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새벽,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3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성주의 골프장으로 경찰들이 집결했다. 경찰은 잠에서 덜 깬 주민들을 밀어내고, 사드를 실은 미군들을 호위했다.
사드 배치는 중국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5월 9일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드가 배치됐다는 것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전 0시부터 주한미군은 4시간여 만에 사드 발사대 2~3기, 사격통제레이더, 교전통제소 등 핵심장비 대부분을 성주골프장에 반입했다. 사전예고도 없이 신속하게 배치된 이번 결정의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당선이 유력한 문재인이 더 많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했는데도, 이렇게 신속 배치된 것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드 비용 청구, 한미FTA 폐기
이 일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드 신속 배치는 결국 한국 정치를 우회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한미 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국내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사드 배치에 찬성했는데도 한국 측에 10억 달러의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는 한미FTA를 재앙(horrible deal)이라고 부르며 폐기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는 안보이슈와 무역이슈를 연계하면서 한국이 안보를 해결하려면 무역에서 양보해야 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이 유지했던 한국과의 가치공유 전략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동맹은 경제적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사드는 가격이 맞으면 변경 또는 폐기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트럼프에게 군대란 민주주의나 자유시장을 위해 헌신하는 군대가 아니라, 국가간 수지를 맞추기 위한 용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5월 1일, 트럼프는 북한의 김정은과 만날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틸러슨 국무장관은 중국의 계속된 제안에도 불구하고 북한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또 얼마 전에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이 임박했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숨은 의도는?
미국의 오락가락하는 정책 때문에 한국인들은 트럼프 행정부를 비이성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충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드 비용 청구는 사드에 대한 문재인의 의구심을 키웠고, 한국의 반미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 문재인은 보수세력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사드 배치를 비판하고 있다.
사드를 배치 과정에서 완전히 절차가 무시되면서 반미감정이 커지고 있다. 현재 황교안 권한대행은 그런 결정을 할 정당성이 전혀 없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회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했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국회에서 사실상 어떤 토론도 없었다.
사드는 단순히 북한의 위협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사드를 자신의 방어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드 배치는 한국, 일본, 러시아 등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무기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
중국은 7000기에 달하는 미국의 핵무기에 대항해 3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사드가 자신들의 핵능력을 무력화한다고 생각한다면, 핵무기를 수 천기로 늘릴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인들은 어떻게 사드 배치가 이렇게 신속하게 결정됐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 사이에 내려진 결정일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호전적인데다 군수업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번 결정에 트럼프 대통령은 별로 관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한 일이라곤 한국의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일일 것이다. 트럼프는 국무부에서 아시아 전문가를 모두 해고하는 바람에 그의 주변에는 전문가가 없다. 트럼프가 북한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 것도 이처럼 관련 전문가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시 코리아패싱?
만약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된다면, 지난 10년 간의 보수정부와 달리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이다. 그럴 경우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관계처럼 한미 관계가 긴장국면에 진입할지도 모른다.
보수주의자들은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로 DJ의 햇볕정책을 완전 끝장냈다고 생각할테지만, 문재인은 어쩌면 그 햇볕정책을 복원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하면서 전시작전권 환수를 추진하고, 미국과의 균형외교를 추구할 것이다.
사실 문재인정부에서 한국은 가장 독립적인 동맹국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북핵 도발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무시 전략은 한국인들을 실망시켜왔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워싱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대북접근 정책을 취할지도 모른다.
북한은 리비아의 가다피정권이나 이라크의 후세인정권이 몰락한 것은 충분한 억제력이 없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정통성과 국가운명을 핵무기 개발에 걸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더욱 양보하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드 비용 청구, 한미FTA 폐기 발언 등으로 한국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가 불쑥 “영광스럽게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식적인 접촉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대신 한반도 문제가 중국, 일본과만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코리아 패싱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에 대한 숱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반도 개입은 점차 축소되는 양상이다.
반대로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는 중국어 학교가 전국적으로 성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 4월 시티뱅크는 한국지점의 3분1을 폐쇄하기로 했고,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숫자는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인데도 미국은 지난 1월19일 마크 리퍼드 주한대사가 물러난 이후 신임 대사 후보조차 준비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지난 2월 아베 일본 총리와, 지난 4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 문제를 논의했다. 황교안 권한 대행은 지난 3월 틸러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녁식사 약속조차 잡지 못했다.
결국 사드 문제는 100여 년이 넘는 한미관계의 일부분이다. 북한이 연일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한국, 즉 남한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거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 문제 외의 사안에 대해 한미 간의 공동 이해와 행동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한국 내에서는 다시 반미감정이 득세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될 것이다.
대통령 탄핵과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진행 중이던 4월 26일, 한미 정부가 경찰 병력 8천여명을 동원해 주민과 종교인, 지킴이들을 폭력적으로 고립시킨 채, 사드 장비 일부를 반입하였습니다. 이에, 전국 시민사회대표 150여명이 5월 4일 소성리 현지에 모여 평화회의를 개최하고 사드 배치 절차 중단을 호소하였습니다만, 대선의 결과로 새로이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한미 군 당국은 경찰병력을 유지한 채 헬기로 유류를 반입하고 있고, 새 정부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전국 시민사회 대표 80여명은 지난 5월 4일에 이은 2차 평화회의를 개최하여 전면재검토를 공약한 문재인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정부차원에서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는 것, 미국측의 “사드는 이미 정해진 사안”이라는 입장이나 자격 없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 군의 입장 변화는 없다"는 발언 등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사드 배치 철회 관련 요구안 및 주요 행동 계획을 토론하여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대표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 새 정부가 전면 재검토를 공약했던 만큼 한미 당국이 반입한 사드 장비를 철수하고 사드 배치 관련 일체의 행위를 중단할 것, △ 탄핵당한 정부와 군 당국이 강행한 사드 배치의 법률 위반 행위, 비용 부담 등을 둘러싼 한미 간 합의에 대해 철저히 진상조사 할 것, △ 황교안,김관진,한민구,윤병세,이철성 등 관련 책임자를 처벌할 것, △ 성주, 김천 주민과 원불교, 시민사회단체가 요청한 면담에 응할 것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또한 소성리 현지에서의 평화지킴이 활동을 비롯하여 미 대사관 및 청와대 릴레이 서한 전달, 전국 동시다발 수요 평화행동 등 사드 배치 철회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행동과 함께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6월 24일 대규모 전국집중 평화행동을 추진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번 평화회의 및 기자회견에는 유선철(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성주,김천 주민들과 김민문정(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김영호(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노정선(한국YMCA전국연맹 평화통일행동협의회 공동대표), 박래군(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대표), 박석운(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박순희(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 이삼렬(2017민주평화포럼 상임대표), 정강자(참여연대 공동대표), 최종진(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직무대행) 등 각계 대표자 80여 명이 참석하였습니다.
▣ 붙임문서. 2차 평화회의 기자회견문
사드를 막고 땅과 주권, 평화를 지키는 2차 평화회의
기자회견문
우리는 지난 5월 4일 사드 배치 강행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던 성주 소성리에 모였습니다. 한미 당국이 기습적으로 사드 장비를 반입하고, 경찰과 군인이 점령한 그곳에서, 우리는 소성리를 지키는 것이 평화, 인권,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사드 배치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우선 사드 배치 중단을 천명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국민들은 어제(5/16) 청와대를 방문한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이 “사드는 이미 정해진 사안”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 했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자격이 없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어제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해 군의 입장 변화는 없다"고 발언했습니다.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한미 당국의 느닷없는 사드 한국 배치 결정과 그 배치 과정은 전면 조사되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차기 정부 재검토’를 공약했던 문재인 정부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국 특사단과 만나 강조했듯이, 새 정부는 ‘피플 파워’를 통해 출범한 정부입니다. 우리는 촛불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가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에 사드 한국 배치 철회를 위해 2차 평화회의에 모인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한미 정부는 현재 불법적으로 반입한 사드장비 일체를 즉각 철수해야 합니다. 또한 사드 장비 추가 반입이나 운영과 관련한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검토를 공약한 만큼 사드 배치에 관한 어떠한 추가적인 조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둘째, 정부와 국회는 사드 배치와 관련한 한미 간 합의 전반과 배치 과정의 불법성에 대해 국정조사 등을 포함해 철저한 진상조사에 나서야 합니다. 모든 절차와 과정은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져있기 때문입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탄핵된 정부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서는 안 됩니다.
셋째,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그리고 4월 26일 새벽 사드 장비 반입 작전을 폭력적으로 강행한 이철성 경찰청장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진상조사의 완성은 책임자 처벌입니다.
넷째, 문재인 정부는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성주, 김천 주민과 원불교, 시민사회단체가 요청한 면담에 응해야 합니다. 지금껏 주민들을 포함해 시민사회와 단 한 차례도 소통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권은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통보했을 뿐입니다. 생업은 물론 일상을 포기한 채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정부가 사드 배치 중단을 즉각 선언하고 궁극적으로 사드 배치 철회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아울러 한반도 평화에 위협이 되고 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사드 배치를 반드시 철회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박근혜 정권 최고의 스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결국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는 두 번의 장관과 정무수석까지 역임했으며, 국회의원, 씨티은행 부행장, 김앤장 변호사, 사법시험 합격, 서울대 외교학과의 이력을 가진 한국 최고의 엘리트였고 100억대 재산가이다.
안민석 의원은 청문회 석상에서 거짓말을 하던 그를 “용서할 수 없는 악녀”라고 공격했지만, 그와 사시 동기인 이정렬 전 판사는 그가 ‘강남 8학군에서 곱게 자란 모범생’이라고 기억했다.
아마도 과거의 그를 잘 알고 있는 이정렬의 판단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왜 그런 모범생들이 이러한 희대의 범법 행위를 버젓이 자행했는가? 왜 수재이자 법전문가 조윤선, 김기춘, 우병우 등이 헌법 위반 행위를 밥 먹듯이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시는 근대 한국에서 능력주의와 실적제 관료제를 지탱한 힘이었다. 또한 법조인은 근대적 직업 정치인이 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고시 출신들은 특권을 누리고, 반칙을 일삼으면서 시민 위에 군림해왔다. 지금의 헬조선은 고시 출신 지배엘리트들의 도덕적 타락이 큰 몫을 했다. 왼쪽부터 조윤선, 김기춘, 우병우, 홍만표. 모두 사법고시 출신이다.
한국은 법조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법조인들의 정치 참여는 지나치다. 20대 국회에서도 전인구의 0.05%도 안 되는 법조인이 15%인 49명이다. 지난 19, 18, 17대 국회에도 그랬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른 인물들 대부분도 고시 출신들이다. 고시에 합격해서 판검사, 고위공무원, 외교관 일을 한 사람들이 머리가 우수해서 국가의 일을 잘 처리할 것이라고 한국인들이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윤선이나 김기춘, 우병우 말고도 홍만표 등 법치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법조인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수많은 비리, 범법에 연루된 일을 기억한다.
한국인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다. 법조인으로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법조공화국 한국의 정의 수준은 참담하다.
왜 그럴까? 사법시험은 로스쿨로 바뀌고 있지만, 한국형 입시 제도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명문대, 고시 합격의 이력을 가진 한국의 엘리트들은 학생 시절부터 특권을 의식하면서 자란다. 한국에서 전쟁과 같은 시험과 수없이 반복되는 ‘등급 매기기 경쟁’을 거쳐 승자를 선택하고, 시험의 승자는 무조건 우대받는다.
이 전쟁의 승자는 가정, 학교, 사회에서 모든 주변 사람들로부터 특별대우를 받고, 자신은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면서 산다. 그래서 부정한 부와 권력도 마땅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시험, 엘리트 선발 제도의 승리자들은 대체로 입시형, 고시형 인간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시험 점수에 들어가지 않는 정의감, 공감 능력, 도덕성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일제 식민지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과 시험 제도는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복종하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얕잡아 보며 주변의 고통에 둔감한 이런 인간을 길렀다. ‘가문에는 영광’, ‘국가와 사회에는 재앙’이었다.
이런 교육, 시험 제도에서는 승리자일수록 이기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 “배우면, 왜놈 종노릇하기 쉽다”고 보면서, “종노릇해도 무식한 놈은 죄라도 덜 짓지 유식한 놈은 유식한 만큼 죄를 더 짓는 것이고 나라를 더 잘 팔아먹더라”라던 일제 강점기 선비들의 말이 연상된다.
생업을 팽개치고 세월호 아이들을 구조하러 간 (고) 김관홍 잠수사는 청문회 석상에서 “잠수사이기 이전에 국민이기 때문에” 현장에 달려갔다고 답하면서, “저희는 당시 상황이 뼈에 사무치고 기억이 다 나는데, 왜 사회지도층이신 고위 공무원께서는 왜 기억이 안 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국민으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지만, 희생자 구조를 책임진 명문대, 고시 출신 고위 공무원들은 오직 부인, 책임회피의 언어 기술자로서의 모습만 보여주었다.
오늘 우리는 박근혜 게이트의 하수인들과 ‘노가다’ 김관홍 잠수사의 삶을 대비해 보면서 입시형, 고시형 인간을 범죄자로 만드는 한국의 교육, 엘리트 충원 제도의 총체적 실패를 본다.
“박근혜에게 속았다”고 분개하는 가난한 노인들은 오늘 입시형·고시형 인간 반기문을 환영한다. “그들은 당신 같은 사람에겐 관심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 교육 제도의 판을 갈아야 한다. 공무원 충원, 국회의원 선거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이웃과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지도층을 길러내지 않으면 헬조선 탈출이 어렵다.
예고된, 예측된, 한반도 2017년 4월 위기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한국 내 주요 행위자들은 이 예고된 위기를 예측하려 하지 않았다. 2016년 12월부터 2017년 3월까지의 탄핵 국면에서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가 예견되었다면, 그 시점에서 다가올 4월 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역할은 대통령 후보와 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하는 정당 또는 사설 캠프의 몫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집합적 침묵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다가올 위기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서해 상 북방한계선(NLL)의 포기 여부를 둘러싼 쟁점처럼, 안보가 선거 쟁점이 되면 정치적 중력이 오른쪽으로 향한 경험은 야당 후보들이 이 위기를 외면하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을 것이다.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이루어질 때마다 반복되는 한반도의 4월 위기이지만, 2017년 4월 위기는 그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모습이었다. 2017년 4월 위기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현재 진행 중이지만 그 위기를 만든 행위자들의 상호 과정에 대한 복기가 필요하다. 한국의 새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라는 제도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5월 9일 선거 직후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임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를 파기하게끔 한 이른바 제2차 핵 위기와 함께 시작한 노무현 정부가 직면했던 것만큼 강한 구조적 제약 속에서 새 정부는 대북 정책을 포함한 외교 안보 정책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첫째, 북한은 2016년 1월 신년사에서 "자강력 제일주의"를 언급하고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1월 "수소탄 실험"과 9월 "핵 탄두 실험"을 했다. 북한은 더 이상 핵 실험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핵 국가에 근접하고 있다. 북한은 10여 년에 걸쳐 핵 실험을 지속하고 있지만, 파키스탄은 1998년 5월 이틀에 걸쳐 여섯 번의 핵 실험을 한 후 핵 국가가 된 바 있다. 2017년 1월 신년사에서 북한의 김정은은 핵 억제력의 한 구성 요소로 미국 본토를 핵 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마감 단계"라고 주장했다. 2016년 11월 북한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 민간 전문가와의 접촉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파악하기 전에는 북미 관계를 해칠 수 있는 행동을 취하지 않겠지만, 2017년 한미 합동 군사 훈련에 대한 대응은 예외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은 2015년 1월부터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중지와 자신들의 핵 실험 임시 중지를 교환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은 2017년 1월 신년사에서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계속된다면, 핵 능력 및 "선제 공격 능력"의 강화로 대응할 것임을 언급했다.
둘째,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2월로 예상된 북미 접촉이 무산되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의 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사건이 북한 외교관의 미국 방문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의 원칙은 공약에서 드러난 것처럼,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재균형 정책이 적절한 대응이었지만 미국의 군사적 힘이 동아시아 지역에 투사되지 못했고, 대북 정책이었던 이른바 전략적 인내가 지역의 불안정을 제공하고 위험을 증가시켰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 운운에 대해 트럼프는 "그런 일 없을 것"이란 대응했다. 2017년 3월 북한은 미국이 힘에 의한 평화를 추진한다면, 핵 능력을 강화하는 "힘의 균형"으로 대응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셋째, 북한의 핵 능력 강화와 힘에 기초한 대외 정책을 추구하겠다는 미국의 신임 행정부의 출범과 맞물려 한반도 위기의 새 구조를 만든 또 다른 요인은, 탄도미사일방어체계 가운데 하나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한국에 배치하겠다는 한미의 결정이었다. 2016년 7월 6일 북한은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3년여 만에 한반도 비핵화를 의제화하면서 그 조건으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 한다"는 제안을 했고, 우연이겠지만 7월 8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동맹 차원에서 사드 배치 결정이 이루어졌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핵 군비 경쟁을 제어하기 위해 탄도미사일방어체계를 금지하는 합의를 했지만, 2002년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이 합의를 폐기했다.
미국은 냉전 시대와 같은 힘의 균형이 아니라 힘의 우위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한국에 배치된 사드는 그 정책의 연장이었다. 탄도미사일방어의 속성상 정보 공유가 필요하고 따라서 사드 배치는 한미일 삼각 군사 협력까지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 배치가 전략적 균형을 해치는 정책이라 반발했다.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고 판단한 중국은 한국에 대해 비관세 장벽을 이용한 경제 제재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2017년에 들어서 북한은 한미 합동 군사 훈련과 더불어 사드 배치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고, 대륙간탄도미사일에 근접해 가려는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북미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북한의 6차 핵 실험 가능성이 언급되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까지 선택지로 고려된다는 발언조차 나올 즈음인 2017년 4월 7일 미중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공동 성명과 공동 기자회견조차 없었다. 한반도 위기에 대한 미중 정상의 대화도 공표되지 않았다. 미중 정상회담의 와중에 시리아 공습을 결정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정상회담 직후인 4월 8일 핵 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호를 한반도로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한반도 전쟁 위기를 야기할 수도 있는 결정이었다. 이틀 후 트럼프조차 무적함대를 한반도로 파견하겠다고 말했지만, 칼빈슨호는 4월 15일 인도네시아의 순다해협을 지나고 있었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거짓말을 한 이유를 알 길은 없지만, 트럼프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한반도를 전쟁 위기에 근접하게 했다. 또 다른 항공모함인 니미츠호가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는 의도된 오보를 생산하면서 한반도 전쟁 위기를 생산한 또 다른 주체는 일본이었다.
중국이 미국의 이 거짓 결정을 인지했는지도 알 길이 없지만, 중국은 긴장을 조성하는 관련 행위자들의 자제를 요구하면서, '쌍궤병행'으로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체결의 동시협상, '쌍중단'으로 북한의 핵 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중단이란 제안을 들고 나왔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에도 중국의 한반도 문제 해결의 원칙이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4월 12일 미중 정상의 통화가 이루어지면서,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대신 핵 문제 해결을 중국에 책임 전가(buck-passing)하는 방식의 교환이 보도되기도 했다. 미중 무역분쟁과 한반도 핵 문제를 연계하는 방식이 사실인지를 또 알기 어렵지만, 미중이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새로운 균형점을 마련하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4월 14일 북한 외무성 부상 한성렬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선택한다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국제사회에 전달했다. 핵 추진 항공모함이 한반도 수역에 진입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4월 15일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었던 전략적 인내를 폐기하고 "최고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로 명명된 새로운 대북정책을 수립했음을 알렸다. 4월 17일 한국을 방문한 미국 부통령도 전략적 인내 시대의 종언과 더불어, 한미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재래식 또는 핵 무기의 사용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그리고 미중 정상이 "비핵화된 한반도"에 대한 약속을 다시금 확인했다는 발언도 했다. 한미 FTA "개혁"(reform)은 그 대가로 미국이 한국에 언급한 교환 품목이었다. 미중 관계처럼, 한미 관계에서도 안보와 경제의 교환이 트럼프 행정부 대외 정책의 한 형태가 될 것임을 예견케 한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북한의 미사일실험을 교란하는 사이버 전쟁과 유엔을 매개로 한 다자적 제재와 같은 강압이었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의 압박과 관여"에서 초점은 "최고"와 "관여"에 있을 것이다. "최고"는 군사적 선택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과 중국에 대한 압박을 통한 북한에 대한 압박을 의미하는 것이고, "관여"는 그 이중 압박을 통해 북한의 대외 행동이 변한다면 대화와 협상의 길로 갈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는 4월 23일 현재 서태평양에서 일본 자위대와 공동 훈련을 하고 있다. 빠르면 4월 25일 즈음 한반도 해역에 진입할 예정이다. 중국에는 원유 공급의 중단과 같은 북한의 "경제적 생명선"(economic lifeline)을 지렛대로 북한의 행동 변화를 강제하라 요구하고 있다. 중국도 일단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따라 북한에 대한 압박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 언론에는 미국이 북한의 핵 시설을 타격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극단적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한미 지상군의 38선을 넘는 것은 불가하다는 전제 하에서다. 즉 북한이 한미의 영토가 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중국의 외교부는 공식적으로 북한을 적시하지 않고 관련 당사국이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공식적 입장을 밝힌 상태다. 북한은 중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주변국"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중국의 압박을 비판하고 있다. 동해로 진입할 칼빈슨호를 수장시키겠다는 위협과 함께다.
4월 말은 한반도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이다. 미중의 교환이 성립된 조건 하에서,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도 미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었고 향후 미중의 협상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국면에서, 중국과 북한의 비밀접촉과 서로의 교환 품목이 전쟁 위기를 예방할 수 있는 관건이다. 북미의 말의 공방이 극한에 이른 2017년 4월 위기의 국면에서는, 북한이 치킨게임의 겁쟁이가 되는 협력의 길이 아니라 완전한 핵 국가로 진입하는 6차 핵 실험과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면, 항공모함을 수장시키겠다는 북한의 발언에 한 발 물러서서 국무부 대변인의 입으로 군사적 충돌을 하지 않을 거고 북한을 위협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미국이 겁쟁이가 되지 않으려 하면, 한반도 전쟁이다.
대통령 후보들의 대북 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 정책에는 한반도 핵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구체적 경로가 담겨 있어야 했다. 예고된, 예측된 4월 위기는 그 해법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전에 4월 위기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침묵했지만, 필요하다면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에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보는 노력을 할 수도 있겠다.
어떤 후보도 세계 10위권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음에도, 국방비의 축소와 국방비의 복지비로의 이전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후보가 국방비 증액이 불가피한 정책을 제시하는 대통령 선거다. GDP 대비 국방비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빈말조차 없다. 북한의 핵 무기뿐만 아니라 2016년 현재 6자회담 참여국인 미국 1위, 중국 2위, 러시아 3위, 일본 8위라는 현실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한국은 군사비의 한계효용을 그 어떤 국가보다도 고민해야 함에도 그렇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 한다는 본성의 목소리를 이성적으로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표를 얻어야 하는 후보들이 대중의 마음을 거역하는 설득의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2017년 4월 위기에 대한 지체된 대응인, 4월 23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담대한 한반도 비핵평화구상도"도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징후가 포착되면 선제타격을 하는 '킬체인'과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독자적 방어체계인 '한국형미사일방어'(KAMD)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핵의 부정적 효과다.
비핵화 프로세스가 부재한 조건에서 발생한 4월 위기는, 안보 경쟁일 뿐만 아니라 서로가 안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게임이 서로의 안보 이익을 감소시키는 안보 딜레마의 전형이다. 이 안보 딜레마에서 탈출하는 방법이 한반도적 맥락에서는 비핵화 프로세스다. 비핵화에 모두 동의하지만, 각 정당의 후보들은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해 서로 다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안보 딜레마를 가속화하고 일상화하는 선택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한반도 핵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도를 찾고자 한다. 사드 배치의 확대는 물론 미국도 동의하지 않는 전술핵 배치까지 언급하고 있다. 미국의 핵 전력을 한미 공동자산으로 만들겠다는 발상도 공약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핵 경쟁의 가속화는,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핵 전쟁의 문턱까지 가서 한쪽이 겁쟁이가 될 때,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된다. 안보 딜레마의 일상화는 전쟁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물론 미중에 경제적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정책이다. 한반도 핵균형의 확보는 북한을 사실상의 핵 국가로 인정하는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자강안보"를 내세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2016년 9월 북한의 5차 핵 실험을 이후 한반도 정세가 변했다는 이유로 사드 배치 반대에서 찬성으로 선회하면서,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과 비슷하게 안보 경쟁과 안보 딜레마를 가속화하는 대열에 합류한 상태다.
둘째, 우회적이지만 남북한의 기능주의적 협력으로 안보 딜레마의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평화경제론이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는, 개성공업지구 재가동과 같은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동의하는 정책이다. 반면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는 비핵화의 진전 없이 개성공업지구 재개 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인 것처럼 보인다. 안철수 후보는 낮은 단계의 남북 교류도 비핵화와 연계하려 하고 있다. 비핵화와 남북 교류를 분리·병행하려는 시도가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4월 위기와 같은 국면이 지속된다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최소한 비핵화 프로세스의 입구에 진입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담아야 한다. 이 길의 이면 장치인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한 한국 역할론이 작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한국이 비핵화 프로세스의 입구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4월 위기의 국면에서 답은 제시되지 않았다.
셋째, 안보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 북한 정권의 교체도 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내파든 외파든 상상할 수 없는 정치경제적 비용의 지불은 물론 그 효과도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도 북한의 실질적인 개혁·개방 정도를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안보 딜레마에서 탈출하기 위한 제도적 해결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년 전인 2016년 4월 북한이 다시금 한미가 합동 군사 훈련을 중단하면 핵 실험을 중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제안을 했을 때, <중앙일보>에는, "한미연합군사력이 충분한 대북 억지력을 갖추고 있"는 조건에서 이 교환이 한미에게도 불이익이 아니고,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한다면 이 교환 이후 북미 수교, 평화 협정으로 이어지는 길을 갈 수도 있다는 칼럼이 게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교환 제안을 한미는 수용하지 않았다. 2017년 4월 위기 전 북미 접촉이 있었다면 이 교환이 의제화되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강한 안보"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자강안보"를 토대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구축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4월 위기의 국면에서 그 길을 갈 수 있는 입구에 대해 침묵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만이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중지를 교환하는 방식에 동의했다. 그러나 논쟁의 의제가 되지는 못했다.
2017년 4월 말 현재 한미는 한반도 전 해역에서 핵 잠수함과 핵 항공모함, 미사일순양함 등을 동원한 최고 강도의 무력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중국 언론은, 치킨게임에서 한발 물러나 겁쟁이가 되는 것이 용기 있는 행위이고, 현재의 핵 능력으로도 미국과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북한을 설득하고 있다. 북한의 핵 동결 선언이 4월 위기 이후 양자, 다자협상에서 유리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4월 위기의 국면에서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은 한국의 동의 없는 전쟁 반대 정도의 구호에 머물고 있다.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한미 동맹의 관성을 제어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한국의 역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만큼이나 한미 동맹의 조정이 필요하다. 미국발 한미동맹의 조정 가능성도 한국에는 기회다. 예를 들어 사드 배치 여부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입구를 찾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4월 위기에서 북한이 미중이 설치한 금지선을 넘지 않는다면,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처럼, 관여 정책에 필요한 대화와 협상의 국면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새 정부가 취임할 즈음이다. 한국의 새 정부가, 사실 그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한 선택지이기도 한 안보 딜레마를 일상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갈등 당사자들을 함께 앉게 할 수 있는 비핵화 프로세스의 입구를 제시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관련 당사국이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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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사)다른백년의 고정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여기서 부정기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할 것입니다.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실린 글(‘중국의 꿈’은 미국인가’)을 저자의 요청에 따라 전재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남경에 다녀왔다. 거기서 안내를 해주는 학생에게 그 유명한’부자묘(夫子廟)’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도심이 아닌 외곽의 옛 정취가 남아 있는 찻집에서 차라도 마시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경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명나라 때까지 ‘금릉(金陵)’이라 불렸던 ‘남경’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연구를 해왔다. 도쿄대학(東京大学)과 하버드대학에서 중국문학을 공부했을 때 남경을 무대로 지어진 시를 많이 읽었다. 17세기의 산문 잡기에 등장하는 진회하(秦淮河)의 아름다운 풍경과 대학시절 소설 『홍루몽(紅楼夢)』을 읽을 때 상상했던 18세기 남경의 죽 늘어선 저택들의 모습이 여전히 뇌리에 스치고 있다.
그러나 시끌벅적한 거리를 걸으며 옛 금릉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했던 나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부자묘 주변의 옛 건물은 이미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패스트푸드점과 양복점 등이 들어선 볼품없는 콘크리트 구조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질 좋은 고급 차를 파는 곳도 몇 집 있었지만 길가 상점에서 팔고 있는 음식과 기념품들은 방콕이나 L.A에서 파는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쉽게도 남경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것들은 끝내 찾지 못했다. 시인, 소설가는커녕 장인과 기술자들의 모습까지 이젠 사리지고 없었다.
옛 정취 사라진 전통 도시
부자묘의 내부도 옛 정취가 사라졌다. 벽은 석벽과 토벽 대신 콘크리트가 발라져 있었고, 목수의 실력이 나빴는지 벽과 바닥을 잇는 접합부의 마감은 허술했다. 진열된 가구들도 싸구려 느낌이 들었고 벽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식상한 그림들이 여기 저기 걸려 있었다.
나는 남경에서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과 일본의 나라(奈良) 동대사(東大寺)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사의 흔적과 끝내 조우하지 못했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가 남경의 과거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거리를 다녀 보니 그 화려했던 남경의 역사와 문화는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고, 지금의 남경은 과거와 단절된 낮선 도시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그나마 옛 정취를 조금 간직하고 있는 어느 찻집을 찾았지만, 찻집을 나오면서 이내 가슴 한가득 슬픔이 밀려왔다.
중국의 역사와 전통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것은 문화대혁명의 탓이 아니라 소비문화의 성장이 초래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슬픔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고대 중국은 지속가능한 유기농업을 통해 세계 제일의 농경시스템을 만들어내었지만, 복잡한 관료 제도를 지탱하고 많은 인재들을 길러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훌륭한 유기농업의 전통을 버렸다는 것이다.
미국의 농학자 프랭클린 하이럼 킹(F·H·King)은 그의 저서 『동아시아 사천년의 영속농업 -중국・조선・일본』(Farmers of Forty Centuries, or Permanent agriculture in China, Korea, and Japan)에서 “동아시아는 확실한 영속농업의 모델을 만들어냈으며 미국은 그것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치명적인 화학비료와 농약을 도입한 탓에 약탈농업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어서 더 이상 영속농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고대 중국 농업문명의 눈부신 지혜가 가장 필요한 지금 그것을 이어받은 그 무언가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만약 소비사회의 잔혹한 가치관의 이면에 중국인들의 소박, 절약, 효행, 겸손한 인품은 아직도 매우 매력적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들 미덕을 찾아 중국을 찾는다면 당신은 그나마 약간의 위안을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옛 전통의 힘 잃어버린 중국
서구문화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그 이상적인 모습의 모델을 찾아 많은 서양인들이 중국을 방문한다. 미국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제도를 좀먹고 있는 물질주의와 군국주의에 절망감을 갖고 있던 나 또한 같은 이유로 중국의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중국의 유학, 불교학 및 도학사상(道学思想)은 인간의 모든 부분을 금전적으로 평가하는 미국사회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유불선 사상의 조화로운 공존을 묘사한 김홍도의 군선도.
중국문화의 근면, 절약 및 지행합일 정신이 학생시절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많은 위대한 유학자들은 비록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할지라도 넘치지 않는 소박한 식생활을 실천하였고, 문학과 철학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설정했었다. 옛 중국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인간사회와 자연계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영속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중국 방문에서 나는 내가 미국에서 버리려 했던 가짜 ‘신(神)’에게 앞 다투어 머리를 숙이는 중국인들을 보았다. 식당에서는 다 먹지 못해 남겨지는 엄청난 음식에 놀랐고, 즐비한 상점에서 액세서리 등을 충동 구매하는 중국인들을 보고 나는 꽤 놀랐다.
백 년 전의 중국인들이라면 아마도 이와 같은 삶의 태도를 분명 부끄럽게 여겼을 터이다. 기후변동이 급격한 시대에 이와 같은 과소비는 분명 부끄러운 행동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미국인들처럼 환경에 대한 영향을 생각지 않고 페트병이나 비닐봉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길에 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중국의 정부조차 이러한 왜곡된 경제논리와 물질주의를 잣대로 삼아 관료들의 공적을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평가기준은 이미 서구사회에 막대한 파괴를 초래했다. 또한 많은 중국인들은 일회용 상품이 넘쳐나는 고급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며 화려한 전투기를 국력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
내가 이와 같은 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국인 미국이 발전 방향성을 잃고 국민들이 소비에 대한 환상에 빠짐으로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 했던 모습을 이미 오래 전부터 충분히 봐 왔기 때문이다.
세계의 도덕 모델로서 미국은 참패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최근 20년 동안 일련의 불법전쟁에 가담해 왔다. 미국인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로 인한 우월감에 빠져 환경보호나 빈곤층에 대한 관심 등에 관한 세계적 기준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반면 중국은 세계의 개발도상국을 견인하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중국의 발전을 성공 모델로 삼고 중국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은 중국인이고 중국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또한 중국의 문화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여러 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중국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지혜를 구하고 있다. 역사가 길지 않고 소비를 바탕으로 새로운 발전 모델 창조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미국과 비교해 중국은 새로운 발전 모델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지속가능했던 농경문화의 긴 역사와 절약의 전통이 새로운 발전 모드의 문화적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되려는 중국의 꿈
많은 중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들의 강점은 아편전쟁(1839-1842)과 애로호전쟁(1856-1860 ; 제2차 아편전쟁이라고도 함)과 같은 전쟁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들의 힘으로 국가의 이익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있다. 물론 국력을 키워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들의 소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국력의 향상이 기후의 변동 등, 인류의 존재와 관련된 과제 해결을 통해서가 아닌 항공모함과 전차의 제조 등과 같은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군비확장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 방향이 틀렸다는 것이다.
중국 국내에서는 한층 더 강화된 신자유주의의 추진과 모택동 사상의 부흥에 대한 논의가 동시에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 방식으로 경제, 생태 및 정치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자 하는 방식은 한 번도 논의된 바가 없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중국의 꿈’이라는 구상을 발표해 21세기 중국의 글로벌화를 어떻게 모색해 나갈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실현이야말로 중화민족의 꿈이며, 중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시진핑이 말한 꿈은 중국인의 정신적 성숙을 촉구하는 것으로, 국가와 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자는 호소였음에도 대다수 중국인에게는 셀 수 없을 만큼의 고급차, 편리한 교통망, 즐비한 고층빌딩과 상품이 넘쳐나는 백화점 등 유복한 국가를 의미하는 말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요리를 잔뜩 주문하고 다 먹지 못해 남긴 음식이 산처럼 쌓이는 것을 꿈꾸고 있다. 중국인은 서구화된 생활양식을 부러워하지만 우리들 서양인들에게 그것은 좋지 않은 전조로 여길 뿐이다.
고대 중국 말기 유학사상 가운데는 특히 여성에 대한 속박이 가혹했던 것도 있고 해서 서양인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의 모든 전통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중국인이 그들의 과거를 극복해야 할 장벽으로 보지 말고 과거 속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어떤 깨달음과 창조적 아이디어를 발견해 냈으면 한다.
중국의 전통문화는 어린 시절부터 비즈니스 마인드나 마케팅보다는 시집, 논리와 철학 공부를 우선하였다. 국민들로부터 지식인은 사회와 정부에 충성을 다하고, 관료는 그 무엇보다도 인덕을 중시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지금 중국에 필요한 것은 에른스트 프레드릭 슈마허(E. F. Schumacher)의 저서 『Small is Beautiful: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에서 다루었던 ‘물질지상주의materialist heedlessness)’와 ‘전통의 고수(traditional immobility)’의 ‘절충방법’이다.
중국 전통 속에 지난 100년 서구화의 대안 있어
과거 중국의 경제발전은 서구와 같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착취하여 그들의 자연자원을 약탈했던 패턴과는 다르다. 탐욕스런 글로벌주의자의 일원이 되지 말고, 인문과 지혜를 소중히 여기는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의 길로 다시 돌아와 중국 내지는 전 세계에 진정한 ‘중국의 꿈’을 펼쳐나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중국인은 유교와 도교의 전통사상을 담은 장기적 경제적 정의와 환경적 정의를 중국의 꿈속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리고 생태와 정치논리의 전통사상을 되살려 새로운 세계관의 기초를 구축하고, 경제성장의 평가 기준 및 소비활동지수의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
중국에는 이와 같은 사상체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미학’이라는 철학적 기초가 있다. 명과 청 시대의 중국인들은 몇 세기 전부터 시도되었던 농업관개계획 수립을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었다.
존 페퍼(John Feffer)가 그의 저서 『The New Marx』에서 주장했듯이, 중국의 지속가능한 농업발전의 전통이념을 다시금 연구함으로써 경제학과 환경론을 융합하는 종합적 개념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두 과학의 발전방향의 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인 자신들이 이런 보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중국의 발전방향을 재고함에 있어 학술전통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치평편(治平篇)』을 쓴 홍량길(洪亮吉)과 『농정전서(農政全書)』를 쓴 서광계(徐光啓)의 경제, 농업, 생태의 융합에 관한 노력이 환경요소를 무시한 경제이론에 진력했던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 또는 존 케인즈 처럼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날이 언젠가는 꼭 올 것이다.
중국이 세계를 선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이젠 의미 없는 물음이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무대 위에 서 있다. 최근 30년 동안 미국문화의 현격한 후퇴와 놀랄 만큼의 지식인들의 무책임이 미국사회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가 이를 어떻게 해석하든지 간에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중심적 역할이 방해받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눈부신 경제력, 과학, 정치력과 심오한 문화를 지닌 중국이야말로 국제무대의 한가운데에 서는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다.
과거 아시아에서 가장 강했던 중국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과 같이 식민지 개척의 길을 걷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공평한 ‘세계 경기장’구축에 공헌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대이지 확실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왕성한 창조력과 도덕성을 갖추고 경제력과 권력 추구를 냉정하게 절제하고, 자신들의 전통문화가 어떻게 국가와 세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법률준수, 세계 평화와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기대가 기회제공만의 무대가 아니라 책임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혜택을 받는 나라도 있는가 하면 부담을 져야 하는 나라도 있다. 중국은 분명 부담을 져야 하는 쪽이다. 지금 중국의 결정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帯一路)’의 전망
글로벌 경제발전이라는 무대의 주역인 중국은 아시아와 유럽 각국의 일체화와 협력관계를 추진하기 위해 ‘일대일로(一帯一路)’라는 전략을 발표하고 세계 각국의 지지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여태껏 ‘일대일로’전략은 인프라 건설과 자원개발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한 미래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경제성장과 투자확대를 위해 이들 프로젝트는 중국의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그 밖의 원재료 공급을 중점으로 한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실크로드기금(NSRF), 상해협력기구(SCO), 실크로드 골드기금, 광업산업발전기금 등은 환경보호와는 거의 무관한 것들이다. 에너지 소비의 정도를 국력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레스터・R・브라운(Lester Brown)의 저서 『누가 중국을 먹여 살릴 것인가? 닥쳐올 식량위기의 시대(Who will Feed China?)』에서 말하고 있듯이 중국의 식량과 연료 소비상황은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중국은 최종적으로 새로운 조직, 정책 및 습관을 만들어 낼 것이고, 이로써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해 나갈지도 의문이다.
‘일대일로’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를 계기로 이미 서구사회에서는 잊혀진 『국제연합헌장』을 기반으로 삼아 새로운 국제질서의 구축이 현실화될 수 있으리라. 또한 프라이빗 엑티 펀드와 다국적기업의 영향 하에 있는 세계은행과는 다른, 세계의 고도 일체화 동향에 적합한 글로벌 관리기구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다.
‘일대일로’전략은 중국의 독재가 아닌 세계의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초강대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국제합의시스템을 낳는 소중하고도 보기 드문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또한 이 전략을 경제적 이익의 측면에서가 아닌 ‘인류를 위한 구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중국은 ‘일대일로’전략에서 제시하고 있는 ‘신 실크로드’라는 말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실크로드’라고 하면 당 나라 때 중국과 아시아, 유럽의 각국을 연결하는 사마칸드, 안디잔과 같은 무역중심으로 대표되는 ‘오아시스의 길’과, 중국과 인도, 페르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바닷길’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중앙아시아, 인도, 페르시아 간의 깊은 문화교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문화교류는 불교사상의 융성을 촉진시켰고, 돈황의 아름다운 벽화, 장안의 멋진 조각과 자기(磁器), 그리고 그 후의 중국문학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시집을 탄생시켰다.
신 실크로드 구상은 서구의 경제발전을 위한 길이 아닌 문화 창조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새로운 공항 건설을 대신해 유기농업 추진에 얼마만큼의 힘을 쏟을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또한 협력 프로젝트에 의한 연료, 광물의 채굴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개발로의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어느 국가든 경제발전계획은 정신적 요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회개혁주의자 리차드 핸리 토니(R. H. Tawney)는 가장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요소가 언제나 무시된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영혼이 있다. 경제계획은 인간 존엄성에 상처를 주고, 영혼의 자유로움을 방해하는데, 이는 물질적 풍요로써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진리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경제 질서와 그것을 재고하고자 하는 여러 대책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경시하는 공업은 언젠가 반드시 인간 영혼에 분노의 불을 붙이고, 틀림없이 경제발전의 주기적인 파괴 내지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 이외에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해야만 한다.
이 ‘신 실크로드’구상은 과연 서구 경제발전의 파괴의 길을 피해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인 문화로 눈을 돌리게 할 수 있을까? 또한 공항의 대량 건설과 석유연료 및 광물을 채굴하는 대신에 지속가능한 유기농업의 발전과 에너지 개발 협력 프로젝트에 힘을 쏟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현재는 이와 같은 동향을 찾아볼 수가 없다. 중국은 이전에도 급격한 개혁과 변화의 시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많은 중국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바로 중국의 과거 유산에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해답이 숨어 있다는 점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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