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17.08.29.
2012년에 태어난 아이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평균 1억7000만원이 들어가고 상위 1%는 3억9000만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러니 아이를 하나 낳는 것은 ‘고난의 행군’을 각오한 셈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불멸을 원한다. 하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으므로 후손을 남기고 싶어한다. 동물도 가지고 있는 종족보존 본능이다. 특히 자신의 가족, 넓게 보면 민족공동체가 사라질 위기라는 위기의식은 더욱 클 것이다.
한국에서 인구문제는 너무 갑자기 다가온 위기상황이다. 가장 많이 태어난 해가 1960년이고, 109만명이 출생했다. 지금 그들이 50대 후반이므로 아직도 저출산은 실감나지 않는 이슈라 할 수 있다. 더구나 1971년에는 102만명이 태어났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이 88학번 성보라가 아니고, 71년생들인 성덕선과 그 친구들인 것은 이러한 인구적 특성을 고려한 것일 것이다. 그들도 이제 46세다.
하지만 작년 2016년 출생자는 40만명이다. 올해는 36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거의 3분의 1 토막이 난 것이다. 그래서 2030년 이후에는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한국인 소멸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1960년 109만명이었던 출생인구는 2016년 40만명으로 떨어졌다. 올해는 36만명이 태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진은 한 병원의 신생아실./김창길 기자
정부 예산이 엄청나게 투입되었다는데
지방은 더욱 심각하여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은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30년 안에 전국 시·군의 읍·면·동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곳(1383개)이 ‘인구 소멸지역’(거주인구가 한 명도 없는 곳)이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했다.
하지만 국민적 인식은 조금 다르다. 저출산이 국가적 차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일반국민이 저출산 문제를 ‘매우 심각하다’고 느끼는 비율은 39.2%에 불과하고, 젊은 세대일수록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받아들이는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젊은 세대가 정부 정책에 무관심하거나 비협조적이어서가 아니라, 저출산 문제가 현재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의 삶이 너무나 힘들어 미래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2년에 태어난 아이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평균 1억7000만원이 들어가고, 상위 1%는 3억9000만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러니 아이를 하나 낳는 것은 ‘고난의 행군’을 각오한 셈이 되는 것이다.
재정지출에서 영원한 과제는 어떤 지출에 대해 비용이냐 투자냐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저출산을 해결하는 복지정책을 비용으로 보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수백 조원을 들먹이며 저출산 정책의 비효율을 이야기한다.
그럼 과연 얼마나 들어갔는가. 2006년 처음 저출산 정책이 시작되었을 때 예산은 3조원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150조원 정도가 투입되었다, 연평균 15조원이다. 단순히 이 숫자만 보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10년간 정부 예산과 지방정부 예산이 4000조원이 넘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크지 않은 액수이다.
OECD 평균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2.7%(2013년, 아동예산 기준)이다. 한국은 여기에 일자리, 주거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여 1.1%이다. 특히 저출산을 극복한 것으로 평가되는 프랑스는 지난 40년간 3%가 넘는 지출을 해왔다. 우리로 치면 매년 45조원 정도씩 투입한 것이다. 결국 규모의 문제는 아니고, 늘려야 하는 것이다.
2017년 정부의 저출산 예산은 25조원이다. 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의 자료에 따르면 30%가 연관성이 부족한 사업이다.
저출산 대책은 정책 수단의 조합을 넘어 정책 의지의 범위와 강도(policy scope & fortitude)에 따라 효과성이 좌우된다. 저출산이 ‘국가 존립’의 문제라는 정책적 인식이 필요하고, 의례적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정성과 절박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때 청약제도에서 다자녀가구의 혜택을 줄인다든가 다자녀 추가공제는 물론 출생·입양 공제마저 없앤 것은 그 절박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
그런데 저출산 정책이 2006년부터라는 데 의문이 생긴다. 1983년에 인구 감소를 나타내는 출산율 2.1이 무너졌는데, 무려 23년 후에야 저출산 대책이 시작되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재미있는 사례는 2003년까지 정부가 산아제한을 위해 정관수술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당첨부터 다양한 정부 지원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확실한 지원책이었다. 정관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도 면제해주는 강력한 지원으로 매년 1만명이 넘는 사람이 정관수술을 받고, 그보다 많은 여성들이 난관 수술과 자궁내 장치 시술을 받았다.
이 사업을 주도한 것은 가족계획협회였다. 1997년 가족계획연보에 보면 34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목표의 110%인 1만7000명의 정관수술을 시행했다는 내용이 자랑스럽게 나와 있다. 우리나라 저출산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가족계획협회는 2006년 인구보건복지협회로 이름을 바꾸어 출산장려사업을 하고 있다. 출산문제를 국가가 계몽하고 강요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업들이 대부분이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는 책 <정해진 미래>에서 “인구교육은 물론 필요하나 인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도에서 그쳐야지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식의 당위로 흘러선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하는 국가의 공통점은 사회 전체가 성 평등적 방식으로 변했다는 데 있다. 출산의 도구로 여성의 몸을 볼수록 여성들은 더 출산을 꺼린다. 또한 사회 전체적으로 여성들의 변화된 선호와 지향 및 목소리를 담아내고, 아이 낳을 수 있는 고용과 주거·교육정책 등이 같이 가야 성공한 저출산 정책이 될 것이다.
출산 기피풍조 정도로 저출산을 이해하는 과거 고출산시대의 편견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 저출산 대책 예산을 비용으로 보는 사고방식으로는 미래를 암울하게 할 것이다. 양육에 투자하는 비용은 16배의 투자효과가 있다는 보고서도 있다. 지금의 아이들이 납세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출산율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복지국가가 되어야 한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1960년대 정부 산아제한 포스터다. 정말로 우물쭈물하다가는 거지꼴을 못면할 것이다.
<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