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인증·보상 통합 플랫폼 구축 - 울산 북구 이동권 님의 공약
계속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과 소비 경제모델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증가에 대한 반응은 미디어의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보도 차단과 교육과 정책토론에서의 심각성 경시풍조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사회는 물론 경제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헌신적인 기후 운동가들, 심지어 구속되거나 신체 부상을 입을 각오가 되어 있는 기후환경운동가들조차도 여전히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가열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디젤 동력 화물선과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트럭으로 배달되어 석유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야채를 먹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사용되는 컴퓨터와 전화기같은 부품들도 석탄 및 다른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인도, 중국, 태국의 공장에서 제작됩니다. 함께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을 작동시키는 전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퇴직기금은 화석연료 수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의 주식에 묶여 있습니다. (관련성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음)
화석연료산업을 비난하는 시위표지를 작성하기 위해 석탄으로 가동되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펜 부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트럭과 비행기로 운송된 일회용 펠트펜을 사용한다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환경시위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주목하지만 행진이 끝나면 우리는 화석연료를 피할 수 없는 악몽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육식을 선택 또는 거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와 성장의 파산 개념과 일치하는 산업경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화석연료의 사용을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이 주어진다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시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화석연료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또는 관련한 산업으로 발생한 돈과 관련 없는 경제 체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것부터 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것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도덕적 시민들의 시위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추출적이고 약탈적인 경제 질서의 중간에 있는 약간의 환경보호적 활동이 아닌 새로운 대안 경제의 문을 열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시위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세계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화석연료를 100% 사용하지 않는(FFF) 지역사회 형성이어야만 합니다. 초기단계에서 100명 또는 500명만 지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경제, 사회 및 정치 구성단위를 만든다면 대중에게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는 화석연료 사용금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언행을 일치 시킬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단지 슈퍼마켓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닌 플라스틱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써 말입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첫 단계는 즉시 실행 가능합니다. 냉소적인 정치가들이 20년 30년 걸려 실행할 탄소중립 경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FFF 커뮤니티 창조
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초반에 상당한 용기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며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임계질량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FFF 커뮤니티가 음식, 에너지, 협동조합의 재정, 또는 화석연료와 연관된 은행들에 대해 100% 독립적일수는 없기에, FFF 커뮤니티는 오늘날의 단체들이 할 수 없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껏내며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은 설립 초기 단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사회에 모델이 될 것이며, 화석연료와 관련된 자금 의존으로 인하여 실행단계에 옮길 수 없었던 저널리즘과 교육시스템을 생산할 것입니다.
소규모 FFF 커뮤니티가 다국적 투자은행 및 석유회사를 인수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 및 정치 플레이어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수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화석연료 문제에 맞서는 데 있어 모호하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대안이 아닌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화석연료 사용 종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의 보고서에 제시된 2050년 탄소 중립 경제 창출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기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홍수와 폭풍, 해수면 상승, 사막 확산, 기아, 견딜 수 없는 폭염, 지구에 남아있는 부족한 자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인해 수십억의 인간(및 다른 종)이 죽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몇 년 또는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주류 미디어는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시위와 정부의 선언문을 다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지붕 위에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모든 식품을 현지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태양열 및 풍력을 이용하여 모든 건물을 완벽하게 단열시키며, 100 %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중교통의 동력을 공급하게 하는 법률은 (시행은 고사하고)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서로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사회에서 생산되는 FFF 제품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약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100% FFF 수송체계가 설립될 때까지). 만약 체포될 위험까지 감수하는 열렬한 환경운동가들이 있다면, 그 중 FFF 공동체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와 공동체간의 협약은 진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들과 커뮤니티 간에는 반드시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FFF 공동체는 애초에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 피상적인 소비문화, 분열, 단편적 사고와 같은 문화에 일치하여 운영될 수 없습니다.
신규회원은 평생동안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FFF 커뮤니티에 자산을 위탁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형태의 깊은 사회적, 윤리적 약속 또한 가능합니다.
자본주의와 글로벌 농업: 포드(Ford)부터 몬산토(Monsanto)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화석연료해방 공동체(FFF)는 초반에는 작은 범위로 시작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채택했을때 어떠한 사회가 될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당 모델이 거의 없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FFF 커뮤니티 경제의 핵심은 100% 유기농 식품을 생산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송하는 유기농 농장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의 식생활에 대한 다양성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진정한 화석연료 자유경제의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음식들은 집, 옥상, 인근 빈 공간에서 재배되거나 지역 농장에서 들여올 것입니다.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에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행위가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권력가나 재력가들을 로비하거나 환경 NGO 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플라스틱,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제품,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운송 된 제품이 없는 상태)은 FFF관련자들에게 결정적인 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가 아닌) 농부와 시민 간의 협력을 장려하는 공동 시장에서 식품을 판매(또는 물물 교환을 통해 교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장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교환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기 농업 공동체는 전혀 급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기후를 파괴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계나 인공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그들을 제외한 미국의 지역들이 세계무역과 연관된 산업화된 비정상적인 농업 생산 시스템을 수용하는동안 이 공동체들은 지속적인 경제를 추구해오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유기농업 방식은 농업과 유통에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일자리를 제공 할 것입니다. 지구의 파괴에 기여 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그 노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도덕적 행동입니다.
공동체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음식 및 기타 물품에 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FFF) 운송수단의 창출입니다. 초기에 제공된 FFF 운송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이 심하게 제한적이더라도 시민들은 그것을 불쾌한 불편으로 간주하지 않고 도덕적인 용기의 서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치인들은 천연가스, 전기 및 심지어 원자력이 당연히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FFF커뮤니티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제조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제조업에 관하여 완전히 다시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및 사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어떻게 물품들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하여 반드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경박스럽고 사치품과 같은 제품들의 마케팅과 소비를 완전하게 종료해야 합니다.
FFF공동체의 제조업은 100% 현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지역 및 세계적으로 공동체를 연결 할 수 있는 화석연료를 100% 쓰지 않는 운송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화석연료를 제거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물품을 사용을 줄여야 하며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품목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20-50년 이상 지속될 책상과 의자, 책장과 도마, 셔츠와 스웨터, 컵과 냄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이러한 변화는 상업적인 소비 중심 문화의 종식과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에 중점을 두며,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FFF 커뮤니티에서 이케아(IKEA)나 갭(GAP)과 같은 관련 상품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00% 화석연료 비사용 제품의 생산과 유통은 우리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장기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제조는 현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내구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우리 환경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 자유 무역 및 산업화의 위험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장에 관한 잘못된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 개념, 태도의 변화
FFF 지역사회는 화석연료에 관한 선전과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충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기업의 사상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기술과 거버넌스의 진보적 혁신이 아니라 태도의 혁명에서 시작됩니다. FFF 공동체는 자동차를 홍보하고 분별없는 음식 소비를 장려하는 광고가 없는 문화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후변화가 지역사회에 있어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위협임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짚 깔기, 유리 재활용, 금속 해체, 비료사용을 위한 인분 수집, 카트를 통한 식품 수송, 또는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자전거를 통한 전기 생산 활동이 엄연히 도덕적인 것이며 가치 있는 사회적 기여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문화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상업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만족감과 즉각적 만족에 대한 숭배는 도덕적 철학, 절제, 겸손 및 정직한 선행으로써의 사회적 참여에 기초한 문화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완전하게 “진보적인”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겸허, 절제, 지적 및 영적 참여의 중요성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와 결부됩니다. 이러한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업 문화에 대한 대안이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전기, 소비, 재산의 막대한 증가, 도시화 및 개인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에 의해 인간의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현대의 관념에서 비롯된 잘못된 추측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더 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시스템 생성에 도전하지 않으면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친환경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입각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생산과 유통에 뿌리를 둔 경제의 겉치레적인 변화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화와(그리고 영화 전후에 나오는 광고들) 뉴스 보도에서 강조하는 현대화의 신화 뒤에 감추어진 체계를 반드시 가시화해야 합니다. 사회의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비싼 자동차나 전용 비행기로 전 세계의 수도에서 수도를 누비는 사람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나르고, 공공장소를 청소하고, 우리의 식량을 재배하며 요리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더욱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되는 자원낭비,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 부는 상업적 미디어에서 마치 선량한 도덕적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FFF 공동체는 부동산, 개인 재산, 소유권에 관한 오해 소지가 많은 개념에 대해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언론에 의해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계약법과 기업 법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돕거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커뮤니티 회원 간 구속력 있는 계약이 없습니다. FFF 커뮤니티는 이러한 계약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FFF 공동체에 가입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을 끊고자 하는 충성 서약이 회원자격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동산과 소수의 사람에 자본이 집중되기 전에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농업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마을 계약과 동등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을 계약은 상징적이라기보다는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각 개인이 식품, 도구, 가구, 운송 및 거버넌스의 생산에 기여해야하는 책임과 구성원들에게 평생동안 커뮤니티를 갖추어준다는 공동체의 책무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중심 환경과 인간 정착의 관계를 형상하는 이로쿼이 부족 (Iroquois Nation)의 헌법 부활은 금융, 재산권 및 부동산에 중점을 둔 법적 왜곡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현재 혁신주의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는 동시에 화석 연료와 관련된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행을 없애고 모든 투자가 지역사회 활동과 관련이 있고 FFF 경제 창출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FFF공동체 회원가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자산, 교육 수준, 문화 감수성 정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Teslas를 구입하거나 태양 전지판 패널을 구입할 수 있는 상류・중산층 사람들에게 포커스된 녹색 경제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과 주변 매체를 통하여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빈곤층과 노동 계급에게 기후위기를 설명하고 응답에 참여한 대가로 양질의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 디너, 억만장자의 기부 및 기타 활동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연설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FFF 화폐를 만드는 것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화폐는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나타내며 지역 사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및 기타 제조 제품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사용에 극히 제한적일 지라도 이 통화가치는 화석연료와 연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즉, FFF 화폐는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사용이 확대되고 결국 세계경제로 확장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연결되지 않고 유사한 독립적 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무역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침묵입니다. 투자은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지구를 가로질러 상품을 운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탄소배출과 공장지대 설립을 위한 산림 및 정글파괴, 자연을 희생하여 끊임없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공장의 설립으로 인해 엄청난 환경의 파괴를 가져다줍니다. 세계 무역에서 추진되는 식량(특히 육류)의 비생산적인 대량 생산은 토양, 산림 및 강과 바다에 장기적인 피해를 줍니다. 또한 식품 및 제품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산업적 접근 방식은 지역 경제를 파괴하고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을 조장하였습니다. FFF공동체는 시민들에게 이 파괴적인 악몽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제공합니다.
결론
우리는 미디어와 토론회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관행을 바꾸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배출량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삶에 탄소 발자국이 적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쟁을 목격하곤 합니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깊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매일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세계 문화를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그 문화는 즉, 최선의 길은 두 가지 전략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선택을 지역 사회의 선택으로 만들고 그 지역사회를 대체 경제의 기초가 될 경제 단위로 만드는 것입니다.
희망제작소가 만난 희망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오건호
인천 용현동 빌라 화재 사건 관련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운영위원장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취약계층 사회안전망 확장을 위한 정부와 행정의 역할은 무엇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 영상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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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빌라 화재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2:35 방임, 학대 아동보호체계에 대한 고민
4:42 한부모 돌봄지원체계에 대한 고민
6:14 복지 사각지대 발굴의 현실적인 제약
7:44 복지정책과 우리 사회의 노력 – 제도
8:23 복지정책과 우리 사회의 노력 – 행정
10:13 복지정책과 우리 사회의 노력 – 공동체
10:54 복지정책과 우리 사회의 노력 – 대안
12:41 복지 사각지대를 채우는 방법 – 연결
14:21 용현동 빌라 화재 사건으로 돌아보는 사회안전망
**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링크
[칼럼] 누구도 외면하지 않는 ‘휴먼뉴딜’ – https://www.makehope.org/?p=51366
#사회안전망 #용현동 #빌라화재 #라면형제 #사각지대 #취약계층
#연결 #발견 #소통 #신뢰 #공동체 #복지
촬영일 : 2020.10.13.
인터뷰이 : 오건호
진행 : 임주환
촬영, 편집 : 안영삼
콘텐츠 정리 : 박지호, 김세진
복지현장과 정책분야에 십여 년을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온 필자로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복지정책에 대한 논쟁, 특히 기본소득에 대한 자해적 비난에 대하여 개탄과 경악을 금치 못한다.

상기 타이틀에 한국정치인들에게 고함이라는 부제를 달았으나, 이의 대상에는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부패정치인의 대명사를 배출한 수구적 야당의 정치집단을 논의에서 제외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나, 다만 상황에 따라 살아남은 이들의 현존을 그저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현실정치제도의 결함과 역사적으로 누적된 부패를 청산하기에 역부족인 시민운동역량의 한계를 탓할 뿐이다.
동시에 지난 4년 간의 문재인 정권과 여당인 민주당의 무능과 실책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전부터 부동산투기의 천국으로 변모한 대한민국에서 최고 최상의 복지정책은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친 후 안락함을 제공해줄 주거의 해결이다. 현정권의 출범이래, 핵심적인 부동산과 주거의 정책으로 진보적 시민사회는 보유세강화와 양도차익의 회수를 중장기적인 근간으로 삼고 가난한 서민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민간영역의 사회주택 활성화를 촉구해 왔다. 그러나 현 정부는 주택정책을 수요공급의 시장논리로 환원시키고, 단기적이며 수치적인 경제성과를 시현하기 위하여 오히려 부동산투기를 조장하여 왔다.
복지는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지는 산업현장의 제1차적 영역과 사후적으로 안전망을 구축하는 사회정책이라는 제2차적 영역으로 구성된다. 근래에 들어오면서 제1차적 영역의 중요성이 보다 강조되면서 사회정책 역시 산업경제정책의 핵심적 중심의 영역으로 재구성되어 제1차적 영역과 제2차적 영역이 상호 결합되고 서로를 지원하며 순환하는 역동적 체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제1차 영역의 기본적 조건으로 적정임금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의 시간당 1만원과 주당 노동시간의 52시간 제한을 내세운 대선공약을 충분한 설명도 없이 자본자산들의 압력에 밀려 일방적으로 포기했으며, 경제력 10위의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국제노동기구의 기본요구 수준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현정권이 과연 복지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 반문해 본다.
이에 더하여 복지제도를 확장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정적 지원이 뒤따라야만 한다. 뒤에 보다 상세히 언급하겠지만, 복지의 주요 지표인 공공지출 비중에 있어 대한민국은 복지선진국의 1/3 수준이며 OECD평균의 4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산누진세를 중심으로 조세개혁과 증세가 필연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정권은 무슨 까닭인지 출범부터 일체의 증세논쟁을 거부하여 왔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여의도 국회의원들이 미국상원의 진보적 정치인인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의 최근 눈부신 활약을 본받기 바랄 뿐이다.
본격적인 기본소득의 논쟁에 들어가기 전에 서구의 복지역사를 간략하게 일별하여 본다.
인클로우저 운동으로 농민들을 농지에서 추방하여 이들 다수가 실직 상태에서 부랑자로 전락하면서 사회적 불안으로 증대하자, 빅토리아 왕조의 영국은 강제노역을 포함한 빈민법을 제정하여 근대적 개념의 사회복지를 국가단위에서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공공부조를 중심으로 한 빈민법은 이후 스핀햄랜드 시행과 신빈민법을 거치면서 낙인효과라는 복지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킨다. 이렇듯 복지역사의 과정에서 실책으로 인하여 산업화를 가장 먼저 이룩한 영국이 현재처럼 이류국가로 전락하는 불행을 맞이한다. 복지정책의 중대성을 다시 일깨우는 대목이다.
전기의 발명 등으로 시작된 제2차 산업혁명시기인 19세기말 후발의 산업국가로 강대국 대열에 뒤늦게 참가한 독일은 대규모의 공장제 실시로 인한 노동자 조직과 갈등 및 공산화의 위협 등에 대응하여 수혜자 부담원칙의 본격적인 사회보험을 실시하게 된다. 이후 사회보험제도는 유럽대륙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으로 안착하고 제도적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국외자들에 대한 ‘포용’을 중심과제로 삼게 된다.
북유럽의 스웨덴은 후진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1930년대에 勞農연정의 기반 위에 진보적인 사민당이 집권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인민의 집’으로 선언하고 이후 현재까지 보편적 복지를 국가의 기본정책으로 시행해 오고 있다. 30년대의 사회연대임금 타결과 60년대의 렌-마이드너라는 산업혁신정책, 그리고 제3차 산업혁명과 세계화 이후 젠더 이슈(여성의 부엌으로부터 해방과 사회참여)와 생애주기의 맞춤형 복지를 도입하면서 사회수당과 사회서비스 영역을 확충하고 강화하여 왔다.
이렇듯 서구 복지정책의 역사는 산업화의 단계와 상황적 조건에 따라 복지정책의 내용이 공공부조에서 사회보험을 넘어 사회수당과 사회서비스 분야로 확산 발전되어 왔다. 여기서 반드시 눈여겨볼 지점은 항상 후발참여국가가 앞서 시행한 선발국가들의 제도적 한계를 뛰어넘어 복지의 새로운 영역을 혁신적으로 추동하여 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해당국가군의 사회경제적 상황의 변화와 여건이 주요하게 작동한 배경도 있겠지만, 복지제도가 갖는 특유의 성격인 구축효과(embedding effect)의 영향이 매우 크다 할 것이다. 한번 시행을 도입하여 구축되면 이에 따른 시혜자의 절대적인 이익관계가 형성되면서 정책의 변경이 정치적으로 매우 어렵게 된다. 따라서 한번 복지정책의 경로를 설정하면 이를 수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에 산업화 과정의 초기, 제2차 산업혁명 그리고 제3차 산업혁명과 세계화 등에 상황의 변화에따라 영국은 빈민법에 기초한 공공부조, 유럽대륙은 포용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보험, 그리고 노르딕 지역은 보편적 사회수당과 서비스를 복지정책의 역사적 궤적에 따라 각자의 중심축으로 삼게 되었다.
현재 세계경제의 여건과 흐름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전후 케인즈 이론 중심의 정책이 황금기를 구사하다가 7-80년대의 스태그-인플레와 고실업 문제로 몰락하고, 금융통화중심의 세계화라는 명분과 때마침의 소비에트 몰락으로 신자유주의로 대체되면서 이후 소위 워싱턴-콘센서스라는 미국중심의 단일체제가 대세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1997년 아시아의 통화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고하고 대안의 체제를 암중 모색하는 와중에 있으며,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양적완화라는 긴급수단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더하여 산업경제의 영역은 제3차 산업혁명기와 탈산업화의 과정을 지나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필자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대신에 지식혁신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하고자 하며, 지식혁신경제에 대한 상론은 다른백년이 3월 말경 출간예정인 하버드대학의 석좌교수인 로베르또 M. 웅거의 최근 저술 “지식경제 시대의 도래”를 참조하여 주시길 요청한다.
세계경제포럼 등 주류사회의 예측대로 미래사회가 전개된다면, 거대기술기업들이 사이버 포털과 기술기반을 거점으로 지구적 규모의 독점과 수탈을 강화하여 양극화가 심화되는 한편, 과학기술의 발전과 혁신에 따라 인류가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 대부분이 과거처럼 육체노동과 사무관리 업무에 의존하지 않은 채 시스템 자체의 운용과 개선을 통해 이루어질 전망이다.
특히 사회복지 영역의 핵심주제인 일자리 부문에 있어서는 기존의 관행과 형태를 넘어서는 격변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산업화 이후 전형적인 방식으로 아침 8-9시에 출근하여 하루 8시간 이상의 노동을 진행한 후 저녁 6시경에 퇴근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연모델과 비선형적 형태, 필요에 의해서 진행되었다가 사라지는 GIG(이벤트식 직업)방식, 그리고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고 불리는 불안정한 계약직 등의 확산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코로나-19사태 이후 비대면 작업과 재택근무의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이러한 방향의 급속한 확산 가능성을 우리는 현재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상황의 전개가 목전에 다가왔는데 과연 기존의 산업체계에서 발전해온 전통적 복지체계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일자리와 직업체계가 마구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일자리만을 방어하는 고용보험의 강화가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한가지 예로 북유럽이 시행을 자랑하며 기존 산업체계에 부응해 시행하여온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실효성을 상실하면서 심각한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운 상황의 전개에는 새로운 해법과 대응책이 필요하다.
18세기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앞서가는 선각자들에 의해 기본소득의 선행적 개념들이 제기되어 왔으며, 1980년대를 지나면서 벨기에의 루뱅 대학이 중심이 되어 이론적 체계와 정책적 대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주요 선진국가들에서 국민발안과 실험적 정책 그리고 양심적인 기업인들과 대선과정의 주요 후보들에 의해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 이미 일부의 시행결과로 긍정적인 성과들을 상당히 누적하여 왔다.
작년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도 기본소득이 주요한 현안으로 부상하였으며, 최근에는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구제지원정책의 후속작업으로 미국의 산업경제 정책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제임스 칼브레이스 교수가 문화예술 분야와 사회적 경제영역에 기본소득에 준하는 지원책을 제안하고 나섰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주창하고 나선 정치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십 수년 전부터 이 분야에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들과 수 년간 학습과 토론을 진행하여 왔으며, 전문가 입장인 공동저자로서 본인이 직접 단행본을 출간하면서 기본소득의 국제네트워트인 BIEN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대해 일부의 여당 정치인들이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이 아직 본격적 수준에서 시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의 시행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무책임하며 소모적이라는 비난을 가한다. 무지한 것인가? 이들의 발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선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사회보험을 도입한 당시의 독일과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며 사회수당과 서비스를 전면화했던 당시의 북유럽국가들은 모두 후발적 참여국가들이었으며, 당시의 선진 제국들이 시행하지 않았던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한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위에 언급한 것처럼 세계10위권의 경제강국인 대한민국은 이제야 복지국가를 향한 여정의 초입에 서있어, 구축효과의 부담이 상당히 적으며 따라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기에 세계에서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기술하자면 복지정책의 주요한 평가기준으로 GDP 대비 국민분담률을 살펴보면 선진복지국가군은 45%에 달하여 OECD 평균은 35%수준을 유지하는데 반하여 한국은 겨우 27-8%에 머물고 있다. 자산에 대한 누진과세 등 조세의 여력이 상당히 있다는 반증이다.
직접적인 복지지출액에 대해서도 선진복지국가군은 GDP의 30%가 넘어서고 있고 OECD 평균 역시 22-25%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 반하여 한국은 겨우 10%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적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현재의 복지재정을 2-3배로 확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지식혁신경제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한국은 기존산업의 추적자 지위에서 혁신의 선도자(prime-mover) 위치로 전환을 해야 하는 시점에 서있다. 자연스레 선도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산업적이며 기술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복지체제에도 역동성을 도입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 구축효과의 부담이 가장 적고 복지재정의 잠재력이 상당한 한국이 새로운 복지개념을 도입하는데 매우 유리한 환경과 자체적인 필요를 지니고 있다. K-방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대한민국이 선도적 혁신국가로 나서는 것이 단순하게 빈말로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요약하면, 대한민국이 기본소득을 선제적으로 도입 시행하는 것을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혁신을 주도하기 위한 자체의 필요와 여건에 따라 앞서 나가는 포석이라고 높게 평가하면서 심도있는 논의와 연구를 진행해야 마땅하다.
이미 진보학자들의 국제적 추이는 기존 복지체계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새로운 가능성으로 혁신적인 경제운용성과를 전국민에게 배분하는 배당성격의 기본소득과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공공재로서 과학기술과 이에 기반한 산업기반에 대한 공적 통제를 강화하고, 공유적 소유개념에 따라 사회적 상속을 통한 개별단위 기본자산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의 토마 피켓티 교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만 필자의 견해는 사회적 상속 혹은 자산의 중과세에 기반한 기본자산에 대한 논의는 기본소득의 점차적 시행과 추후 안정적 기반이 형성된 이후 이에 대한 반성과 평가 위에서 재론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판단한다. 지금은 기존의 복지정책과 기본소득 간의 상호적 보완과 결합에 올곧이 집중할 시점이다.
오히려 보좌진들이 올린 몇 페이지의 보고서에 의존하여 기본소득을 백안시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으로서 대단히 무책임한 행동이다. 기본소득을 무조건 부정하는 자세가 아니라 이를 여하히 미래지향적으로 검토하고 실천적으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함께 동반되어야 마땅하다.
모름지기 시대의 흐름과 필요에 의해서 제기된 정책의 정합성을 검토하고, 실천적 의지와 지속적인 노력을 담아내고 시행 이후 실효적인 반성과 발전적인 재구성을 통하여 더욱 진전시켜야 한다. 기존 복지제도의 강화론자이든 기본소득 도입의 지지자이든 ‘모 아니면 도 (all or nothing)’라는 자세를 버리고 法古創新의 자세로 상호보완과 결합을 검토해야만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의 기본소득에 대한 전향적 비판을 아래에 열거하고자 한다.
우선 조만 간에 시행할 기본소득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본자산의 도입은 미래를 향한 올바른 방향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만병통치의 해법일 수는 없으며, 맹점의 하나인 정책의 무지향적 성격을 기존 복지제도로서 보완하여야 한다. 전반적으로 적용하기에는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경험의 역사가 일천하고 여전히 실험단계에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시점에서는 제한된 영역과 부문 혹은 계층과 지역에 일차적으로 적용해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더욱이 한국처럼 다층적 다면적 갈등과 차별이 전면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무조건의 일반적 적용이라는 이상적인 기본소득의 모델은 한국사회가 제1차적 영역에서 상대적인 공정성과 안정을 일정 수준으로 확보한 이후에야 비로소 보편적인 방식으로 시행을 검토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지원의 내용이 용돈수준의 푼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비판은 지극히 옳고 타당하다. 재정적 여력과 준비상황에 따라 시차를 두고 점차적으로 적용의 대상과 범위를 확장하여 간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적용대상을 선택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하되 지원액수가 실제적인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수준에서 시작할 것을 조언한다.
예건데, 사회신참의 청년실업군, 농어산촌민, 문화예술인 등에 대하여 월단위 4-50만원, 연간 500만원 수준 이상의 지원으로 시작하는 동시에, 참여를 전제로 하는 방식으로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해당 개인들에게 일정한 보조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미래의 새로운 일자리를 일구는 것을 검토해 보자.
기본소득이 가지는 잠재적 매력과 행정적 용이함(공정을 포함)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현실의 구체적인 현안에 집중하여 해결하려는 정책지향적 기존 복지정책의 강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기본소득과 무관하게, 교육과 공공보건, 의료체계와 재난구제, 주거와 장애 등 영역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개입과 책임성은 더욱 강화되어야 하며,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건과 환경의 조성에도 정부는 과감한 투자를 지속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의 도입은 다가오는 미래사회에 대응하는 역동적이며 정합적인 필요조건이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서구사회가 시행하고 발전시켜온 시회안전망이라는 복지제도를 경험의 한축으로 삼되, 새로이 전개되는 사회경제적 상황과 조건에 발맞추어 새로운 개념(기본소득)의 사회정책을 조세개혁과 더불어 현실적 방식으로 도입하는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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