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복지운동단체네트워크의 제안사업이었던 지역복지기준선 도입은 경기도에서도 ‘복지 균형발전 기준선’이라는 명칭으로 경기복지재단의 연구팀이 연구 과제를 수행하게 되었고 1년 5개월만인 지난 3월, 결과물이 빛을 보게 되었다. 도민의 복지욕구를 파악하기 위해 31개 시·군의 약 3만 1천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였고 조사자료를 토대로 시·군간 복지 격차를 완화해줄 수 있는 31개 시·군별 기준선과 각 기준선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과제를 제안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 방향 논의를 위한 포럼, 시·군 공무원과 연구 협조 회의, 권역별 공무원 의견수렴, 영역별 시·군 및 외부기관 행정통계 자료수집 및 분석, 경기도민 복지 욕구 실태조사 및 분석, 영역별 기준선(안)에 대한 자문회의, 도민공청회, 전략과제 자문회의, 맞춤형 전략과제 수립을 위한 정책토론회, 찾아가는 시·군 토론회 등의 과정에 지역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 경기복지시민연대
복지기준선 연구를 영역별로 보면 소득 7개, 일자리 7개, 주거복지 9개, 노인돌봄 8개, 장애인돌봄 8개, 건강 9개, 복지인프라 4개 등 총 52개의 전략을 제시하고 있으며 영역별 예산으로 일자리 영역 2,070억 원(국비 1,417억 원 포함)으로 가장 많고, 재원별로는 경기도가 총 3,760억 원(도비 1,918억 원, 시·군비 1,842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산출되었다. 전략과제 소요예산을 경기도 중기지방재정계획과 비교해보면 전략과제 소요예산이 중기재정계획의 부문별 예산증가율보다 낮아 재정적으로도 가능함을 제시하고 있다. 기준선 및 전략과제 추진을 위한 행정계획으로 “경기도 사회보장격차해소에 관한 조례” 개정 등 법적 기반 마련을 제시하고 있으며 조례에는 복지격차에 대한 실태조사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3년 주기로 실태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또한 기준선 도달을 위한 전략과제의 실행력을 담보하가 위해 법정계획인 ‘지역사회보장계획과의 연동’을 시·군에 권고하고 있다. 그 외 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도모하기 위해 경기도 복지균형발전 센터를 설치하여 31개 시·군 간 사회보장 격차해소를 위해 역할을 할 수 있게 제도개선을 제안하고 있다. 향후 과제로 복지서비스 수요자인 도민이 누리는 복지수준이 경기도가 정한 복지기준선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의 정도를 평가하기 위한 지표 개발을 계획 중이다.
전북희망나눔재단_
복지확대와 복지권 실현을 위한 각 정당 대선 복지공약 관련 토론회
복지확대를 위해서 필수 선결과제인 증세문제와 지방을 살리는 복지정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차별화도 재원 마련 방안도 없는 부실 공약!
전북희망나눔재단은 지난 20일(목) 전라북도의회 1층 세미나실에서 ‘복지확대와 복지권 실현을 위한 각 정당 대선 복지공약 관련 토론회”를 진행했다. 2017년 대선은 촛불민심을 이어받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국민적 요구와 관심이 집중된 대선이다. 이번 토론회는 얼마 남지 않은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에서 내건 복지공약에 대해서 정당 관계자의 입장을 들어보고 국민들과 전북지역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복지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였다. 또한 지역차원에서 시민사회를 비롯한 의회와 사회복지 전문가,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복지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해서 토론하였다.
이날 토론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5.9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 후보들이 제시하는 복지 공약이 차별화되지 못하고 이념대결의 프레임에 갇혀 소신 있는 정책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복지공약의 대부분이 지난 정부에서 지켜지지 않았던 현안사업과 현재 진행 중인 사업들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유력 후보들의 재원 마련 방안이 부실한 만큼, 각 정당 후보들이 실질적인 복지확대를 위해서는 조세저항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재원마련을 위한 증세 방안을 구체적으로 약속해야 한다. 또한 현재의 복지공약만 놓고 본다면 각 정당의 공약이 이슈 중심의 피상적 수준으로 예산과 실행계획이 결여돼 책임성과 실천가능에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이어서 각 정당들이 표를 얻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복지공약을 내세우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서, 실질적인 복지공약이 될 수 있도록 유권자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정부와 대선 후보들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각 정당에서 전북이나 충청, 강원 지역과 같이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역부터 예산이 먼저 배정되고 집행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선 후보들과도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번 조기대선은 엄동설한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나라건설을 위해 촛불을 든 국민들이 만든 대선임을 다시 한 번 잊지 않고, 촛불 국민의 염원이 담긴 개혁과제를 어떻게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평가받는 대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당일 토론회는 전북희망나눔재단 양병준 국장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더불어민주당 정호영 의원(전라북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전라북도당 대변인), 국민의당 최인정 의원(전라북도의회, 국민의당 전북 선대본 대변인), 정의당 오현숙 위원장(정의당 전라북도당), 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최낙관 교수, 전북희망나눔재단 서양열 운영위원장이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바른정당에 참여를 요청하였으나 바른정당 전라북도당은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_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캠프 초청 복지정책 토론회 개최
ⓒ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대전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는 지난 4월 28일(금)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대선후보들의 복지정책을 듣고 평가하는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캠프 초청 복지정책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이경희 후보캠프에서 참여했다. 그동안 관심사였던 노인기초연금, 아동수당, 부양의무제 폐지 등이 이경희 후보를 제외한 각 후보들의 공통공약이었다.
기초연금과 관련해 문재인 후보는 '소득하위 70%이하 노인, 기초연금 30만원 지급', 안철수 후보는 '소득하위 50%이하 노인, 기초연금 30만원 지급', 유승민 후보는 '소득하위 50%이하 노인, 기초연금 차등적 인상'을, 심상정 후보는 '모든 노인에 30만원 지급'을 내세웠다.
아동수당 지급에 대해 문재인 후보는 '5세 이하 아동 월 10만원 지급부터 시작, 단계적 인상', 안철수 후보는 '소득하위 80%이하 가구, 11세 아동에게 아동수당 지급 도입', 유승민 후보는 '가정양육수당 2배 인상 및 초등학생-고등학생 자녀 1인 10만원 지급', 심상정 후보는 '모든 아동 월 10만원 지급'이 공약이었다. '부양의무제 폐지'에 있어서는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 모두 '폐지'를 약속했다. 상대 후보의 좋은 공약을 뽑아달란 질문에 유승민 후보의 '돌발노동금지' 심상정 후보의 '노동복지부총리제'와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로 전국민산재안전망 구축'이 뽑혔다.
대전, 대구, 광주지역 NGO 등록현황을 상호 비교해 보고, 활동차이 역량을 비교분석해 보고자, 해당지역 자치단체 홈페이지에 공개되어있는 비영리민간단체 등록현황 자료를 참조하여 아래 <표>와 같은 재구성하여 분류해 보았다. <표-1>에서의 「비영리민간단체의 분류」는 지방정부에 등록되어있는 비영리민간단체에 대해 ‘단체의 기능’ 및 ‘활동목적(활동방법, 조직의 형태, 주요사업 내용 등)’ 등을 감안하여 총 17개 분야로 분류해본 것으로, 이는 각 지역 NGO의 특성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기준으로 대전, 대구, 광주시 등 세 곳에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의 활동영역을 분류해보면 아래 <표-1>의 오른쪽과 같이 나타난다.
<표-1> 지역의 비영리민간단체 분류
구 분
대전(15.12 기준)
대구(14.12 기준)
광주(15.12 기준)
507개
100.0%
378개
100.0%
583개
100.0%
기능별 분류
① 주창(대변)
21
4.1
16
4.2
21
3.6
② 민중
4
0.8
3
0.8
7
1.2
③ 국민·생활
142
28.0
136
36.0
145
24.9
④ 직능(이익)
3
0.6
4
1.1
6
1.0
⑤ 친목·자원봉사
92
18.1
52
13.8
52
8.9
⑥ 근린운동
12
2.4
4
1.1
8
1.4
활동분야별 분류
⑦ 복지서비스
119
23.5
71
18.8
150
25.7
⑧ 보건·의료
6
1.2
-
-
6
1.0
⑨ 교육·평생교육
21
4.1
14
3.7
17
2.9
⑩ 문화예술
24
4.7
24
6.3
103
17.7
⑪ 종교
6
1.2
1
0.3
7
1.2
⑫ 과학기술
4
0.8
-
-
2
0.3
⑬ 도시(교통)
7
1.4
4
1.1
7
1.2
⑭ 안보
25
4.9
38
10.1
12
2.1
⑮ 지역경제지역발전
5
1.0
2
0.5
10
1.7
⑯ 국제교류
11
2.2
4
1.1
12
2.1
⑰ 지방자치지역정치
4
0.8
3
0.8
16
2.7
⑱ 기타
1
0.2
2
0.5
2
0.3
2. 대전광역시 등록 비영리민간단체 현황
대전광역시에 등록된 507개 비영리민간단체의 활동영역을 분류해 보면 ‘국민·생활(142개, 28.0%)’, ‘복지서비스(119개, 23.5%)’, ‘친목·자원봉사(92개, 18.1%)’ 분야에 가장 많은 단체가 활동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안보(25개, 4.9%)’, ‘문화·예술(24개, 4.7%)’, ‘주창(21개, 4.1%)’, ‘교육·평생교육(21개, 4.1%)’ 분야 순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과학기술(4개, 0.8%)’, ‘지방자치·정치(4개, 0.8%)’, ‘지역경제·발전(5개, 1.0%)’, ‘보건·의료(6개, 1.2%)’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전지역 NGO 단체는 소수에 그쳤다. 특히 가장 많은 NGO 단체가 포함된 ‘국민·생활’, ‘복지서비스’, ‘친목·자원봉사’ 분야를 모두 합칠 경우 69.6%로 나타나, 대전지역 시민사회의 행위 주체인 지역NGO의 양적성장이 국민운동단체(관변 단체)나 소비자, 사회복지, 자원봉사 등의 몇몇 특정분야를 중심으로 양적 성장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들 단체 중에 정부 또는 지방정부의 재원지원에 의존하여 활동하고 있는 국민운동단체(관변 단체)나 소비자, 환경보전, 생활체육 등의 단체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비영리민간단체의 분야별 분포라고 볼 수 없다. 더욱이 지방자치와 시민의 삶의 질과 밀접히 관련을 맺고 활동을 해오고 있는 순수 시민단체 영역이나 과학도시에 부응하는 과학기술 관련 지역NGO단체가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난 것 또한 과학도시 대전이라는 위상에 반하는 결과이며, 지방자치 발전과 건강한 시민사회 형성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교육·평생교육’ 분야의 지역NGO의 분포 비율이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적었지만, 대구·광주지역 보다 다소 높은 분포를 보이고 있는 배경에는 그동안 대전광역시가 강조했던 ‘평생학습도시’와 ‘사회적 자본’의 결과로 이해된다. ‘근린운동’ 분야 또한 지난 수년간 순수 민간단체의 주도로 추진되었던 ‘작은도서관만들기 운동’과 ‘마을만들기 운동’의 산물로 보여 진다. 이렇듯 지역정치의 특성이라는 보편적인 배경이 지역NGO의 형성과 발전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지역정치의 특정 변수에 의해서도 지역NGO의 형성 발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3.대구광역시 등록 비영리민간단체 현황
조사대상 3곳 가운데 인구규모가 가장 큰 대구광역시는 본 조사대상 지역 세 곳 가운데 가장 적은 378개의 비영리민간단체만 등록되어 있었다.이들 단체를 활동영역별로 분류해 보면 ‘국민·생활(136개, 36.0%)’ 분야에 가장 많은 NGO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복지서비스(71개, 18.8%)’, ‘친목·자원봉사(52개, 13.8%)’, ‘안보(38개, 10.1%)’ 분야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대구지역 또한 지방자치, 지역경제, 교육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 단체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과학기술’ 및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 단 한 개의 지역 NGO도 활동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대전지역의 비영리단체 분야별 분포도와 비교했을 때 ‘복지·서비스’ 분야와 ‘친목·자원봉사’ 분야는 대전보다 과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활동재원의 상당부분을 정부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국민·생활(36.0%)’분야와 ‘안보(10.1%)’분야가 과대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대구지역의 비영리민간단체 분야별 분포의 특성을 확연히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과는 앞의 1절에서 살펴본 대구지역의 정치·사회적 맥락인 패권적지역주의 특성, 보수적인 지역정서, 폐쇄적인 지배구조 등의 대구지역 정치의 특성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곽현근(2010: 203)에 따르면 정부역할과 권한이 지나치게 확산 되었을 때 시민사회 영역이 축소된다는 주장을 상기해 볼 때 대구지역의 비영리민간단체의 총량이 대전이나 광주지역보다 작게 나타난 것은 대구 지역정치의 특성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유추 할 수 있다.
4. 광주광역시 등록 비영리민간단체 현황
광주광역시의 비영리단체민간단체 등록현황을 살펴보면, 총 583개로 세 지역 중에 가장 많은 NGO 단체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앞의 대구지역 비영리민간단체 등록현황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광주지역 NGO의 가장 큰 특징은 대전·대구지역에서는 ‘국민·생활’ 분야가 가장 많은 분포를 보였으나 광주지역의 경우, ‘복지서비스(25.7%)’ 분야에 가장 많은 NGO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특히 대전·대구지역에서는 ‘문화·예술’ 분야가 각각 4.7%, 6.3%에 그칠 만큼 미미했으나, 광주지역에서는 17.7%로 대전, 대구지역보다 3∼4배 높게 나타났다. 이는 광주 지역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아시아의 문화중심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특징이 비영리민간단체의 설립과 성장, 활동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외에도 ‘안보(2.1%)’ 분야가 대전(4.9%), 대구(10.1%) 보다 상대적으로 낮게 분포하고 있다는 점과, 도표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5.18 단체 등 민주주의와 관련한 단체만도 30여개가 등록되어 있는 것도 광주지역만의 비영리민단체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광주지역이 대전이나 대구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방자치·정치(2.7%)’, ‘민중(1.2%)’ 분야의 지역NGO 분포비중이 높은 것도 광주지역 비영리민간단체 활동영역 분류과정에서 확인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5. 결론
본 조사는 인문·사회적으로 공간화 된 지역NGO의 성장과 활동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필자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런 필자의 문제의식을 해소하는 것은 지역NGO만의 각종 변수들 간에 국한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본 원고에는 기술하지 못했지만, 문헌연구를 통해 역사적 제도적 맥락에서 중앙정치의 특성이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물론, 지역NGO의 성장과 활동에도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전, 대구, 광주지역 NGO의 성장과 활동에 적지 않은 차이도 발견했다.
이번 조사는 필자의 박사학위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이런 조사결과가 시사 하는바는 지역NGO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역사회 등의 외부에서 찾는 단견과 편협함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역NGO 모두 동떨어진 별개의 영역이 아닌 상호 결합되어 있는 정치과정임을 명심하고, 지역NGO 스스로 끊임없이 자각하고 바람직한 역할 모색을 통해 성장·발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시민운동의 위기라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지역NGO 스스로 그동안의 적대적, 저항적인 운동 방식에서 탈피, 협력적이고 생산적인 운동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핵심 축에 지방자치를 토대로 하는 지역사회와 지역NGO의 새로운 관계와 역할을 모색하는데 있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또한 지역NGO 스스로 회원 및 재정 등의 자원의 안정적인 조달을 비롯하여, 전문성제고와 지역정책 결정과정에서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시민참여 활성화와 지역사회 네트워크의 적극적인 구축 등의 노력과 더불어 조직민주주와 투명성, 도덕성 등의 확립을 통한 지역구성원들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NGO의 재구조화 노력 또한 부단히 경주해야 할 것이다.
각 정당의 대선 후보로 유력한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심상정 5자 구도로 조사하면 지지율은 12%까지 뛰어오른다. 같은 보수 계열 후보인 유승민(5%)을 2배 이상 따돌렸다.
적어도 자유한국당 지지자를 비롯한 보수층에게 그는 진짜 좌파 세력과 대결할 마지막 ‘스트롱맨’이자 ‘희망’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성완종 게이트에서 기사회생
몇 달 전만 해도 홍 지사의 이런 행보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1억원을 받았다는 혐의에 휘말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으면서 도지사직은 물론이고 정치생명까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로 몰렸다.
경남 도민들은 그의 독선적 도정운영과 ‘성완종 리스트’ 연루를 문제 삼아 주민소환까지 추진했다. 모든 것은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갔다. 주민소환은 겨우 0.31%의 유효서명이 부족해 무산된다. 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다.
‘만사구비지흠동풍(萬事俱備只欠東風).’
홍 지사는 2심 승소 후 페이스북에 이런 고사를 올린다. 적벽대전을 앞둔 제갈량이 주유에게 ‘모든 조건이 갖춰졌고 가장 중요한 동풍만 남았다’고 한 말이다.
무죄 판결이 그에게 진짜 ‘동풍’으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홍 지사는 ‘동풍’이라 믿고 불붙인 화살을 잰 활시위를 당겼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저승에 가면 성완종이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고 했고, 자신이 연루된 것을 친박의 음모라고도 했다. 2015년 4월 자살한 성완종의 메모에는 ‘홍준표 1억’이라는 메모가 남아 있었다. (사진출처:http://m.kukinews.com/)
그는 ‘천하대란에는 크게 통치해야 한다’는 대란대치(大亂大治)의 지혜를 발휘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절망과 무력감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밝혔고, 딱 한 달하고 이틀 뒤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홍 지사는 “내가 밋밋한 대선후보에 머물렀으면 나한테 기회가 없었을지 모른다”며 성완종 게이트 연루가 일종의 기회가 됐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성완종 리스트 유죄 시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자살을 검토하겠다” “문재인은 별 거 아니다. 토론하면 10분 안에 제압한다” 홍 지사는 본래도 좋게 말하면 거침없는 화법, ‘막말’로 유명했지만 대선 출마를 전후해서는 더 거칠 것 없다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빗대 ‘홍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다. 지난 24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인 김어준은 “지사님이 출연하자 욕 문자가 폭발하고 있다, 역대 최고다”라고 말했다.
홍 지사는 맞받아친다. “그거는 집에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욕을 하니까 전혀 괜찮다. 트럼프가 그렇게 비호감이라도 대통령됐다.”
몸으로 기억하는 가난
“(당 대표가 돼) 이제 중심에 섰지만 치열했던 ‘변방 정신’을 잊지 않겠다.”
2011년 홍 지사가 한나라당 당 대표에 선출됐을 때 한 말이다. 홍 지사는 늘 본인이 권력과 힘도 없고, 조직도 없고, 변방에 머물러 왔다고 말한다.
그는 ‘흙수저’였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가난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친 몸과 아픈 시간으로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서민대통령’을 표방할 수 있었던 이유다.
홍 지사는 1954년 12월 경남 창녕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당 800원을 받고 현대조선소 앞 백사장에 적재된 철근 쇳조각을 지키는 일을 했다.
어머니는 ‘달비’(부녀자의 머리카락) 장사를 했다. 어머니가 고리채를 갚지 못해 사채업자에게 길거리에서 머리채를 끌려 다니는 광경도 목격해야 했다.
1. 1977년 2월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를 졸업할 당시의 모습 2. 어린 시절 누이와 함께 찍은 사진. 3. 중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4. 고대 법대 1학년 시절의 모습. (사진출처: http://m.kukinews.com/)
낙동강변 하천 부지에 살아 여름철 장마 때면 집을 떠내려 보내야하기도 했다. 양식이 없어 3일 동안 굶기도 했다고 한다. 먹고살 게 없어 가족들이 리어카 하나에 전 재산을 싣고 영남 일대를 돌아다녔다.
가난했지만 공부에 뜻을 두고 큰 도시인 대구로 올라가 영남중에 진학한다. 점심 도시락을 싸 갈 형편이 못 돼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성적이 좋았지만 당시 명문고로 꼽히던 경북고로 가지 않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영남고로 진학한다.
육군사관학교 진학도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장물인 비료를 매수했다는 누명을 쓰는 것을 보고 법대에 진학해 검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고려대 법대에 진학해서도 일주일 내내 과외를 해서 겨우 학비를 마련했다. 그런 와중에 잠시 운동권에 몸담기도 했다. 여러 차례 총학생회의 지하 유인물을 작성해주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죽도록 맞고 풀려나기도 했다.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때는 선후배 돈을 모아 격려 광고를 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대학 시절에는 학교 구내 은행에서 일하던 여직원에게 반해 프로포즈를 했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도 한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의 모습. 홍준표 지사의 아내는 당시 은행의 말단직원이었다.
사법시험에도 몇 차례 응시했지만 합격은 하지 못했다. 시험에 떨어진 어느 겨울밤 아버지가 있는 울산에 내려갔다가 바닷가 모래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있는 ‘일당 800원짜리 경비원’ 아버지의 등판을 보고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단기사병 복무까지 마친 뒤인 1982년, 스물여덟 살의 일이었다.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
청주지검 초임 검사 시절 그는 이름을 ‘판표’(判杓)에서 ‘준표’(準杓)로 바꾼다. 훗날 국회의원이 되는 이주영 당시 청주지법 판사가 ‘칼 도’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좋지 않다고 개명을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개명이 쉽지 않았던 터라 이주영이 당시 지원장에게 ‘판관의 표상’이라는 이름 때문에 판사처럼 행동한다며 설득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마침 새로 바꾼 ‘세인의 표상’이란 뜻의 이름은 이후 그가 검사로서 유명세를 탈 것을 예고했는지도 모른다.
1988년에는 전두환의 외조카인 김영도가 모 기업인에게 석방을 조건으로 뇌물수수를 받은 사실을 적발해 구속 기소했다.
광주지검 강력부 시절에는 각종 협박과 로비에도 굴하지 않고 광주지역의 조직폭력배인 국제PJ파를 일망타진한다. 그는 지역정치인, 언론까지 나서 ‘조폭’을 비호할 정도로 복잡하게 연계돼 있었던 이 사건 수사에서 큰 고생을 겪는다.
그러고 나서 ‘검사 혼자 뛰어선 안 된다’며 언론이나 여론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또 그때부터 술집과 유흥가에 조폭이 연관된 것을 알고 나서는 여성 접대원이 나오는 술집은 안 가게 됐다고 한다.
서울지검 검사 시절에는 정덕진의 ‘슬롯머신 사건’을 맡아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을 구속 기소해 명성을 얻었다.
검사시절,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와 엮어 ‘6공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기소함으로써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검사시절의 모습(왼쪽)과 박철언 전 의원.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 강우석 검사가 그를 모델로 한 것이 알려지면서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그의 칼날 앞에 당시 이건개 대전고검장, 이인섭 전 경찰청장, 엄삼탁 병무청장, 천기호 치안감 등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법무부의 수뇌부와 선배 검사를 거침없이 수사하는 ‘소신 검사’의 표상이 됐다. 물론 당시 김영삼 정권의 6공 세력 청산 의도와 맞아떨어진 것으로 홍준표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이 수사로 검찰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홍 지사는 정형근의 소개로 안기부 파견 검사로 잠시 가 있기도 했지만 결국 검사직을 던진다. 1996년 김영삼의 권유로 신한국당에 입당해 15대 총선에서 송파갑에 출마해 당선되지만 곧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2001년 다시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되고 18대까지 같은 선거구에서 내리 4선을 이어간다. 17대에서는 탄핵 역풍도 뚫고 서울 동북권에서 홀로 살아남는 기염을 토한다.
보수주류와는 다른 컬러
정치인으로서 그가 내놓은 정책을 보면 보수 주류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이중국적 보유자의 병역 회피를 막는 국적법과 재외동포법 개정을 이끌었다. ‘반값 아파트’ 법안을 발의하고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반대하기도 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부유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더 내게 하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2006년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해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하고, 2007년에는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그 뒤 이명박 지지로 돌아서 당 클린정치위원장으로 BBK 의혹 대응을 총괄지휘했다.
김경준의 ‘기획입국설’을 주장하며 가짜 편지를 흔들기도 했다. 당시 김경준과 이명박의 관계를 추궁하는 기자의 질문에 ‘식사했어요?’라는 엉뚱한 말로 받아치며 답변을 회피해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2007년 대선에서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을 맡아 BBK연루의혹을 받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온 몸으로 막아냈다. 사진은 그가 2007년 11월 한나라당사에서 각종 문건을 제시하며 기획입국설을 제기하는 모습.
이명박 정권 출범에 즈음해 원내대표를 맡기도 했지만 정권 창출 공로에 비하면 크게 중용받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권과 당 내부를 향해서도 서슴없이 ‘막말’을 내놓는 탓에 ‘좌충우돌 홍두깨’ ‘통제가 안 되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급기야 친이계의 지원을 받은 안상수와의 당 대표 경쟁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2011년 재수 끝에 당 대표직에 올랐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은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등에 휘말려 넉달여 만에 물러나야 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율 25.7%가 ‘사실상 승리’라고 발언했다가 각종 패러디에만 올랐다. 급기야 19대 총선에서 패배해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스스로도 트위터에 정치를 접겠다는 듯한 발언을 올렸다.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합니다. 이제 자유인으로 비아냥 받지 않고 공약으로부터도 해방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정계은퇴가 아니라 공직생활 마감을 뜻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는 했지만.
총선 패배 후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김두관 경남지사가 대선 출마로 사임하자 홍 지사는 경남지사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범야권 단일후보인 권영길을 누르고 당선된다.
학교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하고 진주의료원을 폐원시키는 등 독선적 행보로 비난을 받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3년 6개월간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채무를 갚고 흑자재정으로 전환했다며 자랑스러워한다. 도청 들머리에 ‘채무 제로’를 기념하며 사과나무를 심기도 했다.
독설? 또는 막말?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가 결국은 풍차를 깨버렸다.”
슬롯머신 수사 당시 한 신문은 홍 지사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 즈음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돈키호테처럼 진실하고 가식 없게 살고 싶다”며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모래시계>의 강우석 검사(박상원)보다는 <넘버3>의 마동팔 검사(최민식)에 가깝다고 말한다.
“한 번 물었다 하면 표범처럼 놓지 않는” 거칠고 집요한 검사, 좌고우면하지 않고 목표물만 노리는 검사다. “검사에게 왜 변호사 자격증을 줍니까. 옷 벗어도 먹고 살 수 있으니 현직에 있을 때 소신껏 일하라는 거죠. 검사는 엉뚱한 것으로 고민할 필요 없어요.”
대학 시절 그의 별명은 ‘무계’였다고 한다. 기발하고 황당한 생각을 많이 한다 해서 ‘황당무계’가 줄어 ‘무계’가 됐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위아래 격의 없이 잘 어울려 ‘무계’가 굳어졌다고 한다.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입담이 탁월해 좌중을 압도한다고 전한다. 코미디언 시험에도 응시하려 했다고 했을 정도다.
이런 순수하고 투박한 모습의 어딘가에는 ‘망언’에 가까운 독설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성정과는 반대편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거울처럼 비추는 것 같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망언도 처음이 아니다. 이미 당 대표 시절 “자기 성깔에 못 이겨 그렇게 가신 분”이라고 했을 정도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을 향해서는 ‘꼴같잖은 게 패버리고 싶다’고 했고, 단식 농성 중인 도의원에게 ‘쓰레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발언은 심각하다. 추미애 의원에게 “넌 일하기 싫으면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했고, 종편 방송국 경비원에게는 “니들 면상 보러 온 거 아니다. 네까짓 게”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나 풍자는 권력과 재벌을 향해 있을 때 다윗의 ‘돌팔매’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 당 대표 시절 홍 지사는 TV인터뷰에 나가서 “대기업 하면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뭐냐”는 질문에 ‘착취’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던지는 망언이나 폭언은 연못의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격이다. 홍 지사의 발언이 못내 불편한 이유다.
‘스트롱맨’은 역시 ‘스트롱맨’과 싸워야 멋있다. 스트롱맨이 약자를 괴롭히는 건, 그가 평생을 싸워 온 조폭만도 못하고 동네 양아치나 하는 짓이다.
보수의 구심점 될까
‘스트롱맨’인 그는 한편 스스로를 종종 ‘약자’로 자리매김한다. 성완종 게이트 연루에 대해서도 “권력이 없는 자의 숙명이고 ‘모래시계 검사’의 업보라고도 생각했다”고 말한다.
“청와대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아직 재판받고 있을지 모른다”고도 말한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이나 국민의당, 바른정당과의 연대 시사는 극우보수층으로부터도 공격받고 있다. 상, 하, 좌, 우가 모두 그의 투쟁 대상이다.
어쩌면 ‘약자’이자 ‘스트롱맨’인 그의 정체성과 가장 비슷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자수성가형으로, 내가 다 해 봤으니 믿고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이다. 때로 내가 뱉은 이 말과 저 말이 맞지 않고 이런 태도와 저런 태도가 충돌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은 옳다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다.
밑바닥 생활을 거쳐 검사가 되고, 조폭들의 ‘죽인다’는 협박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늘 사표를 품에 안고 수사를 했던 시절부터 예고된 성정일 것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2016년 6월, 채무제로를 기념해 도청 앞에 사과나무를 심었다.(첫번째, 두번째 사진). 그러나 이 사과나무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4개여월 만에 주목으로 교체됐다. (맨 오른쪽 사진). (사진출처: http://www.hani.co.kr)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그는 ‘리더십의 교체’를 부르짖었다. “소통과 통합이라는 위선의 가면에 숨어 눈치만 보는 리더십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대가 두려워 결정을 미루고, 여론이 무서워 할 일도 못 하는 유약한 리더십으로는 지금의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
그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 작은 나라의 대통령도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은근슬쩍 자신이 하늘의 뜻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숨기지도 않는다.
지금 상황은 그에게 박근혜의 위기이지 보수의 위기가 아니다. 후보가 되고 나면 20% 가까이 출렁이는 게 여론조사이며, 보수와 진보 진영의 대표 선수가 정해진 뒤에는 집결하는 보수표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임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여론조사는 나는 믿지도 않고, 믿었다면 내가 국회의원 매번 할 리도 없고 경남지사 두 번 할 리도 없습니다.”
그가 ‘채무 제로’를 기념하며 경남도청 입구에 심어졌던 사과나무는 결국 시들어 뽑혀나갔다. ‘천명’은 과연 홍준표에게로 향할지…
이번 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고 언론과의 인터뷰 첫 질문으로 “완주할 거냐? 사퇴할 거냐?”는 물음을 받는 후보가 있다. 이 불편한 질문에 그는 솔직히 섭섭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사표론에 시달려야 했고 언론의 노출도 적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완주했다. 대선 득표율 6.17%를 얻었다. 진보정당 대선 후보로는 최고 득표율이다. 그는 누구를 위해 대선에 도전했을까. 그에게 이번 대선은 어떤 의미였을까.
심블리, 심크러쉬, 심깨비. 2초 김고은, 그는 정치인이 갖기 어려운 친근한 별명을 얻었다. 정의당 대선 캠프를 “심~부름 센터”라 했다. 심상정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 ‘청년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 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여느 후보보다 청년을 만나려 했고, 많은 청년들이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19대 대선 공식선거 운동 첫날인 4월 17일부터 5월 8일까지 심블리 심상정과 20여 일의 대선 여정을 함께 했다. 대선 레이스를 마친 심상정은 취재진에게 선거 운동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선거운동 기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어땠을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위축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사표론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을 통해서 확인한 그 수많은 국민의 격려와, 또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대와 사랑 우리 깊이 새길 것입니다. 제가 전국에 유세를 다니며 ‘노동이 당당한 나라’라는 플래카드가 휘날리는 것을 보면서 가슴 뭉클했다는 그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선거 때마다, 유세 때마다 제게 안겨 흐느끼던 그 청년의 고단함 우리가 더욱 깊이 껴안아야 합니다. 수많은 젊은 여성이 정의당과 심상정에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 환호에 담긴 열망을 우리는 뚜렷이 기억해야 합니다.
광식형, 명식형에게. 제가 결혼식 주례를 했던 염대형 군으로부터 원고부탁을 받고 지난 20년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이 기회에 두 형님께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정확히는 창립 이전 3년 동안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대전 지역사회에 빛(光)과 밝음(明)을 심기(植) 위해 형들과 함께 뛰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릅니다.
한국사회에 ‘시민운동’의 논의가 무성하던 1992년 5월, 올바른지방자치실현을위한대전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초대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저는 당시 정동에 있는 대전YMCA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놓고 일하게 되었지요. 김준식 집행위원(당시 대전YMCA 총무님)의 배려로 사무공간을 확보한 시민모임은 대전YMCA 박정현 간사(현 대전광역시 의원)가 자원 실무로 수고하던 네트워크 조직운영에서 상근 사무국장을 두며 발전하던 시기였습니다.
故 전철환 교수님과 김인중 변호사님을 공동의장으로, 정지강 목사님을 집행위원장으로 모시고 일했습니다. 조연상, 박 경, 안정선 교수님의 왕성한 정책의지, YMCA김준식 총무님의 부지런한 조직력과 YWCA 김공자 총무님의 부드러운 리더십, 임상순, 한원규, 김형태, 김태범, 김용효 변호사님의 전문적 식견, 성실한 참여와 후원, 교차로 故 박권현 대표님의 후원이 거름이 되었습니다. 의료인들의 대거 참여도 눈부신 일이었지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윤종삼, 신명식, 김형돈, 이우현 선생,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삼용 회장님과 이문희 선생,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의 한일수, 김순신 선생의 조용한 참여는 대전지역 시민운동 형성의 든든한 밑거름이었습니다. 참 소중했던 30여 명 가까운 집행위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면서 지방자치시대의 도래를 차근차근 준비했는데, 당시 사무실에서 만난 대전YMCA의 변강훈, 김종남 간사, 자원봉사활동가 이정님, 김진화 님과의 만남도 생생합니다.
시민모임은 주부아카데미 12기 출신의 정희자, 최연옥, 이인우, 곽경희, 김용분 주부들과 함께 세미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대전시의회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의정지기단’을 만들어 활동했지요. 조연상 교수님이 주축이 된 대전시 예산분석은 알찬 내용은 물론 통찰력 있는 운동의제로 평가받았으며 오늘날 주민참여예산제의 기초를 놓은 일이었습니다. 또한 대전지역 현안토론회를 대전광역시의 후원으로 2개월에 한 번씩 진행했지요. 당시 염홍철 시장님의 시민모임에 대한 강한 신뢰와 지원, 부드럽고 자상했던 노병찬 기획관, 김영진 기획계장과의 만남도 잊을 수 없습니다.
광식형, 1993년 대전환경운동연합이 창립되었을 때 시민모임과 사무실을 함께 쓰기로 결정하시곤 형은 너무 좋아하셨지요. 사무국장직을 요청받았을 때 정지강 목사님에게 마중물이 되실 분들 10명만 소개해 달라하셨죠? 우리 지역사회의 큰 어른이셨던 故민명수 선생님을 만나게 되셨고 저는 광식형에게 당시 시민모임 집행위원이셨던 김형태, 김태범 두 분 변호사님과 학원을 운영하던 한기온 형을 소개해 드린 게 큰 보람이었답니다. 그리고 당시 대전 YMCA를 사직한 김종남 간사를 실무자로 영입하자고 강력한 주문(?)을 하셨지요. 기독교연합봉사회관의 5층 사무실은 저희들에겐 과분한 공간이었지만 환경운동연합의 김광식 사무국장, 김종남 간사, 금홍섭 신입간사와 함께 시민모임의 이충재 사무국장, 이순숙 간사의 알콩달콩한 새 살림살이가 시작되었지요. 때마침 같은 회관으로 이사 온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헌신적인 활동가들, 김제선, 윤종세, 심규상, 최연순, 통일맞이대전충남겨레모임의 정현태, 이상재를 더 가까이 만나고 느끼던 시기였습니다.
1995년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모임은 다양한 토론을 거쳐 ‘정책기능’과 ‘적극적 선거참여 기능’으로 분화했습니다. 시민모임의 정책기능을 유지한 채 정지강 목사님과 뜻을 같이 한 집행위원들은 ‘대전참여자치시민회의’라는 이름의 조직을 출범시켰는데 이는 주민의 대의기구인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을 잘 선출하는 것이 지방자치시민운동의 핵심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故 민명수, 김선건, 황정기 세 분의 의장과 정지강 집행위원장께서 조직을 이끌어 주셨고 대전NCC 사무국장이었던 제가 초대 사무처장을 겸하게 되었어요. 부지런한 금홍섭 간사와 형님, 아우가 되었던 이 시기에 우리는 학교급식조례, 심야영업 규제 등의 이슈 등을 다루며 본격적인 사무국 구성을 꿈꾸는 카이로스를 맞이한 것이지요.
명식 형은 처음 2년 동안 좋은 일꾼들을 꾸리고 싶은 저의 목표를 확실하게 지지해 주셨지요. 낮밤 없이 만났던 그 시절, 형은 특히 실무자들을 배려해 주셨고, 토론시간에는 빠른 분석을 통해 직언을 가장 많이 하셨고 특히 저녁식사, 뒤풀이 비용 등을 해결해 주셨어요. 창립과 동시에 1995년 지방선거에 시민후보를 낸 일도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광역의회에 김필중, 정기현 후보가, 기초의회에 김경애, 김용분, 이상재 후보가 시민환경후보로서 출마하여 서구의 김용분 의원, 유성구의 이상재 의원이 당선되었죠. 특히 故 윤중호 형이 만들어 주셨던 후보자들의 아름다운 홍보기획물을 잊을 수 없습니다. 형수이신 김경애 후보를 위해 병원까지 다른 분에게 부탁하고 열심히 뛰셨지만 3표차로 낙선해 아쉬움이 컸던 그 선거, 배움이 컸습니다.
우리는 자원봉사 기획자인 조병열의 도움으로 후원행사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후원행사를 ‘아름다운 만남’으로 이름 지어 가수 이선희 씨를 초대했었고 대전시장후보자 초청토론회, 만찬행사를 가수 신효범 씨와 함께 진행했지요. 제가 본의 아니게 사회자로 데뷔한 계기입니다. 형과 저는 모종의 목표를 세웠었죠? 탐났던 사람, 김제선을 사무처장으로 영입하려던 그 목표 말입니다. 정지강 목사님, 최교진 의장님과 의논하고 형과 저는 서슴없이 협동사무처장을 자원하며 김제선 사무처장을 영입했지요. 창립선언에서 밝혔듯이 지역운동, 주민운동, 클린선거 등 실천적 주민참여운동의 본격적인 서막이 올랐던 셈입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습니다. 이 모든 도전과 실험들은 지역운동, 주민운동의 시대가 다가온다는 우리들의 창조적 ‘감’이 있었고 서로를 신뢰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게 있어 창립 이전 3년의 역사는 날줄과 씨줄로 엮인 귀한 분들과의 만남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두 형님께 편지를 올리며 60명에 달하는 분들의 이름을 낱낱이 적어 본 것은 그분들에게 이렇게라도 감사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제 삶속에 계셔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광식형, 명식형,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는 1,300여 명의 든든한 회원들이 계시 다네요. 20여 년 전 시민운동을 함께 궁리하고 노력했던 일들이 이렇듯 든든한 조직의 성과로 남았으니 저희들 생에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어요. 시민운동가에서 공직생활까지 마치고 돌아오신 광식형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들으며 명식형과 「향수」를 맞춰볼 날을 기다리며 웃음 짓습니다.
정치,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고 짜증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은 바쁘게 먹고 사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이 놈의 정치는 맨날 싸움박질이나 하고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고요,
그런데 우리네 먹고 사는 문제도 다 정치에 달렸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지역순회 민주주의 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에서 마음 뻥 뚫리게 함께 얘기해봐요!
참여연대는 거리가 멀어 참여연대 총회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지역회원님들을 위해 매년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역회원 분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부산/대전/광주/대구광역시에서 회원 만남의 날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하반기에는 성남/수원 등 경기남부권에 계시는 회원님들을 위한 <지역순회 민주주의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를 준비하였습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충돌?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갈등? 노동당-정의당 합당? 녹색당은 뭐지? 현재의 뜨거운 이슈를 포함해 2016년 총선을 앞둔 우리는 지역에서 무엇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면 좋을지, 비례대표의원과 전국구의원 무엇이 달라졌는지, 의원 수 확대는 어떻게 볼 것인지 등, 정치를 둘러싼 여러 질문과 해법들을 참여연대 지역순회 민주주의강좌를 통해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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