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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 5부 대한독립의 별, 김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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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 5부 대한독립의 별, 김마리아

익명 (미확인) | 금, 2016/01/22- 19:25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된다. 일제는 ‘국가 총동원법’을 공포하며 조선을 대륙 침략의 기지로 삼고 ‘내선 일체’, ‘황국신민화’를 통한 대대적인 민족말살 정책을 펼쳤다. 이 때 조선의 많은 자산가와 지식인들이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며 친일과 변절의 길을 택했다. 독립과 여성해방운동을 이끌던 여성지도자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반도 여성들도 아름다운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자
– 김활란 (1899-1970)

다른 학교 학생들은 정신대에 지원을 하고 있는데
우리 학교에 그런 용기 있는 학생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 황신덕 (1889-1983)

지금은 우리 1500만 여성이 당당한 황국 여성으로서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할 천재일우의 시기입니다.
– 박인덕 (1896-1980)

그러나 이러한 변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독립을 위한 길을 굽히지 않고 걸었던 사람이 있었다.

김마리아. 그녀는 동경 유학 시절,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2.8 독립선언서를 몸에 감추고 국내로 잠입했다. 국내로 온 후에는 모교의 학생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이끌었고,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출소 한달만에 당시 최대의 여성비밀 항일단체인 대한애국부인회를 재조직했고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모아 보내기도 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재미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인 근화회를 창설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독립 운동을 이어갔다.

김마리아는 평생 일제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막대기로 계속해서 머리를 때리는 고문으로 고막이 터지고 귀와 코에 고름이 차는 메스토이 병에 걸렸으며, 가슴을 인두로 지지는 고문으로 인해 한 쪽 가슴도 잃었다. 그녀가 남긴 안섶과 겉섶 길이가 다른 한복 저고리는 그녀가 받은 잔인한 고문을 짐작케 한다.

전 생애에 걸쳐 흔들림 없이 독립의 길을 걸었던 김마리아. 10여 년의 긴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원산의 마르다 윌슨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며 끝까지 일제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는 활동을 펼쳤지만, 꿈에도 그리던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3월 눈을 감고 말았다.

독립이 성취될 때까지 우리는 자신의 다리로 서야 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 한다.
– 김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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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파스클립: 역사교과서 국정화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들의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 2004년, 한나라당 대표 박 모

2) 타파스 클립: 호갱의 역사

전투기를 산다더니 전투기(錢投機: 돈을 하늘에 던지는 비행기)를 사 왔다던… ‪

수, 2015/11/1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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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위주로 쓰여진 우리의 독립운동사. 그 속에서 독립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여성들은 거의 조명받지 못하고 보조자로 평가절하됐다.

드물게 소개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대개 ‘남성과 동등하게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단순한 측면이 부각됐다. 여성 해방, 남녀가 동등한 조국을 꿈꾼 여성독립운동의 또다른 함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특집을 통해 남성에 가려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그 독자적 의의를 조명하는 한편, 여성 독립운동의 다양한 카테고리를 소개하려 한다.

수, 2015/11/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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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
그리고 독립운동가 ㅡ 권기옥 의사의 치열했던 삶.

월, 2015/11/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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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파스 클립 : 평등의 연금술

“꿈과 노력을 팔팔 끓이다가, 세금을 간에 맞게 넣어 잘 저어주면 흙수저를 금수저로 바꿀 수 있다.”고 <평등의 연금술>에 쓰여있군.

…그러나 부자들에게만 세금특혜를 끼얹는다면? 사교육비 바람에 불이 꺼진다면?

2) 타파스 다큐 <잊혀진 이름, 여성 독립운동가> 1편 권기옥 : 독립을 향한 날갯짓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
그리고 독립운동가 ㅡ 권기옥 열사의 치열했던 삶.

3) 타파스 클립 : 이제는알고싶다 – KBS의 사라진 특종

KBS가 만들었으나, 내보낼 수 없던 그 방송.
간부들이 방송 불가, 원고 삭제를 요구한 그 이야기.
이제는 알고싶다.
각하가 총애한 귀인, 기시 노부스케.
그는 누구인가.

월, 2015/11/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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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이념과 사상을 정립한 역사가이자 혁명가, 단재 신채호.
그 위대한 영웅의 모습 뒤에는 이제껏 그의 부인으로만 알려진 가려진 독립운동가, 박자혜가 있었다.

대한제국의 궁녀에서 간호사가 된 그녀는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근무하던 중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 부상당한 학생과 시민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후 간호사들의 독립운동단체인 “간우회” 조직하고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일제의 조선인 감시 보고서는 그녀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과격하고 언변이 능한 자.
병원 간호사 전원을 동요시킨 주모자.

신채호와의 결혼 후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의거를 비밀리에 돕기도 한 그녀는 신채호 선생의 부인이기 이전에 일제 강점기 애국정신이 투철했던 또 하나의 독립운동가였다.

<박자혜 선생 이력>

1919년 <간우회> 조직 만세시위를 벌임
1920년 베이징에서 독립운동가 신채호와 결혼
1926년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지원
1943년 사망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2009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토, 2015/12/0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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