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이라는 요상한 명칭의 미술관이 탄생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미술관 관리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기재되어 지난 21일 수원시의회에서 통과 된 것이다.

하지만 단서조항이 붙었다. ‘향후 미술관 명칭과 운영에 대하여는 현대산업개발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하여 빠른 시일 내에 일부개정조례안을 상정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10월 개관을 앞두고 조속히 관련 조례가 통과되어야 한다는 수원시 집행부의 입장과 문화와 공공성을 훼손하는 대기업의 상품명이 붙은 공공미술관 명칭은 원점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입장은 ‘빠른 시일 내에 일부개정조례안을 상정할 것’이라는 구속력 없는 ‘권고사항’으로 봉합되어 버렸다. (▷관련기사 : 수원시 공공미술관 명칭, '시립 아이파크' 괜찮나요?)

지난 5월 21일 진행된 수원시의회 2차 본회의장 앞에서 미술관 명칭에 반대하는 활동가와 시민이 피켓팅을 하고 있다. 

대기업 이름 앞에 권고 사항이 되어버린 '문화 공공성'


시간을 뒤로 돌려보자. 지난 5월 14일, 수원시의회 문화복지교육위원회실은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 날은 수원시가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 관리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아래 조례안)이 상정되어 상임위 안건으로 올라와 있었다. 새누리당 소속의 시의원들은 초반부터 명칭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시의원들은 개관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례는 일단 통과시키자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참고로, 염태영 수원시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고 수원시의회에서 34개 의석 중 새정치민주연합이 18석, 새누리당이 16석을 차지하고 있다. 소관 상임위인 문화복지교육위원회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5명, 새누리당 소속 4명이다.

결국, 정회가 선포되어 의견조정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실패. 결국 투표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5:4로 상임위에서 통과됐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렇게 상임위에서 통과된 조례안이 21일 본회의에서 다뤄진 것이다. 본회의에서도 새누리당 소속 한명숙 시의원이 반대토론으로 “명칭에 문제가 있으니 조례는 보류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두 차례 정회 끝에 나온 결론이 바로 위에 설명한 ‘권고’가 나오게 된 것이다.

수원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아래 수미네)의 관계자들은 상임위와 본회의 모두 방청을 들어갔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자칫 미술관의 명칭문제가 소위 진영논리에 휘둘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수미네는 상임위가 끝난 직후 본회의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에 휩싸였다. 공공미술관의 명칭문제는 비단 명칭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본회의까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적을 떠나 우리의 문제제기가 진영논리에 휩싸이지 않고, 문제의 본질이 드러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당장 필요했다. 결국 100시간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 미술관의 이름을 묻는, 100시간의 무(모)한 도전


지난 17일, 일요일이었지만 21일 본회의까지 100시간동안 한창 지어지고 있는 미술관 옆에서 놀기로 작정을 했다. 일명 ‘수원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100시간의 무한도전’. 갖다 붙인 이름 치곤 거창했지만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특별한 프로그램도 누가 와서 함께 놀아줄지도 미지수였다.

일단, 잠을 자야하니 텐트부터 쳤다. 그늘하나 없는 광장에 동네 카페에서 빌린 파라솔도 쳤다. ‘시민카페’라는 종이쪼가리도 부쳤더니 그럴 듯 했다. 이렇게 자리를 깔아놓으니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마침, 요가를 잘 하는 분이 있어, 즉석으로 요가강좌를 시작했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왔다. 미술관 명칭 때문에 나와 있다고 설명하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공감을 해주셨다.

‘미술관 명칭에 불만 있는 사람들의 토크쇼’도 진행되고, 길거리 특강도 진행했다. 피켓 들고 훌라후프도 돌리고, 24시간 미션을 스스로 정해 미술관 명칭 문제를 알리는 이들도 있었다. 연도 날리고, 아이들과 축구도 했다. 책도 읽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물론 밤만 되면 술 사들고 오는 시민들 덕분에 매일 밤은 술과 이야기가 이어졌다. 화성행궁광장이 조성된 이래 시민들의 난장이 펼쳐지긴 이번이 처음이다. 화성행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술관이 들어설 위기에 처해있지만 덕분에 광장에서 난장을 펼칠 수 있었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렇게 100시간이 흘렀다.


100시간 무한도전을 마무리하며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대기업의 투자방식이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어지럽히는, 난장


결국 조례는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통과됐다. 비록 빠른 시일 내에 명칭문제를 현대산업개발과 협의해 수정된 조례를 상정하라는 시의회의 권고가 있었지만 수원시는 그럴 의사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모든 권한과 예산과 의사결정 수단을 쥐고 있는 행정은 대기업의 기부라는 얄팍한 투자방식 앞에 문화와 공공성을 선뜻 내주고 말았다. 정당한 문제제기는 ‘사람이 반갑다’는 수원시청 입간판 아래 멈춰 섰다.

소위 기부를 한다는 현대산업개발이 갑일까. 아니라면 수원시는 왜 현대산업개발에게 명칭에 대해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는가. 상임위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 공공미술관 명칭은 염태영 수원시장과 정몽규 대표이사와의 ‘구두약속’이 전부라는

것이다. 구두약속 때문에 시민들의 문제제기는 무시되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그것이 당신의 신념이라는 논리로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그 추진력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지금도 이 얄궂은 명칭을 바꿀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아니, 수는 단순하다. 수원시가 현대산업개발에 요구하고, 협의하면 될 문제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100시간 동안 난장을 펼치고, 노숙을 하지 않더라도 ‘열린시정’ ‘주민참여’라는 수원시의 구호처럼만 행동하면 된다. 이 단순한 해법을 수원시가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러니 시민들이 나설 수밖에.

오는 6월 1일부터 용산역 현대산업개발 본사 앞에서 1인시위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 화성행궁광장에서의 100시간 무한도전을 용산역 광장에서 해볼까?


2015. 5. 27. 미디어스
안병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미디어스]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의 이름을 묻는 100시간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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