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기본법, 복지를 죽이는 법인가?

 

김남희 l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사회보장기본법, 법 이름만 들어보면 사회보장의 기초를 다지는 법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 사회보장기본법이 적용되는 현실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회보장기본법은 복지를 깎거나 축소시키는 상황에 대해서는 무기력하며, 오히려 복지를 늘리거나 확대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칼날을 들이미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사회보장기본법은 복지를 위한 법인가, 복지를 죽이는 법인가? 이 글에서는 사회보장기본법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실제 적용례를 살펴보고 문제점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한 사회보장기본법의 전면개정

 

현행 사회보장기본법은 1995년에 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을 2012. 1. 26. 전부 개정한 것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이 전부 개정은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시절이던 2011년 2월에 대표발의하여 그 발의내용이 거의 그대로 수용되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발의할 당시 제안이유는 다음과 같다.

 

최근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 산업구조의 변화, 세계경제의 위기 등으로 인한 사회·문화 및 경제적 환경이 변화하면서 선진각국은 소득보장형 복지정책으로 인하여 재정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국민 개개인도 생애주기별로 노출되는 다양한 위험을 자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등 전통적인 복지국가형태는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려워지고 있음.

 

이에 따라 아직 복지국가의 초기단계에 있는 우리나라도 서구 선진복지국가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게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복지정책적 체질 개선이 필요해짐. 소득보장형의 복지국가에서 국가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국민도 평생 동안 생애주기별로 겪게 되는 다양한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소득 및 사회서비스를 함께 보장하여 평생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맞춤식 생활보장형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법이 기본법으로서 사회보장의 추진방향을 제시하고 있지 아니하고 사회보장 관계 법률들이 흩어져 있어 여러 행정부처에서 관장함에 따라 사회보장정책을 일관성 있게 수립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는데 연계성이 결여되는 등 현행법으로는 사회보장정책을 통할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움.

 

따라서 모든 국민이 평생 동안 겪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하여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통합적으로 접근하여 국민의 보편적·생애주기적인 특성에 맞게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함께 보장하는 방향으로 사회보장제도를 확대·재정립함으로써 한국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중장기 사회보장정책의 비전과 미래지향적인 발전방향을 제시하여 건강한 복지국가를 설립하려는 것임.

 

복지체질개선, 생애주기별 복지, 맞춤형 복지, 한국적 복지국가… 좋은 말인지 아닌지는 좀 아리송하다.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이 법의 통과를 자신의 성과로 내세우며 “저는 한국형 복지모델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추진하겠다는 생각으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일관성 있는 복지정책을 위해 설계를 잘해야 합니다.”라고 대선후보자 TV토론에서 발언하기도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의 건설”이라며,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지급, 4대 중증질환 전액 국가보장 등 보수정당의 후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복지공약을 내세우며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유명무실한 사회보장위원회

 

사회보장기본법의 핵심은 사회보장위원회의 설치이며(사회보장기본법 제20조), 사회보장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이 이 법의 주요한 내용 중 하나이다. 사회보장위원회는 사회보장 증진을 위한 기본계획과 사회보장 관련 주요 계획, 사회보장급여 및 비용 부담,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 및 비용분담, 사회보장 전달체계 운영 및 개선에 대한 내용을 심의하고 조정하는 중요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사회보장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복지부장관, 기획재정부장관, 행정자치부장관, 고용노동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등 14개 정부부처의 장과 다수의 민간전문인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사회보장기본법 제21조). 부처 간의 칸막이를 허물어 복지정책과 제도를 효과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야심차게 출발한 사회보장위원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사회보장위원회 전체회의는 단 9차례 개최된 것이 전부이며, 그나마도 보건복지부가 사전에 올린 안건을 형식적으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을 한 정도이다. 사회보장 증진을 위하여 부처 간의 통합을 이루겠다는 사회보장위원회의 역할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주의료원 폐원 사태와 무기력한 사회보장기본법

 

박근혜 취임한지 하루만인 2013. 2. 26. 경남도는 진주의료원 폐업방침을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 5. 29. 폐업을 공식발표하고 6. 11. 경남도의회가 진주의료원 해산조례를 날치기 통과시켜 버리기까지 하였다. 공공병원으로 막대한 국비가 투입되어 새로 지어진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지자체가 적자를 이유로 공공병원을 폐원한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참여연대와 보건의료단체연합은 2013. 6. 3.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에 대해 사회보장위원회가 사회보장기본법에 의한 조정권한을 행사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보건복지부장관과 국무총리에게 사회보장위원회 소집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르면 지자체의 장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신설변경의 타당성, 기존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 및 운영방안에 대하여 보건복지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하고, 그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회보장위원회가 이를 조정하도록 되어 있다(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또한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보장의 정의를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라고 하고, 그 사회서비스의 한 영역으로 보건의료 분야도 포함시키고 있다(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1호, 제4호). 그런데 진주의료원 폐업결정 과정에서 홍준표 지사와 경남도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폐업방침 발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신중한 처리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음에도 이에 따르지 않고 바로 폐업을 강행하였으므로, 지자체와 국가의 사회보장 역할 분담에 대하여 조정하는 사회보장위원회가 개입하여야 할 사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2013. 8. 29. 다음과 같은 공문을 보내 사회보장위원회 소집을 거부한다.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의 사전협의는 사회보장제도의 신설, 변경시 제도의 타당성 및 기존 제도와의 관계 등을 검토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개별 기관의 설립이나 폐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이에 따라 귀 단체에서 청원한 진주의료원 폐업 관련 사회보장위원회 소집을 하지 아니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진주의료원은 연간 내원환자가 수만 명에 달할 정도의 규모가 큰 공공병원이었고 신종플루가 발생했을 때 환자를 받는 지역의 유일한 병원이었다. 진주의료원 폐원은 역사상 최초의 공공병원 강제폐업으로, 경남도는 수백 명의 환자가 입원한 상태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을 강행하였고, 진주의료원에서 강제퇴원당한 환자가 사망하는 등 반인권적인 상황이 발생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사회보장위원회는 공공의료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히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개별 기관의 폐지”에 불과하여 사회보장위원회에서 다룰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사회보장기본법이 박근혜 공약이던 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를 가로막다

 

이처럼 무기력했던 사회보장기본법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놀랍게도 지자체들의 복지정책을 가로막기 위해서이다. 최근 대구시에서는 화재, 가스, 호흡기이탈 등에 따라 중증자애인 사망사고가 수시로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중증 독거, 취약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24시간 활동보조인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대구시는, 지자체의 장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할 경우 보건복지부장관과 협의하도록 하는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제2항에 근거하여 24시간 활동보조 계획을 보건복지부장관에 협의신청을 하였으나,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에 대하여 추가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사회보장위원회 제도조정소위원회를 개최하여 최종적으로 위 사업에 대하여 불수용한다는 통보를 하였다. 문제는 대구시 뿐 아니라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 경상북도, 강원도 등 다른 지자체에서 추진하던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 계획 역시 번번이 사회보장기본법상 사회보장제도 협의, 조정 제도에 걸려 추진이 중단되거나 보류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자체가 독자적인 복지사업을 추진하는데 사회보장기본법이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고 발생시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의 사망사고가 수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장애인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 도입은 하루가 시급하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 85페이지에는 “중증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이 공약으로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자랑스러운 성과로 내세운 사회보장기본법은 지자체가 중증장애인 활동보조를 추진하는 것조차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보장기본법에 근거하여 지자체가 추진하는 복지정책을 가로막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사회보장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고되었는데, 사회보장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를 기획조정, 사회서비스, 사회보험, 공공부조 전문위원회에서 기획, 제도조정, 평가, 재정·통계 전문위원회로 변경하는 내용(시행령안 제12조)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사회보장위원회가 사회서비스, 사회보험, 공공부조 등 사회보장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제도를 조정하고 평가하는 일을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사회보장기본법의 문제점 : 지방자치제도와 국민의 기본권 침해

 

살펴본 것처럼 사회보장기본법은 현재 사회보장제도를 통할하는 역할은 하지 않고 지자체가 독자적인 복지정책을 추구하는 것을 감시하고 억제하는 통제기능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이는 헌법상 보장된 지방자치제도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헌적인 측면이 있다.

 

헌법과 지방자치법은 주민의 복지증진 사무가 지자체의 역할임을 명시하고 있으며(헌법 제117조 제1항, 지방지치법 제9조) 헌법재판소는 “지방자치제도라 함은 일정한 지역을 단위로 일정한 지역의 주민이 그 지방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 기타 법령이 정하는 사무(헌법 제117조 제1항)를 그들 자신의 책임 하에서 자신들이 선출한 기관을 통하여 직접 처리하게 함으로써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제고하고 지방의 균형적인 발전과 아울러 국가의 민주적 발전을 도모하는 제도”라고 판시한 바 있다. 즉 지방자치의 주된 기능으로 주민의 복지증진이 있고, 지방자치제가 이를 지자체의 책임하게 민주적으로 처리하게 하는 제도라면, 지자체가 독자적인 복지정책으로 주민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은 지방자치제도의 핵심이자 주요 목적이다. 그런데 사회보장기본법을 근거로 지자체의 복지정책을 가로막는 것은 명백한 지방자치제도 침해이며 위헌적인 것이다.

 

또한 사회보장기본법은 국민의 생존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는 중증장애인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며 생존은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5조)의 가장 기본이다. 사회보장기본법이 장애인의 최소한의 생존권 보호조차 가로막는다면, 이 법은 위헌적인 법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회보장기본법, 과연 복지를 죽이는 법인가? 이 법을 발의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