한다는 게 밀의 주장이다. 개인은 공공선을 위해 존재한다는 견해인 공동체주의는 현대적 패러다임 안에서 개인주의를 이기지 못한다.

마침내 현대성은 스스로의 옹호자가 됐다. 이전 단계의 역사는 모두 “전(前)과학적’이며 과학시대에 비해 열등한 것이 됐다. 현대 정치철학자들은 낡은 정치체제와 철학, 사회적· 정치적 조직의 형식들이 대체됐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이룬 위대한 진보는 현대성의 원리 덕분이며, 사회는 점점 좋아진다는 신념인 사회개량론이 올바른 태도로 여겨진다.

 

우리는 현대문명의 끄트머리에 있다

당연히 현대문명은 유일한 문명이 아니다. 문명의 등장은 농업 발전과 연결돼 있는데, 기원전 3000년 최초의 문명은 농업이 인간에게 잉여의 음식과 안전을 보장했을 때 등장했다. 식량안전성이 증가하면서 많은 인구가 기본적 생존을 넘어 예술이나 여가 활동 같은 다른 문제들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문명은 인구의 집적, 문어(文語), 기념비적 건축물, 고유한 예술양식, 통치체제, 복잡한 분업, 그리고 사회적 계급으로 특징지어진다. 문명들은 농업과 더불어 등장하며 무역, 전쟁, 탐험 등으로 확대된다. 대부분 문명은 다른 확장되는 문명에 합병되거나 붕괴하거나 단순한 형식으로 회귀함으로써 사라진다.

과거 문명의 범위는 산과 대양과 원거리로 인해 제한됐다. 그래서 헬레니즘 문명은 중국문명이나 마야문명과 같은 시대에 공존했다. 오늘날 우리는 최초로 하나의 글로벌 문명 안에서 살고 있다.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전은 서로 다른 문명들을 갈라놓았던 지리적 한계를 극복했다. 스마트폰, 할리우드 영화, 인터넷은 군대와 전쟁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냄으로써 공유된 가치, 국가 간의 균형(혹은 불균형),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기초한 하나의 글로벌 공동체를 창조했다.

현대인과 현대국가는 이전에 없었던 하나의 글로벌 문명으로 함께 묶여있다. 점점 강력해지는 기술에 매혹됨으로써 소비자들은 전지구적으로 하나의 욕망과 열망 앞에 도열했다. 그 결과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은 점점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어떤 군대와 예술작품, 문화적 성취도 성공하지 못한 곳에서 소비주의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글로벌 시민으로 묶어냈다. 물질적 성취에의 매혹은 거대한 자석이 돼 모든 저항을 물리치고 글로벌 소비자를 “예스맨”으로 만들었다.  “세계를 주머니에 넣는” 스마트폰은 전세계의 필수품목 가운데 하나다.

끝없는 진보라는 신화는 유혹적이다. 의약품은 질병을 물리치고 사망률은 떨어졌다. 오늘의 문제는 내일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이 소비자들을 위해 준비한 안락과 효율의 초입에 서있을 뿐이다. 더 큰 번영과 즐거움으로의 전진은 무한정 계속될 수 있다. 삶은 점점 더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다. 사람들은 원하는 물건이라면 뭐든지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사기 위해 돈만 있으면 된다. 글로벌 자본주의와 시장의 성공 덕분에 더 많은 부가 창출되고,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계속 개선될 것이다.

이런 현대성의 마술은 화석연료 덕분에 가능해졌다. 전례 없이 에너지가 풍부해졌고, 우리가 당연시하는 대부분의 기술은 엄청난 탄소를 배출함으로써 유지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구의 한계에 이르렀다. 지구인 모두가 이런 문명의 변화를 지지한 건 아니다. 그러나 현대문명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가진 물건을 갈망하도록 했다. 인디아의 소농도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가졌다. 아주 외딴 마을의 주민도 서구식 티셔츠를 입고 코카콜라를 마신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오래 살수록 더 많이 소비해야 하며 지구에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지구가 우리 욕망보다 먼저 고갈될 것이다. 지구 스스로 현대문명을 끝장낼 것이다. 현대의 막바지인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지난 몇 세기를 돌아보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뒤늦게야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 문명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됐다.

문명에 대한 짧은 학습의 결론은 분명하다. 앞선 모든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현대문명도 끝날 것이다. 언제 어떤 방식이 될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끄트머리에 서 있는 건 분명하다. 이는 다음의 핵심적 질문을 불러온다. 현대성 뒤에 진정으로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한 문명이 올까? 인간은 현재의 문명이 막다른 지점에 이른 뒤 땅,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와 경제, 급진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발견함으로써 지구적 붕괴를 막고 문명을 재건할 수 있을까?

 

생태학에서 상호의존성을 배워야 한다

지난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는 생태과학 분야의 폭발적인 성장을 지켜봤다. 이제 생태적이라는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 단어는 살아있는 세계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의 사실과 더불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자연생태계를 보존해야 하는지의 가치를 모두 담고 있다. 우리의 존재자체가 생태계에 기반하기 때문에, 이 경우 사실과 가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의 종으로서 생태계없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생태계는 매우 중요하고 가치가 크다. 따라서 생태계와 관련된 사실은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홈즈 롤스턴에 따르면, “어원상 ‘생태학(ecology)’이라는 말은 생명체들이 자신의 집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뜻하며, 이는 똑같이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 우리가 사는 세계)란 어원을 가진 ‘보편적(ecumenical)’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

생태학은 탹월한 상호의존성의 과학이다. 물론 이를 부정하면서 모든 과학이 보다 근본적인 법칙을 이용해 복잡한 상호작용을 설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생태과학 역시 다른 과학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는 과학적 성공이 생태계에서 유기체로, 유전자로, 다시 생화학, 화학, 마지막에는 가장 기초가 되는 물리학으로 이루어진 환원의 사다리를 내려가는 것으로 정의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예일대 삼림과학대학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특정 숲에서 전체 나뭇잎의 표면적을 계산한 뒤 나뭇잎들의 생화학적 처리능력의 총량을 이용해 그 숲의 진화를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태계 연구는 이런 식으로 환원적이지 않다.

생태계는 부분의 합보다 크고 복잡한 창발적 실재이며, 그런 복잡하고 통합적인 전체의 견지에서 개별적 유기체가 이해돼야 한다. 높은 수준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환원주의적인 설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 종의 번성은 다른 종들의 번식률과 영양 수요에 달려있으며, 식물과 동물 간의 균형은 양쪽이 생존하는데 필수적이다. 매우 큰 유기체와 아주 작은 유기체가 상호의존의 복잡한 춤에 참여한다. 정교하게 조정된 그들의 공생적 관계는 생존확률을 높이는 협동의 형식을 보여준다. 물론 다윈 식의 경쟁이 여전히 존재하며, 자연에 더 잘 적응한 유기체들이 경쟁자를 압도하고 더 많은 수의 자손들을 생식가능연령에 도달하게 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종 간의 협력이 그들의 생존과 생태계, 그리고 생태계를 이룬 다른 유기체들의 번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유기체들은 서로 외향적인 영향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내향적으로도 상대를 변형시킨다. 포유류나 썩은 나무의 배출물이 다른 종들의 먹이가 된다. 생태계 내부의 이런 풍부한 상호의존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의 행동은 이해될 수 없다.

생태문명은 생태과학의 이런 통찰에 따라 만들어진 모델이다. 이것은 경제와 정치, 생산, 소비, 농업 등의 사회 시스템이 지구적 한계 안에서 재설계되는, 완전히 다른 미래를 향한 비전이다. 이러한 비전은 현대의 확장, 정복, 소비 정신의 죽음으로부터 나오며 계약, 협력, 육성 등의 정신에 기초하여 살아있는 지구와의 조화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말한다.

 

생태문명은 가장 중요한 사고 실험이다

생태문명이 기존 다른 문명들과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은 자연세계와의 관계이다. 다른 문명 형태들의 가장 큰 특징이 인간을 위한 자연의 조작인 것과 달리, 생태문명은 사람뿐 아니라 자연의 웰빙도 고려하면서 자연환경을 지속 가능하고 공생적인 방법으로 변형시킨다. 이는 원초적인 자연의 순수성으로의 회귀와 같은 낭만적 이상이 아니며, 어쨌든 문명의 한 형식이다. 생태문명은 단순히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번영을 위해 사람들끼리도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것까지 포함한다.

19세기까지는 다른 모든 문명을 정복하고 제거할 수 있는 하나의 문명, 즉 글로벌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문명이 지역적 형태를 띨 때는 하나가 사라져도 다른 것들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기에 그 위험성은 낮았다. 오늘날 지구는 최초로 과학, 기술, 국가, 전지구적 소비자들에 기반한 현대문명이라는 하나의 글로벌 문명이 지배하고 있다. 과거 다른 문명들이 그랬듯이 이 단일 문명이 사라진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 미국정부는 몇몇 은행이 “파산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이 글로벌 문명이 휘청거릴 경우 우리를 구제할 수 있는 힘은 없다. 인류 역사에서 50번째 혹은 100번째로 다시 한번 문명변화의 율동적인 순환과정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 첫 번째 북소리가 지금 들린다.

다음문명, 즉 사회조직의 다음 패턴은,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생태문명이 될 것이다. 여기서 “생태적”이라는 말은 유토피아적 꿈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최소 한도로 우리의 현재 문명 뒤에 올 어떤 것을 뜻할 뿐이다. 어쩌면 다른 문명이 없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무에서 살거나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문명이 끝난 뒤에도 어떤 종류의 안정된 사회가 지속된다면, 그 사회는 지속가능한 문명이 돼야 한다. 즉 현대문명이 지금 초래하는 종류의 파괴적 손상을 피하거나 되돌릴 수 있을 만큼 환경과 충분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제레미 렌트에 따르면, “생태문명의 배후에 있는 중요한 생각은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가 훨씬 더 깊은 수준에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재생 에너지에 투자하고 고기를 덜 먹고 전기 자동차를 운전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전지구적인 사회적, 경제적 조직의 내재적인 틀이 바뀌어야 한다.” 현대성이 (아마 말 그대로)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그 계승자가 등장할 때, 과연 어떤 종류의 문명-어떤 종류의 세계관과 생명관–이 부상할 지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고 실험이다. 생태과학은 우리가 발전시켜야 하는 문명의 종류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우리는 현대의 고통스러운 실수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일으키고, 과소비 및 자원의 과도한 사용을 초래하고, 공공선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사회구조를 형성했으며,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에너지원에 의존하도록 만든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결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우리의 생태문명은 어떤 모습일까?

번역: 한윤정 한국생태문명 프로젝트 디렉터

 

앤드류 슈왈츠(Andrew Schwartz)

미 생태문명연구소 부대표·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조교수

월, 2019/11/1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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