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의 삶 #3 – 카를로스
3화 카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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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은 스웨덴의 스톡홀름 대학 학사가 된 최초의 조선인입니다. 그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EBS의 역사채널 “콩나물 팔던 여인의 죽음”이라는 제목 때문에 우연히 방송을 보게 된 것이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알게 된 이후, “최영숙”이라는 세 글자는 제 가슴에 얹혔습니다.
최영숙은 1906년에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고 이화학당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 1923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난징 명덕(明德) 여학교와 회문여학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언어에 재능이 있어 짧은 시간안에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중국유학을 마친 그녀는 1926년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스웨덴 유학을 결정했던 것은 스웨덴 출신 여성운동가이자 교육운동가인 엘렌 케이(Ellen Key·1849~1926)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애석하게도 엘렌 케이는 최영숙이 스웨덴에 도착하기 전 사망했다고 합니다. 최영숙이 너무 애석해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당시 그녀의 집안은 포목상으로 꽤 부유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당시 조선에서 스웨덴 유학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최영숙은 스웨덴에서의 체류비용과 유학비용을 자기 힘으로 충당하며 학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처음엔 자수를 놓는 부업을 하다가 스웨덴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스웨덴 왕가의 아돌프 황태자와 함께 그의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지요. 아돌프 황태자가 조선, 중국과 일본 등에서 수집해 온 자료들을 번역하는 작업을 최영숙이 담당했던 것인데요. 조선어, 중국어, 일본어, 한문에 능통하고 스웨덴어까지 구사하는 그녀는 아돌프 황태자가 가장 신뢰하는 연구원이었다고 합니다.
1931년 말, 최영숙은 5년간의 스웨덴 유학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스웨덴에서 정착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귀국을 선택합니다.
그녀가 조선을 떠나있었던 동안 집안의 가세는 기울어 가족들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녀가 귀국하자 모두 이제 집안살림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었습니다. 최영숙 역시도 무언가 사회와 가족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귀국 당시, 조선 최초의 여성 경제학사였던 최영숙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대로서는 보기 힘든 여성 엘리트였으니까요.
하지만 1931년의 조선은 일제 식민지배와 세계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지요. 거기에 조선인이면서 ‘여성’인 최영숙은 훨씬 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기자, 교사, 교수등 여러 일자리에 지원했지만 그녀는 일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요즘 시쳇말로 ‘스펙’이라고 불리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그녀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믿겨지지 않습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스웨덴어에 독일어까지 5개국어를 구사했고 당시 드물었던 중국과 스웨덴 유학경험, 경제학 학사 학위가 있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스웨덴 체류 당시 스웨덴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선사회에 소개하는 글을 꾸준히 기고했었기에 언론계 인사들과의 인맥도 돈독했으며 스웨덴 아돌프 황태자(이후, 구스타프 6세로 즉위)와 스웨덴 유력인사들과의 네트워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영숙은 서대문 근처에 작은 상점에서 콩나물과 배추 등 부식을 팔기 시작합니다. 당장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고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을 위해 무어라도 해야만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장사는 잘 되지 않았고 귀국 5개월이 되던 1932년 4월, 최영숙은 실신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당시 최영숙은 인도인 남성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귀국 직후 직면하게 된 여러 상황이주는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렸던 겁니다.
결국 그녀는 낙태 수술을 받았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회복 불능 진단을 받고 자택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932년 4월 23일,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의 죽음은 다시 한 번 세간에 회자되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생활고와 기가 막힌 상황에 대한 보도보다는 그녀의 태중에 있었던 아이에 대한 구설이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하지요.
최영숙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 지면을 통해 다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그녀의 삶이 너무 아프고 슬프면서도 1926년 여성 활동가 엘렌케이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스웨덴을 향하던 그 순간의 최영숙을 생각하면 그 반짝이는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그녀에게 듣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안타깝고 그녀가 원했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최영숙은 노동만으로도 풍족하게 살 수 있었고 여성들도 차별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바탕삼아 여성과 노동자의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 조선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궁핍한 생활 가운데서도 낙원동 여자소비조합이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빚을 내 조합을 인수하기도 했지요.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올해로 86년이 지나가는데요.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을까요? OECD 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남녀임금격차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14년째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남녀 임금격차를 발생시키는 요인들을 여러모로 분석해보았는데, 교육연수의 기회, 업종 차이, 근속연수 등의 요인의 영향보다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남성이 임금 4% 정도를 더 받고, 여성은 58%를 덜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 수 없는 이유”라는 베일로 가려진 진짜 이유는 사실 모두가 아는 그 이유입니다. 그냥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성’이라서, ‘여성’이기 때문에 임금을 덜 받게 되는 것이지요.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고, 여성은 결혼하면 직장을 떠난다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이런 저런 이유를 말하고 싶은 분들 계시겠지만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니오. 그냥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이 선명하게 존재한다”고요.
“Girls can do anything!” 이런 당연한 말에 해명을 요구하는 이상한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지만 그 이상하고 끔찍한 세상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여성들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까요. 알 수 없는 이유라는 이름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해왔던 그 세계에 종언을 고하며 2018년 여성의 날, 최영숙을 기억합니다. Girls can do anything and be anything!
[1][2][3] 조선 최초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哀史)
글. 문아영
그림. 구자선
레진 불공정행위 규탄연대, 청년참여연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의 불공정행위에 맞서는 작가들의 모임인 ‘레진 불공정행위 규탄연대(이하 레규연)’과 청년참여연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오늘(11/22)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산업계에 만연한 지망생 착취와 저작권 편취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대표 사례로 한희성 레진코믹스 의장(전 대표)의 저작권 편취 사건을 ‘우월적 지위남용에 의한 불공정거래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할 예정입니다.
한희성 의장은 레진코믹스 초창기부터 대표의 직위를 이용해 데뷔를 앞둔 미성년 작가의 저작권을 부당 편취, 자신을 글작가로 크레딧에 명기하고 아무 기여 없이 수익의 30%를 ‘업계의 관행’이란 명분으로 착취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거대 웹툰 플랫폼 대표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명백한 불공정 행위입니다. 이와 같은 창작노동자 착취는 유사 창작업계에도 만연합니다.
레진코믹스 불공정행위 규탄연대와 청년참여연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기자회견에서 위 사건에 대한 레진코믹스의 꼬리자르기식 대응을 강력히 비판하며, 위 두 사건을 웹툰을 비롯한 문화 산업계 전반에 만연한 창작노동자 착취 실태와 그릇된 업계관행을 공론화하는 계기로 삼을 예정입니다. 뿐만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공정행위를 뿌리뽑기 위한 제도적 개선과, 공정거래위원회에 이번 레진코믹스의 저작권 편취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이를 통해 그동안 보복이 두려워 쉬쉬해왔던 다른 피해 사례자들도 불공정행위 근절을 위해 함께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문화산업계 미성년자/ 지망생 착취 사례 제보처: [email protected] /끝.
▣ 기자회견 개요
제목 : 문화산업계 만연한 지망생 착취 실태 고발
부제 : 레진코믹스 전 대표의 저작권 편취 사건 공정위 신고
일시 장소 : 2018. 11. 22.(목) 오후 2:00 /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 앞 / 경기도 과천시 관문로 47 정부과천청사 정문앞
기자회견 주최 : 레진 불공정행위 규탄연대, 청년참여연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사회 : 하신아 레진코믹스 불공정행위 규탄연대 작가
기자회견 취지 설명 : 미치 레진코믹스 불공정행위 규탄연대 작가
공정위 신고 취지 : 김성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연대 발언 : 이성원 문화계 다양한 불공정 사례 소개
제도개선 방향 :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
방송을 인터넷으로 뿌리면 ‘방송’으로 규제하나 ‘인터넷’으로 규제하나 – 미네르바, 참여연대, 옥수수 등
방통심의위가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웹사이트로 뿌리는 콘텐츠를 ‘유사방송’이라고 부르며 방송수준으로 심의하겠다고 나섰다. ‘스브스 뉴스’나 ‘EBSi’ 인터넷 강의 콘텐츠 같은 것을 방송사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불법이 아니라도 저속하거나 편향되기만 해도 규제한다는 것인데 제재의 수위만 다를 뿐 방송처럼 심의하겠다는 것에는 여야가 한목소리인 듯 하다.
스브스 뉴스나 EBSi 인터넷 강의는 국가특허를 받은 공공매체로 송출되는 콘텐츠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도 아닌 콘텐츠를 국가기관이 규제한다는 것은 헌법의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는 것이다.
불법이 아닌 방송콘텐츠를 저속하거나 편향된다는 이유만으로 규제해도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지 않는 이유는, 방송은 공중파라는 공공재를 국가특허로 몇몇 사업자들에게 불하하는 대가로 이들 사업자들에게 특별한 공적 책무를 부과하면서 만들어진 매체이기 때문이다. ‘전파는 국민 모두의 것이고 그걸 당신들에게 맡겼으니 공공성 있게 써달라’는 것이다. 인터넷에 뿌리는 콘텐츠는 그럴 정당성이 없다.
“방송사가 국가특허로 신뢰도와 영향력을 키웠으니 이들이 만든 콘텐츠는 인터넷으로 나가더라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답답한 노릇이다. 국가특허로 신뢰도와 영향력을 키운 것이 방송사뿐인가? 국립대학교인 서울대학교는 어떤가? 원래 국영기업있던 KT는 어떤가? 이들이 내는 논평, 연구 결과, 인터넷 콘텐츠도 다 방송 수준으로 심의할 것인가?
물론 일반적으로 국가특허로 신뢰도와 영향력을 키웠다면 국가특허를 받은 측면의 사업을 규제하면 된다. 망사업자들(KT, SKT, LGU+)이 ‘기간통신사업자’라며 또 다른 특별한 규제를 받는 것도 역시 주파수 및 도로 아래의 전선관 등 국가특허에 의한 공공재를 불하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특허를 받는 측면에 대해서만 특별규제를 하면 되는 것이지 그들이 하는 다른 사업에까지 규제를 확장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KT가 영화제작에 참여하면 그 영화도 기간통신사업으로 규제할 것인가? (참고로 이들이 만드는 <옥수수>나 방송사업자들과 합작하기로 한 <푹>까지 방송처럼 규제하는 것도 위헌이다.)
왜 방송사나 망사업자같은 ‘갑’들을 보호하려 하냐고? ‘신뢰도와 영향력이 있다면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명제의 피해자들 중에 바로 미네르바 같은 사람이 있다. 그가 20만 명의 팔로워가 있고 정권에 위협이 되니 전기통신기존법 조항을 유신정권 때의 유언비어유포죄와 같은 거라고 우겨서 그 죄로 잡아넣은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사람들이 잘 따르면 그 사람을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사회는 평화로운 혁명이 불가능한 사회이다. 정부와 기업 돈 한 푼 받지 않고 순수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운영되는 참여연대 보고 “권력기관”이라고 부르는 궤변하고 비슷한 것이다.
‘표현이 인기 있거나 설득력 있다고 해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거대기업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진영논리는 정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에서도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원리를 세워야 하는 것이지 우리 중에 누가 누구를 누르는 것이 경제개혁이 아니다. 다시 표현의 자유로 돌아가자면 우리나라가 인터넷을 OECD 유일의 갈라파고스 규제들로 겹겹이 둘러싸서 혁신이고 뭐고 다 마비시키고 있는 것도 결국 그놈의 영향력과 인기 아니겠는가.
(법령도 누가 자세히 살펴봤으면 좋겠다. 아래 법령을 종합해보면 ‘유사방송’ 규제라는 게 ‘전기통신회선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목적으로 “편성”을 통해 제공되는 것’에 적용되는 것인데 “편성”은 실시간 송출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스브스 뉴스나 인강을 편성시간을 기다려서 보지는 않지 않는가. 내 생각에 위 정의에 들어가는 것은 IPTV에서 VOD를 뺀 나머지 방송밖에 없고 이들은 이미 방송심의를 받고 있다. 이 규정으로 스브스 뉴스, EBSi 같은 걸 규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 이 글은 박경신 교수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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