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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의 인물탐구]역사학자 이이화 “123년만에 전봉준 유언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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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의 인물탐구]역사학자 이이화 “123년만에 전봉준 유언 이뤄진다”

익명 (미확인) | 화, 2017/12/2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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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 장군 동상건립위원회 이이화 이사장. /우철훈 선임기자

2018년 봄 서울 종로 네거리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동상이 하나 선다. 흔히 ‘장군’의 동상은 칼을 들고 하늘을 향해 손을 치켜드는 모습이 많지만 이 동상은 친근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는 ‘반란’의 수괴로 사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우리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된 이후 법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 인물의 동상이 시내 한복판(대학 구내에 민주화 열사 동상은 있다), 그것도 종로 한복판에 세워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는 전봉준이다. 동학농민전쟁의 주인공으로 녹두장군으로 불린 그 전봉준 장군이다. 123년 만에 명실상부한 복권이다.(법적으로 2010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으로 복권됐다) 이 사업을 추진한 ‘전봉준 장군 동상건립위원회’ 이이화 이사장은 동상이 세워질 자리인 종로 영풍문고 앞 옛 전옥서 터를 둘러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사장은 “1895년 3월 29일 사형 판결을 받고 30일 새벽 2시 이곳에서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다섯 인사의 교수형이 집행됐다”며 “전 장군의 동상 제작은 완료됐지만 서울시 심사를 앞두고 있어 공개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3월 동상건립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7월부터 기금 모금을 시작해 목표액 3억원의 반절을 모았다. 2018년 3월까지 모금한다. 정부의 예산도 기업체의 협찬도 아닌 순수 시민 개인모금이다.(후원계좌는 농협 301-0211-6928-21 사단법인 전봉준 장군 동상건립위원회)

“이곳 종로1가 일대가 우포도청, 의금부, 전옥서 자리였다. 그 전까지 목을 베는 참수를 했는데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되면서 교수형으로 바뀌었다. 전봉준은 교수형으로 바뀐 제도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전봉준을 포함해 손화중, 성두한, 최경선, 김덕명 다섯 동학 지도자(그는 5명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는 판결이 끝나자마자 사형이 집행됐다. 마치 박정희가 인혁당 사건 처형하듯이. 왜 그렇게 서둘러 처형했느냐 하면 당시는 단심제였는데 2심제로 법이 바뀌어 4월 1일부터 시행하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양 주민들이 옥중의 전봉준을 구출한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전봉준이 들것에 실려 압송되는 유일한 사진은 일본 신문기자가 찍은 것인데, 일제 영사경찰서에 취조 받으러 가는 모습이다. 일제 영사경찰서는 지금 을지로 중부경찰서가 자리다. 이 이사장은 “전봉준 장군은 최후진술로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려주는 것이 옳거늘, 어찌 남 몰래 죽이느냐’는 최후진술과 <운명>이라는 유시를 남겼다”고 말했다. 그 유시의 내용은 ‘때를 만나서는 천지도 모두 힘을 합하더니/ 운이 가니 영웅도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구나/ 백성 사랑하는 정의나 실수 없다/ 나라를 위하는 붉은 마음 누가 알아주리’다.

종로에 자신의 피를 뿌려달라는 전봉준 장군의 유언은 123년 만에 그 자리에 동상이 서는 것으로 이뤄진다. 동상은 앉은 그가 최종 목표로 삼았던 한양 경복궁 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전봉준의 유언 때문일까, 공교롭게 바로 동상 왼쪽 280여m 떨어진 종로구청 사거리는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곳이다. 동상의 오른쪽 종각 앞에는 그 백남기 농민 기념 부조가 이미 설치돼 있다. 그러니까 종로 네거리는 우리 농민운동 역사의 현장이자 상징이 되는 셈이다.

이 이사장은 30대부터 전봉준 장군의 동학농민전쟁에 천착했으니 벌써 50년 가까이 됐다. 그는 “모든 역사교과서에 전봉준을 역적으로, 동학을 난(亂)이라고 표기했는데 나는 그런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전봉준과 동학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민중운동사반’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답사도 다니며 연구했다.

이 이사장이 동학에 매료된 이유 중 하나는 부친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이사장은 한학자로 <주역> 연구가인 야산(也山) 이달 선생의 넷째아들이다. 주역은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새로운 사상이 열린다는 후천사상과 맥이 닿아 있다. 그는 “부친의 변혁적인 주역사상은 불의에 대한 저항정신과 외세에 맞선 자주정신인 동학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또 서자로 태어났다. 이 선생은 조선시대처럼 차별은 없었지만 동학의 서얼철폐 사상에도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동학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은 근대 민주주의 정신의 기초다. 그 맥락에서 이 이사장은 인간 전봉준을 이렇게 정의한다.

“전봉준은 농촌지식인으로 서당을 차려 아이들을 가르친 교육자다. 그러나 단순히 공자·맹자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실학정신에 입각해 개혁에 투철했다. 그가 행한 집강소는 조선말 모순을 철폐하는 농민자치기구로, 민주·평등운동에 바탕을 뒀고, 양반과 노비, 지주와 소작인의 차별을 모두 깼다. 또 끊임없이 지역(고창·정읍 일대)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운 정치가일 수도 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었던 차에 조병갑이 나타나 봉기를 한 것이다. 역사을 만드는 인물은 꼭 ‘계기’를 놓치지 않는다. 이한열·박종철·백남기 등은 그런 ‘계기’ 속에서 일어난 인물이다.”

1937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이 이사장은 부친이 한문만 가르쳐 정규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 정규교육을 받기 위해 일부러 가출해 고아원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미인가 학교만 맴돌았을 뿐 정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혼자 공부하던 그는 학원에 뒷돈을 주고 가짜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만들어 명문 광주고에 합격했다. 이 이사장은 “그때 정규 중학교를 나온 학생 9명은 모두 떨어지고 가짜였던 나만 합격했다”면서 웃는다. 서울에 올라와 서라벌예대(현 중앙대)를 다녔지만 1년 만에 그만두고, 성균관대도 6개월 정도 청강생으로 다니다 그만뒀다.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정규교육은 단 4년(고등학교 3년, 대학교 1년)이 전부다.

이 이사장은 평소 주소가 일정치 않다 보니 입대영장을 받지 못해 군대 기피자가 됐다. 정상 취업을 할 수 없던 그는 아이스크림 장사, 빈대약 장사, 외판원, 웨이터 등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글을 잘 쓴 그는 <불교시보> 기자로 취직해 글을 쓰기 시작해 1967년 <동아일보> 출판부에 임시직원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혼자 공부하면서 꾸준히 <창작과 비평> <뿌리깊은 나무> 등의 잡지에 글을 쓰면서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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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화 이사장이 종로1가 영풍문고 앞 옛 전옥서 터에 세워질 전봉준 장군 동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어떻게 역사학계에 입문했는가. 
“한국사연구회라는 학벌 안 따지는 진보적인 역사 연구단체가 있다. 내가 <창작과 비평> 등에 ‘허균’과 ‘북벌론의 허구’ 등 역사에 대한 글을 몇 번 쓴 것을 본 모양이다.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최창규 교수가 주자학이 조선의 정통성이라는 얘기를 했다. 강만길 회장이 나보고 반론을 써보라고 해서 내가 그 허구를 깨는 <척사위정론의 비판적 검토>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것이 화제가 됐고, ‘이이화는 단순한 재야사학자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요즘 박사학위 없으면 정통이 아니라며 재야 사학자, 심지어 사이비 사학이라 비난한다. 그때도 그랬을 텐데. 
“그런 생각은 특히 서울대 연·고대 출신들이 가지고 있다. 요즘은 많이 깨졌는데 우리 때는 더 심했다. 정말 지들끼리 놀고 말도 못했다. 그래도 비교적 나는 인정을 받았다. 왜? 지들도 모르는 한문을 내가 대학원생들에게 가르쳤으니. 서울대 교수들이 ‘어떤 놈이 규장각 와서 한문 가르치냐’고 질투 많이 했다.”

-요즘은 학위를 가지고 교수직을 해야 역사학자 대접을 해주는 풍토다.
“그때도 강단에 서지 않으면 모두 재야사학자라고 했다. 단군 연구한 안호상도 재야사학자라고 했다. 틀린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이사장의 최고 역작은 1994년부터 10년간 쓴 22권의 <한국사 이야기>다. 역사에서 ‘민중사’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했다. 이 이사장은 “동학 100주년 기념행사를 1994년 모두 끝내고 근질근질하던 차에 한길사 김언호 사장에게 ‘한국통사를 제대로 한 번 쓰고 싶다’고 해 한 달 250만원 선인세로 받고 10년 동안 쓴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한길사는 정통 역사학자를 동원해 고급 장정으로 20권짜리 <한국사>를 냈다. 그런데 안 팔렸다. 상심이 컸던 김언호 사장이 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그와 ‘승부’한 것이다.

이 이사장의 <한국사 이야기>는 민족사·민중사·생활사 위주로 쓴 것이다. 그는 “역사학계의 오류를 다 바로잡았을 뿐 아니라 ‘임진왜란’을 ‘조일전쟁’으로, 병자호란을 ‘조청전쟁’으로 바꿔 표기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무려 50만권이나 팔렸다. 기성 역사학계에서는 그의 <한국사 이야기> 오류를 지적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단재학술상(2001년), 임창순 학술상(2006년)을 받으며 학술적 업적을 인정받았다. 이후 그에게 씌워진 ‘재야사학자’라는 일종의 조롱은 사라졌다.

이어 이 책을 원작으로 삼성출판사에서 <만화 한국사>를 냈다. 보통 만화책은 화가의 이름을 따는데, 이 만화책은 최초로 원작자 이름을 땄다. 이 만화가 몇백만 권 팔렸다. 덕분에 그는 많은 인세 수입을 올렸다. 이 인세는 역사문제연구소는 물론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적잖이 쓰였다. 이 이사장은 최근 시민역사관 건립위원회 위원장으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지난 촛불혁명에도 앞장섰다. 사실 촛불혁명은 역사전쟁이라 할 만큼 역사문제가 내재돼 있다. 최근 공개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문건 등을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부친의 명예회복을 위해 교학사 교과서에 이어 국정교과서 도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에 재야역사학자와 일선 역사선생님들이 맞섰다.

“촛불은 역사학계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강만길·이만열·나와 역사문제연구소 사람들이 매일 거리에서 기자회견과 역사강의를 했다. 뉴라이트와 친한 이인호(전 서울대 교수), 홍일식(전 고려대 교수)이라는 사람이 원로랍시고 청와대에 가서 박정희 시대처럼 국정으로 가야 한다고 부추긴 거다. 코미디지 코미디. 오히려 잘된 거다. 박정희의 마지막 신화가 딸 때문에 깨졌으니. 그게 역사의 큰 교훈이다.”

이 이사장은 거의 매번 촛불집회에 나갔다. 에스컬레이터에 어깨가 끼어 한 달간 치료받으면서도 촛불집회에 나갔다고 한다. 그는 전농의 전봉준 투쟁단이 강원도에서 서울로 오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에서 간접적 계기와 직접적 계기가 있는데 촛불은 동학 이후 민주주의가 꾸준히 성장한 간접적 이유가 바탕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역사에 대한 정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과거를 들추지 말고 미래로 나가자고 하는데 모두 헛소리다, 인류는 과거를 기억하고 잘못을 고치면서 미래로 발전했다”며 “6·25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경제가 파탄났나, 역사는 그것을 기억하고 앞으로 전쟁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일갈했다.

이 이사장은 여든이 넘었지만 아직 담배도 피우고, 대낮에 매운 낙지볶음에 소주 몇 잔도 거뜬하다. 10년 전 위암수술을 받았을 때 끊었지만 다시 한다고 한다. 그는 “평생 글쟁이로 살아 글을 안 쓰면 근질근질하다”면서 “평생 역사책만 썼지만 이번에 처음 에세이를 썼다”고 말했다. 쓴 글은 올 봄 <이이화 에세이집>으로 나올 것이라 한다. 이 이사장은 책에 대해 “이번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얘기도 있고, 문재인 대통령·박원순 서울시장 얘기도, 그리고 다음 대통령 누가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원희복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17-12-24> 경향신문

☞기사원문: [원희복의 인물탐구]역사학자 이이화 “123년만에 전봉준 유언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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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국정역사교과서 집필진 가운데 근현대사를 전공한 현직 역사교수는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대사 부분을 담당한 집필진은 현대사 전공자 없이 대부분 법학과 정치학, 경제학 전공자로 구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교과서 발표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역사교과서 집필진은 현직 대학교수 12명과 중고등학교 교사 6명을 포함해 모두 31명으로 구성됐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논란이 됐던 근현대사 집필진에 현직 역사교수의 참여가 극히 저조하다는 것이다. 근대 3명 현대 6명의 집필진 가운데 역사를 전공한 현직 역사교수는 한상도 건대 사학과 교수(근대) 1명 뿐이었다.

한상도 건대 교수는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주로 연구한 근대사 전공자로 현 국사편찬위원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지난해 11월 뉴스타파가 근현대사 전공 현직교수 7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당시 국정화 반대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3명 가운데 1명이었다.(관련기사: 국정화 반대하지 않는 근현대사 전공 교수는 3명뿐)

특히 현대사 집필진 6명의 경우는 법학 전공 1명, 정치학 전공 2명, 경제학 전공 2명, 전쟁사 전공 1명 등 엄밀한 의미에서의 현대사 전공자는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참여했다는 교육부의 설명과 달리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가 대거 집필진에 포함됐다.

현대사 집필진 가운데 김명섭 교수와 나종남 교수, 세계사를 맡은 이주영 교수는 뉴라이트 인사들로 구성된 현대사학회 회원이다.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현대)는 지난해 11월 ‘근현대사는 역사학자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문화일보 칼럼에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면서 5.16군사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세계사)는 기존 검정교과서가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하고 북한 교과서를 베끼는 등 편향됐다고 주장했던 인물이고,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조선)은 대표적인 교학사 역사교과서 필진으로 강원대 사학과 교수 6명 가운데 유일하게 국정교과서 반대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현대)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하는 민주평통자문위 수석부의장의 신분으로 최순실게이트가 터지고 난 지난 10월 26일 ‘박근혜 대통령님을 위해 기도하자’는 글을 SNS에 올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집필진 가운데 최성락,손승철, 한상도,유호열, 정경희 등 5명은 현 18대 국사편찬위원이다.

국사편찬위는 지난 3월 기존 위원 16명 가운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던 편찬위원 9명을 배제하고 찬성 인사들을 새로 편찬위원으로 위촉했는데 한상도, 유호열, 정경희 등 3명이 이때 새로 합류한 인사들이다.

분야 성명 전공 현직 직함
선사/고대 신형식 사학 이대 명예교수
선사/고대 최성락 고고학 목포대 고고학과 교수
선사/고대 서영수 동양사 단국대 명예교수
선사/고대 윤명철 사학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고려 박용운 사학 고대 명예교수
고려 이재범 사학 전 경기대사학과 교수
고려 고혜령 사학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조선 손승철 사학 강원대 사학과 교수
조선 이상태 사학 국제문화대학원 대학 석좌교수
조선 신명호 사학 부경대 사학과 교수
근대 한상도 사학 건국대 사학과 교수
근대 이민원 한국학 동아역사연구소 소장
근대 김권정 사학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현대 최대권 법학 서울대 명예교수
현대 유호열 정치학 고대 북한학과 교수
현대 김승욱 경제학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현대 김낙년 경제학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현대 김명섭 정치학 연대 정외과 교수
현대 나종남 사학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
세계사 이주영 사회학 건대 명예교수
세계사 허승일 서양사학 서울대 명예교수
세계사 정경희 동양문화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세계사 윤영인 일본사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세계사 연민수 사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현장교원(선사/고대) 우장문 사학 경기 대지중 수석교사
현장교원(고려) 김주석 사학 대구 청구고 교사
현장교원(고려) 유경래 역사교육 경기 대평고 교사
현장교원(근대) 정일화 역사교육 전 강원 평창고 수석교사
현장교원(근대) 최인섭 역사교육 충남 부성중 교장
현장교원(근대/현대) 황정현 역사교육 충남 온양한올중 교사
현장교원(세계사) 황진상 역사교육 서울 광운전자고 교사
월, 2016/11/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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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은 이달 29일(목) 저녁 7시반, 국민TV 지하 카페(웰빙센터 지하)에서 제 8회 백년포럼을 개최합니다.

유난히 더웠던 2016년 여름이 지나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이 좋은 날씨와 더불어 역사학자이신 이병한 박사를 모시고 ‘다른 백년’인가, ‘다시 백년’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립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이병한 박사의 유라시아 현장 보고를 들어주시고 토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 2016/09/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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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군국가요 작곡한 박시춘의 ‘비 내리는 고모령’ 내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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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 특집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2부 화면 갈무리. 이날 하은이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러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곡은 친일 행적이 확인된 대중음악 작곡가 박시춘이 작곡한 노래로, 3.1운동 및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 프로그램의 성격상 KBS가 자료 검토 및 선곡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KBS

3.1운동 100주년 특집으로 꾸며진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가 친일 행적이 있는 음악인의 노래를 선곡해 방송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9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 특집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2부에선 가수 하은이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렀다. 이날 하은은 425표를 얻어 1승을 거뒀다. 하은의 열창과 탈북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게 된 사연이 어우러져 뜻깊은 무대가 됐다.

그러나 해당 곡은 친일 행적이 확인된 1급 친일 작곡가의 곡으로 알려져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으로 꾸며진 방송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48년에 발표된 ‘비 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1913~1996, 본명 박순동)이 만든 노래다. 박시춘은 평생 동안 3000여 곡을 작곡, 이 가운데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신라의 달밤’ ‘가거라 38선’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1931년 일본 오사카 중앙음악원 혹은 밀양보전을 졸업한 것으로 그간 알려졌으나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실제로는 밀양보통학교를 중퇴했다. 대중음악계에 평생 헌신한 공로로 1982년 보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시춘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중 음악가로서는 유일하게 ‘1등급’ 친일파에 등재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말기 일제는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인들을 징용·징병 등의 명목으로 전쟁터로 끌고 갔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다음 해인 1938년부터 지원병 제도를 실시, 육군지원병·해군지원병·학도지원병 등의 명목으로 전쟁에 동원했다. 1943년 공표되고 이듬해부터 실시된 ‘징병제’를 통해서도 한국인들을 강제로 입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입대를 기피하거나 거부하지 않도록 ‘선전선동’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총독부는 예술인들을 동원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천황제와 내선일체를 강요하는 영화와 가요를 다수 제작했다.

이러한 일제와 조선총독부의 군국주의 정책에 적극 호응한 이가 바로 박시춘이다.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이유서>는 박시춘의 친일 행위에 대해 “1942년부터 지원병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내용의 ‘고성의 달’, 1943년 징병제 실시 기념영화 주제곡 ‘조선해협’, 해군특별지원병제도 축하 특별 기획음반 수록곡인 ‘혈서 지원’ 외 다수의 가요를 작곡 및 편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1942년 죽음을 각오하고 승리를 다짐하는 군인의 모습을 묘사한 가요인 ‘아들의 혈서’, 1943년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후방의 여인 및 부모의 모습을 그린 ‘결사대의 아내’, 부상을 입었음에도 일제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 내용의 ‘즐거운 상처’ 외 다수의 가요를 작곡 및 편곡했다. 1943년 산업전사위문격려위문예능대에 참여해 활동함”이라고 밝혔다.

위 <결정이유서>에 따르면, 그가 작곡한 군국가요는 이외에도 ‘낭자일기'(노래 남인수) ‘병원선'(노래 남인수) ‘아세아의 합창'(노래 김정구) ‘진두의 남편'(노래 박향림) ‘지원병의 집'(노래 장세정) 등 13곡이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다. 이는 군국가요 작곡가로선 최다 기록이다.

지난 2016년엔 밀양 출신인 박시춘을 기리기 위해 밀양시가 ‘박시춘 음악제’를 개최하려 했으나 당시 친일파를 기리는 음악행사를 도비를 지원받아 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여론이 빗발치면서 밀양시는 박시춘 음악제 개최를 백지화 했다. 박시춘 외에도 안익태·현제명·홍난파·남인수·김기수 등 다수의 음악인이 일제에 부역한 친일 행적이 확인된 바 있다.

이지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국장 겸 친일잔재조사위원회 연구원은 11일 통화에서 “대한민국 100년 특집을 하면서 ‘비 내리는 고모령’이 나와서 내 귀를 의심했다”면서 “박시춘은 친일 전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강제동원의 제일선에 서서 징병 유도 가요를 만든 대중음악계의 일급 친일파”라고 설명했다.

이지훈 국장은 “화려한 친일행적을 가진 이가 (친일의 대가로) 평생 호의호식한 데다 대중음악계 최고의 별로 아직까지 자리매김한 것은 씁쓸한 현실”이라며 “관계자들이 자료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임정 수립 100년 특집에 나온 것도 우려스러운데, 우승을 했다고 해서 더 당황했다”고 개탄했다.

<2019-03-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3.1절 특집’에 1급 친일파 노래를? KBS의 황당한 결정.

수, 2019/03/1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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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 국정교과서 토론회

정부는 지난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습니다. 이로써 정부는 국정 교과서의 제작에 돌입하였으며, 고시대로라면 2017년도 3월부터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정부가 직접 편찬한 교과서로 한국사를 공부하게 됩니다.

정부는 국정화의 추진 근거로 “현행 검인정제도는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검인정제도는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어왔을까요? 정부는 제도의 운용에 대해서는 한마디 자성도 없이 실패를 단언할 만큼, 검인정제를 취지에 맞게 잘 운영해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근현대사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와 접점을 가지고 있는 일본, 그리고 분단의 경험을 공유한 독일 역시 역사교과서 검인정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 나라의 검인정제도 운영 실태는 각기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학문과 교육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세 나라의 사례를 비교검토해보고 이를 통해 민주적인 역사교육의 방향과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토론해보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공개토론회]

한국·독일·일본의 역사교육과 시민적 대안

 


 일시 : 2015년 12월 23일(수) 오후 4시~6시

 장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주최 :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사회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참여사회연구소 연구분과위원장

 

발표

독일의 검인정제도와 한국 역사 교육에 대한 시사점이동기 강릉원주대학교 교수
일본의 검인정제도 운영 실태와 한중일공동교과서의 사례신주백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HK 연구교수
한국의 검인정제도 하 교육부의 개입과 국정화 논리의 실체김한종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토론

민주적인 역사교육제도의 방향과 사회적 합의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시민사회의 대응 방향과 대안교과서의 지향점 모색김육훈 독산고등학교 교사, 역사교육연구소장

 

151223_공개토론회_한국·독일·일본의 역사교육과 시민적대안

 

 

 

문의 : 참여사회연구소(02-6712-5248, [email protected])

수, 2015/12/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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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메르스, 백남기. 지난 4년 동안 한국 사회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늘 ‘창조’란 말을 반복했으나 오히려 ‘헬조선’을 탄생시켰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통합진보당 해산 등등, 박근혜 씨는 역사를 유신 시대로 되돌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현 직무정지)은 최순실 일당과 함께 대한민국을 “이게 나라냐”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됐습니다. 수백만 시민의 촛불이 이뤄낸 한국판 명예혁명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제 4년 만에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캄캄한 터널에서 가까스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권을 다룬 보도 영상을 통해 우리가 지나왔던 암흑의 세월을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금, 2016/12/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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