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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미래는 Fossil-fuel Free 커뮤니티 (화석연료업는 공동체)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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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미래는 Fossil-fuel Free 커뮤니티 (화석연료업는 공동체) 설립

admin | 화, 2020/03/17- 23:00

계속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과 소비 경제모델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증가에 대한 반응은 미디어의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보도 차단과 교육과 정책토론에서의 심각성 경시풍조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사회는 물론 경제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헌신적인 기후 운동가들, 심지어 구속되거나 신체 부상을 입을 각오가 되어 있는 기후환경운동가들조차도 여전히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가열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디젤 동력 화물선과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트럭으로 배달되어 석유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야채를 먹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사용되는 컴퓨터와 전화기같은 부품들도 석탄 및 다른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인도, 중국, 태국의 공장에서 제작됩니다. 함께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을 작동시키는 전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퇴직기금은 화석연료 수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의 주식에 묶여 있습니다. (관련성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음)

화석연료산업을 비난하는 시위표지를 작성하기 위해 석탄으로 가동되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펜 부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트럭과 비행기로 운송된 일회용 펠트펜을 사용한다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환경시위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주목하지만 행진이 끝나면 우리는 화석연료를 피할 수 없는 악몽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육식을 선택 또는 거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와 성장의 파산 개념과 일치하는 산업경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화석연료의 사용을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이 주어진다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시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화석연료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또는 관련한 산업으로 발생한 돈과 관련 없는 경제 체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것부터 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것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도덕적 시민들의 시위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추출적이고 약탈적인 경제 질서의 중간에 있는 약간의 환경보호적 활동이 아닌 새로운 대안 경제의 문을 열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시위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세계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화석연료를 100% 사용하지 않는(FFF) 지역사회 형성이어야만 합니다. 초기단계에서 100명 또는 500명만 지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경제, 사회 및 정치 구성단위를 만든다면 대중에게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는 화석연료 사용금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언행을 일치 시킬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단지 슈퍼마켓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닌 플라스틱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써 말입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첫 단계는 즉시 실행 가능합니다. 냉소적인 정치가들이 20년 30년 걸려 실행할 탄소중립 경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FFF 커뮤니티 창조

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초반에 상당한 용기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며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임계질량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FFF 커뮤니티가 음식, 에너지, 협동조합의 재정, 또는 화석연료와 연관된 은행들에 대해 100% 독립적일수는 없기에, FFF 커뮤니티는 오늘날의 단체들이 할 수 없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껏내며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은 설립 초기 단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사회에 모델이 될 것이며, 화석연료와 관련된 자금 의존으로 인하여 실행단계에 옮길 수 없었던 저널리즘과 교육시스템을 생산할 것입니다.

소규모 FFF 커뮤니티가 다국적 투자은행 및 석유회사를 인수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 및 정치 플레이어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수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화석연료 문제에 맞서는 데 있어 모호하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대안이 아닌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화석연료 사용 종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의 보고서에 제시된 2050년 탄소 중립 경제 창출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기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홍수와 폭풍, 해수면 상승, 사막 확산, 기아, 견딜 수 없는 폭염, 지구에 남아있는 부족한 자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인해 수십억의 인간(및 다른 종)이 죽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몇 년 또는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주류 미디어는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시위와 정부의 선언문을 다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지붕 위에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모든 식품을 현지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태양열 및 풍력을 이용하여 모든 건물을 완벽하게 단열시키며, 100 %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중교통의 동력을 공급하게 하는 법률은 (시행은 고사하고)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서로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사회에서 생산되는 FFF 제품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약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100% FFF 수송체계가 설립될 때까지). 만약 체포될 위험까지 감수하는 열렬한 환경운동가들이 있다면, 그 중 FFF 공동체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와 공동체간의 협약은 진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들과 커뮤니티 간에는 반드시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FFF 공동체는 애초에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 피상적인 소비문화, 분열, 단편적 사고와 같은 문화에 일치하여 운영될 수 없습니다.

신규회원은 평생동안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FFF 커뮤니티에 자산을 위탁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형태의 깊은 사회적, 윤리적 약속 또한 가능합니다.

 

자본주의와 글로벌 농업: 포드(Ford)부터 몬산토(Monsanto)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화석연료해방 공동체(FFF)는 초반에는 작은 범위로 시작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채택했을때 어떠한 사회가 될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당 모델이 거의 없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FFF 커뮤니티 경제의 핵심은 100% 유기농 식품을 생산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송하는 유기농 농장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의 식생활에 대한 다양성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진정한 화석연료 자유경제의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음식들은 집, 옥상, 인근 빈 공간에서 재배되거나 지역 농장에서 들여올 것입니다.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에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행위가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권력가나 재력가들을 로비하거나 환경 NGO 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플라스틱,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제품,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운송 된 제품이 없는 상태)은 FFF관련자들에게 결정적인 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가 아닌) 농부와 시민 간의 협력을 장려하는 공동 시장에서 식품을 판매(또는 물물 교환을 통해 교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장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교환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기 농업 공동체는 전혀 급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기후를 파괴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계나 인공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그들을 제외한 미국의 지역들이 세계무역과 연관된 산업화된 비정상적인 농업 생산 시스템을 수용하는동안 이 공동체들은 지속적인 경제를 추구해오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유기농업 방식은 농업과 유통에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일자리를 제공 할 것입니다. 지구의 파괴에 기여 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그 노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도덕적 행동입니다.

공동체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음식 및 기타 물품에 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FFF) 운송수단의 창출입니다. 초기에 제공된 FFF 운송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이 심하게 제한적이더라도 시민들은 그것을 불쾌한 불편으로 간주하지 않고 도덕적인 용기의 서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치인들은 천연가스, 전기 및 심지어 원자력이 당연히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FFF커뮤니티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제조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제조업에 관하여 완전히 다시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및 사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어떻게 물품들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하여 반드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경박스럽고 사치품과 같은 제품들의 마케팅과 소비를 완전하게 종료해야 합니다.

FFF공동체의 제조업은 100% 현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지역 및 세계적으로 공동체를 연결 할 수 있는 화석연료를 100% 쓰지 않는 운송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화석연료를 제거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물품을 사용을 줄여야 하며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품목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20-50년 이상 지속될 책상과 의자, 책장과 도마, 셔츠와 스웨터, 컵과 냄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이러한 변화는 상업적인 소비 중심 문화의 종식과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에 중점을 두며,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FFF 커뮤니티에서 이케아(IKEA)나 갭(GAP)과 같은 관련 상품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00% 화석연료 비사용 제품의 생산과 유통은 우리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장기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제조는 현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내구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우리 환경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 자유 무역 및 산업화의 위험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장에 관한 잘못된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 개념, 태도의 변화

FFF 지역사회는 화석연료에 관한 선전과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충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기업의 사상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기술과 거버넌스의 진보적 혁신이 아니라 태도의 혁명에서 시작됩니다. FFF 공동체는 자동차를 홍보하고 분별없는 음식 소비를 장려하는 광고가 없는 문화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후변화가 지역사회에 있어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위협임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짚 깔기, 유리 재활용, 금속 해체, 비료사용을 위한 인분 수집, 카트를 통한 식품 수송, 또는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자전거를 통한 전기 생산 활동이 엄연히 도덕적인 것이며 가치 있는 사회적 기여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문화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상업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만족감과 즉각적 만족에 대한 숭배는 도덕적 철학, 절제, 겸손 및 정직한 선행으로써의 사회적 참여에 기초한 문화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완전하게 “진보적인”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겸허, 절제, 지적 및 영적 참여의 중요성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와 결부됩니다. 이러한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업 문화에 대한 대안이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전기, 소비, 재산의 막대한 증가, 도시화 및 개인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에 의해 인간의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현대의 관념에서 비롯된 잘못된 추측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더 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시스템 생성에 도전하지 않으면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친환경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입각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생산과 유통에 뿌리를 둔 경제의 겉치레적인 변화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화와(그리고 영화 전후에 나오는 광고들) 뉴스 보도에서 강조하는 현대화의 신화 뒤에 감추어진 체계를 반드시 가시화해야 합니다. 사회의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비싼 자동차나 전용 비행기로 전 세계의 수도에서 수도를 누비는 사람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나르고, 공공장소를 청소하고, 우리의 식량을 재배하며 요리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더욱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되는 자원낭비,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 부는 상업적 미디어에서 마치 선량한 도덕적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FFF 공동체는 부동산, 개인 재산, 소유권에 관한 오해 소지가 많은 개념에 대해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언론에 의해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계약법과 기업 법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돕거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커뮤니티 회원 간 구속력 있는 계약이 없습니다. FFF 커뮤니티는 이러한 계약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FFF 공동체에 가입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을 끊고자 하는 충성 서약이 회원자격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동산과 소수의 사람에 자본이 집중되기 전에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농업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마을 계약과 동등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을 계약은 상징적이라기보다는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각 개인이 식품, 도구, 가구, 운송 및 거버넌스의 생산에 기여해야하는 책임과 구성원들에게 평생동안 커뮤니티를 갖추어준다는 공동체의 책무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중심 환경과 인간 정착의 관계를 형상하는 이로쿼이 부족 (Iroquois Nation)의 헌법 부활은 금융, 재산권 및 부동산에 중점을 둔 법적 왜곡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현재 혁신주의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는 동시에 화석 연료와 관련된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행을 없애고 모든 투자가 지역사회 활동과 관련이 있고 FFF 경제 창출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FFF공동체 회원가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자산, 교육 수준, 문화 감수성 정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Teslas를 구입하거나 태양 전지판 패널을 구입할 수 있는 상류・중산층 사람들에게 포커스된 녹색 경제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과 주변 매체를 통하여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빈곤층과 노동 계급에게 기후위기를 설명하고 응답에 참여한 대가로 양질의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 디너, 억만장자의 기부 및 기타 활동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연설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FFF 화폐를 만드는 것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화폐는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나타내며 지역 사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및 기타 제조 제품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사용에 극히 제한적일 지라도 이 통화가치는 화석연료와 연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즉, FFF 화폐는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사용이 확대되고 결국 세계경제로 확장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연결되지 않고 유사한 독립적 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무역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침묵입니다. 투자은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지구를 가로질러 상품을 운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탄소배출과 공장지대 설립을 위한 산림 및 정글파괴, 자연을 희생하여 끊임없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공장의 설립으로 인해 엄청난 환경의 파괴를 가져다줍니다. 세계 무역에서 추진되는 식량(특히 육류)의 비생산적인 대량 생산은 토양, 산림 및 강과 바다에 장기적인 피해를 줍니다. 또한 식품 및 제품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산업적 접근 방식은 지역 경제를 파괴하고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을 조장하였습니다. FFF공동체는 시민들에게 이 파괴적인 악몽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제공합니다.

 

결론

우리는 미디어와 토론회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관행을 바꾸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배출량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삶에 탄소 발자국이 적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쟁을 목격하곤 합니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깊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매일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세계 문화를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그 문화는 즉, 최선의 길은 두 가지 전략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선택을 지역 사회의 선택으로 만들고 그 지역사회를 대체 경제의 기초가 될 경제 단위로 만드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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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헌정체제가 수립된 후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사회에서 개헌 얘기가 나오지 않은 때는 단 한 해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의 개헌론은 시민사회의 호응이 상당해졌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과거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실 시민사회에서 87년 민주주의 체제의 ‘실질적 의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시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 그것도 언제부턴가는 경제력 수준이 세계 10위권을 넘볼 정도라고 하는 제법 잘 사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다수 시민이 왜 아직도 먹고사는 문제로 힘들어 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도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수많은 시민이 양극화의 심화, 비정규직 노동자 및 영세 자영업자의 급증, 청년세대의 불안, 인간 소외 등의 이 심각한 사회 분열 양상을 대체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이냐고 한탄했다. 2017년 촛불 광장에선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프레시안
사진 출처: 프레시안

 

한국의 현 사회경제 상황은 “집합적 결정은 다수 혹은 최대다수의 선호에 따른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즉 다수결의 원칙이 관철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원칙이 (엇비슷하게나마) 지켜지고 있다면 어떻게 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익이 소수에 불과한 강자들의 이익에 번번이 압도당하는 상황이, 그리하여 불공정과 불평등이 심화‧확대되는 상황이 이렇게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겠는가. 요컨대, 87년 민주주의 체제에선 다수결의 원칙이 너무도 심하게 무시되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교과서적 개념을 따르자면, 87년 체제는 제대로 된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의제 민주주의란 민주국가의 주인인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그들을 통하여 국가공동체를 간접 운영하는 민주주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수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를 갖지 못하고 있다면, 즉 대표가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상태에 있는 국가를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라고 인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한국 시민의 대다수는 자신들의 선호와 이익을 대표하는 유능한 정치적 대리인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 소상공인, 청년 등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들 중 누가 자신들의 유력한 정치적 대리인을 갖고 있는가. 실상이 이러하니 사회 구성원의 다수 혹은 최대다수의 선호가 존중되길 바라는 건 애당초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하는 개헌이 이뤄져야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소임은 일반시민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해줌으로써 그들이 사회경제적 강자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길항력을 갖추게 하는 데에 있다. 노동이 자본과, 중소상공인이 대기업과, 청년이 장년과,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과 적어도 정치의 장에서는 동등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자유와 평등을 수호할 수 있는 정책과 법, 제도 등은 적절하게 공급될 수 있다.

87년 체제의 수립 이후 만약 대의제 민주주의가 본령대로 작동하고, 따라서 정치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시장에서의 길항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왔더라면, 한국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수준은 지금쯤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87년 체제는 약자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의 고착은 그 결과일 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가 구성원의 대다수인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선호와 이익, 즉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기만 한다면, 시대정신의 구현, 곧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충분히 달성 가능한 일이 된다. 단, 그러기 위해선, 헌정체제의 개혁 즉 개헌이 불가피하며, 그 핵심 목표는 정치적 대표성을 시민들에게 두루 보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

수, 2018/04/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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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남한과 북한이 한국전쟁의 종전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시작을 반드시 자신들만의 힘으로 추진해야 할 이유는 없다. 북한의 단계적 핵 보유능력 포기는 종전이나 평화체제와 같은 프로젝트와 병행하여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가 곧 실현될 듯도 하다.

이를 통해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가 즉각 다차원적인 가치라는 이점을 누릴 것이다. 과거의 투자와 현재의 필요, 미래의 이익을 고려할 때 이런 이점은 한국과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를 넘어 미국에까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게 상당히 확실해 보이지만, 정부의 많은 관료와 전문가, 언론인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두고 상충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반응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의견은 행정이나 공개토론뿐 아니라 지도자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달 여러 중요한 회의와 기회가 다가오는 만큼 특히 아래 세 지도자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한겨레)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헤스 (Antonio Gutierrez). 9월에 열리는 유엔총회는 한국 문제에 추진력을 더하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유엔은 회원국이 요청하기 전까지는 행동에 나설 수 없으므로 유엔 사무총장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책임을 피할 변명거리가 있다. 그러나 유엔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위하여 창설되었다. 유엔은 최근 수십 년간 다양한 국면에서 미국의 협박을 받아왔으며, 수많은 일방적 결의안을 통해 마치 북한은 핵 억지력을 가질 합당한 사유가 없는 듯 굴면서도 북한보다 강력한 다른 당사자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협상을 시작하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곧 열리는 유엔총회가 남북한이 진행 중인 협상에 신뢰성과 정당성 그리고 지속성을 부여한다면 과거 유엔의 이 부끄러운 기록이 가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유엔이 나약함과 불안정성이 과감한 행동의 걸림돌이 되기보다는, 유엔의 그러한 약점이 과감한 행동을 위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 코피 아난의 죽음이 유엔 본부의 뜻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가 처했던 환경은 오늘날 구테헤스가 처한 환경과는 다르지만, 협박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기민함과 능력, 필요할 때는 단호한 그의 모습은 유엔의 역할을 어떻게 활용하여야 하는지 상기시켜준다.

한국 대통령 문재인. 이제 한미 동맹의 진부하고 모양새 사나운 컨셉을 벗어날 때도 되었다. 한미 동맹은 수십 년간 한미 양국에서 반(反) 화해 및 반(反) 민주주의 단체들에 의해 이용되었다. 이는 한국전쟁에서 그리고 그 이후 한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수많은 국가의 군인과 애국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현 주한미국대사 해리 해리스(Harry Harris)와 주한미군 사령관 빈센트 브룩스(Vincent Brooks)는 이 단순해 보이지만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한미관계에 대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왜 이런 한미 동맹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 청와대를 쥐락펴락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믿음의 핵심은 한국이 불안정하고 연약한 동맹국의 지도자가 부리는 변덕에 복종해야 한다는 기대에 있다. 그러나 이 허술한 우정은 교묘한 조종, 공허한 이데올로기, 또는 박애주의의 달콤함으로 금이 가거나 몰락할 수 있기에 지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당혹스러운 발상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길목마다 한미 동맹은 바위처럼 견고하다. 이 순간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의 이익이나 백악관의 정치 혼란을 미국의 이익과 혼동한다면 그것은 용서받지 못할 실수이다. 미국의 이익은 단계적 비핵화,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식, 남북간 평화 구축, 제재 완화 및 경제 발전에 분명하게 맞춰져 있다. 대다수의 노련한 미국인들은 이 점을 알고 있다.

칼럼_180911(4)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 대통령으로서 트럼프에게는 여러 역설적인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는 트럼프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야말로 그의 외교정책 중 유일하게 나쁘지 않은 지점이라는 것이다. 부시와 오바마의 한반도 정책이 속절없이 실패하고 있을 때 트럼프는 판을 뒤집었다. 다만 그의 공은 판을 뒤집은 순간, 시작과 동시에 끝났음이 분명해졌다. 미국은 앞으로 수년간 방관자의 태도를 고수할 것이다. 이는 폼페오 미 국무부 장관의 언동이나 미국의 다른 정부 관료들, 그리고 이번 주 한반도 문제를 위한 “조정관”을 임명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다른 누군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과 미국 간 어떤 갈등이 필요하다거나 한반도 상황의 진전에서 미국을 배제하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로 미국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격언의 한 구절처럼,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으나,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트럼프가 물을 마시기까지 굉장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고, 어쩌면 영영 안 마실 수도 있다. 그런데 한반도는 그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미국 정부가 지난번 개발을 위한 북한의 비핵화 거래를 파기한 이후 이미 17년을 기다려왔다. 한국의 대통령 단임제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3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 정부의 능력이 급격히 쇠락하는 지금,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의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장설 수도 있지만, 이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단둘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른 강대국들의 지지 하에, 현재 미국이 채울 수 없는 것들은 오직 유엔만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게 잘만 된다면 9월은 큰 변화를 불러오는 달이 될 수도 있다.

화, 2018/09/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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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9월21일 세계평화의 날을 맞이하여 미국내 최대 반전평화단체인 ‘Peace Action, 대표 Kevin Martin이 commondreams.org를 통해 한반도 내 평화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다른백년은 내용을 원문과 함께 번역문을  신속하게 게재하여 평화와 통일을 열망하는 모든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귀한 한국인들의 평화에 대한 역사적 소망은 전세계, 특히 미국인과 미행정부가 축복하고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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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라는 열차가 힘차게 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9.21)은 세계평화의 날이지만, 항시 전쟁상태에 빠져있는 미국에서는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Pace e Bene 가 벌리고 있는 비폭력 캠페인 덕분에 미국과 세계 여러 곳에서 평화행동( Peace Action)을 위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세계의 전쟁과 평화 상태에 대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과 동맹들이 개입한 전쟁의 상황은 참혹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미군의 영향하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그리고 수많은 국가에서는 소중한 평화 또는 이를 기대할 만한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금지조약 (JCPOA)을 성실히 이행한 이란에 대하여, 오히려 자신들이 약속을 파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무력을 통해 협박하고자 애를 태우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주택과 교통시설, 사회기반시설 개선, 교육, 지속가능조건의 확산과 그린경제 등에 투입되어야 할 소중한 세금들이 세계 최대의 전쟁기구에 투입되고 있다. 매우 위험한 유행병처럼, 총기사건, 탈산업화, 이윤추구의 탐욕 등이 잔인스럽게 우리 사회를 불평등과 절망 속에 빠져들게 한다. 세계평화지수에 의하면 163개국 중에 미국이 121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더 낮게 나오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 fire & fury’를 언급하고 이에 북한지도자 김정은이 핵위협으로 대응했던 일년 전을 돌이켜 보면, 누군들 한반도가 이제 세계평화의 밝은 빛을 제공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이번 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라는 열차가 힘차게 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한국전쟁의 핑계로 만들어진 유엔사령부라는 허울을 쓴 미군부가 남북간의 철도라인 연결시험운행을 방해한 사건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다음 주 문대통령과 트럼프가 유엔에서 만나 남북정상간 있었던 대화의 내용을 검토하고 10월 중순 빠른 시일 내 두번째 김-트럼프 간 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동시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수주 내에 북한 방문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한반도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서 남북간 정상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언급했지만, 그의 현재 정책은 냉전시대의 사고에 머물러 있다. 미행정부는 북한이 수용할 만한 안전보장과 제재완화에 대한 내용의 제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북한에게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는 가공할 핵무기체계를 향상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북한에 결핵이 창궐하여 전 지역에 퍼질 상황에 처해 있으며, UNICEF 가 6만명 이상의 어린이가 아사 직전에 있음을 경고한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의 조치는 매우 비인조적이다. 

NGO단체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식량과 질병의 위기를 지원하려고 인도적 조치에 대한 제재의 완화를 요청하였음에도 미국은 오히려 제재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상기에 언급한 철도연결 사업을 훼방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개설한 남북연락사무소의 설치조차 반대하였다.

미국이 진심으로 한반도 평화를 지원하고자 한다면, 현재의 강경한 재제조치를 즉각적으로 완화하여,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을 지원하고 북한과 협력하여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전사자 유해반환작업을 지속해야 한다

추가로, 1953년에 잠정적으로 서명한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종전선언의 서명에 동의하여야 한다. 북한은,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구상의 최대 군사작전이며 일년에 두 차례씩 실시하던 한미군사훈련을 중지 또는 축소한 점에 답하면서, 지속적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의 개발을 중단하였고, 핵과 미사일 의 주요한 시설을 파괴하고 폐쇄하였다. 이러한 행동對행동(freeze to freeze)의 실천은 지난 동계올림픽 이후 이루어 왔다.

미국 상원의 승인을 득해야 하지만, 이러한 동결행동의 실천은 평화협정의 협상과정에서 남북간 그리고 미군간에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의 감축과 같은 내용을 합의하고 문건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행은 북한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안전보장에 핵무기가 필요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는 최대압력의 제재정책이 아닌 최대 포용정책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인들은 1950년이래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분단상황에 대하여 이제는 평화를 이루고 민족간에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이처럼 귀한 한국인들의 평화에 대한 소망은 전세계, 특히 미국인과 미행정부가 축복하고 지원해야 한다.

 

Kevin Martin

케빈 마틴씨는 미국내 20만명이 후원하는 평화와 반전운동의 최대조직인

평화행동과 평화행동교육기금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는 또한 한국 내 평화네트워크, 사회정의, 인권과 전역예비군, 한미친선 단체들 등

그룹 또는 개별단위로 협력하고 있다.

토, 2018/09/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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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최근 대서양을 마주한 미국과 영국의 정치판에 새로운 사회주의 그룹이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Financial Times 의 경제해설가인 Mr. Martin Sandbu 는 북유럽의 사회주의정책에 대한 매우 신선한 시선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는 양국의 사회주의 그룹에게 독선적이고 교조적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미래를 열어가도록 몇 가지 조언을 던지고 있다. 우선 북유럽국가들은 세계화에 친화적인 높은 개방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별 기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외부환경을 국가단위의 강력한 사회안전망으로 유연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역동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부실한 실업복지 탓에 실업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현실에서 격렬한 노조의 저항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이 심히 어려운 한국의 현실에 매우 소중한 이야기이다. 또한 북유럽이 복지라는 주제를 넘어 혁신과 성장 영역에서 가장 모범적 국가로 성장한 원동력은 노동시장의 강력한 사회연대임금(compressed wage), 즉 임금간 격차를 축소시킨 것이 혁신기제로 작동하여 산업구조의 전환과 신규 투자를 강력히 유도한다는 설명이다. 한국 경제의 현재적 어려움을 모두 최저임금 탓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들이 반드시 귀를 기울어야 할 대목이다. 다른백년은 ‘최저임금의 적정인상’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혁신정책 임을 다시 천명하는 바이다.


 

때로는 가장 예측 가능한 일이 가장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되는 ‘사회주의’ 를 보라. 이들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재탄생하고 있다.

10 여 년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주의의 실패한 민낯을 드러냈고, 덕분에 좌파 정치인들에게도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선진국의 기존 좌파 정당 중 대다수가 기득권과 타협하면서 정치세력을 키우지 못하고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렸다. 재기가 아니라 후퇴를 하는 듯 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좌파 정치인들은 1990년대 소위 “제3의 길”을 거부한 이들이다.

영국에서는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이 당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최근 당원수가 급증한 노동당의 당수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2016년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사회주의운동이 경선에서 인기를 끌며,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위협을 느끼며 기부금 모금을 위해 뛰도록 만들기도 했다. 최근 미국의 정가에서는 샌더스와 뜻을 같이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그리고 라시다-틀라입(Rashida Tlaib) 등이 민주당의 당선이 확실한 주요 지역구 연방의회의 경선에서 승리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젊은 미국인의 약 절반 가량이 “자본주의”보다 새로이 등장하는 “사회주의”를 선호한다.

그 결과 이 새로운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사회주의는 보편적 의료서비스나 근로조건의 개선과 같은 정책이 작동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표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반대개념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코리 로빈(Corey Robin)은 대립적 정치이론으로 “사회주의”를 옹호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자유를 박탈하는 반면 사회주의는 노동자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경쟁 내지는 양립이 불가능한 제도로 보고 있다.

이러한 개념적 차이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냉전시대라면 이런 생각이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적 이분법이 가능했을 때에도 북유럽은 분명 자본주의의 경계 안에 속해 있었다. 그저 “자본주의”에 반대되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찬성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북유럽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그 동안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구성요소, 즉 생산수단의 국유와 사유, 공적 규제와 시장 경쟁, 세금에 의한 재분배와 고용주와 노동자가 결정하는 임금 등을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혼합경제-mixed economy”라는 말로 표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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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정책이 바로 보편적 복지라고 불리는 평등한 복지 정책이다.

만약 오늘의 사회주의자들이 이 혼합체에서 자본주의가 하는 역할을 무시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리더를 따를 수조차 없게 된다. “사회주의자” 라고 부르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은 북유럽에서 다음의 세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 북유럽은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포용한다. 이들의 혼합경제 모델은 국제무역 노출도가 높은 국가라는 점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시민들은 무역이 부를 창출한다는 것과, 그러나 급작스러운 글로벌 변동성의 위험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이해했고, 그 결과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보험적 요소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

즉 “사회주의”를 표방하려고 한다면, 경제적 개방성만은 확실한 사회주의적 요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 좌파는 오히려 무역 자체를 반대해 자신들과 북유럽 모델을 연계하려는 노력을 무력화한다.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들고나온 “Lexit”, 즉 유럽 국가 간 원활한 무역을 가능케하는 규칙을 벗어나자는 유혹 역시 마찬가지다.

둘째, 북유럽의 경제평등주의는 개괄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상세내용까지 알려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상세내용이다. 북유럽 모델의 성공은 고도로 압축된 (조세 및 이전지출 전) 시장임금의 분배 등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달리, 부와 자본소득의 분배, 정책을 통한 사회임금 이전 등은 다른 국가들도 시행하는 일반적 내용이다. 북유럽의 성공은 재분배의 극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재분배적 권한에 과도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는 산업영역의 효율적 경제를 구축함으로써 가능했다.

이는 세번째 교훈과 맞닿아 있다. 북유럽 모델의 성공은 대부분 국가들처럼 직접적 개입이 아니라, 특별히 노동시장 내 사회조직 간의 균형잡힌 상호작용에서 기인한다. 사회주의 옹호자들은 북유럽 경제 내 노동조합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이들은 경영주들의 합리적 구성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세상을 그저 노동자 대 자본가로만 보면 경영주들이 더 합리적으로 구성될수록 노동자의 권리에는 손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북유럽의 사례를 보면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합리적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개별 기업에게 부담인 듯 보이는 사실(예건데 노동조합과 연대임금)이 경영주에게 오히려 전체 비즈니스에 이득을 가져오는지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압축된 임금구조(평균적 사회연대임금)가 생산성을 증진시켜왔다. 경쟁력이 없는 산업분야에 노동력을 비생산적으로 사용하기엔 대가가 너무 크고, 차라리 숙련된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면 기업은 혁신적 산업 분야에 투자를 가속화하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같은 논리로써 능숙한 기업 경영인은 기술진보로 인한 혼란을 겪는 노동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간의 적응과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영미에서 이야기하는 새로운 사회주의라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더욱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며, 북유럽인들은 세계 1,2차 대전 사이에 형성한 자유/중도주의의 위대한 통찰, 즉 지혜로운 정부의 개입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노동자들에게 더욱 좋은 경제 시스템을 만든다는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다. 기득권과 타협적인 사회주의 중도파는 금융위기 전과 후의 과정에서 나쁜 평판을 얻었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이 시작하는 사회주의자가 결벽증 때문에 북유럽의 유연하고 역동적인 사회주의를 거부한다면 그들의 목표 역시 좌절되고 말 것이다.

 

Financial Times

마틴 샌드부(Martin Sandbu)

 

 

 

금, 2018/09/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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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국의 정계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거센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민주당의 개방적 경선제에 사회민주주의연대(SDA, Social Democrats of America) 회원들이 대거 참여하며 뉴욕주 연방의회 하원 후보로 남미계 30대 약관의 여성 코르테즈(Cortez)가 지명되면서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미시간 주에서도 라시다 타리브(Rashida Tlaib) 라는 아랍계 중년여성이 확정되는 등 이제 민주당내에는 SDA에서 참여한 젊은 세대와 유색계통의 여성들이 역사적 대세로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민주당 기존 지도부와 주류언론은 이들 돌풍을 잠재우려 온갖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이들 사회민주주의연대의 현실적 정치 목표는 비현실적인 트럼프의 탄핵이나 연방의회의 장악이 아니라, 일단 무기력하고 타협적 현실에 익숙해진 미국 민주당내에서 실천적 변혁을 통하여 보건과 교육 등에 진보적 정책을 실현하는데 있다. 이는 단지 태평양 건너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지율 4-50%선을 유지하면서도 1%선의 민주평화당만큼도 정치적 몫과 역할을 못해내는 집권여당인 한국의 민주당에 던지는 경고이자 메시지이다. 현실 안주와 타협 그리고 민생과 민본을 외면한 채 자신만의 정치공학적 행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사회 전망과 더불어 집권여당 민주당의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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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다 타리브(Rashida Tlaib)가 자신의 디트로이트 선거운동 본부에서 민주당 하원의원 예비선거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사진: 뉴욕타임즈 안소니 란지로테 (Anthony Lanzilote))

지난 화요일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일원인 라시다 타리브(Rashida Tlaib)가 미시간 주 예비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무슬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의회에 입성할 가능성을 굳혔다. 미주리 주 주민투표에서는 공화당 주 의회를 통과한 반 노조법안, 일명 “일할 권리(right to work)” 법안이 2대 1의 표차로 폐기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승리는 또 있었다. 진보성향의 미주리 퍼거슨 시의원인 웨슬리 벨 (Wesley Bell)이 오랜 시간 한 사람이 독점한 세인트 루이스 카운티 검사직을 사실상 쟁취하게 되었다.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기존 검사가 지난 2014년 경찰이 10대 흑인소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을 총으로 사살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고, 그 결과 폭동을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날 뉴스의 헤드라인은 민주당 내 좌파가 벽에 부딪혔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타리브의 승리로 미 의회 내에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이하 D.S.A.)의 목소리가 대변될 가능성이 배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CNN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의 운동이 예비선거에서 그다지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했고, 미국 정치전문 일간지 폴리티코는 “사회주의의 추락”을 단언했다. Fox News는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와 오카시오-코르테즈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선구자의 불씨는 꺼졌다”라는 헤드라인을 내보냈다.

이런 식의 보도는 오카시오-코르테즈가 급작스레 주목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유명세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손에 땀을 쥐는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경선에서 승리했고, 자신의 가치를 카리스마 넘치게, 열렬하게 대변해왔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민주당의 새로운 얼굴로 부상하면서 킹메이커로서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터무니없이 커져버렸다. 

사실 좌파 후보들의 예비선거 패배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예비선거에서 이기는 좌파 후보들이 반가운 놀라움이다. 따분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진보정치의 진정한 이야기는 반갑지만 익숙하지 않은 좌파 실용주의의 발생 덕분에 생기는 크고 작은 승리를 꾸준히 축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꽤 최근까지 좌파 선거운동의 가장 눈에 띄는 실체는 남루한 녹색당(Green Party)이었다. 이는 오하이오의 12번째 하원의원 선거구에서 치러진 특별선거에서 자신을 외계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조 맨칙(Joe Manchik)이 1,129표를 획득하며 힘을 과시했다. 이때 민주당의 대니 오코너(Danny O’Connor)는 공화당 후보를 1,564표 차로 뒤쫓고 있었고, 아직 개표하지 않은 잠정투표가 3,500표의 잠정투표가 남은 상황이었다.

 

녹색당이라는 대안이 없었다면 맨칙을 지지한 상당수의 유권자가 과연 민주당에 힘을 실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끝없는 논쟁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제껏 녹색당이 습관적으로 비운의 3등 역할을 하며 그들의 표면적 가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인가 했다는 증거는 보지 못했다.

 

녹색당은 때로 이러한 선거를 두고 운동을 시작하는 도구라 정당화하지만, 실제로 어떤 운동을 시작하지는 않는 듯하다. 랠프 네이더(Ralph Nader)는 2000년 대통령선거 이후 내게 녹색당의 허술함을 설명하며 “녹색당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확대하는 법을 모른다”면서, “녹색당만의 독특한 성격입니다. 기금 마련을 싫어하고, 마을과 공동체의 소수자 중 한사람으로서 조용히 살고자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와 달리 좌파 운동의 새로운 세대는 자신의 의견을 확장하는데 능하다. D.S.A.만 보아도 2016년 선거 이후 상당한 좌파 정치 권력을 쌓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네이더가 조지 부시(George W. Bush)의 당선을 도운 이후 지난 18년간 녹색당이 쌓은 것보다 더 많다.

 

1990년대 기독교 우파(Christian Right)가 그리하였듯이, 정의를 추구하는 민주당원들(Justice Democrats)과 노동가족당(Working Families Party) 등의 단체를 포함하는 이 신세대 좌파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바닥부터 갈아엎으려고 하고 있다. 이 활동가들은 지역 형사 정책을 즉각 개혁할 수 있는 방법인 검사 선출에 특히 집중해왔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지난해 좌파단체의 도움으로 인권변호사인 래리 크라스너(Larry Krasner)가 지방검사에 선출되었다. 그는 여러 개혁안 중 하나로 경범죄 및 비폭력 중범죄에 대한 현금 보석을 종결했다.) 

오카시오-코르테즈와 샌더스가 지지하는 후보 몇 명이 지난 화요일 예비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맞다. 미시간 주지사 경선과 캔자스 의회 경선에서 각각 패한 압둘 엘-사예드(Abdul El-Sayed)와 브렌트 웰더(Brent Welder)가 그들이다. 그러나 해당 선거의 승자인 미시간의 그레첸 위트머(Gretchen Whitmer)와 캔자스의 샤리스 데이비즈(Sharice Davids)가 주류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민주당의 중심이 얼마나 많이 좌측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준다.

위트머(Whitmer)는 최저임금 $15와 마리화나 합법화, 주 유치원 보편화(statewide universal preschool)을 지지한다. 데이비즈는 미국 원주민 출신 레즈비언이며, 전직 이종격투기 선수이자 변호사, 그리고 배드애스 페미니스트로서 선거에 임하고 있다. 데이비즈의 선거 광고 중 하나에는 그가 복싱장에서 훈련 중인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해당 광고에서 데이비즈는 “2018년이다. 여성, 미국원주민, 동성애자, 실업자, 불완전취업자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분명한 사실 하나. 트럼프와 공화당은 우리에게 관심도 없다.” 

데이비즈의 선거운동은 정체성과 표현을 강조하는 반면, 그에게 패한 웰더는 포퓰리스트 경제학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이 진보적인 우선순위들 간의 정확한 균형을 따지려 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들 모두가 진보적인 우선순위들이라는 것이다. 데이비즈의 승리 후, 오카시오-코르데즈는 그에게 축하 트윗을 보냈다. “당신의 승리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습니다.”

“혼란에 빠진 민주당”이라는 표현은 민주당이 스스로를 일컫는 표현이다. 하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전쟁인 것은 아니다.”

 

미셸 골드버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더 네이션(The Nation)의 선임작가로도 활동했다.

목, 2018/08/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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