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20년 9,10월호 – 우리들이야기(1)]

‘전태일 3법’은 통과될까?

 

이광택 한국ILO협회장(국민대 명예교수)

개정판과 판소리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청계천 6가에 위치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작업장 부근에서 온몸에 석유를 뿌리고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이 새롭게 선보인다. 1983년 이란 제목으로 초판이 나온 뒤 1991, 2001, 2009년 세 차례 개정을 거쳐 이번이 네 번째 개정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글 표기법 등이 변했기에 문장을 다듬었다. 전태일의 일기와 수기를 별색으로 처리했고, 요즘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용어(특히 일본식 외래어)나 젊은 세대에게 생소한 사건에는 주를 달았다. 연표에는 역사적 배경이 되는 사건과 사후 이소선 어머니와 동료들의 활동과 관련한 사항을 보강했다.
한편,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판소리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지난 9월 14일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지부장, 최종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지부장, 이수호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추진위원회 상임대표, 임진택 창작판소리연구원 원장은 창작 판소리 을 제작하기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식을 가졌다. 이들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전태일 정신이 오래도록 기억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창작 판소리 제작 사업에 착수하며 “전태일 정신을 공평, 정의 등 현재의 시대정신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판소리 창작과 공연의 총감독은 임진택 명창이 맡았다. 창작 판소리 은 열사 50주기인 11월 13일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공개된다.

근로시간의 연장?
근로기준법은 1953년에 제정되었는데 17년이 지난 1970년 전태일은 이 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몸을 불살랐다. 그러면 법 제정 후 67년, 전태일 산화 후 50년이 지난 지금은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 먼저 근로시간부터 살펴보자.
근로시간에 관해서는 법 제정 당시 주 48시간제를 기준으로 하고 당사자 합의에 의하여 주 60시간을 한도로 근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미 2001년 8월 24일 노동부는 “주 5일 근무, 새 시대가 열립니다”라고 홍보하였고, 2003년 9월 15일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기업 규모별로 주 40시간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하여 ‘주 5일 근무 시대’가 열렸다고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11월 주 40시간 근로 원칙을 승인하는 ILO 제47호 협약을 비준까지 하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2018년 3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단축하여 ‘주 52시간제’를 실시한다고 온통 난리를 쳤다. 그동안 노동부는 행정해석(근기 682855, 2000-09-19)을 통하여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당시) 제49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에서 연장 근로시간에는 휴일 근로시간이 포함되지 아니 한다”고 하여 사실상 1주일=5 working days로 근로시간을 운영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바로 잡는 방법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한 7일”(제2조 제1항 7호 신설)로 정의하는 촌극을 빚은 것이다. 그동안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멕시코(2,137시간), 코스타리카(2,060시간)에 이어 3위(1,967시간)(2018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회원국 평균은 1,726시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고용노동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개선’을 내용으로 하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이 1월 31일부터 시행된다고 발표했다. 주 52시간제 시행, 노동시간 특례업종(연장 근로 한도 미적용) 축소 등으로 불가피하게 연장 근로 한도를 초과할 수밖에 없는 예외적 상황이 증가한다고 보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주 52시간을 초과해 추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법 제53조 제4항)를 극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다시 주 40+12+12=64시간까지 허용하는 것이다.
종전에는 ❶“재해·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수습”의 경우에만 허용하던 것을 그 사고의 ❶-1“예방을 위한 긴급한 조치 필요”뿐만 아니라 ❷“인명 보호 또는 안전 확보를 위한 긴급한 조치 필요” ❸“시설·설비 고장 등 돌발상황 발생 수습을 위한 긴급한 조치 필요” ❹“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폭증 + 단기간 내 미처리 시 사업에 중대한 지장·손해” ❺“고용노동부 장관이 국가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연구개발” 등으로 거의 모든 경우에 허용하도록 하였다.
정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 이후 6월 30일까지 총 1,665건을 인가하여 전년 동기(181건) 대비 인가 건 무려 9배가 증가하였다. 사유별로 보면 제1호 834건(50.1%)와 제4호 638건(38.3%) 로 코로나 등 “재난 예방 긴급 조치”에 못지 않게 단순한 “업무량 폭증” 관련한 업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2001년 ‘5일 근무’를 선언한 정부는 19년 후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를 틈타 ‘주 64시간’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시행규칙으로 이를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태일 3법’
‘전태일 3법’은 △근로기준법 제11조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2조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기처벌법) 제정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의 600만 노동자들에까지 확대 적용하고,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230만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 중대 재해 발생 시 원청 사업주에게도 책임을 묻는 법의 제정을 말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추진된 ‘전태일 3법’ 법안은 9월 하순 각각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에서 성립 조건인 10만 명의 동의를 채웠다. 이제 국회가 법안을 논의하게 된다. 국회는 올해 1월부터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청원 중 30일간 10만 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소관 상임위에 넘겨 심사토록 하였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는 헌법 26조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주 40시간’ 규정은 커녕 근로기준법을 아예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적용을 받는 노동자보다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청원은 근로기준법의 경우 그 적용 범위를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으로 제한하는 제11조를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전체 60%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들은 대부분 영세한 규모”라며 “이곳의 노동자들은 법정 최저기준도 보장받지 못한 채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한다”고 했다.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일을 한다는 이유로,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단시간 노동자라는 이유로 1일 8시간 노동원칙을 비롯한 초과근로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및 연차유급휴가, 부당해고로부터의 보호, 휴업수당, 주휴수당,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의 주요 조항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노조법 제2조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정의한다. 택배기사·대리운전 기사·학습지 교사 등을 말하는 특수고용·플랫폼 고용 노동자까지 근로자에 포함하도록 명확히 하기 위해 이 조항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으로 확대하자는 게 청원 내용이다.
사용자의 정의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 부분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를 포함하도록 바꿔 간접고용노동자 등 원청사용자의 사용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기처벌법은 노동자의 중대 재해에 대해 기업의 경영책임자, 원청, 발주처 등 실질적인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이다. 중기처벌법 제정을 위한 청원에는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대표 청원인으로 나섰다.

산업재해 – 중대 재해
정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2019년 한해 사고 재해자 수는 94,047명이고, 질병 재해자 수는 15,195명이다.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0명이며, 이 중 사고 사망자는 855명(42%), 질병 사망자는 1,165명(58%)이다. 사고는 주로 제조업에서의 끼임 사고, 건설업의 추락사고 등이 의한 것이 많고, 질병 사망자가 더 많은 것은 탄광에서 일하다가 오랜 요양 기간 끝에 사망하는 진폐 사망자가 많기(2019년 402명) 때문이다. 사망사고만인율이 0.46으로 유럽, 미국, 일본, 독일 등에 비해 4배 정도 높은 수치이다. 산재보험 미가입자, 일용직, 단시간 근로자 등을 포함하면 재해자 수는 훨씬 많다. 이들을 포함하면 국내 산재 사망자는 한 해 2,400명, 하루 평균 7명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언택트 거래가 급증하면서 택배 노동자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올해 상반기에만 7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까지 업무 관련으로 사망한 우편집배원이 무려 46명이라는 5월 1일 KBS 방송 보도는 충격적이다. 집배부하량시스템에서 집배원 휴식시간이 시간당 1.8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12월 산업안전보건법 제9조의2에 따라 중대 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확인된 사업장 1,420개소의 명단을 공표했다.
연간 사망 재해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사업장(제2호에 해당)은 대우조선해양(주) 김해장유복합문화센터현장, 현대엔지니어링㈜ 남양주공동주택현장 등 20개소이며, 사망만인율이 규모별 같은 업종의 평균 사망만인율 보다 높은 사업장(제2의2호)은 롯데건설㈜ 산성터널공사현장, 코오롱글로벌(주) 인천공장 신축공사현장 등 총 643개소이다. 2019년 처음으로 ㈜케이엠에스, 포트엘(주), ㈜한일 등 산재은폐 사업장(제2의3호) 7개소가 공표 대상에 포함됐으며, 최근 3년 내 2회 이상 산업재해 발생 미보고 사업장(제2의3호)은 한국철도공사, 삼성전기(주) 부산공장 등 73개소이다.
도급인의 경우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산안법 제29조제3항)으로 처벌 받은 경우 수급인 사업장과 함께 공표되는데, 이에 해당하는 도급인 사업장은 현대엘리베이터(주) 동아일보 대전사옥 공사현장, 신세계건설(주) 천마산터널 공사현장 등 총 448개소이다.
‘산재 미보고(은폐) 적발현황’을 보면 연평균 930여 건의 산재 은폐가 적발됐다. 이 가운데 노동부가 근로감독 등으로 적발해낸 건수는 평균 10%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건강보험 부당이득금 환수‘, ’119 구급대 신고‘ 등 건강보험공단이나 소방서 등에서 산재 은폐 의심사업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산재 은폐 사업주의 ’자진신고‘ 또는 노동자의 ’요양신청서 반려‘ 등 외부요인 힘을 빌려 적발했다.
김용균 씨 죽음을 계기로 2020년 1월부터 새로운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산재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사용자 단체들의 요구가 반영되면서 ‘김용균법’이 유명무실해진 탓이 크다. 노동계가 요구해온 ‘위험작업 2인1조’가 법제화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기처벌법은 안전관리 소홀로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 경영책임자와 기업의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법안에서 ‘종사자’에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뿐만 아니라 “임대, 용역, 도급 등 계약의 형식에 관계 없이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와 “사업이 여러 차례의 도급에 따라 행하여지는 경우에는 각 단계의 수급인 및 수급인과 나목(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의 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하였다. ‘사업주’에는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는 자, 타인의 노무를 제공받아 사업을 하는 자”가 포함된다.
정의당이 법안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을 21대 국회에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당 1호 법안으로 이어받았다. 기업 책임은 구체화됐고 처벌 강도는 높아졌다. 법원 판결의 보수성을 넘으려 별도 양형위원회를 두게 했고 민사상 입증책임을 사업주가 지게 했다.

갈 길은 아직 먼가?
전태일 사후 50년이 지나도록 근로기준법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1935년에 채택된 주 40시간 근로 원칙을 승인하는 제47호 ILO 협약을 2011년에 비준하고서도 아직도 ‘주 64시간’을 인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직 비준하지 않고 있는 ILO 핵심협약 중 강제노동금지협약(제29호)은 1930년에,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은 1948년에,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제98호)은 1949년에 채택된 것이다. 전태일 사후 50년에 이들의 비준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