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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호 식 ‘키스디(KISDI)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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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호 식 ‘키스디(KISDI)의 추억’

익명 (미확인) | 화, 2016/02/23- 17:44

2008년 KBS 이사 시절 정연주 사장 해임한 뒤 KISDI에 낙하
이명박 정부의 방송 정책 뒷받침하는 구실 만들어 줘
위법한 특별상여 잔치에 연구원 근태 관리도 부실

방석호 전 아리랑TV 사장의 부도덕은 한국 공공기관 낙하산의 민낯을 보여줬다. 권력을 좇은 덕에 낙하산을 얻어 내려앉은 기관장의 본디 모습과 한계를 잘 알아보게 했다.

방 사장은 2008년 5월 KBS 이사진의 일원으로 정연주 KBS 사장을 그만두게 한 뒤 4개월여 만인 그해 9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처음으로 공공기관의 으뜸 책임자가 된 그는 ‘방송 소유 · 겸영 규제 완화’와 ‘종합편성 방송채널사용사업자(종편) 허가’처럼 이명박 정부와 여당이 바라는 방향에 KISDI의 정책연구 목표를 맞추고 밀어붙였다.

이명박 정부를 위한 달음박질

방석호 제9대 KISDI 원장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2008년 9월 11일 취임식에서 “방송통신이 국가경제의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육성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해 8월 13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방송통신 분야가 국가경제의 핵심적인 신성장동력”이라고 말한 것과 판박이였다.

▲2008년 9월 11일 경기도 과천시 KISDI 청사에서 방석호 제9대 원장 취임식. (사진: KISDI 보도자료)

▲2008년 9월 11일 경기도 과천시 KISDI 청사에서 방석호 제9대 원장 취임식. (사진: KISDI 보도자료)

‘공적 책임을 높여 시청자 권익을 보호하고 민주적 여론 형성을 꾀해야 할(방송법 제1조)’ 방송을 경제발전 도구(신성장동력)로 쓰려 한 것. 방송과 정보통신 간 융합 현상을 핑계로 삼았다지만 통신 또한 ‘이용자 편의를 꾀해 공공복리 증진에 이바지하는 게 목적(전기통신사업법 제1조)’인 터라 그의 취임사는 공공성을 깨뜨릴 개연성이 큰 기조로 지적됐다. 방송통신 융합을 핑계로 내걸어 산업과 시장의 논리를 방송에 옮겨 심으려는 뜻으로 읽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인터넷(IP)TV를 상용화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함께 이루겠다고 밝혔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년 동안 IPTV 가입자가 해마다 27%씩 늘어 33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같은 기간 생산유발효과 6조9000억 원, 고용유발효과 3만8000명처럼 이루기 힘든 미래상(ETRI 예측)도 곁들였다. 허풍선에 지나지 않았던 이명박 정부의 ‘IPTV 도입에 따른 산업 전망’에는 방송을 산업으로 보려는 뜻이 분명했다. 방송도 산업이니 신문과 겸영할 수 있게 해 주고, 재벌에게도 문을 열어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정책에 심었다.

이명박 정부의 이런 정책 방향은 “세계는 지금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글로벌 환경에 부합하기 위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생존 차원의 치열한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출범을 통해 신성장동력의 하나인 방송통신 융합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가는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는 방석호 제9대 KISDI 원장의 취임 일성에 내려앉았다.

취임 20일 만인 2008년 10월 1일 방 원장은 KISDI에 ‘방송통신정책연구실’을 새로 만들어 맨 윗자리에 뒀다. 1985년부터 2008년까지 23년 동안 정보통신정책을 연구한 KISDI의 으뜸 과제를 ‘방송’으로 바꾼 것. 기관 이름을 아예 ‘방송통신정책연구원’으로 바꾸는 방안까지 따져 봤다. “KISDI도 기존 IT(정보기술) 정책에 국한한 연구를 벗어나 방송과 미디어를 아우르는 방송통신 종합연구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라는 방석호 원장의 뜻이 투영된 결과였다.

▲KISDI 조직 개편 흐름. 방석호 원장 재임 기간 동안 ‘방송통신정책연구실’이 으뜸 연구실로 떠올랐다가 1년여 만에 ‘통신’ 아래로 가라앉았다. ‘기획조정실’을 아래로 내린 것도 방 원장뿐이었다. (표: KISDI 30년사에서 갈무리)

▲KISDI 조직 개편 흐름. 방석호 원장 재임 기간 동안 ‘방송통신정책연구실’이 으뜸 연구실로 떠올랐다가 1년여 만에 ‘통신’ 아래로 가라앉았다. ‘기획조정실’을 아래로 내린 것도 방 원장뿐이었다. (표: KISDI 30년사에서 갈무리)

조직 개편과 보직 인사로 숨을 고른 방 원장은 다시 20일 만인 10월 21일 ‘방송의 경쟁력 강화와 공공성 구축 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워크숍’을 벌였다. 그해 12월 9일까지 49일 동안 주제별 워크숍을 8차례 열어 KISDI 인터넷 홈페이지로 중계방송까지 했다.

워크숍은 재벌을 끌어들여 방송에 산업 논리를 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몇몇 보수 신문에 종편 채널을 내주려던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복심을 엿보게 했다. 첫 주제가 ‘방송 소유 · 겸영 규제 완화 추진방안’이었고 ‘신문방송 겸영이 미디어산업에 미치는 효과(11월 4일)’, ‘종합편성 및 보도채널 사업자 구도(11월 18일)’, ‘종합 편성 정책(12월 2일)’으로 이어졌다. KISDI 쪽은 이를 방송 경쟁력을 높일 주제라고 주장했다. 또 공공성 구축 방안이라며 ‘공 · 민영 이원체계 구조화방안 및 공영방송 범주 설정(10월 29일)’, ‘공영방송 규제기구 위상 및 역할(11월 11일)’, ‘공영방송 재원구조와 경영투명성 제고방안(11월 25일)’, ‘공영방송의 공익성 구현과 책무(12월 9일)’로 주제를 이었다. 이를 두고 최고 권력자의 KBS · MBC · SBS 지배를 위한 밑거름을 제공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다. “각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융합으로 대변되는 경쟁 환경에서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에 도움이 될 방안이 제시될 것”이라는 KISDI 쪽 첨언도 이를 방증했다.

새 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정부 여당의 뜻에 맞춰 조직을 바꾸고 예정에 없던 워크숍 중계방송까지 벌인 건 그 전까지 KISDI에 없던 일. 정부 출연금을 바탕으로 삼아 중점 연구 분야를 정해 둔 기관인 터라 한 해 사업을 마무리하는 10월과 12월 사이에 새로운 과제를 띄우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방송 소유 규제 완화와 종편 관련) 미디어법 때문에 그랬던가요. 그때 대외 영향력을 많이 확대해 보자는 (방석호 원장의) 뜻으로, 내부에서는 그런가 보다 했죠. (워크숍을) 갑자기 하려다 보니까 외부에서 강사들이 오고 인터넷으로 중계하고, 굉장히 활발하게 연속적으로 했죠.

KISDI에서 오랫동안 핵심 보직을 맡았던 이의 기억. 그는 KISDI에서 방석호 원장의 워크숍 밀어붙이기 같은 사례가 많았느냐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워크숍을 몰아붙인 게 그때 정부와 여당의 뜻에 너무 따라간 것 아니었느냐는 의견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KISDI 연구원이었던 또 다른 이도 “(워크숍의) 인터넷 공개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며 “새 원장이 오자마자 (펼친 워크숍) 주제가 왜 그거(방송 소유 규제 완화)냐 하는 것엔 뭔가 (까닭이) 있었겠죠”라고 말해 워크숍이 정부 여당의 뜻을 품었음을 알게 했다.

조바심이 사고를 부르고

방송법 개정과 방송 규제 완화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를 낙관적으로 예측할 경우 생산유발효과가 2조9000억 원, 취업유발효과가 2만1000명에 달할 것이다.

기어이 말썽이 났다. 2009년 1월 19일 KISDI 이슈리포트로 내놓은 ‘방송 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을 두고 통계 조작과 왜곡 시비가 일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 규제 완화 정책에 따른 생산 · 취업 유발 효과를 돋보이게 하려다 정도를 벗어나고 말았던 것.

KISDI 보고서는 그 무렵 “방송 소유 규제로 인한 추가 자본투입 부재와 기존 사업자의 투자유인 부족”으로 콘텐츠 매력도가 낮아 저성장 양상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규제를 느슨하게 하면 “신규 사업자 진입과 추가 자본 유입으로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시키고 방송 콘텐츠 품질을 제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규제 완화를 통해 생산이 2조9000억 원쯤 늘고 2만1000명이 일자리를 구할 거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예측 근거로 제시된 국가 간 방송시장 비교용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그 밖의 숫자 합산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논란이 일자 국회 예산정책처는 KISDI의 보고서 발표 14일 만인 2009년 2월 2일 “방송 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 의미가 제한적”이라는 결론을 냈다. KISDI는 그러나 같은 달 5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방법론에 근거해 작성됐다”며 반박했다.

KISDI는 그해 7월까지 통계 조작과 왜곡 의혹을 제기한 몇몇 언론과 야당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마다하지 않을 듯했지만 결국 “송구하다”며 스스로 물러났다. 같은 달 10일 보고서를 재검토했더니 “연구자의 숫자 합산 오류뿐만 아니라 국가 간 방송시장 규모 비교에 사용한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자료의 한국 GDP 과대 추정, PWC 자료(2008)의 한국 방송시장 규모 과다 산정, 적용 환율 차이에 따른 오차 등 원 데이터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발견됐다”고 인정했다.

▲2009년 7월 10일 자 KISDI 알림.

▲2009년 7월 10일 자 KISDI 알림.

20여 일 뒤인 8월 초 보고서 작성 책임자(방송통신정책연구실장)가 KISDI를 떠났다. 이후 한 달여 만인 9월 1일에는 방석호 원장이 첫째가는 조직으로 만든 ‘방송통신정책연구실’도 ‘통신정책연구실’과 ‘방송전파연구정책연구실’로 나뉘었다. 방 원장 취임 1년여 만에 으뜸 과제가 ‘통신’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당파 이해를 짊어진 낙하산이 조직을 어찌 흔들고 어떤 부작용을 빚는지 잘 내보인 뒤였다.

그때 일을 지켜본 KISDI 출신 방송통신업계 관계자는 “KISDI 태생 자체가 청와대나 정부에 쓴소리를 하기보다 정책 브레인으로서 지원하는 것”이지만 “통계 오류에 조작까지,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하는 느낌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KISDI 관계자도 기자에게 “(통계 조작 의혹을 산) 보고서를 방석호 원장이 전하는 정부의 미디어 정책 목표에 맞춘 측면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며 “종종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낼 수 없는 상황을 자조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위법한 연구적립금 이자로 성과급 잔치

KISDI는 1985년부터 2001년까지 16년 동안 정부 출연 예산 이외에 ‘정보통신연구적립금’ 651억9000만 원을 따로 만들어 썼다. 한국전기통신공사(KT)와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이 KISDI에 출연한 470억 원을 종잣돈으로 삼아 이자수입을 더한 끝에 652억여 원에 닿았다. 이 돈은 옛 정보통신정책연구원법에 따라 모자라는 기관 운영 · 사업비를 채워 메우는 데 써야 하나, KISDI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생긴 이자수입 29억3300만 원 ~ 54억7200만 원쯤만 이듬해 예산에 넣었다. 대개 30억 원쯤이었다.

원금 651억9000만 원은 손대지 않은 채 이자 놀이를 한 셈. 특히 2005년 · 2007년 · 2008년 · 2013년 · 2014년에는 이자 수입이 애초 예상액(30억 원)을 넘어서자 기관 운영이나 사업과 상관없는 직원별 능률 성과급으로 지급해 버렸다. 2005년 이주헌 제7대 원장 때 10억4300만 원, 2007년 석호익 제8대 원장 시절 5억5500만 원, 2008년 방석호 제9대 원장 때 5억4600만 원, 2013년 김동욱 제10대 원장 시절 1억6100만 원, 2014년 김도환 제11대 원장 때 5억6700만 원을 썼다. 모두 28억7200만 원을 이듬해 KISDI 예산에 포함하지 않은 채 직원 성과급으로 다 써서 없애버린 것이다. 특히 방석호 원장은 2008년 9월 10일 취임한 뒤 3개월여 만에 조직 개편과 보직 인사뿐만 아니라 특별상여 차등 지급까지 해냈다.

직원들은 이를 ‘특상(특별상여)’이라 불렀다. 업무실적평가에 따른 정규 성과급과 달리 연말에 따로 줬기 때문이다. 모두 만족했던 건 아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금액 차이가 컸고 “기관 경영평가에 따른 상여금처럼 정해진 비율대로 준 게 아니라 연말에 주는 특별상여이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지급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가 있었다”는 KISDI 관계자의 뒷말도 들렸다.

최성재 KISDI 기획전략팀장은 이와 관련해 “(그해 연구적립금에서 생긴) 초과 이자 수입뿐만 아니라 외부 용역 수입 초과분을 더한 금액을 직원별 업무실적평가에 따라 5단계로 나눠 차등 지급했다”고 밝혔다.

KISDI는 1985년부터 1999년까지 생긴 결산 잉여금 45억7500만 원도 이듬해 예산으로 넘기거나 정보통신연구적립금에 보태지 않은 채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운영자금을 핑계로 삼아 마음대로 썼다. 이 돈을 인건비 · 경상비 · 사업비 따위로 쓰려면 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함에도 그냥 쓴 것으로 2015년 감사원 특정감사에서 드러났다.

KISDI의 이런 행위는 모두 위법했다. 1999년 1월 옛 정보통신정책연구원법이 폐지돼 정보통신연구적립금을 따로 만들어 운용할 근거가 없기 때문. 결산 잉여금을 이사회 승인 절차도 밟지 않은 채 마음대로 쓴 것도 정부의 ‘예산 · 기금 운용계획 집행지침’과 ‘KISDI 예산 총칙’을 어긴 행위였다.

최성재 팀장은 “자체 기금을 가지고 있지 말고 쓰라는 (감사원 감사) 처분에 따라 2017년부터 매년 130억 원씩 연구개발적립금에서 정부 출연 예산을 대체한다”고 전했다.

부실한 직원 근태 관리

제보다 젯밥에 마음이 있는 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했다. 방석호 원장 재임 기간과 2년 4개월쯤 겹친 2008년 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3년 동안 KISDI 직원의 대외 활동 3856회 가운데 89회만 미리 승낙된 것으로 밝혀졌다. KISDI 임직원 행동 강령과 대외 활동 요령에 따라 외부에서 대가를 받고 강의하거나 자문해 주려면 미리 원장에게 신고해 승인을 얻어야 함에도 3767회나 허락 없이 이루어졌던 것. 2010년 12월 기준 정규직 123명 가운데 75명이 한 차례 이상 신고하지 않은 채 대외 활동으로 사익을 누린 것으로 감사원에 적발됐다.

이들 75명 가운데 21명은 2008년부터 3년 동안 신고나 허락 없이 외부 강의와 자문으로 각각 1000만 원 이상 벌었다. 21명은 대외 활동을 976회나 벌여 모두 5억3230만 원을 자기 주머니에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평균치로는 대외 활동 46회에 2534만7000원씩 벌어들였다.

▲신고하지 않은 대외 활동으로 1000만 원 이상 소득 올린 KISDI 직원 현황. 빨간 네모 상자로 표시(19번)한 ㅎ씨는 32회 대외 활동으로 9973만 원을 벌었다. (자료: 감사원)

▲신고하지 않은 대외 활동으로 1000만 원 이상 소득 올린 KISDI 직원 현황. 빨간 네모 상자로 표시(19번)한 ㅎ씨는 32회 대외 활동으로 9973만 원을 벌었다. (자료: 감사원)

특히 ㅎ씨는 방석호 원장이 취임했을 무렵인 2008년 10월 KISDI에 합류해 방 원장이 퇴임한 2011년 9월까지 3년 동안 외부 자문 · 기고 · 토론 32회로 무려 9973만4000원을 벌었다. 그는 KISDI에서 맡은 일과 관련이 없는 금융 분야 자문을 해 주느라 일주일에 10시간 이상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KISDI 출입 체계에 흔적이 남지 않아 무단결근한 것으로 보이는 날도 32일에 달했다. 방석호 원장에게 미리 신고하거나 허락을 얻지 않은 채 벌어들인 9973만4000원 가운데 8282만7000원을 금융 관련 자문비로 받았다. 그의 정규 연봉은 6585만7000원(2010년)이었다.

그때 KISDI에서 일했던 방송통신업계 관계자는 “2011년 10월 감사원 감사에서 직원들이 근무 시간에 미리 신고하지 않고 외부로 나간 것과 모 박사의 금액이 큰 게 문제가 됐다”며 “그 일이 있은 뒤엔 대외 활동 사전 신고와 승인은 물론이고 횟수까지 엄격히 살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KISDI 올해 예산은 246억2300만 원. 해마다 정부 출연금 100억 원쯤을 받아 정보통신기술(ICT)전략 · 통신전파 · 방송미디어 · ICT통계정보 · 국제협력 · 우정경영 정책을 연구하는 데 썼다. 나머지 예산도 인건비 · 일반사업비 · 경상운영비처럼 정부 출연금을 바탕으로 삼아 일군 수탁용역수입과 청사 보증금 · 매각 잔액(99억4800만 원) 따위에서 나왔다. 이처럼 정부가 세금을 모아 KISDI에 주는 것(출연)은 관련 분야에서 시민의 삶을 넉넉하고 윤택하게 할 길을 열어 달라는 뜻. 위법한 성과급 잔치를 벌이거나 지나친 대외 활동으로 개인 살림을 늘리라는 게 아니다.

‘방석호 KISDI’처럼 정파 이해를 타고 내려앉는 낙하산 인사로는 ‘공공기관’ 운영이 ‘공공의 이익’과 동떨어질 위험이 크다. KISDI를 비롯한 주요 공공기관 인사 행정에서 여태 풀지 못한 숙제다.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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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사상 최대 규모의 탄핵반대 집회가 서울 시청광장 일대에서 펼쳐졌다. 주최측이 주장하는대로 5백만 명 정도 규모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이 참여했음을 어림짐작으로도 알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탄핵반대 집회에 참여하고 있을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신도 수만 20만 명에 이르는 은혜와진리교회에서 교인들을 조직적으로 집회에 동원한 현장을 포착했다.

# 3월 1일 아침 10시, 안양 은혜와진리교회 앞

대규모 탄핵반대 집회가 예정된 지난 1일 아침, 오전 예배를 앞두고 은혜와진리교회 대성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교인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우자 예배가 시작됐다.  여느 교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지만 예배가 끝나기 10여 분 전, 분위기가 달라졌다. 은혜와진리교회 조용목 담임목사가 이날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구국기도회와 탄핵반대 집회 참여를 독려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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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와진리교회 조용목 담임목사

“삼일절 기념 또 애국을 위해서 모이는 그런 모임에 가시는 분들은 물 많이 먹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하나님 은총의 메세지가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

– 은혜와진리교회 조용목 담임목사

# 오전 11시 반, 즐비하게 늘어선 버스들

은혜와진리교회는 교인들이 탄핵반대 집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전에 꼼꼼히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배당 안팎에는 3.1절에 열리는 탄핵반대집회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었고, 교회 사무처에서는 신도들이 집회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 건물 밖에는 20여 대의 전세 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서울 집회 현장으로 신도들을 실어나를 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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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와진리교회 앞에 늘어서있는 전세버스들

천여 명의 신도가 20여 대의 전세 버스에 나눠탔다. 취재진은 은혜와진리교회 신도들과 함께 직접 이 버스에 올라타고 서울로 이동했다. 전세 버스 대절과 간식 구입 등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교회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탑승자들은 일체의 돈을 내지 않았다.

차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 60~70대 여성들이었다. 교회측은 젊은 신도들의 집회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원래 낮 시간에 예정된 청년부 예배도 취소했지만, 30대 이하의 젊은 신도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버스에 탄 한 60대 여성은 “원래 우리 목사님이 시국 설교 절대 안 하시는 분인데, 이번에는 진짜 나라가 어려워서 매 주일 예배 때마다 말씀을 하신다”면서 “이분(목사님)이 떳떳하게 살아오신 분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집회에 안 나갈 수 없었다”고 집회 참여 동기를 밝혔다.

# 오후 1시, 3.1절 구국기도회의 태극기 물결

버스에서 내린 신도들은 줄지어 광화문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이미 3.1절 구국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름은 ‘기도회’지만, 탄핵기각운동본부 정광용 대변인이 단상에 올라와 있고 대부분의 참여자들 역시 뒤이어 열린 탄핵반대집회에 합류했다. 기도회가 사실상 탄핵반대 사전집회로 활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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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도회에는 은혜와진리교회 신도들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신자들도 대거 참여했다.

# 조용목 목사의 ‘선동 설교’

은혜와진리교회 조용목 목사는 이미 여러 차례 교인들에게 탄핵반대 집회 참여를 독려했다. 지난 1월 22일 예배 때는 “애국자들이 시위에 참여하여 외치는 행동으로도 하나님께 호소해야 한다”며 신도들을 독려했고, 1월 29일 예배 때는 특검 수사나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기정사실로 확인된 내용조차 부인하면서 탄핵 기각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교회의 젊은 신도들은 조 목사의 극우적인 발언에 반발하고 있다.

물론 목회자도 사람이니까 보수일수도 있고 진보일 수도 있고 그런 부분은 저도 이해합니다.  문제는 목사님이 보수가 맞다, 보수는 틀린게 없다, 박근혜 게이트는 거짓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시면… 지금 대부분의 시민들이 국정농단 때문에 엄청나게 분노한 상황에서 목사님이 그런 얘기를 하시니까 분노가 더 커지는 거죠.

– 김가람(가명) / 은혜와진리교회 신도

보도가 다 거짓이고 탄핵을 탄핵한다는 김평우 변호사를 옹호하는 발언, 변희재를 옹호하는 발언, 그런 발언을 하시는 바람에 우리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많이 나갔어요. 항의하는 뜻에서 소리도 지르고…

– 양상돈(가명) / 은혜와진리교회 신도

뉴스타파 취재진이 교회 측에 신도 동원이 올바른 행동인지 묻자 교회측은 처음에는 탄핵반대집회에 신도들을 동원하지 않았다고 완강히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직접 현장에서 촬영까지 한 사실을 알리자 더 이상 부인하지도 못하면서, 취재진이 그런 촬영을 할 거였다면 교회측의 허락을 받고 해야 했다며 취재진의 신원을 따져 묻기도 했다.   

# 제왕적 목사의 극우주의. . .  젊은 층 이탈로 조금씩 흔들려

3.1절 탄핵반대집회에 대거 교인들을 참석시킨 것으로 확인된 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은혜와진리교회 두 곳이다. 이 교회들은 각각 조용기, 조용목 두 형제 목사가 이끌어왔는데 두 교회 모두 신도 수 수십만 명 규모의 초대형 교회들이다. 한국 기독교를 20여 년간 연구해온 김진호 씨는, 최근에는 교회의 돈줄이 되는 젊은 신도들이 목사들의 극우적 선동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한 교회에서는 집회에 신도들을 동원하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목사가 수십년 동안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온 일부 대형교회들의 경우, 장노년층 신도들을 중심으로 목사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따르도록 유도하는 일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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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90년대 이후의 신도들은 대부분 학력도 높고 자존성도 높고 종교적으로도 꽤 많이 아는 사람들이에요. 교회를 비교 검토하고 목사 설교를 비평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러다 보니까 대형교회 목사들이 겉으로는 제왕적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 눈치를 봅니다. 그래서 대형교회 목사들이 노골적으로 동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교인들 눈치를 보는 거죠.  

그런데 여전히 교인 동원이 가능한 교회들이 있어요. 그건 주로 90년대 이전에 목사의 권력이 형성돼서 여전히 그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런 분들이 지금도 동원의 주체들인 것 같아요.

큰 교회일수록 담임목사가 홀로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이 많습니다. 그 예산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몰라요. 많은 경우 그 돈들이 기독교계 극우 단체들의 손에 들어가고, 그들에게서 이상한 신문도 만들어지고, 이상한 동원도 이뤄지리라고 추측이 됩니다. 거대한 집회에 공공연히 나서는 목사는 현저하게 줄었는데, 가보면 십자가도 큰 게 있고 왠지 기독교 집회 같은 느낌이 드는 거대한 시내 집회가 만들어지곤 하는 거죠.

– 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목, 2017/03/0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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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기준 노원구 투표율은 16.5%로 서울 평균보다 다소 높습니다. 이곳 주민센터는 지하1층과 지상2층에... 두 후보는 여러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와 당 내 분석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습니다. 또 더불어민주당...
수, 2016/04/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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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로 재편된 20대 국회의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한 연장 관련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처리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올해 6월까지만 특조위 예산을 배정해 놓은 상태여서 자칫 선체가 인양되기도 전에 활동이 종료될 위기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변호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야3당이 공조를 선언했지만 정부와 여당의 반대 입장이 명확해 20대 국회 초반 여야 간 힘겨루기의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세월호 특조위, 서울중앙지검 실지조사 시도 (6월 8일)

▲ 세월호 특조위, 서울중앙지검 실지조사 시도 (6월 8일)

특조위 활동 중단 임박… 조사대상 기관들 비협조 극심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5명은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에 대한 실지조사에 나섰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문을 제기한 보도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가토 전 산케이 서울지국장 사건의 수사와 재판 기록 일체를 제출받기 위해서였다. 특조위는 신청 사건 중 하나인 ‘참사 당일 청와대 대응의 적정성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해당 사건의 증거기록들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청와대 등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제출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접적인 확인을 위해 검찰 자료에 대한 실지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날 서울중앙지검 측은 특조위 조사관들의 출입을 건물 입구 민원실에서 제지했다. 그리고 민원실 유선전화를 통해 실지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해 왔다. 해당 자료가 세월호 참사 조사와 관련이 없고 서울중앙지검은 특조위의 조사 대상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특조위 조사관들은 참사와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것은 검찰이 아닌 특조위라며 조사에 응할 것을 요구했으나 검찰은 끝내 거부했고 조사관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서울중앙지검 민원실 앞에서 출입을 제지당하고 있는 특조위 조사관들

▲ 서울중앙지검 민원실 앞에서 출입을 제지당하고 있는 특조위 조사관들

비슷한 상황은 지난달 말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대 본청에서도 발생했었다. 특조위 조사관들이 참사 직후 해경과 해군의 교신기록이 담긴 TRS 기록 원본 제출을 요구하며 실지조사에 나섰지만 해경 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특조위 조사관들은 1주일 동안 해경 본청에 머물며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현재는 일정 부분 협의가 진행돼 기록이 담긴 장치에 대한 이미징과 포렌식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정부 기관들이 최근 들어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는 배경엔 특조위 활동 기한이 다 돼 간다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특조위 활동이 지난해 1월 1일부터 개시된 것으로 보고 18개월의 활동 기간이 종료되는 이달 말까지만 예산을 배정해둔 상태다. 이에 대해 권영빈 특조위 상임위원은 “정부 부처로부터 자료 하나 제출받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정부 차원의 비협조이자 결국 세월호 진상규명 방해 행위”라고 말했다.

▲ 지난달 28일 세월호 ‘선수 들기’ 작업 현장. 해수부는 ‘기술적 이유’로 작업을 2주 연기했다.

▲ 지난달 28일 세월호 ‘선수 들기’ 작업 현장. 해수부는 ‘기술적 이유’로 작업을 2주 연기했다.

특조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힐 핵심 증거물인 선체의 인양 과정에도 거의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 특조위는 지난해부터 선체의 온전한 인양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현장 바지선에 동승하게 해 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이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28일에는 특조위 조사관들이 낚시배를 빌려타고 뱃머리를 들어올리는 작업 현장에 접근했지만, 해수부는 ‘기술적 문제’로 작업이 2주 연기됐다면서 끝내 바지선 동승을 허용하지 않고 조사관들을 돌려보냈다. 어떤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당초 해수부가 밝힌 인양 공정이 몇 차례 연기되면서 세월호 인양은 7월 말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6월말 이후로 특조위에 예산을 추가 배정하지 않는다면 특조위는 인양된 선체를 한번 보지도 못한 채 활동을 접게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그동안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해 1월 특조위가 출범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른바 ‘세금도둑론’을 확산시키고 3월엔 조사 대상 부처의 공무원들을 특조위에 대거 파견하도록 한 특별법 시행령을 강행하면서 ‘특조위 힘빼기’에 나섰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특조위가 청와대에 대한 조사를 의결할 경우 여당 추천위원들의 집단 사퇴도 불사한다는 내용을 담은 해수부 내부 문건이 드러나 파장이 일었다. 또 실제 문건 내용대로 사퇴했던 황전원 위원이 4.13총선의 새누리당 예비후보 나섰다가 낙마하자 새누리당은 올해 2월 황 전 위원을 다시 특조위 부위원장으로 추천하는 일까지 있었다. 하나 같이 정부와 여당이 특조위를 무력화하려는 의도에서 벌인 일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전원이 공동발의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제출 (6월 7일)

▲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전원이 공동발의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제출 (6월 7일)

‘여소야대’ 20대 국회 개원… 야3당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공조 나서

그러나 4.13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재편된 20대 국회가 열리면서 이 같은 상황에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20대 국회 개원 1주일 만인 지난 7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법률대리인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23명 전원, 그리고 정의당 의원 6명 전원이 서명한, 사실상 두 야당의 ‘당론 발의’였다.

이 개정안은 우선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 개시일을 예산을 최초 배정받았던 지난해 8월로 못박아 특조위가 내년 2월까지 활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인양된 선체에 대해 특조위가 최대 1년까지 정밀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함으로써, 예정대로 인양이 완료될 경우 내년 7월까지 선체 조사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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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은 이 개정안 발의 단계에서 공동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안 처리에 공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주민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사실상 야3당의 공조가 이뤄진 것이다.

희생자 가족들도 지지를 표명했다. 비록 특별사법경찰 도입 등 가족들이 원하는 특조위의 조사권 강화 방안은 빠졌지만 특조위 활동 기간 보장이 최우선 과제라는 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 ‘특조위 연장 반대’ 여전… 개정안 처리 결과 관심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특조위 활동 기간 연장을 핵심으로 하는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계속 밝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보도.편집국장 초청 간담회에서 “세월호 특조위 연장은 국민 세금이 더 들어가는 문제”라고 언급한데 이어 지난달 여야 신임 원내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특조위를 연장하면 국민 세금이 많이 들고 여론도 찬반이 있다”면서 역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을 ‘진상 규명’의 차원이 아닌 ‘세금 투입’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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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원내 지도부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참사 조사는 상당 부분 이뤄져 특별히 기한을 연장할 만큼 남은 과제가 있다는 데에 과연 많은 국민들이 동의할 것인가 반문하고 싶다”면서 “특별법을 개정해서 조사 기한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필요할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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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참사 이후 2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확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조 실패의 윗선에 대한 조사와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도 9명의 미수습자들이 선체와 함께 아직도 바닷속 깊은 곳에 머물러 있다.

4.13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거리의 변호사’를 국회에 보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1호 법안으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야3당이 이에 공조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좌초가 임박한 세월호 특조위를 존속시켜 참사의 진상을 온전히 규명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자 처벌이 가능하도록 20대 국회가 앞장서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최형석, 정형민, 김기철
영상편집 : 윤석민

목, 2016/06/0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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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폐쇄조치 후 즉각 나타난 남한의 코스닥 코스피 폭락등 엄청난 경제적 타격, 국제 신인도 하락, 그리고 개성공단 내 북한군 전진 배치로 인한 안보의 위협등 수 많은 문제점이 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막상 우리가 개성공단 폐쇄로 기대하는 대북 경제적 압박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것이라는 예측등을 스토리파이로 정리하였습니다
일, 2016/02/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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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의 행적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소명하라는 헌법재판소의 요구(12월 22일 1차 준비기일)에 대해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 이중환 변호사는 “대통령이 (그날 일을)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12월 30일 헌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 3차 준비기일에 대통령 측 대리인으로 참석한 이중환 변호사는 “당시 여러가지 사건에 대한 결재를 많이 했고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을 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최대한 기억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통령이 정확하게 기억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은 헌재가 대통령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한 지 일주일만에 나온 것으로 큰 논란이 예상 된다.

이중환 변호사는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자료 제출을 언제까지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2017년 1월 5일 2차 변론기일 이전에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이중환 변호사에게 청와대 홈페이지 ‘오보 바로잡기’에 기재된 대통령의 행적 가운데, 새로 추가되거나 수정되는 것이 있느냐고 질문했지만 그는 “재판 과정에서 주장하고 입증하겠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12월 22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 1차 준비기일에서 헌재는 “세월호 참사가 2년이 지났지만 워낙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날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있다.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도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본다”며 “문제의 7시간 동안 피청구인이 청와대 어느 곳에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보았는지,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들을 시각 별로 밝혀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 측 대리인단 9명은 12월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1시간 30분 가량 첫 만나 세월호 7시간 당시 행적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 재판부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 당사자에 대한 신문을 요청한 국회 측 요구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 않게 됐다. 헌재는 그 이유로 당사자 신문은 민사소송 절차에 따르는 것으로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는 탄핵심판에는 절차상 맞지 않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증인 채택이 확정된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출석을 2017년 1월 5일이 아닌 10일 3차 변론기일로 미뤘다. 법원의 재판이 미리 예정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2차 변론 기일인 2017년 1월 5일에는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윤전추 행정관과 이영선 행정관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5가지 쟁점 중 비선조직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에 관련된 쟁점이 우선 다뤄질 전망이다.

헌재는 이와 함께 2차 준비기일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이 요청한 21개 기관에 대한 사실조회 가운데 7개 기관에 대한 사실조회만 받아들였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문화체육관광부, 미래창조과학부, 법무부, 관세청, 세계일보 등이다. 재판부는 나머지 14개 기관에 대한 사실조회 요청은 사실 요청이 아닌 의견을 묻는 것으로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취재 최윤원, 연다혜
촬영 김남범, 신영철

금, 2016/12/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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