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산물 헌법재판소, 민주주의를 삼키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비판 토론회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와 사법감시센터는 12/22(월) 오후 1시,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비판 토론회, “민주화의 산물 헌법재판소, 민주주의를 삼키다”를 개최했습니다.
토론회는 한상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의 사회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재정 변호사의 토론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적 판단이기보다 재판관 8인의 정치적 판단, 헌법재판소 구성 다양화해야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법리를 적용한 사법적 판단이라기보다 재판관 8인의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정치적 판단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결정문 전반부에 헌법 제8조 제4항, 정당해산 조항이 해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렵게 함으로써 정당의 존속을 보호하려는 것임을 밝히면서도, 이를 확대해석했다. 오히려 중요한 쟁점들에서 구체적 증거 제시없이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 숨은 목적이라고 단정했다. 북한 추종세력인 자주파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강령에 도입했다는 것이 이유인데, 이것은 '진보적 민주주의=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의 등식을 성립시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없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이석기 의원 등의 활동을 정당 전체의 활동이라고 판단하여 통합진보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는데, 그 근거로 이석기 의원 등이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고 이들이 당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주도세력'이나 '장악'은 법률용어가 아닐 뿐더러, 그들의 활동을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의 활동과 등치시킬 수 있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증거와 설득력있는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의원직 상실을 주문한 것이다. 어느 법규에도 해산 결정시에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은 없다. 헌법재판소가 법적 근거 없이 월권을 한 것이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거꾸로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막으려면 재판부의 구성을 획기적으로 다양화해야 한다. 헌법재판관은 민형사상 재판 경험이 많은 걸 요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성향의 인사들이 필요하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통합진보당 해산은 정부의 삼권분립 몰이해, 국민 기본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사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당사자 뿐 아니라 5천만 국민들이 자기검열을 상시화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 야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몰이해와 감정동원에 기인한다. 집권 2년 동안 검찰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다. 수사 결과와 재판 결과가 법리적으로 내려졌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사법적 결정을 존중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입법부의 심의과정에서도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집권당의 재량적 여지가 없어지고 여야 간 협상의 여지도 없어졌다. 입법권이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합의적 대안을 만들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집권 이후, 시민들의 결사체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여왔다. 민간 결사에 관한 헌법권리와 법률적 규정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통치행위의 유불리 측면에서 억압해왔다.
감정적 동원에만 의존한 통치스타일도 문제다. 대통령마다 각기 다른 정책목표를 추구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는 보편적 제도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이분법적 정치언어, 격한 감정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합리적 논리나 설득의 과정을 생략하고, 감정적 동의 혹은 반대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남은 3년동안 이와 같은 권력행사를 계속한다면, 적대적 저항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고 그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리적 한계를 스스로 노출한 헌법재판소, 1인의 소수의견이 기억되고 다수의견이 수치스러운 결정으로 남을 것
헌법재판소 결정은 무모하고 비겁하고 무책임한 결정이었다.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베니스위원회의 정당해산지침이나 유럽인권재판소의 정당해산요건의 핵심요소를 애써 배제했다. 실질적 위해의 경우도 구체성 외에 '충분한 현존성'이 필요한데, 다수의견은 이를 무시하였다. 현존성은 강령만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이를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요구한다. 더구나 정당해산의 극단성에 비추어 '긴절한(pressing)' 필요성이어야 한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군소정당에서 4년만에 제1당이 되었던 선례를 통합진보당에도 적용하는 것은 논리비약의 극치다.
다수의견은 무모함을 넘어 비겁하기까지 하다. 다수의견은 보편적 법원칙은 엄격하게 선언하면서 그 적용은 자의적으로 완화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정당활동의 자유에 극단적인 제약을 가하면서, 오히려 이러한 결정이 소위 진보진영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임을 명분으로 삼는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무책임하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정신을 철저히 지켜서 헌법분쟁을 종결시켜야 그 존재의의가 있다. 그러나 정치적 소수파를 그 일부의 정치적 오류만을 이유로 반체제 세력으로 단정함으로써 종북논쟁의 공간을 제공하였다. 이번 결정에서 그나마 1인의 소수의견이 있었기에 다수의견의 문제점이 선명하게 대비될 수 있었다. 1인의 소수의견이 헌법재판소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곳임을 보여준다. 헌법재판관 구성을 개편해야 한다. 법관 자격을 확대하고, 청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국회와 대법원장, 대통령이 각 3인씩 추천하는 것이 권력분립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그렇지 않다. 국회가 재판관을 추천할 때 가중정족수(재적 2/3의 동의)를 거치거나, 대법원장이 재판관 추천시 판사회의에서 제청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겠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제2의 민주화운동에 어떤 가치와 내용을 담을지 고민해야 할 때
박근혜 정부가 정당해산이라는 극단적 조치까지 택한 것은 이념적 시비, 소모적 이념갈등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국정을 운영할 수 없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결정은 전반적으로 정당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협소하게 만들고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대응해가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진보정당이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이러한 결과가 나도록 여지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반유신, 유신으로의 회귀 등의 정치적 수사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미시적 대응과 거시적으로 제2의 민주화운동도 필요하다. 어떤 내용과 가치로 만들것인지, 언어의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이재정 (변호사)
많은 증거를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기대면서도 최종심 보지 않고 해산 결정
헌법재판소가 독일 공산당 해산을 사례로 들고 있는데, 독일의 공산당 해산결정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이념적으로 매도해도 충분할 상황에서도 5년이나 숙고해 내린 결정이다. 변론기일이 종결되면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보는 것이 당연할텐데, 11월 25일 최종 변론 이후 12월 19일 결정까지 짧은 시간 동안 1년 여간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제출한 17만 여 페이지의 자료를 모두 재검토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해산심판청구도 다급하게 이루어졌고, 왜 대통령이 없는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헌재는 민사소송 절차를 준용했는데, 민사소송 절차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다행이지만 증거에 의한 재판이라고 보기에 논리적 비약이 심하고, 증거에서 배치되는 것이 있는데도 그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상당히 많은 증거를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기대고 있는데, 이 사건의 최종심을 보지도 않고 해산을 결정했다. 독일 공산당의 경우 해산 이후 12만명이 넘게 수사를 받았고 6,7천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벌써부터 그 징조가 보여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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