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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정책과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등 평화체제 논의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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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정책과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등 평화체제 논의 재개

익명 (미확인) | 수, 2016/03/0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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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희망에 투표한다”

2016총선에서 다뤄져야 할 52개 정책과제 중 '외교국방통일 분야'

민생·평화·민주주의·인권을 위한 제안

 

<한반도 평화와 미래를 위한 정책과제>

 

정책과제26.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등 평화체제 논의 재개
정책과제27. 군비경쟁 가중시키는 공격적 군사훈련과 무기배치 중단
정책과제28. 졸속체결된 약정 합의 폐기 및 조약 비준절차법 도입
정책과제29. 탄저균 반입 진상규명과 전작권 환수 등 한미동맹 정상화
정책과제30. 위헌적 파병 철군 및 해외파병 요건 엄격히 제한
정책과제31. 국방획득과정에서 국방부 독점 해체 및 주요무기도입 타당성 재검토
정책과제32. 군복무기간 단축과 대체복무 인정
정책과제33. 평화교육 확산과 군 인권 보장

정책과제26.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등 평화체제 논의 재개

 

1) 현황과 문제점


-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을 사실상 폐쇄하고,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추진함. 북한의 계속된 핵실험과 이에 맞선 제재와 군사적 대치라는 강대강 대결국면은 한반도 안팎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한반도 주민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음. 무엇보다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저지시키지 못하는 실패한 정책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음.
- 북한 핵개발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기 위하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를 동시에 재개하여 더 이상의 북핵 능력 강화를 막고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함.

 

2) 실천과제


 ① 개성공단 재개

-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의 근거로 들었던 ‘개성공단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었다’는 증거를 내놓고 있지 못함.
-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협력, 대화채널 확보의 의미뿐만 아니라 개성지역 북한 군부대의 후방배치로 이어져 서부전선의 군사적 대치를 방지하는 완충역할도 있음. 또한 개성공단 폐쇄는 남측 기업과 관련 기업 종사자들과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로서 개성공단사업은 즉각 재개되어야 함.
 

② 인도적 지원의 조건 없는 지속

- 박근혜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인도적 지원은 역대 정부 중 최저 수준에 그침. 식량 및 비료 지원은 전무하고 민간 차원의 지원도 정부의 불허방침으로 대폭 감소함.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액도 첫 해 소폭 증가한 이래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음.
- 어린이, 노인, 여성 등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조건없이 지속하고, 민간 차원의 지원을 허가해야 함.

 

③ 남북간 군사적 충돌 방지와 위기 관리, 신뢰구축을 위한 남북대화 재개

- 개성공단 폐쇄 이후 현재 남북 대화채널은 완전히 끊긴 상태임. 기존 남북 간의 합의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바탕으로 당국자 회담 재개에 나서야 함.
- 남북대화를 통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방지하고, 남북 간 합의 이행과 위기관리 및 갈등예방,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사항들을 논의함으로써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

 

④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해결을 위한 포괄적 대화 개시

- 북한의 핵능력 강화와 대북 제재 그리고 한반도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함. 이를 위해서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성명으로 다시 돌아가야 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에 관한 논의에 착수하여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함.

 

3) 담당부서 : 평화군축센터(02-723-4250)

 

※ <2016총선에서 다뤄져야 할 52개 정책과제> 보도자료 및 정책자료는 [기자회견] 20대총선 참여연대 정책과제 발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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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환경운동연합 대선정책 제안 “모든 생명이 함께 사는 생태민주주의로”

카드뉴스 시리즈 3편 4대강 보를 철거하고 흐르는 강으로 /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국토로 / 새만금을 살리고 생명의 바다로

 

‘4대강 보를 철거하고 흐르는 강으로’

4대강, 16개 보 철거로 강을 흐르게 해요! – 4대강 16개 보 수문 즉시 개방, 철거와 복원 추진 – 4대강사업 청문회 개최 및 후속사업 전면 중단 -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 폐지 - 수자원공사 해체, 한국수자원공사법 폐지 갇힌 채 썩어가는 물을 자유롭게 해요! - 댐, 보, 저수지, 하굿둑 전면적 조사 및 철거 예산 확보 - 하굿둑 개방 및 신곡보 철거 - 국가차원 물 계획과 유역 관리 원칙 수립 및 물기본법 제정 - 중앙하천위원회 등 정부위원회에 민간참여 확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국토로

육상과 해양 보호지역을 국제 수준으로 확대해요! - 전 국토의 육상 17%, 해양 10% 보호지역 지정 추진 _ 보호지역 관리 강화 및 생물다양성 증진 전략 수립 - 자연공원법 개정으로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및 산악관광개발 금지 - 전국에 추진 중인 케이블카 설치 기준 및 절차 강화 대기업 특혜 천국, 규제프리존법 추진 중단해요 - 대기업 청부 반환경 악법 규제프리존법 즉각 폐기  

새만금을 살리고 생명의 바다로

수질 달성 불가능한 새만금호 담수화를 중단하고 갯벌을 보호해요 - 새만금 플랜B 수립으로 가능한 넓은 갯벌 보호하는 방안 마련 - 수질개선 사업 용역 예산 낭비 차단 - 화성호 해수 유통, 매향리 갯벌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 바다의 생명들이 마음껏 살 수 있도록 해요! - 제주 남방큰돌고래 보호구역,  인천·경기 점박이물범 보호구역 등 지정 - 보호구역 내 위기종 포획 금지, 혼획된 사체 유통 차단 - 해양보호구역 제도 정비 및 갯벌 국립공원제도 도입 - 연안과 하구 생태계 복원사업 추진   후원
금, 2017/04/1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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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국제사회를 이끌 지도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빈이민 행정명령’을 강행하는 등 설마 했던 ‘묻지마 정치’를 강행하고 나서면서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북미 유럽 등 서구 중심의 행사이던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도 올해는 중국의 무대가 됐다. ‘잘 듣는 리더십, 책임 있는 리더십’이라는 대주제 아래 개최된 포럼에 시진핑은 기조발제자로 나서 중국이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를 책임 있게 끌고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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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월 1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voakorea.com)

미중의 갈등은 환율전쟁,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전장을 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놓고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최대 격전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중이 사드 배치를 안보 차원을 넘어 자존심 경쟁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중의 각축전 속에 우리 기업들도 유무형의 제재를 당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트럼프와 맞짱 뜰 인물

시진핑은 10년 전인 2007년 중국 공산당 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중국 공산당 혁명 원로의 자녀 그룹인 태자당(太子黨)의 일원이거나 중국 유명 가수 펑리위안(彭麗媛)의 남편으로 더 많이 언급됐다.

하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주요 2개국(G2) 지도자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면승부를 예고하면서 한반도에도 쓰나미 경보가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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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1980년대 초, 커화 전 주영대사의 딸 커샤오밍과 결혼했지만, 성격차이로 헤어진 뒤 펑리위안과 다시 결혼했다. 펑리위안은 중국의 유명가수이다. 사진은 펑리위안이 노래하는 모습.

시진핑의 첫번째 부인 커샤오밍(柯小明)이 몇 해 전 영국에서 발행하는 화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은 이상주의자가 아니다”고 밝힌 평가는 눈 여겨 볼 대목이다. 커샤오밍은 시진핑과 1982년 결혼해 3년 만에 해어진 후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는 “(시진핑은) 하는 일마다 빈틈없이 계획을 세웠고, 꾸준하게 밀어붙였다”며 “나는 그가 잠재력이 있다고 여겼지만, 너무 융통성이 없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공산당 원로 자제…문화혁명으로 고초

시진핑은 자신을 산시(陝西)성 출신이라고 밝힌다. 1953년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의 고향을 따라서다.

시중쉰은 중국 공산당 최고위급 원로다. 13세 어린 나이에 중국 혁명을 위한 전선에 동참했고, 15세에 학생운동을 이유로 국민당 정권에 의해 구금된 전력이 있는 공산당의 핵심 멤버였다.

21세에는 시베이(西北)지구 소비에트 주석을 맡아 산시, 간쑤(甘肅) 일대를 통틀어 3인자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이들 지역은 앞서 중국 공산당 홍군(紅軍)의 대장정 최후 근거지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시중쉰은 베이징으로 옮겨와서는 중앙선전부장 등을 맡으며 승승장구해 저우언라이(周恩來)의 휘하로 들어가 중국 국무원 부총리 겸 비서장 직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1966년 정권전복을 노렸다는 누명을 쓰고 실각해 16년간 구금,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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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사진은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에게 붙잡힌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의 모습. 두번째 사진은 1958년 당시 정무원 비서장이었던 아버지와 찍은 사진. 왼쪽 첫번째가 시진핑이고, 가운데는 동생 시위안핑. 마지막 사진은 1975년 칭화대 재학 당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시진핑이 정치적 자산을 쌓게 되는 계기는 아버지의 실각과 함께 찾아온다. 산시는 정치적 요람이 돼 준다. 여느 태자당과 다르지 않게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던 그는 ‘반동 가족’으로 낙인 찍혀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이 될 수 없었다.

대신 1968년 산시성 옌안(延安)의 옌촨(延川)현 량자허(梁家河)라는 작은 산촌의 생산대에 배치된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도시 청년들을 농촌으로 강제 투입하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샹산샤샹(上山下鄕) 정책의 일환이었다.

황토고원으로 잘 알려진 척박한 예안에서의 토굴 생활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베이징으로 달아났다 구금되기도 했다. 시진핑은 “군중 속으로 들어가 기회를 찾으라”는 팔로군 항일전사 출신인 이모와 이모부의 조언을 듣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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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지방으로 하방했을 당시, 수척해진 시진핑의 모습 (왼쪽에서 두번째)

량자허 사람들 신임을 얻게 된 시진핑은 공산주의청년단 가입을 시도한다. ‘반동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번번히 거절당했지만, 8번의 도전 끝에 가입 허가를 받는다. 공산당입당은 10번 거절 된 뒤 11번째만인 1974년 이뤄진다. 시진핑은 끝내 공산당 최하층관리 자리인 량자허 대대 지부 서기가 된다. 시진핑이 정치적으로 첫발을 뗀 순간이다.

베이징 귀환의 순간은 머지 않아 찾아 온다. 문화대혁명이 끝날 즈음 그간 학생을 모집하지 않았던 대학이 ‘공농병(工農兵) 추천생’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뽑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1975년 예안지구 몫으로 배정된 중국 명문 칭화(淸華)대 입학 추천장 2장 중 한 장의 주인이 된다.

시진핑은 젊은 날의 산시 생활에 대해 “생산대 생활을 하던 기간 동안 옌안의 간부와 군중은 나를 보호해주고, 나를 길러주었습니다. 예안은 나의 생명의 근원이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으며,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지방에서 성공 사례 만들어

문화대혁명이 끝나면서 시진핑의 삶의 궤도는 더 크게 바뀐다. 아버지 시중쉰이 1978년 명예회복과 함께 광둥(廣東)성 최고위 책임자가 된다.

마오쩌뚱 사후 최고 실력자로 떠오른 중국 개혁개방의 기수 덩샤오핑(鄧小平)의 뜻이 작용했다. 중국 개혁개방의 효시인 선전(深圳) 경제특구를 열어 해외자본 투자유치에 잇따라 성공하며 경제발전을 진두지휘 한다.

시진핑의 성공에는 어버지의 후광을 배제할 수 없지만, 행정관료로서의 탁월한 능력과 정세를 읽는 정치적 감각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79년 칭화대를 졸업하면서 국무원 부총리이자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으로 당시 최고 실세이던 겅뱌오(耿飈)의 비서가 되는 기회를 잡는다. 겅뱌오는 시중쉰과 고난을 함께 했던 전우였다. 시진핑은 겅뱌오를 수행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에 입대하면서 중앙관료로서의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시진핑의 눈에 겅뱌오는 지는 해였다. 시진핑은 1982년 지방근무를 자청해 허베이(河北)성 스좌좡(石家莊)시 정딩(正定)현 부서기로 자리를 옮긴다. 당 고위 자제 가운데 지방행을 자청한 건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겅뱌오가 실각하기 두 달 전으로 타이밍도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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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딩현 부서기 시절,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진핑의 모습

시진핑은 정딩현에서 관광특구 사업에 힘을 쏟는다. 대불사(大佛寺), 서유기궁(西遊記宮) 개발이 대표적이다.

가장 큰 성과는 왕푸린(王扶林)이 감독한 CCTV 드라마 <홍루몽>의 배경이 되는 룽궈푸(榮國府) 건립이다.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어서 현 재정을 파탄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정딩현은 일약 전국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탈바꿈 한다. 홍루몽 드라마 작가 커윈루(柯雲路)는 당시 시진핑을 모델로 장편소설 ‘신성’을 섰고, 이후 TV 드라마로 각색되기도 했다.

신중한 처신….마침내 최고 자리 올라

시진핑은 1985년 푸젠(福建)성으로 자리를 옮겨 푸젠성 유일의 경제특구로 선망의 대상이던 샤먼(廈門)시 부시장을 맡았다. 하지만 개혁파가 보수파와의 권력투쟁 끝에 밀려나면서 개혁 개방의 불은 꺼졌고 개혁개방으로 성과를 내려던 시진핑의 계획도 틀어진다. 시진핑은 1988년부터는 푸젠성의 최고 낙후지역으로 꼽히는 닝더(寧德)지구 서기로 밀려난다.

하지만 시진핑을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1989년 텐안문(天安門) 사태를 전후한 이 정치적 혼란기에 시진핑은 반부패 활동에 전념하며 후일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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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푸젠성 닝더시 서기 시절 곡괭이를 들고 농촌 활동에 나선 시진핑의 모습 (오른쪽 첫번째)

시진핑은 당시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을 되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부패 활동은 지역 인민들의 전폭적 지지지를 받았고, 이 사실이 1990년 ‘인민일보’에 보도되면서 전국적 관심을 끌게 된다.

시진핑은 하지만 ‘튀지 않는 개혁’을 이어간다. ‘작은 불로 온수를 끓이되 불은 꺼지지 않게 한다’는 게 관료로서의 원칙이자 자신의 생존을 위한 법칙이었다. 시진핑은 이후 푸젠성 부서기, 성장으로 승진하며 17년 6개월 동안 푸젠성에서 활동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진핑은 중국의 최고 권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2002년 저장(浙江)성 부서기에 취임한 지 40일만에 서기였던 장더장(張德江)이 광동성 서기로 자리를 옮기면서 서기로 승진하는 행운을 거머쥔다.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지역의 1인자가 되면서 시진핑은 같은 태자당 출신으로 당시 랴오닝(遼寧)성 성장이던 보시라이(薄熙來), 공청단 출신의 랴오닝성 서기 리커창(李克强), 장쑤(江蘇)성 서기 리위안차오(李源潮) 등과 함께 차세대 중국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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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대 최고 지도자들의 외교정책 방향. (이미지 출처: http://news.moyiza.com/)

시진핑은 2007년 상하이(上海) 서기로 발령 받는다. 정파간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권력기반이던 상하이방의 거점과도 같은 곳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해 17차 당대회에서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공산당 정치국의 상무위원으로 선출된다.

대권 가도를 앞서 달리던 리커창보다 높은 권력서열에 놓이면서 중국의 새로운 별의 탄생을 예고했다. 이듬해인 2008년 중국 국가 부주석, 2013년 국가 주석 직에 오르며 권력 승계를 마무리 했다.

수, 2017/02/0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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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뻗고 자는 MB 자원외교 주역, 이 법만 있었어도

[우리는 희망에 투표한다 9] 국민소송제 도입해서 재정 낭비 책임 물어야

16.03.23 08:21l최종 업데이트 16.03.23 08:21l 글: 조수진(pspd1994)

[참여연대-오마이뉴스 공동기획]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불평등과 양극화, 총체적 경제위기. 군사적 충돌마저 걱정해야 하는 한반도.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테러방지법.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는 20대 총선에서 민생과 평화,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을 위한 공약을 촉구하기 위해 정책 제안을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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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총선 정책제안]우리는 희망에 투표한다
ⓒ 고정미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가 지난 3월 4일 동시에 보도자료를 내어 더 이상의 적자를 이기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사무실 폐쇄 조직축소, 임직원 임금반납 및 본사사옥매각까지 포함된 고강도 조직축소를 하겠다며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으로 하겠다"고 했다. 특히 석유공사는 2020년까지 약 30%(1258명)의 인력을 줄이고 광물자원공사는 20%(118명)를 감축한다. 

한편 일주일 뒤인 11일에는 한국석유공사 전 사장 강영원씨의 2심 첫 번째 재판이 열렸다(서울고법 형사8부 부장판사 이광만). 그는 지난 2009년 MB정부가 추진한 캐나다 석유생산 회사 하베스트 인수과정에서 정유부문 계열사 날(NARL)을 단 3일 검토 후 시세보다 3133억 원 높은 가격으로 인수했다. 이로 인해 석유공사에 무려 1조3000억 원대 손실을 발생시킨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 기소되어 세상 떠들썩한 수사를 받았었다. 

1심 법원은 당시 강영원 사장이 검토할 만큼 했다며 무죄를 선고했고(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 부장판사 김동아) 그는 당당히 따뜻한 집으로 돌아갔다. 

국민소송법만 있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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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법 들어서는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해외 자원개발업체를 부실 인수해 수천억원의 국고를 낭비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를 받고있는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지난해 6월 30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기서 묻는다. 과연, 필사즉생은 누가 해야 하는가. 애꿎은 수천 명 공사 직원들은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고, 오천만 국민은 정부가 수십 년 키운 공사 두 개가 망해가는 꼴을 목격 중이다. 

그럼 누가 손해배상이라도 해내야 하는 것 아닐까? 상황이 여기까지 온 데에는 사장이든 이사든 잘못한 사람이 있을 것 아닌가? 하베스트 구입 후 석유공사 경영진은 당시 성과급도 챙겨 받았단다. 유행어처럼 답답해서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 꽉 막힌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 터이다.

지금 민사소송법으로는 국민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아예 내지 못한다. 국민들은 법원의 판단조차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민사소송법에서 원고란 직접 손해를 입은 이를 규정하는데 한국석유공사만 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국민은 간접 피해를 입은 납세자일 뿐이다. 

현재까지 석유공사나 주주인 정부가 강영원씨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보다 못한 감사원이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하라고 재촉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그럼 도대체 내 세금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진다는 말인가? 

미국은 이러한 경우에 납세자 소송이 가능하다. 즉 납세자는 세금을 불법적으로 탕진한 사람에 대해 민사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다. 왜? 납세자니까. 참으로 상식에 맞지 않은가? 

160년 납세자 소송의 역사가 있는 미국의 경우, 납세자 소송은 주로 군수업체 로비로 인한 예산낭비와 부정부패를 막아왔는데, 최근에는 병원이 국가에 보험금을 허위로 청구한 경우와 같은 복지 부정수급기관에 대한 납세자 소송도 활발하다. 

미국은 2011년까지 20조 원 환수

이때 내부고발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납세자 소송 결과 국가가 부정부패자로부터 돈을 받아내면 원고의 승소에 대한 기여도를 심사한 뒤에 그 돈 중 일부를 포상금으로 원고인 국민에게 지급하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자 보호 규정에 의해 직장에서 해고당한 경우에는 해고로 인한 손해를 3배까지 청구할 수 있다. 내부고발자는 명예만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경제적 보상도 충분히 받게 된다. 이와 같이 활발한 납세자들의 소송제기로 2011년까지 20조 원이 넘는 돈이 국고와 국민에게 환수되었다고 한다. 일본에는 주민소송, 독일에는 단체소송, 프랑스는 월권소송, 영국에는 시민소송이라는 비슷한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소송제도 도입 논의는 2000년에 시작되었다. 경기 하남시민 266명이 하남시장을 상대로 1999년의 하남국제환경박람회로 인한 186억 원의 예산낭비에 대해 환수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그 돈은 하남시 1년 예산의 10%나 되었다. 이 소송은 법원에서 당연히 씨도 먹히지 않았지만, 67개 시민단체는 납세자소송특례법안을 국회에 청원하기에 이른다. 이주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납세자소송특례법안을 발의하였고,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던 사실이 있다. 이처럼 국민소송법은 이미 충분히 검토된 법이다. 우리나라라고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도 국민소송법을 국회에 요구하자. 여야를 떠나 각 당은 국민소송법 제정을 총선 공약으로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 혈세를 아끼는 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이 당당히 재정 환수에 나설 수 있고 정부는 그 돈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는 선순환구조. 참으로 '사이다'이지 않은가. 

참여연대가 제안하는 정책과제는 크게 3대 분야 52개로 서민 생존권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과제, 한반도 평화와 미래를 위한 정책과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정책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당 정책제안은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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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변호사이자,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입니다.

수, 2016/03/2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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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대한 준엄한 심판
변화와 희망에 투표한 국민의 뜻 받들어야
기억, 심판, 약속 운동은 계속될 것

 


어제 치러진 413총선 결과가 나왔다.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이다. 야당이 167석을 차지해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현실화 되었고, 원내 1당도 바뀌었다. 주권자인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과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을 준엄하게 심판했다. 현명한 유권자들은 전략적 투표와 교차투표로 여소야대로 입법 권력을 교체했고, 4당 체제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선언을 다시 한 번 확인 시켜 주었다. 변화와 희망에 투표한 국민의 뜻과 선거 결과를 정치권은 겸허하게 받들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지난 3년간 실정을 거듭해 왔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막지 못했고, 더 나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부자와 재벌에게만 혜택을 몰아주었고, 경제민주화는 실종되었다. 전세난과 가계부채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국민들의 반대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테러방지법을 강행하고, 노동개악을 추진했다. 민주주의는 훼손당했고, 남북관계와 평화는 위태로워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총체적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에 승복하고, 일방적인 국정기조를 전면 전환해야 할 것이다.

 

한편 2016총선넷은 지난 두 달여 기억/심판/약속 운동 등 다양한 유권자운동을 진행해 왔다. 공천부적격자 명단과 집중심판대상자를 선정해 발표하고 직접 선거사무소로 찾아가 낙선을 촉구했다. 다양한 후보자 정보를 손쉽게 제공하는 정보 제공사이트인 ‘3분총선’을 운영하였다. 한편 2016총선넷이 선정한 집중심판대상자(낙선명단) 전체 35명 중 15명이 낙선했고, 낙선율은 42.9%이다. 유권자들과 함께 선정한 Worst10 후보 중 오세훈, 김을동, 황우여, 김용남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다. 서울에서는 김을동, 김종훈, 김효재, 오세훈, 이노근, 이재오 후보가 경기에서는 김용남 후보가 인천에서는 배준영, 윤종기, 조전혁, 황우여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다. 수도권 16명 중 11명이 낙선하여 낙선율은 68.8%이다. 충청도에서 이인제, 한상율 후보가 울산에서 박기준 후보가, 부산에서는 박민식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다. 이들의 낙선은 2016총선넷의 호소에 응답한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의 결과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한 황우여, 김을동 후보, 노동개악을 주도한 이인제 후보의 낙선은 상징적이다. 반환경인사로 집중심판대상에 올라간 이노근, 오세훈, 이재오 후보도 당선되지 못했다. 

 

2016총선넷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억/약속/심판 운동을 비롯한 유권자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치와 선거는 정당과 정치권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정치와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인 국민이여야 한다. 이번 총선의 승자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 승리한 선거이다.

 

35인 낙선여부.png

 

*2016총선넷의 최종 공천부적격자 명단에 포함된 19인 중, 김현종(새누리당), 김용판(새누리당), 박기준(새누리당), 윤상현(새누리당), 한상율(새누리당) 후보 등 5인은 낙천했고, 이 중 박기준, 윤상현, 한상율 3인은 무소속 출마함. 
**테러방지법 제정을 주도한 인물 4인을 시민컷오프 대상에 선정한 바 있음.

 

 

 

목, 2016/04/1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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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토요일,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역사적 현장을 해설하는
평화길라잡이의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안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바뀌었지만,
국가라는 이름 아래 무자비한 폭력이 이루어졌던, 아픈 과거의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박종철 군이 물고문으로 사망한 곳이기도 합니다.



7월 시민 안내에는 총 21분이 오셔서 안내를 들었습니다.

우선 건물에 들어가, 80년대 사회상을 다룬 영상을 잠시 보았습니다.
80년대를 직접 경험하셨던 분들도, 교과서로만 민주화 운동을 접했던 젊은 분들도
주의깊게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영상을 본 뒤에는 뒷문으로 이동했는데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뒷문으로 들어가면
5층으로 곧장 연결되는 나선형 계단이 나타납니다.
얼마나 올라가는지 자신도 모르게, 빙글빙글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5층에 도착합니다.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직접 계단을 걸어 올라왔습니다.



5층은 박종철 군과 김근태 전 의원을 비롯, 무수한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던 공간입니다.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았던 509호는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가구,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좁게 만들어진 창문, 그리고 욕조까지.
좁은 공간이라 모두가 한번에 들어갈 수는 없어, 차례차례 들어가 살펴보았습니다.



김근태 전 의원이 고문을 당했던 515호 내부는 보존이 되어 있지 않고, 공간만 남아있습니다.
이곳은 509호보다 넓었는데요, 더 체계적이고 복합적인 고문을 했던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내를 통해 이곳에서 이루어졌던 고문에 대한 설명도 듣고, 고문 이후의 후유증이 또한 얼마나 힘든 고통인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설명이 끝난 뒤에는 박종철 기념 전시실이 있는 4층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는 80년대 사회상과 박종철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과정을 보여주는 문서,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박종철 군의 사진과 그가 남긴 책, 옷가지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1층에는, 지금 변화한 모습의 인권센터를 소개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변한 것일까요? 양천 경찰서 고문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등
조사과정에서의 폭력은 과거의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1층에서는 하나 더 생각할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 건물 입구에는 '주춧돌을 정하다'는 뜻의 '정초'라는 글씨가 있습니다.
이는 일제 시대 때 판검사를 지내고, 이후 서울고등지법 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 내무부 장관까지 올랐던 김치열의 흔적입니다.
그의 경력 뒤에는 김대중 납치사건, 인혁당 사건 등 국가 권력의 폭력이 이어집니다.

또한 이 건물을 치밀하게 설계한 김수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센터, 올림픽주경기장 등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음에도,
이 건물에는 밝지 못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어두운 시절에도,
박종철의 시신을 보고 물고문을 알아채서 최대한 이를 알리려고 한 의사,
박종철 사건을 외부에 알리려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교도관 등
체제에 순응하지만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역할과 책임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닐까 라는 안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특기할 만한 사항은
대공분실 내부에서 안내를 들을 때도 끊임없이 들리는 남영역의 안내 방송이었습니다.
실제로 대공분실 건물은 남영역 플랫폼에서도 한눈에 보이는 건물이었는데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지나치는 것들 중에서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어쩌면 절대 평범하지 않은, 어쩌면 아연실색할 만큼 폭력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고, 다소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신 시민 분들 모두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대공분실 현장을 보고, 안내를 들었습니다.
지인을 따라 오신 분, 메일을 보고 오신 분, 집 근처여서 와보신 분 등 오신 이유는 각자 달랐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를 한번 더 생각해보고,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안내였습니다.

다음 안내에도 많은 시민 분들이 함께 해서, 가슴 아픈, 그러나 잊지 않아야 할 현장을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정된 8월, 9월 안내도 많이 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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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08/0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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