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시장구조개선 논의의 문제점
김성희 ㅣ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일을 해도 가난하고 일을 못해서 가난한 현실
서구 국가들은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두 자리 수 실업률을 기록한 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반면, 우리나라의 공식 실업률은 여전히 한자리 수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모두가 정규직은 아니지만 고용기간이 1년 이상인 상용직 고용은 늘어나고, 1년 미만의 열악한 일자리인 임시일용직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매우 비관적이다. 1년 이상 고용기간을 가진 상용직이라 해도 수시 해고에서 자유롭지 못한 비정규직의 숫자가 많이 늘었을 뿐이다. 고용률은 60% 아래에서 여전히 답보상태이며, 실업률은 낮다지만 실질실업률(실업률3)은 올해 1월에 11.9%, 2월에는 12.5%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임금노동자 중위임금 2/3 미만의 임금 노동자로 정의되는 저임금노동자의 비율은 25.0%(2014년 3월 기준 중위임금 190만원의 2/3인 127만원 미만의 노동자 비율)로 OECD국가 평균 16%보다 높고 미국과 함께 저임금 노동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OECD Employment Database 2011). 청년실업률은 11.1%로 고공행진 중이고, 구직단념자와 18시간 미만 취업자,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생과 쉬었음으로 응답한 숫자까지 합한 실질실업율은 30%를 넘는다.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분석으로 작년 8월에 45.7%)가 절반의 임금(동일한 자료로 정규직 월 평균임금 289만원 대비 144만원)을 받는 악성 고용구조도 큰 변동이 없다.
악성 고용구조가 낳은 불평등 구조도 문제다. 고용구조 악화는 소득불평등과 대량 빈곤층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구 소득 기준으로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불평등이 심하지 않은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김낙년 교수의 보정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이러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OECD 최하위 수준의 불평등도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청소년과 청년층이 알바 등 저임금노동의 늪으로 내몰리고 있고 고령층의 취업률도 매우 높아지고 있는데,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에 몰려있다. 사회복지제도가 불충분해 사회소득으로 보전하지 못하기에, 청년층도 고령층도 저임금 일자리에 취업하여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종합대책과 임금소득 등 가계소득 증대방안을 내놓은 바 있으나 실효성은 없다. 더구나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한다면서 파견제와 기간제 합리화를 내걸었지만, 결국 ‘가늘고 길게 평생 일하라’는 메시지만 던지고 있다. 일을 해도 가난한 문제를 풀기 위한 획기적 대책은 없고, ‘고용보장이 되지 않는 비정규직 일자리로 여러 직장을 전전하더라도 눈높이를 낮춰서 저임금 일자리라도 마다하지 말라고’ 채찍만 가하는 형국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종 선택지: 노동 유연화 통한 경제살리기
박근혜 정부의 잇단 경제정책, 비정규대책의 발표와 경제팀의 노동관련 정책 언급(최저임금, 청년실업),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노사정위원회의 논의를 보면 두 가지 생각이 엇갈린다. 맥락 없이 모순된 정책이 두서없이 쏟아져 정책방향의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와 갈 길은 정해 놓았는데 호응도 높은 정책을 방패막이 삼아 대중적인 명분을 만들고 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그렇다고 두 가지가 서로 배척하는, 모순관계는 아니다.
2014년 8월 최경환노믹스로 불리며, ‘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낙수효과만을 강조하던 성장중심 신자유주의정책에서 ‘분배를 통한 성장’ 또는 소득 주도 성장모델을 반영하는 ‘신자유주의+α(신자유주의 수정보완정책)’의 흐름을 반영하는 변화를 선보인 바 있다. 최경환 판 분배 성장론이 신기루였음이 판명난 다음이긴 하지만, 작년 12월에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본격화, 2015년 경제정책 방향」(관계부처 합동, 2014. 12. 22)은 전혀 딴판이다. 그 내용은 4대부문(금융, 공공, 노동의 세 가지는 동일)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중심의 IMF위기 시기 경제정책과 유사하다. 그런데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시장구조개선에 대한 지루한 논의를 반복하고 있는 와중에, 경제팀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한다면서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과 같은 카드를 던지기도 했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시중노임단가의 공공입찰 적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사정위원회 논의에서 정부측 위원도 공익측(또는 전문가) 위원도 함부로 제기하지 못했던 안이었다. 노사정위원회 논의가 사용자편향으로 돌아가고 있고 한국노총은 그 안에서 1:3으로 대응하느라 힘들다고 한탄하는 와중에 터져 나온 일이기에 더욱 돋보이던 기묘한 불일치였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의도가 무엇인가? 우리 사회 전반의 양극화라는 명암이 뚜렷해지고 논의 지형이 복잡해졌기에 복합적 성격이 드러날 때도 있다. 아울러 정치적 대응의 방식도 쟁점에 따라 변동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3년차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그 보수적 정체성은 뚜렷하다. 경제, 사회정책 방향은 정치적 이득이 있는 방향으로 쟁점을 활용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혼재성이 두드러질 때도 있다. 얼마 전 청년실업자의 중동 진출과 같은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 있었다. 청년실업에 대한 태도는 정서적 공감 표출과 논리적 타박(결국 눈높이론)이라는 양면성이 특징이다. 대기업 임금인상이나 최저임금 인상, 시중노임단가 적용, 청년실업에 대한 공감 등 전향적 논의는 정규직 책임론, 시간 임금 해고 파견 기간제등 전 방면에 걸친 유연화 조처의 확대, 청년실업 당사자 책임론 등 노동 유연화 기조 관철을 위한 분칠일 가능성이 크다. 위기 시마다 속까지 다 바꾸겠다던 보수 정치의 변신능력의 실상은 IMF 구제금융 이행기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또 하나의 혼란은 박근혜 정부가 혁신과 창조의 겉모양새를 구태의연한 상명하복식 권위주의 통치행태로 관철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낙하산 인사를 버젓이 자행하면서 공공부문과 금융부문의 혁신을 외치는 유체이탈 통치양상이다.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로 볼 때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IMF 위기 이후 관철되어온 시장지상주의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 만능론에 창조경제의 외피를 씌우고 박근혜 대통령 공약의 일부를 덧입는 데 불과한 것으로 판명났다.
경제정책 방향의 기조는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이는 신자유주의의 기원이라는 쌔처리즘, 레이거니즘이 ‘규제에 의한 규제완화’였고 ‘구축된 노동권에 대한 포퓰리즘적 공세’였다는 점에서 한국적 특수성만이 아니다)에서 벗어나지 않은 가운데, 노동정책은 노동시장의 차별과 이중구조에 대한 심정적 동조와 논리적 책임전가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노동부문 개혁으로 표현되었다. 노사정위원회라는 세력관계 불균형의 합의기구는 또 한 번 합의의 외형 장치로 동원되었다.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구조개혁인데, 4대부문 개혁으로 공공, 금융, 노동, 교육분야를 설정하고 있다(IMF 위기 때 기업부문 구조조정 대신 교육이 들어갔다).
첫째, 공공부문 개혁으로 재정지출 효율성 제고를 위해 재정지출을 줄이고 민자사업과 민간투자는 확대하며,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적극적인 재정투자라는 신자유주의 수정보완책의 실상은 민자유치를 중요한 축으로 삼는 재정확대 정책과 빚내서 부동산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는 부동산 경기활성화 방책(또 뒤이은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발표와 연속된 금리인하 정책)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 부채주도 성장모델이지, 분배주도 성장모델은 아니다. 확장적 재정정책도 공공 투자의 조기집행 방식 외에 별다른 방책이 없다.
둘째, 금융부문 개혁은 경쟁촉진과 모험자본 활성화를 통해 실물로의 자금순환을 촉진한다고 하는데, 결국 재벌의 금융지배력 강화와 금융투기자본의 활동영역을 확대하는 데 초점이 있다. 외환거래 활성화와 사모펀드의 활동영역 확대 등 전 방위의 금융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부양책이며, IT기술과 금융자본의 융합이라는 현란한 이름의 금융상품은 현재의 기업여신을 창조경제, 혁신투자라는 이름으로 뒤바꾸는 변화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4대 재벌을 제외하고 30대 재벌 중 유동성 위험에 직면한 절반 정도의 위험군 재벌들의 주채권은행이 산업은행, 우리은행과 같은 실상 국책은행에 몰려 있어 정경유착의 구조적 가능성을 안고 있는 점과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점 등 구태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셋째, 노동부문 개혁은 비정규종합대책과 노동시장구조개선이 초점이다. 노동 유연성과 안정성의 동시 제고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사정위 논의를 거쳐 추진하는데 그 초점은 “임금, 근로시간, 근로계약 등 인력유연성의 제고”와 “파견, 기간제 근로자 사용에 대한 규제를 합리화”하는 데 있다. 서구의 유연안정성 논의가 그렇듯 유연성 항목은 가짓수가 많고 명료하고 직접적인 방향으로 노동시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반면, 안정성 항목은 무기계약직 전환방안처럼 이제까지 실시한 정책의 연장선이거나 제도 제도개선 방향에 따라 추이가 달라질 수 있는 항목들(사회보험 개편, 직업훈련 지원)을 주로 포함하고 있다.
별도로 언급한 최저임금 개선과 시중노임단가 적용은 진전된 사항이며, 일부 지자체의 생활임금 적용과 함께 최저선을 올리는 등고선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노동시간제도의 변형과 꺾기 관행 등 저임금 노동자에게 만연해지고 있는 최저임금 효과 무력화 흐름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그 실효성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에게조차 ‘최저임금+@(20-50%)’로 결정되는 시급제 관행이 만연해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과 임금체계 개편 또는 비정규직 보호방안과 정규직 과보호 기제의 완화를 맞교환 대상처럼 다루게 된다면, 최저임금의 ‘등고선 효과(누적적 임금인상 효과)’는 제약되고 오히려 노동소득분배가 압착되어 하향 평준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노사정 논의는 작은 쟁점으로 세분화되어 다루어지면서 주요 쟁점의 유기적 연계를 통한 큰 그림의 구조개편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간단축과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의 해소, 통상임금 제도 개선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일자리 창출과 정규직 전환의 계기를 형성하는 정책혼합 구조혁신 방안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세분화된 과제에서 안정성과 유연성 항목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정치적 교환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됨으로써 불안정성이 매우 높은 노동시장구조에서 하향 적용된 유연안정성의 기형적 모형을 탄생시키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부문 개혁은 ‘괜찮은 일자리 부족’과 만연한 청년 실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초점을 인력수급 불일치를 조정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현장맞춤형 인재양성이 초점이며, 학제개편을 언급하기는 하나 대학경쟁력 강화라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구조조정 정책이 주요 내용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복지-경제’ 연계정책의 문제점
가계소득 증대세제
최경환 경제팀은 출범 이후 가계소득 증대세제를 통한 분배 성장론, 정규직 과보호론,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4대부문 개혁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방향의 횡보를 거듭했다. 과연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 방향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가장 논란이 된 가계소득 증대세제를 보자. 근원적으로 3종 세트의 구조상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이 문제이다. 과세를 피하려면 사내유보금을 줄여서(기업소득 환류세제로) 임금을 늘리거나(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을 늘리도록(배당소득 증대세제) 유도하는 데, 정작 투자를 유인하는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이미 투자 관련 감세조처가 있긴 하지만, 이 정책구성만으로 볼 때 대기업 고임금 지원과 배당소득 자산가 지원이라는 부자 감세를 위한 장치가 주축이다. 기업들이 절세를 위해서 부자 감세에 의존하도록 하는 장치이므로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구성인 것이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 절세를 위해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개선을 도모하도록 이익금을 활용하게끔 유도하고 이를 주축으로 삼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 차원의 양극화가 심각하고 이로 인한 소비부진이 문제인데, 사회적 차원의 소득 환류 장치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상생협력 자금을 세액 감면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도 부품협력사를 고려한 조처라기보다 기업의 세액 부과대상 축소의 성격이 더 강하다. 사회적 환류장치의 도입을 위해서 과세로 얻은 재원을 기업 내에서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활용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정규직 과보호론
최경환 부총리와 고용노동부는 정규직 과보호론을 해고가 어렵다는 고용 측면과 근속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임금 측면의 경직성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있어 정책방향이 왜곡될 우려가 크다.
먼저 고용측면의 과보호 여부를 살펴보자. OECD는 1998년 이후 5년 단위로 회원국들의 고용보호법의 경직성(반대로 유연성) 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정규직의 과보호가 아니라 보호규제가 취약한 편에 속한다. 2013년 기준으로 개별적 해고의 보호지수는 34개국 중 22위이고, 집단적 해고의 경우 30위였다. 우리는 정리해고의 4가지 요건(경영상의 긴박한 사유, 최후의 수단으로써 정리해고 방식을 사용하기 위한 해고 회피 노력,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 등과 성실한 협의, 정리해고 사유 소멸 시 재고용 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보호체계가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실상 그 요건이 명확하지 않고 엄밀하게 지켜지지 않아서 정리해고 절차에 대한 최소요건(재고용과 선임권)만 갖춘 미국식 일시해고(lay-off: “당신 해고야”로 해고할 수 있고 경영자의 필요성 판단만으로 언제든 집단 해고를 단행할 수 있는 체계)와 다르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 가장 유연하다는 미국에도 있는 재고용과 선임권 조항마저 없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쌍용차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경영상의 위험을 예상하고 단행된 정리해고도 폭넓게 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쌍용차의 경영이 정상화되었음에도 정리해고자에 대한 재고용 조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결과는 우리나라의 근속년수가 OECD 25개국 중 최하위로 평균 10년에 비해 절반인 5.1년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또한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비율도 OECD 평균 36.4%의 절반인 18.1%로 꼴찌다. 사오정(40, 50대에 정년)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지 오래인데, 경제부처의 정책입안자들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인지 의아해진다. 정년까지 보장받는 정규직이 있지만, 그 비중은 1,000인 이상 기업과 공공부문에 속한 종사자 약 5%나 300인 이상으로 확장해도 10%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전부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두 번째, 임금 측면의 경직성을 살펴보자. 정년까지 계속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급(호봉제)을 문제 삼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임금체계는 더 이상 호봉제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79.7%가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어 가장 비중이 높지만, 동시에 성과배분제도 75.5%, 연봉제는 46.8%를 도입하는 등 능력과 직무에 따른 임금 차등을 설정하는 임금체계도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 근속에 따라 정년까지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차등임금이 이미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 생산직의 높은 임금 수준을 문제 삼는데, 안정적인 임금인 기본급과 통상수당은 합쳐도 40%에 불과하며 회사 실적에 따라 변동하는 집단성과급이 20%, 경기에 따라 변동할 수 있는 임금인 시간외수당이 10~20%를 차지한다. 월급제를 한다지만 사실상 시급제로 운영되어 장시간노동에 의존하고 회사 실적에 따라 임금 변동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수준은 이런 변동적인 임금구성에 상당부분 기초하고 있어 불안정한 구조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더구나 최고 수준의 대기업 생산직이라도 기본급은 최저임금에서 20~30% 정도 높은 수준에서 설정되어 있다. 잔업, 특근을 하지 않고 상여금이 없으면 월 130만원~180만원 수준에 머무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높은 변동급이 특징인데, 임금체계가 경직적이라는 진단을 계속하는 건 현실과 맞지 않다.
전체 노동자의 극히 일부인 재벌 대기업 정규직의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수준은 안정성이 없으며 통상임금 판결 적용을 통해서 안정성과 시간단축 과제를 결합할 계기로 삼아야 할 사안이다. 적어도 임금체계가 경직적이라서 정규직이 과보호되었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사무직의 경우에는 연봉제, 성과급제 등이 광범위하게 도입되어 개인 간 임금 차등폭은 상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커지고, 결국 중도 퇴직의 강제 수단 또는 압력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금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정규직은 결코 과보호된다고 할 수 없으며, 극히 일부의 사례를 침소봉대한 것뿐이다.
더구나 경력 초반에는 연봉제, 후반에는 성과급제, 말기에는 임금피크제로 임금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노동자 전반적 생활의 불안정성을 대가로 얻는 것인데, 과연 그 이득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무모한 정책이다. 경기는 침체되어 소득의 증가는 갈수록 어려운데, 채 생활비는 나이가 들수록, 해가 갈수록 오르는 실정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중도퇴직, OECD 평균의 세배에 이르는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 영세 자영업으로 내몰리나 실업과 빈곤의 나락에 직면하는 현 실태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한줌의 정규직의 안정 기제를 해체하려는 통념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정규직 과보호론은 대중의 빈곤을 희생양으로 기업 살리기에 전념하는 불황 탈출 전략일 뿐이다. 방향도 잘 못 되었지만, 이제까지 정책 실패를 반복한 타성에 기댄 정책으로 현실성도 없다.
최저임금 인상론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최경환 경제팀의 가계소득증대 3대 패키지보다 훨씬 강한 소득-소비 선순환 효과를 가진다. 1998년에 영국에서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제의 효과를 보자. 최저임금이라는 이로운 제약(beneficial constraint)은 많은 사용자들이 직원들의 해고 없이 높은 인건비를 회복하는 방법 (생산성 향상, 제품 가격 인상, 근무시간의 축소 등)을 찾도록 유도했다. 최저임금 제도가 ‘낮은 임금-낮은 생산성’이라는 전략에서 벗어나게 만든 것이다(Kelly, 2011).
지금 무엇보다 임금 깎기에 불과한 휴게시간 변경이나 꺽기 제도, 단시간 계약 강요 등 노동시간제도에 의해 변형되지 않는 최저임금의 긍정적 효과를 추구할 때이다. ‘물가상승률+경제성장률+소득분배 개선 보정치’를 더하고 임금을 통한 최저생계비 충당을 향해 획기적 최저임금 인상을 추구할 수 있다. 중간 장치로 시중노임단가의 낙찰률 100% 적용 단계를 설정하는 효과를 포함해, 시급 1만원 최저임금인상의 효과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 생활임금, 시중노임단가 적용, 최저임금 1만원 목표 등이 다루어지는 것은 최저임금제도의 강력한 효과에 주목하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저임금 노동자 문제 해결과 그 선순환 효과의 확산을 위한 중요한 진전의 증표이다.
시간단축
많은 논의가 있지만, 시간단축과 유연화의 교환에 대해선 한마디로 족하다. 노동시간단축과 유연화(탄력적 제도)의 교환은 40시간제 이하로 단축할 때 등장했다. 40시간제가 도입되었지만 주5일제가 아니라면서, 그것도 기업규모별로 10년에 걸쳐 단계40시간을 적용하면서 식목일 휴일부터 없앴던 모순된 사례를 지금 또 반복하고 있다. 휴일을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는지 여부를 두고 노사정 논의를 핑계로 정부는 한 입으로 두말을 하고 있다. 이번에야 말로 전향적 기획을 할 계기로 삼아야 하며, 말도 안 되는 제도를 너무 오랫동안 유지해 오지 않았는가? 68시간제 나라라니, 어디 얘기할 수 있겠는가?
맺는 말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는 일을 하기 어려워서 가난하고,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저임금의 한계 일자리의 늪에 갇히게 되는 비율이 높고 그 주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게 된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올린다’(늘지오 정책)는 박근혜 후보 시절 공약의 실현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해법을 정규직 과보호와 노동시장 유연화의 부족에서 찾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책임론을 거론하지만 10%가 안 되는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깍는다고 해서 저임금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할 수 없다. 오히려 상층 노동자의 임금압박은 중하층 노동자의 임금축소로 이어지는 것이 노동시장의 구조적 메커니즘이다.
박근혜 정부가 명분으로 동원하는 유연안정성 모델이 겨냥하는 과녁은 정규직 과보호론이다. 결국 경제적 보호의 해체 속도는 빨리하고 실업규제(사회보장)의 구축 속도는 더딘 현실을 고착화 해 불안정성으로 하향 평준화되는 저열한 유연안정성 모형으로 귀결될 뿐이다.
전향적 방향으로 선택의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현안 중 주요한 사항을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리면 역동적 보호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노동시간단축 사안과 통상임금 판결을 통한 기본급 비중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제를 역동적으로 결합하면서 청년실업의 해결의 전향적 방안을 마련하는 정책혼합은 가능하며 가장 바람직하다.
이제 고용창출은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업에 의존해서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게 만들어질 뿐이다. 그마저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갇힌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악성 고용구조로 귀결될 뿐이다. 안정성에 기초해 활력을 북돋는 고용체제는 사회시스템으로 만들어내는 것이고 정부 정책은 이를 정확히 겨냥해야 한다. 지금까지와 같은 기업에게 지원금만 주는 고용창출 정책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 지원금을 주는 유인책만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는 견인책이 겸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