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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남북한과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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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남북한과 러시아

익명 (미확인) | 화, 2019/03/26- 14:00

(1) 김정은 방러 임박?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뒤 북한과 러시아간 움직임이 분주하고 심상치 않다. 양측 고위 인사들의 접촉이 빈번해졌다. 하노이 회담 일주일 만인 3월 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북한과 러시아가 정부 차원에서 경제협력 문제를 논의하는 <북-러 통상경제·과학기술 협력 정부 간 위원회(북-러 경제협력위원회)> 제9차 회의가 열렸다. 14일에는 임천일 북한 외무성 부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부 아태담당 차관과 회담했다. 16일에는 러시아 상원 대표단이 평양을 찾았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이고 예정된 상호 방문으로 이해된다. 3월 17일이 ‘북러 경제.문화 협력 협정’을 체결한지 7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일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창선 부장은 모스크바에 나흘 머무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3일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타나면서 언론에 포착됐다.

김창선 부장은 김정일.김정은 일가의 집사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요 정무를 보다가 막히는 일이 생길때면 김창선 부장을 불러 아버지 김정일때는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지 물어본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서실장이자 대외방문 의전 책임자로 알려진 김창선 부장이 모스크바에 나타났으니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읽혀질만하다.

3월 23일 모스크바 세레메쩨보 공항에 나타난 김창선 부장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무대에 전격 등장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자 러시아도 김 위원장의 방러를 적극 추진했다. 지난해 5월 평양을 방문한 라프로프 외무장관은 김 위원장을 만나 9월 동방경제포럼도 좋고 편리한 시간에 러시아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6월 러시아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크렘린에 따로 부른 푸틴 대통령은 재차 김 위원장의 방러를 요청했고, 9월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에 평양을 찾은 마트비옌코 상원의장도 김정은 위원장과 환담한 바 있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서울을 방문한 마트비옌코 상원의장을 단독 인터뷰했는데,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에 대해 마트비옌코 의장은 ”양국 지도자들이 만날 장소와 시간을 놓고 북러간에 긴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가까운 장래, 아마도 연말 전에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에 대해 많은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된 뒤 갑자기 김창선 부장이 모스크바에 나타나고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언론에선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유대관계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무역협상을 앞둔 시점이라 중국은 운신의 폭이 좁은 만큼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자유로운 러시아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와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줄 선물이 마땅치 않더라도 미국을 긴장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김창선 부장이 이번 모스크바 방문길에 김 위원장의 방러 문제를 논의했는지, 논의했다면 구체적 방문 장소와 시기를 결정했는지, 결정했다면 이를 어느 시점에 공개할는지 등이 관심사로 주목된다.

 

(2) 북러 경제협력위원회

지난 6일 9차 ‘북-러 경제협력위원회’에 북한에선 김영재 대외경제상을 단장으로 수산성, 보건성, 철도성 등 여러 정부 부처. 기관 대표들이 정부 대표단으로 참가했고 러시아에선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극동개발부 장관이 이끄는 정부 대표단이 참석해 양국간 교역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북러 양국은 해마다 상대국을 오가며 경제협력위원회를 열고 있으며, 제8차 회의는 지난해 3월 평양에서 열렸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러 교역 확대 방안과 루블화 결제 도입 방안 ▶두만강에 자동차 통행용 교량 건설 문제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 체류 문제 ▶나진~하산 복합물류 사업 추진 문제 ▶러시아에 대북 무역 전담 회사 설립 문제 등이 논의됐다고, 코즐로프 장관이 회담이 끝난뒤 언론 브리핑에서 밝혔다. 북한은 이 중에서도 두만강 자동차 교량 건설과 북한 노동자 체류 문제에 관심을 많이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두만강 철교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2015년부터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통행용 교량 건설 협상을 벌여오고 있다. 북러 국경의 두만강 위에는 현재 북한 두만강 역과 러시아 하산역을 연결하는 기차가 지나가도록 철교가 놓여 있지만 자동차 도로용 다리는 없다. 코즐로프 장관은 “자동차 도로용 교량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타당성 조사를 주문한 상태이며 그 결과에 따라 (북측과) 사업 견적 문제와 건설 조건 등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교량은 길이 915m, 너비 14m, 2차선 도로에 하루 차량통행량은 500대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교량 건설에는 4천만 달러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측이 적극적인 반면 러시아측은 소극적인 편이다. 이미 벌려놓은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유엔 제재 등으로 소강상태인지라 러시아 입장에선 북러 국경에 또다른 건설 인프라를 추진해야할 필요성을 덜 느끼는 듯하다. 시베리아 석탄을 북한 나진항을 통해 한국에 보내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위해 러시아는 나진역과 하산역 54km를 개보수하는 사업에 7천만 달러를 투입해 2013년 9월 완공한 바 있다. 당초 나진~하산 프로젝트에는 한국 기업 컨소시움도 참여하기로 했었으나,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가 시행되면서 무기한 연기됐다.

러시아 건설현장의 북한 노동자들

코즐로프 장관은 또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문제도 논의했고, 특히 안보리 결의의 틀 내에서 북한 노동력을 계속해 이용하는 문제가 검토됐다고 밝혔다. 한때 3만 8천여명에 달했던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은 현재 9,800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하는데 (실제론 만 2천명 정도로 예상됨) 유엔 대북 제재에 따르면 올 12월까지 순차적으로 북한에 돌려보내야 한다.

2017년 9월 3일 실시한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9월 11일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는 다른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 신규 채용, 고용을 금지했다. 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미사일 ‘화성-15형’ 발사에 대한 응징으로 2017년 12월 22일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모두 송환시키도록 규정했다. 북한 정부로선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러시아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번 회의에선 어학연수생으로 북한 노동자를 받아 들인다거나 사할린에 기술자로 파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모스크바 회의에선 이밖에도 러시아에 북한과의 무역을 전담하는 회사를 건립하고 러시아 내에 북한 상품관을 개설하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3)북한의 전략적 도발

필자가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재직할 당시 북한은 전략적 무력 도발을 강도 높게 자행했다. 특히 2016년과 2017년 2년 동안에 집중됐는데, 3차례의 핵실험과 35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진행됐다. 다음은 2016~2017년 동안의 주요 무력 도발 일지다.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 북 “첫 수소탄 실험 성공”

3월 3일: 동해상으로 300㎜ 방사포 6발 발사

3월 10일: 동해상으로 스커드 계열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 발사

3월 18일: 동해상으로 노동계열 미사일 2발 발사

3월 21일: 동해상으로 300㎜ 방사포 5발 발사

3월 29일: 300㎜ 방사포 추정 발사체 1발 발사

4월 1일: 동해상으로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1발 발사

4월 15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1발 발사

4월 23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4월 28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2발 발사

5월 31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1발 발사

6월 22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2발 발사

7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7월 19일: 동해상으로 노동 2발, 스커드 계열 1발 발사

8월 3일: 동해상으로 노동미사일 2발 발사

8월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9월 5일: 동해상으로 스커드 계열 추정 미사일 3발 발사

9월 9일: 5차 핵실험, 북 새로 연구 제작한 핵탄두 위력 판정 시험 주장

10월 15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무수단 미사일 1기 발사

10월 20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무수단 미사일 1기 발사

-2017년  2월 12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서 동해상으로 북극성-2 미사일 1기 발사

3월 6일: 평북 동창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스커드 개량형 추정 미사일 4기 발사

3월 22일: 강원도 원산비행장 일대에서 미사일 1기 발사했으나 실패 추정

4월 5일: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불상 발사체 발사

4월 16일: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불상 미사일 발사를 시도했으나 실패 추정

4월 29일: 평안남도 북창 일대서 북동방향으로 미사일 1기 발사했으나 실패 추정

5월 14일: 평안북도 구성 일대서 미사일 1기 발사

5월 21일: 평안남도 북창 일대서 미사일 1기 발사

5월 27일: 장소 미상(북한 동쪽지역 추정) 지대공 미사일 발사

5월 29일: 강원도 원산 일대서 동쪽으로 지대지·지대함 복합 미사일 발사

6월 8일: 강원도 원산일대서 동해방향 지대함 미사일 수발 발사

7월 4일: 평안북도 방현 일대서 동해방향 미사일 발사 (화성 14형)

7월 28일: 자강도 무평리 일대서 동해방향 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4형)

8월 26일: 강원도 깃대령일대서 동해방향 단거리 미사일 3발 발사. 이 중 2발 성공

8월 29일: 평양 순안 일대서 북태평양 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2형)

9월 3일: 풍계리 일대서 6차 핵실험

9월 15일: 평양 순안 일대서 북태평양 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2형)

11월 29일: 평안남도 평성 일대서 동해상으로 장거리탄도미사일 1기 발사

   김정은, ”신형 ICBM 화성-15형 발사 성공, 핵무력 완성 선언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불과 석달 뒤 2018년 3월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특사에게 비핵화 의지를 전격적으로 밝혔다. 2016~2017년 동안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로 끌어올린 것은 결국 핵협상에서 자신들의 몸값을 최대치로 높이기위한 계산된 전략적 도발이자 몸부림이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4) 러시아의 대응

1) 대북 금융거래 전면 금지

북한의 강도 높은 전략적 도발에 국제사회의 대응은 단호했다. 유엔은 2016년부터 2년 동안 모두 6개의 사상 유례없는 대북 제재안을 의결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도 이같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적극 동참했다. 러시아가 취한 대응은 대북 금융거래 전면 금지와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 송환으로 압축된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한지 57일 만인 3월 3일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의 2270호는 ▷소형무기(small arms) 수입 금지 ▷북한을 들고나는 모든 화물에 대한 전수조사 의무화 ▷북한산 석탄, 철, 철광 수입 금지 ▷항공유 수출 금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 대폭 강화 등이 주요 골자인데, 70년 유엔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군사적 조치로는 가장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 결의로 평가됐다. 두달 뒤 5월 19일 러시아 중앙은행은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사실상 중단할 것을 지시하는 통지문을 산하 은행과 금융기관들에게 발송했다. 통지문의 내용은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의 개인.법인 소유 자산즉시 동결 ▷북한 은행들과의 송금 거래 금지, 북한에 새 계좌 개설도 금지 ▷북한 핵.미사일 개발 관련 러시아내 금융계좌 폐쇄 등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의 북한 노동자들

 

2)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

북한 노동자가 소련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46년 노동계약에 따라 사할린에 도착했을 때이다. 그후 연해주 일대 벌목 현장이나 건설 현장, 시베리아 석유개발 현장, 극동지역의 수산물 가공공장, 농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그 수는 한때 4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노동자들은 훈련돼 있고 규율을 잘 지키며 부지런하고 험한 작업현장에서도 일할 준비가 돼 있는 노동력이다. 러시아 특히 극동지역의 입장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것이 경제적 관점에서 매우 유리하다. 극동 연해주 일대에서 일하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 가운데 북한 노동자들이 단연 제일 우수하다는 말을 필자는 여러 러시아 지인들로부터 들은 바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해외 노동자들이 보내온 외화 수입이 연간 2~3억 달러에 달하니 괜찮은 소득원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이 받는 월 평균 급여는 500~600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중에서 충성자금 명목으로 본국에 송금하는 돈을 제외하면 노동자 본인이 월 100달러 정도 벌어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던 분위기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7년 9월 이후부터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는 다른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 신규 채용, 고용을 금지했고 기존 노동자는 계약이 끝나면 연장을 못하도록 했다. 이를 의식한 러시아 정부는 2017년 11월 ‘북한 노동자 쿼터’를 25,000명으로 결정해 버렸다. 4만 수준이던 노동자가 40% 가까이 급감하는 것이어서 주러 북한 대사관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대외경제성 차관이 모스크바에 40일 이상 머물면서, “요즘 중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물밀 듯이 북한으로 돌아와서 북한에 일자리가 부족하고 외화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도와달라”고 읍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 12월에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모두 송환시키도록 규정한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가 채택되면서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가 계속 줄어들어 2019년 현재 9,800여 명이 된 것이다.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올 12월까지 북한 노동자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최근 들어 북중 접경 지역의 북한 노동자들도 잇따라 귀국길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북한 당국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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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6일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팀’의 내부자료가 유출돼 인터넷에 공개된 후 우리나라의 국가정보원도 이 업체로부터 감청프로그램을 구입해 사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복잡한 내용도 많고 확인되지 않은 채 유통되는 정보도 많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가지 사항에 대해 문답식으로 풀어봤습니다. 앞으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주시면 취재를 통해 함께 답을 찾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Q.국정원이 구입, 운용한 해킹팀의 RCS에서 ‘타깃 20개’란 어떤 의미인가? 국정원장은 20명 분의 해킹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한다.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도입해서 운용한 RCS 프로그램의 타깃(target)은 20개다. 이는 동시에 최대한 20개까지 감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해당항목으로 이동).

국정원장의 해명은 해킹을 20명만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는 동시에 감시가 가능한 것이 20명이다. 실제 연 감시 대상은 훨씬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해킹팀이 나나테크에 보낸 제안서에서 설명하는 타깃에 대한 개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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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모니터링하고 있는 타깃 20개 가운데 더 이상 감시할 필요가 없는 타깃 5개를 삭제하면 새로운 타깃 5개에 추가로 스파이웨어를 설치해 다시 20개까지 모니터링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국정원이 해킹한 타깃은 모두 25개가 되지만 동시 모니터링 하고 있는 타깃은 20개가 된다.


Q. 동시 감시 대상이 20개라는 것은 예를 들어 국정원이 감시가 필요한 대상 100개를 미리 감염시켜 놓은 뒤에 필요에 따라 감시 대상 20개 안에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국정원 관리자와 해킹팀이 2014년 7월7일 주고받은 메일을 보자. 에이전트는 휴대폰이나 PC 등의 목표물에 설치해 해당 기기에서 정보를 빼내오는 해킹용 스파이웨어를 말한다.


국정원:
우리의 라이선스는 동시에 최대한 20개의 에이전트를 운영하는 것이다.
만약 에이전트 하나를 멈추게 하면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에이전트 수에서 제외되는 것인가? (즉, 에이전트를 하나 더 쓸 수 있게 되는 건가?)
해킹팀:
에이전트를 일시적으로 작동 중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원히 멈출 수만 있다.
백도어를 닫아야 새로운 에이전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질의 응답은 다음날인 7월8일 이메일로 이어진다.

국정원:
메뉴얼 38페이지 ‘RCS 9.3 Technician.pdf’에 있는 “일시적인 에이전트 작동 중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해킹팀: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메뉴얼에 “에이전트 활동은 모든 모듈을 중지시키고 동기화 상태로만 놓아두면 에이전트를 삭제하지 않고도 일시적으로 멈추어둘 수 있다.”라고 돼 있는 부분은 만약 백도어의 모든 모듈을 중지시키면 에이전트 활동을 일시적으로 멈춰둘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렇더라도 에이전트는 사용 중인 것이고, 동기화 중인 것이고, 시스템은 백도어를 통해 항상 통신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라이선스 상에 새로운 타깃을 감염시킬수 있는 에이전트 여분이 없으면 백도어 하나를 닫던지(그리고 그 에이전트는 더이상 다시 열 수 없다.) 아니면 우리 판매부서에 연락해야한다.


(※RCS에는 여러 모듈(기능의 작동단위)이 있는데 기능에 따라 CALL 모듈, CHAT 모듈, PHOTO 모듈 등이 있다. CALL 모듈을 작동시키면 CALL을 감시할 수 있고 CHAT 모듈을 작동시키면 CHAT을 가로챌 수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예를 들어 타깃 100개를 한꺼번에 해킹해 놓고서 필요한 것들을 골라서 그 때 그 때 20개 안에 넣었다 뺐다 바꿔가면서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Q.그렇다면 이미 20개를 가득 채워서 동시에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1개의 타깃에 추가로 스파이웨어가 설치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제로 다른 나라의 고객이 해킹딤에 질문했다. 30개 타깃에 대한 라이선스를 갖고 있고 현재 30개를 동시에 감시하고 있는데 만약 3개월 전에 감염파일을 담아 보낸 이메일을 감시 대상이 이제서야 열어서 감염될 경우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이럴 경우 31번째 타깃은 대기열(queue)에 위치하게 된다고 해킹팀은 답한다. 살아만 있을 뿐 자료를 빼오는데는 써먹을 수는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라이선스 1개를 추가로 구입하거나 아니면 기존에 감시중인 타깃 하나를 제거해야 31번째 타깃의 에이전트가 활성된다는게 해킹팀의 설명이다.(▷관련 메일)

국정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2013년 7월29일에 오간 이메일들(TICKET ID:!SMZ-100-78952)을 보면 “최근 타깃 3개가 감염된 것을 알게 돼서 기존 타깃 3개를 삭제했다. 그런데도 (감염된 타깃이) 대기열에서 시스템으로 들어오지 않고 대시보드에 추가할 수도 없다”면서 “3개의 공간이 있는데도 감염된 에이전트 2개가 20시간째 대기열에 머물러 있다”고 질문한다.

당시 국정원이 문제를 설명하면서 보낸 RCS 콘솔의 스크린샷이다.

▲ 빨간색 사각형이 국정원 직원이 직접 표시한 부분이다. 20개 타깃 가운데 3개의 여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 빨간색 사각형이 국정원 직원이 직접 표시한 부분이다. 20개 타깃 가운데 3개의 여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스크린샷 제일 상단에 있는 RCS:DB 항목에서 상태가 ‘2connections’ 라고 돼 있는 부분이 대기열에 있는 타깃 2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이전트가 17/20로 3개의 여유분이 있으니 바로 시스템과 동기화돼서 감시 가능 상태에 들어와야 하는데 여전히 대기열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결국 국정원이 해킹팀의 조언대로 콜렉터를 다시 부팅하면서 해결이 된다.(▷관련 이메일)


Q.그렇다면 국정원이 천 명, 만 명의 타깃을 감염시켜 대기열에 위치시켜 놓은 뒤에, 20개씩 차례대로 동시 감시 대상으로 올리면 이론적으로는 감염시켜놓은 모든 타깃을 숫자 제한없이 감시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해킹팀 RCS 운영 상황으로 볼 때 현실적으는 어렵다. 먼저 앞에서 국정원이 언급했던 대시보드가 무엇인지 보자.

▲ 2012년, 다른 나라의 고객이 해킹팀에 보낸 대시보드 스크린샷. 감염된 PC와 휴대폰별로 작동시킬 수 있는 항목이 한 눈에 보인다.

▲ 2012년, 다른 나라의 고객이 해킹팀에 보낸 대시보드 스크린샷. 감염된 PC와 휴대폰별로 작동시킬 수 있는 항목이 한 눈에 보인다.

타깃을 대시보드에 추가한다는 것은 기능별로 타깃을 살펴보겠다는 의미다. 사진 왼쪽에 감염된 기기들이 나오고 각각 제공되는 기능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된다. 휴대폰의 경우 일정,통화,채팅,메모리,이메일,마이크,위치 등에 대한 기능이 제공됨을 알 수 있다.

대시보드에 감염대상을 추가하고 나면 각종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다음은 작업 명령을 내리는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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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중인 스마트폰의 스크린샷을 찍어 전송받을 수도 있고 마이크를 작동시켜 녹음을 할 수 도 있다.

RCS는 이렇게 필요한 타깃의 기기 특성과 운영체제, 사용프로그램에 맞춰 취약점을 공격하고 일단 스파이웨어를 설치한 뒤에는 타깃의 활동 하나 하나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다. 목표물의 음성 통화나 채팅, 사진 등을 감시하다가 필요한 때 자료를 빼오는 시스템이다.

또 목표물을 해킹하기 위해서는 취약점 공격에 필요한 URL이나 감염파일이 필요한데, 국정원이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해킹팀에 요청해서 받아야 한다. 뉴스타파가 분석한 결과 지난 2013년 5월부터 2년 동안 국정원이 해킹팀으로 받은 URL이나 감염파일은 모두 320여 개였다. 이것이 모두 성공했다 하더라도 목표물은 2년 동안 320여 개가 되지만 이 가운데는 한 번 실패했다 다시 요청받은 것도 있어 실제 목표물은 320개 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정원은 주로 해킹을 위해 문자나 이메일로 스파이웨어가 심어져 있는 URL을 보내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 경우 URL은 한 개의 목표물만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목표물에 문자나 이메일을 발송해 다수를 한꺼번에 감염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동시 감시대상이 20개라 하더라도 사실상 무제한으로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RCS의 운영특성으로 볼 때 현실적으로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것은 해킹팀 RCS에 한정된 얘기고, 국정원이 다른 해킹 프로그램들을 운용해 더 많은 목표물을 감시하고 있는지 여부는 현재로선 확인된 바가 없다.

금, 2015/07/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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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부서도 접대비 부당 사용… 내부 문제제기는 ‘묵살’

2014년 자율협약 이후 (주)STX의 부적절한 접대비 지출 증대는 영업이 필요한 사업부서에서 뿐만 아니라 특별한 거래처가 없는 기획과 인사, 재무, 회계 등의 관리부서, 나아가 이 같은 문제를 감시해야 할 감사 부서에 이르기까지 전사적인 현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엔 한 직원이 내부에서 이 같은 문제점을 제기했다가 회사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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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살림’ 챙기는 관리부서도 접대비 계속 증가… ‘내부접대’ 때문?

종합상사인 (주)STX의 조직은 크게 사업부서과 관리부서로 나뉜다. 사업부서는 금속과 철강, 기계엔진, 자원, 성장 등 5개 본부 아래 12개 팀을 두고 11개 해외지사를 운영한다. 제품을 구매해 되파는 종합상사 업무의 특성상 다수 거래처가 존재하고 이에 따른 접대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반면 관리부서는 사업부서를 지원하는 경영기획, 재무, 회계, 인사총무, 법무감사팀으로, 이른바 ‘안살림’을 도맡는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거래처가 없어 접대비 발생 요인도 거의 없는 부서들이다. 전체 직원도 30명이 안 된다.

▲ STX 관리부서 조직도

▲ STX 관리부서 조직도

그런데 채권단의 경영관리가 시작된 2014년 1월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STX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분석해 보면, 이들 관리부서의 접대비 지출도 계속 늘어났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2014년 6천 7백만 원에서 지난해에는 7천 9백만 원으로, 올해는 상반기까지만 4천 5백만 원을 접대비로 썼다. 특히 이 가운데 법무감사팀의 경우엔 지난해 1천 2백만 원을 썼는데 올해 상반기까지만 이미 1천 3백만 원을 접대비로 지출했다.

STX의 관리부서에 근무하다가 최근 퇴사한 한 직원은 “STX는 현재 거느리고 있는 자회사 2곳에 대해서는 접대비 관리를 타이트하게 하면서도 본사 직원들은 여유로운 수준으로 사용한다”면서 “관리부서들은 거래처가 거의 없지만 자기들끼리 먹는, 이른바 ‘내부접대’가 많다”고 말했다. 도대체 ‘내부접대’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직원들끼리 골프 치고 술 마신 뒤 “결제는 접대비로”

2014년 이후 STX 관리부서들의 접대비 사용 내역 가운데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골프접대(스크린골프 포함)였다. 2014년 불과 9건에 불과했다가 지난해 29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6월까지만 30건이 확인됐다. 그런데 이 가운데 실제로 외부 거래처를 상대로 한 접대가 아닌 내부 직원들끼리 즐긴 뒤 비용만 접대비로 처리했던 경우가 다수 파악됐다.

지난해 12월 12일 진천 크리스탈카운티 골프장에서 법무감사팀의 접대비로 지출된 18만 원도 그런 경우였다. 취재 결과 이날 라운딩을 한 사람을 차00 당시 STX 감사와 차 감사의 지인, 그리고 법무감사팀장과 팀원 등 4명이었다. 이날 함께 골프를 쳤던 STX 직원은 “차 감사의 지인이 외부인이었지만 회사 업무와 어떤 관계도 없는 분이었다. 그냥 내부 직원들끼의 친목을 위한 자리였는데 이 비용이 부서 접대비로 처리된 사실을 나중에 확인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팀장들끼리 골프를 즐기고 접대비로 처리한 사례들도 있었다. 엄00 인사총무팀장과 윤00 법무감사팀장은 올해만 3차례 진천과 가평 등지에서 골프를 치고 주변 맛집에서 식사를 한 뒤 비용을 모두 부서 접대비로 처리했다. 이에 대해 윤 팀장은 “다른 회사에서는 사내 골프대회 같은 것도 열고 하지만 STX는 회사가 어려워진 뒤로는 그런 행사가 없다. 그래서 사내에서 마음 맞는 팀장들끼리 몇 차례 골프를 치러 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서 접대비를 일종의 복리후생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직원들끼리 즐긴 골프를 접대비로 처리한 뒤 식사 접대를 한 것처럼 허위 영수증을 발급받아 처리한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STX 법인카드 사용내역 데이터에는 주로 지난해부터 특정한 한식당 몇 곳에서 밤 10시를 전후해 10만 원 안팎의 접대비가 반복적으로 지출된 석연치 않은 기록이 다수 발견된다. 취재 결과 이는 모두 스크린골프 비용이었다. 스크린골프장이 인근의 식당과 계약을 맺고 손님들이 요구할 경우 영수증을 식대로 끊어주거나, 아예 스크린골프장과 식당으로 2개의 영업허가를 받고 손님들의 원하는 쪽의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방식이었다. STX 직원들끼리 스크린골프를 즐긴 뒤 이 같은 수법으로 식사 접대인 것처럼 허위 영수증을 제출한 것은 올해만 14건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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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주점 등에서 하룻밤 백만 원 이상을 쓰고 이를 감추기 위해 영수증을 나눠 끊은 사례도 확인됐다. 법무감사팀 윤00 팀장과 이00 차장은 지난 6월 2일 저녁 서울 역삼동의 한 육개장집에서 식사를 하고 인근의 스크린골프장을 이용한 뒤 부서 접대비로 비용을 치렀다. 이후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며 양주를 마시는 고급 카페주점에서 75만 원 어치 술을 마신 뒤 영수증 2건으로 나눠 결제한 뒤 이를 접대비로 청구했다.

바로 다음날 이 차장은 업무시간인 오후 4시에 인근의 또 다른 카페주점에서 48만 원을 두 건으로 나눠 추가 결제한 뒤 역시 접대비로 청구했다. 확인 결과 두 카페주점은 동일한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하룻밤에 식사와 스크린골프, 유흥을 즐기는 데 130여만 원을 쓰고 접대비 처리한 것이다. 두 사람은 취재진에게 “식사와 스크린골프는 둘이서 쓴 것이지만 카페주점에는 외부 법무법인 변호사를 접대하느라고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윤 팀장은 변호사 2명을 접대했다고 한 반면 이 차장은 1명을 접대했다고 말하는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일치하지 않았다. 이를 확인하고자 해당 법무법인 변호사에게도 연락을 취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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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 관리부서들의 한달 부서 접대비는 백만 원이다. 이렇게 하룻밤에 130여만 원을 사용한 법무감사팀은 어떻게 초과분을 메꿨을까. 취재 결과 윤 팀장은 한달 접대비로 200만 원을 쓸 수 있는 김00 재무담당 상무에게 부탁해 부서 접대비 초과분을 보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어떤 외부 인사를 만나 어떤 건으로 협의를 하느라 접대비를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등의 뚜렷한 설명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부적절한 접대 관계로 업무도 지장” 내부 제보했다가 되레 징계

지난 7월 초, STX 법무감사팀의 한 직원은 서충일 대표이사 앞으로 사내 신문고 메일을 보냈다. 같은 부서의 한 상사가 자신에게 수 개월 째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해 왔고 골프나 룸살롱 접대를 받은 특정 법무법인에 일감을 주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골프접대를 하기 위해 해외 출장 일정을 바꾸기도 했다는 등의 제보였다.

그러나 회사는 2주 간의 자체 조사 뒤 인사위원회를 열어 이 직원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고 경고장을 보냈다. 성희롱 부분은 양측의 주장이 상반돼 확인이 불가능하고, 부적절한 접대 관계로 인한 업무상 비위는 조사 결과 허위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조사 기간 중 제보자가 사내에 미확인 제보 내용을 유포시켰다는 것이 징계 사유였다. 여기에 다소 뜬금없이 평소 근태가 불량했다는 것도 징계 사유로 덧붙였다. 이 직원은 회사가 제보 내용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부당한 징계를 했다며 현재 노동청 진정과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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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 만남이 아닌 직원들끼리의 유흥을 접대비로 처리하고, 이를 감시해야 할 내부 감사 기능은 정지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내부 제보를 한 직원을 되레 징계하는 회사. 부실경영으로 어려워졌지만 회생은 시켜야 한다며 국민 세금으로 수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STX의 현주소다.


영상취재 : 김남범 최형석
영상편집 : 윤석민

목, 2016/09/0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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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폭풍 전에는 이상한 침묵이 지배한다. 언제였을까. 지난 두 달간 벌어졌던 폭풍과 같은 사태의 그림자가 예감처럼 얼핏 스쳐갔던 것이. 이 세상이 이제 가다 못해 끝내 막장, 막판으로 가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문득 엄습했던 순간이 있었다.

지난해 9월 25일 백남기씨 사망 이후 경찰과 서울대병원의 하는 꼴을 보면서부터였다. 도대체 어떻게 아비 죽은 이유를 자식들, 가족들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나. 그래도 한국이고, 한국 사람이고, 한국 사람들에게 아주 근본적인 부모자식 간의 인륜이라는 게 있는 데, 이걸 어떻게 이렇게 건드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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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공권력에 의한 죽임임을 온세상이 아는데도, 박근혜 정권은 ‘병사’라고 우기고, 기어코 부검을 하려고 했다. 되돌아보면, 이는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정권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사진 출처: 미디어오늘)

경찰 물대포를 머리에 직격으로 맞고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 뇌출혈과 의식불명이 되었고, 그로 인해 사망하게 된 것을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병사’라니… 거기다 그 사망 책임이 ‘연명 치료’를 거부한 가족에게 있다니, 그래서 그렇게 사람 죽여 놓은 경찰이 오히려 칼을 들고 죽은 사체에 다시 갈라봐야겠다니…

그 시커먼 영장을, 흉악무도한 심보를 기어코 ‘집행’하겠다고, 시신을 강탈해가겠다고, 영안실을 포위하고 있다니…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미쳐 돌아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무슨 일이 터지고야 말 것만 같았다.

무슨 공포영화의 말도 안 되는 좀비들 같이 웃기지도 않게 집요했던 경찰의 부검 영장 청구가 딱 끊긴 건, 지난해 10월 28일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뭔가가 ‘탁!’ 하고 끊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개는 당장 아는구나. 제 주인이 죽은 것을. 이제 끝났다는 것을. 악의 탑이 무너지고 좀비 주술이 끝났다는 것을. <반지의 제왕>의 마지막 장면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다.

제2의 10·26

10월 26일, JTBC의 2차 태블릿 폭로가 있었던 날은 ‘제2의 10·26’이었다. 그날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사망했다.

그 37년 전인 1979년 10월 26일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의학적으로 사망했던 것처럼. 백남기씨의 시신을 그토록 집요하게 탈취하려 했던, 집요하게 물어뜯으려했던 그 ‘개’들은 그들에게 ‘싸인’을 보내는 권력자의, 권력핵심집단의 ‘사망’을 바로 알아챘던 것이다.

얼마나 영리한 개들인가. 물론 이 종류의 개들은 머리가 영리하다기보다는 코가 영리하다 (참고로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그 ‘개’들은 결코 우리가 사랑하는 가정의 반려견들을 지칭하는 것이 결코 아니니 이 점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살인용·공격용으로 훈련된 사냥개들, 투견들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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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의 판도라상자, 최순실의 태플릿PC에 대한 2차 폭로가 나온 것은 지난해 10월 26일었다. 그날 박근혜 정권의 수명도 다했다. 1979년 같은날, 그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경찰이 부검 영장 청구를 철회했던 그 날의 바로 다음날인 10월 29일, 제1차 촛불 집회가 청계광장에서 시작되었다.

마침 몇 주 전부터 토론 모임 하나가 광화문 토즈에 잡혀 있었다. 모인 우리는 들떠 있었고, 바로 그 날 바로 그 자리에 모임을 몇 주 전에 미리 잡아 놓은 모임 총무의 역사적 투시력, ‘신의 한 수’를 한껏 찬양하였다. 감격스러웠다.

모임을 서둘러 파하고 우리는 집회 군중 속을 이리 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2만이다, 3만이다 나름들 모인 사람들의 수를 가늠해 보았다. 그날 우리의 소감은 ‘2008년과 뭔가 다르다’, ‘더 젊어졌다’, ‘더 집중력이 있다’로 모아졌다.

집회가 파한 이후 우리는 따로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밤 깊도록 이야기했다. 이 나라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제2의 12·12 사태, 촛불 폭풍에 날아가다

10·26하면 바로 거의 자동으로 떠오르는 게 ‘12·12 사태’다. 전두환을 두목으로 하는 신군부 일당이 탱크를 앞세워서 온건파인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고 하극상으로 권력을 강탈했던 그 쿠데타, 역시 37년 전 그날 밤의 그 사건 말이다.

따라서 우선 제2의 12·12를 모의하는 자들, 그럴 가능성이 있는 자들과 그룹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중요했다. 이들의 동향을 낱낱이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손안에 넣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12·12와 비슷한 일이 벌어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물론 당시와 같은 군사 쿠데타는 이미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유사한 정치공작적 역습, 반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선 김기춘, 최병렬, 김용갑, 김용환 등의 ‘친박 원로7인회’ 같은 그룹들, 그리고 서청원, 최경환 등의 새누리당 ‘친박9인회’ 등이 그런 모의를 벌일 수 있는 대상자들이었다. 이들의 면면은 70년대 유신 시절 김지하가 그토록 통쾌하게 풍자했던 ‘5적’과 너무나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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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권을 만들어낸 7인회 멤버들. 상단 왼쪽부터 김용환, 최병렬, 김용갑, (하단 왼쪽부터) 현경대, 강창희, 안병훈, 김기춘. 이들은 박근혜 탄핵국면에서 반격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이미지 출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523)

검찰, 경찰, 군의 공안통들, 재벌과 그 끄나풀들, 그에 붙어 사는 경제관료들, 고위 공무원들, 국회의원 장차관들 … 아니 그 중 일부는 바로 유신 시대의 장본인들, JP 말을 빌리면 ‘유신 본당’들이기도 했다.

최순실이란 이름을 캐면 캘수록 그 뿌리, 본체가 바로 정확히 유신 권력의 핵심에 닿아 있었음을 국민들은 알 수 있었다.

최태민, 이 요승(妖僧)의 술수는 결국 박정희 유신체제를 호위·선전하고 앞장서 궂은 일을 처리해주는 사이비 기독교 유신행동부대, 청년 유신행동부대를 만들어 박정희에게 갖다 바친다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구국선교회’,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이었다.

우선 죽은 엄마(육영수)의 목소리를 빙의하여 딸(박근혜)의 영혼을 홀리고, 다음은 그 딸을 방호막으로 앞세워 그 아비(박정희)의 동정심과 환심을 샀다. 그토록 희한하고 의심스러운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박정희는 끊지 않았다. 최태민은 절대 권력자 박정희가 내심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친박 원로7인회’의 대표격인 김기춘은 자신의 입신출세의 뿌리를 바로 유신체제의 탄생 순간에 두고 있다. 유신과 김기춘은 정치적 출생일이 정확히 같다.

1972년 당시 유신 헌법 기안 임무가 신직수 법무장관에게 떨어졌고, 이 작업을 위해 신직수가 중용했던 젊은 검사가 바로 김기춘이었다.

대통령에게 히틀러와 같은 절대적 비상대권을 주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세계 헌정사상 희대의 괴물을 고안하는 데 김기춘은 그 영리하다는 (이번엔 코가 아니라) 머리를 바쳤다. 김기춘은 이후 청와대로 들어가 박정희에게 ‘똘똘이’ 소리를 들어가며 독재자의 사랑을 넘치도록 듬뿍 받았었다고 한다.

이렇게 위세를 차게 된 김기춘은 그 후 그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던가.

김기춘과 그가 애호했던 우병우 라인의 뿌리는 1972년 만들어진 유신 독재체제에 있다. ‘막후의 알부자’라는 우병우의 장인, 그리고 그 장모가 이미 유신시절부터 최태민과 가까운 사이로 밝혀졌다. 최태민과 김기춘도 그러했을 것이다. 박정희-김기춘-박근혜-최태민은 이렇게 뿌리에서부터 얽혀 있다. 그 뿌리에서 최순실이 나오고 우병우도 나왔다.

정의를 유린하고 나라 살림을 말아 먹는 수법은 대를 이어 전승되었다. 기기묘묘 화려하기까지 한 국정농단·세금빼먹기·재벌과 짜고치기의 신종 수법들도 선보였다. 그 수법이 이제는 부정입학, 부정학사관리에까지 가지를 쳤던 것이 밝혀지면서 이제 중고생만이 아니라 어린 초등생들까지 최순실, 정유라의 이름을 알고 주목하게 되는 희한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막나가는 대학기업화에 제동을 걸었던 이대생들의 신선했던 분투가 정유라 부정입학 건과 바로 연결되면서 전국 대학생들의 결집과 진출로 증폭되기도 하였다.

그 순간 다른 한 구석에서는 소위 ‘친박9인회’가 맹활약 중이었다. 서청원, 최경환, 조원진, 윤상현, 홍문종, 이장우, 원유철, 김진태, 정갑윤, 유기준 등 (이 중 몇몇의 참여는 들쭉날쭉이었다). 여기서 모인 결론은 이정현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 1차 ‘대국민 담화’ 이후 결집하여 거의 매일 모임을 가지면서 ‘반격’을 모의해왔다는데, 교묘한 ‘꼼수’로 평가된 대통령의 3차 담화도 이들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꼼수는 어짜피 꼼수다. 꼼수가 교묘할수록 촛불은 더욱 커져만 갔다. 국회와 야당은 헷갈렸는지 모르지만, 촛불 민의는 3차 담화 이후인 12월 3일의 5차 집회에서 오히려 더욱 단호하고 분명해졌다. 최대인파인 232만이 모여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12월 9일, 국회는 결국 이 요구에 순응했다. 예상보다 훨씬 늘어난 ‘동요하는 비박’이 탄핵 찬성에 표를 던졌다. 그 유명한 ‘우주의 기운’–‘1(기권), 234(찬성), 5(무효), 67(반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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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민의의 엄청난 태풍은 7인회든 9인회든, 또는 무엇이든, 제2의 12·12를 도모했던 모든 세력들의 모든 모의와 작당을 야속하게도 지붕·창문·세간살이 할 것 없이 몽땅 다 날려버렸다.

나날이 새로 밝혀지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정도와 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JTBC가 테블릿 내용의 공개를 시작한 이후, 먼저 종편 내부에서부터 동종 업계 간 폭로의 경쟁 논리가 맹렬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종편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들은 서로 질세라 최순실 국정농단의 ‘팩트’들을 파헤쳐대기 시작했다. 밤낮 없이 모든 종편들이 최순실, 정유라, 차인택, 장시호, 김종, 고인태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국정농단의 세부 사항을 터트리고 규탄했다. 과연 한달 전까지 정반대의 이야기를 밤낮없이 늘어놓던 그 사람들, 그 진행자, 그 패널, 그 종편이 맞는지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할 정도였다.

심지어 TV조선까지 이 대열에 낙오되지 않으려고 한껏 비판의 볼륨을 높였다(최소한 11월 30일경까지는 그러했다). 방송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정능력조차 잃어버린, 망가질대로 망가진 MBC, KBS는 보도 경쟁, 시청률 경쟁의 대열에서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일간지들도 (역시 조선일보까지도) 한 동안 맹활약했다. 이쪽 업계에서는 유난히 깜깜하게 뒤떨어졌던 게 동아일보였다, 인터넷 신문들도 그간 쌓아온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다.

이 기간 촛불은 거침없이 커져갔다. 대통령이 연이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되지도 않는 변명과 회피를 늘어놓을수록, 김진태 등 막장형 막말로 저명해지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주문을 외면 욀수록 촛불은 보라는 듯 더욱 커졌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절대로 꺼지지 않는 신상품 ‘LED 촛불’이 광장에 다양한 모델로 출시되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실로 ‘창조경제’가 아닐 수 없었다. 바람에 꺼지는 촛불이 아니라, 촛불이 바로 바람, 그것도 가장 억세고 무서운 태풍이라는 사실을 김진태는 정말 몰랐던 것일까? 그걸 꺼보겠다고 부채질하면 10배, 100배로 커지는 들불이었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그깟 ‘친박 집회’라는 것이 오히려 그 집단의 그로테스크한 기괴함, 기형성, 후진성을 만천하에 한껏 선양할 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한 게 고시공부밖에 없고, 아는 게 공안업무밖에 없는 자들, 한국사회를 지배해 왔던 소위 공안통 ‘엘리트’들의 한 없이 빈곤하고 비루한 교양 수준의 현주소다.

3만(1차-10월 29일), 20만(2차-11월 5일), 100만(3차-11월 12일), 95만(4차-11월 19일), 190만(5차-11월 26일), 235만(6차-12월 3일) …

이 엄청난 힘은 7인회든, 9인회든, 또 다른 어떤 모의 세력이든, 그 모두를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11월 4일, 2차 촛불 하루 전에 5%로 역대 최대의 바닥으로 가라앉은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이후 영영 회복되지 못했다. 이 속에서 제2의 12·12 모의는 영구 실종되었다. 12·12, 야심찬 대반격은커녕, 이제는 각자 모두 제 한 목숨 보존해보겠다고 발보둥치지 않으면 안 되는 처량한 처지가 되었다.

촛불은 맹자다

11월 26일, 190만이 모인 5차 집회가 있던 광화문, 한 달 전 첫 촛불집회 때 모였던 ‘토론모임’이 한 달 만에 다시 정기 모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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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에서 190만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마음들은 이미 뽕밭에 있었던 만큼, 공부와 토론은 대충 대충 마치고 민의의 바다에 서둘러 몸들을 실었다. 청운동 청와대 근처까지 행진을 따라가, 아니 인파에 떠밀려가, 오랜만에 한껏 목청을 푼 후, 비교적 연식들이 노후한 까닭에 쉬이 피곤해진 몸뚱이들을 추슬려 슬슬 후진, 다시 종로통 인사동 입구 막걸리 집에 모였다.

과연 공부하는 학자들이요 먹물들이었다. 정세 흐름에 대한 간단한 검토 후, 이야기는 사뭇 형이상학적으로 흘러갔다. 과연 우리 눈앞의 이 촛불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수백만이 모인 이 거대한 인간의 흐름, 그 흐름을 잇는 인간의 마음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과연 무엇이 이렇듯 거대한 실체를 만드는가?

유독 독일 박사가 많았다. 다 쓰러지는 막걸리 집(황지우 시인의 시에서는 ‘흐린 주점’)에 끝까지 남은 7명 중 셋이 독일서 철학 학위를 받았다. 과연 독일 철학박사들답게, 이야기를 높고도 높게 철학적으로 끌고 올라갔다.

우리 자신 그 일부가 되었던 이 거대한 인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모종의 강한 동질감, 공통성을 느꼈다. 모두에게 하나같은 경험이었다. 즐겁고 고결한 감전이랄까. 너무나 익숙한 무엇. 어찌 이리도 많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이렇듯 높은 수준의 ‘공통감(sensus communis)’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공론장=외펜틀리히카이트니, 공동체=게마인샤프트니 하는 독일적 개념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했다. 그 개념들이 전제하고 있는 독일의 개인과 오늘 바로 여기 이 속의 이 거대한 군중을 구성하고 있는 한국의 개인들은 다르다, 뭔가 동아시아적인 것, 한국적인 것이 작동하고 있지 않느냐 했다.

가족 공동체, 이런 것이 아닐까. 동아시아인들, 한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족적 공통감과 같은 무엇이지 않겠는가.

좋은 말씀을 잘 듣고 조용히 마음에 꾹꾹 담아 두지 못하고, 꼭 중간에 끼어서 이야기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곤 했던 젊은 시절의 악덕을 아직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필자가 “그렇기는 합니다마는 …” 하며 한마디 더하는 순간이 이윽고 오고야 말았다.

비교란 가까운 것끼리 해야 재미있는 디테일이 나온다. 한국과 독일의 비교는 좀 멀어서 그런 디테일이 잘 안 나온다. 구체적인 차이를 추출하기 힘들다. 오히려 동아시아 내부, 이를테면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교해보는 것이 어떨까. 지금 우리 눈앞의 거대한 촛불 인파, 그 안에 모아지는 멘탈러티에는 이웃 국가인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성이 있지 않나.

주권자의 권력남용이나 잘못된 통치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서 직격탄을 날리는 전통은 동아시아 공히 맹자에서 유래한다. 옛 시절의 주권자란 왕이고, 왕 앞에 감연히 나서 목숨을 건 직언을 하였던 이가 맹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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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 천하를 구제하기 위해 군주의 목을 베어라” 지금의 촛불혁명은 이러한 맹자의 역성혁명사상과 맞닿아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 전통이기는 한데, 우선 일본은 그런 맹자 전통이 정치세력화된 적이 없다. A급 일본 학자들도 가만 이야기해 보면 결국 맹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문인통치가 아닌 무인통치 국가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물론 맹자를 이해는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역사 속에서, 황제의 힘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에 맹자의 전통은 항상 주변화되었다. 그래서 민심에서 맹자를 그렇게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핵심 전통이라 할 수 없다. 맹자 전통이 역사의 중심이 되기에 항상 부족했다.

맹자가 정말 민심을 만나고 민심이 맹자를 받아들였던 곳, 맹자가 민심 안의 주류 전통이 되었던 곳은 오직 조선밖에 없다.

여기 이 ‘흐린 주점’ 밖의 저 거대한 촛불은 정확히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 대통령의 권력농단, 주권농단을 겨누고 있다. 국가권력의 핵심문제, 최고주권의 소재와 정당성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평화롭고 축제적이나 그 태도는 엄정하고 단호하다. 아니 경건하기조차 하였다. 저 촛불의 모습은 바로 맹자의 모습, 맹자의 전통 아닌가.

2백만, 아니 지금 이 순간 온 나라 국민의 마음을 묶어주고 있는 그 ‘공통감’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맹자로 모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이 순간 형성된 이 놀라운 주권적 대중, 주권적 국민의 의지란 결국 맹자의 마음 아니겠는가. ‘맹자의 땀’이고 ‘성왕(聖王)의 피’ 아닌가.

이미 여러 잔 순배가 돌아 긴장이 풀리고 너그러워진 까닭인지, 갑자기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를 늘어놓은 셈이었건만, 웬 일인지 모두 끄덕끄덕 진지하게 동조해주는 듯 만하였다. 이 역시 틀림없이 술기운이 오른 나의 착각일 뿐이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오래 전 던져두었던 화두를 하나 현실 속에서, 뜨거운 현장 안에서, 다시 확인해 보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대한민국 Year One

11월 중반 이후,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5%로 고착되고 광화문엔 100만, 200만 촛불이 연이어 모여든 즈음부터. 더 이상 문제는 12·12가 아니었다. 제2의 12·12는 이미 분쇄되었다.

흐름은 이제 87년 6월의 상황에 돌입하고 있었다. 6·29란 이미 12·12와 같은 군사적 반동을 포기한 상태에서 ‘직선제’라는 개헌 조항을 가지고 6월 민주화 대항쟁을 중도에서 끊어 무력화시켜보겠다는 전두환 일당의 야심찬 기획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는 물론 6월 항쟁의 승리의 결과였다.

그러나 냉전보수 세력은 노회했다. 민주화 요구에 굴복하는(즉 민의를 받드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야당의 분열을 유도한다면 대선에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민주화 진영과 야권은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6월의 압도적 열기를 볼 때 대선에서의 승리는 이미 자명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심지어 이후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서도 어떻게 되던 야권이 이긴다는 ‘필승론’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이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87년을 결코 반복할 수 없다.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87년엔 6.29 이후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생각(착각)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점에서 2016년의 촛불민의는 1987년의 민주항쟁보다 각성되어 있다. 제발 이제 꺼져 주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겠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만일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또 다시 (새로 경신된) 최대 규모의 촛불이 광장에 들이닥칠 것이다. 헌재를 들어 엎는다. 현재 민의가 이렇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래서 헌재가 그런 만용을 부릴 가능성은 지극히 작다. 이렇듯 거대하고 깊으며 동시에 높은 민의란 세계사적으로도 진실로 특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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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시민혁명은 보수세력의 수동혁명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30년이 흘러 다시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기어코 ‘새로운 대한민국 Year One’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듯 크고 높은 민의가 말하고 있는 것, 원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한 마디로 집약해보면, ‘Year One’이 아닐까. 원년, 새로운 시작. 여기서 Y와 O는 반드시 대문자로 써야 한다. 특별한 시간, 절대적으로 고유한 순간—역사적 새 출발, 새 지평, 헌정사적 원년(元年)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87년과 또 하나 크게 다른 사실은 이번에는 그 Year One을 국민들 자신이 스스로 열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87년에는 6.29 이후 그 일을 국회의 여야 개헌특위에 넘기고는 그걸로 그만이었다. 그저 ‘직선제’만 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큰 실책이었음을 이제 국민들이 안다.

그 87년 이후 30년만에 다시 국회에서 개헌특위가 구성되었다.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어떠한 개혁법안 논의, 개헌논의도 결코 국회 여야의 독점물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개혁 법안인가, 어떤 개헌인가. 국민은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하고 있다. 이미 경향 각지의 수많은 시민단체들, 주민모임들 속에서 활발한 의견이 형성되고 있다. 태반이 지난 두 달 동안 새로이 만들어진 모임들이다.

다음 정부의 할 일은 크고 높다. Year One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충심으로 이행하려는 모든 정치세력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과거 87년 DJ, YS를 훌쩍 넘어서는 비전과 포부를 가져야 한다. 나만이 된다,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작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

큰 정치, 높은 정치를 해야 한다. 이것이 그토록 놀랍고 거대했던 주권적 국민의 뜻에 충직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여줄 때 국민은 믿는다.

안심한다. Year One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월, 2017/01/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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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들을 안해서 그렇지, 세입자들이 재계약 걱정을 많이 해요. 조금 전에 길거리에 잠깐 서 있었는데 세입자 한 분이 와서 미리 걱정을 하더라고요. 들어보니 2년 사이에 전세보증금이 1억 4천만 원이나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 송파구 가락동 00공인중개사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30분 남짓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여러 번 전화가 걸려 왔다. 전세 매물이 나왔는지, 좀 더 저렴한 매물은 없는지 문의하는 전화였다. 공인중개사도 답답하다는 듯 매번 같은 대꾸를 했다.

아니, 사장님. 20평도, 30평도, 40평도 없어요.
– 송파구 가락동 00공인중개사

공인중개사의 말에 따르면 이 지역 전세가는 2년 사이 1억 원 이상 올랐다고 한다. 지역 내에서 비죠적 싼 아파트 중 하나인 가락 우성아파트의 사정만 봐도 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아파트는 1986년 입주를 시작한, 올해로 30년이 된 아파트다.

2개의 방과 조그마한 거실, 화장실 하나가 있는 전용면적 59 제곱미터 아파트의 2년 전 전세가 1억 8천만 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3억 원 수준이다. 2년 사이 1억 2천만 원 가량 오른 셈이다.

문제는 그조차도 귀해 전세 매물을 찾는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전세가가 매매가의 80% 이상 쫓아왔지만 앞으로도 이 현상이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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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에서는 전세 대신 일정액의 보증금과 함께 월세를 받는 ‘반전세’가 주된 임대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은행 이자보다 훨씬 수익율이 높은 월세 방식을 선호하는 임대인들이 크게 늘면서 임차인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반전세를 택할 수밖에 없는 추세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통용되는 6~7부(6~7%) 전월세전환율을 적용하면, 늘어난 보증금 1억 2천만 원에 대한 월세는 60~70만 원 수준이다.

※ 전월세전환율 = 월세×12÷월세 전환할 보증금 액수

임차인이 먼저 월세를 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열에 하나 정도 될까? 입장 바꿔 월세 살 이유는 없잖아요. 하지만 전세가 워낙 고공행진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재계약하는 거죠. 이자가 싸니까 대출을 받을 수도 있지만 소득이 없는 사람은 그것도 어려워요.
– 송파구 가락동 00공인중개사

2년 사이 1억 2천만 원의 목돈을 저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가오는 가을 이사철, 결국 2년 전 이 아파트 단지에 전세로 입주한 주민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1억 원이 넘는 돈을 빚 내든, 아니면 6, 70만 원 가량의 생활비를 깎아 월세를 내야 한다. 이도 저도 힘들면 이 지역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젊은 부부들이 이사하려고 해도 이 지역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아요. 학군이 괜찮다 보니 애들 교육 문제가 걸리거든요. 6, 70만원의 월세 부담하려고 보니 소비를 엄청나게 줄이는 수 밖에 없어요. 애들 학원 보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지는 거죠. 제가 봤을 때 이대로 가면 내수 경기가 살 수 없을 거에요. 아파트 값이 계속 올라가니까…
– 송파구 가락동 00공인중개사

목돈 2억 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전세 아파트 직접 찾아보니…

2억 원이면 단순 계산으로도 1년에 1천만 원 씩 20년간 모아야 하는 목돈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에 따르면 2015년 2분기 현재의 가구 평균 흑자액(저축액)은 100만 원이 조금 안된다. 일반적인 가구라면 200개월(16년8개월) 동안 꾸준히 저축을 해야 비로소 2억 원을 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만한 목돈으로도 가락동 안에 전세 아파트 한 채를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비단 특정 지역만의 문제일까. <뉴스타파>는 전세보증금 2억 원을 돌려받은 이 지역 주민의 상황을 가정해 서울의 다른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직접 현장 조사를 해봤다. 기존의 주거 수준인 방 두 개, 전용면적 59제곱미터 이상 아파트를 기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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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울 동북권의 아파트 밀집지역인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 이 지역은 서울 다른 지역에 비해 시세가 저평가돼 있다는 점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도 주택 임대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 아파트 상가의 공인중개사무실 유리창에는 ‘전세 구함’이라는 종이가 빼곡히 붙어 있다. 실제 취재진과 만난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올해 들어 활발하던 전세 공급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들과 전세 매물을 공유하고 있지만 성북구 길음동과 강북구 미아동을 통틀어 나와 있는 전세 물량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그는 이처럼 전세 물량이 줄어들면서 2년 사이 전세금도 최소 7, 8천만 원 씩은 올랐다고 했다. 길음뉴타운 초기인 2003년 입주를 시작해 인근에서 가장 낮은 시세를 보이는 길음 동부아파트의 경우 2억 원 대 초반에서 거래되던 59 제곱미터 형이 현재 3억 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2010년 이후에 입주한 아파트 단지의 경우 상승폭이 더 커서 2년 전과 비교하면 1억 원 이상 차이를 보였다.

2억 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단지는 현재 뉴타운 내에 없어요. 길음역 앞에 있는 삼부 아파트(1998년 입주)같이 재개발 이전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아파트들도 2억 원 이상은 갑니다. 뉴타운 안에서는 2억 원은 커녕 최소 2억 9천에서 3억 원은 생각해야 해요.
– 성북구 길음동 00공인중개사

서울 서북권의 대표적인 아파트 밀집지역인 은평뉴타운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지역 공인중개사의 설명에 따르면 전용면적 59제곱미터 형 전세 아파트의 시세는 2년 전 대비 6천만 원 가량 올랐다고 한다. 2억 6천만 원 선에서 거래되던 것이 현재는 호가로 3억 2천만 원까지 나온다는 설명이다. 은평뉴타운에서 가장 많은 세대를 갖고 있는 전용면적 84 제곱미터 형 전세의 경우 상황이 더욱 어렵다. 2년 전 2억 8천만 원 선에서 거래되던 것이 현재는 호가로 4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천정부지로 전세가가 오르면서 젊은 부부들이 아예 집을 사거나 역세권의 오피스텔로 발길을 돌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풍경이라고 한다.

이 지역 특징이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많이 산다는 거에요. 전세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르다 보니까 대출을 풀(Full)로 받아서 아예 집을 사시는 분들도 많아요. 불과 1, 2년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에요.
– 은평구 진관동 00공인중개사

2억 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는 없어요. 전세가가 워낙 오르다 보니 인근 구파발 역 주변에 있는 오피스텔들이 호황을 이룬답니다. 은평뉴타운에 집을 알아보던 신혼 부부들이 방향을 틀어 10평 대의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거죠.
– 은평구 진관동 00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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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저소득층 거주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서남권의 사정은 어떨까. 취재진이 찾아간 구로구 신도림동의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도 더이상 2억 원짜리 전세 아파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2년 전 2억 원 선에서 거래되던 신도림 우성아파트 59 제곱미터 형의 경우 현재 2억 9천만 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고 한다. 이조차도 매우 드물게 나온 전세 매물이어서 사실상 전세가 산정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 인근 공인중개사의 설명이다.

여기 인근 아파트 단지가 8,000세대가 넘는데 전세 매물이 아예 없어요. 재계약하며 월세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그런 것 보면서 (돈) 없는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겠다는 얘길 해요. 월세가 앞으로 올라가면 올라가지 떨어지진 않을 거 아녜요. 그간 집 사놓은 사람은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사정이 딱하죠. 젊은 사람들은 장가도 못 가게 생겼어요. 너무 매도자 중심의 시장인 것 같다는 생각 해요.
– 구로구 신도림동 00공인중개사

신도림동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가 2억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전세 아파트가 있다며 인근의 한 아파트를 소개했다. 신도림동의 외곽, 공단 지역에 위치한 A 아파트였다. 1989년 입주해 올해로 27년 된 아파트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52제곱미터 형의 전세 시세는 매매가에 비춰 1억 6천만 원 정도로 평가된다.

A 아파트를 찾아 가봤다. 고층 아파트들로 빼곡한 신도림동의 아파트 밀집 지역을 벗어나자 옛 구로 공단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장 지대가 나타났다. 낡은 공장들에선 기계들이 소리를 내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쉼없이 오가는 짐차들 때문에 좁은 길에선 이동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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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쾌적하다고 말할 수 없는 공장 지대 한복판에 서 있는 아파트 단지, 노약자나 어린이를 둔 가정이라면 기피했을 이곳이 취재진이 사흘동안 서울 전역을 돌아다녀 찾아낸 ‘방 2, 거실 1, 화장실 1, 전용면적 59 제곱미터 내외에 해당하는’ 유일한 전세금 2억 원짜리 아파트다. 사실상 2억 원이라는 목돈을 갖고서도 서울에서 쾌적한 주거 환경의 전세 아파트를 찾을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것이다.

박근혜정부 30개월, 전세가 22.7% 상승…“월세 전환이 폭등세 견인”

<뉴스타파>는 이같은 전세가 폭등 현상의 진원을 파악하기 위해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부터 2015년 상반기 현재까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정보를 취합해 조사했다.

통계는 목돈을 쥐고도 오갈 곳이 없게 된 서울 ‘전세 난민’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지난 30개월 동안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2억 7천여 만원에서 3억 3천여 만원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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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분인 6천 2백여 만원은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부장급 직원의 한해 세전 연봉에 맞먹는 액수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의 가구 평균저축액으로 따져도 62개월, 즉 5년 이상 모아야 감당할 수 있다. 상승율로 환산하면 22.7% 상승한 셈인데, 이는 지난 2013년(1.3%)과 2014년(1.3%), 그리고 올해 1분기까지의 물가상승률(0.4%)을 모두 합한 것 보다도 7배 이상 높은 수치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전세가 폭등이 세입자 양극화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취재진이 수소문한 2억 원 이하의 전세 아파트 거래량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1만1천 여 건에서 4천 여 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전체 전세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 대에서 20% 대로 10%p 이상 줄었다.

반면 서민이 감당하기 힘든 5억 원 초과의 전세 거래량은 크게 늘었다. 전체 거래량의 6.5%에 불과했던 거래 비중은 올해 상반기 13.4%까지 치솟았다. 결국 서민이 감당할만한 전세 아파트는 사라지고 소수 고소득자들을 위한 전세 아파트는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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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 아파트 전세가의 원인은 뭘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최근 임대시장에서 두드러지는 월세 전환 추세에서 찾았다.

최근 임대시장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임대사업자들이 전세 대신 월세로 전환하다보니 전세를 구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졌고, 전세 가격이 너무 빨리 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전세 수요자들이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늘어나고 덩달아 집값도 오르게 되는 거죠. 이런 문제가 파급을 갖고 (전월세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요.
–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동향 실장

박근혜 정부가 지속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펴면서 많은 임대인들이 이해타산을 따져 기존의 전세 매물을 수익률이 높은 월세로 돌렸고 그에 따라 수요에 비해 전세 공급량이 대폭 줄어 전세보증금의 시세가 치솟았다는 것이다.

아파트 실거래가 분석을 통해서도 월세 전환 추세가 확인된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1분기 전세 거래의 비중이 임대 시장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지만 올해 1분기 이 수치는 60% 대까지 떨어졌다. 반면 월세나 반전세(일부 보증금을 두고 월세를 내는 방식)의 비중은 20% 대에서 출발해 올해 들어 30%대를 넘어섰다. 상당수의 소액 월세가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전세와 월세의 비율은 거의 반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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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란’ 우려되는 주거 불안…정부는 ‘유체이탈’ 화법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임대 시장의 월세 전환 분위기가 결국 주거비 폭등으로 이어지고 주거 불안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똑같은 주거비용이라면 전세에서 월세 전환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은행 이율이 1% 대인데 비해 지금의 전월세 전환율은 6%대입니다. 은행 이율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죠. 결국 주거비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기 때문에 월세 전환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게다가 이같은 주거비 폭등은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부담이 가기 마련입니다.
–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

월세의 경우 총 소득 대비 주거 비용, 즉 월세 비용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생계의 어려움을 부를 수 있습니다. 가처분 소득의 소비 지출 중 10~15퍼센트의 가처분소득, 그리고 소비지출의 15%를 주거비로 하다 보니 많은 부담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세 제도가 거의 사라지면서 생긴 작용이죠. 즉 주거 비용을 싸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때문에 주택 매매가 늘고, 월세 가격이 오르는 형태의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동향 실장

전례없는 주거비 폭등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지만 정부는 침묵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총 8 차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지만 그 내용은 서민들의 주거 불안 해소가 아닌 매매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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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을 만나 서민 주거 불안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유 장관은 “100% 완벽할 순 없겠지만 노력하고 있다”며 “부동산 정책의 최우선을 주거 안정에 두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 가운데 실효성있는 주거 안정 대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정부가 주거 안정을 최우선에 놓고 부동산 정책을 펴고 있다는 유 장관의 말은 사실상 실체가 없는 ‘유체이탈’식 화법인 셈이다.

다른나라 경우 소득 대비 주거비(RIR) 부담이 얼마여야하는지 기준이 있습니다. 유럽 같은 경우 소득 대비 주거비가 25%가 넘으면 정책 대상이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데 우리의 경우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기본적으로 서울같이 주거비 부담이 큰 도시에서는 ‘임대료 컨트롤’이나 ‘전월세 상한제’ 등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도 충분히 높은데 계속 상승하지 못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주택 주무부처가 리얼에스테이트(부동산)에 관심을 두는 나라는 없습니다. 하우징(주거)에 관심을 둡니다. (우리 정부에)그 점이 아쉽습니다.
–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

목, 2015/09/0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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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하 특감)이 나온다. 박정희 유신 정권 말기인 1978년 개발 열기로 들떠있던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그린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반장이 바로 이 특감을 모델로 한 배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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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나오는 반장의 실제 모델이 이석수 전 특감이다. 같은 상문고 출신이었던 유하 감독은 재학 시절, 공부를 잘했지만, 강직했던 이 전 특감의 모습을 영화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https://1boon.kakao.com/ttimes/ttimes_1608192059)

‘말죽거리 잔혹사’ 실제 모델

영화는 1973년 개교한 신흥 사립고 상문고가 모티브가 됐다. 1978년 상문고에 이 특감과 나란히 입학해 6회 졸업생이 된 시인이자 영화감독 유하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반장에게 ‘이석수’라는 명찰을 달아줬다. ‘공부 잘하는 반장’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이 특감이라는 이유에서다.

상문고 동문들의 바람처럼, 이 특감은 지난해 3월, 대통령의 친족과 수석비서관급 청와대 고위 공직자의 비위행위를 상시적으로 감찰하는 초대 특감 자리에 오르며 명예를 높였다.

하지만 법으로 보장된 임기 3년의 절반을 채우지 못하고 사실상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감찰에 착수해 미운 털이 박힌 지 한 달 남짓, 우 수석을 직권남용과 횡령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 한 지 겨우 열흘 남짓이 흘렀을 뿐이다.

이 특감은 우 수석에 대해 군복무 중인 아들의 ‘꽃 보직’ 논란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를, 가족회사 ‘정강’과 관련해 횡령 혐의를 각각 적용했다. 22년간 검찰에서 잔뼈가 굵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이 특감은 ‘효자동 잔혹사’의 희생양이 될 위기다.

엘리트 공안검찰 된 상문고 반장 

공부 잘하는 상문고 반장 이석수는 보수적 ‘공안통’으로 검찰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한다. 22년간 검찰에 몸담은 그는 1995년 현역 시ㆍ구의원들이 줄줄이 연루된 ‘인천시 교육위원 선출 금품수수 사건’을 처리하며 처음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후‘북풍(北風)’ 사건(1998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1999년), 김선일씨 피살 사건(2004년) 등을 맡았다. 대부분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일들이었다.

이 특감은 검찰 조직이 정치적 부담을 느낄만한 사건 수사에 참여할 기회를 자주 얻었다. 의혹만 무성했던 북풍공작(1997년 대선 당시 안전기획부가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북한과의 연루설을 퍼뜨린 사건)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혀낸 수사에 참여한 게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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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북풍 사건 수사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수뇌부. 권영해 부장과 박일용 국내담당 차장은 구속기소되었지만 이병기 해외담당 차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왼쪽 사진). 당시 이 사건의 수사책임자였던 홍경식은 박근혜정부의 두 번째 민정수석이 됐다. (왼쪽 사진 출처: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010977#cb)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검찰 조직이 심리적 압박을 느꼈을 법한 때다. 당시 수사팀의 진용을 꾸린 이는 박근혜 정부 두 번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홍경식 변호사였다.

특별검사제가 처음 적용된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도 이 특감 손을 잠시 거쳐갔다. 서울지검 공판 검사였던 그에게 당시 특검 수사결과에 따라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을 기소하고 공소를 유지하는 일이 주어졌다. 검찰이 당초 무혐의 처분했던 피의자에 대해 재판정에서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현직 검사 신분으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뒤집어야 하는, 사법 사상 유례가 없는 이벤트의 주연으로 캐스팅 된 것이다. 물론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내는 적통 역할은 훗날 법무부 장관에 오르는 이귀남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이 맡았었다.

이 특감은 부산지검 공안부장이던 2004년에는 이라크에서 선교사 김선일씨가 이슬람무장단체에 납치ㆍ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가 특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김 씨 살인 사건에 대한 내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 재판정에서 살해범들을 단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게 당시 검찰의 설명이었다.

감찰통으로 변신…“보수적이지만 공정”

변신의 계기는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 검찰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찾아왔다. 국민참여재판제 및 양형기준제 도입, 국선변호제도 확대,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 등 일련의 사법개혁 작업이 이때 이뤄졌다.

이후 이 특감은 대검찰청 감찰2과장(2006년), 감찰1과장(2007년) 등을 거치며 ‘감찰통’으로 자리매김한다.

여신도 성폭행 혐의 등으로 도피 중이던 종교단체 JMS 정명석 교주 측에 수사기밀을 유출한 현직 검사가 면직처분을 받는 등 감찰을 맡은 동안 엄정한 잣대를 들이댔다. 현직 검사가 면직 처분된 것은 1999년 법조비리 파문 당시 검찰 수뇌부 사퇴를 요구하는 항명파동으로 면직됐던 심재륜 대구고검장 이후 8년만이었다.

검사 신분으로 지난 2006년 한겨레 신문에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기고했다 이 특감에게 직접 감찰을 받았다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수적 공안검사이지만 냉정하게 판단하고 사사로움에 얽혀 수사하지 않는다”고 그를 평가했다.

이 특감은 그러나 “상문고 출신 법조인 중 가장 먼저 별(검사장)을 달 것”이라던 주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감찰 직을 내려놓은 지 3년만인 2010년 춘천ㆍ전주지검 차장검사를 끝으로 검찰 생활을 마감했다.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특별검사팀에서 특검보로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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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과 관련한 특별검사팀이 출범했다. 당시 이광범 특별검사(맨 오른쪽)와 특검보로 참여했던 이석수 전 특감(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 출처: 서울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초대 특감 후보를 지명할 당시 청와대는 “감찰 업무의 전문성과 수사경험을 두루 갖췄고, 특검보를 역임하는 등 풍부한 법조경험을 갖고 있어 최초로 시행되는 특감의 적임자로 판단했다”며 이 특감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1년 5개월이 지난 지금 청와대는 그를 국기를 흔든 중대한 위법 행위자로 내몰고 있다.

“민정수석도 감찰 대상, 그냥 안 넘어간다”

이 특감은 지난해 3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민정수석도 감찰 대상”이라며 “명백한 비위행위가 포착이 된다면 유야무야 넘어갈 생각은 결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문제가 되는 것도 대통령이나 민정수석이 아니라고 거부하면 적당히 물러서겠다는 것이냐”는 서기호 정의당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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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국회에서 열린 이석수 특별감찰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이 자리에서 이 후보자는 “민정수석도 안 봐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의 제1호 특별감찰관이 됐다.

이 특감은 “특별감찰관이라는 게 잘못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면 3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국가 예산만 축내는 그런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박지원 의원의 지적에 “세금만 축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이 특감은 그러나 우병우 수석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며 제대로 ‘밥값’을 하려 하자 여권의 강한 사퇴 압력에 직면하고 말았다. 청와대까지 이 특감을 흔들었다.

김성우 홍보수석이 직접 나서 특정 언론에 감찰 진행 상황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사실이라면 이는 본분을 저버린 중대한 위법 행위이며 국기문란 행위”라고 공세를 퍼부었지만, 이 특감은 일단 버텼다.

그리고 검찰이 특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특감 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사표를 낸 후 “이건 이 기관(대통령 특별감찰관)을 없애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한겨레 신문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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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검찰이 우병우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러나 그 강도가 달랐다. 왼쪽은 이석수 특별감찰관 사무실에서 압수물을 가져오는 검찰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우석수 민정수석의 가족회사 정강에서 압수물을 가져오는 검찰의 모습이다. 우병우 수석쪽은 쇼핑백만 달랑 챙겨가는데 비해 이석수 전 특감 쪽은 박스가 줄줄이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검찰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이다. (사진 출처: http://www.focus.kr/view.php?key=2016082900212157323)

정치권에서는 이 특감이 청와대와 각을 세우면서 ‘제2의 조응천’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가 진작부터 돌았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있다 지난 2014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배후로 지목돼 청와대에서 쫓겨난 조응천 더민주 의원은 이 특감과 대학 81학번,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이기도 하다.

조 의원은 “내가 당했던 일이 생각난다”며 “(우병우 지키기에 나선) 청와대의 자의적 국정운영이 국기문란”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공은 검찰로…현직 민정수석 수사 의구심

청와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특감을 무력화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이 특감은 인사청문회에서 “모든 자리가 마찬가지듯이 처음 하는 사람이 길을 잘 닦아 놓으면 앞으로도 이 자리가 계속 의미가 있게 된다”고 했던 다짐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이 특감은 사표를 낸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런 상황에서 제가 이 직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는 아닌 것 같았다”며 “앞으로 검찰 수사도 앞두고 있고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잘 조사받도록 하겠다”고 뼈 있는 한 말을 남겼다.

온갖 의혹이 제기되고 이 특감과 마찬가지로 검찰 특별수사팀의 압수수색까지 받는 상황인데도 현직에서 버티고 있는 우병우 수석을 향한 시위 성격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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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수 전 특감은 우병우 민정수석을 건드리다 청와대의 사퇴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의혹만으로는 물러나지 않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이라며 버텼지만, 자신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시작되자 결국 사임했다. 이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맞짱을 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뒷배에 청와대가 버티고 있다는 것은 만척동자도 다 안다. 그러나 여론이 이렇게 비등한데도 왜 우병우가 버티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이 특감은 지난 22일에는 사퇴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이 아닙니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운영 방식이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공은 다시 이 특감과 우 수석을 동시에 수사하는 검찰 손으로 넘어갔다.

지금으로서는 사정 라인을 지휘하는 현직 민정수석을 제대로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지배적인 게 사실이다. 다만, 윤갑근 대구 고검장이 이끄는 검찰 특별수사팀이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예단할 수는 없다.

“업무가 의미가 있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해 특감 직을 수락했다”는 이 특감이 지금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 감당해 나갈지도 지켜볼 일이다.

화, 2016/08/3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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