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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재처리, 드러난 부실과 예산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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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재처리, 드러난 부실과 예산폭탄

익명 (미확인) | 금, 2017/11/17- 23:16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 부실 논란 속 2018년 예산안 상임위 통과

2017년 11월 10일, 국회 본관 6층,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이하 과방위)에서 파이로프로세싱 즉 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 사업 관련 정부 예산안 561억 원이 상정돼 통과됐다. 국회 앞에서는 대전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나흘째 예산 전액 삭감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 11월 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심사소위 회의(왼쪽), 국회 앞 시민단체들의 전액삭감을 요구 기자회견

▲ 11월 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심사소위 회의(왼쪽), 국회 앞 시민단체들의 전액삭감을 요구 기자회견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 연구 개발 사업은 지난 1997년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추진해왔다. 지난 20년간 국비 6,764억 2,800만 원이 들어갔다. 1단계 연구개발사업이 마무리될 예정인 2020년까지 2,022억 원이 추가 투입될 예정이다.

▲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 기술의 개념도

▲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 기술의 개념도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 안에 들어있는 고방사성 물질인 세슘과 스트론튬을 분리해 별도로 보관하고 플루토늄과 마이너액티나이드 등 독성이 10만년 동안 지속되는 초우라늄(TRU) 물질들을 추출해 ‘고속로’라는 원자로에서 태워 없애 고준위 핵폐기물의 부피와 독성을 줄이고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의 면적을 줄인다는 핵재처리 기술의 일종이다.

▲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는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시설

▲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는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시설

하지만 파이로프로세싱 사업은 끊임없이 논란이 제기돼 왔다. 안전성과 기술효과 논란이다. 실험 과정에서 세슘 등 방사성 기체가 대기중으로 방출될 위험성이 제기됐고 세슘과 스트론튬을 300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또 고속로의 화재와 폭발 사고 위험성과 함께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없는 연구’라는 부실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 3월 27일 방송한 <핵 재처리 프로젝트 - 파이로프로세싱의 비밀>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회 과방위는 예산안 심의를 앞두고 11월 7일 전문가 공청회까지 열었다. 그러나 공청회에 참석한 원자력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연구개발에 대한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섰고 뚜렷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원자력학회 내부 보고서 입수, 학회 내부에서도 파이로프로세싱 비판적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한국원자력학회 산하 원자력이슈위원회가 작성한 파이로프로세싱·소듐고속로 연구개발 사업 검토 내부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의 제목은 “국가 순환핵주기 연구의 쟁점과 정책제언”, 2016년 7월과 8월에 작성됐다. 첨부자료 포함 모두 75페이지 분량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파이로프로세싱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원자력연구원 측과 질의 응답 형식으로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적 문제점을 자세하게 정리해놨다.

▲ 2016년 원자력학회 원자력이슈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

▲ 2016년 원자력학회 원자력이슈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

보고서에서 지적된 주요 문제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의 면적을 100분의 1로 줄일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내 사용후핵연료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수로 핵발전소의 사용후 핵연료를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처리할 수 없으므로, 처분장 면적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2.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에서 고준위핵폐기물의 총량은 오히려 늘어난다.

3.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양도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파이로프로세싱의 결과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외에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추가로 필요하게 될 것이다.

4. 원자력연구원은 국내에서 운영중인 경수로 핵발전소와 같은 출력, 같은 기수의 고속로를 건설,운영하면 28년 안에 사용후핵연료의 초우라늄 핵물질들을 모두 소각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타당하지 않다.

5. 향후 12년안에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 전반에 대한 검증을 마치겠다는 원자력연구원의 계획은 타당성이 없다.

6. 소듐고속로가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을 대비해야하고, 핵폭주를 예방할 수 있는 이론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원자력이슈위원회 작성 <순환핵주기 연구의 쟁점과 제언> 및 질의응답서 보고서 중 요약

원자력위원회의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지금까지 원자력연구원이 주장해 온 것과 사뭇 다르다. 그동안 일부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이 제기해온 비판 내용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원자력 학계 내부에서조차 파이로프로세싱 사업의 기술적, 경제적 타탕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학회 내부 보고서, 5명의 의원만 봤고 나머지 의원은 존재도 몰랐다.

그렇다면, 파이로프로세싱의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데 주요한 판단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는 이 보고서를 국회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몇명이나 봤을까? 제작진은 국회 과방위 소속 국회의원 22명을 접촉해 확인했다.

그 결과, 연락이 닿지않아 답변을 받지 못한 의원 3명을 제외하고 19명의 의원 중 5명만이 보고서의 내용을 검토한 것으로 확인했다. 나머지 의원들은 보고서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보고서의 내용을 검토한 의원 5명 중 4명은 2018년도 파이로프로세싱 및 소듐냉각고속로 예산 전액 삭감 의견을 냈고, 1명은 사업 재검토 후 예산 삭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원자력학회 관계자는 학회 내부 위원회에서 작성한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학회 전체 차원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해 보고서를 정식으로 발간해 외부에 공개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파이로프로세싱 사업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정부로 넘어갔다. 정부는 올해말까지 파이로프로세싱 사업을 최종 검증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 청문회 등을 다시 열어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목격자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연말까지 전문가 의견을 다시 수렴해 파이로프로세싱 사업을 재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목격자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연말까지 전문가 의견을 다시 수렴해 파이로프로세싱 사업을 재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원전 사업 가운데 안전성은 물론 기술효과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 사업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정재홍
취재 연출 남태제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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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작구 상도 3, 4동에 위치한 성대골 마을. 언뜻 보면 평범한 서울의 평범한 동네처럼 보이지만 이 마을의 곳곳에는 ‘에너지를 아끼는 착한 가게’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마을 전체가 에너지 전환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 서울시 동작구 상도 3,4동에 위치한 성대골 마을의 모습

▲ 서울시 동작구 상도 3,4동에 위치한 성대골 마을의 모습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위기감을 느낀 주민들은 핵발전소를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며 에너지 전환운동을 시작했다. 2011년 12월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 각 가정의 월별 전기 사용량을 체크하는 ‘성대골 절전소’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LED 전구와 태양광 휴대전화 충전기 등 에너지 절전 제품을 파는 ‘에너지 슈퍼마켙’도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마을과 기업들이 함께 일반 태양광발전기와 태양열온풍기를 설치하는 실험을 하는 등 성대골 사람들은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일시적인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아니라 생활 속 에너지전환운동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성대골 사람들의 이야기를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담았다.


방송 : 12월 19일 토요일 밤 11시 시민방송 RTV
다시보기 : newstapa.org/witness

목, 2015/12/1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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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뉴스타파는 또 한 번의 도전을 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고, 누구도 듣지 않는 현장을 지켜온 독립PD들의 시선을 <목격자들>을 통해 시민들께 전하는 일입니다.

<목격자들>은 지난 4월 3일과 10일, 시민방송 RTV를 통해 방송된 세월호 1주기 특집<수색중단, 그날의 기록>과 <인양, 국가는 속였다>를 시작으로 기존 제도권 방송사들이 외면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묵묵히 전달해왔습니다.

preview39-01

<2015 대한민국 알바블루스>, <지리산 청춘식당> 등을 통해 청년들의 현실을 들여다봤고, <오월 그날의 기억>, <골령골 이야기> 등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현대사의 비극을 되짚었습니다. <고공농성 90일, 그대 잘 계신가>와 <우리는 노예가 아닙니다>를 통해서는 비정규 하청노동자의 실태와 국내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담아냈습니다.

preview39-02

우리 시대 양심과 진실을 증언해온 뉴스타파 <목격자들>, 송년 특집 ‘목격자들, 1년의 기록’을 통해 2015년 대한민국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방송 : 12월 26일 토요일 밤 11시 시민방송 RTV
다시보기 : newstapa.org/witness

목, 2015/12/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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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독립 PD, 독립 영화감독들과 함께 시대의 고민을 기록해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자 10여 명의 독립 PD, 작가들과 함께 뉴스타파 <목격자들>을 선보였습니다. 2015년 4월 3일, 세월호 1주기 특집 ‘수색중단, 그날의 기록’, ‘인양, 국가는 속였다.’ 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8개월 동안 모두 38편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11시 시민방송 RTV와 뉴스타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해왔습니다.

▲ ‘수색중단, 그날의 기록' 방송 중(2015년 4월 3일)

▲ ‘수색중단, 그날의 기록’ 방송 중(2015년 4월 3일)

기성 방송사들이 해외의 정치 신드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때 일본의 아베 정부의 정책에 목소리를 높이던 일본의 젊은이들이 만든 단체 ‘실즈(SELDs)’의 목소리를 소개했고, 영국의 새 노동당 대표인 제레미 코빈의 35년 정치인생이 우리 정치인에게 주는 메세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들의 열악한 현실을 낱낱이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정부의 쌀수입 문제, 예술계에 만연한 검열, 장애인 인권,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현장에는 언제나 목격자들 취재진이 있었습니다.

▲ ‘2015 쌀 손익계산서’ 방송 중 (2015년 11월 7일)

▲ ‘2015 쌀 손익계산서’ 방송 중 (2015년 11월 7일)

▲ ‘헌신의 대가, 소방관의 눈물’ 방송 중 (2015년 11월 21일)

▲ ‘헌신의 대가, 소방관의 눈물’ 방송 중 (2015년 11월 21일)

송년 특집 ‘목격자들, 1년의 기록’은 지난 1년 간 누군가에 ‘불편한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기성 언론들이 외면한 ‘삶의 현장’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외면하고 덮어두기에 급급했던 ‘시대의 고민’은 무엇이었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지난 2015년 목격자들이 목격한 우리 시대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2015년 ‘목격자들’ 제작진

취재작가 : 이우리, 박은현
글 구성 : 정재홍, 김근라, 김초희, 이화정
연출 : 박정남, 김성진, 임유철, 서재권, 이명우, 김한구, 권오정, 박정대, 장정훈, 이지용, 김태일, 안해룡, 남태제, 이수정, 박종필, 송윤혁

월, 2015/12/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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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는 2015년 기준 58살. 30대 의원은 고작 4명에 불과하다. 지난 18대와 비교해 3~40대 의원은 10% 가량 줄었다고 한다. 국회 고령화가 심각하다. 5~60대 중장년층의 의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기득권을 놓지 않는 현실에서 여성과 청년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까?.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이번 20대 총선 청년비례대표 후보의 선출 나이 기준을 ‘만 45세 이하’로 정했다. 정당이 정한 청년의 기준이 민방위 편성 제한 나이인 만40살 보다도 5살 많은 셈이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40대 총리가 나오고, 프랑스에서도 30대 장관이 배출되는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정치인의 연령대가 젊어지고 있다

▲ 제19대 국회의원들의 평균 연령은 58세(지난해 기준)이다.

▲ 제19대 국회의원들의 평균 연령은 58세(지난해 기준)이다.

오는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앞으로 4년 대한민국을 이끌 금뱃지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대한민국에서 ‘젊은 정치의 가능성’을 진단했다.

목, 2016/01/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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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스웨덴 구스타프 프리돌린 교육부 장관, 이들의 공통점은? 어린 나이부터 정치를 시작해 3,40대에 총리와 장관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영국 하원의원의 평균 연령은 45세 정도라도 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2012년을 기준으로 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60대 이상은 69명, 50대는 142명으로 5, 60대 이상인 국회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30대 국회의원은 5명. 20대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다. 국회에서 20, 30대 젊은 층을 대변할 수 있는 같은 연령대의 의원들이 없거나 매우 적은 셈이다.

▲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이동학 씨. 올해 35살인 이 씨는 지난해 4월 당내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주위 선배들로부터“벌써부터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이동학 씨. 올해 35살인 이 씨는 지난해 4월 당내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주위 선배들로부터“벌써부터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 2015년 12월, 새누리당 청년혁신위의 주최로 청년 문제에 대한 정책점검회가 열렸다. 지난 일 년 동안 준비해 온 청년문제 해결 방안을 당내 선배들과 전문가들에게 점검받은 자리였다. 그러나 설익은 아이디어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 2015년 12월, 새누리당 청년혁신위의 주최로 청년 문제에 대한 정책점검회가 열렸다. 지난 일 년 동안 준비해 온 청년문제 해결 방안을 당내 선배들과 전문가들에게 점검받은 자리였다. 그러나 설익은 아이디어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젊은 정치인이 국회에 극소수인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등 기성정당에서 청년 당원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만나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체계적이지 않은 당내 인재 양성 시스템과 청년 당원을 ‘어린애’ 취급하는 관행을 지적했다. 경륜을 앞세워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꼰대’의 ‘콘크리트 벽’이 굳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청년 당원들은 선거 때만 잠시 동원되는 ‘대상화’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번 4.13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화, 2016/01/1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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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공개되는 김학순 할머니의 마지막 목소리

故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전 세계에 증언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내 수치는 둘째”라며, “나 죽은 뒤에는 말해 줄 사람이 없을 같아” 증언의 자리에 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7월, 다시 카메라에 선 그날도 그랬습니다. 8mm 카메라 앞에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학순 할머니는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내가 끝나기 전에는 안 죽어. 120살 까지도 살란다. 직접 내 눈으로, 내 귀로 (사과를) 들어야겠다고.
– 1997년 7월 인터뷰 중

이 말씀은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6개월 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 만주 태생인 故 김학순 할머니(1924-1997)는 1941년 일본군에 납치돼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가 됐고, 1991년 한국에서 최초로 증언해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 만주 태생인 故 김학순 할머니(1924-1997)는 1941년 일본군에 납치돼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가 됐고, 1991년 한국에서 최초로 증언해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김학순 할머니가 떠나신 지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일본 정부의 태도는 그때 보다 조금 더 나아졌을까요? 우리 정부는 할머니가 ‘사과’를 받으실 수 있도록 충분한 노력을 해 왔을까요? 김학순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20년 전 할머니의 소원이 담긴 마지막 육성을 최초 공개합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공개 : 1월 26일(화요일) 오전 10시 업로드
매주 토요일 밤 11시 시민방송 RTV

목, 2016/01/2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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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년 전 할머니가 남긴 목소리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18년 전 촬영한 8mm 테이프 하나를 다시 꺼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테이프의 존재도 잊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한일 양국 간의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소식을 듣고 테이프를 찾았습니다.

▲ 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니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 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니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8mm로 촬영했는데, 故 김학순 할머니의 생전 마지막 증언이 담겨 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국내 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하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제기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공론화 됐습니다.

2) 1997년 7월, 상계동 임대아파트

18년 전, 1997년 7월, 그날은 무척 무더웠습니다. 제작진은 서울 상계동 임대아파트에서 김학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지병으로 늘 누워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날만은 단정하게 차려 입으시고 꼿꼿하게 앉아 취재진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촬영은 현재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에 참여중인 박정남 PD가 맡았습니다.)

▲ 1997년 7월, 제작진은 김학순 할머니의 자택에서 인터뷰 했다. 할머니는 5개월 뒤 지병인 폐질환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 1997년 7월, 제작진은 김학순 할머니의 자택에서 인터뷰 했다. 할머니는 5개월 뒤 지병인 폐질환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우리 죽으면 우리 죽은 뒤, 나 죽은 뒤에는 말해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싶은 생각에 내가 이제 나이가 이만치나 먹고 제일 무서운 것은 일본사람들이 사람 죽이는 거, 제일 그걸 내가 떨었거든. 언제나 하도 여러 번 봤기 때문에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끌려가서도 봤지만도 사람 죽이는 걸 너무 많이 봤고 그렇기 때문에 젊어서는 사실 무서워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어)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인터뷰는 1시간 20분 동안 진행했습니다. 더 시간을 내 말씀을 듣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건강문제로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어떻게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가 됐고, 어떤 수모와 고초를 겪었는지, 그리고 수치스러웠지만, 위안부 피해를 처음으로 증언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우리 정부에, 일본 정부에 무엇을 바라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혀요. 그 어마어마한 군인들이 강제로 달려들 때는 정말 기가 막혀서 하도 입술을 깨물고 도망을 가려고 뿌리치고 도망을 나오다가 붙잡혀서 끌어가면 당하면서도 어떻게 기가 막하고 가슴 아프고 말이 안 나와. 그때 생각을 안해야지 하면 내 마음이 아주 그냥 더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어요, 그냥 그때 생각을 하면…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김학순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1924년 만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후 어렵게 살다가 16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가 됐습니다. 일본군이 운영하던 수용시설에서 온갖 능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 끔찍했던 고통은 평생 커다란 멍울이 됐습니다.

16살 난 것을 딱 끌어다 가서 그 군대에다가 일본 군대에 넣어서 그렇게 참 강제로 그 모양을 해서 사람 이 꼴 만들어서 평생을 이렇게 혼자 살면서 참말로 남 안 보는 데에서 밤 날 눈물로 세상을 살게 하니 정말로 그 분을, 그 화를 어떻게 해야 풀지를 모르겠어. 아주.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기가 막혀서 생각할수록 아주…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하고 죽겠어. 아주 그냥 아주. 정말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주 펄펄 뛰다가 내가 죽겠어 그래서 더 이렇게 이렇게 되는가 봐 숨을 제대로 못 쉬고 그러는가 봐, 호흡곤란이…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 생전 김 할머니는 거북이를 키웠는데, “내가 오래 사나 ‘네’(거북이)가 오래사나”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 생전 김 할머니는 거북이를 키웠는데, “내가 오래 사나 ‘네’(거북이)가 오래사나”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생전 김학순 할머니는 집안에 거북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거북이를 보며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거북이)가 오래 사나, 내가 오래 사나. 한번 해보자”, 그렇게 “110살이든 120살 까지든 살아서 내 귀로 직접 일본 정부와 일왕의 사과를 듣겠다”던 김학순 할머니는 인터뷰 후 5개월이 지난 1997년 12월 겨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날의 인터뷰가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되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 생전에도 일본 정부는 민간 기금 지원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돈 몇 푼 줘서 그 일을 이제 무마하게 하려고. 이제 나라에서 우리는 사죄를 하고 이제 배상을 해라. 이렇게 되고 있고 사죄는 거기에서 할 수가 없다는 징조로 나오면서 하는 소리가 이제 배상도, 정당한 배상을 할 수가 없으니까 얼마만큼 위로금으로 모금해서 일본에서 여성단체들이 모금을 해서 200만 엔인가 얼만가 일본 돈으로 200만 엔인가 얼마인가 위로금을 준다. 우스키 게이코가 그런 소리를 하는데 우리는 절대 그런 그럴 수는 없다. 그건 ‘천만에’다 말이야 위로금이라니 왜 우리가 위로금을 받아? 뭐 했다고 위로금을, 천만에 그럴 수는 없다 정정당당하게 사죄하고 배상해라.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日王(일왕) 으로부터 직접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야겠다.”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 왕 (인터뷰 당시 김학순 할머니는 천황이 아닌 일왕이라고 표현했습니다.)으로부터 범죄 사실을 상세히 고백받고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반드시 일왕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힘줘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법에 따라 배상을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역사교육을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병마와 힘겹게 싸우면서도 일본의 사죄를 받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내 수치는 둘째 문제야. 둘째 문제 억울한 생각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 전 세계에서 지금 가만히 생각해봐. 세상에 일본에서 전쟁을 한다고 해서 자기네는 전쟁이 아니고 무슨 아시아 여러 나라를 위해서 했다고 독립을 시켜서 했다고 이런 소리를 하지만 말답지 않은 소리를 말이지 그것이 말이 닿는 소리야? 일본이 전쟁을 했기 때문에 이런 피해 본 나라가 한 두 나라야? 아시아에 이 여러 나라가 피해를 봤는데 그렇다면 자기네가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이렇다 할 사죄 한마디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야. 원체 인간이라면 난 다른 사람 다 필요 없어 일본의 저이는 천황이라 하지만 난 일왕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일본 왕이니까 일왕이라고 하지 일왕한테 그때 일은 자기네가 잘못했다 전쟁 시작한 것은 잘못했다만 그건 반드시 사죄해야 된다 생각해 다른 사람도 필요 없어 일본에 다른 사람도 다 필요 없어 일본의 일왕이 사죄를 해야지 다른 사람이 무슨 소용 있어. 그렇잖아.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 김학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지 18년 만에 소녀상 옆 석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 김학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지 18년 만에 소녀상 옆 석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끝내 소원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떠나신 지 18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태도는 그때 보다 더 나아졌을까요? 우리 정부는 할머니가 ‘사과’를 받으실 수 있도록 충분한 노력을 해 왔을까요?

어쨌든 내가, 어쨌든 끝나기 전에는 내가 안 죽는다 110살까지도 살란다. 120살까지도 살란다 지금 그러고 악을 쓰고 있잖아 그냥 내 직접 내 눈으로, 내 귀로 (사과를) 들어야 하겠다고.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3) 2016년 1월, 소녀상을 지키는 젊은이들

▲ 영하 15도가 넘는 한파에도 청년 학생들이 20일 넘게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면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 영하 15도가 넘는 한파에도 청년 학생들이 20일 넘게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면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올 겨울 들어 가장 차가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는 소녀상을 지키려는 청년들의 노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벌써 20일이 넘었습니다. 보온병이 얼고, 이가 시리는 추위가 계속되는데도 침낭과 비닐에 의존해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잠을 자기에 날이 춥지 않느냐는 물음에 한 여학생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는 고작 20일이지만, 할머니들은 20년을 계속해서 싸워오셨잖아요.


자료제공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진제공 : 안해룡, 이토 다카시
취재작가 : 이우리, 박은현
글 구성 : 정재홍
연출 : 박정남

화, 2016/01/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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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일. KTX가 개통됐습니다. 국내 최초로 도입된 초고속 열차는 ‘꿈의 열차’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철도청은 KTX 승무원들을 계약직 형태로 고용했습니다. 단, 1년 뒤 코레일(한국철도공사)로 공사화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공무원에 준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지원한 인원은 무려 4,000여 명.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350여 명이 KTX 승무원이 됐습니다.

1년 뒤 철도청은 예정대로 코레일이 됐지만 KTX 승무원들을 코레일의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계약이 만료되면서 350여 명의 KTX 승무원들은 해고됐습니다.

▲ 김승하(37살)씨는 해고된 이후 10년 째 코레일과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다. 해고 후 누군가 KTX 얘기만 해도 가슴이 뚝 끊기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김승하(37살)씨는 해고된 이후 10년 째 코레일과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다. 해고 후 누군가 KTX 얘기만 해도 가슴이 뚝 끊기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해고된 승무원 중 34명은 2008년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은 더디게 진행됐지만 2심 판결까지 불법 파견으로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 받았습니다.

▲ 해고 직후 해고의 부당성을 알리는 집회에 참가해 발언하는 김승하 씨, 당시 20대였던 김 씨는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다.

▲ 해고 직후 해고의 부당성을 알리는 집회에 참가해 발언하는 김승하 씨, 당시 20대였던 김 씨는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지난해 2월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파기 환송했습니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20대였던 이들은 이제 30대 중, 후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해고 승무원 30여 명은 지금도 여전히 코레일과 싸우고 있습니다. KTX 해고 승무원들이 벌인 10년 간의 싸움. 이들이 여전히 싸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뉴스타파 홈페이지 공개 : 1월 29일(금요일) 업로드
매주 토요일 밤 11시 시민방송 RTV

목, 2016/01/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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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그러니까 10년 전,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누군가 KTX 얘기를 하는 걸, 그 단어가 스치기만 해도 갑자기 가슴이 뚝 끊기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어릴 적부터 ‘설레임’으로 다가왔던 열차였는데 말이죠.

▲ 김승하(37살)씨에게 열차는 어릴 적 ‘설레임'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누군가 KTX 얘기만 해도 가슴이 뚝 끊기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김승하(37살)씨에게 열차는 어릴 적 ‘설레임’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누군가 KTX 얘기만 해도 가슴이 뚝 끊기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꿈의 열차’라고 불렸던 KTX는 2004년 개통됐습니다. 그해 제 첫 직장 생활도 KTX와 같이 시작했습니다. KTX 승무원입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비정규직 형태로 채용이 이뤄졌지만 1년 뒤에는 철도청에서 코레일(한국철도공사)로 공사화되면 코레일의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약속도 있었습니다. 공무원의 준하는 혜택을 받는다고 홍보도 했죠. 이런 입사 조건 때문인지 당시 승무원에 지원한 인원은 무려 4,0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350여 명이 제 동료가 되었지요.

부모님께서도 딸이 KTX 승무원이 됐다고 많이 기뻐하셨죠. 여기 저기 자랑도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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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KTX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일을 시작한 지 1년. 철도청은 예정대로 코레일로 공사화됐습니다. 제 유니폼의 견장과 단추에는 코레일 마크가 새겨졌습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인 제 고용형태는 그대로였습니다.

이상했어요. ‘왜 처음에 했던 말과 약속이 다르지?’ 1년이 더 지났습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됐고, 평생 직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첫 직장을 잃었습니다.

이후 거리에 나와 천막에서 농성도 하고 단식도 했습니다. 동료들은 고공에 올라가 비를 맞으며 복직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20대 중반이었던 저에게는 그때만 해도 투쟁이라는 것은 낯설었습니다. 살아오며 ‘투쟁’이란 것을 해볼 거라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억울하단 생각에 해고의 부당성을 알려야 했습니다.

▲ KTX 해고 승무원들은 해고 직후 다양한 방법으로 해고의 부당성을 알렸다. 당시 20대였던 그들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다.

▲ KTX 해고 승무원들은 해고 직후 다양한 방법으로 해고의 부당성을 알렸다. 당시 20대였던 그들은 어느덧 30대 중후반이 됐다.

법원을 찾아 해고 무효 소송도 했습니다. 2008년 저와 동료 34명은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코레일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법원에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2011년 각각 1심, 2심 재판부는 코레일이 불법 파견한 것으로 저희들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기뻤습니다. 이제 곧 오랜 복직 투쟁이 곧 끝날 거란 생각에, 다시 유니폼을 입고 열차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2심 판결이 나오던 날, 저를 포함해 우리는 법정을 나서며 복받치는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런데, 4년 뒤, 최종심에서는 달랐습니다. 2015년 2월 대법원은 원심의 판결을 뒤집고, 해고의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복직할 수 있다는 희망의 끈만 붙잡고 버텼는데 막막했습니다. 9년을 함께한 제 동료 한 명은 목숨을 끊었습니다.

▲ 33명의 KTX 해고 승무원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역에 나와 해고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다

▲ 33명의 KTX 해고 승무원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역에 나와 해고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다

시속 300km인 KTX처럼 빠른 속도로 10년의 세월은 훌쩍 흘렀지만, 제 시간은 여전히 2006년에 멈춰서 있습니다. KTX 승무원 해고 문제는 이제 잊혀진 것일까요? 그래도 싸움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다짐합니다. 지금도 서울역에 나가 저희 해고의 부당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김근라
연출 김한구

금, 2016/01/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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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지하철과 버스, KTX, 영화관 등을 통해 ‘반값등록금’ 공약이 실현됐다는 홍보 광고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홍보 광고가 사실에 부합하느냐는 논란을 사고 있다.

▲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연말부터 ‘정부와 대학의 노력으로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었다’는 광고를 잇따라 내놓기 시작했다.

▲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연말부터 ‘정부와 대학의 노력으로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었다’는 광고를 잇따라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에서 대학 등록금은 핵심 이슈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걸었다. 교육부는 지난해 연말부터 ‘반값 등록금’을 실현했다고 홍보했다. 교육부는 한해 전체 등록금 규모인 14조 원 가운데 정부와 대학이 지원하는 금액이 7조 원이라는 의미에서 ‘반값’의 표현이 맞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해 노력했고, ‘반값 등록금’을 실현했다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대학생들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학생들은 여전히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이 아닌 소득의 수준에 따라 선별 지원 방식으로 진행돼, 대다수 학생들이 받는 장학금은 등록금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값 등록금’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 대한민국의 대다수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 부담은 물론 주거난과 취업난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 대한민국의 대다수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 부담은 물론 주거난과 취업난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2015년 국내 사립대학(국,공립대 제외)의 한해 평균 등록금은 733만 7천 원이다. OECD가 지난해 발표한 ‘2015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국내 사립대의 한해 평균 등록금(2014학년 기준)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싸다. 전체 대학 중 사립대학이 8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대학생들이 부담하는 등록금은 세계 최고 수준인 셈이다.

등록금의 계절인 2월,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대학 등록금의 현실을 취재했다.


방송 : 2월 5일(금요일) 저녁 뉴스타파 홈페이지 업로드

목, 2016/02/0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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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등록금의 계절입니다. 설 연휴를 앞뒀지만, 많은 대학생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고 합니다. 여전히 아르바이트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비싼 등록금 때문입니다.

등록금 관련해서 어제도 엄마랑 얘기를 했었는데 ‘어떻게 할 거냐’라고 했을 때 ‘대출받아야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에 보태는 건 어림도 없어요. 3개월 동안 일해서 등록금에 보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애초에 등록금의 새 발의 피도 안돼요.
– 강태영/ 한양대 4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반값등록금’ 공약을 내걸어 대학생들의 표심을 샀습니다. 그리고 집권 3년 차인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지하철과 시내 버스, KTX, 영화관 등에 ‘반값등록금’ 공약이 실현됐다는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반값등록금’ 공약은 실현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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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현재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학부모의 재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국가 장학금을 지급해 등록금을 낮춘다는 것입니다. 장학금 지급은 한해 70여만 원에서 최대 480만 원까지로, 모든 학생들이 조건없이 ‘반값 등록금’ 혜택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저소득층인 1분위 2분위에 속한 학생의 경우 전액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마저 지켜지 못했습니다. 현재 정부에서 지급하는 국가장학금은 소득분위 1,2분위인 경우는 480만 원, 3분위는 360만원 입니다. 2014년 사립대학교 한해 평균 등록금이 733만 가량인 점을 비춰볼때, 1~3분위에 속해야만 ‘반값등록금’ 혜택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1~3분위에 해당되는 대학생들은 전체 대학생 320여만 명 중 18%에 불과합니다. 대학생 5명 가운데 1명만이 ‘반값등록금’ 을 선별적으로 지원받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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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증권사에서 발간한 ‘2016 대한민국 증산층 보고서’를 볼까요. 가령 평균 2억 상당의 주택과 중형차를 소유하고, 월 소득이 375만 원의 가정의 학생이 경우, 정부계산대로 하면 소득 7분위에 해당합니다. 소득 7분위는 한해 67만원 정도를 지원 받는 데 그칩니다. 한 해 내야 하는 등록금의 10% 수준으로 이들 학생에게 ‘반값등록금’은 다른 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체감도가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정부의 설명은 다릅니다. 교육부는 2011년 기준 등록금 총액 14조원의 절반인 15년 7조 원 규모의 액수를 지원하기에 평균적으로 50%를 경감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두고 ‘반값등록금’을 실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 모두의 등록금을 반으로 낮추진 않았지만 총액의 셈법으로 절반으로 줄였기 때문에 ‘반값등록금’이 실현됐다는 것입니다.

▲ 대한민국의 대다수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 부담은 물론 주거난과 취업난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 대한민국의 대다수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 부담은 물론 주거난과 취업난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한해 평균 등록금 액수는 733만 원 가량으로, OECD 국가 중 미국에 이어 두번째 높습니다. 등록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지만, 취업률은 최저 수준입니다. 상당수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대출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반값등록금이 실현됐다”는 정부의 홍보 광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취재작가 : 이우리
글.구성 : 김초희
연출 : 박정대

금, 2016/02/0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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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붉은 원숭이의 해’ 병신년 새해가 밝고 한달이 지났습니다.

‘4.13 총선’은 두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9대 국회가 4년의 임기를 채우는 동안 시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지난 총선 전보다는 조금 나아 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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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목격자들>의 권오정 피디가 지난 2주 동안 부산, 대구, 광주 시민들에게 경제와 정치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목, 2016/02/1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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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의 시간강사는 7만 명 남짓. 이들이 전체 강의 중 28%를 담당한다. 대학은 시간강사에 많이 의존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고질적인 고용 불안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10년 조선대 시간 강사에 죽음을 계기로,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2011년 12월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일명 시간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시행이 세 차례 유예됐다.

교육부는 전임 교수 한사람이 담당하는 학생비율을 높이려는 취지로 각 대학에 ‘전임교원의 강의 담당율’을 높이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정작 일선 대학은 전임 교원을 늘리는 방식이 아닌 시간 강사를 ‘해고’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뉴스타파 <목격자들>에서는 대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시간강사’의 현주소를 조명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업로드 : 2016년 2월 19일(금) 오후

목, 2016/02/1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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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이탈리에서 유학하며 활동해온 성악가 김상진 씨는 2014년 말 서울대 음대 성악과 시간강사 채용에 합격했다. 김 씨는 귀국해 지난해 1년 동안 서울대에서 학생들에게 성악 실기를 가르쳤다.

김상진씨 공연사진

사진설명 : 김상진 씨는 유학 기간에 이탈리와 독일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사진 가운데 공연하는 김 씨의 모습)

서울대 음대의 갑작스런 신규 강사 채용 공고, 1년만에 무더기로 ‘해고’당해

그런데 서울대는 지난해 12월 돌연 음대 강사를 새로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비록 1년 단위로 매년 계약하는 시간강사이지만, 그동안 서울대에서는 관행적으로 최대 5년 동안 재임용해왔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김씨는 1년 만에 사실상 해고된 것이다.

천막농성안 김상진씨와 전유진씨

사진설명 : 서울대 성악과 강사 김상진 씨와 전유진씨가 서울대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대 음대가 시간강사 임용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정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성악과의 경우 학생 지도의 연속성을 위해서다.

“성악 기술을 자기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1년 배우고 또 다른 사람한테 2년 배우고 또 1년 배웠다가는 좋은 성공을 거둘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학생이 그 기술을 다 배울 때까지 (시간강사) 임기가 4년 내지 5년 이렇게 이어져 왔거든요”

– 김상진 / 서울대 성악과 시간강사  

서울대 측은 시간강사 채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만, 수많은 강사들이 1년 만에 강의실에서 쫓겨나게 됐다.  새 학기가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김상진씨는 여전히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이상한 교과개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강의를 하던 시간강사 채효정 씨는 지난해 12월, 대학측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동안 자신이 담당했던 세 강좌 중 두 개는 이번 학기에 개설되지 않고 한 강좌는 아예 폐지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강의비개설 통보메일

사진설명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시간강사 채효정 씨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대학교 측으로 받은 이메일

 

채효정씨

사진 설명 : 채효정 씨가 맡았던 강좌 중 학교 측의 융복합 지원을 받았던 것도 있지만 폐지되거나 이번 학기에 개설되지 않았다.

채 씨 뿐만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지난 2년 동안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없어진 과목이 200개에 이른다. 대부분이 시간강사들이 맡았던 강의였다. 대학 측은 교육 철학에 부합하는지, 커리큘럼은 적합 한지 파악해 교과개편은을 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강사들은 전임교수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교육부는 각 대학에 전임교수의 강의 담당 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 대학들은 전임 교수를 추가로 채용하지 않은 채 시간강사를 해고하는 방식으로 전임교수의 강의 담당 비율을 높이고 있다.   

서울대 본관앞 천막농성 사진

사진설명 :  시간 강사 등 비정규직 교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보따리 장수’가 아니라 대학 구성원의 하나라는 인식 전환과 합당한 대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일반 대학에서 시간강사는 6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이 전체 강의 중 28%가량을 맡고 있다. 대학 강의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여전히 ‘보따리 장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안정한 고용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정재홍

연출 남태제

금, 2016/02/1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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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월 10일. 이날 개성 공단의 입주 기업에 소속된 800여 명의 남측 근로자들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빌미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전격 발표한 것입니다. 그 다음날 북한은 개성 공단에 상주해있던 남측 인원 전원을 추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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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하루사이 일어난 일입니다. 대비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출고를 기다리던 완제품은 물론 숙소에 있는 옷가지 하나 챙겨 나올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말그대로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보름에 한번, 주말에만 잠깐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주 생활처가 개성입니다. 그런데 못가지고 나왔어요. 입던 옷, 아들 졸업선물로 사둔 시계, 평소 먹던 혈압약 조차도.
– 신윤순 (개성공단 입주 S 기업 남측주재원)

많은 이들이 생활 터전을 잃은 것도 모자라 일자리까지 잃게 됐습니다.

지난 연휴 공단에서 철수하고, 회사에서는 그 다음주 월요일에 바로 권고사직을 받았어요. 당장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데…
– 서성길 (개성공단 입주 M 기업 남측주재원)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TV에서 신문에서 말하지 않는 ‘개성공단 사람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목, 2016/02/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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