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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을 준비하는 중소기업 정책제안(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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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을 준비하는 중소기업 정책제안(요약)

admin | 수, 2019/10/30- 23:07

1. 한국 자본주의는 그 발전도상에서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다.

중소제조업 현장의 목소리는 대부분이 죽는 소리들이다. 원청/하청관계, 부품제조와 제품생산을 막론하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장기적 불황 상황에서 쉬운 분야는 아무데도 없다. 하지만 최저임금, 52시간 노동에 대처하는 방식에 이 정부의 산업정책은 없다. 소위 ‘4차산업혁명’, 일본으로부터 소재부품산업의 독립… 단선적이고 대기업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의 GDP 기여 비중이 30%가 넘는 유일한 산업국가이고 고용에서도 20%를 넘는 몇 안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특히 고용과 관련하여 중소제조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 비교대상인 독일, 일본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런데 지금처럼 아무 대책없이 산업현장을 내버려두어 중소제조업의 살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고용의 기반도 무너지고 전체 산업의 기반이 망가져 버릴 것이다. 중소제조업은 지금 기로에 있고 그래서 한국 자본주의도 기로에 있다.

이는 노동자집단의 미래와도 관련된 문제이다. 최대 30%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며 비정규직을 양산해내는 구조적인 문제를 내버려 놓고서는 30시간대의 주간노동과 동일노동/동일임금으로 가는 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중소제조기업의 경영주 입장에서 보자면, 전체적인 불황 국면에서 살아남을 방도는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비중을 줄이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자동화 시도나 설비의 증설은 대단한 모험이기는 해도 물량은 줄어드는데 단가압박은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서 막판에 몰려 살아남는 방법을 구하는 노력이라도 해 보아야지 않을까? 더욱이 Industry 4.0 – 자율주행 바람과 자율공장의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야에 중소제조업 경영주들이 어떻게 바람에 맞설 수 있겠는가?

 

2. 한국 중소제조업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리먼사태와 이명박/강만수 체제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 대비 중소제조업의 임금비율은 100대 30으로 고착하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생산성과 임금의 틀을 깨뜨리는 방법은 오로지 중소제조업의 생산성의 향상 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금은 생산성대비 결코 낮지 않다. 다만 이것이 환률의 인위적인 조정을 통해 대기업에 쌓인 부를 사회적으로 순환시키지 않고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만 한정적으로 분배해서 벌어진 일이다.(그 과정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협력업체, 하청중소제조기업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중소제조업은 그 적은 돈에 걸맞게 낮은 생산성, 낮은 임금에 적응해야 했다. 단순직 위주, 단순공정만 하청받는 방식, 외국인 노동자…

하지만 지금 외부로부터의 충격, 최저임금, 52시간 노동, 그리고 Industry 4.0과 스마트공장에 대처하여 중소제조업은 변화의 조짐들을 보이고 있다. 자동화와 로봇화, 아니면 품질과 관련하여 규모를 키우거나 망하거나…

이 변화의 조짐이 제대로 방향을 타려면 2차업체까지 대기업 대비 70%선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숙련화된 노동의 조직화를 이루어야 한다. 사회적 합의과정,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의 도출(규모, 업종 조정, 교육, 노동), 예산의 확보 등은 만만치 않다.

 

3. 구조조정은 어떻게 하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합의된다면 이제 어떻게 구조조정을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이에 (1) 규모의 조정 (2) 업종의 조정 (3) 노동, 교육의 조정 (4) 산업생태계 구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1) 규모의 조정은 기술적 자본적으로 취약한 제조기업은 집단화를 유도하되 그렇지 않으면 자연도태되거나 병합되도록 조치해야 한다. 더 이상 10명 미만의 소규모 기업이 중소기업의 주류를 이루도록 놔두어서는 안된다.

(2) 업종면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의 제조업에 대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기계설계와 제작, 로봇산업, 금형산업 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3) 노동인력의 재편이 시급하다. 기계제작/제품설계(CAD/CAM/CAE)와 산업디자인, 기술기반의 제조업이 가능토록 하는 엔지니어의 양성, 스마트제조에 적응하는 생산관리, 품질관리 전문가들을 키워내는 교육/재교육 시스템이 당장 마련되어야 한다. 전문대학, 대학교, 특수고등학교 등을 연계하여 정부가 지원하는 산업 교육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기존의 노동인력을 재교육시키는 보다 과감한 정책, 생활비 보조를 포함하고 취업도 주선하는 인력재배치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4) 제조산업의 특정분야들은 스스로 시장의 요구에 맞춰 생겨나고 발전하고 소멸하기도 하지만, 후발인 까닭에 진입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더욱이 기술, 숙련이 요구되는 분야, 중소중견업체가 중심이 되는 업종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많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진흥정책이다. 일정기간동안 시장을 만들고, 기술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중소제조업의 규모와 업종, 노동재편 모두가 진흥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현재의 기술연구관련 정책들은 전면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 다른 산업국가들의 경우와는 너무도 다르게 현장과 연관이 없는 여러 연구소들, 진흥조직들이 세금, 정부 R&D 자금을 축내고 있다. 이들은 산업연관성이 없다면 문을 닫던지 아니면 산업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기술연구단체로 탈태환골 하여야 할 것이다.

 

본 연구보고서는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인 정의정책연구소의 정책연구비 지원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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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해임을 당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튼 (John Bolton)이 영국을 방문했을 당시 그는 영국 지도자들에게 미국은 브렉시트 문제에 대해 “영국과 함께”할 것이며 10월 31일 유럽 연합에서 탈퇴하는 즉시 모든 무역 협정에서 “최우선”이 될 것을 단언했다. 그는 양자간 합의를 “신속하게” “부문별로”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매우 호전적이라는 볼턴의 평판과 달리 그는 이례적으로 화웨이, 중국, 이란 등의 이슈에 대해 미국의 노선을 따르도록 영국을 압박하는 수위를 낮추고, 브렉시트가 “유례없는 우선 순위”에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이슈에 대해 영국을 압박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바는 그것뿐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충분한 시간이 있을 것이다”고 발언했다.”

보리스 존슨 (Boris Johnson) 총리가 재협상을 강요하기 위해 브뤼셀에 대한 노딜 (no-deal) 위협을 무기화하고 있는 만큼, 미 정부가 테레사 메이 (Theresa May) 재임 중엔 가능성이 낮았던 브렉시트를 통해 진정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볼 때다. 미 행정부는 영국을 이타적으로, 진심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에 대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관련하여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를 촉진하고 있다.

즉, 우선 유럽을 희생시켜 영국의 경제적 지배 영역을 더욱 강력히 흡수한 다음, 하드 브렉시트의 결과를 이용하여 유럽과의 무역 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동맹이라 할 수 없는 완전한 착취 행위다.

트럼프 정부의 대외 정책 핵심 목표는 다각화 확대에 따른 문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전 세계에 대한 “미국 중심”의 경제적 패권을 거듭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이 패권적 목표는 다자주의 및 그를 가로막는 모든 국가와 기구들에 대한 공개적 경멸과 함께 일방적인 어조로 표현된다..

이를 위해 미국이 처음 꺼내든 카드는 무역전쟁으로, 경쟁 상대로 간주되는 국가들을 겨냥하고 미국의 우선권을 수락하도록 압박해왔다. 미국의 타깃이 된 대표적 국가로는 중국이 있지만, 유럽 연합도 이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는 미 정부가 농업, 자동차, 항공, 철강 등의 일부 유럽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우대하는 유럽 연합의 보호주의 정책에 불만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유럽 연합에 대한 미 행정부의 반감과 매우 강경한 민족주의 슬로건은 트럼프를 필연적으로 브렉시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게 했다. 미 정부는 영국이 유럽 연합의 “열악한” 조건을 떠나 법적, 경제적 유대를 단절하는 것을 지켜보고 싶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테레사 메이 총리에게 “끔찍한 협상가”라며 혹평을 쏟아낸 바 있는데, 그 후 보리스 존슨이 임명되자 새로운 열정으로 화답했다. 따라서, 존 볼튼의 때맞춘 영국 방문에서 이야기한 것은 주요 쟁점에 합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반적 위협에 대한 것이 아니라 브렉시트를 최우선 현안으로 추구하기 위한 외교적 지원과 관용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미 행정부의 보다 광범위한 의제는 영국에 대한 애정이나 “특별한 관계”에 대한 호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유럽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우세를 주장하기 위한 트럼프가 기울이는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영국이 “하드 브렉시트”를 실행하고 그 결과 유럽 대륙의 통합이 어렵도록 상당 부분 갈라놓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미 정부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영국을 되찾은 영향력의 범위로 흡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 측근 인사들이 화웨이와 같은 논쟁의 소지가 있는 사안을 기꺼이 수용하는 이유는 영국이 미 정부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브렉시트 이후에 예컨대 화웨이 금지 또는 무역 협상 중단과 같은 요구사항들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 행정부는 이번 협정이 유럽 전체의 경제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연합을 더욱 분열시킴으로써 트럼프가 유럽 시장 개방에 있어서 더 많은 무역 양보를 요구하는 등의 추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본질적으로 영국은 트럼프의 세계적 무역 공세에서 볼모로 이용된 것이다. 하드 브렉시트는 유럽 시장에 큰 타격을 입히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은 미 정부에 이익이 된다.

따라서 미국은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영국에 접근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10월 31일 영국 정부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목표를 이루도록 돕겠다고 약속하면서 유럽 경제력에 적극 손해를 입히고, 다자간 제도를 약화시키고 대체하도록 고안된 일방적인 미국 중심의 질서를 유럽 전체에서 재정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가디언 지가 볼턴의 방문에 대한 논평에서 언급했듯이, 사실상 미국은 영국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식민지화”되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Tom Fowdy (톰 포디)

옥스포드대 중국학과를 졸업하고 Durham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

현재 중국과 북한 그리고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관계에 대해 글을 쓰고 있음

월, 2019/09/2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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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9월 18-19 양일 간에 경기도와 경기연구원이 주관한 2019 DMZ 포럼이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최되었다. 뒤늦게 초대되어 포럼의 말미에 종합적인 견해를 발표한 스테판 코스텔로는 그간 정기적으로 다른백년을 통해 한반도 상황에 대하여 정기적인 기고와 수시로 강연을 담당하여 왔다. 그는 DJ가 미국에 체류시 개인비서를 자임하면서, 미주 평화재단 전 사무총장 겸 부이사장을 역임하였고 EastAsia Product를 설립하여 DJ의 햇볕정책을 미국조야에 소개하여 왔다. 아래로 DMZ포럼에서 행한 그의 발표내용을 번역 소개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을 9월 24일 뉴욕에서 만났다. 김정은은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다시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있음을 암시하였다. 새로운 계기가 준비되고 있는 반면에 작년 9월19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맺은 위대한 선언이 여전히 위기에 처해 있다.

 

Where does Korea stand now?

한국은 어떤 상황에 있는가?

지난 30년 간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외교사야말로 이 질문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대답일 것이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그 어떤 정책이익집단보다 국익을 확고하게 결정하는 만큼 이러한 관점에서 정치적 맥락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강제력과 군사력∙경제력보다는 잘 만들어진 협정이 북한의 비핵화와 발전에 있어 진전을 가져올 것이므로 외교적 맥락을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숙련된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대한민국과 미국 간의 동맹이라는 핵심적 이해관계는 거의 완벽하게 들어 맞는다. 그러나 여러 리더들과 정치집단들은 사안을 달리 보고 있다. 특히, 서울과 워싱턴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핵심 이해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혼란스러워 하였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으며, 때로는 관여와 협상보다는 냉정한 비평화노선을 선호하였다.

지난30년간,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전략적 이해관계는 DJ 초기 집권의 중대한 3년이란 기간 동안 최대 수준의 연계를 이루었다. 되풀이 하면, 1998년2월 김대중이 한국대통령으로 취임한 때부터 2001년 1월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직을 그만두기까지의 기간 동안, 어느 때보다 남한과 북한간, 미국과 북한간, 그리고 남한과 미국간의 관계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98년10월 김대중과 오부치의 회담으로 한일관계가 정점에 다다른 것 역시 놀랍지 않다. 분명히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경수로형 원자로를 건설 중이었다. 그리고 북한을 미사일 기술통제 체제하에 포함시키기 위한 회담이 진행 중이었다.

 

Now, South Korea is a middle power

이제, 대한민국은 중간국가이다

세부사항은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중간국가로서 가져야 할 자질의 필수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분명한 것은 자질과 역량은 행동과 리더십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두가지 면에서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로, 대한민국은 북한과 같은 동포이며, 북한과 한반도라는 지리적 조건을 공유하고 있다. 때문에, 대한민국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이해관계와 북한문제를 둘러싼 책임이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대한민국이 지닌 잠재력과 유연성은 미국과 중국, 북한, 일본 또는 UN의 리더십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중요하고 두드러지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오늘날 주요한 진전을 이뤄내는 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적절하며, 가장 유용한 자질을 틀림없이 가지고 있다.

 

The US role on Korea is now at a standstill

한반도 문제에  있어 미국의 역할은 정지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은 트럼프 정부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보다는, 지난 20년간의 한국에 대해 실패한 비생산적인 불성실전략으로 인한 것이다. 미국의 불완전한 선거제도와 외교구조, 정책입안과 정책수행 제도로 인해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스스로 내부적 합의를 보거나, 북한과 합의점을 찾아 대한민국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는 기대 할 수 없다. 오늘날 몇몇 저명한 학자들은 서로 의견을 달리하나, 도달한 합의가 대한민국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동맹으로서 당연히 미국의 이익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What could be done?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오늘날 대한민국은 역사와 행운이 부여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논리적이고(logical), 자연적이며(natural), 전략적인(strategic)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언급한 역할을 수행한다 해서 미국 및 동맹국가들과 대립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역으로 주어진 역할을 해낸다는 것은 동맹을 최선으로, 지속적으로 존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변 동맹국들은 한반도의 긴요한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의 충고와 전략과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는 당사자로서 대한민국에게 가장 중요하고 생존적이며 핵심문제이기 때문이다. 동맹인 미국에게는 그리 절절한(number-one, existential, core) 이슈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성공적인 협상을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활용하여야 할 UN에게도 역시 핵심적인 이슈에 해당되지 않는다. 동북 아시아의 이웃국가들에게도 같은 상황이다.

 

Professionals in DC and Seoul know the outlines of the deal possible

미국과 대한민국의 전문가들은 가능한 협상안의 윤곽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를 “하노이&플러스”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대한민국 측이 빠른 시일 내 확실하고 믿을만한UN 제재완화가 북한에 있어 핵심적인 제의가 될 것이라는, 대담하지만 명백한 아이디어를 포용할 수 있다면, 김정은 측에서는 마땅히 보여야 할 상호행동을 취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한 행위는 영변, 즉 모든 핵분열성 물질생산의 중지, 그리고 감찰을 포함한다. 이에 문정인이 말하는 바와 같이 “플러스알파”가 더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각각 당사자에 있어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도에서 섬세하지만 작은 조항 몇몇이 추가되는 것이다.

상기한 근거에서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트럼프 대통령을 김정은과 제3차회담을 갖도록 끌어 들인다면, 언급한 조건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시도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에 제시할 기초협상안에 대해 김정은의 동의를 먼저 얻어내야 할 것이다. 이후, 그는 협상안을 공개하여, 말 그대로 이를 못박고, 트럼프와 기타 이해관계자, 그리고UN등 과 해당 협상안을 발전시키기 위해 중간국가로서 대한민국이 가지는 상당한 힘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헌신과 대담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대한민국의 현재 입장을 바꾸지 않는 것이며, 미국의 입장도 거의 바꾸지 않는 것이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시도가 주는 잠재적 이점은 명백하다. 반면에 예상되는 불리한 점들은 (네오콘들이 만들어 내는) 거짓말들이며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이다.

북한에 대해 기본적이고 적절한 유인책을 제공하지 않는 한, 제재완화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로 인해 합의에 이르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인도주의적 원조를 압박을 가하기 위한 무기로 오용하는 것부터, 미국 연구자들과 관광객들의 여행금지, 그리고 유조선 압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조치들은 정상적인 외교를 방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이 그러한 “디테일”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왜 그가 디테일을 알아야만 하는가?

이러한 점에서, 백악관에서 존 볼턴이 떠난 것은 앞으로 다가올 대한민국과 미국의 회담,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북한과 미국의 회담착수에 따라 몇 가지 가능성을 열어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기대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볼턴이 고용된 배경, 그리고 정상적 외교와 협상을 반대하는 미국정부 내 많은 세력을 생각해보라.

한반도 게임의 (미국 내) 참가자들은 운동화 끈이 풀려있고, 헬멧이 벗겨져 있으며, 주의력이 결핍된 상황이다. 대한민국만이 제대로 복장을 갖추고 게임을 할 준비가 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자, 게임을 시작해 보자.

목, 2019/09/2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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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 지구 대기 중 메탄농도 상승은 “전 세계적으로 중대한” 문제인 까닭에, 프래킹(세일가스채취)을 금지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는 환경에 빠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코넬 대학이 발표한 연구내용은 지난 10년에 걸쳐 미국 및 캐나다에서 시행되고 있는 ‘프래킹(fracking) 공법’이 지구 대기 중 메탄가스 농도 증가에 큰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

코넬 대학의 한 과학자에 의한 새로운 연구는 지난 10년간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어난 프래킹 붐으로 인해 지구 대기 중 메탄 농도가 크게 상승했으며 매우 강력한 제재를 통해 온실가스 메탄의 배출을 줄이는 것이 국제 기후 위기를 막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경고한다.

로버트 하워스 Robert Howarth) 교수는, 21세기에 들어선 첫 해부터 일어난 프래킹 붐에 주목하여 지난 수십 년간 수압 균열법 즉 프래킹 공법에 대해 조사했다. 2005년에서 2015년 사이 프래킹을 사용한 셰일가스 생산은 연간 310억 입방 미터에서 4천350억 입방 미터로 증가했다. 이중의 거의 90퍼센트에 달하는 프래킹이 미국에서 이루어졌으며 10퍼센트 정도만이 캐나다에서 이루어졌다.

프래킹 공법은 1949년 석유 및 가스 회사들이 처음 사용했지만, 하워스 교수는 특히 이의 사용이 전면화된 지난 10년 간의 프래킹이 대기 중 메탄량 증가를 가져 왔다고 결론지었다.

하워스 교수는 20세기 후반에 방출된 메탄에는 탄소 동위원소 13C가 풍부했던 반면, 최근 방출된 메탄에는 그 비율이 낮다는 점에 착안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셰일가스의 메탄은 기존 천연가스나 화석연료와 비교했을 때 동위원소 수치가 몹시 낮기 때문이다.

하워스 박사는 수요일 학술지 ‘생물지리과학(Biogeoscie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셰일가스의 메탄은 기존 천연가스 대비 13C 비율이 다소 낮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차이를 이용하여 이전 분석들을 살펴보면서, 지난 십 년 간 북미에서 생산된 셰일가스가 전세계적으로 증가한 화석연료 전체 배출량의 절반을 넘기고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 전세계의 모든 자원의 총 증가 배출량의 약 3분의1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21세기 들어 셰일가스와 석유의 상업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메탄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했다”고도 덧붙였다.

다른 과학자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하여 하워스의 연구를 칭찬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에 이어 기후위기에 기여하는 두 번째 요인이라는 것 외에도 가스가 대량 매장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슴 통증, 기관지염, 폐기종 및 천식은 메탄 수치가 높을 때 발생하고 악화된다. 또한 프래킹 과정은 식용수 오염과도 관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 프래킹 규모를 줄일 계획이 없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래킹을 위한 토지 임대차 계약을 원하는 가스 및 석유회사들에 공유지를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워스 교수는 화석연료회사들과 그들을 규제하는 정부기관이 방침을 바꿔 재생에너지 경제로 전환하고, “천연가스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가능한 빨리 벗어나 이산화탄소와 메탄 배출을 줄일 것”을 촉구했다.

대기는 가스 량의 증가 및 감소에 빨리 반응하므로 메탄 배출량 감축은 대기에 즉각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마치고 기후 위기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워스 교수는 “최근 엄청난 양의 메탄이 배출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주목할만한 일이다. 메탄 배출량 증가는 지구 온난화가 심화되는 데 일부 기여했으며 셰일가스가 주요인” 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메탄을 대기에 배출하는 것을 멈추면 온난화의 심화 현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에 비해 매우 빠르게 사라진다. 이를 통해 지구온난화를 쉽고 빠르게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추가 정보>

페름 공해

지구 역사상 최악의 대 멸종을 불러온 지질학적 시대의 이름을 딴, 페름 분지는 오늘날 석유 및 가스 시추업체들이 일상적, 고의적으로 메탄 (천연가스 또는 셰일가스로도 알려짐)를 공기 중으로 배출히는 장소로, 이러한 배출 관행은 해당 업계에서 “벤팅(venting)”이라 불린다.

올해 벤팅량은 플레어링(연소과정, Flaring)과 함께 기록적 수치를 기록했는데, 시추업체들은 메탄을 연소시켜 이산화탄소로 변화시키기 위해, 누설된 메탄가스를 연소해 온실가스 오염을 다소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라이스타드 에너지 (Rystad Energy)가 올 여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시추업체들은 페름에서 매일 6억6천1백만 입방피트의 메탄을 배출시키거나 연소한다.

아브라모프 (Artem Abramov) 라이스타드 셰일 연구 책임자는 “페름의 석유 생산량은 연초 감소했지만, 분지 내 가스 생산량은 증가세를 유지했으며 벤팅 및 플레어링의 증가에 따라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하며 최소한 올해 10월까지는 그 수치가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그러나 바켄 (Bakken) 셰일은 2019년 첫 세달 동안 하루에 5억 입방피트의 메탄을 내뿜으며 페름지역만큼이나 메탄 오염을 일으켰다.

이 보고서는 이스라엘, 루마니아 및 콜롬비아를 예로 들며, 1년 동안 이들 국가들에 공급할 수 있는 정도인 120억 입방 피트의 천연가스가 낭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8년 시추업체들은 텍사스 내 모든 가구 수요를 충당하기에 충분한 양의 천연가스를 방출했지만, 오히려 폐기물로 취급되어 연소됐다.

최악의 오염 범죄자 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및 가스 시추 업체들이 들어 있다. 라이스타드는 시추업체가 평균적으로 가스의 5% 정도를 방출하는 반면 엑손모빌 (ExxonMobil)은 대략 8%를 방출한다고 밝혔다.

거대 석유회사 BP는 훨씬 더 나쁜 기록을 세웠다. 월스트리트저널 (Wall Street Journal)은 지난 주“라이스타드 에너지의 공공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해당 지역 전역의 가스 방출비율이 평균 5%인 것에 비해 BP는 올해 1분기 페름에서 생산한 가스의 18%를 대기로 직접 연소 또는 방출했다”고 보도했다.

셰일가스 생산업체들의 경영진 조차도 이에 대한 조치를 촉구했다.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스 (Pioneer Natural Resources) CEO 스콧 셰필드 (Scott Sheffield)는 4월 컬럼비아대에서 개최된 에너지 컨퍼런스에서 “이는 페름 분지의 불명예”라고 말했다. “주 정부, 파이프라인 업체 및 생산자들 모두는 플레어링을 막기 위한 방안을 함께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보호를 담당하는 주 석유 및 가스 규제기관인 텍사스 위원회는 메탄 방출을 위한 가스 파이브 라인을 이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기업이 석유를 추출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다.

웨인 크리스찬 (Wayne Christian) 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주 성명에서 “플레어링은 굴착 공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며 이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석유 시추업체 EXCO 리소스 (EXCO Resources)가 파이프라인 회사 윌리엄스 (Williams)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추를 계속할 수 있다는 위원회 판결에 따른 반응이다. EXCO는 파이프라인를 위한 투자 비용보다 천연가스 연소 비용이 더 저렴하므로 파이프라인 이용이 저조한 것이라 주장해왔다.

EXCO 사례를 다룬 석유기술 저널 (Journal of Petroleum Technology)은 “해당위원회가 에너지 기업들이 자신들이 이용할 파이프라인이 없다고 한 뒤 1년 간 정기적으로 수천 건의 플레어링를 확인절차도 없이 허가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토양 보고서는 텍사스의 메탄 누출이 업계가 보고한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어스워크 (Earthworks) 기획자인 샤론 윌슨 (Sharon Wilson)은 “아무도 감시하지 않으므로 그들 [기업들]은 원하는 대로 모든 손쉬운 방법을 취할 수 있다”고 7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말했다. 얼스워크는 2018년 이후 텍사스와 뉴멕시코에 접수된 메탄 누출에 대한 100건이 넘는 불만사항 중 7월까지 규제당국이 시추업체에 벌금을 부과하거나 수리를 요청한 사례는 10% 미만이라고 밝혔다.

 

악화되고 있는 기후 온난화

석유 및 가스 산업이 제약도 없이 일상적으로 진행되면서 세계기후가 빠르게 따뜻해지고 있다.

미 국립 해양 기상청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은 각각 1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입힌 기상 및 기후 재난을 14건 겪었다. 또한 올해 7월 9일 추가적으로 6억 달러 피해를 가져온 동일한 규모의 재난이 잇따랐다.

미 국립 빙설자료센터에 따르면, 미 북극해 빙하가 계속해서 녹고 있는 가운데 7월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특히 그린란드의 빙상이 대량 녹았음을 알 수 있다.

코펜하겐대학 사회과학자 켈톤 마이너는 8월 11일 발표한 조사에서 그린란드 주민들은 따뜻한 날씨로 인해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한 조사 응답자가 “저희 아버지는 어부이자 사냥꾼이신데, 제가 어렸을 때처럼 아버지가 동물을 사냥하시지 못하는 건 우리 가족에게 힘든 일이고 그 때가 그립습니다. 개 썰매와 얼음 위 낚시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사냥할 동물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아버지가 제게 가르쳐주셨던 것처럼 아들에게 가르쳐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기후 변화에 관한 소식지를 통해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할 시간이 남아 있음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커센바움 (Sheril Kirshenbaum) 사이언스 디베이트 (Science Debate) 대표는 최근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Scientific American)》의 논평에서 “기후 변화가 또 다른 종말 이야기가 되어선 안 된다”고 말헀다.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한 결정적 조치를 취할 기간이 10년 조금 넘게 남아있다는 유엔의 경고에 대한 칼럼에서 언급했다.

커셴바움은 “정말 중요하고 심각한 상황이다. 기후 변화는 지역, 국가 및 세계에서 정보기반 정책,신중한 계획 및 적합한 리더십을 활용하여 중대한 일로 취급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염두에 둔 과학자들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조치 중 하나로 우발적 누출 및 고의적 플레어링와 벤팅 모두를 대폭 감소시키는 방법을 제안한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하워스 교수는 “대기 중 메탄유출을 멈출 수 있다면 메탄은 곧 없어질 것”이라 주장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에 비해 매우 빠르게 사라진다. 이를 통해 지구온난화를 쉽고 빠르게 늦출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Julia Conley (줄리아 콘리)

CommonDreams.Org

월, 2019/09/3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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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지금처럼 불황에 대비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불황이 이처럼 드물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이로 인해 뒤이을 세계 경기침체를 예측하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이것이 발생한다면 반복되는 독감에서 경험하듯이 새로운 성질이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것과 같은 굉장히 충격적인 뜻밖의 사건이 될 것이다.

올 여름 미국 수익률곡선의 역전으로 경기침체 경보가 크게 울렸는데, 이는 단기부채비율이 장기부채비율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현재 경제성장 기록을 깨면서 발생했고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하락을 경험했다.

많은 선진국에서 금리가 제로이거나 이에 가까워지면서 중앙은행들이 대응할 여지가 거의 사라졌다. 이러한 경제활동의 지표적 침체는 미래 전망을 두렵게 만든다. 아마도 이번에 몰아닥친 세계경제 약화는 미국과 세계경제를 침체의 소용돌이로 몰고 갈 것이다. 이어 다가올 불황은 최근 수 십 년간 이어진 패턴에서 벗어나 원인과 강도 모두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더 드물게 오지만 일단 발생하면 사업활동 위축이나 경제 과열이라는 일반적 형태를 넘어서 재정 붕괴를 촉발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불황을 예언하는 전문가들은 언제나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지만, 과거 이들은 영광의 순간을 위해 몇 년만 참고 기다리면 명예가 회복되었다. 앞으로는 명예회복이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현재까지 미국의 경기팽창 기간은 122개월로 1991년부터 2001년까지의 기록을 바로 앞질러 최장기 기록을 경신했다. 재닛 옐런 (Janet Yellen)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경제 팽창이 노화로 인해 죽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팽창 기간이 길어지면 불황이 발생하는 빈도는 낮아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35년 동안 미국은 8번의 경제불황을 겪었으며, 그 후 35년 동안엔 4번 겪었다. 다른 선진국들도 이와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경제학자들은 “대 안정기(great moderation)”, 즉 1980년대 초반부터 생산량의 변동성이 현저히 줄어들었던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의 발생으로 그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지만, 이후로 위에 언급한 현상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타났다. 미국의 분기별 성장률의 변동성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낮은 상황이다.

현재 경기확대가 이어진 기간은 122개월로 1991-2001년 기록을 넘어섰다.

이러한 원인으로 몇 가지가 제시됐다.

첫째는 제조업에서 재고순환이 감소한 것인데, 이는 적시생산방식(just-in-time techniques)으로 인해 비축량을 조정할 필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경제구조가 서비스업 쪽으로 변화한 것이다. 사전예방 교육, 경영컨설팅, 노래방 및 성형수술에 대한 수요는 경제 전반 상황에 의해 변동될 수 있지만, 제철소 및 자동차공장 등 제조업과는 달리 그 자체로 순환동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세 번째 더 중요한 원인으로,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안정 및 호황과 불황의 기복 완화 정책에 성공한 것이다. 전후 미국 경기 침체의 대부분은 경제가 너무 과열되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연준이 수요를 줄이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을 때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경제침체가 일어난 뒤 이제 수 십 년이 지났다. 최근에는 중앙 은행들이 인플레과열이 아닌 인플레부족으로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책담당자들이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경기 둔화를 해소하기 위한 부양책을 내놓을 수 있다. 위험은 오히려 사실상 브렉시트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국 관세와 같은 실제 충격에 대응할 방어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연준은 지난 8월에 인도, 태국, 필리핀 및 뉴질랜드 등 상황을 반영해 금리를 인하하고 있다. 한국과 영국은 재정 부양책을 추진 중이며, 중국은 이를 추가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서 많은 불황 예측이 빗나가게 된다. 위협이 분명하면 대응 정책을 빨리 펼칠 수 있게 된다. 세계적 경기 침체가 전세계 불황으로 이어질 것이라 보는 전망은 부분적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현재의 노력이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이나 마찬가지다.

이 주장은 오류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정책담당자들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므로 심각한 불황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이런 노선을 따라 경제에 대한 자만심이 팽배했지만 2008-09년에 이를 바로잡는 잔인한 사건이 발생했다. 2001년 닷컴 거품붕괴로 불경기가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로 2008년에도 불경기는 경제 부문에서 서브프라임 대출 및 주택문제로 인해 시작됐다.

경기주기는 둔화됐을지라도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의 금융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금융은 다음 경기침체의 가장 유력한 요인이다. 실제 경제변동 예측이 어렵다면 금융위기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경제 분석가들이 시장의 불균형을 발견하더라도 조치할 수 있는 선택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불균형이 해소되는지 추측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현재 주기에서 조치가 늦었다는 징후들이 있다. 역사적 기준에 의하면 자산평가가 높다. 중국과 일부 국가들에서 민간 부채도 증가했다. 트럼프 정부는 금융 규제를 철회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그러나 뜻밖의 돌출사건이나 채무불이행 증가와 같이 위기 이전에 나타나는 스트레스의 징후들은 분명하지 않다.

현재 어떤 징후도 곧바로 경기침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데, 이는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 둔화 패턴에 따르면 경기침체가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는 거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재 상황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이례적으로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향후 경기침체의 패턴이 될 수 있다. 아주 드물게 발생하지만 무시무시한 불황 말이다.

 

*하이먼 민스키: 이란출신의 미국경제학자 – 과다한 부채로 부채상환능력 악화되어 건전자산을 팔기 시작하면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금융위기가 시작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Robin Harding (로빈 하딩)

FT 칼럼리스트

수, 2019/10/0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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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것이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약속이 최근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한 것은 국정원이 “김정은, 11월 부산 아세안회의 참석 가능성”(<연합뉴스>, 2019.09.24.)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자, 그럼. 팩트체크를 한번 해보자.

우선, ‘김정은 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답방을 약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방남한다’이다.

결론적으로 이 경우는 그리 높지 않다.

왜냐하면 약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위적으로 방남해야 한다는 논리적 인식은 지극히 일차원적인 사고이고, 그 맥락에 숨어있는 정치적 의미를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이때의 약속은 정치적 약속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고, 반면 그 정치적 함의는 방남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이뤄졌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조건 없는’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북의 여종업원납치문제 사과와 송환 ▲한미연합훈련, 전략무기 등 도입 중단 등 남북 간에 이뤄져야할 신뢰회복 조치가 먼저 선행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약속이행조치 없이 그냥 방남은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해서 이 논리는 거짓(×)이다.

다음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지고 있지 않는 팩트는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확인된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을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에 있다.

그럼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합의된 대로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되돌아 가야할 뿐만 아니라, 이때-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내용들을 이행·담보해야 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된다.

그럼 그 이행·담보의 내용은?

▲첫째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민족내부의 문제는 철저하게 민족내부의 문제로 남북이 합의하여 풀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비핵화문제는 ‘중재자’ 등 3자적 관점의 접근이 아니라 판문점선언에서 확인한대로 ‘당사자’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한미동맹의 관점에서 북을 설득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고,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북과 협의하여 미국을 설득하려는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북-미 평화회담 견인, 한반도비핵화 추진).

그럼으로 이 논리는 사실(○)이 된다.

그리고 실제 이렇게 방남의 필요충분조건이 마련되었다하더라도 방남을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카드는 하나 남아있다.

다름 아닌,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은 남북철도연결 사업(강조, 필자)과 반드시 연결되어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남북철도연결 사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 고 있던 그런 물류, 관광 등 경제적 차원으로 접근되어지는 것도 분명 있지만, 답방과 관련해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북철도연결 사업은) 민족의 혈맥(강조, 필자)을 잇는 그런 정치적 의미로서의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북이 통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부분인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민족의 혈맥을 잇고’라는 표현을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하는데, 이를 남북철도연결 사업과 연동해 해석해내면 남북철도연결 사업은 단순한 끊어진 철도의 복원, 이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신경제지도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만도 아닌,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통일로 가기위한(강조, 필자) 정치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

그럼으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지금은 비록 중단되어 있지만) 남북철도 복원사업이 단순한 교통·경제적 수단의 복원의미를 넘어 민족의 혈맥(강조, 필자)을 잇는다는 그런 정치적 의미로 재해석해낼 때 김정은 답방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가 남북철도연결 사업을 정치적으로 해석해내어야 하는 이유가 북이 설명해내고 있는 사회유기체론이다.

이 유기체론에 따르면 남북철도가 끊어졌다는 것은 사람의 몸(신체)으로 치자면 허리가 두 동강 났다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는 정상적인 사람의 신체구조를 유지할 수 없는 만큼, (끊어진) 철도도 반드시 연결되어야만 민족이 온전한 형태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즉, 몸속을 돌고 있는 피가 돌지 않으면 죽듯이 이를 민족적 개념에 대입하여 적용한다면 그 피에 해당하는 것이 철로이고, 그 철로가 끊어져 있다면 이는 반드시 복원되어져 연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남북철도연결 사업은 ‘민족과 통일’의 개념으로 확장되는 유기체적 개념이다.

해서 김정은 위원장의 방남은 반드시 이 남북철도연결 사업이 진행되고, 북에서 남쪽으로 철도이동이 가능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남북철도연결 사업이 완결될 때 김정은 위원장의 방남이 임박했다 할 수 있고, 이를 정치적 의미로 볼 때는 남북철도연결 사업이 김정은 위원장의 방남을 읽어내는 가장 확실한 바로미터가 된다 하겠다.

참고로 김정은 위원장의 ‘철로’방남 갖는 의미를 위와 같이 ‘민족과 통일’의 개념으로 확장해 낼 수 있다면 더해진(+) 정치적 의미의 하나는 김정은 위원장 답방 그 자체가 6.15공동선언을 한 단계 버전-업(version-up)시킬 수 있는 그런 상황과 정확히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근거는 이른바 남북의 선대 두 지도자 합의한 것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측의 연합제에 공통성 있다는 것인데, 김정은의 답방은 그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때 이뤄져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이른바 ‘민족통일기구’를 내올 수 있는 합의가 가능할 때 이뤄진다하겠다.

이렇듯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은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에 입각하여 세 차례에 걸쳐 합의된 남북공동선언을 이행담보하고, 남북정상회담이 국가 간 외교회담의 성격뿐만 아니라 민족내부의 최고위급회담의 성격도 띄고 있는바 민족의 절체절명의 과제인 통일문제에 대해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을 때 답방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방도 반드시(‘죽었다 깨어나도’) 철로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민플러스, 2019년 9월 27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목, 2019/10/0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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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다른백년의 기획칼럼 기고자인 이만열(미국명: 페스트라이쉬)교수는 기후행동국제회의와 유엔총회 등 계기로 모국인 미국을 방문하여 여러 인사들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전 국무장관 파웰의 수석 보좌관과 함께 홍콩의 시위사태에 대한 미국의 배후 역할 등에 나눈 이야기이다. 인터뷰 일단의 내용을 통하여 트럼프 미행정부의 동아시아에 대한 정책결정 과정과 취약점을 느껴볼 수 있다.


아래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와 조지 부시 대통령시절 온건파로 알려졌던 파월 전국무장관의 수석 보좌관을 지낸 래리 윌커슨(Larry Wilkerson)의 인터뷰 내용이다.

페스트라이쉬: 비록 최근 홍콩시위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끼는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한 불만에서 힘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젊은 층의 불만이라는 측면에서만 설명될 수는 없다. 미국이 홍콩의 현재 정치위기 상황에 개입 혹은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래리 윌커슨: 물론 우리(미국)는 베네수엘라에서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처럼 이 사건에도 홍콩에 개입하고 있다. 나는 2002년 베네수엘라를 여행했고 거기서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당시 대통령이던 우고 차베스(Hugo Chavez)를 타도하려 노력했는지를 목격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지금은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정권의 전복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베네수엘라에 실패와 더불어 고통만을 가져다 주었을 뿐이다. 미국은 제재를 통해 수십만 베네수엘라인을 처벌하고 그들 경제에 큰 피해를 입히는 데에만 성공했다.

언론은 절대로 베네수엘라 사태와 홍콩을 비교하지 않지만, 우리는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해 가르친다고 설쳐대며 활발히 활동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우익적인) 국립기부재단과 같은 수상쩍은 기구들을 분명히 파견해 놓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1956년 헝가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젊은이들을 탄압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싸움이 일어나고 탄압이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소비에트의 탱크들이 1956년 헝가리에서 그 반란을 진압할 때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국립기부재단 및 그 밖의 NGO들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존재가 CIA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홍콩 시위에는 헝가리 사례와 다른 측면이 있다. 우리는 적(예건데 중국)에 대한 은밀한 작전 수행을 위해 소셜 미디어 및 생생한 뉴스보도라는 보다 고도화된 접근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어떻게 반응하고, 궁극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대해 매우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의 조치가 대만에 거주하는 2,300만 명의 사람들에게 확실한 신호로 받아들여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이 이 사태를 잘못 처리할 경우 대만이 중국 본토에서 완전히 등을 돌릴 것은 자명하다.

페스트라이쉬: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작전을 이끌 만큼 정교함을 지닌 인물이 아니다. 트럼프는 개인적으로 중국에 트럼프 카지노를 몇 군데 더 열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워싱턴에서 이 움직임을 추진하고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윌커슨: 최근 해임당한 존 볼턴(John Bolton)이 지금까지 모든 사항을 관장했다. 존 볼턴은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중국과 기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일련의 작업들을 시행했고, 이 과정에서 그는 “고문여왕”으로 불리는 지나 해스펠(Gina Haspel) CIA국장의 도움을 받았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소수 인물들이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페스트라이쉬: 그 말은 존 볼턴이 떠나면 미국의 대외 정책에 실질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윌커슨: 지난주 크리스 헤이스(방송)의 쇼에서 언급했듯 볼턴이 떠났어도 바뀐 건 거의 없다. 어마어마한 전쟁광이 국가안보 보좌관직에서 떠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지위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 시절엔 단 8년 동안 무려 6명의 보좌관이 거쳐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대통령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과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 사례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각각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와 외교정책 관련 권력을 나눠 가졌다.

대통령이 내린 결정을 확실히 실행할 최고의 방법은 국가안보보좌관을 갈아치우는 것이다.

트럼프는 여러모로 레이건과 다르다. 따라서 마이크 폼페이오부터 지나 하스펠(CIA 국장), 스티븐 밀러(트럼프 정치고문), 스티븐 므누신(재무장관)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은 아마도 계속해서 그들의 안건을 밀어붙일 것이다. 트럼프에겐 그들 모두를 한 손에 쥐고 흔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존 볼턴이 떠난 것은 잘된 일이다. 유능하면서 동시에 악하기도 한 인물이라는 온갖 소문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한 그는 오직 악하기만 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애런 버(전 미국 부통령)는 영리하면서 악했지만, 볼턴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 그런 악인이 요직에서 해고된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를 그 자리에 앉힌 무능한 대통령은 여전히 그대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

페스트라이쉬: 홍콩 폭도들 대부분은 대만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심지어 대만 현 정부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다. 나는 차이잉원 총통이 최근 ‘아메리칸 리전(American Region)’과 나눈 대화 내용을 알고 놀랐는데, 차이 총통이 실제 시민들의 우려를 논리적, 체계적으로 해소하기보다는 중국 전체를 악의 세력으로 묘사하는 극단적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1980년대 이후 대만 정치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그 발언은 근시안적이라고 본다. 대만 총통의 이 같은 발언은 오히려 많은 중국인들이 대만을 서방 극우세력의 꼭두각시로 보도록 부추길 것이다.

윌커슨: 천수이볜(Chen Shui-Bian) 대만 전 총통은 2000년대 초반에도 가끔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차이 총통이 이런 표현에 가장 잘 반응하는 아메리칸 리전(우익 매체)에 연설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녀는 자신이 연설할 수 있는 다소 한정된 청중 명단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볼턴은 그녀가 비비 네타냐후(Bibi Netanyahu) 총리처럼 미 의회 합동연설을 하길 바랐을지 모르지만 트럼프 행정부에는 중국과 대만에 관한 한 완전히 미치지 않은 인물이 한 두 명은 남아있다.

차이 총통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발언은 중국뿐만 아니라 아메리칸 리전과 미국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된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그녀가 신중하고 잘 정돈된 표현으로 발언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는 당신 말처럼 기후변화 같은 실존적 위협에 대해 내세우며 전세계를 대상으로 발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익적인 특정 청중들에게 이 같은 발언은 완전히 헛되게 들렸을 것이다.

페스트라이쉬: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이 당면한 암울한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 시위에 동참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위 지도자라 불리는 인사들이 펜스(Pence) 부통령과 볼턴(Bolton) 전 보좌관을 만나면서 기후 변화가 홍콩에 미치는 영향, 홍콩 내 과도한 부의 집중(세계의 모든 도시 중 가장 심각한 실정), 홍콩 문제에 대한 엘리트들의 무관심에 대해 항변하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이슈들이 논의에서 제외된 이유는 무엇인가?

윌커슨: 이러한 현상은 아주 오래도록 이어져 온 것이다. 사람들은 선정적이고, 극적이며, 위험한 눈앞의 현안들에 관심을 보이는 대신 그들 가까이 있는 중요한 문제들은 곪게 만든다.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어떤지 봐라. 트럼프 부자 감세든 무역 관세든 모두 그의 정치적 기반을 무자비하게 응징하는 경제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로 대 웨이드(Roa vs. Wade) 판결을 뒤집고 기독교 기도를 다시 백악관으로 가져오겠다고 약속하는 한 이런 것들에 거의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홍콩 시위대는 그들이 서 있는 지구가 병들어 고군분투하다 그들이 사는 동안에 파괴될지도 모르는데, 하늘 위 별들을 향해서만 손을 뻗고 있는 것이다.

페스트라이쉬: 군사예산 법안에 대한 간단한 논리도 있다. 그 많은 돈이 중국과의 전쟁 준비를 위한 예산으로 책정된다면 어떤 정부 관료들이라도 중국과 대립해야 한다는 제도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윌커슨: 대만을 얘기하는 것인가 미국을 얘기하는 것인가? 둘 다인가?

페스트라이쉬: 미국의 주요 예산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국방비로, 현재 공식적으로 7천5백억 달러이며 이 국방예산으로 개발된 값비싼 시스템들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윌커슨: 엄청난 규모의 미국 국가안보 예산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없다. 보훈처, 국토안보부, 에너지부의 핵무기 관련, CIA포함 국방부외 정보예산, 국가정보국장 및 통계국장에 투입되는 예산은 1조3천억 달러에 달한다. 이 같은 예산으로 조장된 위협들은 여러 면에서 자기충족적 예언을 형성한다.

냉전 동안 일어난 일을 되돌아보고, 예산이 어떤 식으로 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의 경쟁을 이끌었는지 그리고 예산이 매번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야 한다. 중국 상대의 군사 및 경제 전략을 뒷받침하도록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은 궁극적으로 전쟁에 대한 추가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페스트라이쉬: 그렇다면 어떻게 이 긴장과 갈등의 근원을 가지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든 행사를 조직하고 홍콩과 전 세계의 지방정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면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실제 이슈들, 즉 기후 변화와 경제 군사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독창적 접근 방식이 있을 지도 모른다.

윌커슨: 우리는 뭔가 긍정적인 것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슈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CIA의 노력 (MI6/영국 정보부도 마찬가지)에 필적하거나 그를 능가하는 자산(돈,사람, 조직력)을 갖추고 있지 않는 한 더 현명하고 똑똑하며 보다 관련 있는 대화를 끌어낸다고 해도 그들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의욕을 꺾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이런 노력들을 조직하는 사람들이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페스트라이쉬: 그러나 홍콩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정책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우리는 정책을 세워야 하고, 그 정책은 건설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더 효과적인 정책인가?

윌커슨: 우리는 조지 부시(George H.W. Bush) 행정부 및 냉전 종식 이후에 취했던 포지션으로 돌아가 평화적 경쟁을 위해 전략적 의도를 가진 신중한 판단을 이어가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평화와 경제의 연대적 통합이어야 한다. 우리는 국제 범죄, 기후 변화, 현재 전 세계적으로 7천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난민 문제 및 단일 국가가 다루기 어려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일본 및 한국과의 동맹을 유지하고 인도와 같은 국가들과의 관계를 확대하면서, 즉시 이용할 수 있지만 훨씬 비용이 적게 드는 군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반드시 평화 및 평화적 경쟁이어야 한다.

페스트라이쉬: 미국 지식인 중 우리가 함께할 미래에 대한 심도 깊고 의미 있는 토론을 위해 홍콩, 이나 대만, 상해 또는 북경을 방문할 사람들이 많다. 그 학자들이 일반 시민들과 함께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중국의 지식인들을 참여시키기 시작하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기후 변화, 사회경제적 문제 및 사이버공간의 미래에 대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다면 미디어를 긍정적인 메시지들로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윌커슨: 나 역시 그런 움직임이 환영 받을 거라는 데에 동의한다. 또한 이 지혜를 이해하고 있는 훌륭한 리더들이 대통령직, 국가안보위원회, 국무부 및 재무부를 채운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페스트라이쉬: 현 정부가 그늘진 곳에서 외교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다른 나라의 기반을 흔드는 은밀한 활동을 끝내고 문화적 연대로 젊은 층의 진정한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

윌커슨: 첫째로, 현명한 새 행정부가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이해하는 새로운 의원들이 있어야 한다. 또 중국을 신 냉전(new Cold War) 시대의 적국으로 규정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는 새로운 미디어가 필요하다. 물론 그리고 나서 이 대화를 진행해 나갈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시민들이 필요하다.

금, 2019/10/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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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

이범은 불광동 사람이다.

원래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지만(1957년생) 7살 때 서울에 올라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이 동네에서 나왔고, 평생 이 동네에서 일하다가 이 동네에서 죽었다. 놀기도 이 지역에서 많이 놀았다. 주말이면 지인들과 불광역에 모여 북한산에 올랐고, 불광사 길로 내려와 길목에 있는 연신내 골목식당에서 뒷풀이를 했다. 죽어서도 이 동네에 묻혔다. 그의 유골은 지금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구파발성당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

그는 말하자면 민주화운동권이었다.

1976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정외과를 입학한 이후에 1979년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하여 징역을 살았고,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 시대에 1980년, 1985년, 2번 징역을 살았다. 그밖에도 여러차례 경찰에 붙들려 갔고, 구류도 살았다.

또 그는 출판인이었다.

1982년 결혼하고 생계수단으로 번역실을 시작했고, 출판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85년부터는 백산서당이라는 출판사를 인수하여 탄탄한 사회과학 출판사로 키웠다. 죽을 때까지 이 출판사에서 수백권의 책을 냈다. 그리고 본인이 여러 권의 책을 직접 써서 출판하기도 했다.

이범은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정치에도 깊이 관여했다. 1990년 민중당이 창당될 때 정책실 차장으로 참여했고, 민중당 해체 후에는 1996년부터 나라정책연구회라는 정치단체에서 사무국장, 상근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이범은 한편으로 시민운동가이기도 했다. 2001년 서영훈 한국적십자사 총재를 모시고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창립을 도왔고, 이어 서영훈 총재가 대표로 있는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의 운영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그리고 2003년부터 몸살림운동본부를 만들고 초대 연구소장, 연신내수련원장등을 하면서 몸살림운동을 전파했다.

이범은 자신의 시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좀더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실천을 모색했다. 그는 58세의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불꽃같은 열정’과 ‘사심 없는 직선적인 삶’은 지금도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한 청년’으로 남아 있다.

 

학창생활과 학생운동

1973년 이범은 경기고등학교에 시험을 쳐서 합격한다. 시험으로 경기고를 들어간 마지막 세대였으니 당시로서는 꽤 수재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식들 교육을 서울 가서 시켜야 한다’고 상경했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한 셈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을 하면서부터는 재미없는 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에도 빠지고,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정동교회에서 함석헌 선생께서 하시던 『장자』 강의도 들었다. 한때는 쇼비니즘적인 민족주의에 몰두하기도 했다. 이때는 낮이고 밤이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잘 이해도 못하는 철학과 역사, 문학서적을 탐독하는 게 제일 큰 낙이었다.’(이범의 저서 『한국은 그 한국이 아니다』에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국회의원 노회찬, 대안학교 이우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정광필, 언론인 고성국 등이 이범의 경기고 동기동창이었다. 경기고 동창 최만섭은 이범이 ‘머리를 박박 깎고 돗수 높은 안경을 끼고 도서관에서 두꺼운 사상전집을 읽고 있는 진지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머리가 빨리 트였던 이 경기고 동창들은 함께 몰려다니며 박정희정권을 비판하는 연설회나 강연을 들으러 다녔고, ‘문제의 뿌리를 천착하기 위해’ 철학공부를 함께 하기도 했다.

1976년도에 이범은 고려대 정외과에 합격한다. 그러나 입학 후 무슨 사정에선가 1년을 휴학하고 1977년에 1학년을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1년 후배 77학번들과 가깝게 어울려 지냈다. 이범은 고등학교 때 가입한 흥사단아카데미 활동을 대학 입학 후에도 열심히 했는데, 그 안에 ‘도산연구회’라는 이념서클을 조직하여 리더로 활동했다.

2학년이 되는 1978년 6월 이범은 서클에서 광화문에 유신반대 데모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광화문에 나갔다가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이 도산연구회를 했던 정경대의 송광의와 친구 이승환 등이 이때 구속되었다. 다행히 이범은 단순가담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이 때의 경험이 이범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후 이범은 본격적으로 반독재 반정부활동에 뛰어든다.

 

지하신문 「소리들」과 두번의 감옥생활

78년 가을에는 고대 내에서도 선배 고광진, 천영초, 정경연 등의 시위가 있었다.

박정희정권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던 이범은 그해 가을 광화문시위 때 유치장에서 만났던 백병규, 정태헌, 장동현 등과 함께 지하신문 「소리들」을 발간할 계획을 세운다. 77학번 백병규와는 1학년 말에 함께 그룹스터디도 했고, 2학년 초에 하숙도 함께 한 적이 있어 서로 의기상통하는 관계였다. 이범은 1년 선배인 김상복과 전체 기획을 의논하고, 구체적인 신문 제작과 배포 작업을 백병규 등 77학번 3명과 함께 했다.

제작은 원지를 철필로 긁어 가리방으로 인쇄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썼다. 이렇게 해서 수백부를 인쇄하고, 배포는 고대신문 우편함을 열고 우편물을 수거하여 주소를 확인한 다음 그 주소로 일일이 우표를 붙여 발송했다. 그밖에도 서울 시내와 학교 이곳저곳에 몇 부씩 뿌렸다.

지하신문이 학교와 정보기관에 들어가면서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악명 높은 성북경찰서 정보과에서는 의심가는 학생들을 한명씩 불러 취조하여 주모자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범은 사태가 험악하게 흘러가자 팀원들과 의논하여 지하신문 발간은 1호로 마감하고 등사기 등 관련물품은 모두 없애기로 했다.

그러나 1979년 2월 지하신문 제작팀 한 사람이 시국재판에 참석했다가 정보과 형사 눈에 띄었다. 형사들에게 집을 털렸고, 집에서 유인물이 발견되었다. 결국 이범과 김상복, 백병규, 정태헌 등 5명이 모두 검거되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범은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서울구치소에서 복역하다가 10.26으로 박정희가 죽고 그해 11월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감옥에서 나온 직후 이범은 11월 24일 명동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또한번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한다. 8.15 특사로 먼저 감옥에서 나왔던 백병규, 정태헌 등과 함께 YWCA회관에 갔다가 현장에서 보안사 요원들에게 붙들려 육군본부 보안사분실로 잡혀 간 것이다. 다행히 구속까지는 가지 않고 즉심에 회부되어 구류 29일을 받았다.

80년 서울의 봄 때는 복학생대책위원회에 참여하여 이승환, 백병규 등과 함께 활동했고, 한편으로 새로 구성된 학생회에서 신계륜 학생회장과 함께 학생회 실무직책을 맡아 활동했다.

5.17 계엄확대조치로 계엄군이 학교에 진주하고 일제검거령이 떨어지자 이범도 일단 피신했다. 그러나 광주에서 시민들의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범은 광주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학살현장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학생회 활동과정에서 맡아 가지고 있던 돈을 광주시민들에게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광주로 내려가는 차 속에서 검문에 걸려 연행되었고, 결국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되게 된다. 군사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가 7개월만인 그해 12월 석방되었다.

 

김철미를 만나 결혼하다

78년 이후 구속과 감옥생활을 거듭하던 중에 이범은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만난다. 80년 포고령 위반으로 감옥 살이하던 중에 한 아름다운 여대생이 면회를 왔다. 이대 4학년에 다니던 김철미였다. 김철미 역시 이대에서 횃불회라는 서클에서 활동하고, 학생회에서 간부도 맡은 경력이 있는 운동권 학생이었다.

김철미는 78년부터 향린교회에 다녔는데 80년 무렵부터 이범도 이 교회에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만난 적은 없었던 걸로 김철미는 기억한다.

80년 이범이 구속되자 교회에서 옥바라지 할 사람을 찾았고, 김철미가 자원해서 책을 넣어주면서 옥바라지에 나섰다. 김철미는 이범의 친구 송광의에게 부탁해서 이범 어머니를 소개받고 가족과 함께 면회도 다녔다. 80년 12월 이범이 석방되어 나오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이범 집안에서도 자연스럽게 김철미를 며느리 될 사람으로 인정했다.

두 사람은 82년에 드디어 결혼에 골인한다. 두 사람이 신혼여행 가 있는 동안 그의 고등학교 절친인 노회찬과 최만섭이 홍제동 옥탑방 신혼방을 정성스럽게 도배해 주었다.

 

출판인 이범, 그리고 시련

이범의 출판인 경력은 1984년 고대 1년 선배 서원기 사장의 강권으로 백산서당 편집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 이전에도 생계수단으로 다산출판사에서 잠시 일하기도 하고, 금강기획이라는 번역실을 차려 번역에 종사한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출판일에 뛰어든 것은 이 때부터였다. 1년 후 1985년 서원기가 민청련 집행국장으로 가면서 이범이 아예 백산서당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출판사를 시작한다.

이범은 출판사 운영을 통한 지식계몽운동이 민주화운동의 적극적인 한 분야라고 생각하고 전력을 다한다. 아내 김철미도 번역에서부터 편집, 교정 등 모든 일을 옆에서 도왔다. 그의 오랜 친구 이명식, 이승환, 고성국 등이 편집위원으로 책의 기획을 도왔다. 이승환은 『경제사 입문』이라는 책을 번역 출판하여 백산서당 살림에 큰 도움을 주었고, 이재화라는 필명으로 『한국근현대 민족해방운동사』라는 책을 써서 출판하기도 했다.

백산서당은 이후 수백종의 책을 내면서 사회과학출판사 중에서도 손꼽히는 출판사로 자리잡았다. 『전공투』, 『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 『공산당선언』, 『철학의 기초이론』 등 수만권씩 팔리는 히트작도 여러권 냈다.

그러나 출판인으로서 시련이 찾아왔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한동안 사회과학 출판계가 활기를 띠었다. 독재시기의 족쇄가 어느 정도 풀려 국가보안법의 법망 속에서도 공산권 저작들의 출판이 봇물을 이루었다. 이때 백산서당에서 북한의 공식출판물인 ‘주체사상 총서’를 입수하고 몇 개 출판사와 합동으로 출판하기로 약속했다. 총 10권 중 백산서당이 선두타자로 1-4권을 내기로 했다. 원전을 가져다 타이핑해서 1-4권을 1만여부씩 찍었다. 그러나 당국의 대처는 예상외로 신속하고 강력했다. 책은 모두 압수당했고, 사장 이범에 대한 구속령이 떨어졌다. 이 일로 이범은 몸을 피해 가까스로 구속은 피했으나 장기 수배상태로 들어갔다. 결국 1990년 공식적 대표로 되어 있는 김철미가 대신 구속되는 조건으로 수배에서 해제되었다. 이 일로 김철미는 7개월이나 감옥을 살았고, 이범은 이 일을 두고두고 미안해했다.

 

재야운동, 민중당, 공동선시민운동

출판사를 경영하는 바쁜 와중에서도 이범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았다.1983년 9월 김근태 의장을 중심으로 민청련이 창립되자 이범은 고려대 70년대 중반 학번을 대표하여 민청련의 기별대표조직에 참여했다. 그리고 고대 출신으로 노동현장에 들어간 노동운동조직들과도 연계를 가지고 지원했다.

1985년 이범은 이른바 ‘다산·보임사건’에 연루되어 김상복, 고성국 등과 함께 구속된다.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는 전두환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용공조작사건의 하나이지만 전혀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산보임사건의 구속자들은 노동현장과 연결된 일종의 정치조직, 정당까지 내다보는 한 정파조직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사당국의 발표는 완전 조작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매우 과장되고 왜곡된 것이었다. 특히 그들의 발표처럼 간첩 활동을 한 친북조직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 사건으로 이범은 1심에서 7년, 2심에서 3년을 선고 받았고, 2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했다.

이범은 재야운동 뿐 아니라 정당정치 활동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1990년 이우재, 장기표, 이재오 등을 중심으로 민중당이 창당되었을 때 이범은 수배 중임에도 불구하고 창당에 참여하여 정책실 차장을 맡았다. 그러나 막상 참여한 후에는 당 활동에 별로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 지도부와 당 노선을 둘러싸고 여러차례 언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주변에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범은 1992년 대선에서 백기완 대통령후보 선거활동까지 돕고 민중당을 떠났다.

1993년 민중당이 해체하자 이범은 민중당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른바 ‘민중당 우파’들과 함께 나라정책연구회를 만들고 사회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적 대안을 모색했다. 이범은 이 연구회에서 발간한 월간 ‘21세기 나라의 길’ 책임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1996년부터는 나라정책연구회 사무국장, 상근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되는 세계사적 대격변을 겪고 나서 진보운동 진영에서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이범 역시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재정립하려는 나름의 치열한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나라정책연구회 활동도 그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흥사단 운동의 대선배이면서 공동선운동을 이끌었던 서영훈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98년 백산서당에서 『자유시민 서영훈의 세상읽기』, 『벽오동 심은 뜻은』 등 2권의 서영훈 선생 책을 출간했다. 이범은 서영훈의 생명질서사상에 감명을 받고 서영훈 선생의 공동선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2001년에는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운영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한국은 그 한국이 아니다』

이런 이범의 사상적 실천적 모색은 2003년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다. 『한국은 그 한국이 아니다』(백산서당, 2003)가 바로 그것이다. 2002년 서울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거울 때 그는 한 선배의 소개로 전남 곡성의 한 암자에 들어가 20여일간을 머물면서 이 책을 완성했다.

그는 이 책에서 고등학교 시절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사상적 편력을 회고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생각하고 토론했던 주제들을 화두로 삼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 제시했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서양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동도서기(東道西器)도 아니고 동도동기(東道東器)로 하자는 것이다 바로 탈구입아(脫歐入亞)가 우리 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 세상의 기준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버리고 서양을 목표로 해서 서양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세태를 비판하면서 한국의 깊은 사상과 문화에 대한 긍지를 회복할 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한편으로 한동안 맑스주의에 경도되었던 이범 자신의 사상적 편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은 모두 뒤집어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상이 정확하게 맺힐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알아야 우리가 약소민족, 변방의 위치에서 벗어나 세계 문명을 창조하고 지구촌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평화의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몸펴기생활운동 – 배워서 나눠주는 운동

2003년 어느 날 이범은 몸이 견딜 수 없이 아파 병원을 찾았다. 특히 등과 허리가 아파 의자에 앉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몇 군데 병원을 옮겨 다니며 물리치료도 받고 약도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물리치료를 잘 한다는 김철을 소개했다. 김철은 이범의 굳어 있는 근육들을 풀어주고, 몸을 펴는 몇 가지 운동을 권했다. 김철 말대로 몸을 펴는 운동을 꾸준히 하자 못견디게 아픈 통증이 신기하게 씻은 듯 사라지고 건강이 돌아왔다. 이범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한 경험이었다.

이범은 이런 체험을 혼자만 누릴 수 없고 이것을 전파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범은 김철을 모셔와 출판사가 있는 홍제동 2층에서 운동지도를 받았다. 그러다가 김철과 의논하여 아예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 수련원을 내기로 했다. 사무실을 얻는 데는 정병문, 전종덕, 박성규, 송종환 등 골목산악회 선후배들이 십시일반 일조를 했다. 이범은 김철을 도와 수련원 안에서 수련생들을 지도하는 한편 몸살림 수련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전파하는 데 진력했다. 2005년에 『몸의 혁명』, 2006년에 『김철의 몸살림이야기 상,하』 등 3권의 책을 김철의 이름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2006년쯤에는 연신내에 수련장을 마련하고 초대 수련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몸살림운동을 전국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저술활동과 더불어 활동사범을 대대적으로 양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009년 이범은 그동안의 경험과 연구를 정리하여 책으로 펴냈다. 『몸 펴면 살고 굽으면 죽는다』(백산서당, 2009)가 바로 그것이다.

이범은 한동안 이 몸살림운동에 전력을 투구했다. 선후배 지인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소문을 듣고 이범의 수련원을 찾아왔다. 이범은 자신을 찾아온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성심껏 몸을 풀어주고, 그들에 맞는 운동을 찾아 권유하고, 경과를 체크해줬다. 때로 몸을 움직이기 힘든 사람들은 직접 집으로 방문하여 치료도 해주었다. 몸 치료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범은 암이나, 중풍환자들까지도 치료해 효과를 확인했고, 구완와사나 크론병 같은 희귀병에도 자신의 치료법을 적용해 효과를 보았다.

이범의 혼신을 다한 노력으로 몸살림운동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몸살림도장이 전국적으로 설립되었고, 미국, 영국에까지 전파되었다. 이범은 이 운동의 전도사가 되어 몸을 돌보지 않고 전국을 누비며 강연을 다녔다. 이렇게 몸살림운동이 확산되면서 향후 운영방침을 놓고 김철과 의견차이가 생겼다. 이범은 이 운동을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동호회 중심의 비영리 운동단체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처음에 이범을 도왔던 지인들조차도 이범에게 이 운동이 지속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영리성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이범의 생각은 확고 했다. 그는 자신의 방침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몸살림운동의 진로를 둘러싼 김철과의 의견 차이는 결국 조직 내의 갈등요소가 되었다. 결국 이범은 숙고를 거듭한 결과 2008년 자신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과 별도의 조직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는 비영리단체로서 몸살림운동 동호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2011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면서 (사)몸살림운동협회로 조직을 정비했다. 그리고 기존 ‘몸살림운동’과 상표권 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2013년 ‘몸펴기생활운동’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2008년 동호회 창립취지문을 보면 당시 이범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몸펴기생활운동은 사람들이 허리를 바로 세우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면 건강해진다는 간단한 원리에서 출발한다. 자세만 바르면 적어도 큰 병에는 걸리지 않고 살 수 있게 된다. 설사 큰 병에 걸려 있다 하더라도 몸만 펴면 쉽게 나을 수 있다. (중략) 몸펴기생활운동은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배워 이웃에 살고 있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몸살림운동에서 몸펴기생활운동으로 정립해 나가는 과정은 생각만큼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승을 버린 패륜아라는 등 이범에 대한 갖은 악선전과 비방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이범이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술수를 모르는 고지식한 이범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조직적으로 분리해 나와 ‘몸펴기생활운동’이라는 동호회 운동을 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범의 심신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스트레스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술도 평소보다 엄청나게 많이 마셨다. 그런 와중에서도 자신을 찾아오는 몸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몇 시간씩 온몸에 진이 빠지도록 도움주기를 했다. 이런 무리한 생활은 이범의 건강을 급격히 무너뜨렸다.

 

골목산악회

1990년대 초 이범이 사는 불광동 지역에 민주화운동권 선후배들로 골목산악회라는 산행모임이 조직되었다. 서울대 73학번 정병문, 전종덕, 오세구 3명이 시작했는데, 얼마 후 이범과 우리교육 박성규 사장(서울대 72학번)이 합류했고, 거기에서 알음알음으로 이영창(서울대72), 이명식(고대 76), 나상억 교수(서울대 78)등이 합류해 1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아침 7시면 불광사 앞에서 만나 북한산을 등반하고 12시쯤 내려와 불광사 골목길 골목식당에서 뒷풀이를 했다. 이범이 산악회 총무를 맡았는데, 산행날 새벽 6시면 회원들의 집에는 이범이 회원들을 깨우는 전화벨소리가 어김없이 울렸다.

토요일이 휴일이 되면서 골목산악회 모임날짜도 토요일로 바뀌었다. 그리고 모이는 시간도 오후 2시로 변경했고, 5시쯤 하산해서 뒷풀이를 했다. 시간을 바꾼 것은 뒷풀이가 너무 길어져 술 마시는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골목산악회는 한때 회원이 40-50명, 산행에 모이는 사람이 15-20명이 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2003-4년 쯤부터는 민청련산악회가 여기에 합류해서 한 달에 한 번씩은 함께 산행했다. 골목산악회는 여전히 매주 어김없이 모였다.

2005년 4월경 남북관계가 호전되어 금강산 세존봉 산행이 가능해지면서 골목산악회 뒷풀이에서 우리도 금강산을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금강산지역 남북협력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던 이병호(현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가 주선하고 민청련동지회장을 맡고 있던 필자와 총무 한영수가 금강산 등반대 조직에 나섰다. 처음에는 가볍게 버스 한 대에 30-40명 정도 갈 예정으로 시작했으나 이 소문이 퍼져 너도나도 신청하는 바람에 결국 신록이 푸르른 2005년 5월, 138명이나 되는 대군이 버스 4대에 나눠타고 금강산으로 향했다. 이범과 그 아들 재승군도 여기에 동승했다.

이 산행에서 필자는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했다.

우리 등반대는 전날 금강산호텔 숙소에서 자고 아침 일찍 금강산 등산에 나섰다. 잔뜩 흐리고 이슬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산행을 시작했는데 점차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우리 눈앞에 금강산의 비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4시간 만에 세존봉 정상에 오른 우리는 끼리끼리 삼삼오오 흩어져 준비해간 점심식사를 했다.

나도 아내와 함께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5월의 빛나는 신록이 갑자기 군청색 푸르죽죽한 색깔로 변했다. 옆에서 아내가 놀래서 준비해간 우황청심환을 먹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등반대 중에서 젊은 20대 청년 둘이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아 옆의 너른 바위로 옮겨 눕게 했다. 그리고 손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주물러 주기 시작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신록의 색깔이 서서히 원래의 색깔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위기를 넘기고 무사히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아마도 전날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산행하면서 가벼운 뇌졸중이 왔던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뜻밖에 잘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큰 신세를 졌는데, 이들이 알고보니 이범의 몸살림 연신내수련원에서 수련하는 이범의 둘째아들 재승군과 또 한명의 또래 청년이었다. 이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이범의 몸살림이 내 생명을 구했던 것이다.

골목산악회와 민청련산악회의 합동산행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계속되고 있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

이범과 함께 오랫동안 골목산악회를 같이 하며 옆에서 지켜봤던 박성규 사장은 이범을 ‘순수한 사람’, ‘원칙을 정하면 타협을 모르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범의 최초 감옥 동기였던 백병규는 그를 ‘대륙풍이 있는 사람’이고, 소박하고 품이 넓은데다 세상과 사람의 근원을 천착하는 사람으로 평한다. 친구 이승환은 그를 바둑으로 치면 포석이 강한 ‘선이 굵은’ 친구였고, 지적인 탐구가 왕성하고 죽을 때까지 사상적 실천적 탐구를 계속했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그의 아내 김철미는 이범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 ‘잔머리가 없고, 2번 3번이 없고, 항상 직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속정이 깊고 항상 가족과 아내를 걱정했던 사람, 눈물이 많아 영화를 보면서도 잘 우는 사람으로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다

이범에게는 그 이전부터 신병으로 부정맥이 있었다. 그런데 몸펴기생활운동이 독립하던 2013년 무렵부터는 그 증상이 심해졌다. 자다가 깜짝깜짝 놀랬고, 과묵한 그가 아내 김철미에게 자주 고통을 호소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지만 몸살림운동을 하면서부터 건강에는 누구보다 자신을 해오던 터라 이범은 자가치료와 운동을 할뿐 병원은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몸에 대한 연구와 치료를 하면서부터 서양의학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 아내와 가족들이 아무리 권해도 병원 신세를 지려하지 않았다. 다만 가끔 성모병원 의사로 있는 친구를 찾는 정도였다.

그러다 2013년 말 어느 날 이범은 심장발작을 일으켜 갑자기 쓰러졌다. 2014년 3월 경 병세가 심해져 가족과 친구들이 나서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켰으나 며칠 안가 이범은 병원을 탈출해 나왔다. 그리고 한사코 집에서 자신이 치료하는 게 낫다고 고집을 부렸다. 점점 병세가 악화되고 심부전으로까지 발전하자 8월에 가족들이 모두 나서 통사정해 양길승 원장이 있는 녹색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이미 병세는 이미 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악화되어 있었다.

이범은 원래 비종교였으나 그 무렵 새로 교황에 취임하여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좋아했다. 그래서 친구 최헌걸이 보내온 교황 화보집에서 교황 브로마이드를 떼어 병상 머리에 붙이게 했다.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때때로 간성혼수 상태에 빠지는 상황이 되자 이범은 자신의 최후를 예감하고 세례받기를 청했다. 친구 이승환에게 부탁하여 수원교구 홍창진 신부를 모셔와 약식세례를 받았다. 친구 송광의가 대부를 섰다. 그리고 2-3일 후 2014년 10월 27일 오전 11시 10분 이범은 아내 김철미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골은 화장하여 구파발성당 요셉관에 안치하고, 그 중 일부를 지인들이 그가 자주 다니던 산행길 옆 바위, 산사, 바다 등에 뿌렸다. 자연 속에서 편안히 안식하라는 바램이었다.

수, 2019/10/0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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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전이 모든 걸 흡수하는 와중에 정말 중요한 뉴스가 나왔다. 부동산 양도차익 등 불로소득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미디어의 보도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유승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귀속 양도소득과 금융소득’ 자료를 국세청에서 받았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부동산 양도차익으로 인한 소득이 한 해 84조8천억원, 주식 양도차익이 17조4천억원, 배당 및 이자소득 등 금융소득은 33조4천억원이었다고 한다([단독] 불로소득 ‘136조’ 돈이 돈을 불렸다).

<출처: 한겨레>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부동산 양도차익 등 불로소득 규모는 135조6천억원인데 이는 2016년(112조 7천억원)보다 20% 증가한 액수다. 불로소득의 규모도 천문학적이지만 이 불로소득이 극소수에게 집중된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다. 배당소득의 경우 2017년 전체 배당소득이 19조6천억원에 달했는데, 상위 0.1%에 해당하는 9,313명이 8조9387억원(전체의 45.7%)을, 상위 10%가 18조3740억원(전체의 93.9%)을 각각 차지했다. 이자소득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7년 전체 이자소득은 13조8천억원인데, 상위 0.1%에 해당하는 5만2435명이 2조5331억원을(전체의 18.3%), 상위 10%에 해당하는 524만3532명이 12조5654억원(전체의 90.8%)을 각각 차지했다. 부동산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신고액수를 기준으로 줄 세웠을 때 상위 10%에 해당하는 부동산 거래로 인한 양도소득이 전체 소득 84조7947억원의 절반이 넘는 53조7913억원(63.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하니 말이다.

배당소득, 이자소득, 부동산양도소득 등의 불로소득 편중도와 근로소득을 비교해 보면 불로소득의 양극화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근로소득의 경우 상위 0.1% 초고소득층(1만8005명)이 전체 근로소득(633조6천억원)의 2.3%를 차지하는데, 이는 자산소득의 불평등도에 견주면 귀여울 정도다.

 

부동산불로소득 환수가 가장 선행되어야  

불로소득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적이다. 불로소득이 창궐하고 시장참여자들이 불로소득을 추구문하면 자산양극화와 소득양극화가 심화되고, 자원배분이 왜곡되며, 기업가 정신과 근로의욕이 소멸하고, 사회적 연대의식이 저해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 불로소득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결정적으로 침해하는 암종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만사를 제쳐두고 불로소득의 공적 환수에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불로소득의 공적 환수에 나설 때 무엇보다 먼저 손을 대야 하는 부문은 단연 부동산 불로소득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배당, 이자 등의 불로소득과 비교불가일만큼 규모가 크며(국세청 자료는 양도차익만 집계한 것이지만, 임대소득과 귀속임대소득까지 포함하면 GDP의 30%수준이다) 불로소득 중에서도 가장 악성의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흔히 불로소득을 다 같은 불로소득으로 간주하기 쉽지만 이는 심각한 착각이다. 불로소득도 악성의 정도가 다르다.

불로소득의 악성 정도를 평가하는 기준을 1.기여 및 폐단의 정도, 2. 불로소득을 얻을 기회의 공평성, 3. 무책손실의 정도 이렇게 세 가지로 제시해보겠다. 주식과 부동산을 비교해 보자. 주식은 기업에 자금을 직접 제공하는 기여가 있으며, 비교적 금액이 크지 않아 주식투자로 인해 불로소득을 얻을 기회가 공평하고, 주식투자를 하지 않으면 손실을 볼 가능성이 없다. 반면 부동산은 사회경제적으로 폐단만 있으며, 금액이 너무 커 불로소득을 얻을 기회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아도 가격이 오르면 엄청난 손실을 본다.

모든 일에는 선후와 완급과 경중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력소득은 보장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 불로소득의 환수 순위는 부동산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조국 대전에서 승리하고 검찰개혁에 성공하더라도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에 지금처럼 미온적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앞날은 어두울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도 암담할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의 성공여부에 대한민국의 앞날이 걸려 있다.

목, 2019/10/1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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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중 간에 진행되는 패권주도 전쟁은 무역통상과 군사적 영역뿐만 아니라, 과학과 산업기술 분야에서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빅데이타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는 견해가 나오는 가운데 사회주의의 경직성이 혁신적 창조 역량을 제약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향후 미국과 중국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ICT 중심으로 국제적 기술의 기준이 양분화될 것이 이라는 우려도 나오기 시작한다.

이는 중국에 국한되는 이야기 일뿐만 아니라 핵력강국에 이어 과학기술강국을 지향하는 독자적인 노선의 성공여부에 따라 북한의 향방과 한반도의 미래지형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중국의 과학발전에 대한 도전이라는 과제가 제기됐다. 중국의 기술진보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수출 통제 및 외국인 투자 규제 강화, 중국 과학자 및 기술자에 대한 비자규제 강화, 그리고 미국의 대학 및 기업에 종사하는 중국인 과학자들의 행동에 대한 적극적 조사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 산업, 및 정부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때 번성했던 양국 관계는 국가 안보 및 지적 재산 보호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현재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단기적으로 미국의 압력으로 중국과학의 발전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지만, 중국은 1960년대 초 소련의 지원 철회를 떠올리게 하는 기술 민족주의적 노력을 통해 연구와 혁신을 위한 중국의 독자적 시스템을 구축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과학발전의 네 가지 특징은 진행중인 기술 전쟁에 대한 대응 방식을 좌우할 것이다.

첫째, 국제 과학 및 기술에 대한 중국의 수용 및 토착 개발 경험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정책 과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갈등도 제기한다. 국제환경, 특히 미국과의 상호작용은 중국 과학기술의 속도 및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국제 환경 자원을 이용하면서 일련의 국내 연구, 교육 및 산업 정책을 마련하여 자체 역량을 향상시키고 해외지식의 소화를 가능하게 했다. 이 같은 이중노선 정책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해외’와 ‘국내’ 사이의 근본적 긴장상태가 지속되며 과학, 기술 및 혁신에 대한 정치 문화적 방향성을 형성한다.

둘째, 중국 산업체와 대학 및 중국과학원을 중심으로 한 연구시스템이 오랫동안 통합되지 못하고있다. 최근까지도 기업 부문에서는 강력한 연구 방향성의 부재로 국내 연구시스템을 통한 장기 개발 협력 대신 외국의 검증된 기술들을 추구해왔다.

‘국가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자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연구 기관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출판물 및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국제 공동체로 발전했지만, 국내 기업들과의 협력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부족한 상태다. 미중 간 기술 전쟁으로 보다 효과적인 ‘생산과 연구’ 관계와 1960대와 같이 기술 공동체와 국가전략 목표의 통합을 향한 최근 추세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셋째, 중국 정치 시스템의 특징들은 중국 과학기술의 본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 공산당은 국가-사회간 관계의 조건을 내세우고 국가 의제를 지지하기 위한 정책 선호의 사용을 오랫동안 촉구해왔다. 과학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전문 커뮤니티 활동이나 민간 경제의 성장을 지원하는 자주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Xi Jinping) 국가주석의 통치 아래 연구, 교육 및 산업조직에서 중국공산당의 역할 강화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대규모 자금 투입, 제도적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한 지속적 개혁 및 국제 동향에 대한 면밀한 분석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중국이 현재 육성하고자 하는 진정한 창조성에 반대되는 요소인 정치적 경직성도 더불어 보여주고 있다.

넷째, 중국은 세계 수준의 인재자원을 육성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고등 교육시스템의 개선으로 중국은 이공계 졸업생들을 대거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유망한 인재들은 해외 대학원에서 교육 받고, 그 후에 중국 밖에서 뛰어난 경력을 쌓는 경우가 많다. 이 인재들, 특히 국가 연구 정책에 중요한 분야를 전공하는 인력들을 중국으로 돌아오도록 유인하기 위해 중국은 현재 기술전쟁에서 미국의 표적이 된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상기 프로그램은 엇갈린 성공을 가져왔는데, 중국의 많은 주요 연구자들이 그들에게 남아있는 애국심과 세계주의적 욕구 사이의 균형을 이루면서 미국에서의 경력 기반을 유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책이 유능한 인재들을 중국으로 되돌려 보낼지 여부는 환태평양 지역의 광범위한 ‘인재 순환’의 미래에 대한 더욱 심화된 질문과 마찬가지로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중국의 정책결정은 이러한 국가 발전의 특징들로 인한 문제 및 과학기술에 대한 명성에 있어서 ‘후발주자’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중국은 산업 및 기술 분야에서 성공적인 ‘빠른 추종자’가 됐지만, 이후 정책적 목표의 전환을 통하여 중국이 주도적 지위를 점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의 기반이 되는 신기술에 대한 ‘뛰어넘기(leapfrogging)’ 전략이 제시 되어야 한다.

중국은 미국과 같은 국가에 의존하는 첨단기술 산업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연구 및 기술의 한계를 고부가가치 생산이 가능한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양자통신 및 인공지능과 같은 분야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국가 이익에 봉사하고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이러한 정책들은 연구 및 혁신이라는 ‘중국 모델’의 개발에 대한 추세를 통합할 것이다.

중국 모델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은 무역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대로 국제 시스템으로부터의 ‘분리(decoupling)’가 야기될 것인가의 문제까지 이어진다.

분리라는 충격을 통해 중국에서 현재 고심하고 있는 것처럼 오른쪽에서 운전하고 동시에 왼쪽에서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21세기에 과학이 행해지는 방식의 유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격리는 과학의 보편주의적 규범에 반하며, 과학 진실성 및 새로운 기술에 대한 윤리적 반응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격리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위에 예측한 시나리오를 벗어나 미래는 연구 및 혁신의 세계화가 관철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여전히 서구 기술 및 연구 환경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주도권의 분리가 이미 국제 협력의 신뢰할 수 있는 규범, 즉 재확립이 쉽지 않은 규범을 파괴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또는 왼쪽에서 운전하는 비유적 표현과 함께 발전하는 ‘중국 모델’의 현실은 창조적 역동성과 내부 모순을 공히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19.09.18 동아시아포럼에서 발췌함

 

Richard P Suttmeier (리차드 슈트마이어)

오리건대학교 명예교수

금, 2019/10/1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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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2-24 일간 이낙연 총리가 일왕 즉위식에 참여하는 방일기간에 한일무역 갈등을 봉합하는 대신 지소미아를 재개하자는 의견들이 일부에서 제시되고 있다. 결코 있어서는 아니 되는 일이다.

이는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고자 미일군사동맹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어 스스로 종속의 길로 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일이다.

일본 아베 정권이 촉발한 한일무역갈등, 구체적으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주요산업전략물품에 대한 한국수출을 통제하겠다는 결정의 배경은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왜 무역갈등이라는 통상적인 이슈와 지소미아라는 군사안보적인 주제가 함께 뒤섞이며 나타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 한다.

핵심적인 것은 1990 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대국굴기가 뚜렷해지면서, 미국은 대중국, 대러시아 봉쇄를 강화하기 위하여 기존의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1951년 9월에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내용을 강화하고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우리 귀에 익숙해진 아미티지라는 미해군 출신의 인물이다.

일본은 사사가와 재단을 중심축으로 매년 미국에 전방위적인 로비비용으로 1조원 가량을 쏟아 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을 중심으로 국무부, 연방의회뿐만 아니라 우익적인 여러 싱크탱크들과 대학 연구조직 그리고 미군부 내에 친일파 인사들을 사관학교 졸업초기부터 직간접적으로 후견하여 육성해 오고 있다. 현재의 주한 미국대사인 해리 해리스가 대표적인 인물인 셈이다.

아미티지 역시 일본이 키워온 대표적인 친일성향의 정치인으로 해군소령으로 예편 후 레이건 시절 국방차관보 지내고 아들 부시 정권에서는 국무부 부장관을 역임한다. 한편, 관직에서 물러나 있는 공백 기간에는 정치군사 컨설턴트를 운영하고 있고, 일본의 도움이 결정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90년대 후반부터 미행정부와 네오콘 집단은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용역을 그에게 맡기면서 십 수년간 소위 아미티지 보고서라는 것이 지속적인 수정을 걸쳐서 작성되었다. 일본과 공동으로 연구하여 작성된 보고서는 미일군사동맹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축으로 1) 동북아 미군의 재배치 2)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지원 3) 일본의 재무장과 보통국가화 지지 등을 담고 있다.

특히 한반도와 관련하여 미일 동맹과 한미상호군사조약에 더하여 한일간 군사협약을 추진하여 미일동맹에 한국을 여전히 하위 파트너로서 편입시켜 한미일 간의 군사삼각편대의 구성을 목표로 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4단계의 접근을 설정했다.

1) 한일간 역사적 갈등의 해소 2) 한일간 군사정보의 공유 3) 일본중심의 군수지원 체계확보 4) 한미일 군사연합작전실시 등 구상하면서, 첫 단계로 역사적 갈등의 핵심사안인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한일 양국에 강하게 압박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정신나간 무뇌아 정권인 박근혜시절 “확정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이름으로 고급빌라 한채 값에 지나지 않는 10억 엔의 지원금을 제공받아 재단을 설립하는 것으로 종결하고, 곧바로 한일간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한 합의 즉 지소미아를 체결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소미아는 단순히 한일간 군사정보교환을 넘어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되는 것으로 대상은 북한을 넘어, 미국의 적성국으로 분류된 중국과 러시아를 목표로 삼게 되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하수인으로 중국에 군사적으로 맞대응하게 되면, 이미 사드보복이라는 사태를 통해서 경험한 바 있듯이, 대중수출과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며, 이런 배경으로 약삭빠른 이명박 상인정권조차도 끝까지 위안부 합의와 지소미아 체결을 온갖 핑계로 미루고 지연시켜 왔던 것이다.

되풀이 하면 지소미아 협정은 북한 군사 동태에 대하여 단순히 한일간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수준을 넘어서, 한국이 대중국, 대러시아 봉쇄를 위한 MD 체제에 편입됨과 동시에 남북을 포함한 한반도 일대가 유사시 동아시아의 전장터가 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지난 십여 년간 수구우익의 일본 아베 정권은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미국을 향해 두 가지 큰 구상을 제안했다. 하나는 무역통상의 기구로 환태평양 파트너쉽 즉 TPP 조약체결이고, 다른 하나는 미일군사 동맹의 축을 확장하여 한국, 호주, 태국을 넘어서 인도를 끌어들이는 자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은 앞에서 소개한 아미티지 보고서와 맥을 같이하면서 내용을 확대하고 구체화 한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일본의 구상과 아미티지 보고서의 내용이 크게 흔들리고 위기를 맞이한다. TPP는 무력화되고 미일간 무역 갈등이 심화되는 반면에 인도를 포용하는 구상은 인도의 참여여부와 무관하게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현실화되었다.

한편 인도는 미일과 협력 관계를 지속하며 경제적 이익을 취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와도 정치외교적 관계를 강화하면서 상해협력기구에 가입하는 등 등거리 또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아베는 일종의 승부수를 두면서 속내를 감추고 역발상적으로 중국과 관계를 급속히 개선시키는 한편, 혐한의 민족 감정을 이용하여 보통국가(군사강국)로 가는 119조 개헌 가능한 의석을 확보하려 하였고, 미국에게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분명히 하도록 즉 기본동맹의 축을 미일로 하고 한국은 종속적 협력관계인 하수인 임을 재확인 하는 한편,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지속되었던 한국에 대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재차 확대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아베 정권의 의도는 미국의 유엔사의 재강화(다국적 지휘부)전략과 연계하여 한국을 미일동맹에 영원히 하수인으로 묶어두려는 꼼수인 것이다. 특히 ICT 분야 등 미래산업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하고 있는 한국을 압박하고자 무역분쟁을 야기하여 한국을 제압하고, 미국에게 군사동맹의 관점에 기반하여 일본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천우신조의 한일무역분쟁을 계기로 잘못 체결된 지소미아의 종결을 결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치이며, 이를 계기로 미일 동맹의 하위체계로 편입되는 군사적 관계를 탈피하여 군사외교 전략을 민족통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하며, 60년대 이후 산업기술적으로 종속되어온 일본과의 무역통상적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마땅하다.

도올 김용옥 선생과 어느 가톨릭 신부님이 “아베야, 고맙다”고 반어법적으로 표현할 만큼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을 고려하면, 일본의 우익정권이 안보와 통상을 핑계로 걸어온 싸움은 대한민국에게 미래에 닥칠 재난을 미리 대비하는 예방주사같은 조치로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일본이 한국에 가하는 좀스런 무역재제는 물론 한국산업과 경제계에 중단기적으로 어려움과 고통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지만, 이를 계기로 각고의 노력과 국민적 단합으로 내부적 취약점을 보완하고 산업적 협력기반을 일본과의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으로 확대하여 간다면 장기적으로 매우 긍정적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물론 일정 궤도에 오르기 까지는 산업활동과 생업현장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상당한 어려움과 고통이 뒤따를 것이지만, IMF의 위기도 세계인들이 놀랄만큼 훌륭하게 극복한 우리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난제는 결코 아니다.

정말로 큰 어려움은 일본과 무역갈등이 아니라 세계적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격변의 조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중심축을 형성하여온 팍스-아메리카나의 여러 기둥이 동시에 무너지면서 소위 합의에 기초하여 형성된 신뢰와 규칙에 의한 세계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상황에 접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경제의 미래적 과제는 단순히 양적 수치를 추구하는 성장노선이 아니라 위험요소를 완화하거나 분산시키고 지속가능하고 평형적 균형(resilient balance)을 유지하면서 질적인 전환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자연히 지정학적으로 다양한 국가들과 관계를 확장하고, 경제민주화를 통해 내수시장의 급속한 확대를 기하면서도, 개방적 민족주의라는 원칙하에 가능한 독자적 산업기술체제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복수적 협력체제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적으로 일본의 의존에서 탈피하여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를 관통하여 거대한 잠재력과 관계하는 것이 필수적 사항이며, 따라서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인 아미티지 구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독자적인 정치외교 역량을 키워가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 국가들간 균형을 이루며 민족사적 긍지를 지키는 지소미아의 종결이야말로 새로이 전개되는 역사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화, 2019/10/2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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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정국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둘로 갈라진 거대한 열광과 분노, 냉소와 조롱이 한국 사회를 뒤덮었다. 그 와중에 이낙연 국무총리의 안정감과 신뢰감이 조용히 주목받았다. 혼란 속에서도 이 총리는 ‘책임 총리’로서 돼지열병과 태풍 방재에 전념하는 등 안정적으로 내치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덧 이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총리는 오는 22일에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통’으로서 일본과 외교 분쟁을 해결할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주목받았던 터라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총리에게는 ‘할 일은 확실히 한다’는 이미지가 계속 쌓이고 있다. 과거 고건 총리나 황교안 총리처럼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2인자인 총리가 주목받는 일이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총리에게 주목할 만큼 떨어져 있진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고 말하기에는 이 총리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총리로 지명됐된 이낙연 총리는 지금까지 큰 과오 없이 직을 수행함으로서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자연스럽게 현재 정국에 대한 해결사 노릇도 이 총리에게 바라는 모습이 종종 관측된다. 최근에는 권노갑·정대철 전 의원 등 원로 정치인들이 이 총리를 만나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는 요란한 대응은 그간 이 총리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권에 대한 질문에도 “아무 계획이 없다”며 말을 아낀다.

 

품격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존재감

“MBC, KBS의 불공정 보도를 본 적 있느냐?”(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MBC, KBS를 잘 안 본다. 오래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이낙연 총리)

“수십 조 씩 퍼붓는 복지 예산을 늘릴 때인가?”(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복지 예산은 대부분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들이 공통으로 공약한 것이다.”(이낙연 총리)

이 총리는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품격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이 총리의 대정부질문 답변에 환호했고 그의 주요 발언 장면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이 총리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순간이다. 고 노회찬 의원은 이날 이 총리의 모습을 보고 “중학생을 대하는 자상한 대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자해공갈단 같은 거였는데, 자해만 하고 공갈은 못 하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오랜 언론인 생활과 다섯 번에 걸친 대변인 생활은 그에게 ‘말과 글’을 단련할 시간을 주었다. 명대변인으로 꼽혔던 그는 여러 차례 기억에 남을 말들을 남겼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 2002년 10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사퇴를 압박하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의원들의 공세가 최고조에 달하자 당시 선대위 대변인이었던 이낙연 총리가 남긴 논평이다. 이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사의 최종 정리를 맡았다. 노 대통령은 연설문을 극찬하며 토씨하나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대정부질문에서도 이 총리에게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다. 이 총리는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인사청문회 이후 조 장관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느냐”라는 질문에 이 총리는 “문 대통령께 (임명 전에) 저의 의견을 충분히 말씀드렸다”며 “저의 의견을 여기서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사실상 반대 의견을 표명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장관이 자택 압수수색 당시 담당 검사와 통화한 것에 대해서도 이 총리는 “적절하지 않다,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리는 검찰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인사청문회 당일 조 장관 부인을 검찰이 기소한 것에 대해서는 “검찰의 의도와 별개로 국회의 검증권한과 대통령의 인사권에 영향을 미쳤다”며 일침을 놓았다. 또한 “이미 알려져 있는 것 가운데는 사실도 있겠지만 추측에 불과한 것도 있고 거짓도 있다”며 “진실이 가려지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 요청에 대해서도 “훗날 저의 역할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은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21년 동안의 기자 생활 동안 네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첫째, 진실은 몹시 알기 어렵다. 둘째, 어느 경우에나 공정해야 한다. 셋째, 말과 글은 알기 쉬워야 하며 그러려면 평범하고 명료해야 한다. 넷째,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책을 읽으려 한다. 그 중에서도 진실에 신중하다는 것과 “공정을 내 브랜드로 삼고 싶다”는 말에 눈길이 간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에게 의사당에서 주먹질을 당했지만 세상에 알리지 않는 대신 동료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그 의원 기사는 자네가 써 주게. 나는 공정할 자신이 없네.” 지금의 이 총리의 모습에서 보이는 신중하면서도 강단 있는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꼼꼼한 일처리, 공백 없는 삶

이 총리는 늘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좌우명은 근청원견(近聽遠見)이다. 가까이 듣고 멀리 본다는 뜻이다. 전남 지사 시절에는 ‘이 주사’로 불리기도 했다. 실무를 맡는 6급 공무원 같다는 의미다. 보도자료 문구 하나하나도 직접 챙긴다고 한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의정활동 우수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전남 지사직 수행도 ‘100원 택시’ 정책 등 대체로 후한 평가를 받는다.

이 총리는 취임 이후 장관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소문도 났다. 보고를 제대로 못한다고 질책도 서슴지 않는다. 2017년 8월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국정현안점검조정 회의에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관련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자 “제대로 답변 못 할 거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 총리의 스타일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인자한 어머니(자모)’, 이낙연은 ‘엄격한 아버지(엄부)’라는 말이 돌 정도다. 어느 날 이 총리가 장관들의 술자리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총리님 질문 좀 하지 마세요”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마다 이 총리와 정례 오찬 회동을 진행한다. 2018년부터는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문 대통령이 아닌 이 총리가 주재하기도 했다. 역대 정부에서 매년 신년 부처 업무보고를 대부분 대통령이 주재한 것을 보면 이 총리에게 실리는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과거 신문사 논설위원 시절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마치 최근의 이 총리에 대한 경구인 것 같기도 하다. “정상외교는 단발적이지만 내정은 연속적이다. 정상외교는 효과가 금방 나타날 수 있으나 내정에 효과가 나려면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참기 싫어한다. 그래서 하나라도 확실히 매듭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전략이 필요해진다. 많은 것을 펼쳐놓고 별로 주워 담지 못한다면 펼치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소수정부가 가장 의지해야 할 것은 국민의 감동이다. 감동을 주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최근 일본과의 갈등 국면에서 이 총리는 특사로 파견될 것이란 기대도 받았다. 이 총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래 전에 장관을 하고 잠깐 쉬는 사이 한국에 들렀을 때 비 내리는 삼청각에서 소주를 마셨던 일화가 있다. 그 자리에서 이 총리는 일본이 한센병 피해자 보상에 조선인만 차등을 둔 것을 지적했고, 아베 총리는 “알아보고 시정하겠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는 1년 뒤 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결국 고쳤다.

이 총리는 일본에 가게 된다면 도쿄의 이자카야에 가서 ‘곤방와(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침 30년 전 이 총리는 도쿄 특파원 시절 아키히토 일왕 즉위 행사에 참석한 경험도 있다. 이번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해서도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어떻게 보면 이 총리는 정치인으로 한 번의 낙선도 없는 ‘꽃길’만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계에 입문했고 성공가도를 달렸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중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이 총리는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서울대 법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의 길을 걷지 않고 취업의 길을 택한 뒤 기자가 된 것도 어려운 집안 사정의 영향이 컸다. 한 인터뷰에서 이 총리는 “인생에서 무직 상태로 있었던 것은 기자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 50일이었다”며 “이력서에 공백이 있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공백이 있으면 굶어죽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남지사 후보 경선에 도전할 때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80%는 주승용 의원에게 진다고 했지만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경선 당시 돈이 없어서 광주시내 값싼 원룸에서 지냈는데 겨울에 곰팡이가 슨 바지를 입으면 피부에 달라붙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곰팡이 같은 내 인생’이라고 곱씹으며 막판에 극적인 승리를 일궜다.

 

장점이자 단점 ‘무난함’

취임 이후 이 총리는 무난한 내정 관리를 수행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8년 9월에는 3년 만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확진 환자가 나오자 이 총리는 신속하게 대처해 확산을 조기에 차단했다. 조류인플루엔자, 살충제 계란 대응도 무난했으며 돼지 열병에 대한 대응도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다.

몇 가지 논란도 있었다. 이 총리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김영란법의 선물비 상한액 5만원을 농축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농어민들을 배려한 조치였지만 결국 고무줄 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서도 “메달권에 있거나 그렇지는 않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 총리는 “가령 좋은 북한 선수 몇 사람을 추가해서라도 승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리 선수들 사이에서도 생기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해명했지만, 마치 어차피 메달권 밖이라 단일팀을 구성해도 괜찮다는 발언처럼 들려서 뭇매를 맞았다.

때로는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총리는 지난 7월 우정노조가 총파업 계획을 철회하자 “한 번도 파업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키셨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권리인 파업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원인이 있을 텐데도 이를 두고 ‘전통’이라 표현한 것은 노동자 파업에 대한 이 총리의 경박한 인식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 총리는 이후 해당 문구를 삭제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노조원들께 감사드린다”고 수정했다.

차기 대선주자로서 이 총리에게 관심이 쏠리고는 있지만 안정감과 신뢰감 외에 확실한 이미지를 굳히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아직까지 이 총리는 차기 대권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 언론의 집요한 질문에도 “지금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참 두려운 일” “아무런 계획도 없다” “총리가 계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총리를 그만둔 뒤에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두고 벌어진 여야 토론회에서 이 총리는 당시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 박 의원은 “링컨은 민심과 함께하면 실패할 것이 없고 민심과 함께 하지 않으면 성공 없다고 했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이 총리는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다. 민심에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할 것이고, 민심에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할 것이다.”라고 맞받았다.

앞으로 이 총리가 걸어야 할 길도 비슷할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민심은 더욱 집채만한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다. 때로는 성내고, 때로는 열정이 넘치고, 때로는 냉소하고 조롱하고 뒷짐지는 민심 사이에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진지하게 ‘민심’만을 내세우는 정치인치고 제대로 된 정치인은 없었다. 세네카의 말을 인용했던 이 총리라면, 그 길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유종민, <총리의 언어>(타래)

[신동아 2019. 7. 17]‘지일파 해결사’ 이낙연 국무총리

[노컷뉴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019. 1. 22][인터뷰] 이낙연 “여론조사 1등? 대권 생각 자체가 두렵다”

[한겨레 2019. 5. 13] 이낙연 총리 “민주주의 끊임없이 위협”…태극기부대·일부 야당 행태 비판

화, 2019/10/2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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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직후인 1945년 10월 24일 미국의 적극적인 제안과 후원으로 설립되었다. 유엔총회, 안전보장 이사회, 유엔사무국, 경제사회 이사회 등 4개의 공식기구와 국제 원자력 기구, 식량농업기구, 유네스코, 세계은행, 세계보건기구 등 산하의 여러 전문기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2019년 현재 193개 회원국과 37,000 여명의 직원을 두고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주요 공여국인 미국의 상습적인 분담금 납입지연과 불이행 등으로 2019년 현재 수억 불이상의 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의 글은 유엔에 가하는 미국의 횡포와 압력의 실상을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유엔은 자금조달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치 변덕스러운 회원들로 채워진 클럽처럼 유엔은 모든 회비가 제 때 들어올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일부 회원국들은 회비 지급을 미루고 있고 결제는 종종 실종된다. 미국의 경우, 현재 유엔 운영 예산의 약 22%를 담당하는데, 회계연도에 따라 10월 이후에야 회비지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더 큰 문제의 일면에 불과하다. 회비지급 보류는 유엔헌장 17조를 위반하는 사항으로 예산상 행위만큼이나 정치적이기도 하다. 이 조항의 중요성은 유엔의 운영비용을 “총회가 배정한대로 회원국이 부담한다”고 규정하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UN 외교정책과 조직의 개혁 문제는 부과된 회비를 줄이거나 보류하는 주요 사안들로 언급되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렇게 “부과된 회비”가 행정 비용, 평화유지 활동 및 다양한 프로그램에 쓰이는 비용을 부담하는 공식 정규 예산으로 편성되기 때문이다 .”

미국의 경우, 종전에는 기구 운영 비용의 약 40%를 부담해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따라서 UN 조직에 어떤 압력이 가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중반,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추방, 유보, 자격 부인 또는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권리를 침해” 당하는 경우 “미국이 연간 분담금의 지급을 유보하면서 매달 8.34%” 축소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었다.

재정 지원 문제는 돈주머니를 걱정하는 미 의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수년간 위원회의 붙박이 역할을 한 제시 헬름스(Jesse Helms)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미국이 유엔 회비를 전액 지불할지, 정시에 지불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불렸다. 그와 함께 조 바이든(Joe Biden) 상원의원은 UN에 전액을 지불 하기 위한 전제로 다양한 “기준들”을 준수하도록 압박하는 협상을 1997년 타결했다. 여기에는 불가피한 UN 직원의 감축, 감찰관과 사무총장 간의 적절한 보고 절차, 타 기관에 대한 자금지원 금지 항목이 포함됐다. 2000년 1월, 헬름스 의원은 수 십 년간 의심해왔던 조직인 이른바 그림자 정부에 대해 충고하고, 참견하며, 잘난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UN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연설에서 독특한 인상을 준 한 미국 의원을 경험하는데, 그는 당시 UN 주재 미국대사였던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이었다. 유엔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내비치면서, 그의 목적은 이 기구에 대한 미국의 기여를 “빚쟁이”가 한 것으로 간주하는 비평가들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엔의 최대 공여자인 미국 국민의 대표로서, 우리는 투자에 대한 대가로 구체적 개혁을 요구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라고 공언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의 자금과 유엔 운영비 사이의 훈훈한 협상의 새 장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8년 9월,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미국의 인도주의적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회복지 사업, 의료 및 교육 부문을 위태롭게 하는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는 이 조치의 타당성을 확신했다.

“이 기구는 부패했고 비효율적이며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8년 예산안에는 유엔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미국 자금의 절반을 삭감하는 조치도 포함됐는데, 이는 특히 기후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 연방의회는 유엔평화유지활동 기부금 상한제 시행 안건에 동의했다.) 이와 같이 자금지원을 중단하여 유엔 기관들을 위협하고 압박을 가하는 사례는 여전히 미국의 관행으로 남아있다.

현재 회원국들이 유엔에 지불해야 하는 13억 달러 상당 중 미국이 체납한 금액은 10억 달러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불량한 수치의 누적은 미국이 다른 회원국들에 불만을 토로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까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회원국들이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6월, 안토니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사무총장은 5차 위원회의 예산 감독관들에게 급여와 물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명성과 운영 능력에 있어서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모든 회원국들이 분담비를 모두 제 때 지급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금을 적소에 사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유엔은 5월 말까지 4억9200만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이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파국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한계점에 다다랐으며, 우리가 이제 어떻게 하느냐가 앞으로 수 년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상황은 예상대로 악화됐다. 지난 10월 첫 주 월요일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10월말 현금 보유고가 고갈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유엔 사무국 소속 37,000명의 직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회원국들이 2019년 유엔 정기 예산 운영에 필요한 금액의 70%만 지불했다. 이는 9월말 2억3000만 달러의 현금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달 말까지 예비 유동자산 보유고가 고갈될 위험에 처했다.”

재정긴축 조치가 내려졌다. 컨퍼런스와 회의가 연기되고 있으며, 필수적이지 않다고 판단된 출장도 취소됐다. 유엔 대변인 스테판 두자릭(Stéphane Dujarric)은 회원국들에 압력을 가하며, 193개국 중 129개 회원국만이 “전 세계적으로 운영 중단을 초래할 수 있는 채무 불이행을 방지하기 위해 연간 분담금을 전액 지불했다”고 밝혔다. 유엔의 의미와 영향은 회원국들에 달려있으므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면 세계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확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리서치, 2019.10.11.

비노이 캄프마크(Binoy Kampmark)

케임브리지 셀윈 대학의 영연방 학자. 현재 멜버른 RMIT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글로벌리서치 및 아시아-태평양 리서치의 기고자로 활동 중이다.

 

More info.

추가 정보

심 심 위스곳(Sim Sim Wissgott), UN 분석가.

안토니오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10월 중 유엔의 재정이 고갈되고 있으며, 11월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하려면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고 개발을 돕기 위해 설립된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가 어떻게 현금 부족에 시달리게 된 것일까? 유엔의 재정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그리고 왜 허리끈을 조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누가 유엔에 돈을 지불하는가? 193개 회원국은 모두 각 국가의 규모와 경제력에 따라 산출된 유엔의 전반적인 운용을 위한 연간 분담금을 지급하기로 되어 있다. 2019년 총 분담금은 28억5000만 달러로, 미국의 분담금(약 6억7420만 달러)이 가장 많이 책정됐으며 바누아투, 미크로네시아, 소말리아, 벨리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과 같이 국가의 규모가 작거나 빈곤한 경우 각각 최소 2만7883달러 만을 부담했다.

유엔의 재정 규칙 및 규정에 따르면, 이 자금은 해당 국가들이 그 해의 분담금을 통보 받은 후 “30일 이내 전액 지불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매해 지급 기한은 1월 31일이었다. 하지만 기한을 준수하는 회원국은 단 몇 십 개 국가들뿐이다. 2019년 10월 8일 현재, 유엔은 여전히 분담금의 약 30%에 해당하는 63개국의 기금 지급을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의 전년도 미지급 연회비마저도 연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이번 주,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급여를 충당할 현금이 부족한 채로 11월을 맞이할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하며 국가들에 회비 지급을 촉구했다. 유엔이 10년 만에 가장 큰 적자를 기록하며 “우리의 업무와 개혁이 위기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그 돈은 어디에 쓰이는가?

유엔의 정기 예산은 뉴욕의 유엔 본부뿐만 아니라 비엔나, 나이로비, 스위스 제네바 등지에서 통신과 정치, 인도주의 및 경제 업무 등을 운용하는 데 쓰인다. 르완다, 구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평화유지 활동 및 국제 재판소는 별도의 예산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현재의 적자 상황을 “유엔이 직면한 최악의 재정 위기”로 표현했으며, 이는 공석을 채우지 않고, 필수적인 출장인 경우만 허용하고, 회의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유지 활동을 위해 따로 떼어 놓은 돈에서 자금을 빌려야 할 수도 있다. 유엔은 전 세계 4개 주요 센터와 아프가니스탄, 말리, 아이티의 현장 사무소에 3만7500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 유니세프, 유엔난민고등판무관과 같은 유엔 기관들은 자체 예산을 가지고 있다.

스테판 두자릭(Stephane Dujarric) 대변인에 따르면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올해 초 이미 상당한 수준의 비용절감 조치를 시작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유엔은 현재 약 6억 달러의 적자로 인해 전 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주요 연례 행사인 지난 달 총회를 개최할 수 없었을 것이다. 9월 말, 유엔의 적자는 2억3000만 달러였다.

브라질, 한국,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들은 분담 지급을 미루고 있다. 특히 유엔 총 예산의 3분의 1을 지급하는 상위 6개 회원국 중에는 미국만이 2019년 분담금을 전액 지불하지 않았다. .

뿐만 아니라 각종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금년 분 4억 달러에 육박하는 체납금을 포함하여 지급해야 할 총 납입액은 1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유엔에 상당한 자금 지원을 해온 것에 오랫동안 불평해왔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자 하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지난 해 유엔총회에서 “세계주의의 이념을 거부하고 애국주의 원칙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지난 달 그는 세계 정상들에 “모든 파트너들이 공정한 몫의 방위비 및 기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유네스코(UNESCO)의 반 이스라엘 성향 및 근본적 개혁의 필요성과 함께 “증가하는 체납금”을 언급하며, 유엔 산하 교육문화기구인 유네스코를 탈퇴했다.

미국은 자신들이 지원해야 했던 “과도한 분담”에 대해 불평하며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유엔 프로그램인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와 낙태 관련 유엔인구기금(UNFPA)에 대한 지원을 삭감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첫 주 수요일 트위터에 “그러니까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회원국들이 지불하도록 하라!”는 글을 올렸다.

수, 2019/10/2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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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오는 10월 26일 뉴욕 소재 월드처지 센터(World Church Center)에서 열리는 한국평화를 위한 국제회의에는 뉴욕에 거주하는 남북한 인사들과 교민들 그리고 미국의 반전 평화단체들과 한반도 관련 싱크탱크 연구원 등 광범한 인사들이 참여한다. 마침 세계적인 반전평화단체인 ‘전쟁없는 세상(WBW: WorldBeyondWar)’의 설립자이자 대표를 맡고 있고 2015년 이래 5년간 연속 미국시민단체가 추천한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이며, 2018년 미국평화재단이 명예의 전당에 올리는 평화시민상을 수상한 데이빗 스완손이 당일 특별찬조연설을 예정하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스완손의 연설내용을 한국 내의 반전평화운동을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사전에 번역한 내용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 사회나 정부를 들어본 적도, 그런 사회나 정부를 꿈꾸는 이들을 본적도 없다.

북한도 남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아닌 미국인 듯하다. 미국의 정부와 여론 매체, 거대 부자들, 보수적 지식인층, 심지어 사실상 미국의 들러리 격인 유엔(안보리)까지도 한반도 평화의 장애가 되고 있다.

미국의 시민들은 행정부에 대해 매우 약한 견제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선택이었다. 거대 매스컴들은 시민들을 쉽게 조종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론은 중요한 문제다. 미국 내에서는 마치 신화(거짓말)처럼 과거의 전쟁들이 위대한 과업이었던 것으로 둔갑되어,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말하자면, 미국의 독립전쟁은 위대하다는 것이다. 모두 느끼겠지만 캐나다와 인도를 비롯한 대영제국의 나머지 영토가 여전히 영국 군주의 노예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예제에 맞서 싸운 미국의 남북전쟁 역시 위대하다고? 전쟁이라는 살육과정 없이 노예제와 농노제를 끝낸 나라들이 대부분이지만, 예외적인 경우였을 뿐인 미국의 역사에서 딱히 배울 교훈은 없다.

무엇보다도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위대했다고 외쳐대지만, 이는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실제의 목표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는 점을 숨기고 있다. 이 전쟁에는 오늘날 미군이라면 과거의 전설로만 알고 있는 것 외에 다른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전쟁에는 패배한 적군의 항복이 수반된다. 나치의 항복은 미국보다는 프랑스군을 향한 것이었을 수도, 때로는 러시아군을 향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적군은 항복했고 이를 마치 ‘선에 무릎을 꿇은 악’으로 포장하기란 어렵지 않다.  사실상 이런 류의 해석을 희석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이단으로 몰리기 쉽다.

그런데 누구도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위대한 승리로 일컫는 ‘한국전쟁’을 효과적으로 납득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도 시도는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별로 듣는 바가 없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사건이 그런 것처럼 단순히 “세계2차 대전이후”의 해프닝으로 묘사될 뿐이다. 예를 들면 평화를 기념하는 (1차대전) 휴전일이 전쟁을 기념하는 재향군인의 날로 바뀐 것, 또는 거대한  군산복합체의 탄생, 영구적인 전쟁의 등장, 아무런 제약이 없는CIA전쟁, 핵위협, 극단적인 제재 등에 무감한 것처럼 말이다. 한국전쟁 기간에 미국은 스스로를 위해 놀랍고 지속적인 행적들을 이루었지만, 누구도 그 시대 자체를 합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당시에 성취한 일들이 없었다면 미국은 오늘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 수도, 러시아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한번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흔히 한국전쟁은 신성한 군대가 명령에 따라서 충성한 사례 정도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섬긴 명령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훌륭한 군인이 되어야 하며, 훌륭한 군인은 결코 명령에 질문하지 않는다. 또는 한국전쟁은 자유를 수호한 방어전으로 묘사된다. 확신컨대 미국에는 한국이 지도상 어디 있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지 여부를 아는 사람보다 한국전쟁은 북한이 먼저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는 다음의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반도를 절반으로 나눈 것은 미국정부였다. 미국정부는 미국 유학파였던 한국의 독재자(이승만)와 함께 한반도 남쪽에 악랄한 독재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 독재자는 미국과 공모하여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다. 북한과의 전쟁을 원한 것도, 한국전쟁이 공식 발발하기 전 남과 북의 국경에서 군사공격을 자행한 것도 그였다. 미군은 북한에 3만 톤에 달하는 폭발물을 투하했는데, 명령받은 조종사들이 더 이상 북한에 남아있는 “전략적 목표물이 없다”고 불평한 이후에 지속된 공격이었다. 게다가 미국은 한반도에 3만2천 톤의 네이팜(napalm)탄을 투하했다.  주로 민간인 주거지역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유행병을 퍼뜨릴 요량으로 흑사병(bubonic plague)과 여러 질병균을 함유한 곤충과 조류들을 퍼트렸다. 그러한 작전의 결과로 라임(Lyme)병이 한국에 퍼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라임병은 뉴욕 롱아일랜드의 끄트머리에 있는 플럼 아일랜드(Plum Island)에서 시작된 질병이다.

미국이 북한을 타도하기 위해 주도한 이 전쟁으로 남한인구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인구의 약20~30 퍼센트가 희생되었다. 북한에서는 죽거나, 다치거나, 주거지를 잃은 친척이 없는 가족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미국의 정치인들은150년 전에 일어난 남북전쟁의 의미를 확대하기 바쁘지만, 그들 대다수는 오늘날 북한의 미국에 대한 적대심이 고작 70년도 되지 않은 한국전쟁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미국은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결과 남북한의 재결합을 막아왔다. 대신에 북한주민에게 극단적인 제재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나, 수십 년째 미국이 명시하고 있는 목표의 달성(정권의 붕괴)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 동안 미국은 북한을 위협하는 한편, 전시작전권을 손에 쥐고 한국을 무장시켜 왔다. 북한은1990년대에 미국과 군축협약을 논의했고, 실제 협의된 대부분의 내용을 준수하였지만,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을 ‘악의축’ 중 하나로 지목하면서, ‘악의축’으로 지목된 다른 두 국가(리비아, 이라크)를 파괴했고, 이후로는 줄곧 마지막 ‘악의축’(이란)을 파괴하겠다며 위협해 왔다. 그 후에도 북한은 재협상의지를 밝혔으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무기를 만들게 되었다. 이제라도 북한은 미국이 다시는 공격하지 않겠다고 확언하고, 한국에 미사일 배치를 중단하고, 북한 영공근처에서 핵무기 연습훈련을 멈추면, 재협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보았고, 이는 눈부신 성과이다. 특히 남북한의 비폭력 운동가들의 공이 크다. 이들에게 크고 작은 손길을 보탠 전세계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성공은 세계에 오랜 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보여줄 뿐 아니라, 하나의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에티오피아의 총리가 그러한 위업을 통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한반도의 성공은 거기서 한발 나아가, 미국정부가 결코 끝내고 싶지 않은 ‘오랜전쟁’을 끝내는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다. 이제는 전세계 모두가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의 당사자이다.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이기 때문이고, 핵으로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무지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세계는 자칭 세계경찰이라고 나선 미국의 뜻에 맞서 평화를 지키는 본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하기 때문에 북한은 그저 악랄하고 비이성적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 북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고 자유를 앗아갈 것이라는 말을 사실로 생각한다. 십여 건의 미국전쟁은 적국에 폭탄을 투하해 해당국 시민들에게 인권을 찾아준 전쟁으로 홍보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북한의 인민들이 인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말을 신뢰하는 것이다.  오직 두 개의 거대정당만이 미국인들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북한과의 평화를 이야기할 때 미국인들은 이에 격노하게 된다. 미국인들은 유엔헌장은 물론 인간의 품격을 무시하는 핵전쟁카드를 쓸 때보다도 북한과의 평화에 대해 훨씬 더 분노한다.

실상은 미국이 자신이 독재국가라고 부르는 국가들 중 73%에 무기를 판매하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에는 무기사용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독재자와 미국특유의 적대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독재자와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은 것은 확실하다.

누군가 트럼프를(헤어스타일이든 뭐든) 칭찬하면, 트럼프는 파멸을 경고하다가 돌연 평화를 약속한다. 이럴 때 적절한 대응은 당파적인 분노도, 주한미군은 한국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는 선언도 아닌, 안도와 격려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이 한반도에 평화를 불러온다고 믿는다면, 나는 그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과거에도 노벨평화상은 그럴만한 업적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에게 수여된 적이 있다.  .

그러나 그 외에도 평화를 독려하기 위해 강구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쟁은 응원하면서 평화회담은 규탄하는 미국언론을 수치로 여겨야 하고, 이들을 개혁하고 인수하여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의 거대전쟁 예고와 함께 무기업체의 주가가 솟구칠 때는 돈을 벌고, 평화가 등장할 때는 돈을 잃는 월스트리트 자본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미국 내의 여러 정부부처와 대학, 투자펀드가 더 이상 대량살상무기에 우리의 돈을 투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계는 유엔 및 여러 기구들을 통해 한국과 주변에서 영구적이고 완전하게 전쟁예행연습을 끝낼 것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의회는 이란핵합의를 조약으로 만들어 복원하고, 중거리핵전략조약(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s Treaty)을 수호하며, 핵확산방지조약을 준수함으로써 북한이 미국정부가 하는 말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유엔은 미국의 전쟁에 구실을 제공하는 역할을 멈춰야 한다. 유엔은 지난1975년 미국에게 한국 내 소위 유엔사령부를 해산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위에 유엔의 이름을 붙이지 말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미국은 해당결의안을 위반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다루는 수준을 훨씬 넘어 핵무기를 개발하고, 실험하고, 실제 사용할 것처럼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엔(안보리)은 북한을 제재해야 할 국가로, 미국은 제재가 필요하지 않은 국가로 보고 있다.

세계는 이미 오래 전에 미국도 다른 모든 국가와 동등하게 법치주의를 따르도록 했어야 한다. 동시에 모든 핵무기의 금지를 완수했어야 한다. 미국에는 핵무기에 반대하다가25년의 징역을 살 위험에 처한7인의 킹스베이 플로우쉐어즈 (Kings Bay Ploughshares 7)가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미국무기의 한국배치를 반대하며 자신에 몸에 불을 붙여 자살한 남성(고 조영삼)이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용감한 행동을 보였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하원은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 아직 상원의 합의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이 법안은1) 한국전쟁의 종전지지와 함께, 2)국방부(Pentagon)에 전세계 미군기지가 미국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근거의 제시를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두 단계의 요구로 한반도의 평화협정이 가능하게 될 것이고, 완전히 준수된다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미국의 미니요새, 즉 미군기지 내의 골프코스와 레스토랑 체인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이들 기지는 들은 미국의 안전을 도모하기 보다는, 많은 경우 적대행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조치들을 이른바 국방수권법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에 담아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미국정부가 한반도에서 손을 뗄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도록 강제할 전세계시민과 미국 내 시민사회, 국제기구의 압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통일된 또는 통일을 향해가는 한국과 더욱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미군이) 자신의 집을 무력으로 점거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우정을 맺을 수 있다.  국가라는 관점에서는 그러한 우정은 흔치 않고 반역적으로 들릴 수도 있으며, 고립주의적인 것으로 들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반도는 전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세계 모든 곳에서 전쟁과 전쟁준비를 끝내기 위해 절박함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끄는 글로벌 단체인WBW(WorldBeyondWar)의 목적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worldbeyondwar.org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175개국에서 서명작업이 진행되는 평화선언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한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으면 전쟁과 전쟁위협을 과거의 기록으로 돌릴 수 있다.

 

데이빗  스완손(David Swanson)

전쟁없는세상(WorldBeyondWar) 설립자 겸 대표

금, 2019/10/2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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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IMF 신임총재는 취임하면서 첫번 째 내린 지시가 초저금리 또는 역부하 금리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조사일 만큼, 선진경제권의 저금리 현상이 심상치 않다. 장기채권의 금리가 단기채권금리보다 낮아지고, 유럽권에서는 은행간 금리가 공식적으로 마이너스로 내려앉으며, 시중금리 역시 인플레를 감안하면 제로에 가깝다. 이에 대한 많은 이론과 찬반 논쟁이 전개되는 가운데 미국경제를 다룬 아래의 칼럼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10년 만기 중기국채 실질 수익률(인플레이션 조정)은 현재 제로(0)이며, 지난 8년간 역시 매우 낮은 수익률을 보여왔다.

미국 외 국가에서는 투자 등급 채권의 40%의 명목금리가 마이너스로 내려앉은 실정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경제 부양책의 일환으로 은행간 예금금리를 -0.5%로 추가 인하했다.

지금껏 저금리는 경제성장을 촉발하는 긍정적 지표로 여겨졌지만, 그러나 최근 연구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금리를 극도로 낮추면 시장독점도의 증가로 인해 성장이 더뎌질 수 있다. 이 주장이 맞다면 금리를 더욱 인하하더라도 세계경제가 침체위기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전통적 견해는 장기금리 하락 시 미래 현금흐름의 순 현재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기업측에서 생산성 향상 기술에 투자하는 것을 더 매력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저금리는 생산성 증가를 통한 경제 확장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금리가 반대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 기업이 생산성 향상에 투자할 동기가 줄어들게 된다. 장기 실질 금리가 제로(0)에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전략적 긴축의 모순 효과가 우세해 진다.

오늘날의 저금리 환경에서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는 경우, 생산성 하락으- 로 인해 경제 성장이 더뎌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전략적 모순 효과는 산업 경쟁을 통해 작동한다.

저금리 정책은 특정 분야의 모든 기업들이 더 많은 투자를 하도록 장려하겠지만, 그에 대한 동기는 시장 후발기업보다는 기존의 선점기업들에 더 크게 작용한다. 그 결과 장기금리가 하락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업계는 점차 독점구조로 변화한다.

우리들의 연구에 따르면, 선점기업 및 후발기업은 결정을 내릴 때 각자 상대방의 투자정책을 신중히 고려한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업계의 선발 독점 그룹이 금리 인하에 더 강하게 반응하므로, 후발 추종 그룹은 선발 그룹이 너무 앞서가는 데에 낙담하고 투자를 중단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심각한 경쟁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므로 그들 역시 결국엔 투자를 중단하고 “게으른 강자(lazy monopolist)”가 되는 것이다.

두 명의 주자가 끊임없이 트랙 주위를 도는 경주를 벌이는 상황이 가장 좋은 비유가 될 것이다. 각 바퀴를 먼저 완주한 주자가 상금을 받게 된다고 할 때, 잠재적 기대 상금의 현재 할인가치가 주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키도록 고무하는 동력이 된다. 이제 경주 중에 때때로 미래의 상금을 할인하는데 사용되는 금리가 떨어진다고 가정해보자.

두 주자는 미래의 상금이 오늘보다 더 가치 있기 때문에 더 빨리 달리고자 할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 경제 효과다. 그러나 앞서 달리는 주자가 상금에 더욱 빨리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동기가 더 크고, 따라서 상금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 선두 주자는 페이스를 높이고 경쟁자와의 거리를 더 넓히게 되는데, 경쟁자는 이제 따라잡을 가능성이 적어지므로 낙담하게 된다.

낙담 효과가 어느 정도 커지면, 추종자는 그냥 포기하고 만다. 일단 그렇게 되면 경쟁 위협이 사라지므로 선두 역시 속력을 늦추게 된다. 우리 연구는 금리가 제로(0)에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전략적 낙담 효과가 우세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실물경제에서는 업계 선도기업과 후발기업들에게 실제로 같은 금리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전략적 효과는 더욱 강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후발그룹은 시장 선도그룹이 지불하는 금리에 대한 가산금리(spread)를 지불하며, 이 가산금리는 금리 인하와 함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업계 선도자들에게 이 같은 자금조달비용의 이점은 저금리의 전략적 모순효과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긴축의 모순효과는 많은 중요한 세계 경제 패턴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째로, 1980년대 초에 시작된 금리하락은 시장집중 심화, 기업이익 증가, 비즈니스 역동성 약화 및 생산성 감소와 관련되어 있다.

모든 사례가 우리 모델과 일치한다. 또한 집계추세 시기 역시 이 모델과 일치한다. 데이터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시장 집중 및 수익성 증가가 있었으며, 2005년부터 생산성 향상이 둔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이 모델을 통해 우리가 데이터를 테스트하는 몇 가지 독특한 실증적 예측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선도자들에게는 많고 후발 추종자들에게는 부족한 주식 포트폴리오는 금리가 하락할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효과는 금리가 처음부터 낮을 때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 역시 모델이 예측한 바와 일치한다.

초저금리의 긴축이 가져오는 모순효과는 세계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미 금리가 현저히 낮은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하는 시장 집중 및 생산성 증가세의 감소를 가져오고 결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저금리 정책은 세계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더 큰 고통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어니스트 리우(Ernest Liu), 아티프 미안(Atif Mian), 아미르 수피(Amir Sufi)

어니스트 리우는 프린스턴 대학의 밴드하임 금융센터(Bendheim Center for Finance) 교수

아티프 미안은 프린스턴 대학 교수로, 우드로 윌슨스쿨의 줄리스 라비노비츠 공공정책금융센터 소장을 역임

아미르 수피는 시카고 부스 경영대학원의 경제 및 공공정책 교수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월, 2019/10/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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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리가르드 전임 IMF 총재가 ECB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신임 IMF 총재로 의외인 불가리아 출신의 여성인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가 지난 10월 1일부로 취임하였다. 미국의 대리인으로 불리는 국제통화기금에서 트럼프의 자국 중심 통상정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그녀가 얼마나 독자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자못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녀는 취임 후 첫 지시로 마이너스 금리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를 언급하였으며, 동시에 OECD 국가들에게 현명하고 능동적인 재정정책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IMF 직원들에게 세계 경제의 마이너스 금리의 리스크에 대해 좀 더 면밀히 검토해 줄 것을 직원들에 요청했으며, 각국들에 세계 경제성장의 “동반 둔화” 상황에서 통화 정책을 “현명히” 사용할 것을 촉구했다. 10월 1일 IMF 총재가 된 66세 불가리아 경제학자 게오르기에바는 파이낸셜 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IMF가 그녀의 취임 이후 첫 단계 중 하나로 마이너스 금리의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작업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장기간에 걸쳐 저금리에서 마이너스 금리까지 진행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결과뿐만 아니라 출구 전략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 같은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FT 인터뷰 발언은 지난 10월 초순 워싱턴에서 정치적 위험과 무역긴장 고조로 위축된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비관적으로 평가한 연설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IMF는 지난 7월에 세계 경제성장률이 2020년 3.5%로 반등하기 전 올해는 3.2%로 둔화될 것이라 예측했지만,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10월 중 새로운 예측 발표 시 두 해의 수치가 모두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그녀의 연설에서 “2019년 우리는 전 세계의 90%에 달하는 국가에서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는 지금 동반 둔화 현상를 겪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이후 고조된 무역 긴장이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또한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2020년까지 관세 문제가 야기한 신뢰도의 2차 영향을 포함한 무역 불확실성으로 인한 손실은 스위스의 경제규모에 해당하는 7000억 달러에 이를 것임을 지적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무역 분쟁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됐다”고 언급하며 국제무역의 침체뿐 아니라 주요 경제국들 간의 격리가 점점 큰 우려를 낳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현재의 균열은 공급망 붕괴, 무역부문의 단절, 각국이 기술 시스템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디지털 베를린 장벽’ 등을 특징으로 한 한 세대에 걸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무역 분쟁에서의 “승자는 없다”는 말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잃는다”고 말했다. IMF는 경기둔화에 대한 대응으로 부양책이 필요한 경우 느슨하거나 협조적인 통화 정책을 추구할 것을 중앙 은행들에 요구했지만,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그들이 “어려운 상황” 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들은 계획을 분명히 전달하고 데이터 분석에 의존하여 적절히 낮은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많은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이 억제되고, 전반적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연설에서 밝혔다. 그러나 그녀의 연설과 FT 인터뷰 발언에서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중앙 은행들이 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더 깊이 밀어내면 의도치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성 발언도 언급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IMF가 저금리와 마이너스 금리의 분배 효과 외에도 자금과 기업들을 더 위험한 투자로 이끄는 “수익률 조사”를 분석할 것임을 시사했다. 마이너스 금리는 중앙은행들이 부진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으로 유로존을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로 확산됐다. 지난 달,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금리를 “제로(0)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했지만 제이 파월(Jay Powell) 의장은 연준이 그러한 움직임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신임 IMF 총재는 통화 정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경기 둔화가 뚜렷해 진다면, 각국이 이에 대한 적극적이며 공조적 재정 정책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분명히 해 두겠다. 우리는 아직 그런 상황에 놓여 있지는 않다. 그러나 공조적 대응이 필요하게 될 경우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충고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시간 먼저 행하는 것이 일분 늦게 시작하는 것보다 낫다(Better three hours too soon, than a minute too late).’”

 

James Politi

Financial Times

금, 2019/11/0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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