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자본중심의 물적기반을 인간과 가치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 조세개혁과 사회상속

지역

자본중심의 물적기반을 인간과 가치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 조세개혁과 사회상속

익명 (미확인) | 목, 2019/03/14- 09:32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의 재정개혁 특위는 제 역할을 못한 듯 조용히 해산되었다.

이는 사회적 혁신과 가치를 표방하고 출범했던 현정부가 실제적인 개혁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술적으로는 생애를 통한 복지 등 포용정책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현재의 재정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대저 역사의 변혁을 이루는 데는 조세정책이 성공의 여부를 가름하였다.

선택적 양수론揚水論을 정책적 수단으로 삼아 인간중심의 시민경제를 실현하려면 당연히 시민권력의 정부가 주도하는 변혁적 조세정책이 변화의 핵심적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 사회경제 운용의 기본적 원칙으로 자유와 시장을 기반으로 하되 물적 토대의 재구성을 통한 확대와 혁신, 지구 생태와 환경의 지속적 순환, 개인의 존엄과 사회의 상생적 가치를 융합해 내기 위해서는 조세 정책에 사회철학을 담아내는 큰 변화의 밑그림이 필요하다.

우선 국가운용에 필요한 재정적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평면적이고 일차적 측면에서의 조세역할은 진부한 고전적인 주제로, 약한 정부를 지지하는 신자유주의적 경향과 강한 정부를 요구하는 케인즈적 입장이 충돌하면서 지난 수십 년 간 서구 정치의 논쟁적 내용을 장식하였다.

산업화의 진행으로 전통적 가족체계가 붕괴하고 독점적 자본주의가 성립되면서 풍요를 제공해 주던 시장이 수탈적 성격으로 전화되면서, 인간으로서 삶에 필요한 자원을 친밀성에 기초한 개인적 관계에 의존할 수 없으며 변화무쌍한 기업의 입지와 탐욕으로 변질된 시장에도 기대할 수 없는 조건에서, 정부가 일차적인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국가 존립의 일차적 근거이다.

이에 모든 국민들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적 조건을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를 주권자로서 시민들은 당연히 거부해야 하고, 정히 불가피하다면 전복시켜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류의 희망으로 떠 올랐던 재분배 기능중심의 사민주의가 20세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기득권 체계의 유지강화라는 측면에 급급해지면서 제도적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미래국가의 모습은 사회안전망과 순환적 재분배라는 기능뿐만 아니라, 물적 기반의 재구성을 통하여 혁신적 역동을 꾀하면서 인간적 가치와 존엄 그리고 사회적 상생과 자유 조건의 확대가 모두에게 일상적이며 지속적으로 작동하도록, 제도적 교량 역할로서 조세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집행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의 정부는 현존의 극심한 불평등과 불균형의 양극화를 해결하는 단초로서 산업과 경제운용 성과를 기간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집중集中과 세대간을 넘어서 형성되는 축적蓄積이라는 두 개의 핵심적 문제점을 동시적으로 해결하는 정책적 방도를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양극화의 주범인 집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살펴본다

부의 집중에 대응한 조세의 기본 방향은 누진적 세율의 적용이다. 우선 현재의 시장적 조건은 20 세기의 20 : 80 수준의 빈부격차를 훌쩍 넘어서 1 : 99 또는 0.1 : 9.9 : 99의 양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득과 재산의 5 분위 배수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자료는 연속적 추이분석 이외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

최상위 부자 및 공생하는 집단의 분포는 10 분위 배수의 통계와 최상위 1%가 갖는 부의 집중도의 자료가 제공되어야 비로소 현실 상황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국민순소득 중에 자본과 자산에 대한 배분율이 35-40 % 수준을 넘어서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단순한 경제활동 소득의 분포를 넘어서 자산소득을 포함한 종합소득 분석의 통계를 도입해야만 유의미한 판단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누진적 소득세율에 대해서는 우선 서구의 전후 골디락스 시대인 1946-1970대의 80-90% 고율 경험에 대한 연구가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 적용되고 있는 최고 소득세율은 과거 80년대 레이건 시대의 공급중심과 낙수효과의 이론을 제공했던 레퍼 교수의 주장(레퍼곡선 이론)에 따라 매우 낮은 40% 선에 머물고 있으나. 이제는 공급이 아니라 순환과 수요 중심으로 경제정책이 이동해야 하는 시점이며 더구나 낙수효과가 허구임이 드러난 현재에 이를 더 이상 고집해야 할 근거는 전혀 없다.

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사회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유럽의 경우에는 여전히 60% 이상을 적용하고 있으며, 불평등 연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영국의 액킨슨 교수 역시 65%선이 불평등 완화의 최적 세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최근 미국 민주당의 민주사회주의그룹(DSA) 의원들이 주장하는 최고세율 70%에 대하여 뉴욕시립대 크루그만 교수는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며 뉴욕타임즈 기고를 통해 세법 연구 대가들의 성과와 결론을 소개하면서 75%가 경제를 최적화하고 선순환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수치라고 밝히고 있다.

상기의 논쟁을 근거로 한국의 부의 편중이 세계 최악의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경제의 흐름과 운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술적 범위에서 한국 소득세의 최고 누진 세율을 현재 40% 에서 70% 수준까지 상향 조정할 이유와 근거가 충분하다. 이에 더하여 한국경제의 고질적 적폐인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유세를 실제 거래가격 기준 삼아 누진적으로 1-2%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 이는 조세의 수입효과 이전에 상생하는 공동체적 규범과 원칙의 문제이다.

법인세의 경우, 소득세와 이중과세라는 논쟁점이 있고 이미 자본의 이동에 국적이 없어진 세계화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단위국가라는 국경을 넘어서는 매우 조심스런 주제이며, 국제적 수준의 합의와 기준 설정이 절실하다. 유엔과 같이 국제조세 행정기구의 설립이 시급한 사안이기도 하다.

다만 자본 자유도가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고 자본시장에서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량 상장기업들의 외국인 소유지분이 대단히 높은 한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외국투자자에 대한 배당세율을 현재 5% 수준에서 가능하다면 10% 이상으로 높여야 하며, 외국인 지분이 집중된 우량 기업들에 대한 선제적인 과세를 위해서, 예건데 연간 세전 수익이 1조를 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추가적으로 과감히 높이는 방안도 연구해볼 만하다. 외국인 투자가 한국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측면을 전적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주식매매차익을 포함하여 발생한 자본 수익에 대해서는 당연히 합리적인 절차와 수준에서 적정한 과세를 하는 것이 국민경제적 주권의 입장에서도 옳다고 본다.

여기서 미래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매우 중요한 영역이 있다. 인터넷 망을 공유기반으로 사용하는 거대 ICT기업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연구해야 한다. 이러한 제안을 하는 배경으로 FAANG로 상징되는 ICT 기업중심으로 26명의 초거대 부자들이 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36억 명의 재산을 능가하는 현실을 이대로 지속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침 국내 재야 재정학자인 이동욱 선생이 정규직 일인당 세전 부가가치액 기준으로 강력한 누진세를 적용하자고 주창하고 나섰다. 그의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강력한 누진적 법인세율을 정규직의 고용에 연동을 하면, 이윤이 많은 기업은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여 보다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을 것인지, 아니면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지 않고 높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을 것인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기업이 정규직의 고용을 확대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노동소득이 증가하여 소득분배가 확대될 것이고,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누진적 법인세가 증가할 것이므로 세수가 증가하고, 세수증가에 따른 세출증가를 통하여 소득분배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더 만들 수가 있다. 법인세율을 정규직 1인당 평균부가가치(생산)를 기준으로 강력하게 누진화하면 좋은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기업간 격차도 감소하고, 고용확대로 노동으로의 소득배분도 증가하고, 세수도 증가하여 소득분배는 획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동욱 선생의 정규직 고용과 연동한 누진적 법인세를 초과이윤을 실현하는 ICT 산업분야에 적용하자는 필자의 제안은 해당산업 분야가 인터넷 플랫홈을 무상으로 이용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이윤을 남기는 반면에 실제로 고용 기여의 효과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 착목한 것이다.

예건데 해당 국가단위로 정규직 일인당 세전 수익이 1억을 넘는 경우 60%, 2억을 넘기는 경우 75%, 3억을 넘기는 경우 90%를 적용한다면, 그들이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소위 공유경제가 단순히 플랫홈을 공동사용 하면서 형성된 편의성의 과잉 포장된 일면적 사고를 넘어서, 이에 발생하는 독점적인 초과수익을 강력한 조세정책을 통해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공적 재원으로 환수하여야 비로소 참다운 공유재적 경제 질서가 실현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 때 발생하는 조세수입이 e-Flatform 공유재라는 기반에서 형성되는 것을 감안하여 모든 국민들의 기본소득 등 공공재적 재원으로 활용해 봄직하다.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마침 이 글을 통해서 이동욱 선생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추가적으로 세금공제 제도에 대하여 살펴보자면, 세액 공제 제도는 초기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부실하고 사회적 기능이 미약하여 산업, 교육, 복지 문화 등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좋은 취지로 도입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정부의 제도와 정책들이 점차 완비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제 제도가 무절제하게 남발되고 과도하게 중첩되면서, 여기저기서 온갖 비리와 부패가 발생하고 보편적 원칙을 지켜야 할 세정 질서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가급적 공제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공제제도를 완벽하게 없애는 것이 최상이다), 법정 세율과 실제 부과되는 세액이 가능한 일치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에 따라 추가 유입되는 재정의 여력을 각 부처별로 정책적 목표와 용처에 맞추어 산업과 과학기술, 복지와 노동, 교육과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구체적 사안과 실적에 따라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마땅하다.

상기에 언급한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그래도 재원이 부족한 경우에는 필요한 만큼 소비세율을 높이는 등 과감한 조세개혁을 실시하여 조세를 포함한 국민부담율이 35%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사회정책적으로 포용적 국가군에 진입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넘어 형성되는 축적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상속이라는 주제를 살펴본다

2018. 11월 국무총리 산하에서 주관한 사회적 상속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당시의 문제제기는 참신하였지만, 개념과 용어가 전적으로 잘못 설정되어 사회적 상속에 대해 오해와 혼선을 야기했다. 당시 내용을 유추하면 사회적 상속이라는 용어 대신에 사회적 기부라는 이름을 사용했어야 한다. 사회적 상속과 사회적 기부는 사람과 원숭이만큼이나 엄청난 질적인 차이를 가진다.

사회적 기부 또는 기부 자본주의는 기득권 또는 개인소유적 물적 기반과 자산의 상속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기존의 체제내적 개념에서 개인의 자비와 선의에 의해 일정 부분을 사회에 기부하도록 유도하여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양산해낸 불평등과 불균형에 대한 저항을 일부 완화하거나 현실모순에 대하여 부정적 판단을 둔감시키는 조치이다.

반면에 사회적 상속은 개인의 일생 동안 이루는 성취를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서 유도하고 활성화시키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성취의 누적이 인연을 통한 타인 또는 혈통을 통한 가족들에게 상속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종신 과정에서 이를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개념이다. 해당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물적 기반과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개인의 일생 동안 사적 소유라는 동기를 부여하고 시장경제의 활력기제로 활용하되, 사적 소유의 기간을 개인의 일생으로 한정하고 사후에는 해당 사회의 소유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부와는 차원을 크게 달리하는 것이다.

마치 성서의 유대사회에서 이야기 하듯이 50년이 지나면 대희년이라는 관행을 통해 개인적인 부채를 면제하면서 사회적 물적 기반의 조건을 모두에게 공정한 새로운 출발점으로 되돌리는 과정과 유사하며, 또한 조선 초기 실시했던 과전제처럼 당시의 물적 기반인 토지를 사대부가 관직에 있을 때 보수(녹봉)의 대가로 할당하여 수조권을 부여하되, 사후에는 다시 국가에서 환수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사회적 상속이라는 사상의 역사적 흐름에는 유토피아를 그린 토마스 무어에서 출발하여, 자연에서 나오는 일체의 자원은 모든 사람들의 소유에 해당한다는 토마스 페인의 생각, 팔랑주라는 산업생산의 공동체적 원리를 통해 현대적 사회보장제와 기본소득 개념을 제시한 샤를 푸리에, 케인즈와 함께한 소그룹 연구모임 막내였던 제임즈 미드 교수의 사회배당과 노동지분 개념 및 이를 지지하며 재산소유적 민주주의를 주장한 존 롤즈를 거쳐, 현재 하버드 대학의 종신교수인 로베르토 웅거에 이르러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형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잠깐 로베르토 웅거 교수(1947생)를 소개하면, 브라질의 명문가 출신으로 하버드 법대에 진학에 29세에 종신 교수직을 획득한 전설적인 인물로 미국의 비판법학계를 이끄는 주역의 한 사람이다. 오바마의 지도 교수로 후보시절 자문역을 맡았으나, 이후 오바마의 행보에 실망하여 공개적으로 지지를 철회하기도 하였으며, 브리질 룰라 대통령 시절에 전략기획장관을 맡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볼사-파밀리아(빈민가정 생계지원 제도) 정책을 기획하고 책임진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유재산권이라는 법적 제도는 합리적 논리나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역사적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 관계가 얽히고 정치척 투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연히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고 판단하면서, 사유재산권은 서로 다른 성격의 다기한 권리들이 우연히 묶여 만들어진 일종의 다발이라고 파악한다. 권리의 다발로서 사유재산권을 획득, 소유, 사용, 배제, 이전 및 상속 등으로 다시 세분하여 각각의 성격을 분리하여 해석하고자 한다.

본 글의 주제인 증여와 상속이라는 항목에 대해, 이는 기득권 체계를 강화시키면서 변화와 미래를 향한 전진에 저항하는 장애물로 파악하면서, 타인증여와 가족상속 자체를 기본적으로 부정한다. 웅거의 구상에 따르면, 증여와 상속 자산을 사회적으로 귀속시키면서 이를 통상적인 국가 재정에서 분리하여 향후 세대를 위한 ‘사회상속계좌’로 전환하며 이를 위하여 가칭 ‘중앙투자기금’이라는 이름 설립하여 국민연기금처럼 운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증여와 상속의 재산을 사회로 귀속시켜 형성된 ‘중앙투자기금’의 목적과 용도는 기득권 체계에 묶여 있는 물적 기반을 해방시켜 모든 시민들의 일상적 경제활동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지원하는 시민 모두의 자산으로 재구성하여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때 ‘중앙투자기금’을 거점으로 시민경제적 원칙에 따라 전문적으로 자금의 배분역할을 진행할 전문적인 자산운용회사라는 중간단계를 거쳐 현장에서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행위주체들, 개인 단체 법인 조합 연구조직 등에게 재원을 투입함으로써, 산업과 경제 활동 영역 전체를 세대에 거쳐 점차적으로 혁신 과정을 통해 재구성하고 확장하여 나가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웅거는 여전히 문제의 수많은 저작들을 현재까지 저술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건국대에서 법철학을 가르치는 이재승 교수가 ‘주체의 각성 The Self Awakened’ 과 ‘민주주의를 넘어 Democracy Realized’를 번역 소개하였고, 중국청화대 교수인 추이 츠이안이 웅거의 여러 저술을 재편집한 ‘정치 Politics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 등이 소개되어 있다.

핵심은 증여와 상속에 대한 적용세율로 역시 위에서 언급한 서구의 골디락스 시대에 적용되었던 최고 세율 80-90% 수준에서 검토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당시의 세율의 수준은 부의 축적에 대한 기여도 평가를 통해 합리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비록 시장경제의 활력과 확장이라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하여 개인이 자유롭게 부를 취득하고 점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인정하되, 개인이 획득한 부의 배경에는 역사적 흐름과 문화적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러한 조건적 배경의 공헌도가 80-90% 이라면 개인의 몫은 10-20%라는 논리적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의 현재 증여상속 세제는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산층의 경우 자녀에게 상속재산을 내리 물려주는 과정에 전혀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다만 1% 이내의 부유한 계층에 한하여 현존의 세법에 더하여 예건데 100억 규모가 넘는 증여와 상속 재산에 한하여 80-90%의 추가적인 누진 과세만 보태면 된다.

또 하나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사항은 기업상속 공제제도의 허구적 논리이다. 대한항공 일가의 행태에서 보듯이 개인과 가문의 일방적이고 전횡적인 경영지배는 군사적 또는 개발독재 시대에나 가능하며 추격이 가능했던 구시대의 산업전략으로 유효했던 측면이 있으나, 지식과 혁신이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큰 장애물이 된다. 미래에는 기업 종사자 모두의 자발적 참여와 적극적 협업과 창의적 사고를 필요로 하고 경영과 소유에 있어서도 집단적 성격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경영학에서도 이미 입증된 사실로 명령적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율체계 DAO (Diversified Autonomous Organization)로 전환하는 것이 정답이다. .

따라서 기업상속을 위한 공제제도는 구시대적 사고이며 기존의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하자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유념할 것!). 당연히 전면 폐지되는 것이 합당하다. 다만, 현금과 포트폴리오 형태로 존재하는 상속과 증여 자산은 곧바로 과세의 시행이 가능한 반면, 개인적 소유의 고정자산은 일시적 처분이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당사자 선택에 따라 일정 법정이자를 적용하면서 20-30 년간의 분할적 상환방식이라는 기술적 유예조치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상속의 공제라는 제도의 핑계 거리인 경영권의 지속성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해당 부처나 기관 또는 합의된 시민기구에서 기준과 상황에 맞게 직접 개입하고 지원하는 것이 정답이다.

결론이다. 원칙적으로 사회적 상속으로 형성된 재원은 주로 기존의 물적 기반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산업적 생산기반의 지속 혁신 확장이라는 영역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활용되어야 하는 반면에, 전통적인 조세개혁을 통하여 확보한 재정은 국가 운용의 필요 경비와 사민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재원에 주로 사용해야 한다.

전통적 조세의 개혁을 통한 재정을 형성하든, 사회적 상속제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든, 인류가 현단계까지 형성해온 물적 기반과 조건을, 신자유주의에 의해 반인륜적으로 작동하는 기득권적 구질서로부터 탈구시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사회적 공동선과 자유 조건의 영역적 확대를 재구성하여야 하며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혁신 기제가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음 장에서는 사회적 혁신 기제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추신: 본 글이 완성된 즈음해서 마침 다른백년 이사인 서강대 김종철교수가 번뜩이는 통찰력을 담아내어 ‘금융과 회사의 본질’이라는 저서를 발간했는데, 내용 중 필자와는 다른 시각과 접근을 통해 개별화된 ‘사회적 상속’을 제안하고 있다. 향후 논쟁과 상합을 통하여 보다 발전된 내용물을 기대하여 본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조직이란 일반적으로 공동의 목적과 비전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집합체로 이해하고 있다. 조직은 구성원들이 각자 고유한 직무를 맡아 조직의 비전과 목적을 향해 서로 협력할 때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각 직무는 고유한 성과를 창출할 책임(성과책임) 또는 그 업무수행과정을 대내외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책임(설명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소위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라고 하며, 어느 직무든지 사전적으로 규명되어 각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에 명확히 기술되어 있다.

x-default
(이미지 출처: http://www.insightofgscaltex.com/)

그러니까 조직에는 각 직무(job)의 성과책임이 규명되어 있고 그 직무에 적합한 사람이 선발·배치되는 것이 인사조직론의 기본이다. 

조직의 목적과 비전이 이 성과책임이라는 어카운터빌리티를 통해 각 직무로 분해되어 스며들어가게 된다. 직무담당자들은 자신의 직무에 부여된 성과책임을 인식한 후, 업무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부여된 성과책임을 완수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조직운영과정이다. 이런 과정은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

1

위의 <그림>은 여섯 개의 개념이 서로 맞물려 상호작용하면서 일어나는 경영현상을 도식화 한 것이다. 이것을 경영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인사조직론에서 플랫폼이란 조직구성원들이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는 정신적, 경제적, 물리적 토대를 의미한다.

조직의 비전과 전략에서부터 출발하라

이런 플랫폼은 조직의 비전으로부터 출발한다. 매력적인 비전(compelling vision)에 의해 구성원들의 가슴에 열정을 심어줌으로써 창의력을 발휘하게 한다. 이것이 성과창출에는 가장 강력한 촉매제이다.

이러한 매력적인 비전으로부터 전략(strategy)이 수립되며 그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지원기능으로서 조직(organization)이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때 조직의 비전, 목적, 방향, 가치 등이 각 직무의 성과책임(accountability)에 적절히 배분되어 스며들어가 있어야 한다. 각 직무는 이 성과책임에 근거하여 성과목표를 스스로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직무가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직무가 요구하는 역량에 부합하도록 선발·배치되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채용에서 출발하여 급여보상을 거쳐 퇴출까지의 모든 인사과정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섯 개의 경영개념이 플랫폼을 형성하여 운영되는 사이클은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

2

인간을 중시하는 게르만, 스칸디나비아 모델에서 배우자!

이러한 경영플랫폼 운영모델의 최초의 촉발점은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타인을 이끌거나 명령하는 역할이 아니라 조직구성원들과 함께 매력적인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조직에 생명력 또는 활력(vitality)을 불어넣어주는 역할과 그런 환경조건을 조성하는 역할이다.

이러한 인사조직모델이 유럽의 게르만 모델과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조직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게르만 모델을 채용하고 있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과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정착시킨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같은 국가에서는 가장 인간중심적인 인사조직체계를 갖추었다.

경쟁이 아닌 협력을 장려하는 인사조직모델은 경제적으로 거의 완전고용을 이룰 정도로 경쟁력이 있는 모델이다.

현재 취업문제뿐만 아니라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등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는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검토해볼만하다.

우리가 이런 선진모델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아래 <그림3>에서 보듯이 인류역사에서 크게 보면 조직개념이 몇 차례 극적으로 변화해왔고 우리도 이런 변화의 물결에 적응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3

성과연봉제…지나친 경쟁은 오히려 ‘독’

인류는 지금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 1935~)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1953~)과 같은 철학자들에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공동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실제로 게르만 모델이나 스칸디나비이 모델은 이미 1970년대 이전부터 그런 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지금은 이런 국가와 조직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조직 대부분에서 구성원들 간 경쟁을 부추기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조직 내의 커다란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조직의 효율성과 창의성을 현저히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경쟁체제를 신봉하던 미국의 포천 500대 기업 중에서 약 70% 가량은 성과연봉제를 위한 상대평가제도를 이미 포기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의 상징인 성과연봉제와 같이 경쟁을 부추기는 문화에서는 조직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조직의 경쟁력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부경쟁은 상호 협력을 깨뜨리고 있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도 조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분권화되고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DANO)

과거 관료화된 조직의 비효율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는 뜨거운 가슴으로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여 함께 성취하려는 리더십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구성원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것은 아니었다. 원인과 결과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구글사무실_00004
(사진 출처: http://moneytop.tistory.com/)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의 세계적인 기업들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들은 인간존중의 조직문화를 추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함께 매력적인 비전을 마련하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 협동심을 가지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과 아주 유사하다.

이런 인간존중의 사상과 철학이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인간존중의 경영모델을 심도 있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데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의 신생 IT업체들과 게르만 모델을 추구하는 유럽 기업들의 인사조직 실무를 관찰해보면, 상명하복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한결같이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 즉 Decentralized Autonomous Networked Organization(DANO)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국가운영방식도 바뀌어야 하며, 모든 공공기관들이 이런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이미 1970년대 이전부터 DANO의 경영방식으로 전환하여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하고 있다. 독일, 스위스 등 지금 제조업 차원에서의 혁명적인 변화인 인더스트리 4.0을 이끌고 원동력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구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조직운영방식을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으로 전환해야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목, 2017/02/09- 14:08
828
0

“내년은, 정치권에서 맘대로 만든 객관식 답안 중에서 국민들이 욕을 하며 차악을 고르는 기성정치 관행이 철퇴를 맞을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든 국민들이 서로 소통 연대하며 공통의 주장과 요구를 만들어 관철해낼 것입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 ‘혁명적 변화’의 시작이고 중심입니다.”

Á¤ºÎ°¡ ÃßÁøÇÏ´Â Áö¹æÀçÁ¤°³Æí¿¡ ¹Ý´ëÇØ 11ÀÏ µ¿¾ÈÀÇ ´Ü½Ä³ó¼º Áß´Ü ÀÌÈÄ °Ç°­ ȸº¹À» À§ÇØ ÀÔ¿ø Ä¡·áÇß´ø ÀÌÀç¸í ¼º³²½ÃÀåÀÌ 27ÀÏ ¿ÀÀü °æ±âµµ ¼º³²½Ã Áß¿ø±¸ ¼º³²½Ãû¿¡¼­ ¿­¸° È®´ë °£ºÎȸÀÇ¿¡¼­ ¹ß¾ðÀ» Çϰí ÀÖ´Ù. ÀÌÀç¸í ½ÃÀåÀº ´Ü½Ä ³ó¼ºÀ¸·Î ÀÚ¸®¸¦ ºñ¿îÁö 20Àϸ¸¿¡ Ãâ±ÙÇß´Ù. 2016.6.27/´º½º1
이재명 성남시장이 내년 대선에서 야권의 ‘다크호스’가 될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이 많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하듯, 최근 그의 지지율도 가파르고 오르고 있다.

차기 대통령 선거로 향하는 이재명 성남 시장의 기세가 무섭다.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집단의 이합집산이 아닌 국민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이 시장은 주요 여론조사에서 최근 석 달 사이 지지율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며 야권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1
이재명 시장은 한국갤럽의 10월 정기조사에서 처음으로 5%대의 벽을 넘어섰다. (자료: 한국갤럽)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3일 내놓은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은 지지율 5.2%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5.1%)을 따돌리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5위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의 10월 정기조사에서는 처음으로 지지율 5%의 벽을 넘어서며 전체 5위를 기록했다. 이 시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과 2위 군을 형성하고 있다.

선두를 다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는 아직 격차가 적지 않지만,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나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등 여야의 거물 정치인은 모두 따돌렸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지 6년 만이다.

이 시장은 중앙정부가 예산삭감이라는 칼날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청년배당ㆍ무상교복ㆍ공공산후조리 등 차별화된 복지정책을 관철시켜 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 시장에게 다윗의 다섯 물맷돌이 돼 주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 속에 대선 흥행의 불쏘시개 역할로 그칠지, 뒤집기 한판을 펼치며 반전 드라마를 써낼지 이 시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붉은 진달래에 가슴 시렸던 ‘공돌이’ 

이 시장은 초등학교 끝으로 공장 노동자가 됐다. 가난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지만 그가 삶을 끌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을 키울 수 있게 했다.

1964년 경북 안동의 한 산골에서 산전(山田)을 일구며 생활하는 빈농의 집에서 태어난 이 시장을, 지독한 가난은 내내 따라다녔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부모님이 7남매를 데리고 경기 성남의 상대원 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으로 옮겨온 뒤 이 시장은 목걸이 공장, 고무 공장을 거쳐 상대원공단의 냉장고 공장 ‘공돌이’가 됐다.

1
1970년대 성남1공단의 모습. 1970년 광주대단지 항쟁을 겪었던 정부는 성남 이주 철거민 고용을 위해 1974년에 제1, 2공단, 1976년에 제3공단을 준공됐다. 이 공단은 성남지역에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이재명도 어릴 시절, 이곳 공장에서 일했다. (자료: 성남시)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이 시장은 “식어버린 밥과 딱딱하게 굳은 오뎅조림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일했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그는 “공장 앞산에서 온 산을 뒤덮은 채 무더기로 붉게 피어난 진달래가 눈에 들어왔다.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 눈앞에 펼쳐진 붉은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여느 공돌이처럼 시커먼 공장철문을 넘을 용기는 내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왼쪽 팔목 뼈 하나가 잘리는 사고로 평생 왼팔이 구부러지는 장애까지 안았다. 열일곱 사춘기에 접어들자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희망 없는 현실을 탓하며 두 번이나 스스로 삶을 등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그는 죽을 힘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공부했고, 중ㆍ고교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며 받았던 월급 8만원보다 많은 매달 20만원을 장학금으로 받았다. 집에 생활비를 보태고 공장에 다니던 다른 형제들의 공부도 도울 수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맛본 ‘성공’이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 시장은 “판•검사가 돼 이제 정말 잘 먹고 잘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출세길 버리고 인권변호사 투신

잘 먹고 잘살겠다던 다짐은 198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 시장은 사법연수원 시절 가입한 노동법학회에서 변호사이던 노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저렇게도 살 수 있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한다.

88년 연수원에서 잘릴 각오로 ‘정기승 대법원장 인준 반대 성명서’를 쓰게 되면서 평생의 힘이 되는 동지들도 생겨났다. ‘87년 체제’가 만들어지던 격변기이던 당시 연수원 동기이던 문병호 국민의당 전 의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뜻을 같이 했다.

연수원을 마친 1989년 이 시장은 판ㆍ검사 임관이라는 미래가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사실상의 고향인 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다. 문 전 의원과 정 의원도 각각 인천 부평, 경기 의정부로 갔다.

이 시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혼자였다면 두렵고 불안했을 텐데, 동료를 보면서 ‘그렇지 않다(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연수원 시절을 회고했다.

5564_20020523120254_leemain2
이재명은 변호사시절이던 2002년 1월, 이른바 ‘파크뷰 특혜분양사건’ 대책위를 이끌면서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과 파크뷰 아파트 건설 시행사 에이치원개발 홍원표 회장, 고위공직자, 검찰 간부간에 ‘친분관계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녹음테이프를 폭로했고, 이 일로 고초를 겪었다.

이 시장은 서민을 위한 무료변론, 양심수와 시국사건 변론 등에 나서는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활동에서 힘을 쏟는다. 1995년 훗날 성남참여연대로 이름을 바꾼 성남시민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시민운동에도 투신했다.

2002년 분당 파크뷰 개발 특혜 비리를 언론에 폭로했다 구속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이 시장은 “소년노동자의 기억은 저의 근육에 박히고 힘줄에 스미고 핏줄로 흘러 오늘날 저를 밀어가는 힘이 됐다. 공장 프레스에 눌려 더는 펴지지 않는 굽은 팔을 펴보려던 그 상처 가득한 소년노동자의 마음이 노동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대우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길에 저를 서게 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이 정치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는 2004년 성남 시립의료원 건립 운동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전국 최초로 주민이 발의한 시립의료원 조례가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날치기 폐기되는 것에 항의하다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수배된 적이 있다”며 “(숨어 있던)교회 지하에서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62136_35326_3325
이재명 시장이 2014년 성남시립의료원 건립 공사 기공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 시장은 10년 전, 시립의료원 조례가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날치기 폐기된 것을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직접 시장이 돼 10년 전의 꿈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 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신 이 시장은 2010년 당선된 뒤 다짐대로 성남 시립의료원 건설을 시작했다.

중앙정부에 맞서는 복지 지자체장

이 시장은 재선을 하는 동안 청년배당ㆍ무상교복ㆍ공공산후조리 등을 내놓으며 복지정책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잇단 복지 정책에 제동을 거는 중앙정부와 맞서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대중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청년배당 등에 대해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맹공을 퍼부을수록 정치인으로서의 이 시장의 주가는 높아지는 모양새다.

3bad0b1ebdc5c8ef2b5bf
이재명 시장은 2016년 1월,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년배당’을 성남지역 각 동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 시장이 손에 쥔 무기는 SNS다. SNS는 보수언론의 허위보도, 왜곡조작에 해명하고 싸울 유일한 보호수단이라는 게 이 시장의 생각이다. 여느 자치단체장과 달리 SNS를 통해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에서 20여만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정책 논란이 한창이던 때 이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한다고 전 국민에 사기 쳐서 대통령이 되고는 국가 빚은 사상최대로 늘리고 꼼수 서민증세에 애들 분유값 지원까지 줄이고 있다. 시기질투심으로 유치한 ‘증세 없는 복지 금지법’ 만들 생각은 버리고 ‘공약 이행 강제법’이나 만드는 게 어떤가”라고 일갈했다.

SNS상에서는 이 시장의 발언을 속 시원하다는 뜻의 ‘사이다’로 추켜세우며 열광적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시장은 SNS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 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닮았지만, 그 보다 영리하고 치밀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¼¼­¿ï=´º½Ã½º¡½Á¶¼öÁ¤ ±âÀÚ = ¹®ÀçÀÎ »õÁ¤Ä¡¹ÎÁÖ¿¬ÇÕ ´ëÇ¥°¡ 20ÀÏ ¿ÀÀü ¼­¿ï ¿©Àǵµ ±¹È¸ÀÇ¿øÈ¸°ü¿¡¼­ ¿­¸° ¹Ú±ÙÇýÁ¤ºÎ º¹ÁöÈÄÅð ÀúÁö ÅäÅ©Äܼ­Æ®¿¡¼­ ±¹¹ÎÀÇ·Ê Çϰí ÀÖ´Ù. ¿ÞÂÊÀº ¹Ú¿ø¼ø ¼­¿ï½ÃÀå, ¿À¸¥ÂÊÀº ÀÌÀç¸í ¼º³²½ÃÀå. 2015.12.20.   chocrystal@newsis.com
이재명 시장만큼 찬사와 비판을한 몸에 받는 정치인도 드물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기대를 받고 있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태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내년 대선 레이스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사진은 2015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박근혜정부 복지후퇴 저지 토크콘서트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왼쪽부터) 박원순, 문재인, 이재명. (사진 출처: www.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71791)

하지만 내년 대선 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당장은 정권 교체를 위해, 축구로 치면 야권 핵심 지지층의 욕구를 대변하는 중앙수비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는 일인경기가 아닌 집단경기”라며 “팀원으로서 팀 안에서 각자 역량과 소질에 맞는 역할을 나누어 맡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먼저다. 팀이 이겨야 MVP도 있다”고 적었다. 중앙수비수로서 차기 대선이라는 큰 경기를 대비한 조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이 당장은 중앙수비수로 시작하지만 장기간 이어질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자리를 옮길지는 알 수 없다.

이 시장은 “지는 것도 습관이다. 철저하게 준비해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일단 준비를 잘해야 한다. 나도 그렇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 뭘 하더라도 대충하지는 않을 거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금, 2016/10/14- 15:36
816
0

청년 여러분,

우리(이 글은 저와 구예린 아시아인스터튜트 연구원이 함께 쓴 글입니다)는 손에 촛불과 직접 만든 포스터를 들고 광화문광장에 모인 여러분들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대학생도 있었고, 고등학생, 심지어 중학생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법치와 책임정치를 요구하는 모습은 매우 숭고했습니다. 거기에는 정치의식의 맥박이 뛰고 있었습니다.

111
(사진 출처: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4613)

언론들은 평화로운 시위를 칭찬했고, 이제 한국은 민주주의 모범국가가 됐다고 추켜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그의 절친 최순실이 철창에 갇혔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제 새로운 도전이 남아 있습니다.

반동으로 끝난 시민혁명들

1960년 4월 26일에도 한국에서 어떤 대통령이 사임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학생들과 시민들의 요구에 밀려 사임했을 때, 학생들은 환호했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들어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정세에 어두웠고, 앞으로 어떤 정부를 세우고,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승만 사임 이후의 권력공백기를 틈타 누군가가 권력 찬탈을 노린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장면 정부는 분명한 비전이 없었고, 위험한 정치게임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박정희라는 영리한 젊은 장군이 군대 내 불만세력을 규합해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후 수 십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질식당했습니다.

1
한국의 현대사는 시민혁명의 열광이 잦아들 쯤, 항상 반동이 찾아왔다. 이런 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왼쪽 사진부터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1979년 정치적 혼란을 틈타 집권에 성공한 신군부의 전두환, 그리고 1987년 야권의 분열을 틈타 합법적으로 독재권력을 연장한 노태우.

혹은 1980년 서울의 봄을 떠올려 보십시오. 3김의 정치적 분열은 결국 전두환 장군의 야만적 통치로 귀결됐습니다.

1987년에도 3김은 분열했고, 결국 노태우 장군이 집권했습니다. 한국 현대사를 잠시만 들여다보면, 시민들의 수많은 민주화 투쟁이 정치인의 분열, 그리고 정치적 기회주의자의 득세로 실패하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한국은 그후로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과거처럼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생각입니다. 박근혜를 몰아내는 것이 결코 최후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경유착 해체를 위한 첫걸음일 뿐입니다.

한국이 처한 상황

한국경제는 무역에 크게 의존하며,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합니다. 올해에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예상됩니다. 언론은 애써 감추고 있지만, 이미 해운업, 조선업, 그리고 철강업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근근히 버티는 산업에 국민의 혈세를 뿌려 겨우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그건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한국은 사드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교류를 빠르게 줄이려는 중국, 그리고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의 트럼프정부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부모세대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완전자유무역체제는 붕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트럼프정부는 한국에 보수정권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트럼프 주위에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는 매파가 가득합니다. 신임 국방장관 제임스 마티스는 중국을 미국의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이라는 논쟁적인 책을 쓴 무역보좌관 피터 나바로는 미국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중국의 불공정무역 탓으로 돌립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면 사드계획도 철회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맞서 한국을 미일 동맹으로 묶으려고 갖은 수를 다 쓰고 있습니다.

사드는 드론, 헬리콥터 등 한국이 구매하는 미국 무기 세트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2014년 78억 달러의 미국 무기를 산 최대 고객이었습니다. 미국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한국에 대한 무기 구매 압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국 청년들의 처지

한국의 학생들은 진정으로 자기 나라의 발전에 관심이 많지만, 사실 잘못된 교육시스템이 그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고등학교와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사라졌고, 많은 젊은이들이 지루함을 참아가며 경영, 경제, 회계학 수업을 듣습니다.

12752_6696_2943
지금처럼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학을 홀대하고, 그에 대한 지원을 축소한다면, 결국 우리는 돈과 권력에 지배당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52)

아무리 삼성그룹이 경영 전공자를 찾더라도, 만약 여러분이 좋은 정부와 건강한 사회를 갖고 싶다면, 정치철학, 역사,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인문학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떻게 권력을 견제하고, 책임있는 시민성을 만들며, 독재의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 알고 싶다면, 플라톤과 공자, 베버와 맑스를 읽으십시오. 또 그들을 읽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 경영학 수업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부모세대들, 그러니까 1960년, 1979년, 1987년의 시민항쟁에 참여했던 그 세대들은 지금의 젊은세대보다 철학과 윤리학,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전략에 더 밝았습니다.

혹시 이번 촛불집회 이후에 함께 모여 정치개혁과 정부의 본질 등에 대해 토론해본 적이 있나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만들지 밤늦도록 토론한 적 있나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또는 홉스의 ≪리바이던≫을 읽으면서 책에다 빼곡이 메모를 한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꼭 그렇게 하십시오. 다시 한 번 정치인에게 속지 않으려면 젊은이들이 정치와 정부, 공공정책의 원리를 제대로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촛불시민은 위대하다고 부추기는 언론의 감언이설을 조심하십시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같은 언론도 상당히 상업화되면서 날카로움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사는 심층 분석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더 몰두합니다. 그래야 수입이 생기니까요.

그러나 호기심만 자극할 뿐 세상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대중매체와 전자 콘텐츠, 그리고 SNS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감시할 기회를 줬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매체는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는 부패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이들 매체는 24시간 내내 최순실 사태를 보도함으로써 정작 한국을 위태롭게 하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외교적 도전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합니다.

보수매체든, 진보매체든 의회를 통과한 법안, 정부지원금을 받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습니다. 언론이 정책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니, 우리도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이들이 갈취한 금액은 이명박정부에서 4대강사업에 쏟아부은 21조 원 또는 자원외교에 낭비된 수 십조원에 비하면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멀쩡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명박의 경우 정부 관련 기관을 중간에 끼고 정책결정을 했기 때문에 대통령 개인의 비리가 감춰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새누리를 보수정당, 민주당과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착각합니다만, 정치인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기후변화, 또 다른 위협

혹시 촛불집회를 할 때, 바깥 공기가 매우 나쁘다는 것을 눈치챘나요?

박근혜정부는 대기 관련 규제를 없애고, 공장 감독관을 축소했습니다. 그 공장들은 앞으로 20년 동안 암과 수많은 질병을 야기할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곳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헌법 10조에 규정된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괘물 사이 대한 민국
이 이미지는 이 글의 저자가 직접 디자인 한 것입니다.

한국의 스모그가 매일 중국에서 건너온 오염물질과 결합됩니다. 지금은 중국의 오염이 한국보다 심하지만, 중국은 향후 10년 동안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OECD국가 중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이 가장 낮고, 오히려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에서 이 문제는 20번째 의제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의제는 박근혜 탄핵이었습니다.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의제가 20개는 되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12월 얼마나 이례적으로 따뜻했는지 아십니까? 물론 여러분의 어머니가 아침 출근 때마다 매우 추우니 꼭 껴입으라고 말해주곤 했겠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진짜 진실은 서울이 지난해 12월처럼 따뜻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수많은 과학자들이 화석연료, 환경파괴로 인한 생태지옥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를 복구하려면 천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기후변화는 한국을 사막으로 만들 것입니다. 벌써 중국 베이징은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고, 북한의 땅도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해수면 상승은 부산과 인천을 삼켜버릴지도 모릅니다.

정치인이 이런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분까지 이에 대해 눈감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의제가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기술문명에 대한 과도한 의존, 초경쟁문화에 따른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차고 넘칩니다.

손 잡고, 행동하라!

여러분들에겐 한국과 세계를 바꿀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문제들은 단순히 촛불집회를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수 십 년의 싸움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일단 호흡을 고르십시오.

우선 고등학교 시절부터 체화된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십시오. 동료와 힘을 모아 서로 돕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유연하게 생각하십시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부모의 시선, 대중매체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산업화와 소비주의의 낡은 이데올로기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기존의 시스템은 실패했습니다. 스스로 학습해야 합니다. 설사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정치인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들을 판단하십시오. 특정 경제시스템을 절대선 또는 절대악이라고, 또는 어떤 나라를 영원한 적 또는 동지라고 제단하지 마십시오.

규칙을 지키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을 얻고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부모의 말을 거부하십시오. 그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200707210069
경쟁에서 이겨라! 이것이 지난 세대의 모토였다. 그 결과 공동체가 무너졌고, 개인의 삶은 위협받고 있다. 개인이 살기 위해서라도 공동체와 그를 위한 시민의 덕성이 살아나야 한다. (사진 출처: 동아일보)

설사 당신이 아직 선거권이 없더라도 당신의 행동으로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나라를 바꿀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는데, 대통령이나 재벌회장님이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젊은이에게 투자하는 것이 한국을 발전시키는 길임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십시오.

권위 또는 권위있는 인물에 기대지 마십시오. 그런 권위가 없더라도 당신이 바꿀 수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당신을 돕는데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돕는 것이 자신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즉시 발벗고 나설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사람들은 리더가 아니라, 기적을 일으킬 메시아를 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투표장에서 우리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초인을 뽑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초인은 절대, 어떤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신 밤낮으로 여러분이 뽑은 정치인들을 관찰하고 감시해 보십시오. 그러면 작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당신을 이끌 리더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거울을 보십시오. 거기에 당신이 찾던 사람이 있을 겁니다.

열정적인 풀뿌리운동이 정치인을 움직이고, 세상을 진보시킵니다. “차분하게, 조직하라(don’t get mad; organize!)” 이 말처럼 한국 젊은이에게 필요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촛불집회는 과거와는 달랐습니다. 여전히 변화를 위한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하십시오. 여러분의 부모세대들은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안주하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이미 선진국이 됐다고 착각합니다. .

여러분은 리무진 뒷자석에 몸을 기댄 정치인이나 재벌회장님과 달라야 합니다. 변화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용기를 가지십시오. 상상하고, 확신하십시오.

더 나은 한국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과 확신을 멈추지 마십시오.

목, 2017/01/05- 16:06
807
0

“결선투표제는 좋은 제도인가?” 최근 결선투표제가 제도개혁의 큰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결선투표제란 (일반적으로)(각주1) 투표결과 과반을 넘는 후보가 없는 경우, (일반적으로)(각주2) 1, 2위에 한해서 2차 투표를 실시해서 과반 득표자를 당선시키는 제도이다.

도입과 관련해서 개헌여부, 정당 간 합의 여부 등 여러 난관이 지적될 뿐, 이 제도가 바람직하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¹®ÀçÀÎ-¾Èö¼ö, '¾î»öÇÑ Á¶¿ì'     (¼­¿ï=¿¬ÇÕ´º½º) ÀÌ»óÇÐ ±âÀÚ = Á¶±â ´ë¼±ÀÇ ÃÊÀÔ¿¡¼­ ¾ß±ÇÀÇ ÀáÀçÀû ´ë±Ç ÁÖÀÚÀÎ ´õºÒ¾î¹ÎÁÖ´ç ¹®ÀçÀÎ Àü ´ëÇ¥, ±¹¹ÎÀÇ´ç ¾Èö¼ö Àü ´ëÇ¥°¡ 22ÀÏ ¿ÀÀü ¼­¿ï ¿©Àǵµ Áß¼Ò±â¾÷Áß¾Óȸ¿¡¼­ ¿­¸° 'º¸¼ö¿Í Áøº¸ ÇÔ²² °³ÇõÀ» ã´Â´Ù' Åä·Ðȸ¿¡¼­ ¸¸³ª ÀÚ¸®Çϰí ÀÖ´Ù. 2016.12.22     leesh@yna.co.kr/2016-12-22 12:37:38/
올해 조기대선이 가시화되면서 결선투표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결선투표제의 제도 효과에 대한 과학적 분석 없이 각 대선 후보, 또는 정파의 유불리에 따라 제도 도입에 대한 입장이 갈리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2016/12/23/story_n_13809718.html)

그리하여, “결선투표제는 좋은 제도인가?”라는 물음은 우문으로 들린다.

결선투표제는 만병통치약?

최근 프레시안이 마련한 대담(“결선투표제가 개헌 사항? 점쟁이 독심술하나?”)에서 사회자는 “결선 투표제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난관은 이를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이다”라며 토론을 시작했다.

결선투표에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결선투표제를 하면 단일화 게임에 매몰된 대선 과정이 뒤바뀌어서 정책경쟁이 활발해진다.
  • 사생결단식의 상호적대를 벗어나서 정당 간 연합이 활성화되어 협치가 자리 잡는다.
  • 소수 정당도 자신의 정책노선을 앞세워 선거완주를 할 수 있다.
  •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된 유권자는 종전처럼 차선이나 차악을 선택하는 고통 없이 자신의 진정한 선호에 따라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의제도에 대한 효능감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 당선된 대통령은 50% 이상의 지지로 당선된 만큼 지금보다 한층 높은 정통성(legitimacy)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기대에 따르면 결선투표제는 우리 현실에서 정언명령이요, 만병통치약이 아닐 수 없다.

전혀 다른 학계의 논의

“결선투표제는 좋은 제도인가?” 대통령제 연구는 사실상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를 경험한 신생민주주의 연구의 일환으로 발전해 왔다.

대통령제를 비교연구하는 학문 공동체 안에서 “결선투표제는 좋은 제도인가?”라고 묻는다면 이 또한 우문으로 들릴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경험분석에 따르면 “결선투표제는 정말 나쁜 제도인가?”가 오히려 적절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14.3
결선투표제는 과반 이상의 득표자가 없을 때, 한 번 더 투표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제도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사례에 대한 비교정치학적 분석이 요구된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46829)

후안 린즈(Juan Linz), 아르투로 바렌주엘라(Arturo Valenzuela), 마크 존스(Mark Jones), 아니발 페레즈-니난(Aníbal Pérez-Liñán) 등 절대 다수가 결선투표제는 대통령 선출방식으로 위험하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이들의 반대논리를 살펴보기 전에 결선투표제가 부각된 이유를 우선 살펴보자.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우리만의 일은 아니며, 실지로 많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도입했고, 그 결과가 별로 신통치 않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선투표제 도입의 배경

(대통령 선출방식이 아니라) 선거제도 일반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결선투표제는 단순다수제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1등만 하면 득표율과 무관하게 당선되는 단순다수제에서 이른바 ‘콩도세 승자’가 당선자가 되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콩도세 승자(Condorcet winner)란 일대일로 붙였을 때 다른 모든 후보를 누를 수 있는 후보를 말한다.

하지만, 단순다수제에서는 상대 진영의 분열로 인해 어부지리로 1위가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주화 이후 첫 대선이었던 1987년 선거이다. 민주정의당 노태우 36.64%, 통일민주당 김영삼 28.03%, 평화민주당 김대중 27.04%를 각각 득표했다. 노태우 후보는 과반은커녕 채 40%도 안 되는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위, 3위의 지지층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므로 당선의 정통성과 집권의 통치력이 모두 낮을 수밖에 없었다.

7d478f72fcd399de6c452a32a123268a
진보진영에서 결선투표제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은 것은 1987년 대선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야권 분열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선투표제의 도입 여부는 단순히 대선의 승리 여부 뿐 아니라 정당체제 등 정치질서 전반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사진 출처: https://kr.pinterest.com/kiss7kiss/?redirected=1)

당시 콩도세 승자는 김영삼이었으며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각주3)

세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로 인해 민주주의가 무너진 사례가 있는데, 바로 칠레의 아옌데 정권이다.

1970년 칠레 대선에서 인민연합(Unidad Popular)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는 36.6%로 당선되었는데, 2위가 35.3%, 3위가 28.1% 득표했다. 대통령이 된 아옌데는 선거과정에서 제시한 주요공약을 이행했다.

물가동결, 임금인상, 석탄 및 철강산업 국유화, 주요 구리광산과 시중은행의 국유화 등. 그 결과는 기득권층의 강력한 반발이었고, 3년 뒤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선거연구자들은 이를 ‘아옌데 신드롬’이라면서, 단순다수제에서 취약한 지지기반으로 승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태로 이해한다.

아옌데 신드롬은 이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대거 민주화되면서 선거제도를 설계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다.

과반, 즉 절대다수(majority)에 이르지 못하고, 상대다수(plurality)에 그칠 경우 상위권에 대해 재선거를 하는 것이 결선투표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한적’(qualified) 상대다수 제도를 취하기도 했는데, 꼭 50%가 아니라 40%로 관문을 낮춘 경우도 있고, 1위가 30% 득표하더라도 2위와의 격차가 10%p. 이상이면 승자로 선언하는 경우도 있다. 재선거를 하더라도 다른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면, 또 한번 선거를 치르며 많은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2차 투표의 가능성이 열려 있게 되면 후보난립으로 정당의 파편화(fragmentation)가 우려되기도 한다.(각주4)

아래 <표>에서 절대다수나 제한적 상대다수제를 취하는 경우는 모두 결선투표를 갖고 있는 제도이다. 반면, 상대다수제도가 한번 선거에서 1표라도 많은 1위 득표자가 승리하는 단순다수제이다.

1

결선투표제의 문제점

만약 결선투표제를 했다면 1987년 한국과 1970년 칠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노태우와 아옌데는 당선되지 않았거나, 정책노선을 한결 온건화해야 했을 것이다.

사실상 어부지리로 당선된 노태우는 19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상황을 맞이했고, 국회에 끌려 다니다 급기야 3당합당을 추진했다. 남북기본합의서, 북방외교 등 당시 보수정권으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조치도 취한 것도 이러한 수세적 상황과 관계돼 있다.

아옌데가 결선투표에 가야했다면, 2위였던 호르헤 알레산드리(Jorge Alessandri)와 재대결하고, 3위 기독민주당의 토믹(Radomiro Tomic)이 획득한 표(28.1%)를 서로 가져오려고 경쟁을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옌데는 당선을 위해 공약을 대폭 수정해서라도, 산토끼를 가져오고 집토끼를 어느 정도 잃어버리는 모험을 감행했을지 모른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콩도세 승자가 당선되고 정치안정과 지속가능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기대할 수 있다.

(1) 결선투표제는 콩도세 승자를 당선시킬까?

앞서 보았듯이, 단순다수제에서는 콩도세 승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못할 개연성이 있다.

메릴 3세(Samuel Merrill Ⅲ)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두 제도를 비교했는데, 결선투표제에서는 콩도세 승자가 당선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각주6)

하지만, 확률이 높아질 뿐 결선투표제가 언제나 콩도세 승자를 당선시키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메릴 3세의 연구는 후보자수가 같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데, 결선투표제는 후보자를 증가시키기 마련이고, 이 경우에는 오히려 콩도세 승자가 당선될 확률이 낮아질 수 있다.(각주7)

(2) 결선투표제와 후보자 증가, 정당파편화

결선투표제는 유효한 득표를 하는 후보자 수를 증가시킨다.

단순다수제라면 어차피 당선되기 어렵다는 전망 때문이거나, 괜히 완주했다가 자신보다 이념거리가 먼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를 우려해서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결선투표제에서는 이러한 걱정이 한결 줄어든다. 소수정파로서는 1차 투표에서 자신의 세를 보여주기만 하면, 2차에서 구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든 경험연구에서 결선투표제는 후보자수를 증가시키고 정당파편화를 가져온다고 밝혀왔다.

content_1454032093
선가가 있을 때마다 소수 정당들을 거대 여당에 맞서 야권단일화의 압력을 받았으며, 이는 소수 진보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로 인식됐다. 그러나 다양한 정당의 출현이라는 잇점이 있지만, 동시에 다당제 하에서 대통령의 통치가능성 저하라는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결선투표제 도입은 결국 우리 정치체제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ziksir.com/ziksir/view/2918)

소수정당에게는 세력을 확대하고 자신의 의제를 내세울 기회가 되지만, 집권세력에게는 통치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와 민주화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헌정위기이고 정당파편화와 대통령-의회 간 교착이야말로 최대의 위험으로 간주돼 왔다. 이런 맥락에서 관련 학자들은 다수가 결선투표제를 반대해 왔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담론에서는 양대 정당의 독식구조가 주로 문제시돼 왔고, 이를 해체하기 위한 제도개혁으로 결선투표제가 제시되고 있다.

“정치안정과 통치력의 확보”와 “다양한 세력의 진출 허용”이라는 두 목표는 서로 대체 관계(trade-off)에 있다. 하나가 강화되면 다른 하나는 약화된다.

현재는‘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한다는 명분 때문에, 집권 대통령의 통치력 부족 사태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하다.

(3) 정통성 제고

30, 40%로 당선되는 것보다는 50%를 넘는 득표를 통해서 당선되면 유권자의 절반이상의 지지이므로 대표로서 정통성(legitimacy)이 확보될 수 있다.

하지만 페레즈-니난의 경험분석(각주8)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2년까지 모든 대통령선거를 통해서 단순다수제에서 당선된 대통령의 지지율은 48.4%이며, 결선투표제의 승자가 1차에서 득표한 비율은 44.2%이다.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런데도 굳이 결선투표를 해야만 하는가에 의문이 든다.

결선을 치르는 한 과반이 뽑히기 마련이지만, 1차 투표에서는 오히려 득표기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선자는 오히려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2차 결과는 제조된 과반(manipulated majority)일 뿐, 진정한 의미의 과반은 아니며, 2차에서 연합하는 인센티브는 특정 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 모이자는 부정적 합의(negative consensus)이기 십상이다.(각주9)

당선자의 취약한 기반을 확인하는 것은 한편으로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소수의 선택을 갖고도 전체를 대변하는 양 정부를 운영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단순다수제에 비해 결선투표제의 제조된 과반이 질적으로 다른 정통성을 제공한다고 보기 어렵다. 애초에 지지세가 약하므로 다른 후보들의 지지를 가져와서 통치기반을 확대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불안정한 지지기반을 갖게 되기도 한다.

더구나 2차투표에서 투표율이 낮아지는 게 일반적인 만큼, 이렇게 제조된 과반이 부여하는 정통성에 대해서도 의문부호는 남는 것이다.

(4) 순위 변경의 효과

일반적으로 단순다수제나 결선투표제나 실제 선거결과에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드물게라도 두 제도에서 결과가 달라진다면 결선투표제는 이런 상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일 수 있다.

단순다수제였다면 끝나버렸을 1차 투표에서 2위에 머무른 후보가 2차에서 1위로 올라선다면, 이것을 결선투표제의 진정한 효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페레즈-니난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경우가 결선투표제가 낳는 진정한 위험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1979-2002년 사이에 1차 결과가 2차에서 뒤집힌 경우는 7차례에 불과한데, 많은 경우 헌정위기로 이어졌다. 그의 통계분석에 따르면 헌정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결선투표제 자체보다 1, 2차의 1위자가 뒤바뀌는 경우이다.

에콰도르에서 1996년에 당선된 부카람(Abdalá Bucaram)은 1차에서 23%만 득표하고도 2차에서 54%를 얻어 당선되었다. 부카람의 롤도시스타당(Partido Roldosista Ecuatoriano)은 의회에서 23%의 의석만 갖고 있었고, 연합을 구성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취임 6개월 여 만에 8%까지 내려앉았다. 의회 반대파와 대규모 시위가 결합되어 결국에는 탄핵되고 말았다.

페루의 후지모리도 1990년 선거에서 1차 33%, 2차 62%로 당선되었지만, 의회와 끊임없이 갈등하다가 1992년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과테말라의 엘리아스(Jorge Serrano Elías)도 1991년 1차 26%, 2차 68%로 당선되었고 의회와 교착이 지속되었다. 그는 후지모리와 같은 해법을 모색하다가 국내외 압력에 직면해서 1993년 중도사퇴하고 해외로 망명하였다.

(5) 전략투표가 아닌 진심투표

단순다수제에서 소수정파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경우 진정한 선호대로 투표하는 진심투표(sincere voting)를 하게 되면 사표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성향의 유권자는 할 수 없이 차선이나 차악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되거나, 기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선투표제에서는 적어도 1차 투표까지 소수파도 완주할 수 있으므로, 유권자의 선택지는 넓어진다.

하지만, 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동전의 양면처럼 후보난립을 수반한다. 더구나 2차 투표에 가서 전략적 투표를 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이 과정에서 1차에 비해 투표율 하락이 일어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6) 정략적 합종연횡 문제

현재와 같은 단순다수제에서도 누굴 당선시키느냐보다 누굴 떨어뜨리느냐하는 부정적 연합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른바, 단일화 게임이 선거과정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선투표제에서도 1차 이후 2차 선거를 앞두고 보다 노골적인 연합게임을 하게 된다.

2012년_프랑스_대선_결선투표-1
(이미지 출처: http://politicstory.tistory.com/770) 2012년 프랑스 대선은 ‘제조된 과반’이라는 결선투표제의 효과를 잘 보여준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2차 투표에서 범진보연합과 범보수연합이 결성됐고, 결국 범진보연합의 올랑드가 51.6%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렇게 제조된 과반으로 구성된 정부는 내부에 비토세력을 갖게 된다. 이것은 좋게 말하면 다양성이 대변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통치안정성이 낮은 것이기도 하다.

바깥으로는 의회가, 안으로는 연합상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행 제도에 비해 소수정당이 정책의제나 공직진출을 노릴 수 있게 되지만, 통치력이 약해지는 것 또한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불안정한 정당체제와 결선투표제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는 분명히 있다. 소수정당에게는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가 생길 것이고, 1차 투표에서는 지금보다 정책을 둘러싼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다.

우려되는 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후보난립, 정당난립의 가능성이 크다.

개별 유권자 입장에서는 선호에 꼭 맞는 후보를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지만, 당선 후의 통치가능성을 낮출 확률 또한 높아진다. 특히, 1, 2차 선거에서 순위변경이 통치력 약화를 가져오는 게 중대한 위협이라 할 수 있다. 앞서 페레즈-니난의 연구는 정당체제가 불안정할수록 이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교연구에서 정당체제의 제도화 내지 안정성을 측정하는 지표는 선거변동성(electoral volatility)이다. 선거 간 정당에 대한 지지가 이동한 정도를 말하는 데,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이 지지정당을 바꾼다면 그만큼 정당체제는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아래의 <그림>(각주10)은 1945년 이래 현재까지 67개 민주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618번의 선거기간 선거변동성을 보여준다.(각주11)

1

<그림>에서 보다시피 한국의 정당체제는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으로 정당체제가 불안정하다.

일반적으로 정당체제의 안정은 민주주의의 지속기간에 비례하는 데 한국은 민주화 이후 시간이 흘러도 정당 체제의 안정성은 크게 강화되지 못하고 있는 예외적인 국가 중의 하나이다.

현행 제도에서도 오로지 선거승리를 위해서 당을 깨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며, 새로 만들기도 하며, 없애기도 한다. 오로지 선거승리를 위해서 정책과 이념은 뒷전이고 후보와 세력 간 합종연횡을 추구한다.

이러한 정당체제의 불안정은 한국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결선투표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이로 인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소수파들에게는 결선투표제는 매력적인 대안이다. 주로 원내․외 진보정당들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해 왔다. 이들 세력은 진보적인 의제를 실천할 기회를 갖기 위해 오랜 기간 고투해 왔으며, 현재까지 이룬 성과도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선거 때면 급부상하는 정치적 아웃사이더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의 등장으로 진보정당이 어렵사리 쌓은 공든탑은 번번이 침식되어 왔다. 언론과 재벌, 관료 사회는 정치적 회의주의 확산을 주도해 왔고, 이는 언제나 현재의 정치세력 바깥에서 대안을 찾게 만든다.

결선투표제로 열리는 공간은 사실 현재의 정당행위자보다는 정치적 아웃사이더들에게 훨씬 넓게 열릴 것이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통해서 등장하는 신생정당이라면 오로지 대통령 권력을 겨냥한 “떴다방” 같은 정당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정당이 늘어나는 다당제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없다.

양대 정당의 독점구조를 해체하고 다양한 이념과 정책이 대표체제에 반영되도록 하려면 차라리 의회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높이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화, 2017/01/10- 15:30
805
0

삼성그룹에 명실 공히 ‘이재용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8)이 오늘(10월 27일) 삼성전자 임시주총에서 등기이사로 선출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74)이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태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오너’로서는 8년만이다.

1
27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빌딩 5층 다목적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임원 선임 안건이 임시 주주총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됐다(오른쪽 사진). 삼성그룹 계열사 중 이 부회장이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현재 삼성전자 이사회는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비롯한 사내이사 4명,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부회장이 선임돼도 이상훈 사장이 사임해 9인 체제는 유지된다고 한다.

황태자에서 황제로

사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2년여 동안 삼성은 이 부회장이 이끌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사 선임은 그동안 ‘재벌 3세’ 대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본격적으로 삼성전자 이사회에 참여해 경영상의 중요한 결정에 직접 관여한다는 뜻이다.

책임도 커졌다. 등기이사는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회사와 함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회사와 관련된 민·형사 사건이 발생하면 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보수도 공개된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연봉 5억원 이상인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비등기이사를 포함해 회사 내 연봉 5위권 임직원의 보수를 공개하도록 돼 있어 어차피 벌어질 일이기는 했다.

29612_5028_0848
삼성의 그룹 승계과정은 항상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건희 회장이 공익재단을 이용해 그룹을 물려받은 과정은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그대로 재현됐다. 교묘히 법망을 피해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피했던 것이다. 법 위에 재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진 출처: http://m.ilyoseoul.co.kr/)

등기이사 선임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미 지난해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며 승계의 첫발을 내딛었다고 평가받았다.

이건희 회장이 가지고 있던 3가지 공식 직함 중 삼성전자 회장을 제외한 두 가지 직함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시가총액 240조원의 초거대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운명은 본격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두 손에 놓이게 됐다.

등기이사 선임 이후 첫 시험무대는 갤럭시노트7 폭발사고로 벌어진 위기를 돌파하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벌가’ 티 안 내는 조용한 학생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부회장은 경기초-청운중-경복고를 나왔다. 경기초는 서울 3대 사립초로 꼽히고, 경복고는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재벌가 자제가 많이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학창시절 자체는 평범한 모범생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같이 초중고를 다닌 이들이 삼성가 자제라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는 것이다.

1
1972년, 생일을 맞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무릎에 앉아 있는 당시 5세인 이재용 부회장 모습 (왼쪽 사진). 경복고 졸업앨범에 실린 이재용 부회장 모습.

경복고 동창은 이렇게 술회한다. “이 부회장이 입학한 후 오래된 학교 건물이 초현대식으로 바뀌고 새 건물도 들어섰다. 교내 방송국이 생겼는데 당시로는 최첨단 시설이었다. 학급마다 큼지막한 삼성컬러TV가 한 대씩 보급됐고 당시로는 첨단방식인 아침TV 수업을 했다.

그땐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 부회장의 입학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학창시절에도 전혀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지 모를 정도로 겸손하고 티내지 않는 공부 잘하고 얌전한 학생이었다.”

이 부회장은 학창시절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중·고교 동창생들과 자주 만나는 편이며 경조사도 꼭 챙긴다고 한다.

한 고교 동창생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삼성 아들’로 통했던 이 사장은 학창 시절에도 교우관계가 매우 좋았다. 가끔씩 재용이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질 때 그를 아는 동창생들은 ‘그럴 친구가 아닌데’라면서 그냥 피식 웃고 넘겼다.”

이 부회장은 1987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진학한다.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데는 “경영도 중요하지만 인간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뜻이 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한편으론 서울대를 출입하는 계열사 일간지 기자까지 동원한 치열한 눈치작전 때문이란 얘기도 있다.

어쨌건 학력고사 점수 자체는 서울대에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학시절에는 눈에 띄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던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학부 졸업 후 그는 게이오대에서 ‘일본 제조업 산업공동화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거쳐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다.

그는 종종 소탈한 모습을 격의 없이 내비치기도 한다. 이 부회장은 소문난 야구광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녀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는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한때 삼성라이온즈 경기를 직접 관람하러 나오면 무조건 이긴다는 ‘재용불패’로 불리기도 했다.

hyun1620201301221350180
2012년 5월, 이재용 부회장이 아들ㆍ딸 그리고 여동생 이부진(오른쪽) 호텔신라 사장과 함께 목동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스포츠한국)

한 기자가 인터뷰를 청하며 LG 휴대전화의 마이크를 들이밀자 갤럭시S6엣지를 차량 트렁크에서 꺼내 줬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귀족 스포츠’로 불리는 승마 실력이 수준급이어서 1989년 제2회 아시아승마선수권대회 장애물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동생들도 승마를 했다고 하는데 “귀족이 되려면 승마는 기본”이기 때문이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한 번도 성공시킨 사업 없어…경영능력 의구심

삼성전자 이사회는 지난달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COO(최고운영책임자)로서 수년간 경영 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았으며, 이건희 회장 와병 2년 동안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실적 반등, 사업 재편 등을 원만히 이끌며 경영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변화무쌍한 IT 사업 환경 아래 미래 성장을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와 핵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 재편, 기업 문화 혁신 등이 지속 추진돼야 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이사 선임과 공식적인 경영 참여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데 이사회가 의견을 모았다.”

이사회의 후한 평가와는 별개로,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은 아직 안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보통 그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지난 2000년 시작한 ‘e삼성’ 사업 실패다. 1990년대 말 세계적으로 ‘정보기술(IT) 열풍’이 불어 닥칠 즈음 이 부회장이 벌인 인터넷 사업이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이 사업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200억 원이 넘는 적자가 났고, 그 부실을 9개 계열사들에 넘겼다는 혐의까지 받는다. 시민단체들이 고발했지만 2008년 삼성특검은 이 부분을 무혐의 처분한다.

이 부회장은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본격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한해 100일 이상을 해외에서 머물며 삼성의 해외법인, 각국 현지 거래선들을 모두 둘러봤다고 한다. 상무, 전무로 승진했고, 2007년에는 삼성전자의 최고고객총괄책임자(CCO)라는 직책을 맡으며 삼성그룹의 모든 거래선과 주주, 잠재적 투자자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지난 10여 년 간 그룹 회장이 되기 위해 두루 인맥과 견문을 넓히는 시간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 뒤 삼성전자의 실적은 공교롭게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1
이재용 부회장은 아직까지 한 번도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을 성공시킨 적이 없다. 갤럭시S6는 판매 부진, 갤럭시노트7은 폭발사건으로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그룹 후계자로서 뚜렷한 실적이 필요했던 이재용 부회장의 조급증이 무리수를 둔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 http://news.donga.com/)

또 다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해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재용폰’이라고 불리던 갤럭시S6의 흥행부진도 한몫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실적은 1년 만에 반등한다. 올해 2분기에는 갤럭시S7 판매 호조로 이 회장 입원 전 수준인 영업이익 8조원을 다시 돌파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 체제 이후 분기 최대 영업이익이었다.

갤럭시노트7의 출시와 흥행으로 ‘이재용 리더십’은 더욱 탄력을 받는 듯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8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제적인 계열사 가지치기, 과감한 인수합병과 실리콘밸리식 스타트업 문화를 접목한 컬쳐혁신이 ‘뉴 삼성’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갤럭시노트7가 폭발사고와 리콜 실패, 단종으로 이어지면서 첫 위기관리 능력을 평가받고 있는 상황이다. 조기단종이라는 결정이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상속 과정

이 부회장의 최대 과제는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이어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내는 것과 동시에 경영권을 완전하게 승계하는 일이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시너지 효과보다는 재산 승계 목적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는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5월, 법원은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가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됐다고 판결했다.

20150526000144_0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는 종전의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에서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됐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6.5%)가 됨으로써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주요 자산인 제일모직 지분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삼성물산 주가를 낮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현재 합병 무효 소송까지 진행 중이어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계열사 매각 역시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학 계열사 매각도 최대 주주였던 이부진 사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최근 삼성 SDS의 분할 검토 방침이 나오면서 이것 역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핵심 사업인 물류 부문 사업을 떼 네 삼성물산과 합병한다는 방침에 당장 제2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가 아니냐며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삼성SDS 지분 9.2%를 가진 이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지주사격인 삼성물산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무리수를 둔다는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상속 과정에서도 많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이재용 부회장이 이를 어떻게 돌파할지는 미지수다.

이 상황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해 삼성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엘리엇이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삼성에게는 어쩌면 반가운 제안을 들고 나온 것도 관심거리다.

만약 삼성전자가 엘리엇의 제안대로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할 경우 엘리엇은 주가 상승으로 이득을 얻게 되고, 삼성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이득을 얻게 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엘리엇이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이 안건을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 부회장이 어떤 제안으로 되받아칠(품어 안을) 것인지도 관심사다.

“기술은 최첨단, 노동조건은 중세”

그룹 상속과 더불어 삼성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반인권, 반노동적 이미지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노총은 삼성을 ‘기술은 현대적인데 노동조건은 중세적인 기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hwangyumi-deung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급수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고 목숨을 잃은 고 이숙영, 황민웅, 황유미씨. 유가족들이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하며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영정사진을 들고 서 있다. (사진=이종란 노무사)

무노조 원칙 고수,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반도체 및 LCD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 삼성전자 하청업체 공장에서 벌어진 메틸알코올 실명 사건 등은 삼성의 이미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전보다 더 투명하고 세련된 삼성을 꿈꾸는 듯하지만, 아들의 영훈 국제중 입학 비리 의혹에서 보듯 여전히 구태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도 보인다.

‘이재용의 삼성’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목, 2016/10/27- 12:09
78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