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의 시대 웹콘텐츠 분야에도 페미니즘의 바람이 불었다. 2016년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를 상대로 한 남성 이용자들의 사이버불링과 문하생을 대상으로 한 유명 웹툰 작가들의 성추행 사건의 공론화는 #미투운동의 결과였다. 이 사건들을 통해 웹콘텐츠 분야의 여성 창작노동자들이 웹콘텐츠 분야의 제도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사이버불링, 젠더 위계로 인한 성희롱, 성추행 등 각종 성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남녀 임금격차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성적 낙인을 악용하는 남성들의 인식 개선, 법 제도와 정책적 개선을 통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웹콘텐츠 향유 문화 개선 등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안이 될 것이다.
웹콘텐츠 여성 창작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성차별의 현실
다른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들에 비해 웹콘텐츠 분야 종사자들은 향유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의 빈도가 높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악성댓글에 노출되어 왔고, 여성 창작자들은 성차별적인 사이버불링을 당하기도 했다. 2016년 몇몇 여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거나 페미니즘에 관한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로 남성 게임 이용자들에게 사이버불링을 당한 사건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게임 일러스트 업계는 같은 웹콘텐츠 분야의 또 다른 분야인 웹툰 업계와 달리 공모전이나 대회로 작가가 작품을 발표한 기회가 거의 없다. 그리고 남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경우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여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들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대다수의 여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들은 SNS를 홍보 수단과 포트폴리오 저장 용도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직업적 조건은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와 이용자와의 접촉 횟수나 인터넷상 이용자와 창작자 사이의 거리, 창작자가 이용자에게 노출되는 정도를 자연스럽게 높였고, 결국 여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불링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문제는 사태가 게임 이용자들의 사이버불링만으로 끝나지 않고 사이버불링이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사측으로부터 일러스트를 삭제당하거나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웹툰 작가나 웹소설 작가들 역시 네이버처럼 각 연재웹툰에 댓글을 달 수 있는 시스템이 있거나 에이전시나 사측이 홍보를 해주지 않아 작가 자신이 직접 트위터 등으로 자기 프로모션을 해야 해 이용자들의 사이버불링에 노출되어 있다.
웹툰 작가들은 위와 같은 잠재적인 문제와 함께 성별 위계로 인한 성적 폭력에도 취약한 집단이다. 이 문제는 웹툰 분야의 구조적 특수성에 기인한다. 순수예술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제식 시스템에 의한 창작자 교육 방식과 콘텐츠 창작 방식은 웹툰계 여성 창작자들을 성범죄에 취약한 집단으로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다. 웹툰은 잡지와 종이책으로 유통되던 출판만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90년대 후반 PC통신 서비스에 연재되기 시작했던 만화는 웹툰의 기원으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만화의 형식이 달라진다.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콘텐츠의 형식적 요건이 변화하게 되고, 대형 포털사이트가 자사 사이트에 웹툰을 연재물 형식으로 게재하기 시작하면서 데뷔 창구와 데뷔 기회에 있어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와 같은 구조적 변화로 유명 작가가 자신의 화실에서 여러 명의 문하생을 두고 콘텐츠를 제작하고 문하생을 작가로 키워내는 도제식 시스템이 출판만화 시절보다 줄어든다. 전통적인 훈련 시스템을 밟지 않고도 데뷔가 가능해졌으며 에이전시가 생겨나면서 작화 등의 작업을 외주로 해결하는 사례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도제식 시스템은 웹툰 분야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작화 등을 외주로 주지 않는 이상 사측이나 포털이 요구하는 분량을 채우려면 어시스트 등의 인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도제식 시스템 내에서 여성 문하생이나 어시스트들은 취약한 위치에 처한다. 권력이 의사결정권을 가진 1인에게 집중된 도제 시스템에서 젠더 위계가 창출되는 과정과, 이 권력을 그 1인이 어떻게 행사해왔는지 우리 사회는 #미투시대 성범죄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배워왔기 때문에 두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15년 정철 작가의 문하생 성추행 사건, 2018년 출판만화 시절부터 현재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작가 강도하의 문하생 성추행 사건은 도제식 시스템의 부작용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례이다.
사이버불링, 성추행과 같은 성범죄 외에 웹콘텐츠 업계에서 지적되는 또 다른 성차별은 남녀작가 간의 수익격차다. 2017년 서울시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웹툰 작가 월평균 임금이 166만원, 남성작가는 222만원이다. 임금격차는 웹툰계 내 또 다른 직군인 일러스트레이터 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경우 여성은 127만원, 남성은 212만원으로 수입에서 차이가 났다.[1] 웹툰 작가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 따르면, 특정 작가는 자신보다 조횟수가 적은 남성 작가의 고료가 자신의 고료와 앞자리가 다를 정로도 차이가 나서 플랫폼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었으나 기준 산정 방식과 조건이 많다며 답을 제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야기를 해준 게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추궁했다고 한다.[2] 위에서 언급했듯 간혹 업체에 채용되는 남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는 반면 이러한 채용의 기회가 여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거의 주어지지 않으므로 여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 역시 남녀 임금격차라는 성차별을 현재 경험하고 있는 직군 중 하나이다 .
웹콘텐츠 분야 내 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게임업계 측은 여성 게임 이용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수치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남성 게임 이용자들이 과잉대표된 측면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업체는 소수의 남성 게임 이용자들이 행한 사이버불링에 자신들이 좌우되는 현실이 궁극적으로 건전한 게임 문화 형성을 저해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약간의 인식 변화만 있었더라도 여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불링이 발생했을 때 사측이 이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남성 이용자들의 눈치를 과도하게 살피며 이 일을 핑계삼아 이슈가 된 여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와 급하게 계약을 해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사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해지통보를 받았음에도 무력하게 통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들이 계약상 철저한 을의 위치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계약상의 불평등한 지위는 계약 이외의 노동을 수행할 수밖에 없게끔하거나 저작권을 통째로 넘기라는 사측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으로 창작자를 내몰기도 한다. 실상 작품을 완성했을지라도 일정 기간 사측의 지위를 받으며 수정 작업을 해주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보통 건별로 계약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측은 아주 쉽게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와 계약을 해지 할 수 있다.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계약 관행에 더 취약한 계층이 여성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볼 수 있다. 콘텐츠의 일방적인 삭제의 경우 작가에게 더욱 참담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만약 매절계약으로 콘텐츠의 저작권을 통째로 사측에 넘긴 상황에서 창작자가 계약 해지를 당하게 되었고 사측이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삭제했다면, 작가는 자신이 어렵게 쌓은 경력 한 줄을 강제로 삭제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웹콘텐츠의 특성상 콘텐츠가 웹에서 사라지면 그것이 현존했다는 사실과 제작자를 입증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웹콘텐츠의 일방적인 삭제는 경력은 물론이고 해당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쏟았던 시간까지 작가에게서 송두리째 앗아간다. 이런 여파를 모두 고려해 고용관계가 현재보다 더 명확해져야 할 필요가 있으며, 불합리한 계약 지위에 따라 매절계약으로 저작권을 통째로 넘길 수밖에 없는 업계의 관행을 법 개정이나 정책 마련 등의 제도 개선으로 해결해야 한다.
웹툰계에서 발생하는 성별 위계에 의한 성희롱, 성추행의 문제들은 해당 법률로 엄격하게 처벌하고, 업계 종사자와 관계자들이 함께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여성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제도의 특수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찾아 개선해야 한다. 만약 사업주가 명백하게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노동을 수행했음에도 동일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에 관한 법률>의 제8조 1항을 위반하여 동법 제37조 2항 1호에 의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받도록하고 있으나 웹툰 작가는(일러스트레이터 역시) 근로자가 아니므로 이 법을 근거로 한 제도적 보호망에서 제외되어 있다.[3] 그러나 웹툰 작가들이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현재 플랫폼들은 웹툰 작가들에게 수익 산출근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제작한 콘텐츠를 사측이 어떻게 활용하였고, 어떤 항목(이벤트, 사이버머니, 광고 등)을 기준으로 임금을 산출했는지와 같은 정보내역을 사측이 정확하게 공개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웹툰 작가들이 제작하는 콘텐츠는 저작물이므로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5]
사이버불링은 다른 문화예술 분야와 달리 웹콘텐츠 분야에서 유독 많이 발생한다. 이용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이 문제의 핵심이니 건전한 웹콘텐츠 향유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업계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소관부처가 향유자 혹은 이용자들과 여성 창작자들이 건강한 연대를 맺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도모하는 방법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살펴보았듯 웹콘텐츠 여성 창작자들이 겪은 성차별과 성적 폭력의 경험은 성애적 측면과 관련된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제도적 차원의 문제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개선과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변화와 정책적 뒷받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소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바람직한 향유자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1] 서울시 공정경제과(2017),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 결과 발표 보도자료, 서울시.
2019. 10. 29.-30. 양일간 “제12회 아시아 인권포럼: 신기술 시대의 인권과 인권경영”이 여의도 전경련회관 다이아몬드홀에서 개최되었다. 제12회 아시아 인권포럼은 고려대학교 인권센터(센터장 서창록), 휴먼아시아,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에섹스(Essex)대학교 경제사회 연구위원회(ESRC) 빅데이터와 기술 프로젝트, 한국인권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번 포럼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2019년 6월 한국 정부의 주도로 채택된 ‘신기술과 인권’ 결의를 바탕으로 하여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으로 표상되는 신기술의 인권에 대한 영향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기회 및 과제를 분석하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오픈넷에서는 박경신 이사와 김가연 변호사가 참석했다.
김가연 변호사는 29일 오후에 열린 “세션 2. 인권에 대한 인공지능(AI)의 영향”의 지정토론자로 참석해 두번째 발제자인 Surya Deva 홍콩시립대 교수가 언급한 인공지능과 젠더 이슈에 대해 인공지능 음성비서는 왜 여성형이 많은가를 주제로 좀 더 자세한 토론을 펼쳤다.
토론문
김가연 오픈넷 변호사
여성의 입장에서 두번째 발제자인 Surya Deva 교수님의 발제에 첨언을 하고자 합니다. Deva 교수님은 인공지능 기술이 성차별을 재생산하고 강화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시리나 알렉사 같은 음성비서의 사례를 언급하셨는데, 이에 대해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애플 시리, 삼성 갤럭시 빅스비, 네이버 클로바, 아마존 알렉사 등 음성비서 또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아마 가장 친숙한 형태의 AI일 것입니다. 대부분 기본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세계의 인공지능 음성비서 시장을 선도하는 아마존,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가 ‘여성 비서’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의 알렉사(Alexa)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따 온 여성형 이름이고, MS의 코타나(Cortana)는 비디오게임 ‘헤일로’에 여성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홀로그램 인공지능 이름이고, 애플의 시리(Siri) 아이폰 공동개발자 중 한 명의 이름이자 고대 노르웨이어로 ‘승리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뜻입니다. 이들 주요 기업의 인공지능 음성비서들은 이름과 목소리뿐만 아니라 ‘정체성’(personality)도 여성에 가깝습니다. 개발자들은 사용자들이 인공지능과 대화할 때 진짜 인간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의 개성과 성장과정, 이력과 같은 세세한 ‘인간적인’ 면도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하는데, 이러한 정체성이 대부분 여성을 상정하고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여성형 음성비서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1. 여성의 목소리를 선호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2008년 인디애나 대학의 Karl Macdorman 교수는 485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목소리의 성별 차이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했는데, 남성 그룹과 여성 그룹 모두 여성의 목소리를 “더 따뜻하게 느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2011년 스탠포드 대학의 Clifford Nass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컴퓨터나 기술에 대해 배울 때는 남성의 목소리를 선호하고, 관계에 대한 조언이나 파트너로는 여성의 목소리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나스 교수는 “인간의 뇌는 여성의 목소리를 좋아하도록 발달했다(“It’s a well-established phenomenon that the human brain is developed to like female voices.”)”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장 조사에서 일반 유저들이 여성 목소리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2. 여성 인공지능이 덜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여성형 인공지능이 많은 이유가 대중문화에서 접한 남성형 인공지능의 위협적 성향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 2017년 개봉한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휴머노이드 월터와 데이비드 등 남성형 인공지능은 살인을 저지르는 등 종종 매우 위협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워싱턴 대학의 Gender, Women & Sexuality 학과 Michelle Habell-Pallan 교수는 다수의 엔지니어들이 일반인들이 새로운 기술을 위협적으로 느끼거나 거부감이 들게 하지 않도록 여성형의 인공지능을 채택하며, 또한 엔지니어의 다수가 남성인 점도 영향이 있다고 합니다.
3.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재현의 결과 혹은 트렌드를 페미니스트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비서 역할에 자연스럽기 때문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스탠포드대학의 Londa Schiebinger 교수는 “실제로 애플, MS, 아마존 등 음성 비서를 개발한 기업의 사무실에서는 여성 비서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환경이 IT 과학자들의 무의식 속 성 편견을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편견이 반영된 과학 기술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인공지능 음성비서의 기본값이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 이유가 사회적 성역할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라고 파악합니다. IT 업계 핵심 직종의 종사자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이미 익숙한 사실이며, 이를 고려한다면 음성비서가 여성으로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이 IT 과학자들의 무의식 속 성 편견의 반영물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몇몇 기록에 의하면 여성 목소리 선호 성향이 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비행기 조종석의 항법장치에 여성의 목소리를 채택했는데 조종사들이 남성밖에 없어 여성의 목소리가 잘 들렸기 때문입니다. 전화교환원(operator)도 전통적으로 여성의 직업이었고 사람들이 여성의 목소리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게 만들었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처음으로 자동화된 음성 시스템을 설치했을 때 운전자들이 압도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현재 대부분의 네비게이션이 여성 목소리를 기본 설정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전통적으로 ‘여성’ 비서가 수행하길 바라는 기능을 현재 인공지능 비서가 수행하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성형’ 인공지능과 ‘여성형’ 인공지능에 할당된 역할에는 꽤 차이점이 있는데, 남성형의 경우 지식과 권위에 관한 것이고, 여성형의 경우 검색이나 일정 잡기 등의 서비스 역할에 관한 것이라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2019년 유네스코가 발표한 보고서(I’d Blush if I could)는 ‘시리’를 비롯한 음성 인식장치들이 대부분 ‘젊은 여성’ 목소리를 기본값으로 설정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답을 내놓게 돼 있어, 여성 역할을 수동적·소극적이며 명령자에 복종하는 역할에 한정해 젠더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유가 어떻든지 간에 인공지능에게 여성성을 부여하는 것은 몇 가지 문제점을 시사합니다. 이것은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 외에도, 여성형 인공지능에게 단순히 일정을 잡는 것을 넘어 비윤리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몇몇 로봇회사는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로봇, 섹스로봇을 개발하고 있는데 대부분 여성형입니다. 유네스코 또한 그 진짜 원인이 어디에 있든, 인공지능들이 여성 일변도의 정체성을 갖는 것은 그 자체로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인공지능 음성비서의 목소리가 점점 더 진짜 인간의 말투에 가까워지고, 인공지능이 일상 속에서 급속도로 활용 폭이 넓어질수록 ‘복종만 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대중들에게 여성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고객만족’이 가장 중요한 목표인 대다수의 인공지능 음성비서는 사용자가 부적절한 대화를 걸어오더라도 이를 거부하거나 반박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인공지능 비서와의 대화 내용 중 5%가 성희롱”이라는 로빈 랩(Robin Lab)의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 인공지능은 갈수록 늘어나는 부적절한 대화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미디어 ‘쿼츠’ 기사에 의하면 주요 기업의 인공지능 음성비서들에게 미국언어학회에서 규정한 성희롱에 해당하는 몇 가지 말을 반복적으로 해 본 결과, 모두가 극도로 소극적인 반응으로 일관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 매춘부 같은 것!”과 같은 모욕적인 말에도 시리는 “할 수 있다면 얼굴을 붉혔을 거예요”, 알렉사는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미안해요, 못 알아들었어요”라는 대답을 할 뿐이며, 코타나는 대답 대신 인터넷에서 야한 동영상을 찾아 준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당한 대우에도 최소한의 대응조차 할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와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여성에 대한 편견 또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 우려하는 것은 결코 과도한 걱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결국 현실의 사회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그대로 투영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수준의 인공지능 비서들이 미투 운동을 벌이거나 성전환을 하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고 성평등을 이루어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AI 기술의 활용에 있어서도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들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할 때 UN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을 준수해야 하고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창조주’인 기업의 행위를 감독하는 주주이자 소비자로서 그들의 제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만큼 기업들이 발빠르게 개선책을 찾도록 하는 좋은 유인책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9.10.25.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판결문 공개 확대를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법원행정처가 후원했다. 오픈넷에서는 박경신 이사를 대리하여 손지원 변호사가 토론자로 참여해 ‘진정한 판결문 공개를 위하여 – 비례성 있는 개인정보보호조치의 필요성’이란 주제로 법원의 국가 후견주의적 제도 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최근 제도 개선 사항에 대한 평가 및 대안을 제안했다.
국민이 법원에 바라는 것은 판결문의 “공개”이지 “가공 및 배달”이 아니다. 발제문 각주에서는 “위 논문에서는, 전국을 통일하여, 확정된 전체 민사판결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키워드 검색을 허용하는 곳은 현재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전원열,「판결 공개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와 민사소송법 제163조의2」한국법학원, 2018)”는 내용이 인용되어 있다. 하지만 당장 Westlaw나 Lexis-Nexis에 들어가면 연방+50개주 대법원+하급심 전체 판결을 하나의 검색창으로 모두 검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위와 같은 분석이 나올 수 있었을까?
판결문 제공의 주체를 법원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법원이 모든 일을 직접 하려고 하니 모든 일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미국 법원이 저렇게 방대한 판결문을 손쉽게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법원은 “공개”만 하고 나머지는 민간에게 맡기기 때문이다. 주석 하이퍼링크등이 포함된 고급검색을 원하는 사람들이나 연구용으로 쓸 사람들은 Westlaw나 Lexis-Nexis를 이용하면 되고 무료검색을 원하는 사람들은 https://law.justia.com/cases/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한국에서도 법원이 우선 “공개”만 한다면 개인정보보호조치도 민간이 AI에 투자해서 자동으로 이름을 순간인식해서 블라인드 처리를 한다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정보보호도 하고 판결문 공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1]
[1] “Computer Aided Anonymization and Redaction of Judicial Documents”, Computer Science and Information Systems · January 2015 DOI: 10.2298/CSIS140808038S
2. 최근의 제도 개선 사항에 대한 평가
2018. 2. 22. 금태섭 의원실 판결문 공개 토론회의 박경신 발제에서 지적했던 판결문 공개 제도의 문제점과 이번 법원의 제도 개선 사항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 “첫째, 형사는 2013.1.1.이후 민사는 2015.1.1. 이후에 확정된 판결서만 공개되고 있어 아직도 판결에 영향을 주고 있는 판례들을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렵고,” → 미개선
(2) “둘째 미확정된 판결서는 공개대상이 아니어서 미확정된 사건에 대해 국민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어 있고,” → 미개선
(3) “셋째 형사는 임의어 검색이 불가능하여 판결의 공정성을 검토하기 위해 다른 사건들을 비교하기 위한 시도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으며,” → 개선
(4) “넷째 임의어 검색이 가능한 민사의 경우에도 85개[2]의 개별법원 별로 검색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 개선
(5) “검색결과로 제시된 판결서를 읽어보기 위해서는 판결서당 1,000원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검색을 통한 지식습득의 자동화라는 목표가 실질적으로 사장된다고 볼 수 있다. 검색을 해본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원하는 자료 1건을 찾기 위해 최소한 100건 정도의 해당 검색어를 포함하는 문서를 열람해보는 것은 상식인데 그렇다면 판결서당 1,000원이 아니라 10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미개선
(6) “다섯째, 모든 판결서에 등장하는 당사자들 외에도 모든 등장인물 및 법인들이 비실명처리되면서 판결서의 가독성이 매우 떨어진다.” → “비실명 처리 범위에 법인 등(단,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제외)의 명칭을 추가”함으로써 개악으로 평가됨. (법인명은 고유한 개인에 대한 정보로 볼 수 없음에도 비실명처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의문이다.)
(7) “법원도서관을 통해 사전에 예약을 하고 모든 판결문들을 (실명으로) 검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전국민을 상대로 단 2개의 터미널이 열려있다는 것은 의미있는 해법이라고 할 수 없다.” → 미개선
결국 2018년 2월 이후 1년 반 동안 두 가지 부분만이 개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 차례대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미개선사안 (5), (6), (7)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제안을 하고자 한다. 열람용 비식별화와 등사용 비식별화의 정도를 달리 하는 것이다.
즉, 우선 열람만 하는 판결서에 대해서는 지능형 비식별화시스템(이하 AI)을 통해 순간 블라인드처리를 하도록 하여 정확률이 100%가 아니더라도 열람을 가능하게 하고 – 이렇게 하면 도서관 열람이나 인터넷 열람이나 동등해진다 – 실제로 복사(프린트)하는 경우에만 수동 익명화 작업을 하도록 하고 이 등사용 판결서당 수수료를 받으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등사용 익명화 작업이 이미 이루어진 판결서는 도서관에서 열람/등사요청이 되든 인터넷에서 열람/등사요청이 되든 모든 국민들에게 무료로 그리고 즉시 공개하여야 한다.
지금 AI 비식별화 정확률은 15%라고 하는데, 일단 어느 수준의 정보를 비식별화 대상으로 보는 것인지 알기는 어렵다. 우선 지금까지 기 비식별화된 판결서들과 원판결서 모두를 AI에 제공하여 비식별화 기술을 스스로 고도화하고 정확률을 높일 수 있는 연구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비식별화가 필요한 부분이 어디까지인지를 논의함에 있어서도 “비례성 있는” 개인정보보호조치의 정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이는 아래에서 더 논의하기로 한다).
또한 지금처럼 열람 단계에서 판결서당 1,000원의 수수료를 받음으로써 예산을 확충하려 하지 말고, 다수의 국민들이 제대로 된 판결문 공개를 원하는 만큼, 국회를 통해 판결문 공개 예산을 확충하는 방향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4. 과거판결문 및 미확정판결문 비공개 사유 –법원에 대한 공격 우려?
미개선사안 (1)과 (2)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발제문에서는 미확정 판결문 공개에 대해 과거에는 제시되지 않았던 비공개 사유로써 “오히려 판결의 세세한 이유를 가지고 판결에 대한 꼬투리 잡기나 판결을 한 법관에 대한 흠집 내기, 인신공격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법관 역시 공무원이며, 법관이 행한 재판에 의해 국민들 개인의 인생이 결정적으로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막강한 힘을 가진 지위와 행위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비판은 법원이 수인하고 감당해야 할 몫이며, 이것이 비공개의 적절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과거 판결 공개 부분은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나, 이 역시 AI의 정확률에 의한 한계를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민간에서 빅데이터를 이용해 정확률을 높일 수 있도록 데이터를 선공개하고, 재판공개원칙에 따라 프라이버시 법익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개인정보임을 고려하여 엄밀도를 낮추는 방향을 모색하여야 한다.
5. 비교법적 문제들
미국 제도를 거론할 때 비교대상으로 PACER를 논하며 PACER에서의 실명공개가 제한된 점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러나 PACER는 ‘소송기록’ 전체를 열람하기 위한 시스템이라서 공개가 제한되고 있을 뿐 판결문은 법원이 직접 대중에게 제공하지 않더라도 WestLAW, Lexis, Findlaw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가 무료 또는 유료로 실명 및 검색가능 상태로 제공할 수 있도록 법원이 원자료를 제공한다. 따라서 ‘판결문’ 공개에 있어서 PACER를 비교대상으로 삼아서는 아니 된다. 또한 발제문상의 표는 다소 복잡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연방대법원, 연방항소법원, 나머지 연방법원 모두 법원의 명령에 의해 비밀로 유지되는 판결들 외의 모든 판결을 Westlaw, Lexis, Findlaw 등의 다양한 웹사이트에 무료 공급하고 있고 이 웹사이트들을 통해 국민들은 기간제한, 횟수제한, 장소제한 없이 판결문에 접할 수 있다.
독일의 판결문 공개 시스템에 대해서도, 발제문에서는 “독일 등 대륙법계 국가가 판결서의 제3자 인터넷 검색․열람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고 하여 재판공개원칙이나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을 미국보다 충실하게 구현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견해는 찾아보기 어려움”이라고 되어 있지만, 간단한 영문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이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3]들이 상당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문 외의 독문으로 된 독일 내의 비판적 견해들도 상당히 많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Tom Braegelmann, “Lack of Data, Lack of Law”
6. 비례성 있는 개인정보 보호조치
호주, 캐나다는 한국, 유럽과 같은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전면적인 실명 판결문 공개를 하고 있다. 왜 그럴까?
개인정보보호법은 행위규제가 아니라 위험규제이다. 즉, 나에 대한 정보를 내가 “소유”한 정보로 인정하고 그 정보를 동의 없이 이용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정보보호법의 원래 목적인 프라이빗(private)한 정보를 동의 없는 취득이나 제3자 공개의 위험을 최대한 막기 위해 대량으로 정보를 통제하는 정보통제자(data controller)들에게만 몇 가지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호주, 캐나다의 개인정보보호법은 ‘타법우선주의’로 구성되어 있다. 입법자가 적법하게 동의 없는 개인정보의 이용범위를 정할 수 있고 개인정보보호법은 이를 따르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법률에서 재판공개원칙에 따른 공개범위를 정하면 개인정보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즉, ‘개인정보보호조치’가 무엇인지는 대법원이 국회 입법을 통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판결서에 나타나는 개인정보는 헌법상 공개재판의 원리에 따라, 이를 집요하게 취득하고자 하는 자의 수집을 피할 수가 없는, 상대적으로 보호법익이 낮은 정보라고 할 수 있으며,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비식별화 수준의 완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위에서 제안한 열람용 비식별화와 등사용 비식별화의 구분에 있어서 이와 같은 비례성 있는 범위 내로 개인정보보호조치를 완화하는 것은 국민들의 불편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판결서에 나타나는 개인정보보호조치에 대해서 비례성 있는 수준으로 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의 원래 구성원리와도 화합한다. 개인정보를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비유일 뿐이다. 처음 개인정보보호규범을 만들던 사람들이 타인에게 정보제공을 하면서 정보이용 및 공개의 범위를 미리 협상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통제를 디폴트(default)로 정하여 힘없는 정보주체를 보호하기 위해 정보를 “소유”한 것처럼 권리관계를 정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정보는 그렇게 배타적으로 소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예를 들어 ‘김철수는 OOO이다’라는 구조를 가진 모든 문장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각각 김철수가 그 문장의 수집, 이용 및 제3자 제공에 대해 동의권을 가지는 개인정보를 구성하게 된다. 주어가 살아있는 개인인 한, <주어+서술어>의 구조를 가진 모든 문장은 주어가 지칭하는 사람에 대한 개인정보가 되며 그 개인이 통제권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김철수는 과학자이다’는 정보를 입수하려면 김철수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하고, 또 이렇게 얻은 정보를 타인에게 공개하거나 전달하려 하여도 김철수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말하고 들음에 있어서 그 타인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개인정보보호법이 상정하고 있는 시나리오였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에 대한 정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자의 표현의 자유는 포기되어야 한다. 모든 표현은 정보의 처리이고 그 표현이 타인에 대한 것일 경우 필연적으로 개인정보의 처리가 된다. 이렇게 되면 개인정보보호 법리는 민주주의에 심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2019.11.15. 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 전국도덕교사모임이 주최한 “학교성평등교육, 어디로 가야하나? – 광주시교육청의 도덕수업 사법처리를 통해 본 현실과 과제” 토론회가 전교조본부 4층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토론회에 오픈넷 오경미 연구원이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경찰 기소의견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발제했다.
[발제문]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경찰의 기소의견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
오경미 오픈넷 연구원
광주의 중학교 도덕교사인 배이상헌 교사가 ‘성과 윤리’ 단원 수업 중 성평등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광주시교육청에 의해 수사의뢰와 직위해제를 당한지 벌써 4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결국 경찰은 지난 9월 배이상헌 교사를 아동복지법 위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말았다. 광주시교육청은 해당 사건을 성비위로 판단하고 성급하게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처분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교육 영역의 특수성과 전문성, 수업을 위해 채택된 자료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고려한다면 해당 사건은 성비위 사건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이 기소 처분을 내린다면 교육 영역 전반에 대한 악영향은 물론이고 교사의 재량권 위축으로 수업의 질 저하로 이어지는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스쿨미투와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비난을 초래할 소지도 있다. 따라서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는 하루빨리 중단되어야 하며 광주시교육청은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직위해제를 취소하고 학교로 복직시키고,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려야 할 것이다.
학교내 성희롱의 개념과 유형
당사자가 직위해제된 이틀 후인 7월 25일에 열린 학교 성고충위원회는 광주시교육청의 판단과 달리 성비위 혐의사실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또한 당사자는 자신이 성비위 혐의로 수업에서 배제된 것을 알게 된 다음날인 7월 19일에 광주시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에 교권침해 구제 신청을 하였고, 직위해제된 이후 시민들을 대상으로 당시의 수업 내용을 공개하는 등 해명을 위한 개인적인 노력을 지속하였다. 교사단체와 시민단체 역시 광주시교육청의 판단에 언론 매체를 통해 거듭 이의를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의 제기에 광주시교육청은 교육부의 성비위 매뉴얼에 따라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성고충 민원을 접수, 전수조사하고, 성비위 혐의 사실을 확인, 해당 교사를 피해 호소 학생들과 격리한 것일 뿐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광주시교육청의 답변과 응대에 대한 신뢰는 이 사건을 성비위사건으로 볼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사건을 성비위사건으로 분류할 것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교육부에서 배포한 「학교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과 서울시교육청에서 배포한 학교관리자 연수자료인 「교원 성비위 징계처분 사례 및 판례」를 통해 성희롱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해당 자료가 제시하고 있는 유형과 사례를 살펴보자.
교육부에서 배포한 성비위매뉴얼인 「학교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에서 학교내 성희롱·성폭력은 학교 내 구성원 간에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적인 언행을 일방적으로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강간, 추행, 성희롱 등 성을 매개로 일어나는 모든 신체적·정신적·언어적 폭력을 포괄함”이라고 성희롱과 성폭력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학교내 성폭력은 형법을 기본으로 하며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아동복지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고, 성희롱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아동복지법」,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법적 근거를 둔다. 성폭력은 관계법령에서 범죄의 유형이 열거식으로 정리되어 있어 개념규정을 대신하고 있으나, 성희롱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 해당 매뉴얼에서는 학교 내 성희롱을 ‘학교 내 구성원 간에 성적 언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나아가 학교 내 성희롱의 대상이 아동·청소년일 경우, 아동복지법 제17조 제2호[1] 및 관련 판례에 근거하여 아동·청소년에게 성적 수치심,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건전한 성적 가치관의 형성 등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발달을 현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개념을 정의한 후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의 유형을 예시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교원 성비위 징계처분 사례 및 판례」 역시 위의 매뉴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료집에서 성희롱은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더불어 학생대상 성비위의 사례와 징계처분의 결과를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사례는 아래와 같다.
[사례1] 고등학교 교사가 회식 중 기숙사에 있던 여학생에게 전화를 하여 외박하라고 하면서 “너랑 자고 싶다.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 하고 문자를 보내 성희롱 ☞ 징계처분 결과 : 파면
[사례2] 교사가 술을 먹고 아르바이트하던 가게 앞에 쓰러져 있는 여학생에게 강제로 손을 깍지 끼고 데려가서 “너랑 자고 싶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여 성희롱 현행범으로 체포 ☞ 징계처분 결과 : 해임
[사례3] 중학교 교장이 수학여행 중 버스안에서 여학생 1에게“백화점에서 옷 한 벌 해 줄테니 남아서 데이트하자”라고 말하고, 여학생 2에게 “너 가슴크다”라고 말하고, 여학생 3에게 “얼마나 컸나 안아보자”라는 등의 언동을 하여 성희롱 ☞ 징계처분 결과 : 해임
[사례4]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복도를 지나가는 여 교사를 가리키면서 “저 여자 제가 놀다버린 여자입니다.”라고 말하고, 방학 중 쌍꺼풀 수술로 학교에 못나온 또 다른 학생에게 “너 산부인과 갔지?”라고 말하고, 또한 맨발로 슬리퍼 신은 학생에게 “너 섹시하다”라고 말하는 등 상습적으로 여학생과 여교사들에게 성희롱 ☞ 징계처분 결과 : 해임
[사례5] 중학교 교사가 핸드볼 선수인 여학생들에게 “섹시하네, 야하다, 속옷은 무슨 색이냐”등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는 언어를 사용하여 성희롱 ☞ 징계처분 결과 : 해임
위의 유형별 예시와 사례는 교사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의 구체적인 상황과 언행, 실행방법 등을 열거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학교내 교사에 의한 학생대상 성희롱은 학교 내외부에서 교사가 한정된 범주의 그룹이나 개인을 특정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들에게 성적 언동을 하여 학생이나 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 학생의 의지에 반하여 신체접촉을 시도하거나 특정한 호칭으로 부르거나 스토킹하거나 개인연락처로 문자나 영상, 사진 등을 보내는 등의 행위, 수업의 내용과 무관한 성적 언동을 하는 것, 신체나 외모에 대한 평가나 여성에 대한 편향된 평가를 일삼아 여성이나 여성의 신체는 물론이고 성도덕에 관해 그릇된 인식을 유발하는 행위 등으로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의 본질과 남은 문제
앞의 논의로 돌아가면, 애초 이 사건은 사건을 구성하는 형식적인 요소들에 의해 성비위사건으로 분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잘 알다시피 본 사건은 ‘성과 윤리’라는 성에 관한 지식을 다루는 수업에서 성을 주제로 한 수업교재에 불편함을 느낀 몇몇의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건 자체가 성이라는 문제와 분리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비위로 접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건의 시발을 조금 더 따져보면, 본 수업에 대한 이의 제기는 사실 올해가 아니라 지난 해 이미 한 차례 학생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한다(교재, 교재를 감상하는 여건, 교재를 상영하는 주체인 교사의 성별 등[2]). 이 학생들이 올해 해당 수업을 재수강하게 되었는데, 자신들이 지적한 지점들이 시정되지 않은 것을 깨닫고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은 표면상 성이라는 문제와 연루되었기 때문에 성비위 사건으로 분류된 것이지 사건의 본질은 교사가 학생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멸시하여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는 성희롱이 아닌 수업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제기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수업의 내용적 측면들을 따진다면 이 사건은 성비위사건으로 분류할 수 없으며, 그렇게 보아서도 안 된다. 성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수업의 내용이며(그가 수업시간 중에 발설한 성에 관한 내용은 모두 수업의 내용과 직결된 것이다), 수업을 위해 채택된 자료인 엘레노르 푸리아의 영상 역시 수업의 내용과 무관한 음란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엘레노르 푸리아의 영상인 〈억압받는 다수〉(2010)는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과 성관계가 완벽하게 역전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현재 우리의 현실을 미러링하고 패러디한다. 영상은 남성으로 태어났기에 남성이 살아가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위협과 굴욕, 멸시를 가상의 스토리로 대리체험해보라는 것과 이것이 여성이 매일 겪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을 짧고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이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감독은 폭력 장면과 거친 언설을 여과없이 재현하거나 오히려 과장한다. 영화의 직설적 화법은 영화의 의도 전달을 용이하게 해 수용층의 폭을 확장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미러링의 특성상 현실의 암담함과 참담함이 잔인하게 반복된다는 것과 문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뚜렷한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영상 자체, 감독이 현실의 문제를 재현하기 위해 채택한 재현의 방식과 이 방식으로 인해 영화 내용에 거북함을 느꼈을 학생들이 있으리라는 가정은 쉽게 할 수 있다. 성인들도 미러링에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거부감은 영상의 정치적 급진성 때문인 것이지 영상의 음란성 때문은 아닌 것이다. 영상이 수업의 목적에 부합하고, 배이상헌 교사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해당 영상을 학생들에게 상영한 것이 아니므로 교육부에서 배포한 「학교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는 물론이고 서울시교육청에서 배포한 학교관리자 연수자료인 「교원 성비위 징계처분 사례 및 판례」에 제시된 성희롱의 개념 정의나 제시된 성희롱 사례·유형별 예시에서도 본 사건에 해당하는 유형을 찾을 수 없다. 경찰 기소의견의 근거가 된 아동복지법 제17조 제2호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불평등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불쾌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이 영상을 시청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낀 불쾌감이나 불편함이 문제라면 성적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에서 필연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신체나 생식기를 설명하기 위해 신체의 이미지나 생식기의 이미지를 보여주거나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A가 아닌 사건을 A를 해결하는 절차대로 하고 있으니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광주시교육청의 응답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다만 해당 수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학생들이 지적했던 사항 중 하나가 배이상헌 교사에게 성인지적인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이 문제제기는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바는 없다. 공식적인 문제제기의 창구가 없어서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고, 교육청을 통해 사건을 민원형식으로 접수할 수밖에 없었다면 학생들이 고충을 쉽게 토로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학교 차원에서 행해진 성고충위원회가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이 성비위는 아니나 교사가 성인지적감수성 향상을 위해 일정시간의 교육을 이행할 것을 권고한 결정 사항과 일치한다. 그러나 성인지적인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성비위 교사로 징계하거나 아동복지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부분은 성고충위원회가 권고한 바와 같이 별도의 교육과정이나 연수를 통해 해결하면 될 사안이다.
교육청이 수업배제 조치를 취했으나 교사가 불복하고 수업을 강행한 것이 학생들에게 위협을 주었기 때문에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2차가해 내지는 학생들에게 위력을 행사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왜 수업강행이 이루어졌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신고를 접수받은 교육청은 당사자 학생들과 당사자 교사를 분리해야 하는 원칙에 따라 배이상헌 교사를 수업에서 배제하였다.[3]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에게 사건의 경위를 알려주면 고발한 학생을 특정할 수 있으므로 학교와 교육청은 교사 본인에게 사건 경위를 알리지 않았다. 이에 배이상헌 교사는 이 과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수업배제 결정에 불복해 수업을 강행했다. 본 사건을 여성주의 단체에서 스쿨미투로 연결하기 시작한 시점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광주시교육청은 어떤 교사가 성비위로 연루되기만 했다면 혐의 없음으로 판결이 나더라도 해당 교사들에 대해 행정상으로 반드시 징계처분을 내려왔다고 한다. 때문에 그간 광주시교육청에 대한 교사들의 불신이 차곡차곡 쌓여왔다고 한다. 배이교사의 수업 강행은 광주시교육청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속사정에 대한 이해가 없는 누군가에게 배이 교사의 대응은 위협적으로 비춰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수업강행이 학생들의 입장에서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 배이 교사에게도 책임은 있다. 결국 학교내 성폭력·성회롱에 대한 전문적인 검토를 결여한 그러면서 과도하게 권위주의적인 광주시교육청의 행정절차, 이 기관을 불신한(불신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의 대응과 이 대응이 의도치 않았으나 필연적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관계자가 이 대응에 위협을 느꼈을 가능성을 고려해 여성단체들이 학생 보호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일이 진행되어 왔다.
스쿨미투의 잣대는 조심스럽게 적용해야
현재 이 사건에 대해 학생이 제기한 문제의 입장과 반대되거나 다른 견해는 그 학생에 대한 가해로 해석되거나, 본 사건을 페미니즘의 광풍, 스쿨미투의 부작용으로 간주하는 입장이 서로의 의견을 고수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추이를 섬세하게 읽지 않고 사건의 두 당사자인 학생과 배이 교사 사이의 갈등과 대립에 초점을 과도하게 맞추는 시각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다.
광주시교육청과 광주여성노동자회, 광주여성민우회, 광주여성센터, 광주여성장애인연대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이 이 사건을 스쿨미투로 간주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배이상헌 교사를 비롯해 그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은 이 사건을 스쿨미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교사가 학생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수업 도구, 자료를 택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로 엄중한 원칙을 가지고 스쿨미투 사건으로 처리할 예정이라 하였다.[4] 이에 대해 교사 당사자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학부모 단체들도 나서서 성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에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채택된 영상을 보는 것, 해당 수업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불편함과 수치심을 성희롱으로 겪은 불편함과 수치심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을 문제 삼으며 스쿨미투로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5]
광주시교육청의 주장과 달리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수업 도구와 자료를 택한 것은 성비위도 될 수 없으며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 역시 스쿨미투가 될 수 없다. 재차 말하지만 성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해당 자료를 상영하였다면 성비위가 될 것이나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수업의 자료를 택했다는 것은 유화를 막 그리기 시작한 학생에게 반 고흐의 작품을 주고 그리라고 한 것 혹은 철학 수업시간에 고도로 현학적인 철학자의 책을 탐독하라고 과제를 내어준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제의 난이도 여부는 교육청에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이 분야의 전문가인 교사들이 모여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학교 성고충위원회 역시 수업자료 선택시 학년별 수준에 대한 고려가 더 필요하다는 권고를 내렸으나 해당 사건에 대한 성비위의 여부는 근거없음으로 결론내렸다.
여러 가능성을 언급하며 본 사건을 스쿨미투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수업의 특성상 지식과 의견의 전달의 전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거나 학생들에게 쉽게 수업의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 제공하는 자료는 어느 정도 일방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민원의 내용 중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당 교사가 학생들에게 성적 위력이나 위력을 행사해 수업을 강행했다는 내용은 언급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 사건을 스쿨미투 사건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또한, 학습 교재로 인해 불거진 불쾌감을 권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 역시 있는데, 이 역시 수업이나 강의와 같은 지식전달 시스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접근이다. 해당 사건을 성적 위계의 문제나 젠더 폭력, 성폭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접근은 성폭력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 적용하므로 문제적이다. 성폭력의 범주를 이렇게 광범위하게 확장하게 되면 학생과 교사나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과 같이 지식이나 의견을 전달하거나 지시를 내려야하는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갈등을 모두 성폭력으로 간주할 가능성을 높여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6] 이와 같은 접근은 궁극적으로 스쿨미투의 원래 취지를 왜곡시켜 이 운동에 대한 불필요한 적대감만을 높일 우려가 높다. 스쿨미투의 본질은 교사가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교권을 이용해 학생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등의 언행으로 학생에게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야기하는 것을 고발하고 이들이 실질적인 처벌을 받도록 만드는 실천운동이다. 스쿨미투의 정의범주를 좁힐 필요가 있다.
광주여성연합이 본 사안을 스쿨미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시점과 스쿨미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광주시청의 주장과는 차이가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광주여성연합이 본 사안을 스쿨미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시점은 배이 교사가 수업배제에 불복하고 수업을 강행한 시점부터이다. 광주여연은 방학이 끝나는 8월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의 내용과 피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해당교사 측의 문제제기 방식은 학생들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었”으며 배이 교사와 교사를 지지하는 모임이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하는 언급들이 문제제기를 한 학생들을 “수업을 이해하지 못한 미숙한 학생”이라고 보이게 할 수 있으며 논쟁의 구도를 교육청과 교사의 대립으로 한정해 본 사건의 본질인 해당 교사의 수업에 대한 학생의 문제제기를 지워버렸다고 비판했다. 또한 광주교육청 역시 “피해자 보호를 빌미로 침묵”하고 “해당 교사에게 소명 기회”를 주었는가 의문스러우며, “침묵하며 경찰조사에만 의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피해자 보호가 아닌 2차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광주여연은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판가름하자는 비판을 한 것으로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수업의 문제점과 부족한 점을 지적한 것이 사건의 본질인데,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본질이 잊히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지점은 중요하다. 사건의 본질은 수업 자체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인데 그 구체적인 지점에 대한 내용은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추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을 보호하면서도 그들의 문제제기를 어떻게 공론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당사자의 문제제기는 곧 2차가해 혹은 피해자를 권위로 짓누르는 ‘남성적인’ 행위로만 해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성희롱과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은 이 사안을 스쿨미투로 보는 것은 스쿨미투 운동에 불신을 초래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스쿨미투 취지를 왜곡시킬 소지가 다분하므로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광주시교육청은 배이 교사의 직위해제 취소와 복직을
일부 학생들이 거부감을 느꼈다고 해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에 보장되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에 의해 보장되는 교사의 교육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해당 영상은 ‘성과 윤리’라는 단원 수업을 위한 학습자료로 선택된 것이며, 자료의 선택은 교사의 재량이다. 교사가 음란물, 명예훼손물, 또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을 배포했다면 법적 개입이 필요하겠지만, 수업을 위해 합법적인 자료를 선택했다면 사회 상규에 어긋나거나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라 해도 학교 내에서 교육전문가들을 포함하는 교육의 당사자들이 학습 자료 선택의 옳고 그름에 관해 자주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옳다. 수업을 위해 어떤 자료를 선택할 것인가는 교육철학과 교육윤리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들이 논쟁하고 논의할 문제이지 경찰이나 검찰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비전문적인 판단으로 전문적이고 특수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경찰은 자료로 활용된 영상이 어떤 수업의 어떤 목적과 목표를 위해 채택되었는지와 같은 지점들은 무시한 채 신체의 노출 정도, 폭력 재현의 수준과 방식 같은 1차원적이고 기계적인 판단에 근거해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법적 처벌을 시도하고 있어 영상자료가 비윤리적인지를 진지하게 다투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형사처벌은 교육의 영역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인 개입이 되어 정권이 지향하는 이념과 취향에 좌우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법적 처벌이 현실화된다면 교사들이 수업을 위해 채택하는 자료의 범위는 현저하게 축소될 것이다. 법적 처벌은 교사들에게 위축 효과로 작용해 수업 내용 구성과 학습자료의 범위를 자발적으로 검열하고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수사중단을 촉구하며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려줄 것을 요구한다. 광주시교육청 역시 사태해결을 위해 형사처벌에 의존해 배이상헌교사를 직위해제하였다면 이를 취소하고 교육당사자들 사이의 논의부터 시작할 것을 요청한다.[7]
[2] 2019년 11월 10일 정오경 전교조 회원인 모교사와의 통화로 알게 된 내용이다.
[3]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수업배제와 경찰 수사의뢰, 직위해제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배이상헌 교사가 수업배제를 통보받은 뒤 이에 불복해 수업을 강행하여 교육청이 수사의뢰를 하고 직위해제를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는데,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세 개의 조치를 동시에 취한다는 교육청의 통보는 배이상헌 교사에게 보낸 내용증명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와 해외 콘텐츠제공사업자(CP) 간 ‘망 사용료’ 공방이 뜨겁다. ISP들은 트래픽이 많은 CP가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보는 반면 CP들은 ‘망 중립성’을 들며 납부에 반대하고 있다. 이 논란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을 13일과 15일자에 걸쳐 게재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가 전격적으로 ‘이용자 수’ 및 ‘트래픽 양’이 많은 인터넷회사들에 ‘서비스 안정 수단의 확보’ 의무를 부과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문맥상 인터넷 트래픽의 혼잡 의무를 지우겠다는 내용이지만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인터넷은 물리적으로는 컴퓨터들의 연결체일 뿐이지만 민주주의의 양태를 바꿔놓았다. 실제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 통신, 즉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규모가 천지 차이다. 보통은 자신의 주장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려면 콘텐츠의 크기, 이용자 수, 이용자의 위치에 비례해 돈이 든다. 우표를 붙이든 국제전화비를 내든 받아줄지 알 수 없는 방송이나 신문에 제보하든 품이 무지하게 많이 든다.
하지만 콘텐츠가 인터넷에 들어가는 순간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비용은 제로다. 인터넷에 콘텐츠를 올려놓기만 하면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의 비용으로 콘텐츠의 복사본을 가져간다. 콘텐츠 제공자는 자신이 있는 지역의 망사업자를 통해 콘텐츠 복사본을 올려놓는 비용만 부담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복사본을 가져가도 비용이 늘지 않는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말이 인기 있다고 해서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으니 자유롭게 수많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이 ‘인류 최초로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구현할 수 있는 매체’라는 말은 이래서 나왔다. 과거 표현의 자유는 너무나 허약했다. 권력에 대항하려면 골방에서 먹물 등사기로 힘들게 만든 팸플릿을 가슴속 깊이 숨기고 1, 2장씩 나눠주는 것이 표현의 자유였다.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 행사 방식을 ‘규모화’시켰다. 이제 컴퓨터 앞에 텍스트든 영상이든 올리는 것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
최근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에 걸고 있는 싸움은 바로 이 인터넷의 규칙을 수정하자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인기가 많아 수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 콘텐츠를 끌어다보고 있으니 국내 망사업자인 자신에게 돈을 내라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주장이며 인터넷으로 규모화된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 이렇게 되면 좋은 콘텐츠를 인터넷에 올리기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수많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할 수 있는데 그 수가 많아지면 이용자 소재지의 망사업자가 통신비를 청구하겠다니, 누가 좋은 글을 올리겠는가.
최근 국내망사업자들이 해외 콘텐츠업자에게 캐시서버 접속에 대해서 돈을 받겠다고 하면서 들고 나오는 게 ‘역차별론’이다. 국내망사업자들이 국내콘텐츠이든 해외콘텐츠이든 국내이용자들에게 중계해주고 있는데, 국내콘텐츠업자들로부터는 인터넷접속료를 엄청나게 받고 해외 콘텐츠업자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으면 국내업자들에게 역차별이 된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을 보자. 국내이용자는 자신에게 세계의 다른 단말들과의 소통을 중계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이웃 단말에게 인터넷접속료를 내고 접속을 하는데 이 ‘이웃단말’을 보통 망사업자(왼쪽 상단 Tier 3)라고 한다. 지역 망사업자는 다시 자신보다 세계의 단말들과의 연결성이 더 좋은 상위계위 망사업자(왼쪽 상단 Tier 2)에게 다시 접속료를 내고 그 망사업자는 다시 더 상위 망사업자(중앙 왼쪽 Tier 1)에게 접속료를 낸다. 최상위망사업자들끼리는 서로 돈을 주고 받지 않는 대신 그 돈으로 넓은 지역에 망을 깐다.
이 그림에서 해외콘텐츠업자(예: 페이스북)들은 해외에 있으니 원래는 국내 망사업자와 접속하지 않으니 낼 접속료가 없다. 또 해외콘텐츠업자들은 국내 망사업자들로부터 세계의 단말들과의 소통을 중계받지도 않으니 원래 국내망사업자에게 낼 접속료가 없다.
물론 국내 망사업자들도 해외콘텐츠와 연결도 하지 않으면서 접속료를 달라는 것은 아니다. 국내 망사업자는 해외콘텐츠업체에게 부탁하여 국내에서 인기있는 해외콘텐츠들의 복사본을 떠서 담아놓은 국내서버(즉 “캐시서버”, 그림에서 파란색 구름모양)를 자신의 망에 연결해놓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접속료는 접속용량에 비례하여 내게 되는데 국내 이용자들이 많이 해외콘텐츠를 접속할 때마다 국내 망사업자는 상위망사업자(그림 중앙의 Tier 1 중 왼쪽)로부터 확보해야 하는 접속용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국내망사업자는 상위망사업자에게 내는 접속료를 아낄 수 있으니 좋아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설치한 것이다. 해외콘텐츠업자도 자신의 콘텐츠가 현지망사업자에게 내야 하는 접속료를 역시 아낄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국내망사업자들이 국내 콘텐츠에 대해서는 캐시서버를 설치하지 않는다. 국내콘텐츠와 국내이용자들을 중계해줄 때는 해외접속용량을 확보할 필요가 없으니 캐시서버설치로 절약할 중계접속료 자체가 없으니 캐시서버를 설치하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 국내망사업자들이 이렇게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설치한 캐시서버와 자신의 망과의 접속료를 이제와서 달라고 하면 해외콘텐츠업자 입장에서는 쉽게 거부할 수 있다. 그냥 원래 루트(위 그림의 파란색 줄) 대로 Tier2, Tier1을 통해서 소통하자고 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해외콘텐츠업자가 자신의 지역망사업자에게 내는 접속료에서 한국이용자들의 접속 때문에 발생하는 접속용량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또 국내망사업자들이 캐시서버 접속료를 받기 시작하면 위에서 망중립성 원리에도 어긋난다. 망중립성 원리란 인터넷은 모두가 서로의 정보를 상호 전달해주는 상부상조의 약속으로 묶여 있으니 정보를 전달해주는 대가는 없고 물리적 접속을 유지하는 비용만 있다는 원리를 말한다. 이미 국내망사업자들은 자신에게 접속하는 국내이용자들에게 해외콘텐츠와의 중계에 대해서 돈을 이미 받았다. 해외콘텐츠업자로부터 국내이용자와의 중계 명목으로 별도의 돈을 받는다는 것은 이중으로 돈을 받게 되는 것이며 결국 정보전달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 새롭게 설치된 캐시서버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캐시서버를 설치된 것이니 그 대가로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논거가 부족해서 그러는 것인지 국내망사업자들은 캐시서버 접속료를 달라고 할 때 꼭 국내콘텐츠업자와의 역차별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위 그림에서 보듯이 해외 콘텐츠업자가 캐시서버를 설치함으로써 얻는 것은 국내 이용자와의 소통(하늘색 화살표)이지만, 국내 콘텐츠업자가 인터넷접속료를 내서 얻는 것은 전 세계 단말들과의 연결(분홍색 선 전부)이다. 처음부터 비교불가한 것이라서 차별을 말할 수도 없다.
사실 ‘망이용료’란 말이 나온 것도 결국 역차별론을 위해서 나온 것이다. 하늘색 선은 캐시서버 중계접속료이고 분홍색선 전부는 인터넷(전체)접속료이고 2가지는 서로 다른 것인데 같다고 주장하려 하니 더 넓은 개념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그럼 엄청난 액수의 인터넷접속료를 내고 있는 국내콘텐츠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의 인터넷접속료를 낮춰야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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