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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너져야 마땅한 ‘욕망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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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너져야 마땅한 ‘욕망의 피라미드’

익명 (미확인) | 금, 2017/09/08- 11:23

무너져야 마땅한 ‘욕망의 피라미드’

‘사법 관료화’ 법원 개혁 화두로…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 축소ㆍ법관 근무평정제도 개선 절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올해 초, 법원행정처가 사법부 고위층의 눈에 거슬리는 이들의 명단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이 터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세력이 법원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법원 내부, 그것도 대법원장 이하 사법부 고위층 자체라는 뜻이 된다.

 

의혹의 진상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배후로 의심되는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진상 규명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양 대법원장은 전국의 법관 대표들이 모여 ‘추가 조사를 실시하자’고 요청한 것조차 석 달째 묵살하고 있다.

‘제왕적 대법원장’으로 불릴 만큼 많은 권한을 지닌 대법원장이 휘하의 법원행정처를 통해 법관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그로 인해 법관들이 상사의 눈치를 보고 지휘체계에 복종하는 공무원을 닮아간다. 이를 지칭하는 ‘사법 관료화’가 법원 개혁의 화두가 되었다.

 

일사불란한 공무원 조직처럼

 

법관 인사제도 등을 바꿔 사법 관료화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사회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2011년 취임한 양승태 대법원장 직전인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도 사법 관료화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당시 법관 근무평정 때문에 판사들이 법원행정처나 평정 권한을 가진 법원장 등을 의식했다. 그렇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을 중시했다. 당시엔 나름 대법관 구성도 다양해 대법원 자체가 여러 견해가 갑론을박하는 곳이었다. 그 덕에 사법부 분위기는 일사불란한 공무원 조직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들어서며 이런 법원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제도 면에서 이전과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행정권을 쥔 대법원장의 생각과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자 사법 관료화가 심각해졌다.


지난 3월 전체 법관 3천여 명 중 502명이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김영훈 판사가 실시한 설문에 응한 법관 가운데 88%가 ‘대법원장과 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대하면 보직이나 근무평정, 사무분담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국민은 법관들이 사장이나 상사의 눈치를 보는 일반 직장인처럼 대법원장이나 법원장의 눈치를 보며 판결할 것을 기대한 적이 없다.

 

법원도 일반 직장처럼 승진 시스템과 피라미드 구조로 운영된다. 지방법원 합의부 배석판사→지방법원 단독판사/고등법원 합의부 배석판사→지방법원 부장판사→고등법원 (합의부) 부장판사→법원장. 이 순서는 승진을 의미하고, 공무원에 비유하면 직급의 위계서열을 뜻한다. 특히 고법 부장판사는 자리 수가 적고 법원장직은 더 적다. 피라미드 구조의 윗부분이다. 대법관이나 법원장이 되려면 고법 부장판사까지는 일단 올라가야 한다. 고법 부장이 아닌데 법원장이 되거나 대법관이 되는 경우는 없다. 박시환 전 대법관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고법 부장판사가 되길 기원하는 지법 부장판사들은 인사권을 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의중을 평소보다 더 살핀다는 게 사법부 내 정설이다.

 

그래서 그동안 고법 부장판사 제도를 없애고, 지법 판사 인사와 고법 판사 인사를 구분하자는 개혁 방안이 나왔다. 법관 인사를 법원 심급별로 이원화하는 것이다. 지법 판사들은 지법에서만, 고법 판사는 고법에서만 근무하게끔 하여 피라미드 승진 구조를 끊어내자는 주장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전인 2010년 법관인사규칙 제10조 제정을 통해 이원화 방안이 도입됐다. 이후 6년 넘게 이원화 방안은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 법관 인사 이원화 이전의 인사 방식대로 고법 판사가 지법 부장판사로 발령되고, 지법 단독판사가 고법 배석판사로 보임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법관 정기인사에서 고법 판사가 된 72명 중에서도 44명은 과거 방식대로 된 이들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원화 방안을 더 추진할 의지가 없고 폐기할 것이라는 의심까지 받았다. 법관들이 피라미드 구조에서 승진을 생각하는 것을 끊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법관 인사 이원화는 흔들림 없이 시행돼야 한다.

 

법원행정처의 탈법관화 필요하다


그와 함께 법원장 선임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다른 법관들처럼 법원장도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그래서 법원장이 되려면 대법원장과 사이가 틀어져서는 안 된다. 법관들이 대법원장을 의식하게끔 만드는 구조다. 그래서 법원장 자리를 승진의 한 단계로 취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정 수준의 경험을 가진 법관들 중에서 순번제로 맡거나 각 법원의 법관들이 호선하면 된다.

 

법원은 재판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법원을 운영하려면 재판 말고 행정 업무가 꼭 필요하다. 법관의 임용이나 전보 발령 등 인사 업무, 재판 관련 제도 정비, 법관의 비위나 진정 사건의 조사 같은 법관 윤리 업무 등 재판 본연의 일과는 별개인 행정 업무가 있다. 보통 사람들이 법관을 떠올릴 때 그들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다. 법관들 중에는 이런 일에 오랫동안 몸담는 이가 적지 않다.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법관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법관인가, 행정공무원인가?

 

행정 업무는 개개인의 독립과 양심, 자유로운 토론 등 법관에게 필요한 자질들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라 일사불란한 집행이 필요한 영역이다. 일반 공무원들이 부서장의 지휘를 받듯이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법관들도 각 부서의 위계구조에 따라 상급자의 지휘를 받는다. 법원행정처의 심의관은 실장의 지휘를, 실장은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휘를, 이들 모두는 법원행정처장의 지휘를 따라야 한다. 이들 모두는 종국적으로 법관 인사권을 쥔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는다. 법관 블랙리스트도 그런 지휘체계에 따라 만들고 관리돼온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에는 입법과 예산 확보를 위해 국회의원들과 접촉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예산을 따내야 하고 입법 통과나 저지를 위해 정치인과 접촉해야 하고 그들과 친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로비스트가 되어야 한다. 법무부의 탈검찰화가 추진되듯이 법원행정처의 탈법관화도 필요하다.

 

법원행정처를 탈법관화한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독점하고 법원행정처를 통해 전국 법원과 법관들을 통제하는 구조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법관회의를 활성화하자는 방안이 제기된 적이 있다. 지금 대법관회의는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아 마련한 안건을 추인하는 데 불과하다.


결행되지 못한 참여정부 시절 개혁안

 

그러나 대법관회의가 실질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설령 활성화되더라도 그 정도로 사법행정권 집중의 폐해를 해소하기 충분치 않다. 그래서 전국법관회의를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를 대신하는 사법행정 의사결정기구로 만들자는 방안이 나왔다. 법관들의 인사 업무 역시 전국법관회의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재판 제도 가운데 국회에서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없는 대법원 규칙 등은 전국법관회의에서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대법관회의의 활성화보다 사법부 내부의 민주화를 더 증진하는 안이다. 참여정부에서도 두 방안이 개혁 방안으로 검토됐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결행되지 못했다.

 

사법평의회 또는 사법행정위원회 같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있다. 헌법을 개정해서 국회 등이 지명하는 이들로 구성된 기관이 대법원장이 가진 사법행정권을 행사하게 하자는 것이다. 몇몇 유럽 국가에서 시행되는 방식이다. 사법부 내 민주화를 뛰어넘는 사법 민주화를 지향하는 안이다. 하지만 재판에 대한 외부의 간섭 통로로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반론에 부딪히고 있다.

 

법관들의 근무 성적을 매기는 근무평정제도 역시 사법 관료화를 부추긴다. 2012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시절 서기호 판사가 근무평정제도에 의해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례가 있다. 대통령에 비판적인 메시지를 남긴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던 법원장 등 고위층이 근무평정제도에서 최하 등급을 매겨 법관 신분을 박탈한 사건이었다.

 

근무평정제도는 다른 문제도 일으킨다. 사건의 파기율이나 상소율 같은 지나친 통계 위주의 평가 요소 때문에 법관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그래서 법관들이 상급심에서 파기될 수 있는 새로운 논리를 만들거나 판례를 제시하는 데 소극적이 된다. 상소율뿐 아니라 화해 조정률이 높으면 그 또한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보니, 법관들이 억지로 화해 조정을 강요하는 일도 벌어졌다. 근무평정제도도 손봐야 한다.

 

김명수 후보자 지명의 의미

 

법과 원칙을 지키며 소신 있는 행동과 판결을 한 이들이 대법관이나 대법원장 같은 법관으로서 최고의 영예가 될 만한 자리에 임명되게끔 하는 것도 사법 관료화를 막는 상징적이면서 강력한 조치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에 지명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선택이다. 과거 이용훈 대법원장이 박시환, 전수안, 이홍훈, 김지형 같은 이들을 대법관으로 제청한 것만큼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일선 법관들에게 인권과 소신, 약자 보호와 다양성 존중이 사법부의 사명임을 이미 강력하게 보여주었다. 김명수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된다면, 사법 관료화를 완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언제까지 대법관 제청을 대법원장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다행히 참여정부 시절 대법관후보제청자문위원회 제도가 도입됐고, 지금은 후보추천위원회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운영에선 대법원장의 의중을 별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관들에 의한 선출이나 국회의 대법관 지명 등의 방법도 거론된다. 그렇게까지 파격적이지는 않더라도 대법원장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검토 대상자를 구체적으로 제시 못하게 하는 등 규칙 개정이 필요하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바꿔줄 것으로 기대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 이 글은 <한겨레21> 1178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원문보러가기]

* 이 글은 참여연대-한겨레21 <양승태 대법원 평가와 차기 대법원 과제 모색 좌담회 : 우리는 어떤 대법원장을 기대하는가> 공동기획 중 하나로 마련되었습니다. [보러가기]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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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폐기 촉구 기자회견

일시 : 2017년 11월 3일(금) 10시30분 / 장소 : 금융위원회(광화문 정부청사)앞

 

SW20171103_기자회견_금융위원회건강관리서비스가이드라인폐기촉구

 

[기자회견 개요] 

-사  회 :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

-여는말 : 김정범(무상의료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발  언

변혜진(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

이경민(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기자회견문 낭독 : 김경자 (무상의료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민주노총 부위원장)

 

[기자회견문]

건강관리서비스(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은 의료 민영화!

금융위원회는 박근혜 적폐를 계승하는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 즉각 폐기하라!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계승하는 것 -

 

11월 1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은 과거 이명박 정부가 시작하고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대표적 의료 민영화 정책 중 하나인 건강관리서비스와 내용이 완전히 같다. 건강관리서비스는 식이습관 교정, 운동 요법, 금연, 금주 등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는 것을 뜻한다. 

 

이 건강관리서비스를 민간기업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려고 했던 것이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다. 건강관리서비스는 사실상 내용이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공공기관이나 의료인이 아닌 민간 기업이 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신규 법률 제정을 통해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9차 투자 활성화 대책 이후 법률 제·개정 없이 손쉬운 가이드라인 제정을 통해 강행하려 했다. 하지만 탄핵 정국으로 가이드라인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 나온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계승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간보험사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제공 비용을 전액 지원할 수 있다. 또 건강관리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 민간보험사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스마트폰 앱을 통해 가입자의 생활습관 정보(운동량 식이습관 등)와 질병 정보(건강검진 수치, 혈당 수치 등)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건강관리 노력의 목표치를 달성하는 경우(목표 운동량 달성, 목표 당화혈색소 수치 달성 등) 보험료를 할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 생활습관 정보와 질병 정보가 민간보험사에 넘어가게 된다. 가이드라인 제17조(보칙)에 의하면 보험회사는 이 정보를 보관하고 보험료율 산출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정춘숙 의원이 폭로했듯, 이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진료정보를 민간보험사에게 유출한 바 있다. 심평원은 2014년부터 2017년 8월까지 KB생명보험, 삼성생명, 삼성화재, 교보생명 등 민간보험사 13곳에 진료정보 총 87건, 1억 850만 명분을 제공했다. 보험사는 이 데이터를 위험률, 보험료 산출 등의 목적으로 사용했다. 건강관리서비스를 통해 축적한 생활습관 정보는 진료정보와 결합되어 개인 보험료율 산출에 사용될 것이다. 또 이런 정보는 보험사뿐만 아니라 웨어러블 기기를 만들거나 시스템을 운용하는 IT․통신 기업에게도 유출될 위험이 있다.

 

이렇게 민간보험사가 건강관리서비스를 통해 축적한 ‘생활습관 정보’와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의 ‘진료정보’, 그리고 질병관리본부와 국립암센터가 가진 ‘유전정보’를 모두 통합하여 보건복지부가 구축하려는 것이 바로 보건의료 빅데이터다. 민간보험사와 국민건강보험 자료의 연계는 이미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작성한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연구’에 명시되어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위한 예산으로 115억을 책정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험료가 높게 산출될 수밖에 없다. 가이드라인에서는 보험료를 할증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으나, 일본에서는 건강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보험료를 할증한다. 그리고 실손보험료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건강관리 노력이 떨어지는 사람만 계속 보험료가 비싸질 것이다. 

 

건강관리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직업, 노동환경, 주거 그리고 소득은 한 사람의 건강을 결정하는 주요한 사회적 요인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은 운동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적은 소득의 사람들은 오염이 덜 된 비싼 유기농 식품을 사서 시간을 들여 요리해 먹기 힘들다. 결국 시간과 돈을 자기 의지대로 쓸 수 있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사람들만이 제대로 된 건강관리를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건강 격차마저도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문재인 정부의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은 소득계층별 건강 격차를 심화시키고 사회 불평등 양산을 합법화하는 정책이다.

 

한편, 박근혜 정부는 건강관리서비스의 의학적 효용성을 입증해주기 위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게 바로 현재 보건소에서 진행 중인 ‘모바일 헬스케어 시범사업’이다. 문재인 정부는 당선 후에도 이 시범사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게다가 박근혜 식 행정 독재의 일환이었던 '가이드라인' 제정을 통한 제도 변화를 추진하는 이번 문재인 정부의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은 박근혜의 편법 행정 방식을 그대로 계승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민간보험사의 이해 충족을 위한 이번 가이드라인은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개인 건강정보를 민간보험사와 IT․통신재벌에게 제공하는 매우 위험한 문재인 정부의 '안내서'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금융위원회는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을 즉각 폐기하라!

보건복지부는 ‘모바일 헬스케어 시범사업’을 즉각 중단하라!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계획’을 당장 공개하고 전면 재검토하라!

문재인 정부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

 

2017년 11월 3일

의료민영화 저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가난한이들의 건강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기독청년의료인회, 광주전남보건의료단체협의회, 대전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서울YMCA 시민중계실,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성남무상의료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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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11/0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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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의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 대상 자산 확인,
유명무실했던 금융실명제 재정립의 기회 되어야

금융기관의 책임 회피, 금융실명법 위반에 대해 엄정 처벌해야
차명계좌 차등과세 시한 목전, 금융·과세 당국의 소극적 태도 규탄
조준웅 특검의 직무유기 의혹, 이건희 비자금 조성 경위 등 밝혀져야

 

오늘(3/5),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이건희 차명계좌의 과징금 기준 자산파악 TF(팀장 : 원승연 부원장, 이하 “금감원 TF”)’가 금융실명제 시행일인 1993.8.12.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하 “이건희”)의 차명계좌를 다시 추적한 결과, 61억 8천만 원의 자산을 잠정 확인했다(https://goo.gl/w7Ri26)”고 밝혔다. 이는 2008년 조준웅 특검이 발견한 1,197개의 차명계좌와 2018.1. 금감원이 추가 발견한 32개의 차명계좌 중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 개설 계좌 27개에 들어있던 차명주식의 실명제 실시일 당시의 가액이다. 법제처 유권해석에 따르면, 이건희는 차명주식을 인출하기에 앞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실명법”) 부칙 제6조의 규정에 따라 과징금을 납부하여야 하며, 금융기관은 1993.8.12. 당시 이들 계좌 내 금융자산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원천징수해야 한다(https://goo.gl/gW7RBt). 이번 금감원 TF의 이건희 차명자산 가액 확인은, 그동안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금융실명제의 구태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고, 금융시장의 투명성을 도모하고, 사법·경제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토대를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4개 금융기관은 그간 금융실명법을 위반하고, 금융감독당국에 노골적으로 거짓 보고를 해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제처 유권해석 이후, 금융회사들은 ‘25년 전의 금융거래 자료를 보유한 금융회사가 거의 없고, 당시 이건희 (계좌 관련) 자료도 전부 폐기했다’며, 과징금 부과가 힘들다는 입장을 취했다(https://goo.gl/tCWUfZ). 그러나 2018.2.19. 금감원 TF 출범 2주 만에 금융실명제 실시 당시의 계좌 잔액이 밝혀진 것이다. 주식 등의 거래현황이 자본주의의 근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금융회사들이 오직 삼성만을 위해 이토록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자행한 것 아닌지 의심 가는 대목이다. 이러한 금융회사들의 행태는 금융실명법 부칙 제5조(기존금융자산에 대한 실명확인), 제6조(실명전환자에 대한 과징금부과)를 위반한 것으로, 특히 실명확인 의무와 관련하여서는 그동안 금융실명제 관련 업무준칙이 일부 모호한 점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여 그 정상을 참작할 수 있다고 해도, 과징금의 부과와 관련하여 관련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국민과 금융감독당국을 기망한 부분은 용납될 수 없는 부분이다. 금융감독당국은 금융실명법 부칙 제6조 제3항에 따라 이들 금융기관에 과징금에 대한 10% 가산금과 함께 무거운 징계조치를 내려야 한다. 따라서 금융회사들은 더 이상 꼼수를 부리지 말고, 이건희 차명계좌 관련 조사에 성실히 협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차명계좌 자산 파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건희 차명계좌 과세에 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금융·과세당국의 태도도 문제다. 김도인 금감원 부원장보는 오늘 브리핑에서 금융투자회사의 허위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일축했다(https://goo.gl/NG1DyZ). 그러나 이는 감독당국의 책임을 유기하는 면피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세 차등과세와는 달리 과징금 부과는 전적으로 금융감독당국의 소관이고, 현재 금융투자회사들이 고의적으로 과징금 부과에 저항한 법률은 금융관련 법률인 금융실명법이기 때문이다. 

 

소득세 차등과세와 관련해서도 금융당국의 역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금융실명법 제5조에 따라 부과해야 하는 이건희 비실명재산의 이자 및 배당 소득에 대한 차등과세의 2008.1. 귀속소득 과세 시한이 2018.2.10.로 도과했고, 2008.2. 귀속소득 과세 시한은 2018.3.10.로 목전에 다가와 있다. 이건희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는 금융위원회, 금감원, 국세청 등 금융당국의 전방위적 공조가 없으면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과세당국은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이제라도 금융실명법에 따른 과세조치 이행에 온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17.5.31. KBS <추적 60분>에서 삼성 총수일가 자택 공사대금 관련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후, 참여연대는 이건희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및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https://goo.gl/BYuWFG). 그리고 언론 보도 후 9개월 만인 오늘, 과징금 부과 대상 이건희 차명계좌 잔액이 밝혀졌다. 금융위원회의 잘못된 행정집행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법·제도의 실효성을 되찾은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차명계좌 자산 발표는 도명·허명 뿐 만 아니라 명의인과 실제 소유주가 일치하지 않는 차명계좌 또한 금융실명법상 위법임을 확인한 계기임이 틀림없다. 이는 2008년 조준웅 특검이 애초에 명명백백하게 밝혔어야 할 사안으로, 10년이 지난 이후 참여연대의 고발로서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금융실명제가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앞으로 가야할 길,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 그동안 제기되어 온 금융실명법상 과징금·소득세 등의 부과 문제뿐만이 아니라, ▲이건희의 차명계좌를 통한 조세포탈을 알고도 묵인한 조준웅 특검의 업무상 직무유기 의혹, ▲이건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계열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경위에 대해서도 그 전모가 낱낱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또한 ▲금융기관과 금융당국은 더 이상의 책임 방기 및 핑계대기에서 벗어나 금융실명법의 준수 및 재정립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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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3/0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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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국정원 개혁 발목 잡지 마라

자유한국당의  역할은 적폐청산 방해가 아니라 반성과 협력
국정원의 수사권, 수사기관 이관은 정보기관 개혁에 필수적

 

자유한국당은 어제(8/ 7)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을 조사 중인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활동과 관련, 가칭 '국정원 개악 저지 TF'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특히 국회정보위원장도 맡고 있는 자유한국당 이철우 의원은 국정원 적폐청산 TF의 이명박 정부시절 ‘대선 댓글사건’ 개입 확인에 대해 “정치보복이 될 수 있다”며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정말 가당치 않은 움직임이다. 

 

과거 국정원의 위법행위를 분명히 확인하고 이를 바로 잡는 것은 국정원 개혁의 출발로 당연히 해야 할 일다 . 특히 국정원이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알파팀 등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 30개를 운영했다는 국정원 적폐청산 TF의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있었지만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엄청났음이 확인됐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 정보기관에서 그 세금을 얼마나 광범위한 위법행위에 사용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먼저 독려하고 정부기관에게 스스로 밝히라고 촉구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이를  정치보복이라며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국민을 대표하겠다는 정당과 국회의원이 취할 수 없는 태도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이 집권한 시기에 벌어진 국정원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개혁에 협력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정원 스스로 진상조사하는 것을 중단하고 국회에 맡기라는 주장도 진정성이 없다. 국정원의 위법행위와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집권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 그리고 국정원에 대한 감독업무를 맡은 국회정보위원으로 오랫동안 일해왔던 이철우 의원의 책임도 크다. 국회에 맡기라는 말의 이면에는 조사를 방해하겠다는 것이 깔려있음을 삼척동자도 안 다.  자유한국당과 이철우 의원이 국정원 스스로 잘못을 낱낱이 밝히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스스로 청산되어야 할 적폐세력임을 다시 확인해주는 것이다. 

 

또한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공수사권 이관 공약을 마치 아무 기관에서도   대공수사를 안 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라 불리는 「형법」 중 내란(內亂)의 죄, 외환(外患)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암호 부정사용의 죄, 「군사기밀 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는 이미  검찰과 경찰이 다루고 있는 범죄대상이다. 정보수집 기관인 국정원이 수사기능까지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도리어 밀행성을 속성으로 하는 비밀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행사함에 따라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의 방어권이 침해되는 등 인권침해 논란이 끊임 없이 일어났다. 국정원의 수사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언제든 국정원의 권한 남용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런 만큼 특정분야의 수사기능을 다른 수사기관에 이관하여 통폐합하는 것은 국정원을 정보수집 전문기관으로 바로 세우는데 꼭 필요한 방안이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민들레_국가폭력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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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8/0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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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20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7년 7월 3일(월)부터 8월 10일(목)까지 6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24명의 20대 청년 분들이 함께 참여하는데, 이 6주 동안 우리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친구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직접행동을 기획하고 진행함으로써 미래의 청년시민운동가로 커나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후기는 최은영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방중마다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우리 안의 갈등과 평화>

 

강의 목록을 보면서 어떤 후기를 신청할까 고민하던 저에게 희원 간사님이 슬쩍 오셔서 “재미있는 거 알려줄까요?” 하는 말씀과 함께 추천해주신 워크숍이었던 <우리 안의 갈등과 평화>는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워크숍/강의 중 가장 시간이 빨리 갔다고 느껴졌을 만큼 유쾌하고 재미있었던 워크숍이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저는 한 NGO를 통해 세계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매번 강사들이 모여 교육을 받을 때나 교육 나가서 학생들에게 교육을 진행할 때, 서로 이해하고 친해지기 위한 시간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아이스브레이킹의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이 시간이 교육 기간 중 저에게 가장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시간입니다. <우리 안의 갈등과 평화> 워크숍은 그 교육에서 배웠던 활동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그래서 ‘과연 이 강사분은 어떤 방식으로 이 활동을 소개하실까/이끌어가실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반응할까?’ 하는 궁금증이 더 해진 상태에서 워크숍을 시작하게 되었었습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감정 카드’로 공유하기, 둘씩 짝지어 ‘말하는 대로’ 해보기, 서로의 꼭짓점이 되어 모두가 조금씩 관계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던 ‘삼각형 게임’, ‘큰 바람이 불어와’ 해당되는 사람끼리 자리를 바꾸기, 문장에서 ‘소통 방해 요소 찾기’, 서로의 등을 맞대어 다른 짝을 찾아가는 ‘꽃게 게임’, 조직 내의 소통 관계와 방식을 알게 해준 ‘인형극 게임’ 등 적으면서도 느끼지만 정말 쉴 새 없이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제가 느꼈던 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감정 카드 너무 좋아!”입니다. 저는 대학에 올라와 혼자 살게 되면서 일상적인 감정과 생각을 부모님과 같이 살 때보다 훨씬 더 자주 말하는 편입니다. “나 기분이 좀 안 좋아”, “요즘 너무 피곤해” 등의 말을 시작으로 내가 왜 이렇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떨어져 있는 서로이지만 더 의지할 수 있고, 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꼭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라서 라기 보다, 일상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것의 소중함은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를 보여주고, 그들을 읽고, 서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기초적인 대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볼 때, 사실 월 화 수 목 거의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강의가 끝난 후에 ‘강의’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를 서로 말하거나, “오늘 너무 덥죠?” “어제 교육 끝나고 집에 가서 뭐 하셨어요?”라는 말 외에는 서로가 지금 어떻게 느끼는지, 요즘 나의 감정은 어떤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부족한 집단 내에서도 충분히 다른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순 있지만, 저는 활동가학교 사람들과 이런 대화를 통해 관계가 더 깊어지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잘 모르는 서로이지만, 내가 지금 혹은 요즘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사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나눠보는 시간은 필요한 활동이었다고 생각했고, 짧게나마 아직 말 붙여보지 못한 사람과 눈 마주치고 감정을 나눠볼 수 있어서 만족스럽고 재미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관계 너무 좋아”입니다. 워크숍 활동 중에서는 ‘항상 느끼고 살진 않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 크고 작은 관계가 맺어져 있음’을 말해주고,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는 지난해 말부터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학내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또 다른 곳에서는 학내와는 또 다른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모여 정기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이전에는 받아보지 못했던 위로와 힘을 받을 때도 있었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유 받기도 하면서 같은 가치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의 소중함을 느껴가기 시작했습니다. 활동가학교 사람들 또한 저마다 가지는 구체적인 목표나 관심사는 다르지만 넓게 볼 때 저와 비슷한 가치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의 갈등과 평화>는 모두와 깊은 이야기를 나눠본 사이는 아니지만 활동가학교를 같이 한다는, 혹은 서로 가치와 생각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관계 맺어져 있고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앞으로도 이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지를 알게 해주는 시간이어서 뜻깊었습니다.

 

월, 2017/07/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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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떠나는 여행,
여행으로 떠나는 책

 

글.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여행의 시작과 끝은 책입니다

산과 들에 봄기운이 올라오는 요즘이면 각종 매체에서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기획을 전한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에세이부터 꽃놀이 가기 좋은 곳을 소개하는 여행 책까지, 굳이 떠나지 않아도 이미 즐겁고, 덕분에 떠나게 된다면 더욱 행복할 이야기가 속속 도착하니, 어느덧 책을 건너뛰고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그야말로 ‘책으로 떠나는 여행’을 실천하는 내 모습이 엉뚱하여 피식 웃음이 난다. 재작년 즈음일까. 편집자 친구들과 군산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금요일 아침에 출발지에 모였다.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같은 책을 손에 들고 왔는데, 책을 읽고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국내 여행이라 하루하루 일정을 정해도 무리가 없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 통하는 이들과 떠나는 여행은 어떻게든 즐거운 법이니 아무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문제라면 역시 ‘책으로 떠나는 여행’일 텐데, 나는 운전을 맡아 여행 책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했으면서도, 이 책이 제법 잘 만들어졌다는 친구들의 평가에 부응하여,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까지 겨우 서너 쪽을 살펴본 이 책의 다른 시리즈까지 여행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을 마쳤던 것이다. 시리즈의 다른 여행지는 순천, 공주, 목포였고, 나는 2년이 지난 이번 봄에야 목포를 찾아 ‘책으로 떠나는 여행’을 완성하고야 말았다. 물론 순천과 공주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네덜란드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여행은 책입니다

오는 5월 초에는 노동절과 어린이날 대체 휴일이 이어져 휴가를 며칠 보태면 나름의 황금연휴를 만들 수 있기에, 오랜만에 유럽, 그중에서도 베네룩스에 가볼 생각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생각만 하거나 책만 사 모은 게 아니고 왕복 비행기 표부터 예약했다. 그러니 무조건 떠나야 하고, 떠나려면 준비를 해야 하고, 준비라면 당연히 책?, 당황스럽지만 결론은 늘 이렇다.

 

베네룩스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주변에서 베네룩스가 어디냐고 되묻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일컫는 이 말이, 마치 포츠담 선언이나 모스크바 3상회의처럼 옛날 말로 느껴진다는 반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싶었으나, 역시 세상은 상식이 지배하는 법. 베네룩스로 검색을 하니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이나 다녀온 이들의 에세이는커녕 마땅한 여행 책도 찾기가 어려웠다.

 

작전 변경! 우선 비행기가 도착하고 출발하는 암스테르담, 그러니까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다시 책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의 『네덜란드』다. 부제는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인데, 유럽에서 오래 생활하며 그곳을 오갔을, 그리고 경제사를 연구했기에 네덜란드의 부흥기를 잘 알고 있을 저자의 안목이 믿음을 주었고, “제방이 무너지면 모든 사람이 물에 빠지는 여건에서 서로 협동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평가를 읽으니, 왜 한국의 미래를 이곳에서 찾지 않는 것인가 싶어, 나라도 살펴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졌다.

 

두 번째 키워드는 암스테르담이다. 내가 해외여행을 자주 떠나지 않는 이유는 준비과정을 즐기지 않기 때문인데(물론 여행을 핑계 삼아 책을 사 모으는 일은 언제든 환영이다), 이번 여행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는 일정 대부분을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보낼 게 분명하니, 암스테르담에 관한 책은 (읽지 않는다 해도) 꼭 필요하다. 대략 세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고 당연히 구매를 완료하여 책상 위에 쌓여 있다)는데, 미국의 역사학자 러셀 쇼토가 곳곳을 살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온갖 이야기를 취재해 도시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 도시 전체가 창의적인 놀이터라 불리는 암스테르담에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틈새의 매력적인 공간을 담아낸 『암스테르담 - 60명의 예술가×60개의 공간』, 마지막으로 네덜란드에서 건축을 공부한 건축학자 배윤경이 암스테르담의 건축물을 구역별로 나눠 겉모습과 구조를 함께 담아낸 『암스테르담 건축기행』이다.

 

그럴 줄 알면서도 왜 굳이, 책은 여행이니까요

출발이 한 달 남았으니 세 권의 책을 읽기에도 빠듯한 일정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책으로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고, 아마도 가장 많은 책이 나왔을 고흐는 이제야 그가 남긴 편지글을 펼쳐보는 참이고,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활동한 플랑드르 화가들의 책은 의외로 여러 권이 나와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앞선 네 권의 책 옆과 위에는 『고흐 그림여행』, 빈센트 반 고흐 편지 선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지도를 따라가는 반 고흐의 삶과 여행』에  『플랑드르 화가들』과  『플랑드르 미술여행』이 놓였고, 마땅한 벨기에 관련 책이 없어 일단 준비해둔  『벨기에 디자인 여행』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당연히 떠나기 전에, 어쩌면 돌아와서도, 아마도 영영 이 책들을 읽어내지 못할 게 분명하다. 너무나 분명한데 멈출 수가 없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마치 관련한 책을 사 모을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되는 듯, 나는 떠나기 전날까지 맞춤한 책이 없을까 찾아보고 사 모으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책으로 떠나는 여행’인지 ‘여행으로 떠나는 책’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책들 가운데 몇 권이나 여행 가방에 담아갈 수 있을까. 물론 그곳에서도 다 읽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몇 벌의 옷을 빼고서라도 책을 넣으려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는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의 여행은 이번에도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려나 보다. 

 

네덜란드

네덜란드_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주경철 지음 / 산처럼

 

세상에서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 러셀 쇼토 지음 / 책세상 

 

 Amsterdam

암스테르담 Amsterdam_60명의 예술가 × 60개의 공간 / 빅셔너리 지음 / 디자인하우스 

 

 건축기행

암스테르담 건축기행 배윤경 지음 / 스페이스타임(시공문화사) 

 

월, 2018/04/0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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