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산업 혁신클러스터 조성 및 국방수도 완성 - 충남 박수현 님의 공약
나와 가족, 지역사회를 살리는 기후위기 대응
이성우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요즘 TV를 틀면 많이 나오는 소식은 코로나19나 대선 관련한 것이다. 그런데 부쩍 늘어난 뉴스와 소식이 하나 있다. 바로 기후위기, 탄소중립, 쓰레기 관련 뉴스들이다. 급기야는, 예전에 공익광고에서나 봤을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일반 기업 광고에 나오고 있다. 배우 이승기가 쓰레기를 줍고 자동차 회사 볼보의 광고에서는 빙하가 녹는다.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는 기후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탄소중립이 ‘대세’가 된 모양이다. 이제는 기후위기, 탄소중립에 대해서 모르면 안 되는 상황인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개념부터 쉽지 않다. ‘기후위기?’, ‘탄소중립?’ 여기서 하나 하나 풀어가 보자.
우선 ‘탄소중립’이다. 탄소중립하면 ‘이산화탄소와 탄소는 다른거야?’라고 묻는다.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그래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탄소를 이산화탄소로 생각해도 되겠다. 그리고 지구를 뜨겁게 하는 온실가스가 있는데, 온실가스 중에는 메탄 등도 있지만 이산화탄소가 가장 많다. 그냥 탄소, 이산화탄소, 온실가스를 다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쉽겠다. 어쨌건 탄소, 이산화탄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이야기다. 그럼 ‘중립(中立)’은 뭐야? ‘제로(Zero)’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탄소 배출을 전혀 안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무가 흡수하거나 포집기술로 포집할 수 있는 정도만 배출해서 결과적으로 순배출이 ‘0(Zero)’이 되는 상태를 ‘탄소중립’이라고 한다. 어쨌건 탄소를 배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탄소제로’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넷제로(Net Zero)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탄소 배출량과 탄소 흡수량이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럼 기후위기는? 탄소, 온실가스가 늘어나면서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게 되고 기후가 변하는데 이걸 기후변화라고 한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폭염, 폭우, 폭설 등의 기상이변으로 심각한 재난과 위기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여름이면 폭염이 일상이고 작년에는 50일 넘는 장마로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전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2019~20년 호주에서는 반년 가까이 산불이 이어져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죽었다. 또한 작년에는 시베리아에서 산불이 계속 발생했고, 베르호얀스크라는 지역은 6월 기온이 영상 38도까지 올랐다. 이곳은 겨울 최저기온이 영하 68도까지 니려갔던 곳으로 겨울과 여름 온도 차가 100도 이상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온실가스를 배출하다가는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 도시들이 수십년 내에 침수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해안가에 도시들이 많은데, 예외가 아니다. 결국, 기후위기는 우리 후손들이 겪을 일이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이 현재 겪고 있는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지금처럼 석탄, 석유, 가스를 계속 쓰다가는 인간의 생존마저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온실가스 감축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기후위기가 아무리 심해져도 지구는 괜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구는 태양이 존재하는 한 지구온난화로 어떻게 되지 않는다. 현재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후 1도 정도 올랐다. 1도 올랐는데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다. 그런데 지구온도가 6도 오르게 되면 인간을 포함해서 지구상의 생물들이 대부분 멸종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지구는 멀쩡할 것이다. 결국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위기는 ‘지구에 사는 생물들의 위기’지 지구의 위기는 아니다. 특히 인간종을 제외한 다른 생물들은 인간들 때문에 함께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멸종할 상황임에도 ‘지구가 위기’라는 잘못된 표현으로 기후위기 대응의 절박함과 혁명적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했다. 지금까지 기후위기 대응은 ‘가엾은 지구’를 구하는 일 정도로 인식되었던 게 현실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기후위기’는 지구의 위기가 아니라 ‘인간 생존’의 위기다.
그럼 뭘 해야할까? 여기저기서 플라스틱 줄이기 활동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실천 활동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시민 실천 활동만 하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개인들의 실천만으로는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전략’에 따르면 대부분의 온실가스는 화석연료 사용에서 나온다. 이를 부문별로 보면 산업부문에서 37%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에너지공급(발전)에서 36%, 수송에서 14%, 건물 7%, 농축수산 3.4%, 폐기물 2.4% 순이다. 따라서 내가 아무리 걸어 다니고 플러그 뽑고 에어컨 온도를 올려도 산업과 발전, 자동차와 건물 등을 바뀌지 않고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산업, 발전, 자동차와 건물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스럽게 생각했던 개발과 성장 만능주의를 바꿔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는 화석연료를 채취해서 사용하고 개발하고 성장해서 온실가스와 쓰레기를 대량으로 발생시켰던 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문제다. 또한 이런 전환 과정에서 생태계를 다시 회복시켜야 할 뿐 아니라 소외되고 피해보는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도록도 해야 한다. 결국 기존의 화석연료사회를 탈화석연료사회로 전환하면서 기후위기 문제 뿐 아니라 불평등 문제까지 해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럼 지역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자본주의 변화 같은 너무 거대한 이야기를 해서 ‘우리가 할 일이 있을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야할 일이 엄청 많다. 무분별한 개발과 생태계 파괴, 온실가스 배출은 우리 지역에도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청주시와 충북도는 아직도 산업단지를 건설할 생각만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 하듯이 탄소중립 과정에서 많은 산업분야가 변화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자체의 역할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무조건 산업단지 개발, 경제 성장이었다면 이제는 기존 산업계가 전환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대책을 세우고 지원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탄소인지예산제’, ‘기후예산제’ 등을 통해 지자체 사업을 평가하여 탄소배출을 줄이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이미 짓기로 한 청주시 신청사를 에너지 자립률(필요한 에너지 대비 생산량) 100% 건물로 짓도록 해야한다. 청주시는 신청사가 에너지제로* 빌딩이라고 홍보하지만 에너지 자립률은 20%가 조금 넘을 뿐이다. 2050년 탄소중립까지 30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짓는 신청사를 30년 후에 다시 지을게 아니라면 1등급 제로에너지 건물(에너지 자립률 100%)로 지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그리고 거의 유일한 탄소흡수원일 뿐 아니라 그늘을 만들어 열섬을 예방하고 걷고 싶은 도시를 만다는 도심 가로수를 심고, 숲을 보호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 이 모든 일들이 알아서 이뤄지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이 요구하고 행동해야 실현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렇듯 기후위기를 막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지역에서 우리가 행동하고 요구해야 할 일은 수도 없이 많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는, 눈만 뜨면 나오는 ‘대규모 개발사업 유치!’라는 뉴스에 더 이상 가슴 뿌듯해 하지 말자. 결국 대규모 탄소배출원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일 뿐이다.
지금까지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향후 7~8년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하필 지금이 왜 마지막 시간이야!’라고 불만 갖지 말자. 우리와 선조들이 만든 위기를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영광된 임부를 부여 받은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기후위기를 막자!
* 현행법상 건물에 필요한 에너지의 20%만 생산해도 ‘제로에너지 건축물’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1~5등급이 있고 1등급 제로에너지 건축물만이 진짜 제로에너지 건축물이다.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는 보유한 많은 Portfolio 사업을 진행하면서 아이오와 주에 있는 풍력 터빈 및 기반시설에 약 30억 달러를 투자해왔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전략에는 ‘세계 풍력의 중심, 풍력 발전 사업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로 우뚝 서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일부 투자가들은 화석 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선을 행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문제와 함께 해당 사회에 대해 회사가 짊어진 책임을 반영한다고 말할 것이다. 전 세계 기업들의 연례 보고서 및 광고에서는 진심이건 아니건 현재 기업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동의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버크셔의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판단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오직 정부가 정책을 통하여 자신에게 수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풍력 발전에 투자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생산의 부가가치에 대한 세액의 공제가 없다면 [그것에 투자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른바 오마하의 현인이 말을 더 이어갔다. 올해 초, 그는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에게 사회에 ‘선행을 한다’는 시각을 강요하는 행위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무엇 때문에 기업들 자신이 더 잘 판단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주 어렵습니다. 거대 기업 20곳을 평가하자면 어떤 기업이 가장 잘 운영되는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공기업 20곳의 이사로 재직해왔는데, 기업들의 행동을 평가하는 일은 점점 어렵게 느껴집니다. 아주, 아주 어렵습니다. 저는 사탕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사탕은 제게 좋은 것인가요? 나쁜 것인가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버크셔 경영진들이 세상을 위해 무엇이 옳은 지 분명 알았다고 해도 세상을 위한 신념을 바탕으로 투자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투자자인 주주들을 위한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업은 주주들의 재산입니다”라고 말했다. 버크셔 조직에서는 자선 기부가 원칙적으로 배제된다.

“많은 기업의 경영진은 납세자의 재산에 대한 정부의 과세 할당을 개탄하면서도 투자자 수익에서 자신들에게 할당되는 몫에는 열렬히 동의합니다”라고 그가 씁쓸하게 지적했다. 기업에 대한 버핏 회장의 관점은 그를 이례적으로 (오마하의 현인) 만든 현 시점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시카고 대학 경제학자는 50년 전에 “사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작성했다. 이러한 관점은 최근까지도 경영대학원을 거쳐 이사회에서도 신조로 여겨진다.
버핏 회장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데 성공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마치 다정한 할아버지와 같은 무해한 대중적 이미지를 창조한 것이 가장 큰 업적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이 감히 생각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버핏 회장의 견해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 산업 센서를 생산하는 Cognex의 로버트 쉴만 회장은 지난 연례 보고서를 통해 “자유기업 체계와 수익에 기반한 사업을 모두 혹독하게 비난하는 추세에 우려를 표합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라는 주제를 통한 기업들의 통제”를 문제 삼았다. 그는 정부가 여전히 기업의 ESG 관리 통제에 이르지 못했으며 “불행하게도 이러한 사항들은 거대한 투자 기관 내 펀드 매니저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산 운용자가 뮤추얼 펀드 내 투자자들이 빌려준 대리의결권을 활용하여 “사업상의 결정을 할 때 자신의 기업을 ESG 요인에 포함시키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주제를 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에 그들[펀드 투자자들]이 ‘당신은 이사회 및 회사 경영진이 환경, 사회 및 지배 구조 사안에 시간 및 에너지를 소비하기를 바랍니까? 혹은 당신은 그들이 당신의 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를 바랍니까?’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압도적인 수로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럴 머니(Moral Money)는 지속 가능한 사업, 금융, 투자 내용을 다루는 본사의 새로운 주간 뉴스레터입니다. 이런 류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이들이 소개하는 획기적인 사안에 대한 속보 및 통찰력 있는 분석을 확인해 보시길. 최근 ESG 주도형 투자 펀드의 고도 성장은 쉴만 회장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종업원과 지역사회 및 거래처 등의 이익을 고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상기의 질문이 잘못된 선택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ESG 투자펀드가 크게 확장되는 배경은, 운용자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해당 기업의 영업 허가를 관련 기관이 취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앨런 슈워츠(Alan Schwartz) 투자은행인 구겐하임 파트너스 회장은 “수 세기 동안 우리는 대중들이 엘리트 계층의 부가 지나치다고 여길 때 두 가지 중 하나가 발생한다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부의 재분배를 위한 법규의 제정 또는 빈곤의 재분배를 위한 혁명이 그 두 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위태롭게 불안정해졌음을 인정하면서도, 주주들의 수익에 근시안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임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폴 싱어(Paul Singer)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 대표는 오히려 반대의 견해를 보인다. 정부의 나쁜 정책으로 야기된 기업들의 이사진 및 경영진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자본주의는 조작된 게임’이라는 인식을 형성시켜 왔다는 것이다.
싱어 대표에 따르면 기업 자본주의는 투자자가 기업을 소유하고, 투자자가 이사진을 임명하여 기업 전략을 수립하며 이사진은 전략 실행을 위해 경영진을 고용하는 시스템이다. 2017년 회의에서 싱어 대표는 그런데 현실의 상황은 역으로 경영진이 이사회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전략을 선택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부차적이었다. 그는 “미국의 현재 자본주의에는 엄청난 어리석음이 횡행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 위기를 초래한 대형 은행 경영진들의 모험적인 행동 및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이사회가 전형적인 예시라고 전했다.
위기에 대한 무능한 정책, 느슨한 통화 정책은 시민 대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의 자산 가격을 높임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위기와 불만을 키울 뿐이었다. “금융 부문 및 자산 소유자들은 현란하게 활동하고 있는 반면에, 중산층은 위기로 인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경제적 자유를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포퓰리스트의 민첩한 공격 지점입니다.” 즉, 주주 자본주의에는 더 견고하고 확실한 통제가 필요하고, 주주 자본주의를 유연하게 방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버핏 회장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우 단순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는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주체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라고 여긴다. 그는 오래된 버크셔의 석탄 발전소를 예로 들었다. “만약에 시장에만 맡긴 상태에서, 사람들이 우리가 소유한 석탄 발전소를 폐쇄하길 바란다면 이후 주주 또는 수요자가 해당 비용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수요자들이 폐쇄에 따른 비용을 지불한다는 주장에 이견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들이 발전시설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50%를 석탄으로부터 공급받는 지역에 거주할 경우에 폐쇄에 따른 고통이 발생하는 반면에, 그들이 다른 조건의 지역에 거주한다면 그러한 댓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댓가와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불균등)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지가 문제입니다. 이것의 해결은 전적으로 정부에서 담당해야 합니다.”
현 시대의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투자가(워렌)는 “정부는 시장 체제를 수정(규제)하는 데에 있어 핵심의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FT ESG Team
CSI(건설공사안전관리 종합정보망)의 총체적 부실 운영,
건설사고 신고·조사 시스템을 개선·운영하라!
– 국토부는 CSI 엉터리 신고를 방치한 총체적 운영부실의 책임자다
– 정부는 건설사고 신고 누락 사항에 대하여 전수조사하라
– 정부는 구체적 CSI 운영개선방안을 수립하라
[보도자료 배경]
정부(국토교통부)는 2019년 7월 1일부터 ‘건설공사안전관리종합정보망(이하 CSI)’ 운영을 개시한다고 했다. 건설사고가 발생하면 건설공사 참여자는 즉시 사고내용을 CSI 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 국토부는 모든 건설사고 통계를 관리하고 사고원인을 더욱 면밀히 분석하기 위한 것이 CSI 시스템 신설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에 경실련은 CSI 시스템이 당초 국토부의 운영 취지와 같이 운영되고 있는지를 CSI D/B를 통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감소세를 보이던 건설안전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논의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다시 증가추세로 전환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경향은 처벌위주의 정책논의에 매몰되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한계가 아닐까 우려된다.
[보도자료 요약]
정부의 2020년도 건설사고 사망자수 발표 내용 상이, 정부 스스로 신뢰 추락시켜
CSI 시스템의 조사‧신고 운영상 문제점을 살펴봤다. 먼저 2020년도 건설사고 사망자수를 비교했다. 김진애 의원실로부터 제출받은 CSI D/B자료에서는 사망자 수가 170명으로 나타났으나, 국토부가 자체 정리한 CSI의 「건설사고정보R」리포트 사망자수는 263명으로 93명의 차이가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국토부의 사망자수 263명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건설업사고 사망자수 458명보다 월등히 적다는 것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의 사망사고 사례 13건 중 4건이 CSI 신고 시스템에 누락되어져 있었는데, 이는 정부가 2019년 7월 1일경 자신있게 발표한 CSI 시스템이 부실운영(심지어는 왜곡)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신고 누락에 대한 확인‧검증 부재… 부전∼마산 복선전철 사고사례 확인으로 드러남
건설사고 신고 누락에 대한 확인 및 검증이 전혀 없었다. CSI D/B의 총 건설사고 3,668건에 대한 전수조사가 불가하기에, 최근 경실련이 문제제기한 『부전∼마산 복선전철 민자사업』의 건설사고 7건 사례를 통해서 살펴본 결과다. 동일한 건설사업장임에도, 사업구분, 시설물분류가 상이하였고, 주원인유형 미입력 방치, 사고유발주체를 감리자로 엉터리 신고 등의 다양한 입력오류가 있었다. 특히 2020년 3월 18일 04:30분에 발생한 『부전∼마산 복선전철 민자사업』터널붕괴 사고(사고주원인을 우수유입으로 신고)는, 개통을 2년 이상 지연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사고조사위원회’ 구성·운영없이 ‘일반조사’로 건설사고를 축소시켰다는 의혹을 갖게 한다.
[경실련 주장]
첫째. 건설사고 신고 누락이 발생되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실효적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둘째. CIS 시스템 입력사항에 대하여 정부(국토교통부)의 최종 확인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CSI 시스템 입력사항에 대한 개선 – ▶ 건설사고 발생사업장에 대한 참여주체(발주자, 시공자, 감리자)의 명의 입력 필요 ▶ 사업구분은 현행 ‘공공/민간’에서 ‘민자’를 추가 – 이 필요하다.
넷째. 중대건설현장사고에 대해서는 ‘건설사고조사위원회’ 또는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 구성‧운영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다섯째. CSI D/B를 상시 공개하여 건설공사 사고방지 실무에 적극 활용되도록 사고관련 자료 첨부가 필요하다.
[월간경실련 2021년 7,8월호 – 특집. 오늘도 무사히(2)]
대형참사 그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황지욱 경실련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 (전북대 도시공학과 교수)
20세기 성장하는 산업사회를 만들어 놓았던 대한민국, 그리고 마침내 대한민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로부터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 그룹에 속한다고 인정받게 되었다.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개도국이 선진국으로 지위 변경을 이룬 것은 대한민국이 처음이란 기사였다. 뿌듯하면서 자랑스럽기도 하다. 20세기에 학교를 다니면서 방송을 통해 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 그렇게 들어온 ‘조국의 역군’들께서 얼마나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길이길이 빛날 조국 근대화를 위해 몸 바쳐 헌신한 결과물이던가? 그런데 지금 소환한 ‘조국의 역군’이란 표현, 이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 정말 몸 바쳐 일해온 우리의 부모 세대와 선배들을 높여드리는 표현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저 일벌레처럼 온통 나라가 정해놓은 목표에 매몰되어 자신의 삶도 없이 살아야 했던 권위주의시대 그리고 성장지상주의시대 서민의 일상을 표현한 산물처럼도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서글픈 마음도 지울 수 없다. 그런 서민들이 당시에 가장 크게 바라던, 아니 어쩌면 가장 소박하게 바라던 삶은 무엇이었나? 척박해 보이던 시골을 떠나 대도시라는 곳에 정착해서 아주 크지는 않아도 번듯한 집 한 채 갖고 안정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었을까? 번듯해 보이는 직장에 다니며 아들딸 낳아서 오순도순 사는 삶, 이것이 서민들의 바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도시는 밝은 꿈을 꾸기에 너무도 많은 아픔을 품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방송을 통해 보고 들었던 잊혀지지 않는 사건과 사고가 있다. 한쪽에서는 100억 달러 수출 달성을 외쳐댔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끊임없는 사건사고로 몸서리쳐야 했다. 1970년 4월 8일 와우(臥牛)아파트가 붕괴되었다. 아파트 이름 그대로 아파트가 통째로 누워버렸다.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대연각 호텔이 불타올랐다. 그 높은 곳에서 불을 피해 뛰어내리던 투숙객도 카메라 앵글에 잡혔다. 1977년 11월 11일 전북 이리시(익산시)의 이리역에서 열차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러나 처절한 사고였다. 1986년 8월 4일 독립기념관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1988년 10월 9일 서초동 꽃마을이 불에 타버렸다. 가난한 이들의 고단한 삶이 더욱 고단하게 되었다. 1993년 7월 23일 목포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기가 추락했다.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의 위도 근처에서 서해 훼리호가 침몰했다. 1994년 10월 21일 서울의 성수대교가 붕괴되었다. 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했다. 1995년 6월 29일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1999년 6월 30일에는 경기도 화성시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2003년 2월 18일에는 대구 도시철도 1호선에서 방화가 발생했다. 2011년 7월 28일에는 우면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동네를 덮쳤다. 2014년 4월 16일은 입에 담기에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던 것은 1994년이다. 독일 도르트문트시의 도시계획국에서 인턴 실습생으로 일하고 있을 때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독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떴다. 그때 도시계획위원회에 업무 보조로 참석한 내게 시청 토목국장은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물었고, 나는 대한민국에서 왔다는 말을 하기가 민망했다. 그해에 삼성에서는 256MB DRAM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며,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을 거쳐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대대적으로 떠들던 시기였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이라는 단어보다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의 모습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모든 사건사고가 전부 인재에 따른 사고였으며, 이런 인재는 법·제도적 장치를 허술하고 방만하게 운영한 주체에게도 놓여있음이 드러났다. 1990년대 당시에도 성장지상주의와 졸속주의에 대한 비판 기사가 줄을 이었다. 재해·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정부는 줄기차게 이야기했다. 설계와 시공 그리고 입찰 과정에서 비리와 부패가 연결되어 이 고리를 끊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과 다짐을 했다. 그 결과로 다양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제도적 장치가 정비되었다. 1995년 1월 「시설물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같은 해 4월 한국시설안전공단도 설립되었다. 그리고 2020년에는 국토안전관리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국토안전관리원법을 기반으로 기능도 확대·개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형재난 재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통합적 재난 대응 매뉴얼도 마련하였다. 나아가 감염병 예방과 질병관리를 위한 질병관리청도 신설되었다. 제도와 장치의 정비 그리고 기관의 신설과 기능 강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2021년 6월 9일 광주광역시 학동에서는 재개발사업을 진행하던 중 철거 중인 건물 붕괴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한 주도 채 지나지 않은 17일에는 경기도 이천에서 쿠팡 물류센터의 화재가 또 터졌다. 항상 피해자는 거의 대부분 서민이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고를 수습하던 소방관까지도 희생되는 슬픔이 이어졌다. 왜 1990년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특정 다수의 서민들이 겪게 되는 사건·사고는 끊임없이 반복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어떤 대책이 마련되어야 이 후진적인 대형 사고와 재난의 악연을 끊을 수 있단 말인가?
과밀, 과적, 과속 그리고 과욕이 넘쳐나는 후진적 통념의 사회에서는 안전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의 이런 통념을 깨지 않는 이상 한편으로 선진국이라고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후진성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면 이 후진의 사슬을 끊는 교육과 홍보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더욱 빈번히 그리고 더욱 지속적으로 이뤄져 모두가 제도를 철저히 지키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하지가 않다. 안전하지 않게 행동한다는 것은 타인의 생명을 위해하는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따라서 안전을 지키는 것이 다른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마음 속 깊이 인식하도록 교육과 홍보에 매진해야 한다. 각 분야에서 일하는 종사자들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지켜야 할 안전이 가장 우선임을 구체적으로 알아가도록 안전수칙을 반복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어길 경우에 지불해야 할 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임을 깨닫도록 강력한 조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미국이나 서구유럽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이곳에서 교통규칙을 얼마나 엄격히 지켜야 하는지, 법규를 위반했을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 잘 안다. 나는 독일에서 부정을 저질렀다 발각된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아니 일반인들조차도 이들이 지불해야 하는 인생의 대가가 얼마나 컸는지 보았다. 법이 어떤 법이든 간에 정해진 규정을 ‘위반’하다가 걸리면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라도 예외없이 징벌적 대가를 꼭 치러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법을 위반하려는 엄두도 내지 않는다. 이것이 선진사회를 유지하는 비결 중의 하나이며, 인재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의미의 선진사회로 나아가려면 모두가 안전훼손 행위는 범법행위이자 범죄라는 의식을 갖도록 끊임없이 교육하고 홍보해야 할 것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부터 생활안전을 위해 교통법규의 준수를 비롯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안전교육과 시민의식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도 이러한 사회안전을 다루는 내용이 명확하게 실려 있어야 하며, 실질적으로 다양한 활동과 실습을 통해 사회안전을 위한 의식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사회인이 되면 각 분야에서 활동할 때 지켜야 하는 안전수칙을 철저히 인지하고 준수하도록 안전교육센터에서 반복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언론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꾸준히 알릴 필요가 있다.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모니터링하는 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단순히 온라인으로만 안전교육을 진행하지 않고 도시마다 안전교육센터를 갖추어 분야별로 안전교육과 실습이 반복해서 이뤄질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이런 교육을 통해 나의 안전의식이 개선될 때 개선된 정도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그들을 궁지로 몰아세우곤 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 하나만을 몰아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대형사고의 이면에는 소형사고를 유발시키는 국민 각자의 안전불감증도 원인 중 하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차량을 운전하는 분들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규정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가 묻고 싶다. 일상으로 접하게 되는 교통사고의 소식은 대부분 운전자의 안전불감증에 기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객의 안전한 승하차를 위해 정확한 정차규정을 준수하였다면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 과적과 과속을 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참사, 법규를 제대로 준수하려고만 하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 버스운전사든, 택시운전사든 아니 모든 운송수단을 운전하는 우리 모두는 그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따지고 보면 이런 인재가 발생하도록 과도히 이익을 탐하거나 운전기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대는 고용주에게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아니 이들이 그렇게 맞지 않는 행위를 하도록 방임하거나 방치한 계획가와 정치인들에게 더 큰 잘못이 있을 수도 있다. 내 말은 그 누구도 이런 사건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그리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더욱 엄격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권리를 행사하려 한다면 그만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선진국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말로만 또는 금전적으로 풍부하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제대로 제도가 갖춰지고, 모두가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선진국 사회의 국민이 될 수 있다. 독일인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Langsam aber sicher)’가 중요하지 ‘빨리빨리 그리고 대충대충’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한 가지 덧붙인다. 사건사고에는 전조현상이 있다. 그것이 몇 주 전이든, 며칠 전이든 아니 몇 시간 전이든 미연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전조현상이 발생한다. 최소한 전조현상이 발생할 때 이를 정말로 심각하게 여기고 대처할 수 있는 대응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2022년에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뽑는 선거도 있다. 이를 계기로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해당 정부의 안전도 개선 여부를 평가하는 지표와 평가시스템을 만들어 모든 유권자가 어떤 사람이 정말 안전을 중요시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성명서]
지금 필요한 것은 혐오와 차별의 조장이 아니라,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연대이다.
국민일보는 5월 7일 <[단독]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 <[단독]“저의 잘못, 이태원 클럽 호기심에 방문했다”…코로나19 확진자 해명>라는 보도를 게재했다. ‘게이클럽’, ‘클럽 방문자 2000명’을 강조하면서 지역사회 2차 감염의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특히, 연령대와 주거지, 직업 등의 개인정보를 상세히 공개하며, 개인의 아우팅과 더불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코로나 19가 확산되자, <감염병보도준칙>을 발표했다. <감염병보도준칙>에는 감염병 기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사회적 파장이 크다는 점에서 원칙이 필요하고, ‘감염인’에 대해 취재만으로도 차별 및 낙인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감염인은 물론 가족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1년 제정된 <인권보도준칙>에서도 반드시 필요 하지 않을 경우,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일보의 보도와 이후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후속 기사들은 개인 사생활 침해를 물론이고,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으며 그 수위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미 코로나 19와 관련해 ‘언론 보도’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 확진자 수를 강조하고 ‘창궐’, ‘쇼크’, ‘패닉’ 등 과도한 공포감을 조성했을 뿐 아니라, 특정한 ‘국가’나 ‘지역’, ‘종교인’, ‘확진자’ 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보도가 계속되었다. 언론의 보도는 또 하나의 낙인이 되었고, 그에 따른 피해 역시 심각하다.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로 인해 진료를 받는 것이 곧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고, 낙인과 아우팅의 위험은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이 더욱 존재를 드러낼 수 없게 만들었다. 과도한 언론 보도가 코로나 19 방역에 문제를 만든 것이다.
확진자에 대한 개인정보 공개에 있어서 방역 당국과 지자체에서 각기 다른 대응 역시 문제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동선공개와 관련해서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확진자의 거주지의 구체적인 주소나 직장명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안양시는 홈페이지를 통해 확진자가 사는 동과 아파트명까지 공개했다. 방역이라는 이유의 과도한 정보공개 문제는 여러 번 제기 했지만, 여전히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인천시는 한발 더 나아가 한 인권단체에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의 명단을 달라는 요청까지 하였다. 클럽 방문자의 검진 권고가 아니라 성소수자로만 초점이 맞춰진 이유는 성소수자들이면 누구나 잠재적 가해자, 관리가 필요한 대상 집단이란 인식을 드러낸 것이었다. 방역 차원이라고 하지만 지자체의 과도한 정보공개와 무리한 명단 공개 요청은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이, 더욱 존재를 드러낼 수 없게 만드는, 오히려 방역의 구멍이 되는 또 다른 공포와 혐오를 만들어내고 있다.
재난과 위기에 마주했을 때 중요한 것은 인권의 원칙과 기준을 기본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책에서도, 언론의 보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해야만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되고 박탈되는 과정 없이,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언론의 성급한 보도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코로나 19 방역에 문제를 만들었다. 언론은 이제라도 무분별하고 과도한 보도를 멈추고, 방역과 모두의 안전을 위한 보도를 하기를 바란다. 정부 역시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확진자, 접촉자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더욱 힘써주길 바란다. 우리가 마주했던 재난과 참사는 안전한 사회의 중요성과 그것을 위해 모두가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혐오와 차별이 아니라, 모두의 안전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을 위해 우리 모두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5월 8일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광주인권지기활짝,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서울인권영화제,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언론개혁시민연대,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중심사람, 장애여성공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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