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협조] 부당한 한일합의 철회와 정의로운 문제해결을 촉구한다 기자회견 개최 (3/29 오전 11시)
익명 (미확인) 님|월, 2016/03/28- 15:06
한일정상회담에 즈음한 기자회견
<부당한 한일합의 철회와 정의로운 문제해결을 촉구한다> 개최
2015. 12. 28.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밝힌 일본군‘위안부’ 합의는 25년간 피해당사자들과 시민사회가 싸워온 결과를 철저히 외면하고, 명예와 존엄을 짓밟은 굴욕적인 합의입니다.
그러나 오는 3월 31일~4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핵안보 정상회의 중 진행될 예정인 한일정상회담은 1228 합의 이후 열리는 첫 정상회담으로 한일 양국 정상이 합의 이행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이하 전국행동)>은 한일 양국 정상에게 12.28 합의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재확인시키고 부당한 합의철회와 정의로운 문제해결을 촉구하고자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아래와 같이 개최될 전국행동 기자회견에 대한 많은 취재와 보도를 요청 드립니다.
한일정상회담에 즈음한 기자회견
“부당한 한일합의 철회와 정의로운 문제해결을 촉구한다.”
일 시 : 2016년 3월 29일 화요일 오전 11시 장 소 :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주 최 :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순 서
인사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발언, 전국행동 소속 단체 발언, 퍼포먼스, 기자회견문 낭독, 질의응답
이코노미스트, 한국 독립영화 ‘귀향’ 집중 소개 – 영화 제작 과정 소개 –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 보여줘 한편의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이 높다. 한국에서만 이미 300만명 이상이 관람한 이 영화는 미국, 캐나다 등 전세계에서도 상영중이다. 바로 영화 ‘귀향’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지는 이 영화에 대해 서울발로 자세히 보도했다. “나는 우리 모두 신발 공장으로 간다고 ...
지난 1월, KT가 제공하는 올레TV의 VOD 서비스에서 “성폭행 영화” 카테고리에 ‘위안부’ 소재의 영화 <귀향>이 검색결과로 나타나서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사람들의 이용행태에 따라 자동완성 되어 제공되는 알고리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만큼 “성폭행 영화”를 많은 사용자가 검색했다는 뜻이 되고 그 결과값으로 ‘위안부’ 소재의 영화가 서비스된 것은 어쨌든 결과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평생의 상처와 고통이 누군가에는 강간 포르노로 소비된다는 의미이며, 또는 어떤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의 방점을 오로지 ‘강간’에만 두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모순적인 것은, <귀향>이 ‘위안부’ 문제에 분노하는 7만 5천명의 성금으로 제작비의 절반을 댔으며, 영화사는 수익금을 피해자에게 기부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의’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이 소비되는 한 행태는 ‘선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왜 그런걸까.
영화 <귀향>은 개봉 당시에도 피해 상황을 불필요하게 구체적으로 재현한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가해자의 잔인함과 사건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강간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가? 오히려 피해 사실을 볼거리로 전락시키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게 된 셈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선한 의도가 방법과 결과의 선함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강간 장면의 과도한 리얼리티와 강조된 가학성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우려까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눈길>이 선택한 방식은 현명하다. <눈길>과 <귀향>의 차이는 하민지의 글 「위안부 할머니를 보는 두 가지 시선;영화 <귀향>과 <눈길>이 피해를 다루는 방식」에 잘 정리되어 있다)
영화 <눈길>은 성폭력 피해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 호평을 얻고 있다
영화 <귀향>에서 발생한 이런 오류는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가장 일반적인 관점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조선의 순결한 소녀들을 짓밟은 짐승 같은 일본놈들’의 프레임. 이 이미지 속에서 피해자는 항상 무고하고 무력한 어린 여자로 타자화 되어있으며, 분노의 메커니즘은 오로지 민족주의의 틀 안에서만 작동한다. 이런 류의 분노는 고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에서조차 흔히 볼 수 있는 수준 낮은 분노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300> 같은) ‘우리가 외적으로부터 우리 땅을 지키지 못하면 자식들은 노예로 끌려가고 아내와 딸은 강간 당할 것이다’라는 공포와 자기협박의 기제. 여기서 여성은 남성적 전쟁의 약탈과 수탈의 대상이자 전리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우,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빠지게 되는 함정은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 당한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의감에 도취되기 쉽다는 점이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의 땔감으로써 ‘위안부’ 문제를 도구로써 필요로 할 뿐인 것은 아닌지 자문(自問)해야 한다.
한일 문제로서의 ‘위안부’가 아닌
전쟁 폭력과 노예제로서의 인권 문제로 다뤄야 하는 중요한 이유
결국 우리는 이것을 민족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인권 문제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논해야 한다. 여성들이 전쟁 중 일본 군대에 조직적으로 인신매매 되어 노예로서 성적으로 착취 당한 사건. 이것을 한국과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바라봐야한다. 이 관점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한국인만 분노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분노하는 천인공노할 범죄가 된다. 이를테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분노하고 연대하는 것이 유태인만이 아닌 것처럼. 이것이 미국과 독일 등 일본군의 범죄와 관련이 없는 해외의 장소에도 소녀상을 세울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더욱 그럴 수 있는 근거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강제동원한 여성은 20만명에 달하며 피해자는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동티모르, 베트남, 태국, 버마, 미국인까지 있다는 점도 있다.
미국 하원은 2007년 채택했던 결의안에서 “잔혹성과 규모 면에서 전례가 없는 20세기 최대규모의 인신매매”라고 규탄했다.
다큐멘터리 <어폴로지>는 한국의 길원옥, 중국의 차오,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까지 3개국의 피해 생존자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일본 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본을 덮쳤을 때 해당 소식을 전하는 뉴스 기사의 포털 댓글란에는 정말 많이 순화해서 ‘천벌 받았다’라든가 ‘고소하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베스트 추천을 받았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배 당시의 과거사를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고, 일본 사람들이 죽어도 상관 없다는 논리의 글이 다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런 악플을 단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자 중에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생존 할머니도 있다는 점이다.
전쟁 때 ‘위안부’로 끌려갔는데,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다 싶어 기차에서 뛰어내린 적도 있어. 하지만 쓰나미로 엄청나게 떠내려갔을 때는 정말 슬펐어. 인감도장도, 아무것도 없잖아.
“전쟁도 쓰나미도 삶을 빼앗지는 못해”
송신도 할머니는 1922년 충청남도 출생으로, 열여섯살때인 1938년 대전에서 중국 우창으로 끌려갔다. 1946년 이후에는 일본 미야기현에서 살았다. 동일본 대지진때 쓰나미로 집이 쓸려 나가면서 모든 것을 잃고 간신히 애견 ‘마리코’만 데리고 목숨을 구했다. 송신도 할머니는 재일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중 유일하게 재판을 통해 원고로 싸운 적도 있다.
식민지 전쟁 시대를 살아낸 여성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엮은 책
우리나라로 돌아가려 해도 도망칠 수가 없었어. 기차도 망가졌지, 중국말도 일본말도 모르지. 도중에 총에 맞으면 끝장인걸, 뭘.
일본 패망 당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상태였고 여전히 국가는 그들을 지켜줄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송신도 할머니처럼, 생존자들은 중국에 남거나 살기 위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 그냥 거기에 남아 살게 된 경우도 많다. 이 생존자들은 (놀랍지 않게도) 한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이나 관심도 받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타국에서 남은 평생을 살아왔다. 이런 사람들을 망각하고 ‘일본에 사는 사람 = 일본인 = 사과하지 않으니 죽어도 된다’ 라는 논리는 얼마나 척박하고 어리석으며 또한 저열한가.
군인은 죽으면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조선 계집은 죽었다 해도 나라에 돌아갈 수 없었어.
2016년 4월에 구마모토현에 강진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생존자인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는“우리는 일본 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구마모토에 위로금을 보냈다. 고작 인터넷 악플을 다는 것으로 ‘애국’한다고 믿는 사람들에 굳이 비하지 않아도 그 높은 마음을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70년 전의 과거사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피해자가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인권 문제라는 관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전쟁 중 여성이 노예로 강제동원되어 성착취 당하는 역사는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과 2010년대 IS에 의해 계속해r서 재발하고 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강간과 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시 성폭력은 여성을 남성에게 제공되는 연료처럼 소모해왔다. 한국 할머니라서가 아니라, 불쌍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도구 취급을 받고 권리와 존엄을 침해 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가해자들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이것은 인권의 문제다. 단 한순간도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다.
고통의 기억이 잊혀지면 좋겠다. 밑바닥 어딘가에서 올라와 웃통을 훌렁 까고 찬물을 끼얹어도 식지 않는 것일수록, 죽도록 지우고 싶은 것일수록, 못된 상처는 종래 떠나주지 않는다. 그 앞에 타인이 하는 ‘괜찮아질 거야’라는 따위의 말은 얼마나 가당치 않은가. 서툰 위로라도 그렇다. 의도가 있는 강요라면 어떨까. 원래 상처보다 치명적이다. 그때, 나는 바닥없이 추락한다. 아… 하… 이제 치유조차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겪어본, 말할 수 없도록 독한 상흔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정부가 했다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합의’라 불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6살 밀양 소녀 김상희는 친구와 함께 사진관에 다녀오다 강제로 트럭에 실렸다. 중국 가는 수송선에 태워졌다. 상하이, 쑤저우, 난징, 싱가포르 등지로 끌려다녔다. 10년이었다. 후유증으로 심장병, 신장병, 고혈압을 얻었다. 광복 60주년이던 지난해 1월 둘쨋날 돌아가셨다. 13살에 평양에서 끌려간 길원옥 할머니는 “가자마자 성병에 걸렸어요. 그런데도 계속 약 먹으며 일본군들을 받아야 했지요. 한 번도 바깥 구경을 못했어요. 가만히나 있나요. 술 취하면 칼로 여기저기 찌르고 후벼 파고….” 어려도 너무 어려, 초경조차 시작하지 않았던 몸에 강간과 폭행이 끊이지 않았다. 15살에 연행되어 이 나라 저 나라 끌려다니다, 해방 후 미군 포로가 된 김복동 할머니. 전쟁 끝 무렵 일본군 간호사가 되어야 했다. 다친 일본군에게 피가 모자라면 할머니 몸에서 피를 뽑아 댔다.
스가모형무소에 수감됐던 1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다른 전범들이 교수형 당했으나 예외였다. 심지어 일본 총리를 지냈다. 지금은 야스쿠니신사에 있다. 현 총리가 정치적 아버지라 부르는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다. 이번 ‘합의’라는 것은 펜타곤(미국 국방부)의 말대로 ‘자위대의 해외 파병이 가져올 미국 방위산업체에 굉장히 좋은 뉴스’의 전제로 보인다. 한·미·일 정부가 놓고 벌이는 ‘역사적’ 주판 위다. 계산서에 전쟁범죄 사죄, 할머니들의 눈물, 일본 군사 재무장이라는 위험은 빠졌다. 해제된 미국 정부 문서와 침묵을 깬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기 전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들. 지금도 어떻게 사라졌는지 증명조차 되지 못한 수십만 여성들. 그들의 원혼은 사라졌을까. 그들 앞에, 지난 70년 동안 단 하나 노력도 하지 않은 한국 정부의 자격은 무엇일까. 무슨 자격증을 발부받았기에 피해자들이 전세계를 다니며 써 내려온, 수치심을 불사했던 증언들을 뒤집으려 하는가.
얼마 전 ‘합의’라는 것의 폐기를 촉구하는 어느 집회에 참여했다. 참석자들이 ‘욱일승천기’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의아했다. 일본 국가만의 문제인가, 아베만의 문제인가. 피해자는 할머니들뿐 아니라, 모든 것을 지켜본 역사 속의 너와 나, 모두다. 가해자는 한국 정부가 포.함.된. ‘국가들의 연합’이다. ‘박근혜는 아버지 대를 이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고 있다. 대를 이은 불가역적 배신이다. 돌아가신 김상희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돌아온 나에게 한국 사람들이 던지는 말이었어….”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군인들이 입을 막고 고함도 못 지르게 했던, 사지 떨리는 기억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 그것은 꿈에도 그리워 울며 지새웠던, 고향 땅, 그곳에 돌아와 맞은 돌팔매였다.
*이 글은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의 강연과 <주간경향> 기사의 내용을 발췌, 재구성했습니다.
• 개요
- 일 시 : 2016년 3월 9일(수) 오후 7시 30분 - 9시40분
- 장 소 : 서울극장 6관 '인디스페이스' (종로3가역 14번 출구, 서울시 종로구 돈화문로 13 )
- 참가비 : 1인당 6천원 (국민은행 995701-01-057713 예금주 참여연대로 사전입금해주세요)
티켓은 3/9일(수) 상영관 앞 티켓배부처에서 수령 (입장은 7시20분까지)
- 신 청 : https://goo.gl/QnpBCZ (선착순 1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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