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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 설계한 강골 학자, 문정인 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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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 설계한 강골 학자, 문정인 특보

익명 (미확인) | 수, 2017/10/18- 14:31

문정인 대통령 통일ㆍ외교ㆍ안보 특별보좌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정치 학계의 권위자이자 외교ㆍ안보 전략가다. 사회과학 논문 인용 색인에 등재된 논문이 40여편에 달한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학자이지만 거침이 없다. 민감한 현안이라도 학자적 소신에 따라 발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 동결을 조건으로 한미훈련을 축소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발언으로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서 발언 수위가 선을 넘은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문 특보는 학자로서의 의견이라며 굽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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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대통령 통일ㆍ외교ㆍ안보 특별보좌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정치 학계의 권위자이자 외교ㆍ안보 전략가다.(사진 출처:중앙일보)

키 180㎝에 몸무게 80kg으로 고교 시절‘한 주먹’ 하기도 했던 문 특보는 국제사회의 ‘문제아’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대화’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힘(군사력)으로 제압하겠다는 건 현실적이지 못할 뿐더러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한들 얻을 게 없다고 본다. 한반도가 핵 전쟁터가 돼 버린다면 전세계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문 특보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이어진 대북포용 정책인 햇볕정책 설계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2016년 6월 연세대 교수직에서 퇴임한 문 특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구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학자로서의 마지막 혼신을 쏟고 있다. 문 특보는 세간의 비관적 전망과 달리 연말쯤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활로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친다.

 

미군철수 여론 살피러 온 미 대표단과 인연, 정치학자 길로

문정인 특보는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5형제 중 둘째였던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운동경기에 선수로 참여할 정도로 스포츠를 즐겼다. 180㎝ 큰 키로 체격 조건이 유독 좋았다. 오현고 시절 씨름ㆍ유도 선수로 시합에 자주 나섰고, 투포환 던지기 실력은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글쓰기 소질도 남달라 제주도내 백일장 수필부문에서 장원을 2년 연속 차지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1969년 한국외국어대 이탈리아어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내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봐 연세대 철학과(70학번)로 진학한다. 연대 학보 ‘연세춘추’에서 기자로 또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인생의 항로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문 특보는 애초 대학 졸업후 신문사에 취직할 작정이었다. 학보사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보사 활동을 한 이들에겐 일반적 관례와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72년 미 국무부가 주최한 아시아ㆍ태평양 10개국 학생지도자 회의에 연세춘추 편집국장 자격으로 한국 대표로 선발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4개월간 미국 전역을 돌아보면서다. 문 특보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연히 하게 된 미국 여행을 통해 세계를 보는 안목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진 군 생활에서도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 만한 경험을 쌓게 된다. 첩보를 총괄하는 국군정보사령부에 배속되면서 국제관계와 관련한 각종 보고서를 접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국제정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국가정보원 1차장 등을 지낸 대표적 통일ㆍ외교ㆍ안보 전문가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 특보와 군 생활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에서 제대한 1976년 한 선배의 권유로 이슬람과 인연을 맺게 되는 색다른 경험도 한다. 한국이슬람중앙연합회 국제담당 사무차장으로 일하면서 영어로 된 이슬람 관련서적 13권을 국문으로 번역했다. 보수 정치권 일각에서 종교 문제로 문 특보에 대한 트집잡기를 하는 배경이다. 문 특보는 이와 관련해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스스로 불교신자라 여기다 2년 동안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도 했다”며 “미국 유학 때는 기독교에 가까웠지만, 지금 제 종교를 묻는다면 종교가 없다가 정답”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자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대학 4학년 때 찾아온다. 1978년 한국을 찾은 미 공화당 전국위원회 관계자들을 수행, 통역을 맡은 것이다. 미 공화당 인사들은 당시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불거지자 한국 여론을 살피기 위해 방문했다. 이 인연은 5년간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미 메릴랜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메릴랜드대에서 정치학 석ㆍ박사학위를 받은 문 특보는 1985년 ‘X터키대 정치과 조교수를 시작으로 월리엄스대, 튜크대 교수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한동안 미국에서 활동했다. 미국 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맡는 등 미국 학계에서 명성을 날렸다. 학계를 대표하는 ‘미국통’으로 꼽히는 배경 중 하나다. 그러던 1994년 연세대 정외과 교수로 부임하며 한국으로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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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특보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진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간 두 차례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모두 참여… 햇볕정책 설계자

문 특보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진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분단 55년만인 2000년 6월 평양에서 이뤄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과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ㆍ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등 그간 두 차례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문 특보는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정성회담 동안두 정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특별수행원으로 1ㆍ2차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인물은 문 특보를 제외하면 남북 경협문제로 참여했던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특보는 한 인터뷰에서 “1차 정상회담 때의 6ㆍ15공동선언이 총론이라면 2차 정상회담의 10ㆍ4 공동선언은 각론에 해당된다”며 “10ㆍ4 공동선언 중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은 참으로 획기적이었는데 그 계획이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동북아시대위원장’을 맡아 동북아평화번영 정책 수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국정원장,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대통령 안보보좌관 등 외교ㆍ안보 라인에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하마평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문 특보는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캠프에 참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간다. 지난 대선 캠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좌장 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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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특보는 “2차 정상회담의 10ㆍ4 공동선언 중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이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사진 출처: 연합뉴스)

“북한 요구 못 들어줄 이유 없다”… 美태도 변화 주문

학계를 대표하는 ‘미국통’이자 ‘북한통’인 문 특보는 핵ㆍ미사일 등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대화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북한이 원하는 건 국제사회가 북한을 주권국가로서 인정하고,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굳이 미국을 겨냥해 핵ㆍ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잇단 도발을 하는 것도 결국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체제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거다.

문 특보는 특히 “북한의 요구를 못 들어줄 이유가 없다”며 미국 측의 태도 변화를 줄기차게 주문하고 있다. 북ㆍ미간에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고조시켰던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군사 옵션까지 거론하자 문 특보는 “많은 분들이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북한 지도부 궤멸과 핵 자산을 없애는 정치적 목표나 군사 지휘부를 궤멸 시키는 군사적 목표 모두달성이 어려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무모하게 (군사행동을) 한다면 인류에 대한 죄악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북미 간 군사 충돌이 일어난다면 재래식보다 오히려 핵전쟁으로 발전되는 것 아닌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문 특보가 거듭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 동결을 전제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쌍 잠정중단’도 고려해야 한다”며 이른바 쌍 잠정중단론을 거듭 주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특보는 지난 6월 미 워싱턴 방문 당시 내놓은 한ㆍ미 연합군사훈련 축소 발언으로 논란이 불거진 점을 의식한 듯 최근에는 “정부의 입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로서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핵 동결을 전제로 대화는 가능하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려운 얘기”라며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곧잘 거론되는 군사 옵션은 쉽게 입에 오르내리긴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할 뿐더러 정치적ㆍ군사적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루빨리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호소하고 있다. 문 특보는 9월 2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10ㆍ4선언 10주년 기념식 특별강연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100개 가지면 지금과 협상 테이블이 또 달라진다”며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 북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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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 개월간 일어났던 시민촛불혁명의 핵심구호는 ‘이게 나라냐’ 였다. 정신 나간 박근혜 전대통령과 그녀의 사적 측근들이 국가권력을 농단했던 사실들에 분노한 시민들이 외친 한 줄의 비명이었다.

외교안보특보로 문 대통령의 방미에 앞선 탐색에 나선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의 최근 발언과 이에 대한 미국측 반응을 다룬 국내의 언론보도를 접하는 필자는 ‘이게 대한민국 언론이냐’는 비명을 절로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미국보다 더 미국을 걱정하는 보수언론

주권국가의 통치자 특보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말을 당당하게 한 문교수의 발언을 두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의 한심스런 시각은 차치하고라도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응을 다루는 기사에서는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내린 사드 배치의 과정에 대한 조사결정과 문정인 특보의 미국 내 발언에 대한 보고를 접한 트럼프 자신이 ‘욕설까지 동반한 격노’를 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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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에 대해) 트럼프 격노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일부 보수층과 보수언론의 대미사대주의를 풍자하는 한겨레신문 만평.

이들 언론보도 기사의 행간에는 마치 종주국 황제의 역린을 건드렸으니 이제 큰 일이 났다 식의 경고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듯하다. 이는 수구집단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공갈협박( black mail) 수법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한미정상회담, 잠시 미루는게 맞다)을 통해 문대통령의 방미를 수 개월 뒤로 연기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결정된 일정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두 문(two Moons)의 환상적 콤비 플레이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히려 정당한 보도의 초점은 미주대륙의 절대적 패권국가와 국제정치의 균형자라는 엄청난 지위의 강대국 미국 대통령으로서 트럼프의 자격미달과 오만함을 질책하고 비난했어야 마땅했다.

상기의 기사를 ‘트럼프의 격노’라는 제목으로 다룬 언론사들은 자신이 속한 국적부터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만약에 자신들이 국적이 대한민국이라면 국가의 주권과 체면을 팔아먹는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이러한 비난을 거부하고 싶다면 그들의 실제적 조국이 미합중국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정학적 지옥, 한반도의 숙명인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현재의 한미관계를 좀더 솔직하게 따져 들어가 보자.

서구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18세기 이래 국제정치를 판단하는 두 가지 시각 또는 이론이 길항하고 있다 한다. 한가지는 패권적 현실주의이며, 다른 시각은 상호적인 자유주의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벌어진 제국주의간의 식민지 쟁탈과 패권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의 비극을 대단원으로 국제사회는 치열한 성찰과 반성이 이루어졌다. 수세기에 걸친 전쟁의 원인으로 작동한 패권주의를 견제하고자 다양한 국제기구와 시스템을 구축하여 상호주의의 입장을 강화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상호주의적 노력은 미소 양 진영의 대립으로 무력화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패전국도 아니며 제국주의의 희생자였던 한반도는 오히려 분단과 민족동란이라는 비극을 거쳐서 오늘까지도 여전히 휴전이라는 잠재적 전쟁상황에 놓여 있다.

1989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적 대결의 종식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하였으나, 오히려 미국이 일방적 패권주의를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의 폐해가 심해가는 중에, 중국과 인도의 굴기, 유럽연합의 탄생, 이슬람 문명과 러시아의 재기가 이루어 졌다.

바야흐로 다원적 패권주의 시대를 눈앞에 두면서, 한편에서는 극우적 민족주의가 발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상호주의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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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일본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 시기는 대북문제접근에서 한국과 미국 간의 협력이 가장 잘 이뤄지던 시기로 평가된다.

이런 와중에 제2차대전 직후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어섰던 국력이 20% 수준으로 축소되면서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지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소프트 파워의 급격한 상실 등 심각한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 일본전쟁의 전승국인 미국에 의해 이루어진 해방, 그리고 공산화를 시도했던 북한 때문에 치른 민족동란을 겪으면서 지난 70년간의 세월은 한미동맹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편승적인 한미종속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이는 동시에 피동적인 종속관계를 합리적인 동맹관계로 이동시켜야 하는 주권국가로서의 과제상황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전개는 역동적이고 이러한 역사의 파고를 능동적으로 타고 넘는 자만이 미래의 주인공이다.

지난 70년 간의 한미관계는 김대중-클린턴 시절의 3년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일방적 역사이다. 강자에 의해 형성되는 일방적 역사라는 것은 동시에 매우 위험하고 예측이 어렵다는 뜻을 포함한다.

김대중-클린턴의 황금기 같은 3년은 소중한 기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남북이산가족들이 만나고,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지고, 개성공단의 경제적 협력이 이루어졌고, 연평 해전이라는 위기가 있었음에도 굳건한 평화와 국방의 토대가 이루어 졌다.

황금기 같은 3년의 기간 동안에는 한반도 문제를 남한정부가 주도하고 미국이 뒤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후 들어선 부시 정권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1990년 이래 애써 이루어 놓은 북미간의 중요한 합의협정(agreement frame: AF)이 일방적으로 파기되고, 천하에 무식한 이명박 정권하에 이루어진 ‘선제적 비핵화 전략- 편승하기(bandwagonning)’과 무책임한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라는 허울이 어우러져 극심한 상호불신 속에 한반도의 비핵화는 물거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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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행정부 시기의 한미 밀월은 부시 행정부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직면한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더욱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http://www.azquotes.com/)

북한의 자해적 핵무장 수준이 동아시아 전역과 미국본토를 대상으로 상호확실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 MAD)의 국면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매년 되풀이되는 한미군사훈련에 소위 미국의 전력자산이라는 초현대적 무기들이 대거 동원되면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연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남북한 민족 모두에게 일대의 위기국면인 동시에 동아시아와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불장난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분명하게 미국의 대중국 봉쇄의도가 숨겨져 있다.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의 손으로 

문재인 정부하에 한국사회의 내부적인 주요 과제는 양극화 완화와 더불어 일자리창출을 포함한 불황극복이다. 당연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산업과 경제정책, 교육과 사회정책을 강구해야 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과 정책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조건이 해결되지 못하고 국제적으로 상호적인 자유주의가 보장되지 못하면 실제적인 성과를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한미관계가 그간의 일방적 종속관계에서 합리적 동맹관계로 조정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정치적 번영과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출중심국가인 한국에게는 외적 조건이 내부적 성과를 확실하게 규정한다.

이러한 인식에서 중장기적으로 미국중심의 패권적 현실주의라는 입장을 인정하면서도 수평적이고 합리적 동맹관계로 가는 중간단계의 종속적 동맹관계라는 과정을 거쳐가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그 핵심적 주제는 당장의 현실로 전시작전권의 이양과 장기적인 동아시아의 집단적 안보체제의 구축이다.

한편에서는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위치를 전적으로 인정하되, 한반도의 미사일방어체제로 일방적 편입과 한미일 군사동맹을 동의해서는 아니 된다. 이는 한국을 영구적으로 미국의 절대적 영향하에 종속국가로 묵어두는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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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의 각축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지정학적인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은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관점에서 생존과 번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http://www.fmkorea.com)

문재인 정부는 당당하고도 당연하게 법적 근거가 없는 전시작전권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한국적 미사일 방어체계를 포함한 자주국방의 요지를 미국에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이는 주권국가로서 행사해야 하는 일차적 조건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드의 문제는 잠정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문제해결의 주역은 당연히 대한민국이어야 하고 한반도 역사라는 차량의 운전석에는 문재인 정부가 앉아야 한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시대에 뒤떨어진 퇴행적 패권주의 산물이다. 우선 중국에 맞서 한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현실적인 이해관계에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시에 미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역사의 흐름에 역주행하는 자살 골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다원적 시대에 맞게 공존공영의 상호주의라는 큰 주류를 형성하면서 미국은 국제적 패자로서 동아시아의 균형적 중재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중국의 굴기에서 오는 잠재적 지역 패권의 위험을 견제하는 방식은 대결적 한미일 군사동맹이 아니라, 지역의 관계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나토방식의 집단적 지역방위체계 방향에서 해결해가는 것이 옳다.

일본은 과거 대동아권의 꿈을 꾸는 군사대국의 미망에서 벗어나면 아시아 이웃국가들과 함께하는 보통국가로 길이 열릴 것이다.  

중국은 과거의 패권적 종주국의 부활을 기대하는 것보다 경제와 군사의 대국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는 것이 근대사의 치욕을 벗어나 중국몽(中國夢)을 이루는 것이다.  

러시아 역시 유러시아의 강국답게 미중일 사이에 이해를 조정하는 보증국가로서 명분과 실리를 살리는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호주, 베트남, 동남아 등은 중간국가(middle power)로서 균형자적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큰 그림의 시나리오와 연출은 당연히 미국의 몫이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해양국가와 대륙국가들을 교량하는 중추적 핵심적 역할을 해 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북핵의 문제는 북한정권의 생존과 평화보장의 문제로 접근하면 예상보다 너무 손쉽게 풀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남한정부는 통일의 시각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양국관계의 정상화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주변 국가들의 우려와 견제를 덜어내는 일이라고 판단된다.

상호이익에 근거한 진짜 동맹을 만들자

문재인 정부의 미국 전략은 그간의 종속적인 한미관계를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동맹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의 출발점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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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은 한국의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에만 의존하는 동맹의존증은 오히려 한국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오는 6월 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동맹의 파트너로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스스로의 생각과 플랜을 제시하고, 이를 미국과 조율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sbs)

동맹은 강자의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이라는 기초 위에서 서로간의 다른 시각과 현안을 조정해 가는 관계이다.

문대통령의 방미 길은 패권국가인 미국의 지위와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뿐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사회에 대하여 당당하게 한국정부의 입장과 비전을 밝히면서, 이해가 같은 지점에서는 굳건히 악수를 나누고, 입장과 시각이 다른 분야에서는 서로의 입장을 십분 경청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한반도의 안전과 미래에 관해서는 분명한 주도권을 요구해야 한다. 아닌 것은 미소를 품고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략과 용기와 결단을 기대한다.

목, 2017/06/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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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이 '세속화' 되어야 한다고?

야권, '미래의 분열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더 크게 하나가 되어도 이기기 쉽지 않을 총선을 코앞에 두고 어처구니없게도 야권이 분열하고 말았다. 일반 시민의 눈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명분 싸움으로 여러 계파들이 온갖 드잡이를 하더니, 끝내 제1야당이 분당되고 말았다. 현재로써는 선거에서 야권 연대가 이루어질 가망도 별로 없어 보인다. 안철수 의원은 대선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총선에서 가능한 한 세를 모아 교두보를 확보해야 할 터이니, "야권 연대는 없다"는 그의 선언은 결코 빈말이 아닐 것이다. 하기야 '이번 총선은 내주더라도 대선을 이기겠다'는 나름의 계산이 없었다면 그는 탈당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은 것은 총선에서 야권분열의 어부지리를 얻은 새누리당이 200석 가까이 또는 그 이상의 의석을 획득하는 것일 텐데(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친여 무소속 등 보수 세력 의석의 합이 197석이었다), 개헌 가능선을 훨씬 상회하는 의석을 가지게 될 새누리당이 대통령제를 그대로 둘지가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으로써는 달리 예견할 수 없는 이런 재앙적 상황은 단순히 문재인과 안철수라는 두 지도자의 노선 차이나 개인적 앙금 같은 데서만 비롯된 것이 아닌 것 같다.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이번의 야권 분열은 명백히 호남발이다. 그리고 원인은 매우 뿌리가 깊어 보일 뿐만 아니라, '지역 모순'이라 지칭되기도 하고 '반(反) 영남 패권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 둥, 도무지 통상적인 사회과학적 인식 틀로는 포착하기도 힘들어 보인다(혹자는 나 같은 영남 사람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손쉬운 해법이 결코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요령부득의 문제라, 우리의 정치판이 일본처럼, 아니 러시아처럼 변해가는 것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막지 못하고 있다는 낭패감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김욱 교수가 쓴 <아주 낯선 상식>이라는 책은 지금 호남발 야권 분열의 어떤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놓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 책의 표현과 인식을 빌려 말하자면, 그동안 '민주화의 성지'로 인식되어 오던 호남의 유권자들이 더 이상 그런 허울만 좋은 호남 '신성화'를 거부하고 분명하게 호남인들의 욕망을 발산하고 실현하게 해 줄 '세속화'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데서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매번 선거 때마다 몰표로 밀어주었지만 이기지도 못하면서 호남을 제대로 대접하지도 않는 소위 친노 세력들, 더 정확하게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자들'을 버리고 진짜로 호남의 이익에 복무하는 정치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호남인들의 염원이 야권을 갈라놓았단다.

(나 같은 영남 사람의 입장에서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호남 사람들은 그동안 새누리당 정권에 대한 반감 때문에 정권 교체의 유일한 가능성이라 믿고 일치단결해서 영남 개혁 세력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멀리는 참여정부 시절의 대북송금 특검 수용에서부터 가까이는 당 안에서의 홀대에 이르기까지, 돌아온 것은 거의 배은망덕에 가까운 것들뿐이란다. 사실 쉽게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들로서는 충분히 더 이상 이런 영남 개혁 세력과 같이 못 가겠다고 선언할 수 있을 법하다. 문재인 대표나 가까운 사람들이 이에 대해 사죄한다거나 다른 식으로라도 제대로 이해를 구했는지 심각하게 성찰해 볼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영남의 개혁 세력에 대해 은폐된 영남 패권주의자라거나 영남 패권주의에 투항했다는 투로 말하는 것은 도무지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어 보인다. 이 세력이 모두 잘했다거나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종의 패권주의가 아예 없었다고 말하기도 힘든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를 지역주의라는 잣대로 볼 일은 결단코 아니다. 아무리 5.18 같은 현대사의 특별한 상황을 염두에 둔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지금과 같은 시대에 민주공화국의 서로 다른 지역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도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대립과 갈등을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인지, 또 어째서 그 엉뚱한 지역 모순이라는 걸 계속해서 정치적 인식의 토대로 삼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씁쓸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 인식이야말로, 내가 볼 때 김욱 교수가 바로 그래 보이는데, 5.18은 북한에 조종된 호남인들의 반란을 영남 사람들이 나서 막는 과정에서 생긴 사건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영남 패권주의 세력의 그 말도 안 되는 마타도어에 포섭될 때에야 나올 법하지 않은가? 주위 사람들의 온갖 질시와 배척을 견디면서도 '전라도당'이라고 낙인찍힌 당에 투표해 온 많은 영남 사람들은 이제 어찌해야 한다는 것일까? 

호남이 이제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확실히 오로지 호남만이 온갖 손해를 다 보면서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걱정해야 하는 필연적인 역사적 책무 같은 것은 없다. 호남은 충분히 욕망해도 괜찮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영남의 개혁 및 진보 세력은 선거 때마다 사실상 그저 무의미한 사표만 행사해 왔다. 지역에 자신을 대변해 줄 국회의원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초 의회부터 광역 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온통 새누리당 차지다. 하지만 호남은 늘 자신들의 정치적 대변자들을 가져왔다. 적어도 지역 정치는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호남이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결국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은 호남의 일부 엘리트 출세주의자들의 은폐된 욕망의 표현이 아니면 무엇일까? 영남의 소수파 민주진보 세력은 그동안 민주적 시민성의 모범을 보인다며 부러워하고 강한 연대 의식을 느끼던 호남 사람들에게 큰 배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영남 패권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영남 사람들이다. 지금 부산이 오랫동안 가꾸어 온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부산 시장이 앞장서 허물어트리려 하고 있다. 그 상징성과 경제성이 엄청난데도 단지 집행부가 <다이빙벨> 같은 영화를 상영하는 등 시장과 정권 쪽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았다는 이유다. 부산이 변변한 산업 하나 없고 그래서 오래전부터 많은 인구가 빠져 나간 피폐한 소비 도시로 전락한 게 이런 식의 정치적 협량함과 오랜 일당 집권의 결과일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대구도 사정이 다르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영남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아직 이런 사정을, 그리고 지역주의를 통해 덕을 보는 사람들은 결국 서울에 뿌리를 내린 영남 출신 엘리트들과 지역 토호들뿐임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물론 마찬가지 이야기를 호남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호남의 낙후는 결국 지역의 일당 장기 집권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은 사회민주당의 오랜 장기 집권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호남은 왜 그런 모범을 따르지 못했나? 왜 그동안 호남은 그 유리한 정치적 조건을 이용하여 호남 지역을 더 민주적이고 더 복지 친화적이며 더 인간적인 삶의 공간으로 만들지 못했는가? 그랬다면 호남은 영남을 포함하여 전 국민들이 부러워하는 민주적 모범 지역이 되지 않았을까? 또 그랬다면 영남 패권주의 같은 허깨비는 만들어내지 않아도 좋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호남의 경우 진짜 문제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호남의 세속화나 어떤 지역주의적 '호남 정치' 따위가 아니라 호남의 더 많은 민주주의다. 호남은 더 신성화되어도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호남이 앞장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이끌고, 호남인들이 민주적 시민성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 어째서 주저해야 할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위한 몰표는 부끄러운 일도 바보 같은 일도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중도 좌우 정당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극우파 국민전선의 득세를 막기 위해 정치적 반대 진영의 정당 후보에게 곧잘 투표하고 또 그걸 '공화국 수호를 위한 투표'라고 자랑스러워한다. 지금 새누리당은 한국의 국민전선이다. 특히 호남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지역 엘리트들의 출세가 아니라 이런 위기의 민주주의를 구원하는 것이 호남의 긍지가 되면 왜 안 되는 것일까?

물론 지금까지의 제1야당의 한심한 모습은 그것대로 따져져야 할 문제이고 또 호남의 정치적 분화가 영원히 잘못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새누리당 지배 하의 단순 다수결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민주 세력의 지금과 같은 방식의 정치적 분열의 시도는 자멸의 입구다. 그런 자멸을 피하려면, 김욱 교수도 주장하듯이, 독일식 정당명부제 같은 선거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건 분열의 명분이 아니라 선결 조건이어야 한다. 그렇게 여러 정치 세력이 마음대로 분열하더라도 새누리당 같은 수구 세력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지 않아도 되는 선거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말하자면 '(미래의) 분열을 위한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소한 수도권에서만이라도 그래야 한다. 서로 감정의 골이 아무리 깊더라도, 그런 선거제도 개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일단 힘을 합쳐야 한다. 바로 그런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고리로 말이다. 그게 여러 차원에서 호남의 정치적 정체성에도 맞고 또 궁극적으로 호남에게 이익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호남의 세속화는 호남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전체의 재앙일 뿐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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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6/01/2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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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를 논할 때 우리는 그간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역사와 사상을 살펴보아 왔다.

대체로 15-16세기쯤, 흑사병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감소와 오스만 터어키의 지중해 장악으로 촉발된 원격지 무역, 그리고 증기기관의 발명 등으로 촉발된 산업화의 진척이 중세의 봉건적 농노제를 붕괴시키며 서서히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아갔다.

이 과정에서 재산권을 중심으로 하여 왕과 귀족의 횡포를 제약하려는 계몽사상과 사회계약론을 출발로 하여 자유주의가 다양하게 전개됐고, 부의 지나친 편재를 경계하는 사회주의적 정치사상, 그리고 현실에 기초한 정의와 연대적 공동체론 등 다양한 입장들이 마치 제자백가 운동처럼 펼쳐졌다.

서구 복지사상의 형성

1789년에 있었던 프랑스 혁명은 인류사에 가치지향을 제시한 대사건이었다. 세가지 색깔로 표현되는 자유(흰색), 평등(붉은색) 그리고 박애(푸른색)은 당시 근대사상의 흐름을 집대성하고, 이후를 조향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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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복지사상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연대의 정신은 거슬러올라가면 프랑스혁명의 사상에 이념적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이후 벌어진 지나친 이념적 과잉과 반동적 역류 등에서 보듯이, 구체적 현실에 착근되지 못한 채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라는 단어가 가지는 애매모호함이 내용적 규정에 어려움을 겪으며 상당기간 방황해야 했다. 그래서 프랑스혁명 사상이 구체화되는데까지 백여 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앞의 칼럼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한국, 자유주의 결핍인가, 과잉인가), 자유주의의 역사는 수많은 논쟁과 갈래를 형성하고, 평등 역시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생산력을 증대하려는 역사적 순방향과 상충하며 심각한 대립과 분열 그리고 논쟁을 일으켰다.

박애 또는 형제애 개념도 당시에는 대략적으로 상층 계층이 가난에 찌든 빈민에게 베푸는 시혜적 성격 또는 개별적 인본주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라는 추상적 수준의 가치는 노동자들이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2차 산업혁명의 진행 속에서 무르익으며, 정치 참여와 선거제도가 일반 대중에게 확대되는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지향점으로 수렴돼 비로소 존엄과 정의 그리고 연대라는 실천적 언어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자리를 잡은 세 가지의 실천적, 가치적 개념은 사회민주주의 사상적 기초이자 현대적 복지정책의 토대를 형성하게 된다.

한국 복지사상의 뿌리, 최시형

그러나 필자는 사민주의의 기초이자 복지철학의 토대로써 존엄과 정의와 연대가 어쩐지 낯설기만 하다. 이러한 철학적 방향과 기초는 기본적으로 동양과는 거리가 멀리 떨러져 있는 서양 사회가 겪은 근현대의 수백 년 간 역사를 통해서 형성되어 나온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역사적 문화적 전승 속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여전히 스테이크나 햄버거 같은 이종의 격리감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에 접한 것이 이 땅에서 벌어졌던 구한말 사회변혁의 동력으로서 동학운동이라는 실제로 벌어졌던 이야기, 그중에서도 2대 교주였던 최시형이라는 인물이다.

그를 통해 전해진 우리의 전승 속에 마치 구수한 된장찌개와 잘 익은 김치의 맛깔처럼 한국의 복지철학에 대한 근거지와 새로운 방향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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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울은 최시형은 한국 근현대사 최고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왜 그럴까?

동학을 배경으로 한 개벽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담당했던 도올 김용옥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최시형만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최시형이) 단국 이래 가장 위대한 인물이며, 간디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하필 농민전쟁의 중심인물인 녹두장군 전봉준도 아니고, 이등박문을 처단하면서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던 안중근의사, 국민투표에서 항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으뜸에 오르는 김구선생도 아니라 최시형일까.

그는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이야기하면 항상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15세에 고아가 되여 머슴살이와 제지소 직공 그리고 화전민 출신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상놈 중에 상놈이다. 그런 최시형을 한국사 최고의 위인으로 치켜세우는 도올은 역시 도올답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참으로 좋아한다. 많은 사람은 그를 단순히 지적인 엔터테이너라고 깎아 내리지만, 그의 선불교에 대한 해석을 위시해서 공중파에서 보여준 동양고전의 강의는 실히 그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임을 보여준다. 도올은 기존 학문의 형식과 내용에 속박을 받지 않는 방랑적인 그러나 혁명적인 지성인이다.

이미 기운을 다한 구한말, 서구제국주의의 거침없는 서세동점의 시대, 세상의 중심이라고 굳게 믿던 청나라마저 영국에게 힘없이 무너져 버린 아편전쟁의 역사가 살아있던 시절, 한편으로는 지배세력들의 가렴주구가 극에 달하고, 굶주림과 설상가상으로 온갖 전염병으로 이 땅의 백성들의 고통과 원통함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에 태어난 최시형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

동학의 사도 바울, 최시형

오늘은 우선 모심과 살림에 올라와 있는 그에 대한 평가의 글을 그대로 옮겨 소개한다.

“조선의 ‘사도 바울’로서 19세기 조선민중들로부터 ‘최보따리 선생’이란 애칭으로 널리 불린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7-1898, 이하 해월이라 칭함)은 1827년 3월 27일 지금의 경주시 황오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일찍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와 종이공장 직공을 지내던 그가 동학에 들어간 때는 동학교조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본격적으로 동학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하던 해인 1861년 6월경 이었다. 해월의 동학입교는 그의 운명을 바꾸는 첫번째 사건이 되었다.

그는 동학에 입도한 이래 수운의 사후 동학의 도통계승자가 되어 1898년 4월 5일(음) 관병에 체포되고 이어 6월 2일에 처형되기까지 38년 동안 동학 교단을 지켜온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敎祖가 동학의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지 불과 3년 여 만에 체포되어 처형된 이후, 동학의 도통을 이어 동학 교리의 체계화, 동학 조직의 재건과 지역적 기반의 확대, 동학 경전의 집성, 동학의 각종 제도와 종교의례의 제정, 정기적 수련제도의 실시를 통한 지도자의 양성 등 동학 교단의 모든 사업들은 해월의 손을 거쳐 이룩되었다.

그러기에 그를 일러 동학의 ‘사도 바울’이라 부른다.

또한 1894년 1월 전라도 고창(古阜)에서 시작되어 1년 여 동안 조선 전역을 뒤흔든 동학농민전쟁에서도 동학군 봉기의 조직적 기반은 바로 해월의 손에 의해 이룩된 삼남(三南) 일대의 동학 조직이 근간이 되었고, 봉기를 주도한 각 지방의 핵심 인물들은 해월로부터 직․간접적인 지도를 받고 성장한 동학 접주들이었다.

따라서 동학사(東學史)에서 해월을 빼놓고서는 온전한 논의가 불가능함은 물론, 우리 근대사에 있어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해월의 생애와 사상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할 연구과제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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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 최대 전투였던 공주 우금티 전투 상세화

그러나 지금까지 동학에 대해 연구해온 연구자나 한국근대사를 연구대상으로 삼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3년여의 활동 끝에 처형된 동학교조 수운(水雲)과 1890년대 초반 동학접주가 되어 갑오동학농민전쟁을 주도했던 전봉준(全琫準)에 대하여는 큰 관심을 가졌으면서도, 38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동학 조직을 이끌어온 해월에 대하여는 의도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방치해왔다.

해월에 대한 연구 성과를 남긴 소수의 연구자들마저도 동학농민봉기를 주도적으로 이끈 전봉준은 ‘위대한 인물’이지만 전봉준의 거사를 비난하고 봉기 그 자체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진 해월은 ‘비겁한 인물’인 것처럼 묘사하는 데 앞장 서 왔다.

그 결과 해월은 우리들에게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 역사 발전의 방향을 거스른 ‘반동적(反動的)’ 인물로 각인되어 버렸으며, 대부분의 연구자들과 국민들은 누구도 그 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자 하지 않았다.

이처럼 해월에 대한 이해가 매우 피상적일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40여년에 걸친 ‘도망자’생활 때문에 관련 자료가 없어지거나 흩어져 버린 때문이며,

둘째는 동학하면 최제우와 전봉준이요, 생활사속에서 민중들에게 끼친 동학사상과 동학교단의 역할에 대한 관심보다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요,

셋째는 갑오년이후 지속된 탄압 속에서 동학이 사회변혁운동에서 종교적으로 윤색되거나 신비화되어 민중들의 품에서 해월의 역할이 특정 교단의 무지랭이 교조로 둔갑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해월에 대한 올바른 연구를 위해서는 지나간 시대에 ‘저 높은 하늘로 신이 되어 올라가 버렸던 그를 우리들과 같은 사람의 모습을 가진 한 인간’으로 끌어내려 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보따리 하나 달랑 메고, 기적적인 교세 확장

나는 그의 위대함을 우선 그의 별명 ‘최보따리’에 있다고 본다.

창시자 최제우 주위에는 걸출한 인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연히 시대에 참여할 수 없던 불우한 잔반(몰락한 양반), 시대를 걱정하는 지방의 양심적 관리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최제우가 대구에서 참수형을 당한 후에는 대부분의 제자들은 박해를 피해 은거에 들어간다. 예수의 십자가 순교 후 제자들의 행적과 비슷했으리라 추측한다.

천주교의 평등사상에 자극받아 시천주라는 동학을 주창했던 수운 최제우가 위에 언급하였듯이, 주위의 학식 많고 지위 있던 제자들을 제치고 최시형을 제2교주로 지명한 점은 참으로 놀랍고 신비롭다.

동학의 요점인 천지개벽 후 오는 평등세상은 상놈, 평민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주인이 되는 것이니,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상놈 속에서 지도자가 나와야 개벽이 이루지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되는 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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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1대 교주 최제우, 2대 교주 최시형, 3대 교주 손병희. 몰락한 양반 출신인 최제우가 자신의 후계자로 상놈인 최시형을 선택한 것이 놀랍다. 최시형의 둘째 사위였던 손병희는 동학농민전쟁 이후 붕괴된 동학의 재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최시형은 그러한 결정을 한 수운의 기대에 보답하듯이, 개나리 보따리 짐하나 달랑 매고 삼남 일대를 하루도 쉬지 않고 풍찬노숙의 고생을 마다않았다.  죽을 고생을 수 없이 넘기면서 와해되었던 동학의 조직을 재건해내어 동학혁명이 일어나는 시점에는 백 만이 넘는 엄청난 신자의 머리수를 만들어 낸다. 이는 한국사뿐만 아니라 전 인류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사건이다.

예건데 그 시점에서 수 천년 역사를 지닌 불교의 신자수가 기십만에 지나지 않았고, 서양교단의 물적 지원을 받았던 천주교신자도 십만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불과 30여 년 만에 1000만 조선인구 중 백 만이 넘는 사람들이, 특히나 그의 주활동 무대였던 삼남의 농민 태반이, 동학을 신봉하고 지지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를 단순히 당시 시대상황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대상황과 더불어 최시형 개인의 초인적인 노력, 그리고 최제우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발전시킨 그의 위대한 사회변혁사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는 참으로 한국사의 거대한 위인이다.

온 우주가 한울님…그러니 “네 이웃을 하늘처럼 섬겨라”

해월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 선생의 시천주(侍天主)의 사상을 발전시켜 삶의 실천 속에서 마음에 모신 원형적 가능성으로서 한울님을 정성껏 키워 자신이 한울님과 닮도록(人乃天, 사람이 곧 한울이다)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쳐 가르친다.

그리하여 스승이자 교주였던 최제우의 시천주라는 선언적 개념은 최시형에 의해 실천적인 양천주(養天主)라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마치 서구에서 자유-평등-박애가 역사적 실천을 통해 존엄-정의-연대로 발전하였듯이, 한울님을 정성껏 모시고 실천을 통한 노력의 과정에서 그는 인식의 범위를 넓혀가며 드디어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는 위대한 선언에 이른다.

불가에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선언하며 생명의 고귀함을 일찍 설파하였고, 서양의 근대계몽시대 이후 천부적인 인권의 존엄을 이야기하였으나, 내용의 규모나 깊이에 있어서 사인여천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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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남대문시장의 모습.

예컨대 중인의 집안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맏며느리를 한울님이라 칭하고, 아이들도 이미 한울님을 마음에 모시고 있는 까닭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때려서는 아니 된다고 가르친다.

이 사상은 현재 유명한 시인의 시귀절 “꽃잎으로도 아이를 때리지마 !” 로 되살아난다. 참으로 놀라운 생명존중사상, 진일보한 천부인권사상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더 나아가 그는 새가 우는 소리도 한울의 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도 한울의 소리 (天賦聲) 이라 이르며 온갖 사물에 한울님의 뜻과 혼이 깃들어 있음을 설파하고, 밥 한그릇에서 온 천지의 뜻을 읽어낸다.

이는 다시 장일순선생의 사상 ‘풀한포기에서 온 우주를 보다‘ 로 부활하여 생태운동, 한살림운동의 기초가 된다.

이처럼 양천주의 사상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는 인식을 통하여 물물천(物物天), 사사천(事事天)의 경지를 넘어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三敬사상으로 이르게 되면서 오늘날에도 전혀 손색없는 주기일원적 인신론체계, 생명사상, 평등의 인권사상 그리고 환경생태운동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한울님은 당위로서 관념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궁극적 동인으로, 법칙으로,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규범으로서, 사람의 마음속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온세상 만물들의 제 현상과 사건과 계기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을 한울이 한울을 먹는다고(以天食天) 해월은 표현한다. 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운 가르침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죽어서 영혼이 따로 있고 조상신과 귀신이 존재하는 따위의 이야기는 하등 유의미한 사안이 아니다.

한울님의 작용은 남녀간에는 애정을 통해 자식에게로 이여지고, 사람들간에는 사회적 실천행위를 통하여 역사를 관통한다고 해월은 판단한 듯하다.

그가 주창한 향아설위법(向我設位法), 즉 귀신과 벽을 향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향해서 제사를 지낸다는 이론은 성리학에 기반한 조선왕조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인 제사의식 속에서 지금까지 행해져 왔던 규범과 강제의 모든 틀을 뒤엎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인간의 주요한 문화적 유산은 제의에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향벽설위는 저 벽쪽에, 내 시선의 저쪽, 시간적으로는 사후에만 천국이 있고, 약속의 땅이 있고, 행복된 낙원이 있다는 식의 구조이다. 자기 꿈과 모든 희망을 미래에로 저 벽쪽에 갖다 놓고 오늘을 견디고 희생하는 내용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향아설위(向我設位)는 나와 현재를 중심으로 잃어 버렸던 오늘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사드리고 있는 나, 우리 그리고 한 사회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울님, 우주생명 등이 존재하며, 그래서 지금 여기에 낙원도 행복도 미래도 현재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상이 향아설위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돕다”

이러한 깨달음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서 집단의 공동체로서 동학교도들에게 생활의 주요한 지침을 함께 공유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우선 눈에 띠는 것은 남녀의 차별을 금지하고 여성을 귀히 존중하며 과부의 재혼을 권장하였던 일이다. 여성들을 위하여 특히 임신부를 위한 내칙과 내수도문을 보급하여, 심고(기도)하는 법, 위생과 환경문제를 다루고, 태아의 중요성과 섭생, 정서, 건강관리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구한말 당시 전염병이 창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통하게 동학교도들은 전염병조차 피해 갔다고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동학교도들은 위생과 환경의 관리가 철저하게 생활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인습적 차별에서 해방을 선언하여 칠반천인(七般賤人)으로 분류되었던 승려, 광대, 기생, 무당, 점쟁이, 갖바치, 백정 등을 두루 포용하고 차별을 없이하여 후에 갑신개혁당시 천민해방의 법령을 만드는 물꼬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창시자 최제우가 살아있던 당시 동학을 비판하고 배척하였던 서원의 통문 기록(동학배척통문 1863)을 보면 “귀천이 같고 등위의 차별이 없으니, 백정과 술장사들이 함께 모이고, 남녀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포교소를 세워 과부나 홀아비들이 모여들며, 재물과 돈을 좋아하여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도우니(有無相資) 가난한 자가 기뻐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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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유무상자’는 우리 속에 내려온 사회적 연대 사상이다.(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wedish2014&logNo=22041853969…)

이후 동학교도들의 생활에 지침이었던 유무상자는 현재 회자되는 공유경제 또는 돌봄경제의 원형으로 우리의 역사에 실제로 행하여졌던 살아있는 이야기이며, 물질 중심적이며 자본제적인 현실을 떠나 사인여천의 구체적 실천의 과정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갔던 진솔한 수평적 상호관계에 대한 사회적 기록이다.

세상의 만물과 더불어 하늘과 사람과 어울려 살아간 최시형은 머무는 곳마다 과실나무를 심고 한시도 쉬는 일없이 볏짚을 꼬거나 밭을 일구었다 한다.

사인여천과 유무상자의 정신, 얼마나 위대한 사상인가! 어느 타민족의 역사에 이만한 감동과 깊이를 담아낸 서술적 내용이 있었는가 ?

우리 안의 복지사상

현재 복지선진국을 이루는 북유럽국가들의 등장 배경에도 중세를 관통했던 바이킹의 전승이 숨어 있다.

해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리는 바이킹에게는 모두가 함께 협력하여 힘을 모아내야만 생존이 가능했던 가혹한 삶의 체험적 역사적 기록이 있었다.

행여나 혼자 잘난 척하고 혼자 독식을 하는 순간 바이킹의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근세사에 진입하면서 서쪽으로는 강대해지는 유럽의 대륙세력과 동쪽으로는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는 슬라브 민족의 사이에서 노르딕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서로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는 선택뿐이었다. 매우 소중한 예화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구한말처럼 안팎에 중층적으로 얽힌 복합적 위기상황에 다시 직면하여 있다.

한가하게 중부담-중복지 따위의 철학도 없고 마음도 담기지 않은 정치적 언술이나 기능적 접근으로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손쉽게 극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력은 모든 국민 개인 개인을 하늘처럼 소중히 여기면서 가능한 정책을 모색하고, 시민사회는 서로 간 형편을 살펴가며 부족한 것을 함께 채워가고 감싸 안는 동학적 사상을 기본으로 삼고 계기적으로 출발해야 한다.

더 나가서 복지체계의 심각한 한계에 봉착한 서구사회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드는 마련해서 동학의 사인여천과 유무상자의 정신이 21세기 동서양의 만나는 새로운 융합이며 중체서용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목, 2017/05/0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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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타임스 단독 인터뷰, 트럼프 “사드 비용 한국이 내라” – 한국 대통령 후보들의 사드 비용 거절에 반발 – 사드는 한국 보호 목적, 비용 한국이 부담해야 주장 – 다음 주 한미자유무역협정(Korus) 재평가도 기로 지난 4월 28일 취임 100일을 맞이한 트럼프는 ‘워싱턴 타임즈‘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이 배치하는 미사일 방어체계(THAAD)의 비용부담 요구에 대해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이 “불가능한 요구”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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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5/0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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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에 걸친 대선 후보 토론회. 언론들은 토론회가 끝날 때마다 대선 후보들의 발언을 요리조리 따져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다음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거짓을 사실인 양 그대로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토론회에서 되풀이된 후보들의 거짓 발언을 모아보았다.

강성 귀족 노조 때문에 기업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홍준표 후보 (4월 13일, 23일, 25일 토론회)

▶ 홍준표 후보가 인용했던 대한상공회의소 자료를 보면 강성 노조 문제를 해결해야 국내 투자가 활성화된다는 말이 없다. 국내 투자를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 ▲역차별 해소 ▲U턴 기업 지원 ▲기업가정신 고취 등 4가지를 꼽고 있다. 구체적 세부 사안으로 보면, 투자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에 대한 진입 규제를 완화하는 등 기업 규제 수준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외국인 투자자에 비해 한국인 국내 투자가 역차별받고 있다며 국내 기업에 대한 혜택 제공을 강조했다.

또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해 12월에 낸 ‘2015년 해외직접투자 경영분석’을 보면, 해외 투자목적을 설문조사한 결과 ‘현지시장 진출’이 목적이라는 법인 수가 46.4%로 가장 많았고 수출촉진 23.3%, 저임금 활용이 13.6% 순이었다. 노조에 대한 언급은 아예 설문에 들어있지 않았다.

※ 관련기사 :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강성귀족 노조 때문?


한미 국방장관 회의 같은 상황변화가 있어서 사드입장이 바뀌었다. 5차 핵실험도 상황변화다.

안철수 후보(4월 13일, 25일 토론회)

▶ 안철수 후보가 상황이 바뀌었다고 언급한 지난해 10월 20일 한미 국방장관은 연례 안보협의회이다. 그러나 당시 성명에 사드에 관해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주한미군의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약속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7월 8일 한미 양국이 공동발표한 대로 사드 배치를 지체없이 진행하기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또 지난해 7월 8일 류제승 국방정책실장과 토마스 밴달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사드 배치를 결정한 이후 한미 양국간에 사드에 관해서는 어떤 중대한 변화가 없었다. 그동안 변화가 있었다면 사드 배치 지역이 성주 성산포대에서 성주 롯데골프장으로 바뀐 것, 지난해 9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실시한 것, 그리고 사드배치에 대한 찬성여론이 처음보다 높아진 것 밖에 없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는 5차 핵실험 이후인 지난해 11월13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관련기사 : 한미국방장관 회담이 상황 변화?


OECD 공공부문 고용 통계에서 한국은 공기업이 빠져있어서 낮게 나온 것이다.

안철수 후보 ( 4월 25일, 28일 토론회)

▶ OECD의 공공부문 고용 통계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OECD에서 말하는 공공부문 고용은 일반정부와 공기업을 모두 합한 개념으로 일반정부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회보장기금 그리고 정부 당국에 의해 통제되는 각종 기관과 비영리기관이 포함되고 공기업에는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기업들이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OECD의 공공부문 통계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공기업에 고용된 직원까지 포함해 나라별로 같은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 맞다.

당시 우리나라는 ILO에 제출한 고용통계가 없었기 때문에 행정자치부가 OECD가 요구한 기준에 맞추어 각 부처에서 자료를 취합해 제출했다. 여기엔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공기업과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지방공기업이 모두 포함돼 있다. 한국만 다른 기준으로 작성된 통계가 아니다.

※ 관련기사 : 공공부문 고용 OECD 통계에서 우리나라는 공기업이 빠져있다?


일심회 사건에 문재인 사람이 많아서 비서실장 때 국정원에 압력 넣었다.

홍준표 후보 (4월23일, 25일 토론회)

▶ 2006년 11월 1일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김승규 사퇴를 둘러싼 의혹들’이란 이 글에서 “일부 비판론자(some critics)들은 노 대통령이 10월 25일(미국 현지시각)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김 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고 말한다”고 적었다. 이 글에서 언급된 일부 비판론자들이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었다.

또 김승규 전 원장은 위키리크스 문서가 공개된 직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청와대 일부 참모들은 간첩 수사를 하면 북한을 자극해 화해 무드를 깰 수 있다고 우려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참모들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김 전 원장은 대통령이 일심회 사건 수사에 압력을 가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김 전 원장은 2012년 5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수사 도중 청와대로부터 ‘수사를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언질이 많이 왔다, 청와대 참모 대부분이 반대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문 전 실장은 아니다. 그분은 합리적인 데다, 법률가(변호사)이다. 어떻게 수사를 반대할 수 있겠나”고 밝혔다.

시기적으로도 김승규 전 국정원장이 사퇴한 시점은 2006년 10월로 문재인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사퇴한 2006년 5월 이후다. 문 후보는 2007년 3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복귀했다.

▶ 관련기사 : 일심회 사건에 문재인 사람 있어 국정원에 압력넣었다?


우리 국방백서에 북한이 주적으로 돼 있다.

유승민 후보(4월 19일), 홍준표 후보 (5월 2일 토론회)

▶ ‘주적’개념은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실무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등장했다. 당시 박 대표는 “서울이 여기서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만다”는 공격적인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국방백서에서 처음 사용됐다. 이양호 전 국방장관 시절 발간한 ‘1995년 국방백서’는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라는 문구를 넣어 ‘주적’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2004년 참여정부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 재임 때 발행한 ‘2004 국방백서’에서 주적 용어가 삭제됐다.

정부가 2016년에 발간한 국방백서 제2절1항 국방목표에는 북한이 아닌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취재 : 최기훈, 조현미, 강민수, 연다혜

목, 2017/05/0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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