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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경축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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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경축사 유감!

익명 (미확인) | 목, 2017/08/17- 15:52

조금은 수그려 들었지만 트럼프와 김정은 간에 전쟁불사의 막말싸움이 진행되는 현재 우리는 한국동란 이후 절대시점(絶對時点)에 서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절대시점이라는 것은 이후 전개되는 상황을 돌이킬 수 없게 하는 시간적인 결점 또는 분기의 순간을 뜻한다.

한민족이 결국 북미간의 핵전쟁으로 공멸의 순간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전화위복을 맞아 평화를 정착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기반을 형성할 것인가를 가르는 시점을 의미한다.

유감스러운 8.15경축사

이러한 상황을 옛 사람들은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가르쳤다. 상황이 극에 달하면 새로운 국면이 열린다는 뜻이다. 자연의 이치가 여름이 성하면 가을을 거쳐 겨울이 다가 오듯이, 현재 벌어지는 일도 한끝으로 치우치면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변증의 진리를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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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러나 자연의 순환은 계절에 의해 반전되지만, 사람이 벌리는 일은 시간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점과 입장을 버리고 과거의 일을 성찰하고 비판을 거쳐 담대한 대전환을 이룰 때 비로소 꽉 막힌 현재 상황이 타결되고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갖고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행한 문대통령의 연설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경청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내용은 실제적 제안이 빠진 상태에서 앞선 수구 정권과 별 차별성이 없이 그저 한달 전에 베를린에서 행한 예의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미사여구만 잔뜩 나열되어 있고 근거 없는 감성을 촉발하는 반면에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상황을 반전시킬 어떠한 기제도 제공하지 못했다. 잔걸음에 마음만 급할 뿐이었다.

최소한 연례적인 을지 한미군사훈련을 대폭 축소 또는 보류한다거나, 한국의 역사에 무지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무시하고 남북간의 평화를 상징하는 개성공단을 무조건 재개하겠다는 수준의 제안을 기대한 필자로서는 크게 실망했고, 문재인 정권은 결국 기능적 연출정권이라는 필자의 평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확인만 있었다.

역사의 절대시점인 오늘은 문제의 핵심인 한미군사동맹의 명암과 득실을 냉정하게 되돌아 보아야 할 때이다. 민족동란 이후 휴전상태가 60여 년 지속되면서, 과거에 유효했던 전쟁 억제력으로써 주한미군의 역할을 급속히 축소하거나 상황 변화에 따른 커다란 전환을 이루었어야 했다.

한반도 긴장 고조시켜온 미국

1991년 구 소련이 무너진 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고 적성국으로 대립하던 대한민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간 국교가 수립되었고, 더구나 남북한간의 산업 수준과 경제력의 격차가 수 십 배에 달할 만큼 심화되면서 재래식 군사력에서도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는 현실에서 남북한의 군사대결 시기는 사실상 종결되었다.

오히려 이후 북한 정권의 존속과 변화 여부가 핵심적 주제이어야 하며 따라서 주한미군의 역할은 대북전쟁 억제력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전체의 세력을 균형 잡아주는 평화유지군으로서 기능을 할 때 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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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의 제1관심사는 미국의 적대정책으로부터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것이었고, 이런 맥락에서 오매불망 핵 개발에 매달려 왔다. (사진출처: TV조선)

그러나 미국은 1991년 당시 북한 주석 김일성의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과 북미간 국교정상화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거부했고 이에 대응하여 북한이 핵개발로 진입하자, 제네바 협정과 6자회담을 진행하면서도 어렵게 이룬 합의사항들을, 북한이 위반한 사소한 사례를 근거로 들면서, 30여 년간 일방적으로 무시해 왔다.  오롯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명분과 구실만 제공해 왔다.

역사적 요구와 흐름과는 반대로 미국은 초대강국으로서 군사적 지위에 도전하는 북한을 스스로 붕괴될 정권 내지는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래, 대북제재의 강도를 강화시켜 왔으며 근래에는 한미군사훈련 중 가공할 협박 수준으로 전략무기의 전개를 통해 리비아와 이라크에서 보여준 예방적 선제공격의 위협을 과시하면서 끊임없이 북한에 굴욕적 항복을 강요해 왔다

반면 구 소련의 붕괴 이후 90년대의 혹독한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 북한은 공화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조국을 지켜내고야 말겠다고 불굴의 투쟁을 결의하고 옥쇄를 각오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 오늘 지경에 이른 북핵과 탄도미사일 문제의 일차적 책임은 명백하게 미국에게 있으며 부분적으로 북한과 이명박근혜 정권 그리고 상황을 방관한 중국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과 시점에서 미군이 운용하는 사드의 배치를 국내에 승인하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사드

필자가 여러 번에 걸친 칼럼에서 언급하였듯이, 미군의 사드배치 일차적 목적은 사태 진행에 따라서 북한에 대해 선제 공격을 가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미사일 방어체계의 일환으로 사드의 남한 내 배치는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응한 북한 또는 중국의 보복공격을 무력화하는데 있다.

두 번째는 사드 시스템의 구성으로서 X-band의 설치를 고집하면서 경제적으로나 국제적 정치에 있어 급부상하는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첨병적 정보를 획득하고자 한다.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탐사거리 800 km 수준의 그린화인 레이더로 대체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X-band를 주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로서 한국은 중국과 대립하는 상황으로 진입하면서 향후 한국경제에 거대한 어둠이 드리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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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북한의 ICBM 도발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사드 추가 배치로 대응했다. 그러나 사드가 과연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인지, 그것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고 있다.

세 번째는 새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를 미국의 입맛대로 길들이겠다는 의도이다.

2017년 말에 설치하기로 한 합의된 원래 계획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지난 봄 한미 군사훈련 중에 도둑 고양이처럼 국내에 반입하고 공석중인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수일 앞둔 시점에서 성주에 긴급 배치를 감행한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대한민국 주권 침해의 행위이다.

네 번째는 미국과 핵심동맹인 일본을 위해서는 한반도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암시이다.

사드가 방어하는 영역이 한반도 남부를 포함하여 일본 혼슈 및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들이다. 한일간의 위안부 문제의 합의를 강제하고 곧바로 한일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도록 강요한 것은 이후 부산과 대구 근처에 어마어마한 병참과 군수기지를 구축하고 만약에 있을 동아시아 전쟁시 미일(한)간 군사합동작전에 한반도를 주요 전쟁지역으로 희생시킬 것이 명백하여 보인다.

한미군사동맹은 민족동란 이후 휴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매우 긴요하지만, 이에 후속되어 진행되는 한미일간의 군사협력과 진행은 중국봉쇄라는 단어만 제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주제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일본국은 남북 평화가 정착되면 군사적으로 제일의 잠재적 위협국가이다.

마지막으로 반공을 빌미로 하여 미국을 조국으로 삼고 있는 매판수구적 기득세력에게 안전판 (이부영 의장표현으로 심리적 인계철선)을 제공한다.

이를 통하여 미국은 여전히 한국정치에 개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며, 남북간의 갈등에 더하여 남남간의 허구적 이념 갈등을 증폭시킬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저간의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절차와 과정 그리고 환경에 문제가 없으면 사드배치를 수용하겠다며 때마침 화성14호 2기발사를 핑계로 문재인 대통령이 기회적으로 무책임하게 추가 4대 발사기의 임시배치를 지시한 일에 대해 필자는 분노를 금치 못한다.

도대체 미군의 하수인 역을 자임했던 정신박약적 박근혜 정권과 다른 것이 무엇이던가? 다만 잘 포장하여 사용한 언어와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은…평화의 ‘선제조치’가 필요한 때

물론 북미간 핵전쟁을 운운하는 현재, 당장 사드를 철수 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조건이 민족의 운명에 절대상수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일단은 현 상황에서 추가 배치와 진행을 보류시키고, 평시 및 전시 군사전작권을 회수하면서 대한민국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을 결정하면, 자연스레 미군이 직접 운용하는 사드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철수가 가능한 조건이 형성될 것이다.

북핵문제 대해서는 존폐의 위기에 처한 북한정권의 어려움을 역지사지 이해하는 관점으로 상황의 완화, 핵과 미사일 동결, 점진적 축소 그리고 해체의 수순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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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불안은 한반도에 외세의 간섭을 불러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는 평화를 위한 과감한 선제조치를 취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실효적 제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최대한의 포용 정책이 필요하다. (이미지출처: 중앙일보)

이를 여는 단초로서, 문재인 정부는 생각없이 미군의 사드배치를 수용 하면서 민족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을 것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한 압박과 협상의 전략을 반대로 보완하여 최대한 포용과 실효적 제재 (max. engagement in effective sanctions)의 전략을 구사할 것을 조언하고 싶다.

이와 관련하여 때마침 지난 11일 YMCA 가 주도하여 준비한 아래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성명 내용을 수용하고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전제로서 조건 없는 남북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 상호 진정성과 신뢰감을 높일 수 있도록 전쟁이 아닌 평화의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남북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8월 중순 개최 예정인 한·미군사연합 작전인 을지 프리덤가디언(UFG)훈련을 중단 또는 대폭 축소해야 한다.

둘째 귀북을 호소하고 있는 김련희와 중국 닝보식당 12명의 탈북유인 종업원들을 본인들의 의사를 제삼자와 제3국에서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본인들의 희망에 따라 조속히 북한에 송환해야 한다.

셋째, 남북교류협력을 근본적으로 막고 있는 5.24조치를 즉시 해제하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해야 한다. 이를 계기로 개성공단의 단순 재개를 넘어 미국, 일본, 중국, 유럽들의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제2의 국제적 투자단지를 조성하여 남북간의 평화를 담보하여야 한다.

넷째, 한반도 전쟁 위기의 근원인 휴전체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에 나설 것을 요구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계속 주둔하되, 대북 전쟁 억제력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유지군으로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다섯째, 북한에 즉각적으로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내용 없는 언어적 선언과 시효가 지난 한미동맹, 과거회귀적 보수세력들에 억매여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여력이 없다. 즉각적인 특사파견 등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 민족의 앞날이 정말 걱정스럽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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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의 ‘북한 주재 미국 대사’, 수잔 디마지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국가안보 보좌진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무시하고 전쟁 위협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뉴욕의 한 싱크탱크 소속 외교협상전문가가 전직 미국 정부 관료들을 이끌고 김정은 정권과 정기적인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

외교전문가인 수잔 디마지오 뉴아메리카 재단(New America Foundation) 선임 연구원은 십여 명의 전직 미국, 유럽 외교관들이 참여하는 북한과의 대화를 주재하는 ‘의장’이다. 참가자들은 이 대화를 ‘1.5 트랙’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비정부조직 관계자들과 북한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지난 11월 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였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 실질적인 협상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마지오는 사실상 ‘북한 주재 미국 대사’ 역할은 한다. 디마지오와 1.5 트랙 대화 참가자들은 트럼프 정부에서 북한 문제를 담당하도록 지정한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보다 훨씬 많은 고위급 회담을 북한 정부와 진행해 왔다.

실제로 지난 봄 오슬로에서 열린 회담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윤 대표가 처음으로 북한 측 인사들을 만난 자리였을 뿐 아니라, 평양에 수감됐던 미국인 학생 오토 웜비어의 석방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불행히도 웜비어가 혼수상태로 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면서 냉랭해진 분위기로 인해 북미 간 직접대화를 더 이상 진척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비공식 회담은 계속 진행됐다. 10월에 디마지오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핵확산방지 컨퍼런스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과 함께 발표자로 나섰다. 디마지오가 주재하는 1.5 트랙 회담의 핵심 참가자로 알려진 최 국장은 김일성 시절 부총리를 지낸 최영림의 딸로 북한 정권 내에서 입지가 확고하고, 몇몇 전문가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다.

▲ 북한의 대미 외교 핵심 실무자로 알려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 핵확산방지 컨퍼런스

▲ 북한의 대미 외교 핵심 실무자로 알려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 핵확산방지 컨퍼런스

최 국장을 비롯한 다른 북한 정부 관계자들과의 회담을 근거로, 디마지오는 1.5 트랙 회담에 함께 참여한  전직 미국 외교관 조엘 위트와 함께 지난 11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북한이 “핵무장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들이 탈출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내비친 것”이라고 썼다.

몇 주일 후 북한이 화성 15호 발사 실험을 감행한 뒤,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된 뜻깊은 날”이라고 발표했다. 많은 분석가들은 이 발표를 근거로 김 위원장이 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었고, 그가 공약했던 것처럼 이제 궁지에 몰린 북한 경제를 살리는 데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디마지오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군축협회의 북한 관련 포럼에서 “나는 [김정은의 발표를] 향후 우리가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돌파구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김정은은 핵개발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에 자신의 신뢰성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북-미 1.5 트랙 회담을 주재하는 수잔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 연구원

▲ 북-미 1.5 트랙 회담을 주재하는 수잔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 연구원

디마지오는 김 위원장의 발표가 “양측 모두 유리한 입장으로 협상에 나설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미국 입장에서는 곧 한국에서 개최될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미군사훈련의 “수위를 낮춰서” 대화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할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미 한미 양국에서 고려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12월 초, 뉴스타파는 뉴욕에 근무하는 디마지오와 유선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북측 외교관들이 먼저 접촉한 ‘외교협상 전문가’

디마지오는 일본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엔미국협회 등 유엔 산하기관에서 일하면서 협상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2002년, 그는 이란과 미국-유럽 간 고위급 회담으로 발전하게 된 대화를 성사시키면서 이후 2015년 이란과의 극적인 핵 협상 타결로 이어진 비공식 회담을 주재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디마지오는 정부 고위급 관계자들이 참여한 이 비공식 회담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자신의 성과를 전해들은 북한 외교관들이 ‘제3자’를 통해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뛰어들기 좋은 시점이라고 판단했다”며 자신이 “수년 간 이란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경험, 모범사례와 교훈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일을 할 때에는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과의 ‘예방적 전쟁’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워싱턴에서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디마지오는 공개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것이 제가 목소리를 더 내고 (북한과의) 회담 내용에 대해 밝히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현재까지 북한 이슈에 대한 논의를 지배한 관점은 우리가 북한 측으로부터 들은 내용과 전혀 동떨어진 것들이었습니다.

디마지오는 자신이 내놓은 공개 제안은 최선희 국장을 비롯한 북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난 뒤 고안한 것으로, 북한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미적지근한 접근법을 탈피하고 진짜 전략을 세우도록” 설계한 것이라고 말한다. 디마지오의 공개 제안의 핵심은 트럼프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을 연기하고, 안전보장과 경제적 인센티브를 혼합하여 김정은 정권이 핵 개발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현재 상태로 동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디마지오는 “북한은 비핵화에 대해서는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이 비핵화에 대해 논의하지 않을 것을 미국이 알더라도, 미국은 비핵화를 협상 의제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디마지오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내세우는 ‘미국의 적대적 정책’을 미국이 폐기하는 방안을 강구함으로써 북한의 안보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제재,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 그리고 북한을 겨누고 있는 미국의 핵무기를 ‘적대적 정책’으로 꼽고 있다.

디마지오는 “이것들은 잠재적으로 협상이 가능한 지점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측이 미국의 대북제재조치 해제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협상의 핵심이죠.

북한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 디마지오는 미국의 단계적인 ‘조정’, 즉 “군사훈련을 완전히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찾을 수 있고, 이와는 별도로 경제적 인센티브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일차적인 동결에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면, 양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구상한 보다 폭넓은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다뤄야 할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를 통해 김정은 정권이 군사개발에 기울이는 노력을 북한의 2,500만 주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에 쏟을 수 있는 협상 과정에 들어설 수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 정권의 안전 보장이 중국이 일부 담보하는 방식으로 충족되면 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접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디마지오는 비핵화는 장기적인 목표로 남겨놓고, 지금 당장은 바로 지금 실현시킬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도 이와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 그는 1994년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크루즈 미사일로 타격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6년 뒤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동결한 이후 북한의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끝내고 미국과 북한 간 불가침 조약으로 이어졌을 합의의 협상을 주도했다. 그러나 당시 새로 들어선 부시 정부의 반대로 이 합의는 무산됐다. 그는 “만약 2000년에 그 합의를 체결했더라면 오늘날 이와 같은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북한과의 협상,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디마지오와 페리가 제시한 전략은 대북 압력을 최대한 강화함으로써 북한을 굴복시켜 비핵화를 협상 의제로 인정하게끔 유도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전략과 완전히 상반된 것이다. 이는 또한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오 CIA 국장과 그들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는 신조, 즉 소련과 중국의 핵무기를 상대로 오랫동안 적용돼 온 과거의 억제책이 북한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과도 정면으로 맞선다.

조 시린시온 플라우쉐어재단 대표는 북한과의 대립이 위험한 수위에 다다랐기 때문에 디마지오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린시온 대표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전면전도 불사하자는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우리가 정말로 군사적 선택지를 갖고 있고, 우리가 북한에 제한적 타격이나 대규모 선제타격을 감행할 수 있고, 새로운 한국전쟁을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고,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반전평화단체 ‘플라우쉐어재단'의 조 시린시온 대표 ⓒ 플라우쉐어재단

▲ 반전평화단체 ‘플라우쉐어재단’의 조 시린시온 대표 ⓒ 플라우쉐어재단

그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디마지오가 주재하는 회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잔 디마지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자,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고, 외교적 돌파구가 있고, 북한 측이 대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들[북한]을 차단하거나, 그들이 굴복하지 않는 한 우리가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행동과 위협이 “이 위기를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폭격기 편대가 진주만을 향해 쳐들어오는 상황처럼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전쟁이 우리를 덮쳐 오는 상황과는 다르다.

그는 “상황이 우리를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이 우리를 몰아가기 때문에” 전쟁 위험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디마지오는 바로 이 흐름을 뒤집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마지오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측의 완전한 굴복이냐,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막느냐는 이분법적인 선택지만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군사적 선택지가 있다고 착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긴장이 고조되는 현재의 흐름이 지속될 것이고, 우리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면 잘못된 판단 때문이든, 이 상황이 군사적 충돌로 번질 가능성은 더욱 커집니다. 제가 가진 철학은 간단합니다. 적과 협상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Original Version(EN)

금, 2017/12/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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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7. 1. 18)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부산 소녀상에 반발해 주한 대사·총영사를 소환한 일본은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하고, 한국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매우 유감” 한마디뿐이었다. 그러고는 한·일 양쪽의 자제를 촉구하더니 내친김에 소녀상 설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시민을 나무랐다. 한국인이 이렇게 한·일 양국 정부로부터 비판받는 사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절제된 대응을 하고 있다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에게 칭찬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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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잘 익은 고구마다. 찌르는 대로 쑥쑥 들어간다. 왜 아직도 적폐를 청산한다는 정치지도자들에게 한반도 평화 구상이 없나?”

한국 정부의 절제는 사실이다. 중국 군용기의 한국 방공식별구역 침범에 항의를 못한 채 “의도를 분석 중”이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을 제대로 따지지 못한다.

주한미군 철수 안 할 테니 방위비 분담금 더 낼 각오나 하라는 트럼프 측의 압박에는 숨죽인 채 눈치만 살핀다. 한국은 없다. ‘쉿, 내가 어디 있는지 알리지 말라’고 일러두고는 꼭꼭 숨은 것 같다. 무슨 죄를 지은 걸까?

불가역적인 위안부 문제 합의는 한국이 일본의 과거사 행태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일본이 한국의 과거사 합의를 감시하게 했다. 이렇게 전도된 상황에서 한국은 소녀상 추가 설치의 죄를 지었다.

한국은 중국과의 협력 강화를 철석같이 약속하고도 사드 배치 결정으로 중국의 등을 찔렀다. 그 죄의식 때문인지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압박에 침묵 중이다.

미국에는 잠시나마 중국에 한눈판 죄를 지었다. 주눅 든 채 주변국에 휘둘리는 요즘 한국의 처지는 주변 열강에 찢기던 100여년 전의 조선을 떠올리게 한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후보는 북한을 적이라고 했다. 북한은 적이자 동포이기도 하다는 이중적 인식이 미국인에게는 없다. 한·미동맹을 미·일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 대중 견제 도구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한국의 이익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이지만 한국에는 아니다. 그래서 한·미 간 대북, 대중, 대일 정책이 항상 같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냉정한 현실은 미국이 한국의 귀에 입김을 불어넣는 순간 사라진다. 사드, 위안부 합의, 한·일 정보보호협정은 모두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여야 모두 위안부 합의와 달리 사드는 수용하는 쪽으로 기우는 이유의 하나도 공미(恐美) 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원칙 없이 미국의 이익에 종속된다면 상호 적대라는 악순환을 벗어나기 어렵다. 정책 실패로 갈등이 발생해도 일단 상호 적대감이 형성되면 그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함으로써 실패를 정당화하는, 아주 나쁜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적대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역사 인식, 위안부 합의를 하고도 지키지 않는 한국의 태도는 양국 시민이 서로 화낼 만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사드 문제로 경제 보복을 하는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거부감, 그에 대한 중국인의 불쾌감도 이유가 있다.

이렇게 해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주변국의 지도자가 트럼프, 시진핑, 아베, 김정은이다. 예의 바른 신사는 한 명도 없다. 예측불가한 트럼프를 좇아 헤맬 생각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잘못 엉킨 외교적 현안 하나하나에 매달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자칫 미로를 헤매는 결과가 될 수 있다.

5·24조치, 개성공단 폐쇄, 남북교류 중단, 금강산관광 중단 같은 남북 문제도 기존의 논리와 절차로 해결하려면 세월을 붙잡아 놓아야 할 것이다. 알렉산더처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지는 못하더라도 대전환의 구상 아래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자면 일관된 원칙, 흔들리지 않는 정책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주변국이 존중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노를 예스로 쉽게 바꾸고, 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루아침에 포기한다면 어떤 주변국도 한국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는 북핵 개발을 억제하고 북한 체제 변화를 촉진한다. 동맹 의존증을 치유하고, 북한 주적론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낡은 정치 사회 구조를 무너뜨린다. 중·일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남북관계 개선, 한·미관계 균형도 가능하다. 그러자면 트럼프의 ‘힘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평화의 힘을 믿고 한반도 평화 구상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미 저질러진 실수를 수습하는 방법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나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나쁜 현실을 받아들이는 문제가 한국 외교의 최대 현안이 된 것이다.

한국은 지금 잘 익은 고구마다. 찌르는 대로 쑥쑥 들어간다. 왜 아직도 적폐를 청산한다는 정치지도자들에게 한반도 평화 구상이 없나?

수, 2017/01/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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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3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한신대 이일영 교수는 필자가 제안해 온 ‘한반도 양국체제론’이 오랜만에 제기되는 ‘국가 대전략 논의’라고 환영했다. 고마운 일이다. 필자 역시 이 논의가 진지하고 생산적인 ‘플러스 알파’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양국체제론이 나온 국제적 배경에 대한 이교수의 이해는 다소의 보완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이일영 교수의 글은 아래 첨부)

양국체제란 한반도와 동북아에 점증하고 있는 위기를 근원에서 해결할 방안이다. 동북아 당사국 모두의 이익과 세계사 전환의 방향에 부합한다. 이교수가 칼럼에서 대안으로 제기한 동아시아 ‘지역-국가 네트워크 체제’도 한반도 양국체제가 성립돼야 본격화될 수 있다. 지면 제약 상 충분히 말할 수는 없다. 거두절미를 양해 바란다.

현재 한반도 전쟁 위기는 1994년 6월 이후 최고 수위에 이르고 있다. 94년 미 국방부의 전쟁 시나리오는 한반도 전역에서 1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난다고 했다. 당시 북한의 국력과 전력(戰力)이 극저점에 있었음을 고려하면, 이번 전쟁은 그보다 훨씬 큰 사상자가 날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 위기도 94년처럼 요행히 봉합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일까?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하면 위기는 더욱 심각한 상태로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일까? 북의 호전성일까? 북미 간의 치유불가능한 적대감일까? 혹자는 북미간의 협상에 한국은 끼어들어갈 틈이 없다고 말한다. ‘코리아 패싱’을 자인하는 말이다. 한국전쟁이 미국과 북한의 전쟁이었던가? 사실과 크게 다르다. 휴전협상에서 한국이 빠졌던 건 전쟁에서 한국이 흘린 피가 적어서가 결코 아니다. 휴전 협상을 거부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고집 때문이었을 뿐이다.

북이 미국과만 협상하겠다고 우기는 것은 그만큼 한국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북은 미국의 군사력보다 한국의 발전상이 체제 유지에 더 위협적이라고 느낀다. 열세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욱 호전적으로 나온다. 양국체제란 북의 이러한 불신과 불안을 근원에서 해결하는 방안이다.

양국체제란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것이다. 없는 걸 새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남북은 이미 1991년 유엔에 동시가입한 두 개의 국가다. 유엔헌장은 회원국 상호의 주권과 영토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이미 당시에 양국체제가 절반은 성립한 셈이다. 당시 한국이 소련, 중국과 수교한 것처럼, 북도 미국, 일본과 수교했다면 남북의 수교도 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남은 190개국, 북은 160개국과 수교 중이고, 그 중 157개국은 남북 모두와 수교상태다(외교부 『2016 외교백서).

왜 그 길로 가지 못했을까? 그 길로 갔다면 현재와 같은 ‘누구도 원치 않는’ 상황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부영 선생이 어디선가 지적한 데로 평양에 한국, 미국, 일본의 대사관 또는 대표부가 존재하여 상시 교류가 있는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은 긴장 고조와 핵개발을 상상할 수 있을까?

결국 양국체제=동아시아 평화공존체제가 완성되지 못하여 현재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이 탓을 이제 누구에게 돌릴까? 우린 국제 문제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우리가 외교의 주동차가 되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북문제 국제관계에서 주동적 움직임, 이니셔티브를 쥐어 본 경험이, 쥐어볼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87년에서 91년에 이르는 기간 대한민국에는 대단히 큰 힘이 존재했다. 87년 민주화의 동력이다. 그 동력을 온전히 모아냈다면 양국체제로 가는 길은 그때 획기적으로 단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분열된 민주세력은 이 길로 힘을 모을 수 없었다. 이제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87년 이후 30년만에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위대한 민주동력이 되살아났다. 촛불혁명이다. 촛불이 진정 ‘혁명’이 되려 하면 ‘체제전환’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 체제전환은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이 될 것이다.

촛불은 4.19, 87년에 이은 30년의 민주분출의 세 번째의 거대한 파고다. 이번에 양국체제로의 전환에 실패하다면, 이 분출조차 그 이전의 두 번의 분출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 다시 어두움 속으로 침몰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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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1972년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왼쪽)와 에곤 바르 특임부 장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이제 묻고자 한다. 과연 누가 한반도의 빌리 브란트가 될 것인가?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으로 동서독간 평화공존을 이룩했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독일형 복지국가, 사회국가(Sozialstaat)를 건설할 수 있었다. 브란트 동방정책의 핵심은 동독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었다. 성급하게 통일을 앞세우지 않았다. 거꾸로 “통일을 원할수록 통일을 말하지 말자”고 했다. 1991년 동독의 흡수통일은 우연의 결과였을 뿐, 동방정책의 목표가 아니었다. 동방정책의 목표는 오히려 무리한 통일을 배격하고 평화로운 공존과 교류를 통해 상호 번영하는 데 있었다. 브란트 동방정책의 요체는 양국체제론과 같다.

브란트 동방정책은 총리 재임 중의 정책으로 끝나지 않았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사회국가 노선은 서독의 새로운 국시(國是)가 되었다. 슈미트 총리가 충실히 이었고 이후 기민련의 콜 수상에 의해서도 계승되었다. 브란트가 만든 평화와 복지의 양두마차가 없었다면 오늘의 독일은 없다.

다시 묻는다. 이 시점에 누가 한반도의 브란트가 될 것인가?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으로 첫 해빙을 시도했지만 결국 미완으로 그쳤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완수해 보려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우리는 이 두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너무 조심스러워서도 안 되고, 너무 조급해서도 안 된다. 한반도 양국체제는 해방 후 100년이 되는 2045년까지 최소한 30년은 존속할 체제다. 우리는 이 정도의 호흡을 가져야 한다. 이 시간 동안 남북 서로의 불신을 줄이고 교류와 협력의 폭을 꾸준히 끌어올려야 한다.

이 길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시가 되어야 한다. 남북이 두 나라로 공존한다는 믿음이 생기면 남북수교와 북미·북일수교는 멀지 않다. 이로써 1991년 미처 다 이루지 못했던 양국체제는 정착된다. 브란트 당시 동서독 화해에 주변 강대국들이 강하게 반대했던 역사적 이유가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을 했던 남북 두 당사자가 적대를 눅이고 화해와 공존의 주역으로 나설 때 주변국이 반대할 이유와 명분이 없다.

한반도 양국체제는 세계인의 보편적 여망과 다르지 않다. 칸트 ‘영구평화론’의 핵심은 국가 간 적대의 소멸에 있었다. 지독한 전쟁을 했던 한 민족 두 국가가 상호적대를 소멸시켜 간다면 이는 칸트의 꿈이 한반도에서부터 실현되어 가는 일이다.

 

[경제와 세상]‘양국체제’는 실현가능한가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경제와 세상]‘양국체제’는 실현가능한가

반도체 경기는 뜨겁고 비트코인 투기는 광풍 수준이다. 그런데 얼마 전 김정은이 영하 22도의 백두산 천지에서 찍은 보도사진이 서늘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올해 많은 일을 겪어냈고, 나라 분위기도 얼마간은 수습이 되었다. 그래도 다들 찜찜해하는 구석이 있다. 최근 지인들에게서 여러 차례 들은 물음이다. “우리 내년은 어떻게 되는 거야?”

사회 전체가 위기에 둔감하다. 불안의 근본 문제를 회피하는 체념상태가 만연해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그때그때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국가와 사회의 중장기 의제는 부각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단지 정부나 정치권에만 책임을 미룰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마침 시민사회와 지식사회에서 국가 대전략에 관한 논쟁이 제기되었다. 지난 12월7일 민간 싱크탱크인 (사)다른백년에서 김상준 교수는 ‘분단체제론’을 비판하고 ‘한반도 양국체제’의 해법을 주장했다. 반가운 일이다. 오랜만의 대전략 논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양국체제란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하고 정상적인 수교관계를 맺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체제를 말한다.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까지 ‘비상국가체제’가 남북 모두를 지배해 왔다. 이는 기존 분단체제론과 인식을 함께한다. 단 분단체제론은 세계체제론과 연결되지만, 양국체제론은 이를 비판한다. 둘째, 양국체제론은 분단체제론에 출구전략이 없거나 모호하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 중간과정·출구전략을 양국체제로 제시한다. 그리고 양국체제를 남북통일로 가는 중간역으로 못 박지 않는다. 

양국체제론이 지닌 오해와 약점은 향후 수정·보완될 것으로 본다. 논쟁이 진행되면서 국가 대전략의 골격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논의의 출발점에서 몇 가지 조언하고 싶다. 양국체제론에서는 세계체제와 별도로 한반도 양국체제가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오히려 분단체제 출구전략으로서의 양국체제 성립 가능성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양국체제론의 첫 고리는 남측이 먼저 북측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북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헌법의 영토조항도 개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북핵 위기나 남북관계 현실을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북의 핵개발은 거의 완성에 가까운 단계에 와 있다. 지금은 남북의 군사적 역관계가 역동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국면이다. 이는 남북이 각각 적대·위협 관계를 체제작동의 원리로 삼고 있는 과정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남북관계는 남북의 국가체제, 동아시아 지역체제, 세계체제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어 왔다. 남북 각각의 정치·군사·경제체제는 동아시아 지역체제 속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국가모델의 일종이다. 

 동아시아는 서구와 구별되는 나름대로의 길을 걸어왔다. 1950년대~1980년대 말에는 고강도·저강도의 열전 속에서 급진적 산업화가 진행되었다(동아시아모델 1.0). 1980년대 말~2010년경까지는 동아시아 네트워크가 북한을 구조적 공백으로 남겨놓고 발전했다(동아시아모델 2.0). 북의 핵개발은 북을 제외한 네트워크화의 귀결이다. 2010년경 이후는 뉴노멀의 대전환 시대에 들어섰다. 미·중 간 세력전이, 저강도 공황, 4차 산업혁명 등이 진행 중이고, 북한은 이에 대응하는 생존방식으로 핵무기를 체제화하고 있다. 

과연 한국을 중심에 놓는 일국적 접근방식으로 양국체제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필자는 ‘체제혁신’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싶다. 남북의 국가 간 대결관계는 네트워크관계로, 남북 내부의 권위적·명령적 국가체제는 분권적·수평적 네트워크 체제로 혁신해야 한다. 분단체제를 혁신하는 대안모델은 ‘네트워크형 국가·지역’이다.

그런데 당장 북·미 간 대결과 북핵 위기가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다. 전쟁 위기와 핵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중·일 간의 안보협력 대화를 실무선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다각적·지역적 안보협력 체제를 논의하는 계기를 잡아내야 한다. 속초·강릉 일원과 서해안 연평도 일대를 글로벌 평화공원 지역으로 개발하는 것도 추진해볼 만하다. 정부·지자체·민간·국제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개발 프로젝트는 대북 제재 조건에서도 ‘평화 공유재’가 될 수 있다.

남북 양국체제는 현실에서 바로 작동시키기 어려운 아이디어이다. 분단체제 이후의 길은 국가·시장·네트워크가 혼합된 다양한 혁신의 방식으로 열어갈 수 있다고 본다.
 

 

화, 2017/12/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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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개 주 및 컬럼비아 특별구역에서는 살상무기의 사용기준에 대한 법규 전혀 없어
  • 13개 주의 주법은 미 헌법상 명시된 보호원칙도 따르지 않아
  • 사망자 수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으나, 매년 400~1,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

미국 50개주와 컬럼비아 특별구역 모두 경찰의 살상무기 사용에 관한 국제기준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국제앰네스티 미국지부가 18일 발표한 신규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보고서 <죽음을 부르는 무기: 미국 경찰의 살상무기 사용>은 주 및 연방 수준에서 국제법과 국제기준에 맞게 관련법규를 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제법 및 국제기준에서는 경찰의 살상무기 사용에 대해, 사망 또는 심각한 부상을 당할 위기에 임박했을 경우에 경찰 본인 또는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스티븐 W. 호킨스(Steven W. Hawkins) 국제앰네스티 미국지부 이사장은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경찰의 근본적 의무다. 살상무기 사용은 절대 최후의 수단으로만 남겨두어야 한다”며 “미국 국내에 이러한 기준을 따르는 법이 마련된 주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매우 걱정스러우며 인권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 관련법규 개정이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 생명이 걸린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미국 내에서의 무기 사용 관련법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에 관한 미 대법원 판례와 살상무기 사용에 대한 법무부 지침 및 질병통제예방센터와 연방수사국(FBI) 통일범죄 총괄 보고서 등의 공개된 통계 자료를 검토했다.

보고서는 미국 내 모든 주법이 지나치게 개괄적이고, 다양한 상황에서의 경찰의 살상무기 사용을 허가하고 있어 국제기준에 미달되는 수준임을 발견한 데 이어, 그 중 13개주는 경찰의 살상무기 사용에 관해 미국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최저 기준조차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메릴랜드, 메사추세츠, 미시건,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위스콘신, 와이오밍 등 9개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역은 살상무기 사용에 관한 법규가 아예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조사 결과 살상무기 사용의 책임 과정에 대한 조항이 관련법규에 포함된 주 역시 한 곳도 없었다.

현재 미국 내 경찰에 의한 사망 또는 부상자를 종합적으로 집계한 공식 통계는 없다. 미국 내 경찰에 의한 사망자는 대략 연간 400명에서 1,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정부가 제한적으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살상무기 사용에 불균형적으로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미국 국민의 13%를 차지하지만, 경찰에 의한 사망자 수는 전체의 27%에 이른다.

보고서는 미 법무부에 경찰의 총기 사용에 대한 통계와 자료를 수집 및 발표하고, 이를 인종, 성별, 나이, 국적, 성 지향성, 성 정체성, 선주민 여부에 따라 분류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호킨스 이사장은 “살상무기 관련 법과 정책, 훈련에 대해 국가 규모의 검토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며 “미국 대통령과 법무부에 이러한 검토의 진행과, 과실 및 책임 과정 등에 대한 전체적인 재정비를 맡을 국가 실무팀을 구성할 것을 촉구한다. 미국 정부가 인권에 대한 자국의 국제법적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정책은 반드시 국제법과 국제기준에 상응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어전문 보기

USA: All 50 states fall short of international standards on police use of lethal force

  • Nine states and the District of Columbia lack any laws on the appropriate use of deadly force
  • Laws in 13 states are out of step even with protections under US constitutional law
  • No official statistics to track fatalities, but estimates range from 400 to 1,000 deaths annually
  • African Americans disproportionately affected by the police use of lethal force

All 50 US states and the District of Columbia fail to comply with international standards on police use of lethal force, a new Amnesty International USA report found today.

Deadly Force: Police Use of Lethal Force in the United States calls for reform at the state and federal levels to bring laws in line with international law and standards, which require that lethal force should only be used as a last resort when strictly necessary for police to protect themselves or others against imminent threat of death or serious injury.

“Police have a fundamental obligation to protect human life. Deadly force must be reserved as a method of absolute last resort,” said Steven W. Hawkins, Executive Director of Amnesty International USA.

“The fact that absolutely no US state laws conform to this standard is deeply disturbing and raises serious human rights concerns. Reform is needed and it is needed immediately. Lives are at stake.”

The report is based on a review of the use of force statutes within the USA. Amnesty International reviewed relevant US Supreme Court decisions, the Department of Justice guidelines on the use of deadly force, and available statistical data, including from 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and the FBI Uniform Crime Reports.

In addition to finding that all state laws are overly broad and fail to meet international standards by allowing for police to use lethal force in a wide range of circumstances, the report finds that 13 states also fail to meet the lower standards set by US constitutional law on the use of lethal force by law enforcement officers.

Nine states and the District of Columbia have no laws on the use of lethal force (Maryland, Massachusetts, Michigan, Ohio, South Carolina, Virginia, West Virginia, Wisconsin and Wyoming).

The report also found that none of the states’ statutes on the use of lethal force include provisions on accountability mechanisms.

At present, there are no comprehensive national statistics tracking deaths or injuries at the hands of the police in the USA. Estimates of people killed annually by law enforcement around the country range from 400 to 1,000.

According to the limited government data available, African Americans are disproportionately affected by the use of lethal force. The African American population of the USA is 13% but makes up 27% of those killed by law enforcement.

The report calls for the Department of Justice to collect and publish statistics and data on police shootings and to sort the data by race, gender, age, nationality, sexual orientation, gender identity and indigenous status.

“A nationwide review of lethal force laws, policies and training is urgently needed,” said Steven W. Hawkins.

“We are calling on the President and the Department of Justice to create a national task force to carry out this review and institute comprehensive reforms, including of oversight and accountability mechanisms. If the United States is to comply with its international legal obligations on human rights, these policies must be brought in line with international law and standards.”


금, 2015/06/1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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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표현 중에서 필자가 유독 좋아하는 것이 있다. 유사하게 보이는 것들 중에서 다른 점을 찾고, 다르게 보이는 것들 중에서 유사한 점을 찾는다. 어디서 읽은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에 꽤나 멋있게 들렸던지 중학교 시절부터 늘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말이다.

이는 2009년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열렸던 다윈페스티벌의 캐치프레이즈(See things differently!)가 말하는 것과 의미가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고과정이다. 해외의 선진제도를 도입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한가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르게 바라보기’ 이전에 우선 해당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창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정체가 불분명한 어정쩡한 ‘발명’ 혹은 섣부른 ‘모방’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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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근로자이사제 조례 제정 기념 토크콘서트가 끝난 뒤 패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조례 제정으로 서울시는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서울연구원에 근로자이사를 임명했다. 그리고 12개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도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모방한 근로자이사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사회에 이미 도입되었거나 또는 소개되고 있는 해외의 제도들 중에서, 특히 독일의 사례 몇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노동이사제, 노동회의소, 그리고 직업교육의 이원제도가 떠 오른다. 그리고 유명무실한 노사협의회를 대체할 종업원대표제로서 독일의 사업장협의회(Betriebsrat) 제도의 도입 또한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지면을 빌려 독일 제도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간략하게나마 필자의 견해를 보태고자 한다.

그 첫번째 주제로서 노동이사제는 서울시에서 도입했고(근로자이사제), 또한 지난 대선 국면에서 여러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이다. 긴 내용을 짧게, 핵심적인 부분만 간추려보자.

독일의 기업은 두 개의 이사회로 구성되어 있다. 회사의 일상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경영이사회(Vorstand)와 그 경영이사회를 관리감독하고, 경영이사회의 구성원을 임면하는 권한을 가지며, 회사의 장기전략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감독이사회(Aufsichtsrat)가 그것이다.

우리와 다른 이러한 시스템을 이원적 이사회제도(Two-tier Board System)라고 부르는데,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네덜란드가 채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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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공동결정제도 및 이원적 이사회제도 개념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기업 차원과 사업장 차원으로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제도는 기업의 감독이사회(Aufsichtsrat)의 구성을 노사동수(또는 1/3 대 2/3)로 강제하고 있는 독특한 제도인데, 몬탄공동결정법(1951년), 공동결정법(1976년) 그리고 1/3-참가법(2004년)으로 규율되고 있다.

1/3-참가에 관한 사항은, 사업장기본법(1952년)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2004년에 1/3-참가법(Drittelbeteiligungsgesetz)이라는 명칭으로 분리되어 별도로 제정된 것이다.

사업장 차원의 공동결정제도는 사업장에서 사업장협의회(Betriebsrat)를 구성하여 노동자의 경여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로서, 사업장기본법(1952)으로 규율된다.

달리 말하면,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대표적으로)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에 따라 노동자측 이사가 절반을 차지하는 감독이사회를 통해서, 그리고 사업장기본법(Betriebsverfassungsgesetz)에 따라 경영참여권을 보장받은 사업장협의회라는 두 축을 통해서 실현되는 제도라고 압축해서 말할 수 있겠다.

노사 동수 감독이사회에서 노동이사 선임

몬탄공동결정법과 공동결정법이 규정하고 있는 감독이사회의 구성에 관해서 살펴보자. 먼저 각각의 법이 적용되는 대상 기업이 다르다는 점을 언급해야 겠다.

몬탄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은 제철 및 광산채굴업을 주로 영위하는 상시 근로자 1,001명 이상의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이고, 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은 상시 근로자 2,001명 이상의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및 협동조합이다(참고로, 1/3-참가법의 대상 기업은 상시 근로자 501명 이상, 2,000명 이하의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상호보험조합 및 협동조합이다).

독일 기업의 감독이사회는 이 두 법에 따라 노사 동수로 그 구성이 강제된다(이때 노동자측의 몫으로 배분된 감독이사회의 구성원을 노동이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필요적 상설기관)에 노와 사가 동일한 지분으로 참여하는 것이다(상시 근로자가 501명 ~ 2000명인 경우, 1/3-참가법에 따라 노측 감독이사회 구성원은 1/2이 아니라, 1/3이 배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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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노동의 경영참여가 제도화돼 있다. 감독이사회는 노사 동수로 구성되며, 여기서 경영이사회의 노동이사(Arbeitsdirektor)를 선임한다. (사진 출처: https://www.onetz.de/)

이 감독이사회에서 노동이사(Arbeitsdirektor; worker director)를 선임하는데, 위 두 법은 노동이사의 선임절차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후술한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먼저 언급해 둔다. 경영이사회에 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몬탄공동결정법에 따르면, 상시 종업원(경영학에서는 주로 종업원이란 용어를, 노동법에서는 근로자 또는 노동자란 용어를 쓴다. 이 글에서는 그때그때 혼용해서 쓴다) 수가 1,000명을 초과하는 대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 구성원(이사)의 수가 11명인데, 이 중 5명은 주총에서 선임되는 주주측 이사들이고, 5명은 노동자측 이사, 그리고 나머지 1명은 중립적 인사가 선임된다.

그리고 5명의 노동자측 이사 중에서 2명은 해당 기업의 종업원 중에서 사업장협의회가 비밀투표를 통해서 선출하며, 해당 기업이 속한 (산별)노조 및 그 상급단체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되고, 나머지 3명은 (산별)노조의 상급단체의 추천을 받은 인사를 역시 사업장협의회가 비밀투표를 통해서 정하게 된다.

감독이사회 구성원의 수는 납입자본의 크기에 따라 15명, 21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공동결정법에 따르면, 상시 종업원 수가 2,000명을 초과하는 (10,000명 미만의) 대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 멤버(이사)의 수가 12명인데, 이 중 6명은 주총에서 선임되는 주주측 이사들이고, 나머지 6명은 (산별)노조 추천의 2명과 해당 기업내 종업원 중에서 4명이 선임된다.

종업원 수가 많아짐에 따라 감독이사회 구성원의 수는 16명, 2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몬탄공동결정법(1951)에서는 경영이사회의 노동이사(Arbeitsdirektor)는 감독이사회의 노동자측 이사의 과반수가 반대하면 선임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몬탄공동결정법이 적용되는 기업에서의 노동이사는 공동결정법(1976)이 적용되는 회사의 노동이사와는 달리 종업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의무가 법적으로 부과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몬탄공동결정법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이사의 선임절차에 따르면,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의 노측 이사가 표결로서 선임한다. 따라서 몬탄공동결정법에 따른 노동이사는 산별노조(또는 사업장협의회)가 추천하고, 사업장협의회(또는 산별노조)가 동의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된다.

공동결정법(1976)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이사의 선임절차는 좀 더 까다롭다. 1차 표결에서 부결되면 감독이사회의 의장, 부의장, 노측 이사 1인 그리고 사측 이사 1인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에서 재차 표결하고, 다시 가부동수일 경우에 의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여 결정한다.

(참고로, 감독이사회에서의 통상적인 사안의 결의는 1차로 단순과반수로 표결하고, 가부동수일 경우 재차 표결하며, 이 또한 가부동수일 경우 의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여 최종 결정을 한다. 이처럼 독일 대기업의 최고의사결정에서는 노동자측의 목소리가 주주측의 목소리와 동일하게 반영되지만, 감독이사회의 의장에게는 첨예한 의사결정의 경우에 발생 가능한 노사간 가부동수의 상황에서 2개의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법에 규정함으로써, 굳이 따지면 주주측의 목소리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 소속…노무인사 업무 전담

경영이사회도 감독이사회와 마찬가지로 필요적 상설기관으로서 합의체(kollegiale Führung; board)이다. 경영이사회에서의 (보통)결의는 단순과반수로서 행해진다.

위에서 경영이사회의 구성원은 감독이사회에서 선임된다고 하였다. 노동이사(Arbeitsdirektor; worker director)는 위에서 언급한 몬탄공동결정법과 공동결정법에 따라 감독이사회가 임명하는 이사로서, 경영이사회의 여러 이사들 중의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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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82625.html)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멤버이기 때문에 회사의 경영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선관의무 등). 경영이사회의 이사는 분기별로 최소한 1회 이상 개최되는 감독이사회에 출석하여 자신이 경영관리의 책임을 맡은 소관영역에 대한 보고를 함으로써 관리감독을 받고, 감독이사회 이사와 함께 정기주총에서 해당연도의 경영활동에 대하여 면책(책임해제)을 받음으로써 한 회계연도를 마무리하게 된다.

경영이사회의 이사별 경영관리 영역에 대해서는 주식회사 정관의 임의적 기재사항인 경영이사회 이사의 업무분담규정(Geschäftsordnung)에 따라 나누어진다.

따라서 경영이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인 노동이사는 노동자의 이해만을 대변하지 않는다. 경영이사회의 이사로서 감독이사회에 대하여 의무와 책임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종업원의 이해와 고충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회사가 정한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종업원을 독려하기도 해야 한다. 회사가 종업원에게 요구하는 것과 종업원이 회사에 요구하는 것을 최적의 조합으로 조율하는 역할과 함께, 이사회에서 인사노무관리에 관한 전문가로서 다른 경영이사회 멤버들에게 자문역할을 하면서 인사노무에 관한 전략을 기업 전체의 전략에 정렬하여 수립 및 운용해야 한다.

 위에서 보듯이, 노조 친화적인 노동이사는 몬탄공동결정법의 적용 대상 기업에서 그렇고, 공동결정법의 적용을 받는 회사의 노동이사는 더 이상 노동친화적인 요인이 노동이사 선임의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인사노무 분야의 전문적인 능력이 결정기준이 된다. 광산업 및 제철업의 퇴조로 몬탄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현재 대다수의 노동이사는 공동결정법(1976)의 적용을 받는 기업의 노동이사들이며, 주로 직함도 인사담당임원(Personalvorstand; CHRO)이다.

참고로, 1990년대에 국영기업이었던 철도, 우체국(텔레콤)이 주식회사 형태로 민영화되면서 공동결정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는데, 이 회사들의 노동이사는 대부분 친노조 성향의 인사들로 구성된 바 있다.

단순한 제도 모방 우려…실질적 노사관계 진전 계기 돼야

긴 내용을 짧게 간추린다고 했는데, 조금 길어졌다. 요약보다는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고, 독일의 제도라는 것이 한 방(放)으로 정리되는 단순한 구성이 아니라는 것도 한 이유이다.

최근 서울시가 도입한 근로자이사제가 경영이사회의 노동이사를 모델로 한 것인지(용어만 보면 그렇다), 아니면 노동자측 대표에 의한 감독이사회의 구성을 모델로 한 것인지(노동자대표 이사제), 혹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전체를 모델로 한 것인지(종업원대표제에 대한 논의가 없다) 분명치 않다.

어쨌든 기타(Guitar/공동결정법)도 없이 피크(Pick; 속어로는 삐꾸/노동이사제)만 가지고 기타연주(공동결정제도)를 하겠다는 격은 아닌지, 말하자면 삐꾸(非俱)가 아닌지 의구심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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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sedaily.com/NewsView/1KW9DOPF3D)

정체가 불분명한 어정쩡한 발명 또는 섣부른 모방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노동자의 실질적인 경영참가를 보장함으로써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한 중간단계로서, 다분히 절충적인 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이해해 본다.

정부도 노동이사제가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다고 단칼에 잘라버리지 말고, 새로운 노사관계를 위한 창의적 발상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노사관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가 모두 너나없이 나서서 회사(우리경제)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우리만의 여러가지 노사 관련 제도를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만들 것을 이 지면을 빌려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관계 선진국들의 관련 제도에 관해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는 점을 사족으로 붙인다.

월, 2017/07/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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