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0 ->> 원문보기
한유총은 정부 지원금을 확대하고, 회계감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유재산이니 부정감사라는 논리다. 하지만 지원은 확대하되 회계감사를 반대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주장이다. 지금 사학재단들에 대해 국민들이 가지는 반감도 이런 부분 때문이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립유치원의 집단휴업이 철회되면서 보육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의 국·공립유치원 40% 확대 공약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된 항의가 집단이기주의로 인식되면서 싸늘한 여론에 밀린 결과이다.
사실 유치원 문제는 대선에서도 영향이 컸다. 안철수 후보가 이번에 문제가 된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과 만나 국·공립 증설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알려지면서 지지율 상승세가 꺾였다. 안 후보 측은 오해라고 설명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막강한 정치적 힘을 과시하던 사립유치원 세력에 대한 고려였지만 이미 이에 대한 반감이 압도적으로 커져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사립유치원들에 좋은 시절이었다. 2016년 교육통계연보에 보면 전체 8987곳의 유치원 중 국·공립유치원에 4696곳 17만명, 사립유치원에 4291곳 53만명이 다니고 있다고 되어 있다. 전체의 75% 이상이 사립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셈이다.
▲9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연 ‘유아교육 평등권 확보와 사립유치원 생존권을 위한 유아교육자 대회’에 참가한 시립유치원 원장들이 ‘유아학비 공ㆍ사립 차별 없이 지원, 사립유치원 운영의 자율성 보장’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
지난해 정부 지원금 2조330억원 투입
그나마 국·공립유치원은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한부모 가정이이나, 조손가정, 국가유공자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우선하기 때문에 남은 인원에서 추첨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민간유치원에 매달 40만∼50만원을 내고 아이들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립유치원은 1980년대 전두환 시절 급증했다. 1981년 수립한 유아교육진흥종합계획에서 유치원 취학률을 38%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립유치원 증설’을 강행한 것이다. 전국의 사설학원이나 비인가 유치원에 인가증을 주고, 시설규정도 완화하고 유치원 학비도 제한을 없앴다. 무자격 원장이나 교사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규제도 풀어줬다. 그 결과 1980년 861개였던 사립유치원 수는 1987년 3233곳으로 늘었다. 2016년 현재 4291곳 중 553곳을 제외한 3739곳을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학교법인과 달리 사립유치원은 법인 전환과정 없이도 설립과 운영이 자유롭다. 사실상 개인자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지원도 급증하고 있다. 2016년 결산 결과를 보면 사립유치원에 2조330억원이 투입되었다. 유치원 1곳당 4억7000만원이며, 1명당 400여만원 가까이 예산이 지원된 것이다. 여기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따로 지원하는 예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매년 10∼20%의 예산이 증액되기 때문에 사립유치원으로서는 회계감사가 없다면 정말 풍요로운 좋은 시절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었다.
한유총의 주장은 세 가지다. 국·공립 확대를 반대하고, 정부 지원금을 확대하고, 회계감사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구호는 명확하다. “사유재산 인정하라! 부정감사 중단하라!”이다. 사유재산이니 부정감사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지원은 확대하되 회계감사를 반대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주장이다. 지금 사학재단들에 대해 국민들이 가지는 반감도 이런 부분 때문이다. 실제 올해 2월에 정부합동 부정부패척결추진단에서 유치원에 대대적인 감사를 했다. 55곳 중 54곳에서 부당집행이 적발되었는데 액수만 200억원이었다. 노래방이나 유흥주점부터 온갖 낯 뜨거운 곳에 사용되었다. 가족들을 직원으로 등록시켜 돈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6곳을 운영하여 부정한 자금 118억원을 조성한 사람도 있었다. 경기도교육청 감사에서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어떤 유치원은 감사관에게 금괴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감시가 없는 곳은 절대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퇴로를 열어주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유총은 최소한의 성과는 거두었다. 휴업파동은 결국 실패했지만 2018년 국·공립유치원 확대예산은 10% 증가에 머물렀다. 또한 한유총은 국가 정책의 실패라고 주장한다. 사실 일면은 맞는 말이다. 수수방관하고 땜질식 대응을 하다 여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지는 않는다.
사립유치원의 주장에서 들을 만한 것도 있다. 2011년부터 보조금을 받는 유치원들은 자체 건물을 소유하고, 파는 것은 물론 다른 용도로도 사용하지 못하게 제한한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개인 재산권을 주장하는 사립유치원이 주장할 만한 내용이다.
국가의 책임도 있다. 처음에 일단 민간을 활용하려고 한 생각은 복지를 민자 투자사업으로 생각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민자 투자사업은 초기에는 예산이 상대적으로 덜 들어가지만 장기간 이익을 보전하고 감독은 부실해지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을 종합하면 재산 매각 유예기간을 한 10년 정도 더 두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공립 확대와 민간유치원에 대해 회계감독을 전제한 정부 지원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고려시대 최충의 사학도 그의 사후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자 교육 내용을 간섭받지 않는 한에서 정부의 회계감독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다. 과거의 개발독재 시절에 잉태된 비합리적인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현재의 국가재정 시스템은 기능할 수 없다.
여기에서 유력한 대안은 공립형 사립유치원이다. 공립형 어린이집처럼 국·공립 수준에 달하는 지원과 회계감사를 받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동수당이다. 1인당 거의 90만원까지도 지출되는 보육예산을 고려하면 아동수당을 1인당 30만원 이상 지급하고 그 돈으로 보육시설에 가면 더 지원하는 이중구조로 간다면 국민들의 복지 효능감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위기는 기회이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저출산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출산 가능인구 자체가 줄어 뒤늦게 획기적인 저출산 대책을 내놓아도 한 세대 안에는 효과가 별로 없는 사후약방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획기적인 저출산 대책을 조기에 집행해야 한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