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연합뉴스] 한국전때 총살당한 독립운동가 최능진씨 65년만에 무죄 (2016.03.25)

지역

[연합뉴스] 한국전때 총살당한 독립운동가 최능진씨 65년만에 무죄 (2016.03.25)

익명 (미확인) | 금, 2016/03/25- 14:58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http://www.hankookilbo.com/v/3f1fe1e2050a4062a380a1d7725bfd93다른 의미로 꼭 기억해야할 사람들. 김주언,이문옥,윤석양,이지문 등 "보복, 소송전, 생계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정경유착과 선거비리 등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공익신고자들의 역할이 있었다."
금, 2017/03/03- 16:27
32
0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787266.html김삼웅1920년대에 3·1혁명의 민족대표 대부분이 친일로 돌아섰다는 설씨의 발언도 신중하지 못한 표현이다. 민족대표들은 극심한 고문과 심문으로 반주검이 되었으며 양한묵은 옥사하고 박준승은 고문으로 숨졌다. 손병희는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얼마 후 서거하였다. 다른 민족대표들은 출감 후 끈질긴 일제의 감시, 유혹과 회유를 받으면서도 신념을 지켰다. 몇 사람의 훼절자가 있었을 뿐이다.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주의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된 3·1혁명은 대한민국의 근원이다. 민족대표들은 사형선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독립선언에 나섰고 민중을 일깨웠다. 100주년을 앞.......
금, 2017/04/14- 16:15
31
0
"전씨는 1997년 4월17일 대법원에서 내란·내란목적살인 등 13가지 죄목으로 기소돼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1980년 5월27일 광주재진입작전 때 18명을 사망하게 한 행위만 내란목적살인죄로 처벌받았을 뿐이다. 5월18~26일 강경진압으로 수백명을 학살한 범죄는 내란죄 폭동행위로만 인정됐다. 이에 따라 지난달 말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통과돼 앞으로 꾸려질 5·18진상조사위원회는 국제범죄 시각에서 발포명령자·암매장·헬기사격 등의 의혹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내란죄, 내란목적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더라도 전씨 등의 학살행위를 국제범죄로 검찰에 고발하면 다시 기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http://www.hani.co........
목, 2018/03/29- 11:06
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