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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19년 봄 통권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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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19년 봄 통권74호

익명 (미확인) | 목, 2019/03/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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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ㅣ출판사: 민연ㅣ값 15,000원ㅣ423pageㅣ발행일: 2019.03.01.ㅣISSN 1228-8802ㅣ97712288802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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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는 2000년 창간해 현재까지 17년 동안 역사대중화를 위해 힘써온 잡지입니다. 2016년부터 ‘내일을여는역사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함께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친일·독재 비호세력들이 어줍지 않게 국민들의 일상과 정신세계마저 지배하려는 이때, 우리들은 힘을 합쳐 관제 역사의 전파를 막는 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가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면서,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여는 글]

올해 2019년은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등 한국인이 흩어져나갔던 곳곳에서 기념 행사가 넘칩니다. 역사학계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대체로 이 같이 해마다 반복되는 사건 기념일을 통해서입니다. 이처럼 역사가 국가와 국민의 기억으로 존재하는 한, 역사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집니다. 올해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가 유례 없이 매스콤과 각 지자체 행사에서 화려하고 풍성하게 다루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탄생, 적폐 청산이라는 민주주의적 격변 덕분입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정치가 역사를 지나치게 동원하려 하면 무리한 일이 발생하는 법입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남측이 북측과 삼일운동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는 행사를 기획하려 했으나 좌절된 것을 그 첫 번째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북한 역사서에서는 삼일운동을 러시아혁명과 인민대중의 거족적 반일 항쟁이라고 볼 뿐, 운동을 초기에 주도했던 ‘민족대표’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해서도 ‘파벌 싸움’ ‘사대주의’ ‘민족 상층 분자들이 해외에서 벌인 매국 배족 책동’ 등등으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삼일운동의 결과 대한제국을 계승하여 탄생하였다고 보는 현 정권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 정권이 삼일운동과 근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무지했거나, 아니면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과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사태는, 정부가 국민 청원과 국회 특별법 제정 움직임을 받아들여 유관순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해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한 점입니다. 유관순의 훈격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는 유관순의 당대 독립 운동에 대한 기여도로 평가한 결과가 아니라 해방 이후 그를 프랑스의 잔다르크 같은 인물로 영웅시한 후대인들의 노력의 결과 나타난 것입니다. 민족 해방과 독립에 기여한 공적이 아니라 후대인들이 그의 활동을 어떻게 추앙하고 기억했는가에 따라 서훈을 높인 것이므로 기왕의 공적심사 판례를 깨뜨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관순은 해방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설, 영화, 초중등 교과서, 신문, 라디오 드라마 등등 수많은 역사물에서 높이 추앙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장 서훈을 받은 여타 독립운동가보다 훨씬 높은 대우를 받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대의 기억 상황에 따라 독립운동의 공적 평가가 달라진다면 사료를 수집 분석하여 평가를 내리는 역사학은 존재 의의가 없게 됩니다.

물론, 친일 협력 행위자와 그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잘 사는 반면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학교 교육은커녕 생계 유지도 힘들 만큼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국가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그 공적에 걸맞게 평가하고 생계와 교육, 사회적 기회 등 모든 면에서 지원하고 보상하고 추앙하는 작업은 당연하고도 올바른 일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하고 후대의 대중적 평가에만 따르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적절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호에서는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역사학적 연구 성과에 즉해서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윤소영의 글은 삼일운동의 한 원인으로도 꼽혀 왔던 일제에 의한 고종 독살설이 사실 무근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종의 사망 원인이 독살이 아니라 병사, 즉 뇌출혈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지원은 삼일운동을 유관순 중심으로 기억하는 태도에서 더 나아가 여학생과 여교사, 간호사, 기생 등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과 구시대에 천대받던 여성의 진출이라는 젠더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삼일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운동을 주도해간 측면에서는 유관순보다 당대에 더 많은 활동을 했던 김마리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에 덧붙여 최우석은 삼일운동의 종점을 4월 말, 5월 말, 6월 초 등 세 가지 설이 있음을 밝히고 자신은 6월 초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그 증거로 7월 초부터 만세시위가 서대문 감옥 주변에서만 빈발한 사태를 들었습니다.

김지영은 3·1운동과 관련하여, 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여러 민족들의 동향을 정리했습니다. 윌슨 미국 대통령은 당초 그가 주장한 민족 자결주의와 달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존 및 제국의 연방화를 구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 내 여러 민족들의 분리 독립 및 개별 통합 움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3.1운동은 이러한 외부적·내부적 여건이 없었기 때문에 독립국가 건설로 귀결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라는 제언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문가 3명을 모시고 개최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좌담회 기록도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삼일운동과 그 이전 민중운동과의 차별성, 전국적 시위가 일어나면서도 지역적 차이가 나타났던 이유, 민중이 만세 시위에 가담한 이유, 일본의 무단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 일본 국내 정치 변동 속에서 문화 정치의 본질과 무단 정치와의 차이에 대한 분석, 독립-자치-참정 3가지 운동의 변별점, 대중의 등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바라보는 관점 등 3시간에 걸쳐 좌담을 나눈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4편의 글 중 두 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반면, 나머지 두 편은 정통성은 언급하지 않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가를 운영해가는 주체로 매우 문제가 많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는 것이 역사학계의 현황이므로 양자를 다 게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나미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임정을 이었다고 했으므로 한국 역사의 시기 구분은 대한제국 이후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것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표방했으므로 3.1만세시위가 혁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김기승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처음부터 좌우합작 정부로서의 성격을 띠었고, 1940년대에 다시 군사, 의회, 정부 차원에서 좌우합작에 성공했다고 하여 민족 대표성을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서 윤대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정식 정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망명 정부가 아니라 해방 후 새로 국회를 소집하여 정식 정부를 다시 수립해야 하는 그야말로 ‘임시적’ 정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부라는 명칭 때문에 지위와 권력을 다투는 분규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임시정부 수립 초기의 우려가 현실화되었다고 합니다. 반병률 역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서의 역할에 높은 평가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임시정부가 국민 통합 역할을 한 것은 1919년부터 1921년 초까지, 그리고 1942년 좌파 정당이 한국독립당과 합작한 이후 해방 때까지 시기였을 뿐, 나머지 20년간은 붕괴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미주지역 동포들의 애국금을 독점한 이승만의 독재적 리더십과 행동방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특기할 사실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효창공원 안의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최한 점입니다. 이순우는 파격적인 행사가 열린 이 효창공원의 기막힌 운명을 정리하였습니다. 그에 의하면 효창공원은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의 묘로부터 1894∼1940년간 일본군 부대 및 일본인 밀집 거주지, 공원지, 일본군 전사가 충령탑으로 모습을 바꾸다가 해방 후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김구 등 순국한 애국열사의 묘역군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효창운동장 건설과 서삼릉으로의 이장 시도 등으로 굴곡을 겪었던 현장임을 보여줍니다.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김승태는 주기철과 김길창 두 분 목사의 같은 직업, 달라진 운명을 보여줍니다. 같은 장로교 목사이고, 같은 경상남도 사람이고, 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순교자요, 다른 한 사람은 부일협력자라는 점에서입니다. 김성민은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백산상회 사장으로 알려져 있는 안희제가 그 외에도 인쇄회사, 협동조합, 중외일보, 발해농장, 대종교 등 순국할 때까지 민족운동의 대열을 지킨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강태구는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한유한이라는 작곡가의 삶을 소개합니다. 한유한은 광복군으로 활동하면서 <압록강 행진곡>을 작곡했는데 이 노래가 한국 초등학교에 실린 유일한 독립군가입니다. 그는 이외에도 항일가극 <아리랑>을 공연하고 광복군 전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는 작년 이래 남북 간, 북미 간 대화가 빈번해지는 정세에 맞추어 두 개의 통일에세이를 준비했습니다. 강영식은 대북 지원 사업으로 남북 간 산림 협력 사업이 북한의 산림 황폐화, 자연 재해, 식량 부족이라는 연쇄 사슬 형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급하다고 주장합니다. 성염 신부는 로마 교황이 ‘쿠바 미사일 위기’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 때 평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했던 것처럼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나타날 희망찬 미래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관련해서 세 편의 글이 우리의 눈을 잡아 끕니다. 조수룡은 우리에게 ‘8월 종파사건’으로 알려진 1956년 8월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김일성 독재 체제와 북한-중국-소련의 삼각관계의 기본적 구조를 낳은 기원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은미 역시 현재 북한에 존재하는 400개 이상의 공식 시장이 이미 1960년대부터 존재하면서 오늘날의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면서도 조만간 국가 중심의 거대 유통 시장과 경쟁하면서 소멸할지도 모를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북한 전쟁 고아들의 문제도 언급됩니다. 윤석준은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총 1만 여명의 북한 전쟁 고아들이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등 동유럽 국가들로 입양 또는 수용되었다가 다시 북한으로 복귀당하는 참담한 삶을 추적했습니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작년 하반기 이래 한국이 또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는 경고가 빈번하게 나왔습니다. 김용기는 실제로 경제위기가 도래했다기보다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산업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이에 대해서 그는 분배 구조를 개선하고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삭감을 막기 위한 소득 주도 성장, 공정 경제 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외에도 정조가 화성을 건설한 본질적 이유에 대한 김준혁의 설명, 한때 전세계를 풍미했던 케인스의 저서에 대한 류동민의 소개 글, 『평양지』 속에 구현된 평양 이미지에 대한 이은주의 해석, 『한국 근대영화사』에 대한 강성률의 서평, 단원 김홍도의 작품 세계에 대한 최열의 최종적 정리, 조선시대 수운 유통의 거점이었던 충주로에 대한 김창회·신동훈의 역사기행 등이 실려 있습니다.

근대 역사학은 항상 국가와 민족을 강조해 왔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다 보면 국가와 민족 내부의 불평등과 차별은 종종 잊혀지게 마련입니다. 100주년을 맞이한 삼일운동의 의의와 그 소중함을 기억하는 만큼, 조국을 떠나 중국·러시아 등지에서 풍찬노숙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순국열사들의 고단한 삶을 기리는 만큼,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적 차별과 억압에 분노하는 만큼, 우리 사회 내부의 비정규직 차별,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차별에도 분노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2019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위원 도면회


차례

04 여는 글
과유불급의 삼일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현창

11 통일에세이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 남북 산림협력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 / 강영식
로마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 / 성염

29 3·1운동 톺아보기
3·1운동은 언제까지로 보아야하는가 / 최우석
고종독살설과 3·1운동 / 윤소영
젠더사로 읽는 3·1운동 / 이지원
89 3·1운동과 세계정세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 및 후속 동유럽 국가의 성립과 비교하여 / 김지영

대한민국임시정부 톺아보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민주공화제에 대한 재고찰 / 이나미
왜, ‘당’이 아니라 ‘정부’인가? / 윤대원
통합임시정부는 왜 붕괴했는가 / 반병률
좌우합작정부로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 / 김기승

145 좌담회
3·1운동 100주년 특별좌담회 – 3·1운동과 한국인의 삶 / 김정인, 도면회, 이정은, 이태훈

199 북한의 이해
북한 역사상 제1대 사건, 1956년 8월전원회의 / 조수룡
북한의 시장, 변화의 중심에 서다 / 정은미
잊혀진 아이들을 기억하기: 동유럽으로 간 북한의 전쟁 고아들 / 윤석준

237 지금 우리는?
경제위기론이 등장하고 부각된 이유 / 김용기
효창원(孝昌園), 아주 오래 지속된 공간수난사의 이력 / 이순우

277 인물로 보는 역사
[식민지 지식인의 엇갈린 선택]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부일협력의 거두 김길창 목사 / 김승태

[독립운동가열전] 백산 안희제의 민족운동 / 김성민
[독립운동가열전] 조국의 광복을 노래한 작곡가 먼구름 한유한 / 강태구

331 사실 체크
정조는 왜 화성을 건설했을까? / 김준혁

345 내일을 여는 책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 류동민

355 예인열전

단원 김홍도 작품세계, 단원 김홍도, 살아서 신필,
죽어서는 신선, 고전관학파 회화세계의 완성자 4 / 최열

385 사료의 재발견

『평양지(平壤誌)』에 구현된 평양 / 이은주

389 역사와 공간
조선 수운(水運) 물류의 허브(Hub) -조선 전기 충주목을 찾아서 / 김창회, 신동훈

415 서평
‘근대’영화라는 물음과 답 – 이효인, 정종화, 한상언,
『한국근대영화사 – 1892년에서 1945년까지』(돌베개, 2019) / 강성률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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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국정역사교과서 집필진 가운데 근현대사를 전공한 현직 역사교수는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대사 부분을 담당한 집필진은 현대사 전공자 없이 대부분 법학과 정치학, 경제학 전공자로 구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교과서 발표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역사교과서 집필진은 현직 대학교수 12명과 중고등학교 교사 6명을 포함해 모두 31명으로 구성됐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논란이 됐던 근현대사 집필진에 현직 역사교수의 참여가 극히 저조하다는 것이다. 근대 3명 현대 6명의 집필진 가운데 역사를 전공한 현직 역사교수는 한상도 건대 사학과 교수(근대) 1명 뿐이었다.

한상도 건대 교수는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주로 연구한 근대사 전공자로 현 국사편찬위원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지난해 11월 뉴스타파가 근현대사 전공 현직교수 7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당시 국정화 반대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3명 가운데 1명이었다.(관련기사: 국정화 반대하지 않는 근현대사 전공 교수는 3명뿐)

특히 현대사 집필진 6명의 경우는 법학 전공 1명, 정치학 전공 2명, 경제학 전공 2명, 전쟁사 전공 1명 등 엄밀한 의미에서의 현대사 전공자는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참여했다는 교육부의 설명과 달리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가 대거 집필진에 포함됐다.

현대사 집필진 가운데 김명섭 교수와 나종남 교수, 세계사를 맡은 이주영 교수는 뉴라이트 인사들로 구성된 현대사학회 회원이다.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현대)는 지난해 11월 ‘근현대사는 역사학자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문화일보 칼럼에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면서 5.16군사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세계사)는 기존 검정교과서가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하고 북한 교과서를 베끼는 등 편향됐다고 주장했던 인물이고,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조선)은 대표적인 교학사 역사교과서 필진으로 강원대 사학과 교수 6명 가운데 유일하게 국정교과서 반대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현대)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하는 민주평통자문위 수석부의장의 신분으로 최순실게이트가 터지고 난 지난 10월 26일 ‘박근혜 대통령님을 위해 기도하자’는 글을 SNS에 올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집필진 가운데 최성락,손승철, 한상도,유호열, 정경희 등 5명은 현 18대 국사편찬위원이다.

국사편찬위는 지난 3월 기존 위원 16명 가운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던 편찬위원 9명을 배제하고 찬성 인사들을 새로 편찬위원으로 위촉했는데 한상도, 유호열, 정경희 등 3명이 이때 새로 합류한 인사들이다.

분야 성명 전공 현직 직함
선사/고대 신형식 사학 이대 명예교수
선사/고대 최성락 고고학 목포대 고고학과 교수
선사/고대 서영수 동양사 단국대 명예교수
선사/고대 윤명철 사학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고려 박용운 사학 고대 명예교수
고려 이재범 사학 전 경기대사학과 교수
고려 고혜령 사학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조선 손승철 사학 강원대 사학과 교수
조선 이상태 사학 국제문화대학원 대학 석좌교수
조선 신명호 사학 부경대 사학과 교수
근대 한상도 사학 건국대 사학과 교수
근대 이민원 한국학 동아역사연구소 소장
근대 김권정 사학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현대 최대권 법학 서울대 명예교수
현대 유호열 정치학 고대 북한학과 교수
현대 김승욱 경제학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현대 김낙년 경제학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현대 김명섭 정치학 연대 정외과 교수
현대 나종남 사학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
세계사 이주영 사회학 건대 명예교수
세계사 허승일 서양사학 서울대 명예교수
세계사 정경희 동양문화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세계사 윤영인 일본사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세계사 연민수 사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현장교원(선사/고대) 우장문 사학 경기 대지중 수석교사
현장교원(고려) 김주석 사학 대구 청구고 교사
현장교원(고려) 유경래 역사교육 경기 대평고 교사
현장교원(근대) 정일화 역사교육 전 강원 평창고 수석교사
현장교원(근대) 최인섭 역사교육 충남 부성중 교장
현장교원(근대/현대) 황정현 역사교육 충남 온양한올중 교사
현장교원(세계사) 황진상 역사교육 서울 광운전자고 교사
월, 2016/11/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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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은 이달 29일(목) 저녁 7시반, 국민TV 지하 카페(웰빙센터 지하)에서 제 8회 백년포럼을 개최합니다.

유난히 더웠던 2016년 여름이 지나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이 좋은 날씨와 더불어 역사학자이신 이병한 박사를 모시고 ‘다른 백년’인가, ‘다시 백년’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립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이병한 박사의 유라시아 현장 보고를 들어주시고 토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 2016/09/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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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군국가요 작곡한 박시춘의 ‘비 내리는 고모령’ 내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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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 특집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2부 화면 갈무리. 이날 하은이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러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곡은 친일 행적이 확인된 대중음악 작곡가 박시춘이 작곡한 노래로, 3.1운동 및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 프로그램의 성격상 KBS가 자료 검토 및 선곡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KBS

3.1운동 100주년 특집으로 꾸며진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가 친일 행적이 있는 음악인의 노래를 선곡해 방송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9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 특집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2부에선 가수 하은이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렀다. 이날 하은은 425표를 얻어 1승을 거뒀다. 하은의 열창과 탈북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게 된 사연이 어우러져 뜻깊은 무대가 됐다.

그러나 해당 곡은 친일 행적이 확인된 1급 친일 작곡가의 곡으로 알려져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으로 꾸며진 방송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48년에 발표된 ‘비 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1913~1996, 본명 박순동)이 만든 노래다. 박시춘은 평생 동안 3000여 곡을 작곡, 이 가운데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신라의 달밤’ ‘가거라 38선’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1931년 일본 오사카 중앙음악원 혹은 밀양보전을 졸업한 것으로 그간 알려졌으나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실제로는 밀양보통학교를 중퇴했다. 대중음악계에 평생 헌신한 공로로 1982년 보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시춘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중 음악가로서는 유일하게 ‘1등급’ 친일파에 등재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말기 일제는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인들을 징용·징병 등의 명목으로 전쟁터로 끌고 갔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다음 해인 1938년부터 지원병 제도를 실시, 육군지원병·해군지원병·학도지원병 등의 명목으로 전쟁에 동원했다. 1943년 공표되고 이듬해부터 실시된 ‘징병제’를 통해서도 한국인들을 강제로 입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입대를 기피하거나 거부하지 않도록 ‘선전선동’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총독부는 예술인들을 동원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천황제와 내선일체를 강요하는 영화와 가요를 다수 제작했다.

이러한 일제와 조선총독부의 군국주의 정책에 적극 호응한 이가 바로 박시춘이다.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이유서>는 박시춘의 친일 행위에 대해 “1942년부터 지원병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내용의 ‘고성의 달’, 1943년 징병제 실시 기념영화 주제곡 ‘조선해협’, 해군특별지원병제도 축하 특별 기획음반 수록곡인 ‘혈서 지원’ 외 다수의 가요를 작곡 및 편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1942년 죽음을 각오하고 승리를 다짐하는 군인의 모습을 묘사한 가요인 ‘아들의 혈서’, 1943년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후방의 여인 및 부모의 모습을 그린 ‘결사대의 아내’, 부상을 입었음에도 일제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 내용의 ‘즐거운 상처’ 외 다수의 가요를 작곡 및 편곡했다. 1943년 산업전사위문격려위문예능대에 참여해 활동함”이라고 밝혔다.

위 <결정이유서>에 따르면, 그가 작곡한 군국가요는 이외에도 ‘낭자일기'(노래 남인수) ‘병원선'(노래 남인수) ‘아세아의 합창'(노래 김정구) ‘진두의 남편'(노래 박향림) ‘지원병의 집'(노래 장세정) 등 13곡이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다. 이는 군국가요 작곡가로선 최다 기록이다.

지난 2016년엔 밀양 출신인 박시춘을 기리기 위해 밀양시가 ‘박시춘 음악제’를 개최하려 했으나 당시 친일파를 기리는 음악행사를 도비를 지원받아 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여론이 빗발치면서 밀양시는 박시춘 음악제 개최를 백지화 했다. 박시춘 외에도 안익태·현제명·홍난파·남인수·김기수 등 다수의 음악인이 일제에 부역한 친일 행적이 확인된 바 있다.

이지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국장 겸 친일잔재조사위원회 연구원은 11일 통화에서 “대한민국 100년 특집을 하면서 ‘비 내리는 고모령’이 나와서 내 귀를 의심했다”면서 “박시춘은 친일 전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강제동원의 제일선에 서서 징병 유도 가요를 만든 대중음악계의 일급 친일파”라고 설명했다.

이지훈 국장은 “화려한 친일행적을 가진 이가 (친일의 대가로) 평생 호의호식한 데다 대중음악계 최고의 별로 아직까지 자리매김한 것은 씁쓸한 현실”이라며 “관계자들이 자료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임정 수립 100년 특집에 나온 것도 우려스러운데, 우승을 했다고 해서 더 당황했다”고 개탄했다.

<2019-03-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3.1절 특집’에 1급 친일파 노래를? KBS의 황당한 결정.

수, 2019/03/1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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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 국정교과서 토론회

정부는 지난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습니다. 이로써 정부는 국정 교과서의 제작에 돌입하였으며, 고시대로라면 2017년도 3월부터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정부가 직접 편찬한 교과서로 한국사를 공부하게 됩니다.

정부는 국정화의 추진 근거로 “현행 검인정제도는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검인정제도는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어왔을까요? 정부는 제도의 운용에 대해서는 한마디 자성도 없이 실패를 단언할 만큼, 검인정제를 취지에 맞게 잘 운영해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근현대사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와 접점을 가지고 있는 일본, 그리고 분단의 경험을 공유한 독일 역시 역사교과서 검인정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 나라의 검인정제도 운영 실태는 각기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학문과 교육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세 나라의 사례를 비교검토해보고 이를 통해 민주적인 역사교육의 방향과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토론해보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공개토론회]

한국·독일·일본의 역사교육과 시민적 대안

 


 일시 : 2015년 12월 23일(수) 오후 4시~6시

 장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주최 :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사회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참여사회연구소 연구분과위원장

 

발표

독일의 검인정제도와 한국 역사 교육에 대한 시사점이동기 강릉원주대학교 교수
일본의 검인정제도 운영 실태와 한중일공동교과서의 사례신주백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HK 연구교수
한국의 검인정제도 하 교육부의 개입과 국정화 논리의 실체김한종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토론

민주적인 역사교육제도의 방향과 사회적 합의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시민사회의 대응 방향과 대안교과서의 지향점 모색김육훈 독산고등학교 교사, 역사교육연구소장

 

151223_공개토론회_한국·독일·일본의 역사교육과 시민적대안

 

 

 

문의 : 참여사회연구소(02-6712-5248, [email protected])

수, 2015/12/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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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메르스, 백남기. 지난 4년 동안 한국 사회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늘 ‘창조’란 말을 반복했으나 오히려 ‘헬조선’을 탄생시켰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통합진보당 해산 등등, 박근혜 씨는 역사를 유신 시대로 되돌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현 직무정지)은 최순실 일당과 함께 대한민국을 “이게 나라냐”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됐습니다. 수백만 시민의 촛불이 이뤄낸 한국판 명예혁명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제 4년 만에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캄캄한 터널에서 가까스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권을 다룬 보도 영상을 통해 우리가 지나왔던 암흑의 세월을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금, 2016/12/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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