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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칼럼 양승태대법원 특집 ⑤] 키코(KIKO) 사건 판결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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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칼럼 양승태대법원 특집 ⑤] 키코(KIKO) 사건 판결의 재조명

익명 (미확인) | 수, 2017/07/12- 11:35

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이전 칼럼 바로가기]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 (곽노현)
 ② 제주해군기지사건과 환경민주주의 (김필성)

 ③ 시효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 (이상희)

 ④ 정리해고 앞에서 한낱 '생산요소'에 불과한 노동자들(김태욱)

 

[광장에 나온 판결] ①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3다26746 전원합의체 판결
② 2011다53683,53690 전원합의체 판결 ③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④ 2012다1146,1153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키코(KIKO) 사건 판결의 재조명

박선종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박선종(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지난 6월 20일 국회 간담회를 통하여, ‘키코(Kiko: Knock in Knock out- 중소기업이 극히 제한된 기대이익을 대가로 무제한의 위험에 처하게 된 파생금융상품) 사건'의 피해기업들과 투자자들이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사건의 실체가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에 따르면 초기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에 가입한 기업은 1000개를 넘었고, 피해 규모는 최소 3조원 수준이며 도산과 상장폐지 등으로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기업까지 보태면 10조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피해규모도 크지만 피해 당사자가 한국 경제와 함께 견실하게 성장해온 수출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키코 사건은 우리 경제에 큰 상처를 입혔다. 

 

키코 사건의 본질

 

키코 사건의 본질에 대하여는 은행의 사기행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기업 측의 입장과 기업의 투기에 기인한 것이라는 은행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IMF 자료에 따르면, 키코와 유사한 형태의 파생상품에 기인한 거대손실 사례는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지역 뿐만 아니라, 브라질,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과 폴란드 등 유럽 지역에서도 발생하였다. 각국에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주요 쟁점은 어김없이 은행의 '사기' 여부였다. 키코와 동일한 구조의 파생상품은 미국이나 이탈리아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인도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도 일찌감치 사기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검찰이 기소조차 제대로 못해본 상태에서 민사소송에서 사기가 아니라는 이례적인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2013년 9월 26일 4건의 키코 사건 전원합의체판결(세신정밀, 삼코, 수산중공업, 모나미)에서 키코 상품의 본질에 관하여 헤지(Hedge: 위험회피) 부적합성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기 또는 착오로 인한 취소 등 기업 측이 주장한 무효 또는 취소 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실상 대법원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판단한 것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에 집중되었다. 

 

키코 사태의 본질은 ‘사기적 판매행위’ 인데, 우리 대법원이 이를 밝히지 못한 점은 진실 규명과 사법 정의 차원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은행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투기 상품을 기업의 헤지 상품으로 호도하다 보니, 사기나 착오의 문제가 대법원에서는 깊게 다루어지지도 못하였다는 점 또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은행측이 사기라는 주장의 근거
 
키코 소송에서 은행은 키코 상품을 일종의 보험상품(헤지상품)으로 판매하였다고 주장하고, 기업도 환율변동에 대한 보험상품으로 알고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주장하며, 각급 법원도 단 한건의 예외도 없이 보험상품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험계약자인 기업이 거액의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일반인의 상식으로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으로 인하여 거액의 손해를 입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기업 주장의 요점은 거액의 손실 자체가 키코상품은 보험상품이 아닌 투자상품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며, 따라서 은행이 투자상품을 보험상품으로 가장하여 판매한 것은 ‘사기’라는 것이다.  키코 법정에서 한 재판관이 은행측에게 물었다. "카지노에서도 6:4 비율 정도의 승률은 지켜지고 있는데, 키코사태는 12:0으로 중소기업이 완전히 잃고 있는데 이 정도면 사기 아닌가요?"  이에 관한 대법원 민사판결의 입장은 키코가 ‘헤지상품’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판단의 근본적 오류
  
대법원 판단의 근본적 오류는 ‘헤지거래를 하려는 당사자가 현물의 가격변동과 관련하여 특별한 전망이나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특정 구간에서만 위험회피가 되는 헤지거래도 다른 거래조건들과 함께 고려하여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체구간에서 위험회피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구조적으로 헤지에 부적합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내용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대법원은 키코 상품이 가격변동의 일부구간에서라도 헤지기능이 있으므로 헤지상품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수많은 기업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키코 계약을 체결했다가, 도리어 거대손실로 도산했다는 모순적인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변동위험은 일부구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격변동의 전체구간에 걸쳐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의 제거 내지 감소 여부는 전체구간을 대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즉, 실제로 헤지의 효과는 가격변동위험의 일부구간에만 작용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전체 구간에서 작용하여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기실, 헤지하고자 하는 위험이 일부구간에만 존재하는 작은 위험이라면 굳이 보험을 가입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이러한 키코상품의 근본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일부구간에서 헤지가 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부분 헤지(partial hedge)’로 포섭하며, 헤지 거래로 판단하고 있어 상품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 대로 키코가 부분 헤지 상품이었다면, 위험을 부분적으로 밖에 회피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을지언정, 그 상품의 구입으로 인한 거대 손실이 발생할 까닭은 없다. 

 

감기보험과 암보험

 

대법원은, 키코가 발생가능성이 낮은 위험은 기업이 스스로 감수하고, 발생가능성이 높은 위험에 한정하여 헤지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상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위험의 헤지 여부 판단에 있어서는 발생가능성도 중요하지만, 위험의 크기가 중요한데, 대법원은 위험의 크기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다. 즉, 발생가능성이 아무리 높더라도 위험의 크기가 작다면 헤지의 필요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감기는 발생가능성이 높지만 위험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감기보험을 별도로 가입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법원의 판단을 비유하자면, 키코계약에서 기업은 발생가능성이 높지만 작은 위험인 ‘감기의 위험’만 보험계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발생가능성이 낮지만 큰 위험인 ‘암의 위험’은 무보험으로 스스로 감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키코상품은 왜 더 이상 판매가 안 되는가?

 

 키코상품이 대법원의 판단대로 이색적이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범위에 드는 헤지상품일까? 키코상품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만약 문제가 없는 상품이라면 은행은 유사한 상품을 계속 기업들에게 판매할 수 있어야 하는데, 키코상품의 판매가 중단된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분적으로는 키코를 통하여 환헤지를 하던 많은 수출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경험함으로써 얻은 학습효과로서, 키코와 유사한 구조의 상품이 환율헤지라는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는 것을 직접 체득하였기 때문일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보험계약을 체결했는데, 거대손실로 기업이 도산했다는 모순적인 사실을 외면하는 대법원의 판단을 평균적인 소박한 시민의 상식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요컨대, 키코 상품은 전체 구간을 통해 헤지가 가능하지 않은 상품으로서 본질적으로 헤지 상품이 될 수 없었다. 백번 양보하여 이 상품의 본질을 모르고 감기 보험인 줄 모르고 들었다가 대신 암의 위험을 감수하게 되면서, 결국 수많은 견실한 수출 중소기업들이 도산에 이르게 된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피해 중소기업들에게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로부터 적절한 손해배상의 길을 가로막아버린 대법원 판결의 오류가 지금이라도 바로잡히길 바라며, 나아가 검찰 조사를 통해 키코상품 판매에 있어서 은행의 사기성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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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부장판사 시절 조작간첩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양 대법원장이 배석판사가 아닌 재판장으로서 조작간첩 피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1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가 “양승태 당시 부장판사가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했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제주에 사는 강희철 씨는 1986년 제주도경 대공분실 수사관들에게 연행된 뒤 85일 동안 불법구금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받았고 북한 간첩이라는 자백을 했다. 강씨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지난 1998년 815특사로 풀려나기까지 1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러나 강 씨 사건은 2008년 재심에서 조작간첩이라는 것이 밝혀져 무죄가 선고됐다.

뉴스타파가 강희철 씨의 증언과 1986년 당시 수사와 공판기록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강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당시 부장판사로서 재판장)이었다. 1심 판결은 이후 고등법원과 대법원을 통해 확정됐다. 강희철 씨 사건은 대법원에서 주심을 맡았던 박우동 대법관이 당시 공소사실 자체에 조작가능성이 농후했지만 혼자 힘으로는 판결을 뒤집지 못했다며 후회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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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 씨는 1심 재판장이었던 양승태 부장판사가 “자신이 무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록 법정에서 간첩혐의를 자백했지만 불법수사 정황과 증거들이 사건 조작 가능성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었는데도 양승태 당시 재판장이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이다. 당시 법원에 제출된 경찰과 검찰의 수사기록, 그리고 법원 공판기록을 분석한 결과 강 씨 주장에는 신빙성이 있었다.

강희철 씨는 6번 열린 1심 공판에서 간첩혐의를 모두 시인했다. 그러나 수사기록을 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정보사범(간첩) 발생 및 검거보고’라는 경찰기록을 보면 강 씨를 간첩혐의로 처음 연행했다는 시점은 1986년 5월 17일인데 실제 검거는 7월 1일 했다고 돼 있다. 그런데 강 씨가 간첩혐의를 시인하는 첫 경찰 조서가 이미 6월 17일에 작성돼 있었다. 구금 기간을 20일이나 속이며 허위 작성된 것이었지만 강 씨가 구속된 것이 7월 21일이라는 점을 감암할 때 당시 기록상으로도 강 씨가 5월 17일부터 7월 21일까지 65일 동안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을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었다. 7월 1일 검거를 인정하더라고 구금기간이 20일에 이르는 불법수사가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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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혐의를 뒷받침한다며 제출된 증거들도 마찬가지였다. 증거로 제출된 일본산 만년필과 스웨터, 넥타이, 허리띠 등은 하나같이 증거가치가 떨어지는데다 영장없이 불법 압수된 것들이었다. 특히 간첩혐의에서 핵심은 강 씨가 “조총련 관계자에게 포섭돼 북한으로 들어가 간첩교육을 받았다”는 자백이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증거로 제출된 영사증명통보에는 오히려 강 씨를 포섭했다는 사람들이 “조총련에서 활동하거나 북한에 들어간 기록이 없다”는 내용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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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기록에 따르면 모두 6번 열린 공판 가운데 3차 공판에서 양승태 부장판사가 강희철 씨에게 혐의에 대해 잠깐 질문하는 부분이 나온다.

양승태 재판장 : 피고인이 일본과 이북에 갔다온 행적과 귀국한 후의 행적에 관해서 공소사실과 같은 내용은 수사기관에서 확인하여 한 것인가요, 피고인 스스로 그 행적을 말하였던 것인가요?

강희철 피고인 : 조사관이 미리 알고 있어서 그대로 진술한 것입니다.

재판장은 경찰이 진술할 내용을 불러주고 자백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5차 공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강 씨는 그 날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강 씨는 “재판 중에 잠깐 휴정이 있었어요. 검사가 잠깐 법정 밖에 나간 사이에 ‘혹시 고문이나 가혹행위 같은 게 없었나?’ 그래서 제가 ‘없었다’고 했거든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검사가 법정 안으로 뛰어 들어 오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 날도 방청석에는 강 씨를 고문했던 경찰들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고 재판장이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안병욱 前 ‘진실과 화해를 위한 위원회’ 위원장은 “휴정 중에 판사가 피고인과 사적인 의견을 나눈 것으로 재판장 본인도 가혹행위 등이 있었는지 의심했기 때문에 물어봤을 것”이라며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조작간첩 사건의 관례가 그랬기 때문에 이를 뒤집을 용기가 없어서 그런 식으로 질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법수사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나온 자백에 핵심 증거들은 증거가치가 부족했지만 양승태 재판장은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뿐만 아니었다. 강희철 씨와 같은 날, 같은 법정에서 양승태 부장판사로부터 간첩혐의로 7년을 선고 받은 오 모 씨 사건 역시 수사과정에서 45일 동안 불법구금한 사실이 인정돼 현재 재심이 진행되고 있다.

강희철 씨 재심 판결문(왼쪽), 오 모 씨 재심개시 판결문(오른쪽)

▲ 강희철 씨 재심 판결문(왼쪽), 오 모 씨 재심개시 판결문(오른쪽)

강희철 씨는 2008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을 당시 재판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 강 씨는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장의 직접 사과를 원하고 있다. 강 씨는 “반성한다면 저는 받아들일 마음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사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한 마디가 조금이라도 저의 과거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 주지 않을까 합니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2011년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대법원장으로 과거 잘못된 판결에 대해 사과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강 씨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도 양 대법원장은 지금까지 침묵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강 씨 사건에 대한 뉴스타파의 질의에 대해 특별히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전해왔다.


촬영 김기철, 신영철
편집 윤석민

목, 2017/02/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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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들은 다 가기 싫다고 했고, 다정한 사람들은 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른 길을 떠납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지난달 25일 춘천지방법원장 근무를 마감하며 도종환 시인의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이라는 시를 인용했다. 김 후보자는 “누구나 힘들어하는 길이기에 어쩌면 더 의미 있는 길인지도 모르겠다”며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은 전혀 다르지만, 여러분을 믿고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모르지만 나서보겠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은 과연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대법관 출신이 아닌 세 번째 대법원장이 되는 김 후보자의 대법원장 인선을 놓고 사법부 내에서는 ‘환영’과 ‘충격’으로 반응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사진: 연합뉴스)

김 후보자가 양승태 현 대법원장보다 13기수 후배라는 것부터 이번 인선은 파격으로 평가 받는다. 현직 13명의 대법관 중 9명이 기수상 선배이기도 하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 수장 후보가 됐다는 점도 주목을 받고 있다. 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대법관 출신이 아닌 세 번째 대법원장이 된다. 1948년 초대 대법원장에 오른 가인 김병로 선생을 제외하면 1961년 조진만 대법원장 배출 이후 48년만의 일이다. 조 전 대법원장의 경우 앞선 1951년 법무부장관 등을 역임했음을 감안하면 일선 법원장이던 김 후보자의 발탁이 어느 정도 파격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김 후보자는 청렴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법원 공식 행사 외에는 관용차를 타지 않고, 16년 된 2001년식 SM5 자가용을 직접 운전해 다닌다. 대법원장 지명 후 양승태 대법원장 면담을 위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방문할 때는 춘천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는 시외버스를, 서울 시내 이동은 지하철을 이용해 혼자 움직여, ‘BMW(Bus-Metro-Walkㆍ버스와 지하철, 걷기)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춘천지법원장 이임식을 마친 뒤에도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서울로 향했다. 조수석에는 19년을 함께한 반려견이, 뒷좌석에는 김 후보자의 부인 이혜주씨가 앉아 배웅 나온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김 후보자의 대법원장 인선을 놓고 사법부 내에서는 ‘환영’과 ‘충격’으로 반응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을 취임하면 사법부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관건은 가뜩이나 보수적인 사법부 내부의 저항을 김 후보자가 어떻게 돌파해 낼 것이냐다. 김 후보자는 “31년 5개월, 법정에서 재판만 해 온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보여주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법관회의
6월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각급 법원의 대표 판사들이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열고 있다. 법원행정처 소속 고위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계기로 열린 이 회의에서는 사안을 조사한 법원의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평가와 연루자의 책임 규명, 사법행정권 남용 재발방지 개선책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연합뉴스)

“난 31년 재판만 한 사람… 어떤 수준인지 보여드리겠다”

김 후보자는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를 졸업해 서울대 법학과로 진학했다.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이 고교 동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고교 3년 후배다. 양승태 현 대법원장보다 13기나 아래인 사법연수원 15기로, 사법시험 동기 가운데도 정치권 핵심 인사들이 유독 많다.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유기준 한국당 의원, 주중대사를 맡았던 권영세 전 의원, 김기현 울산시장 등이 거론된다.

그렇다고 정치권과 특별한 인연이 있지는 않다. 오로지 판사의 길 한 길만 걸었다. 김 후보자는 1986년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를 시작 법관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1999년부터 3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잠시 자리를 옮긴 것을 제외하면 30여년 법원 생활 내내 법정을 떠나지 않았다.

김 후보자는 특히 법원 내 민사법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 법원행정처가 ‘법원실무제요’를 펴낼 때 민사편(민사실무제요) 발간위원으로 참여해 원고 집필을 주도했다. 민사실무제요는 민사재판을 맡는 법관과 법원 직원들을 위한 실무지침서로 정석과도 같은 필독서로 분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경력은 김 후보자에게는 자부심이고, 의지의 원천인 듯하다. 김 후보자는 8월 22일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직후 “31년 5개월 동안 법정에서, 그것도 사실심(1, 2심)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해 온 사람”이라며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이번에 보여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진보 성향 판사의 ‘대부’… 사법민주화 주도

김 후보자는 법원 내 대표적 진보 인사로 꼽힌다. 진보성향 판사모임이라는 수석어가 붙는 법원 내 연구단체 ‘우리법연구회’의 일원이라는 이유가 크다.

박시환-법률신문
김명수 후보자는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자로 하마평에 함께 올랐던 박시환 전 대법관보다 더 강한 개혁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사진:법률신문)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사법부 개혁의 도화선이 됐던 이른바 ‘제2차 사법파동’ 이후 만들어졌다. 제2차 사법파동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전두환 군사정부 시절 임명된 김용철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판사 300여명이 사법부 독립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며 이에 맞서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대법관 전면 개편을 포함한 사법부 민주화와 과거 시국사건과 관련한 정치적 판결에 대한 법원의 자성 필요성 등을 주장했다. 이에 김 대법원장이 성명서 발표 이틀 만에 자진 사퇴하면서, 사법개혁의 물꼬가 트이게 된다.

김 후보자는 2004년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참여정부 때로, 우리법연구회가 전성기를 맞은 시기다. 창립 회원인 강금실 판사는 법무장관으로, 박범계 판사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초대 회장 박시환 판사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박 전 대법관은 이번 대법원장 인선 과정에서 김 후보자와 함께 하마평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우리법연구회는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보수진영으로부터 ‘법원의 하나회’라는 정치공세에 시달리다 2010년 결국 해산 수순을 밟는다.

김 후보자는 이후에도 진보 판사의 대부로서 역할을 이어간다. 우리법연구회 후신 격으로 만들어진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초대ㆍ2대 회장을 지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유엔 국제인권법 매뉴얼 한국어판을 발간했고,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함께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첫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독점 문제를 제기하며 8년 만에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를 주도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ㆍ소수자 배려하는 판결로 정평

김 후보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판결을 많이 내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합법노조 지위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린 2015년 11월 판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전교조는 해직교원이 가입됐다는 이유로 법적 지위를 박탈하려는 고용노동부와 소송전을 벌이고 있었다. 2심까지 법원은 전교조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 해 6월 대법원은 노동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서울고법 행정10부 재판장으로 파기환송심을 맡은 김 후보자는 대법원의 결정과 달리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효력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를 깨고 독립적 결론을 내린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이와는 별개로 진행중인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은 법원이 판단을 미루며 현재 500일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노동기구(ILO) 등은 전교조 법외노조 등과 관련해 국제노동기준에 어긋나는 법 조항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양승태-한겨레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사법부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김명수 개혁’은 사법부에 많은 상처와 논란을 불러온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청산과 혁신으로 나타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한겨레신문)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가 2015년 조창희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회장을 해고한 사건에 대해서도 무효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삼성에버랜드는 노조활동을 위해 직원 개인정보를 외부 이메일로 전송한 것을 문제 삼았지만, 김 후보자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2011년에는 5공화국 대표적 공안 조작 사건인 ‘오송회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와 가족에게 국가가 150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시대에 맞는 대법원장” 자신감… 사법부 내 개혁 저항 난제

이런 김 후보자에 대해 법조계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무엇보다 대법원장 후보자로 하마평에 함께 올랐던 박시환 전 대법관보다 더 강한 개혁 성향을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사법개혁을 바라는 법관들은 김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면 고법 부장판사 이상 고위직을 중심으로 법조계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법관들은 김 후보자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후보자가 법관의 관료화 문제를 주요 개혁 과제로 꼽고 있다는 점이 고위직 법관들이 반발하는 한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근무평정을 하는 법원장이나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하기가 쉽지 않고, 상급심 판결에 반하는 판결을 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법원 내 문화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법원 내 기득권 구조를 깨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보수적인 사법부 내부의 반발을 극복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도 놓여 있는 셈이다.

김 후보자는 하지만 사법부 안팎의 우려와 관련해 “이 시대에 맞는 대법원장”이라며 자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김 후보자는 1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판사는 소송당사자들의 주장과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보편타당한 원칙을 기초로 분쟁의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가는 사람”이라며 “저 역시 판사로서 다양한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개인의 기본권 보장과 소수자 보호라는 사법의 본질적 사명에 충실했을 뿐,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생각을 가져 본 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이 된다면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전관예우의 원천적 근절과 공정한 재판에 대한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 권위 같은 것은 모두 내려놓고 그야말로 여태까지 재판 중심 사법행정 되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잡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목, 2017/09/1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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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헌정유린’ 연이은 폭로, 참담하다

양승태 대법원장 등 사법부 ‘일상적 사찰’ 의혹 진상 규명돼야
‘정윤회 국정개입’ 무마한 검찰수사, 김수남 검찰총장 사퇴해야


어제(12/15) 최순실 국정농단 4차 청문회에 출석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양승태 대법원장, 당시 춘천지법원장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사찰 문건 공개했다. 이는 박근혜 정권이 사법부를 감시하고 통제하려 한 정황을 드러낸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영한 ‘비망록’과 일맥상통한다. 연이은 폭로가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부 하에서 수호하고자 한 헌법 정신이 있기는 했는지 분노를 넘어 참담할 따름이다. ‘피의자’일뿐만 아니라 헌법수호라는 대통령 의무를 져버린 박근혜씨는 지금 당장 퇴진해도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에 부족하다.

 

조한규씨는 <대법원, 대법원장의 일과 중 등산 사실 외부 유출에 곤혹>, <법조계, 춘천지법원장의 대법관 진출 과잉 의욕 비난 여론>이라는 제목의 문건 2개를 공개했다. 해당 문건의 작성 경위, 보고라인 등 진상규명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박근혜 정권 하 어느 기관이 어떤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해 어떤 경로로 청와대에 전달했는지, 청와대는 정보를 어떤 식으로 이용했는지 등이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 특히 만약 국정원이 주요 인사를 사찰하고 국내정치에 개입하려 했다면 이에 대한 문제 또한 덮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문건 작성자가 청와대이든 국정원이든 박근혜 정권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 문건의 내용이 ‘일상적 동향보고’라는 식의 물타기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청와대이든 국정원이든 박근혜 정권이 법관의 ‘일상’에 대해 알아야하고 수집해야 할 법적 필요성도 근거도 없다. 오히려 ‘일상적 동향보고’까지 이뤄진 것은 사찰이 일상화되었다는 반증이다. 무엇을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했는지, 실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특히 춘천지법원장 사찰이 대법관 인선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 위해, 비망록에 언급된 것처럼 검사 출신을 대법관으로 임명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는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

 

조한규씨는 다름 아닌 2년전 <정윤회-십상시(十常侍) 회동(2014년 1월 6일자)> 문건을 폭로한 세계일보 사장으로 당시 이로 인해 해임된 인물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문건 내용은 찌라시, 유출은 국기문란’이라는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검찰은 하명 받은 그대로 ‘정윤회 문건’의 진상이 아닌 ‘문건 유출’혐의만 그야말로 탈탈털기 수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문건 유출 혐의를 받은 최 모 경위는 자살을 했고, 검찰은 박관천 전 경위에게 10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문건 내용의 핵심인물인 정윤회 경우 단 한차례 소환조사로 마무리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장 김수남은 현재 검찰총장이 되었으며, 우병우는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승진했다. 박근혜 정권이 헌정을 유린하고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2년이나 더 지속되고 이제야 알려진 것에 대해 검찰의 책임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도 공범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책임지고 사퇴해야 마땅하다.

 

 

 

금, 2016/12/16-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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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이전 칼럼 바로가기]

 

06. 15.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 / 곽노현

06. 21. ② 제주해군기지 사건과 환경민주주의 / 김필성

06. 28.  '시효' 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 / 이상희

07. 05. ④ 정리해고 앞에서 한낱 '생산요소'에 불과한 노동자들 / 김태욱

07. 12. ⑤ 키코(KIKO) 사건 판결의 재조명 / 박선종

07. 24. ⑥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부정한 시대착오적인 판결 / 임재홍

 

[광장에 나온 판결] 문인간첩단 사건(2015.1.22.선고 2012다204365판결, 전원합의체)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박보영, 조희대, 권순일, 김신, (다수의견)/ 이상훈, 김용덕, 고영한(주심), 김창석,  김소영(소수의견)

 

대법원, 민주화의 이름으로 비수를 꽂다

 

변호사 조영선 

 

너무도 짧은 봄날

 

대법원 긴급조치 제1호 위헌판결(2010.12.16.선고 2010도5986 판결)은 1970년대 유신긴급조치 시대에 대한 첫 사법적 단죄였다. 긴급조치를 발동할 상황도 목적도 아니었고,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권연장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음이 30년 넘어 때늦게나마 확인된 것이다. 과거 긴급조치 정찰제 판결을 했던 사법부가 비로소 자기 판결로써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몸부림을 한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과거 한국전쟁 전후 울산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기존 판례를 변경하면서 피고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배척한 뒤 유족들의 국가배상청구를 인용하였다(대법원 2011.6.30.선고 2009다72599판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긴급조치 사건, 재일동포 사건 등 많은 과거사 문제의 법률적 쟁점이었던 소멸시효, 법률의 위헌 여부, 입증정도 등에 관한 대법원의 전향적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봄날은 너무도 짧았다. 

 

2011. 9.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출범하다 

 

울산보도연맹 사건 이후 법원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결정이 있은 때까지를 시효중단으로 보고 3년 시효를 적용하여 피고 대한민국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진도 민간인 학살사건(2013.5.16. 선고 2012다02819 전원합의체)에서 법적 근거도 없이 소멸시효를 6개월로 단축하는 한편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도 진화위 결정 후 3년으로 판시함으로써 퇴행의 전초를 마련하였다. 결국 고문ㆍ폭행, 증거 조작에 의해 파출소장 딸을 강도ㆍ살인하였다는 누명을 쓴 채 15년을 산 피해자는 국가로부터 단 한 푼의 국가배상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이른바 1970년대 여성 노동조합운동의 상징이었던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2014.3.13.선고 2012다45603판결)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재판상 화해규정을 적용하여 기각하였다. 이후 원풍모방 노동자 사건(2014.4.30.선고 2012다202192판결), 문인간첩단 사건(2015.1.22.선고 2012다204365판결, 전원합의체, 이하 ‘비평대상판결’이라 한다), 그리고 백기완 사건(2015.7.23.선고 2015다212695판결) 등 수많은 긴급조치 사건에서 국가배상 책임을 현재까지 부인함으로써,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더욱이 대법원(2015.3.26.선고 2012다48824판결)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써,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에 따른 국가배상 책임마저 부인하였다. 이로써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이유로, 민주화보상법상 재판상화해규정에 의해 이중 삼중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대부분 국가배상 청구를 부인당하고 있다. 말하자면 긴급조치가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이 연출한 과거사 퇴행의 백미라 할 것이다. 

 

대법원, 민주화의 이름으로 비수를 꽂다


비평대상판결 다수의견은 민주화운동관련자가 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위자료를 포함하여 그가 보상금 등을 지급받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고 판단하였다. 즉 위원회가 결정한 보상금을 받았다면 그 이후에는 추가적으로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어떤 피해보상도 더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상금 지급 이후 원고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아 그 억울함이 밝혀졌더라도 말이다. 

 

애초에 민주화보상법은 2010. 1. 12. 제정할 때, 5.18 보상법과 동일하게 진상규명과 실질적 보상을 전제로 재판상화해규정을 두었던 것인데, 5.18보상법과 같은 실질적 보상은 되지 않고 재판상 화해 규정만 삭제되지 않은 채 유령처럼 남게 된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2013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화보상법상 재판상 화해 주장을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서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피고 대한민국이 보다 본격적으로 주장하고, 법원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사실 피해자는 민주화보상법에 의한 보상청구 당시 나중에 형사재심과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비평대상판결 소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피해자가 보상금 등을 받았을 때 나중에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무죄가 선고되는 사정이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가 그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하였더라도,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에 의한 복역 등으로 입은 정신적 손해까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타당하다. 소수의견은 적어도 동의 이후 재심무죄,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사정까지 포함해서 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므로 이후의 정신적 위자료 청구까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보상법에 의하면 변호사 등 전문직, 일정 직급 이상 공무원, 일정소득 수준 이상의 피해자들은 보상 등을 받을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곤궁하여 보상금 등을 받은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여유가 있는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역차별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재판상화해규정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곤궁한 피해자들은 대한민국으로부터 ‘알량한’ 몇 푼 보상 등을 받고 국가배상청구권을 빼앗긴 것이다. 

 

보상과 배상이 헌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다른 성격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비평대상판결 다수의견은 위헌적인 민주화보상법 재판상 화해규정을 형식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등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재판상화해, 헌법재판소에서 잠자다 

 

그래도 용기 있는 판사는 있기 마련이다. 지난 2014.6.11. 서울중앙지방법원(2014카기50515결정)은 ‘재판상 화해규정은 합리적 이유 없이 과도하게 재판 및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고, ‘실질적 보상 없이 생활지원금 5천만 원 한도에서 지급하면서 재판상화해까지 적용하는 것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면서 헌법재판소에 재판상 화해규정에 대한 위헌심사를 제청하였다.

 

그런데 굳이 ‘용기’라고 하는 것은 2013년 이래 대법원의 위와 같은 퇴행적, 반역사적 판결에 대해 하급심의 침묵이 너무도 길기 때문이다. 손꼽을 몇 개의 판결을 제외하고 누구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며 대법원 판결에 대들지 않았다.  

 

결국 민주화보상법 상 재판상화해규정의 위헌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지게 될 것이다. ‘용기 있는’ 재판부가 위헌제청을 한지 3년이 넘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헌법재판소의 ‘용기(?)있는’ 전향적 결정을 학수고대한다. 

 

*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다른 법률에 따른 보상 등과의 관계 등) ② 이 법에 따른 보상금등의 지급 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경우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

 

 

 

 

목, 2017/07/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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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말 당시 기업 […]
수, 2017/09/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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