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대구는 ‘진보도시’였다 | 총선 특집 ‘대구 정치’ 뜯어보기
[팟캐스트] 대구는 ‘진보도시’였다 | 총선 특집 ‘대구 정치’ 뜯어보기
‘보수의 도시’ 대구.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적 반전이 넘치는 도시다. 우리가 몰랐던 대구의 숨은 진실에 대해 팟캐스트 <서복경의 정치생태보고서 시즌3> 1화 ‘대구, 와카는데? ─ 대구 지역주의 다시보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해 보았다.
1. 대구는 한때 ‘저항의 도시’였다
그렇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타도하자는 움직임의 시작은 대구였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2.28 대구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4.19 혁명은 대구의 민주화운동이 도화선이 됐다. 2.28 대구민주화운동으로 달아오른 분위기에 3.15 부정선거가 기폭제가 됐다.
이런 움직임은 1956년 3대 대선에서도 맥을 찾아볼 수 있다. 대구 시민들은 전국적 분위기와 반대로 좌파성향의 후보에게 대거 투표했다. 당시 경쟁관계에 있던 후보는 이승만과 조봉암이었다. 전국적으로 이승만은 70%, 조봉암은 30%를 얻어 이승만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대구의 득표율은 정반대였다. 조봉암이 72.3%, 이승만은 27.7%를 득표했다.
2. 젊은 박정희는 진보적이었다
그렇다. 민주화에 앞장섰던 대구 시민들이 어떻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게 됐는지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각으로 당시 ‘젊은 박정희’를 바라보면 이런 흐름을 이해할 수 없다. 당시 대구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을 진보 인사라고 생각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 이유를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내건 공약에서 찾는다. 공약 일부가 좌파적 면모를 띠었다는 것. 실제로 혁명공약의 네 번째 항목에는 ‘국가자주경제 재건’이라는 말이 있다. 자주경제는 말 그대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사회주의적 성격이 짙다. 물론 이 주장 역시 여러 가설 중 하나일 뿐이지만, 현재 대구의 정치성향 형성에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3. 대구에도 야당 의원이 4명이나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깃발만 꽂으면’ 지역 우세 정당이 당선되는 지금의 영∙호남 대립구도는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이전인 1985년 12대 총선에는 대구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4명이나 당선됐다. 전두환 정부의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에서는 2명이 당선되는 데 그쳤다.
대구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국회 의석 독점현상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생겨났다. 3당 합당 이후 영남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내세운 민주자유당을, 호남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평화민주당을 지지했다. 영남은 민자당 계열 정당을, 호남은 평민댱 계열 정당을 지지하는 현재의 모습은 이때부터 이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4. 영∙호남은 같은 대통령 후보를 민 적이 있다
그렇다. 3당 합당 이전의 지역구도는 일시적인 성격이 강했다. 선거 때마다 바뀌었다. 심지어는 영∙호남이 한 마음으로 선거에서 같은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1963년 제5대 대선 때다. 이때는 남북으로 지역구도가 갈려 남쪽으로 묶인 영∙호남이 함께 박정희를 지지했다. 윤보선은 북쪽인 경기∙충청∙강원에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 구도는 다음 대선에서 동∙서로 바뀐다. 강원도를 포함한 동쪽은 박정희, 서쪽은 윤보선 지지세가 뚜렷했다.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시 지역구도가 일시적이었던 이유를 ‘여촌야도’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촌야도 현상은 농∙어촌 지역은 여당을, 도시 지역은 야당을 지지하는 걸 의미한다. 변 교수는 지역구도가 형성되면 그 다음 선거에 영향력을 발휘해 지역구도를 소멸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1963년 10월 5대 대선 때 생긴 남북지역주의는 1963년 11월 6대 총선에서 여촌야도에 의해 소멸했다. 1971년 4월 7대 대선 때 생긴 영호남 지역주의는 한 달 뒤인 1971년 5월 8대 총선에서 여촌야도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면 여촌야도 현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군부 정권에 의해 정치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야당 정치인은 여당에 비해 농∙어촌의 유권자들을 만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맥락을 간과하면 농∙어촌 유권자가 독재정부에 더 친화적이고 도시의 유권자가 반대라고 해석할 위험이 있다.여촌야도는 정보에서 소외된 농∙어촌 유권자들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5. 다 이유가 있다
대구 정치도 그렇다. 모든 사회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서 교수는 지역주의도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나쁜 지역주의’ 틀 안에서만 보면 정치적 입장이 다른 타자를 이해하기 어렵다. 칭찬을 들은 고래가 춤을 추듯, 해석을 다르게 하기 시작하면 변화가 일어난다. 유권자에게 항상 ‘너는 문제다’라고 하면 듣는 입장에서는 화만 날 뿐이다. 욕먹지 않으려고 아예 투표를 ‘포기’할 수도 있다. 대신 유권자의 정치행위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그랬을까’, ‘이유가 뭘까’, ‘어떤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했을까’라고 질문이 필요하다. 더 많은 이야기는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 링크: http://www.podbbang.com/ch/9418)
글 | 정치발전소 팟캐스트 제작팀 백윤미 최승민 한주홍




불법어획물 단속 중인 어업지도과 특별사법경찰들 ⓒ환경운동연합[/caption]
어업관리단 특별사법경찰과 현장 지도단속에 동행하면서 만나는 어민들은 대부분 순수했다. 마치 어린 시절 시골 동네에서 만나 뵐 수 있는 정 넘치는 지금 도시 삶을 살면서 만나기 힘들어진 어르신들이었다. 옛 감성 느껴지는 어민들의 정으로 느끼면서 불법어업 지도단속에 동행한 나 스스로 혼란스러울 정도다.
어민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제도권 밖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어업방식이 법 위반이 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으로는 허용하고 있었다. 고의성도 갖고 있고 위법성을 인지하면서도 불법어업을 행하는 것에 대수롭지 않음이 느껴졌다. ‘아니 이게 뭐 불법이라고’, ‘이렇게 조금인데 뭐’, ‘바다에서 그냥 건져 올리는 건데’,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 조금’ 정도의 마음으로 느껴졌다.
우리 사전에는 “법규를 위반하여 저지른 잘못”을 범죄로 정의하고 있다. 만약 도시에서 위법성을 인지하면서도 목적을 가지고 일정의 행위를 하면 큰 범죄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지역 어촌계, 어촌 마을에서는 불법 어획 행위로 인해 단속되는 것이 마치 미약한 경범죄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단속과 검거라는 행위에 순수함이 묻어나왔는지 모른다고 생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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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획금지구역에서 금어기에 포획 된 대구 ⓒ환경운동연합[/caption]
특별사법경찰이 줌 카메라로 불법어업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caption]
동해어업관리단 어선이 정박하지 말아야 할 곳에 어선이 오랫동안 멈춰있는 것을 확인하고 3,000mm 줌 카메라로 목표를 확인했다. 맨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어선의 선명과 함께 지정 외 어업구역에서 어업을 종료하고 어구를 끌어 올리는 현장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증거를 확보했다. 남은 일은 항구로 돌아옴을 기다리거나 어선의 방향을 파악해 어느 항구로 갈지 예측하는 일이다. 혹여 다른 항구로 이동할 경우를 대비해 근처에 대기 중인 지도선 무궁화 22호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기다림의 끝에 어선은 움직였고 다행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배가 돌아오고 있었다. 함부로 움직이면 어선이 다시 바다로 향할 수 있다. 증거는 있지만, 현장에서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다시 현장에서 용의자를 찾거나 불려가길 원치 않는 용의자와 연락하고 설득해야 하는 등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배가 정박하여 항구에 배를 묶고 불법 어획물을 차량으로 이동하는 순간까지 기다렸다. 이미 여러 번 도망가는 선박을 경험했기에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다행히 불법 어업 선박은 잡혔다.
어민은 호망 어업 허가가 있지만 지정된 위치가 아닌 곳에서 어업을 하여 무허가 어업으로 단속됐다. 불법 어획물은 많지 않았지만 1월의 어업 금지 어종인 대구와 잡어들이 들어있었다. 누가 봐도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내리지 말아야 할 곳에 그물을 내렸고 잡아서는 안 되는 어종이 잡혀있었다. 수산업법과 수산자원관리법 위반이다.
선주는 불법어업을 말없이 인정했다. 동행한 어민은 “설 전이고 도시에서 내려오는 가족들에게 먹을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함께 적은 양의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 번만 봐달라”고 했다.
동해와 경남 지역에 작은 어촌계에 배를 정박하는 어민들은 주로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많다고 한다. 생각보다 순수하시고 잘못된 점은 대응 없이 시인하신다고 한다. 동해어업관리단에서는 이런 점에서는 동해가 서해에 비교해서는 훨씬 일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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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조사를 위해 지도선에서 보트로 이동한 해수부 공무원들 ⓒ환경운동연합[/caption]
수사는 지도선에서 바로 이루어진다. 무궁화 22호가 연안 가까이 오고 소형 보트를 내려 불법 어획물을 수거했다. 어선과 보트가 함께 본선으로 돌아가고 육상단속원들은 승합차에서 함께 본선으로 간 특별사법경찰을 기다렸다.
어선이 무궁화 본선으로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나이가 많아 보이시는 마을 이장이 “잘 좀 살펴 달라”며 승합차에 다녀갔다. 뒤를 이어 적지 않아 보이는 연세의 어촌계장이 같은 이유로 승합차에 들렀다. 난감한 상황은 어선 선주의 부인이 승합차를 찾았을 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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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지도 본선(무궁화 22호)에서 빛을 내뿜고 있다 ⓒ환경운동연합[/caption]
어업지도과에서 내용 설명과 함께 “앞으로 한 시간은 더 걸릴 테니 집에서 기다리세요”라고 권하였지만, 아주머니는 멀찌감치 있는 지도선을 바라보며 계속 기다렸다.
저녁 6시에 이미 작은 항구는 어두워졌고 이미 시계는 7시를 넘겼다. 바닷바람은 불어 날씨는 쌀쌀했다. 승합차 안에 있으면서도 몸이 움츠려졌지만, 아주머니는 흐느끼며 지도선을 응시했다.
승합차에 있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어업지도과에서 “감기 걸리시니 집에서 기다리세요”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움직이지 않는 아주머니를 보며 차 안에 적막감이 길게 흘렀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선이 돌아왔다. 아주머니는 조사를 받고 돌아온 남편을 마주하며 조용한 항구가 울리도록 흐느껴 울었다.
내 머릿속에 다양한 상황이 그려졌다. 행정처분과 사법처벌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을 처음 마주한 것일 수도 있고 없는 형편에 가족들 먹이겠다고 물고기를 잡아 왔는데 내야 할 벌금과 어업 정지에 대한 걱정일 수 있다. 자리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어선에 함께 타고 온 담당자와 승합차로 이동했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어업지도과의 한 특사경이 바삐 승합차로 이동하며 “저희도 애로 사항이 있습니다”라고 조용하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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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사법경찰이 어시장 가판 뒤 고무통에 숨겨진 대구를 찾아내고있다 ⓒ환경운동연합[/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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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판 뒤에 숨겨놓은 살아있는 대구 ⓒ환경운동연합[/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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