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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를 벗어난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제자리 찾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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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를 벗어난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제자리 찾기 원해

익명 (미확인) | 금, 2017/07/28- 14:37

인터뷰 ∷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조근송 명예회장

정리 : 이순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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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준 열사의 외손자인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조근송 명예회장

 

우리 연구소는 헤이그 특사 110주년을 맞아 이준 열사의 집터 위치가 ‘안국동 152 및 153번지’였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하고 종로구청을 통해 표석신설 신청서를 제출한 결과, 지난 3월에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표석분과의 심의를 거쳐 표석설치 결정을 통보받았다.
이 자리가 1907년 헤이그특사의 출발지였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준의 아내 이일정이 우리나라 최초의 부인상회를 개설하여 운영했던 곳이라는 공간적 의미가 모두 고려된 결정이었다. 이준 열사 순국 110주년이 되는 7월 14일 해당 표석의 설치 제막식이 거행될 예정인데, 이에 앞서 이준 열사의 유족 대표인 조근송(趙根松) 이준열사기념사업회 명예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문 : 어려운 걸음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근송 선생님은 이준 열사의 외증손이신데, 가계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답 : 이준 할아버님은 어렸을 때 아버님과 할아버님 두 분 모두 돌아가시는 바람에 큰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셨는데, 외롭게 크신 분이기 때문에 정이 많고 또 혼자이시기 때문에 깐깐한 면도 계셨다 그래요. 저의 증조부 조시범(趙時範)과 이준 할아버지는 같은 서당에 다니던 학동이었습니다.
고향인 함경남도 북청에서 일찍 장가를 들어 태어난 분이 따님 한 분과 아드님 한 분인데, 맏딸이 저의 할머님 이송선(李松鮮)이예요. 그 할머니 이름의 ‘송’자를 따서 제 이름에 붙였다고해요. 아들 이름이 이종승(李鍾乘)인데 이용(李鏞)으로도 부르죠. 그리고 서울에서 또 한 부인을 얻었는데 이분이 이일정(李一貞) 여사입니다. 이분 슬하에 이종숙(李鍾肅)이라는 따님한 분을 두었습니다. 어릴 때 사직동에 계셨는데 맨날 놀러도 가고 용돈도 얻고 그랬습니다. 이분들은 눈이 잘 안 보이는 병을 얻어 고생이 많으셨어요.

문 : 유족들의 근황은 어떻습니까?
답 : 저의 집 쪽으로 아버님 조윤(趙潤)은 1971년에 돌아가셨고, 제 위로 형님이 세 분 계셨는데 다 돌아가셨어요. 누님도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여동생 한 사람이 남아 있어요. 이용 할아버지 쪽은 이열(李洌)과 이활(李活) 이렇게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준 열사의 친손자들은 지금 전부 이북에 있습니다. 그 후손이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 파악이 안 되니까 심지어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어요.
이종숙 할머님 쪽으로 유성천(柳星天)이라는 따님 한 분이 계셨으나, 지난 2011년에 돌아가셨어요. 이 아주머니 밑에 아들 둘하고, 딸 하나가 있죠. 이종숙 할머니의 사위가 문화공보부장관을 지낸 이규현(李揆現) 씨예요.

문 : 이준 열사의 집터에 관해 따로 전해 들으신 얘기가 있는지요?
답 : 안국동 집터 위치는 옛날 아버님이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이준 할아버지가 이곳에 계실 때 민영환 선생과 교류가 많았다고 그래요. 집들이 서로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그 집안을 너무 잘 알고, 민영환 선생이 자결하실 때 상하이에 계시다가 급거 귀국하셨대요. 집에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민충정공이 자결하신 그 칼을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는데 그 칼이 헤이그로 가실 때 없어졌답니다.

문 : 선생님께서는 원래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답 : 저야 뭐, 이공계 전자 쪽을 나와서 금성사 중앙연구실에 있었죠. 디지털파트예요.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하면 학생들이 사용하던 OMR 카드, 그 포맷을 제가 정했어요. 1980년대에 에어 스페이스 매니지먼트(공중공용관리)라고 군사용 프로그램 개발에도 관여했고요, 가상현실(VR)도 1995년도에 제가 처음 했었죠. IT쪽 일을 계속하다가 대신증권으로 옮겼어요. 당시 한국의 증권산업의 통신인프라가 취약했었는데 이 일을 담당했습니다. 지금의 증권전산망이라든가 이런 것을 안정화시키는데 힘을 기울였지요.

문 :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일은 어떻게 관여하시게 되었습니까?
답 : 헤이그에 있던 이준 열사의 유해를 모시고 오던 1963년도부터 추도식에 계속 다녔는데 이일정 할머니의 외손녀인 유성천 아주머니가 유족 대표로 하시고 나는 그냥 참여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7년 헤이그특사 100주년 기념행사 때 예전에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총무를 하고 이준 열사 유해를 모셔올 때 영정도 들기도 했던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 이준 열사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언론에 나오고 한 일이 있었어요. 그때 KBS 열린음악회에 그 사람을 유족이라고 데려다 앉혀놓고 사진도 찍고 했던가 봐요. 북청에서 태어나 거기에서 사셨던 형님들이 그 사정을 훤히 아는데, 난리가 난 거예요. 그래서 가짜가 드러났는데, 이 문제를 따지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제 이름이 노출되고 제가 이준 열사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많이 알려지게 된 겁니다. 문화공보부 자료에 보면 이준 열사 유해 봉환 때 유족들이 몽땅 모여서 찍은 사진이 있어요. 형님들 계시고, 형수들 계시고, 사직동 할머니, 성천이 아주머니, 이규현 씨도 있고, 꼬마들까지 다 있는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이 유족들이 다 모여서 찍은 것으로 유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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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준 열사 유해봉환 국민장의식 1907년 7월 순국한 후 56년 만인 1963년 9월 30일 환국한 이준 열사의 유해를 모시고 10월 4일 10시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이후 현재의 수유리 묘지로 운구하여 오후 3시 30분에 하관하였다. 가운데 검은 완장 찬 여성이 이준 열사의 작은딸 이종숙.

3 이준 열사 유해봉환 당시 수유리 묘역에서 촬영한 유족 사진(1963.10.4) 사진의 앞줄 가운데에 선 남자 아이가 인터뷰 당사자인 조근송 명예회장이고, 바로 뒤쪽에 이준 열사의 따님(이종숙), 그 오른쪽에 부친(조윤, 두건 차림)과 모친이 나란히 서 있다. 다시 왼쪽으로 이준 열사의 외손녀(유성천)와 그 부군(이규현, 검은 넥타이 차림)의 모습이 보인다.

 

문 : 이준열사기념사업회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답 : 1946년도에 이준열사기념사업회가 시작될 때 함태영(咸台永) 선생이 초대 회장을 하셨어요. 이분이 이준 열사보다 연세 차이는 많지만, 같이 법관양성소 출신이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회장을 맡으셨습니다. 1945년에 해방이 되고 이준 열사의 아들인 이용 장군이 북쪽에서 못 빠져 나왔고, 소련군 점령하에 있다가 이듬해 5월에 월남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남에 와서 7월 14일 순국일에 제사를 지낼 때 이준열사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답니다.
그 이후 김창숙 선생 등 여러 저명인사들이 기념사업회를 이끌었는데,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이갑성 씨와 같은 경우에도 제가 어렸을 때 많이 봤고, 꼿꼿하고 마르게 생긴 윤치영 같은 이도 기념사업회 일을 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친일행적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제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어쨌건 이렇게 왔는데 근년에 기념사업회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지금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전재혁 씨라고 정보기관 출신인데 용공이니 반공이니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요. 또 깜짝 놀란 게 안두희를 열혈청년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난 당신하고 일 못 한다 강력 반발했더니 이준열사기념사업회는 유족이 필요없다, 이런 식으로 나와요. 그래서 보훈처에도 얘기했지만 사단법인 내의 문제이니까 방법이 없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스스로 기념사업회를 나가는 것은 반대입니다.
현재 명예회장이고 제가 들어가겠다는 것은 자기들이 인정했으니까 말이죠. 회장은 2, 3년을 하고 넘기는 것이 보통인데, 이 사람은 벌써 만 10년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문 : 이준 열사의 아드님이신 이용 장군에 대한 말씀을 좀 들려주시죠.
답 : 1907년에 이준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그 충격으로 큰 따님인 저희 할머님(이송선)이 식음을 전폐하시다가 불과 1년 만인 1908년에 스물여섯 나이로 일찍 세상을 뜨셨어요. 그래서 아버님은 만 두 살짜리로 북청 외가에서 컸는데, 그때 이용 장군이 안아서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님한테서 이준 할아버지보다는 이용 할아버지 얘기를 더 많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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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40년대 찍은 이준 열사의 아들인 이용 장군(가운데)과 그의 아들 이활(왼쪽), 이열(오른쪽) 사진. ⓒ 조근송

이분이 하신 일은 대한민국 무장투쟁사를 다시 적어야 할 정도예요. 청산리전투 때 홍범도 장군 밑에서 중대장을 하셨습니다. 이용 장군은 김경천 장군과 더불어 고려혁명군의 사령관으로 그분은 동부사령관이고, 이용 장군은 북부사령관을 맡으셨어요. 북만주사관학교 교장도 하셨지요.
그리고 이용 장군에 대해서는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때 평양에 올라가서 북한하고 붙었다고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건 조금 달라요. 제가 듣기론 이용 할아버지가 밤에 몰래 종로 쪽에 사시던 아버님을 찾아와서 “여기 있으면 죽는다, 나 오늘 북한으로 간다.”고 하시면서 “내가 장개석을 만나고 그런 다음에 다시 온다. 지금은 몸을 피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답니다. 집에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음력 5월달에 김우송(金又松)이라는 할아버지의 생신 때 찍은 건데, 이걸로 보면 아버님 말씀대로 7월초에 북한으로 넘어간 것이 맞습니다.

문 : 이준 열사 기념관 건립 등 현양사업이 현재 추진되고 있나요?
답 : 이준 열사와 관련한 기념시설은 아직 국내에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요, 헤이그에 있는 것도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요. 이걸 서로 합해야 하는데 관계도 이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념사업회 쪽에서 이런 기념관을 마련하고 통합에 앞장서야 하는데 사정은 그렇지 못합니다. 원래는 기념관 건립뿐만 아니라 남북교류와 이준대학 설립까지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딴 분은 몰라도 이준 열사에 대해서는 남한이건 북한이건 모두 긍정적이고 거부감이 없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거든요. 남북 합작으로 비무장지대 안에 이준대학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지난 정부에서 어디 들어줘야 말이죠.
위와 같은 내용의 대화를 끝내고 표석 제막식 때 다시 모시기로 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연구소로 어려운 발걸음을 주시고 이준 열사의 가계에 관한 소상한 설명과 비화를 들려주신 조근송 명예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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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국정역사교과서 집필진 가운데 근현대사를 전공한 현직 역사교수는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대사 부분을 담당한 집필진은 현대사 전공자 없이 대부분 법학과 정치학, 경제학 전공자로 구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교과서 발표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역사교과서 집필진은 현직 대학교수 12명과 중고등학교 교사 6명을 포함해 모두 31명으로 구성됐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논란이 됐던 근현대사 집필진에 현직 역사교수의 참여가 극히 저조하다는 것이다. 근대 3명 현대 6명의 집필진 가운데 역사를 전공한 현직 역사교수는 한상도 건대 사학과 교수(근대) 1명 뿐이었다.

한상도 건대 교수는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주로 연구한 근대사 전공자로 현 국사편찬위원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지난해 11월 뉴스타파가 근현대사 전공 현직교수 7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당시 국정화 반대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3명 가운데 1명이었다.(관련기사: 국정화 반대하지 않는 근현대사 전공 교수는 3명뿐)

특히 현대사 집필진 6명의 경우는 법학 전공 1명, 정치학 전공 2명, 경제학 전공 2명, 전쟁사 전공 1명 등 엄밀한 의미에서의 현대사 전공자는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참여했다는 교육부의 설명과 달리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가 대거 집필진에 포함됐다.

현대사 집필진 가운데 김명섭 교수와 나종남 교수, 세계사를 맡은 이주영 교수는 뉴라이트 인사들로 구성된 현대사학회 회원이다.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현대)는 지난해 11월 ‘근현대사는 역사학자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문화일보 칼럼에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면서 5.16군사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세계사)는 기존 검정교과서가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하고 북한 교과서를 베끼는 등 편향됐다고 주장했던 인물이고,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조선)은 대표적인 교학사 역사교과서 필진으로 강원대 사학과 교수 6명 가운데 유일하게 국정교과서 반대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현대)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하는 민주평통자문위 수석부의장의 신분으로 최순실게이트가 터지고 난 지난 10월 26일 ‘박근혜 대통령님을 위해 기도하자’는 글을 SNS에 올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집필진 가운데 최성락,손승철, 한상도,유호열, 정경희 등 5명은 현 18대 국사편찬위원이다.

국사편찬위는 지난 3월 기존 위원 16명 가운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던 편찬위원 9명을 배제하고 찬성 인사들을 새로 편찬위원으로 위촉했는데 한상도, 유호열, 정경희 등 3명이 이때 새로 합류한 인사들이다.

분야 성명 전공 현직 직함
선사/고대 신형식 사학 이대 명예교수
선사/고대 최성락 고고학 목포대 고고학과 교수
선사/고대 서영수 동양사 단국대 명예교수
선사/고대 윤명철 사학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고려 박용운 사학 고대 명예교수
고려 이재범 사학 전 경기대사학과 교수
고려 고혜령 사학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조선 손승철 사학 강원대 사학과 교수
조선 이상태 사학 국제문화대학원 대학 석좌교수
조선 신명호 사학 부경대 사학과 교수
근대 한상도 사학 건국대 사학과 교수
근대 이민원 한국학 동아역사연구소 소장
근대 김권정 사학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현대 최대권 법학 서울대 명예교수
현대 유호열 정치학 고대 북한학과 교수
현대 김승욱 경제학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현대 김낙년 경제학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현대 김명섭 정치학 연대 정외과 교수
현대 나종남 사학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
세계사 이주영 사회학 건대 명예교수
세계사 허승일 서양사학 서울대 명예교수
세계사 정경희 동양문화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세계사 윤영인 일본사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세계사 연민수 사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현장교원(선사/고대) 우장문 사학 경기 대지중 수석교사
현장교원(고려) 김주석 사학 대구 청구고 교사
현장교원(고려) 유경래 역사교육 경기 대평고 교사
현장교원(근대) 정일화 역사교육 전 강원 평창고 수석교사
현장교원(근대) 최인섭 역사교육 충남 부성중 교장
현장교원(근대/현대) 황정현 역사교육 충남 온양한올중 교사
현장교원(세계사) 황진상 역사교육 서울 광운전자고 교사
월, 2016/11/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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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은 이달 29일(목) 저녁 7시반, 국민TV 지하 카페(웰빙센터 지하)에서 제 8회 백년포럼을 개최합니다.

유난히 더웠던 2016년 여름이 지나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이 좋은 날씨와 더불어 역사학자이신 이병한 박사를 모시고 ‘다른 백년’인가, ‘다시 백년’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립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이병한 박사의 유라시아 현장 보고를 들어주시고 토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 2016/09/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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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군국가요 작곡한 박시춘의 ‘비 내리는 고모령’ 내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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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 특집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2부 화면 갈무리. 이날 하은이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러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곡은 친일 행적이 확인된 대중음악 작곡가 박시춘이 작곡한 노래로, 3.1운동 및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 프로그램의 성격상 KBS가 자료 검토 및 선곡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KBS

3.1운동 100주년 특집으로 꾸며진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가 친일 행적이 있는 음악인의 노래를 선곡해 방송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9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 특집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2부에선 가수 하은이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렀다. 이날 하은은 425표를 얻어 1승을 거뒀다. 하은의 열창과 탈북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게 된 사연이 어우러져 뜻깊은 무대가 됐다.

그러나 해당 곡은 친일 행적이 확인된 1급 친일 작곡가의 곡으로 알려져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으로 꾸며진 방송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48년에 발표된 ‘비 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1913~1996, 본명 박순동)이 만든 노래다. 박시춘은 평생 동안 3000여 곡을 작곡, 이 가운데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신라의 달밤’ ‘가거라 38선’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1931년 일본 오사카 중앙음악원 혹은 밀양보전을 졸업한 것으로 그간 알려졌으나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실제로는 밀양보통학교를 중퇴했다. 대중음악계에 평생 헌신한 공로로 1982년 보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시춘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중 음악가로서는 유일하게 ‘1등급’ 친일파에 등재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말기 일제는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인들을 징용·징병 등의 명목으로 전쟁터로 끌고 갔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다음 해인 1938년부터 지원병 제도를 실시, 육군지원병·해군지원병·학도지원병 등의 명목으로 전쟁에 동원했다. 1943년 공표되고 이듬해부터 실시된 ‘징병제’를 통해서도 한국인들을 강제로 입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입대를 기피하거나 거부하지 않도록 ‘선전선동’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총독부는 예술인들을 동원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천황제와 내선일체를 강요하는 영화와 가요를 다수 제작했다.

이러한 일제와 조선총독부의 군국주의 정책에 적극 호응한 이가 바로 박시춘이다.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이유서>는 박시춘의 친일 행위에 대해 “1942년부터 지원병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내용의 ‘고성의 달’, 1943년 징병제 실시 기념영화 주제곡 ‘조선해협’, 해군특별지원병제도 축하 특별 기획음반 수록곡인 ‘혈서 지원’ 외 다수의 가요를 작곡 및 편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1942년 죽음을 각오하고 승리를 다짐하는 군인의 모습을 묘사한 가요인 ‘아들의 혈서’, 1943년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후방의 여인 및 부모의 모습을 그린 ‘결사대의 아내’, 부상을 입었음에도 일제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 내용의 ‘즐거운 상처’ 외 다수의 가요를 작곡 및 편곡했다. 1943년 산업전사위문격려위문예능대에 참여해 활동함”이라고 밝혔다.

위 <결정이유서>에 따르면, 그가 작곡한 군국가요는 이외에도 ‘낭자일기'(노래 남인수) ‘병원선'(노래 남인수) ‘아세아의 합창'(노래 김정구) ‘진두의 남편'(노래 박향림) ‘지원병의 집'(노래 장세정) 등 13곡이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다. 이는 군국가요 작곡가로선 최다 기록이다.

지난 2016년엔 밀양 출신인 박시춘을 기리기 위해 밀양시가 ‘박시춘 음악제’를 개최하려 했으나 당시 친일파를 기리는 음악행사를 도비를 지원받아 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여론이 빗발치면서 밀양시는 박시춘 음악제 개최를 백지화 했다. 박시춘 외에도 안익태·현제명·홍난파·남인수·김기수 등 다수의 음악인이 일제에 부역한 친일 행적이 확인된 바 있다.

이지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국장 겸 친일잔재조사위원회 연구원은 11일 통화에서 “대한민국 100년 특집을 하면서 ‘비 내리는 고모령’이 나와서 내 귀를 의심했다”면서 “박시춘은 친일 전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강제동원의 제일선에 서서 징병 유도 가요를 만든 대중음악계의 일급 친일파”라고 설명했다.

이지훈 국장은 “화려한 친일행적을 가진 이가 (친일의 대가로) 평생 호의호식한 데다 대중음악계 최고의 별로 아직까지 자리매김한 것은 씁쓸한 현실”이라며 “관계자들이 자료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임정 수립 100년 특집에 나온 것도 우려스러운데, 우승을 했다고 해서 더 당황했다”고 개탄했다.

<2019-03-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3.1절 특집’에 1급 친일파 노래를? KBS의 황당한 결정.

수, 2019/03/1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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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 국정교과서 토론회

정부는 지난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습니다. 이로써 정부는 국정 교과서의 제작에 돌입하였으며, 고시대로라면 2017년도 3월부터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정부가 직접 편찬한 교과서로 한국사를 공부하게 됩니다.

정부는 국정화의 추진 근거로 “현행 검인정제도는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검인정제도는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어왔을까요? 정부는 제도의 운용에 대해서는 한마디 자성도 없이 실패를 단언할 만큼, 검인정제를 취지에 맞게 잘 운영해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근현대사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와 접점을 가지고 있는 일본, 그리고 분단의 경험을 공유한 독일 역시 역사교과서 검인정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 나라의 검인정제도 운영 실태는 각기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학문과 교육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세 나라의 사례를 비교검토해보고 이를 통해 민주적인 역사교육의 방향과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토론해보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공개토론회]

한국·독일·일본의 역사교육과 시민적 대안

 


 일시 : 2015년 12월 23일(수) 오후 4시~6시

 장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주최 :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사회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참여사회연구소 연구분과위원장

 

발표

독일의 검인정제도와 한국 역사 교육에 대한 시사점이동기 강릉원주대학교 교수
일본의 검인정제도 운영 실태와 한중일공동교과서의 사례신주백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HK 연구교수
한국의 검인정제도 하 교육부의 개입과 국정화 논리의 실체김한종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토론

민주적인 역사교육제도의 방향과 사회적 합의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시민사회의 대응 방향과 대안교과서의 지향점 모색김육훈 독산고등학교 교사, 역사교육연구소장

 

151223_공개토론회_한국·독일·일본의 역사교육과 시민적대안

 

 

 

문의 : 참여사회연구소(02-6712-5248, [email protected])

수, 2015/12/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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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메르스, 백남기. 지난 4년 동안 한국 사회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늘 ‘창조’란 말을 반복했으나 오히려 ‘헬조선’을 탄생시켰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통합진보당 해산 등등, 박근혜 씨는 역사를 유신 시대로 되돌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현 직무정지)은 최순실 일당과 함께 대한민국을 “이게 나라냐”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됐습니다. 수백만 시민의 촛불이 이뤄낸 한국판 명예혁명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제 4년 만에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캄캄한 터널에서 가까스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권을 다룬 보도 영상을 통해 우리가 지나왔던 암흑의 세월을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금, 2016/12/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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