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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대룡시장


강화도에는 크고 작은 유인도와 무인도가 부속도서로 딸려 있다. 그중 서북단에 있는 교동도라는 섬이 가장 큰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북한까지의 거리가 2.5km밖에 되지 않는데다, 간조 시에는 남과 북 사이에 엄청난 넓이의 풀등(대동여지도에 ‘정사초’라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이 길게 이어져 있어 ‘갈대 하나 물고 걸어서 귀순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해안선의 2/3가량이 철조망으로 막혀 있고, 해병대의 삼엄한 검문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기에 사람들이 쉽게 찾기 힘든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다리가 놓이고, 검문도 예전 같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이곳에 대룡시장이라는 오래된 시장이 하나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을 피해 교동도로 피난 왔던 연백(연안군) 출신 실향민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고향의 시장을 그대로 본떠 만들고 일군 시장이라 한다. 수십 년간 삼엄한 경계 속에 고립되어 왔던 곳이다 보니 6~70년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마디로 실향의 아픔이 만들어낸 집단적, 정서적 공간이자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이런 옛 모습 때문에 몇몇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특히  상가 처마 밑에 자리 잡은 수많은 제비 둥지들이 옛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가 되면서 많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비는 대룡시장의 핵심 생태자원이 되었고, 대룡시장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다리가 개통된 이후 그동안 멈췄던 시간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낮은 처마들이 헐리고 상가 건물들이 새 단장을 시작했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던 옛 모습은 사라졌고, 시장 담벼락에 억지스레 그려진 새마을 포스터 벽화만이 그 시간대를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동시에 이곳 상인들과 함께 수십 년 세월을 엮어왔던 제비들의 수난도 시작됐다. 제비 사진을 찍겠다고 둥지 위로 스마트폰을 들이밀고, 아이를 목말 태워 둥지 안을 들여다보게 한다. 새끼들은 낮에는 거의 10분에 한 번꼴로 먹이를 받아먹어야 한다. 새끼가 다섯 마리라면 대략 2분마다 어미가 드나들면서 새끼를 먹여야 하는데, 사람들이 둥지 주변에서 떠나질 않으니 새끼를 제시간에 먹이질 못한다. 


이런 상황이 몇 년째 지속되면서 제비들이 점차 떠나고 있다. 상인들 이야기로는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가 새끼를 둥지 아래로 떨어뜨려 죽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몇 년 더 지속한다면 대룡시장에서 제비를 보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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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주민들이 제비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워낙 관광객들이 많아 역부족이다.

사람의 공간에 들어온 제비


물 찬 제비 같다, 봄 제비 옛집으로 돌아온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흥부집 제비 새끼만 못하다…. 제비와 관련된 속담은 참 많다.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하고 친밀하다는 뜻이다. 반려동물을 제외한다면 제비만큼 사람과 친숙한 동물도 드물다. 야생동물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런데도 서식공간을 사람의 영역 안으로 옮기는 종이 있다. 뱀이나 맹금류처럼 사람보다 더 직접적인 천적을 피하는 데 사람이 유용한 방패막이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물 바깥에 위치한 제비 둥지의 둥지 포식률은 25%에 이르지만, 건물 안쪽에 위치한 둥지는 1%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는 제비가 둥지를 틀지 않는다. 그럼,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다 제비가 들까? 3년 전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면서 먼저 제비 둥지를 확인했다. 낡아 허물어진 귀제비 둥지 하나와 성한 제비 둥지가 하나 있었다. 최근까지 번식했던 똥 자국까지 확인하고 제비가 들기를 기다렸다. 5월이 지나고, 6월이 지나도 제비는 소식이 없었다. 다른 집에서는 벌써 새끼들이 이소하기 시작했고, 빠른 놈들은 2차 번식을 시작했다. 왜 우리 집에는 제비가 안 들까? 내가 미덥지 못했을까? 아니면 우리 집 주변을 기웃대는 길냥이들 때문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 집 역시 ‘빈집’이라는 사실이다. 제비들이 사람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이유가 방패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는 우리 집은 제비가 볼 때 빈집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할매가 마당에 나와서 빨래도 널고, 볕 바라기도 하시고, 상추밭에 물도 주시고…, 수시로 드나드는 곳에만 제비가 든다. 할매가 노환으로 거동이 힘들어지고, 결국 요양원으로 떠나게 되면 제비도 떠난다. 시골에서도 제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비는 전 세계적으로 90여 종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비, 귀제비, 갈색제비, 바위산제비, 흰턱제비, 흰털발제비 등 6종이 관찰된다. 그중 제비, 귀제비 두 종류가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고 나머지는 우리나라를 거쳐 가는 나그네새다. 제비는 멱이 적갈색이고 배가 하얀색인 데 비해, 귀제비는 멱을 포함해 배면이 하얀색이고 흑갈색 줄무늬가 있다. 제비는 사발 모양의 둥지를 만들고, 귀제비는 이글루를 거꾸로 붙여 놓은 것 같은 둥지를 만든다. 


평균 시속 50km, 최대 시속 250km 정도로 무척 빠르게 나는 제비는 날벌레를 주로 잡아먹는다. 날렵한 몸매와 길고 뾰족한 날개를 가지고 있어 비행 능력과 사냥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여름철 논 주변에서 날벌레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한 마리씩 잡아먹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연미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비의 상징은 역시 두 갈래로 길게 갈라진 꼬리깃이다. 수컷이 암컷에 비해 꼬리깃이 길고, 수컷의 꼬리깃이 길면 길수록 암컷이 좋아한다. 테이프로 꼬리깃을 덧붙인 수컷은 하루 만에 짝을 찾았으나, 꼬리깃을 반쯤 자른 개체는 2주일이 걸려서야 짝을 찾았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또한, 꼬리깃이 긴 암컷일수록 자주 2차번식을 하고, 높은 번식 성공률을 보인다고 한다. 긴 꼬리깃을 가진 수컷 제비에게서 태어난 새끼들이 진드기에 대한 저항력이 더 크다는 연구결과는 암컷이 긴 꼬리깃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수컷의 꼬리 길이는 기생충에 대한 저항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는 신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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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강남


흔한 속담 중에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라는 것이 있다. 제비가 겨울이면 돌아간다는 강남은 어디일까? 어릴 적엔 서울 강남이라고 생각했고, ‘강남 제비족’이란 말이 월동하는 리얼 제비 무리를 일컫는 것이라 생각했다. 강남이 중국 장강(양쯔강) 이남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황해 건너 나들이 갔다 오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8년 경남지역에서 초소형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한 제비를 통해 오키나와~필리핀~보르네오를 거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까지 가서 겨울을 나고 돌아온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양쯔강 이남보다 10배는 더 먼, 장장 7,000km의 거리를 날아가는 것이다. 인스턴트 맥심 커피(11.7g) 두 개 합친 것보다 가벼운 제비가 강한 바닷바람을 거스르며 그 먼 거리를 날아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다시 봄이 되면 우리나라로 돌아오는데 대략 3월 말이면 보이기 시작한다. 일부는 우리나라를 통과해 북상하고, 일부는 4월 초·중순쯤부터 번식을 시작한다. 10원짜리 동전보다 작은 알을 4~5개 낳아 평균 14일가량 전적으로 암컷이 품는다. 수컷은 암컷에게 먹이를 공급해 주거나, 주변에서 경계를 선다. 새끼들이 부화하면 20~23일가량 먹여 키워 내보내고, 6월쯤 2차번식을 해 두 번째 육아를 시작한다. 한해 자식농사(이모작)가 끝나면 대략 8월, 힘든 여름을 보내고 지쳤을 법도 하건만, 숨 돌릴 틈도 없이 어미들은 남하를 준비한다. 8월경 어미 무리들이 먼저 출발하고, 9~10월 사이에 그해 태어난 햇새끼들과 일부 어미 무리들이 함께 출발한다. 재미있는 것은 각지에 흩어져 있던 소집단들이 모여 중규모 집단을 형성하고, 다시 더 큰 집단으로 모이면서 점점 남하해 최종적으로 제주도에 최대 규모의 무리들이 모이면 함께 월동지로 출발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제주도 직전의 광역 집단은 목포, 남해 등지에 형성된다. 강화에서도 이동 시기가 되면 추수로 분주한 벌판 위로 수천 마리의 제비 떼들이 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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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갔던 제비들이 돌아오고 있다. 장거리 여행에 피곤할 법도 한데, 지친 기색도 없이 날렵하게 봄 하늘을 누빈다. 머잖아 대룡시장 처마에도 여기저기 진흙들이 붙기 시작할 것이다. 


작년에 교동중학교 친구들과 대룡시장 제비 모니터링을 했다. 번식 중이거나 번식을 했던 둥지가 30여 개 있었고, 파손된 둥지가 8개, 완전히 탈락한 둥지가 6개, 둥지를 짓다가 포기한 둥지가 7개였다. 귀제비 둥지는 14개가 관찰됐다. 번식을 포기한 둥지의 경우, 상인들에 의하면 두 군데 정도가 고양이 때문으로 추정된다. 어쨌건 여러 가지 이유로 파손, 탈락, 포기한 둥지가 20곳이 넘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추세라면 머잖아 대룡시장 제비들을 보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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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호기심도 많고 몰지각한 관광객들이 스마트폰을 제비 둥지 위로 밀어넣어 제비를 위협하기도 한다.

인공 제비둥지를 달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 우리나라 제비와 같은 종인 barn swallow 인공둥지를 달아준다는 글이 보인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제비 인공둥지를 달아준 사례는 없었지만, 외국의 경우에는 꽤 많은 제비들이 인공둥지를 이용하고 있었다. 

대룡시장 상인회를 만나 제안을 했고, 인공둥지를 달아주기로 했다. 함부로 둥지에 손댈 수 없도록 높여주는 것이 필요하고, 개별 상가들이 리모델링 작업을 하면서 처마가 사라진 곳에는 처마가 있는 둥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걱정이 더 크다. 무엇보다 제비들이 인공둥지를 선택할지 미지수다. 다른 나라에서는 인공둥지를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지만, 종이 같다 하더라도 환경과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제비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하나의 종이지만, 지역에 따라 주거를 포함해 사는 방식이 워낙 다양하지 않은가. 더 큰 고민은 안전의 문제다. 최선을 다해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둥지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어미가 정성들여 하나하나 붙여나간 진흙 둥지만큼의 안전과 쾌적함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공둥지 실험이 성공한다면, 대룡시장 제비와 사람의 공생 기간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도심에도 제비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나름 의미가 있는 실험이지만, 제비가 이런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근본적인 환경은 제쳐두고 뒷북치듯 집짓기에 나서겠다는 것이 조금은 한가하고 민망하다. 요 며칠간 새끼 제비가 둥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계속 꾼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우리들의 소박한 바람이 마냥 끝없는 벼랑만은 아니길 바란다.



* 근 일 년간 이 코너에 글을 썼습니다. 관성이 생겼는지 글의 재미는 사라지고 의무감과 명분만 앞서는 것 같아 민망했습니다. 이런 지면을 허락해 주신 생태지평과 그동안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조금이나마 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생기는 과정이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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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여상경  생태교육허브물새알 협동조합 관리자

강화로 흘러들어와서 어쩌다 새를 보기 시작, 덕분에 심심치 않게 시간 보내며 남은 여생을 준비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