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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잊혀질 권리’ 제정에 반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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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잊혀질 권리’ 제정에 반대하며

익명 (미확인) | 화, 2016/03/15- 10:24

방통위 ‘잊혀질 권리’ 제정에 반대하며

 

지난 2월18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잊혀질 권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하였다(관련 기사: ‘잊혀질 권리’ 가이드라인 나온다…삭제 범위는?). 잊혀질 권리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파급의 빠른 속도와 시공간적 광범위성 때문에 사람들의 과오에 대한 정보를 타인들이 너무나 쉽게 취득할 수 있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시의성 없는(“no longer relevant”) 정보를 자신의 ‘이름 검색’ 결과에서 배제하도록 하자는 권리(2014년 4월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가이드라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정보의 시의성은 정보주체의 주관적 상황에 따라 판단할 수 없다. 해운업자는 과거의 여객선 과적 사실이 지금 운행상황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배에 자녀들을 태우고 싶은 학부형들 입장에서는 매우 유의미한 정보이다. 단지 시간이 흘렀고 정보주체의 사정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정보가 타인들에게 얼마나 절실할 수 있는지를 배제하고 정보유통을 제한하는 것은 타인의 알 권리를 비례성 있게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아빠를 찾고자 하는 “코피노”들의 절실함은 지금은 성실하게 가정을 보호하고자 하는 아빠들의 잊혀지고 싶은 욕망을 압도할 수 있다.

공인이 또는 공익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잊혀질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공인’, ‘공익’ 등은 공동체의 다수의 또는 평균적 사고를 반영하는 개념이다. 표현의 자유가 지지하는 다원주의 사회의 이상은, 공동체 다수나 평균적 사고에 포함되지 않은 사상도 불법만 아니라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느 변호사가 12년 전에 자신의 주택을 경매당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겠지만 그 시기의 법조인들의 경제사정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법개혁 연구가 1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일 수 있다.

우리가 잊혀질 권리에서 건질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과거의 과오 때문에 불합리하게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관련 정보를 억제하려고만 하는 것은 사회의 갈등을 은폐하고 실체적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킬 뿐이다. 타인의 과거를 알 수 없도록 법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진정한 관용의 문화를 성숙시킬 수 없다.

정보를 삭제차단까지는 하지 않고 검색만을 제한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자원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검색에서 누락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지만 자원이 없는 사람은 그 정보를 찾아낼 수 없다. 특히 ‘검색되지 않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경구에 비추어보자면 검색에만 의존해야 하는 무자력자의 상대적 빈곤은 엄청날 것이다. 결국 힘없는 개인들도 대기업과 같은 정보력을 갖도록 해줌으로써 공정한 경쟁과 민주주의에 기여해온 인터넷의 기능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정보의 불균형성을 인터넷 이전 시대보다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또 이렇게 인터넷이 평등한 정보접근의 도구로서의 의미를 잃게 되면 사람들은 타인들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오프라인상의 평판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인터넷 이전 시대처럼 광고홍보비용을 많이 지출할 수 있는 강자가 약자를 압도하는 평판의 불균형성도 초래하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적 공정경쟁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헌법은 기본권의 제한은 국민의 대표들이 만든 법률을 통해서만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가이드라인”이 정보매개자들에게는 임의적인 효력만을 가질 것으로 보이지만 방통위법상의 “시정요구”(방통위설치법 21조4호)가 그러했고 전기통신사업법상의 “통신자료제공”(전기통신사업법 83조3항)의 예에서 보듯이 이러한 조항들은 국가후견주의적인 정경관계와 결합하며 강제적인 제도와 다름없는 효과를 낳아왔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법제화 대신 “가이드라인” 마련을 한다고 하지만 그 효과는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약하는 법적 근거를 만들 수는 없다.

 

2016년 3월 15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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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3일 방송인 박나래는 자신이 진행하는 ‘헤이나래’라는 유튜브 채널의 두 번째 콘텐츠에서 방송용 도구로 가지고 나왔던 남성인형의 사타구니로 인형의 팔을 빼내어 성기처럼 보이게 만들고 그것을 웃음의 소재로 삼았다. 이를 본 시청자가 박나래를 성희롱, 정보통신망법 위반,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고, 현재 경찰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고발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인 박나래가 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도 없으며, 사회적 해악 역시 명백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성적 담론을 확장하고 소외되었던 여성의 성적 주체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과감한 시도들은 긍정하고 보호해야 한다. 

법적으로 판단했을 때 박나래의 행위는 성희롱으로 성립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여성발전기본법⌋ 모두 성희롱이 ‘그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이루어질 것이라 하여 지위 또는 업무 관련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번 박나래의 경우에서처럼 구체적인 개인으로 특정할 수 없는 시청자 혹은 그 영상을 보고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는 잠재적인 시청자는 성희롱 피해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외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 제1호의 불법 ‘음란’ 정보 유통이 문제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법음란물이란, ‘사회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서, 표현물을 전체적으로 관찰·평가해 볼 때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서 존중·보호되어야 할 인격을 갖춘 존재인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으로서, 사회통념에 비추어 전적으로 또는 지배적으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하등의 문학적·예술적·사상적·과학적·의학적·교육적 가치를 지니지 아니하는 것’을 말한다(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6도3558 판결 등 참조). 그러나 문제된 표현이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로 노골적인 성적 행위를 묘사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단순히 일부 시청자들의 성적 수치심을 해하였다거나 저속, 문란하다는 이유로 불법 음란물 유통의 혐의를 받아야 한다면, 19금 소재의 모든 표현행위가 형사처벌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또한 거론되었던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는 제11조의 아동성착취물 관련 범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상에 등장한 인형은 아동이나 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아니므로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특히 사단법인 오픈넷은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상의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은 실존아동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으로 명확히 한정해야 엄벌할 수 있으며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표현물까지 포함하면 도리어 형벌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오면서 표현의 자유만을 침해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현재의 논쟁은 성적 재현에 의한 최종 결과물에 과도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논쟁의 방향은 그 누구도 성적 재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법적, 사회적 의미의 성폭력적 내용이 없는 이상, 성적 행위는 해악을 가져오는 행위로 취급되어선 안 되고, 성적 행위를 보여주는 것 역시 어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지는 않으므로, 함부로 금기시되어서는 안 된다. 성적 재현이라는 표현의 자유는 누구나 동등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성적 욕망을 재현하고 표출하는 주체성을 모두가 동등하게 보장받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성적 욕망을 금기시하고 억누른다. 성적 욕망에 대한 금지와 억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제대로된 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금지와 억압이 얼마나 공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금지와 억압을 거슬러 성적 욕망을 충족하고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은 경제적 차이, 성차, 장애유무 등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공학계열 학사과정 여학생 입학 비율이 전체 25%라는 결과가 보여주듯 남성은 성장 과정에서 컴퓨터, 인터넷 사용 능력 등 기술과 친숙해질 기회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된다. 성적 순결과 낙인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이런 배경을 십분 활용해 이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또래집단과 자신들의 성적 욕망과 환상을 공유하며 스스로를 교육하며 성장한다. 자가 교육의 높지 않은 질적 수준과 개인의 역량 차이로 인해 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성지식의 수준은 천차만별일 테지만 분명히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성적 주체성을 구축한다. 반면 여성은 남성과 비교해 기술 활용과 정보접근권에 있어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성적 순결과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성장 과정을 거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탐색하고 표출하는 경험을 쌓으며 성적 주체성을 구축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 또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남성의 그것보다 더 강하게 통제하는 사회는 통제할 수 없는 여성의 성을 강하게 비난하고 낙인 찍는다. 이러한 조건에서 사회에 저항하며 자신의 성적 욕망을 자유롭게 추구하고 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탓에 여성은 성적 욕망의 주체가 되는 길을 택하기보다 안전하게 혹은 온건하게 성적 욕망의 소비대상으로서의 타자성을 구축하며 성장한다. 이렇게나 비대칭적인 사회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했던 사건이 바로 n번방 사건이다.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성적 호기심과 욕망을 실천하려는 여성의 취약성을 n번방 가해자들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성차별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여성을 위한 성담론이 지금보다 풍부해질 필요가 있으며 여성의 성적 실천을 통한 주체성 확보 역시 우리 사회는 장려해야 한다. 박나래는 그간 성인 여성을 위한 19금 코미디를 표방하며 편향적으로 구축되어 빈약하기 그지 없었던 성담론을 확장해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확보하려 했다. 불분명한 이유로 박나래의 이번 연기행위를 이와 같은 맥락에서 분리하여 형사처벌의 가능성으로 위협하고 규제하려는 것은 의미있는 시도 자체를 위축시킨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하루빨리 사법당국이 무혐의 처분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 

2021년 5월 7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금, 2021/05/0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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