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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귀 신영복…‘한 평 감옥’에서 ‘더불어숲’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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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귀 신영복…‘한 평 감옥’에서 ‘더불어숲’을 보다

익명 (미확인) | 월, 2016/01/18- 22:00

지난 1월 16일 2년 간의 투병 끝에 향년 75세로 타계한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이 오늘(19일) 성공회대에서 엄수됐다. 빈소가 마련됐던 성공회대에는 지난 사흘 간 지인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뉴스타파는 한 평 감옥 속 20년 세월에서도 끝내 정신의 자유를 지켜내고 수많은 이들에게 ‘더불어숲’으로 대표되는 귀한 가르침을 남긴 고인의 삶을 되돌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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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청년, 하루 아침에 무기수가 되다

신영복 선생은 일제 말엽인 194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밀양에서 유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1959년 부산상고 졸업과 함께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고인과 함께 했던 선후배들은 그를 늘 유쾌하고 더없이 진실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신영복 선생은 대학 입학 이듬해 4.19 혁명을, 다시 1년 뒤 5.16 군사 쿠데타를 경험한 뒤 학생운동의 길을 걷는다. 경제학회 등의 모임에서 후배들의 세미나를 지도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1965년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이 활동은 계속됐다.

▲ 고인의 대학시절

▲ 고인의 대학시절

이후 고인은 현역 장교 신분으로 육군사관학교와 숙명여대 등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그러던 1968년 7월 25일, 그는 돌연 중앙정보부에 체포된다.

그리고 한 달 뒤인 8월 24일, 중앙정보부는 이른바 통일혁명당이라는 대규모 간첩단 검거 사실을 공식 발표한다. 158명의 검거자 명단에는 고인의 이름도 포함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거의 해마다 대규모 조직 사건을 발표해 왔던 터였다. 1964년 인민혁명당 사건, 1967년 동백림 사건 등이 대표적이었다.

고인은 현역 장교 신분인 탓에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이를 파기환송했고 결국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기약없는 수형생활의 시작이었다.

▲ 재판정에 있는 고인의 모습

▲ 재판정에 있는 고인의 모습

20년 감옥 생활도 가두지 못한 ‘자유정신’… “감옥은 나의 대학이었다”

신영복 선생이 남한산성 육군교도소(1969년), 안양교도소(1970년), 대전교도소(1971년), 전주교도소(1986년)을 차례로 거치는 사이 20년이 흘러갔다. 그 가운데 5년은 독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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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 고인을 체포했던 박정희 독재정권도, 이어진 전두환 신군부정권도 종말을 맞았다. 시민과 학생들의 민주화투쟁으로 그렇게 세상이 조금은 나아진 1988년 8월 14일, 고인은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다. 꼭 20년. 스물여덟 청년이 감옥으로 들어가 마흔여덟 중년이 되어서야 다시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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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출소 당시 선생의 표정과 눈빛은 20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20년 만에 그를 만난 지인들이 모두 깜짝 놀랄 만큼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고인의 출소와 함께 세상에 나온 책 한 권으로 설명됐다. 바로 그가 틈 날 때마다 가족들에게 써 보냈던 옥중서한을 후배들이 모아 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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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고인이 20년 동안 감옥에서 수많은 재소자들과 만나며 젊은 지식인으로서의 추상적 관념을 깨뜨려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다양한 삶과 경험을 가진 재소자들과의 대화와 공동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사회와 역사를 새로 이해하게 됐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중심에 둔 고인의 세계관도 이 과정에서 확립됐다. 고인이 평소 입버릇처럼 “감옥은 나의 대학이었다”라고 말했던 이유였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연대… ‘더불어 숲’을 꿈꾸다

출소 이후 선생은 성공회대에 자리를 잡고 왕성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벌였다. 그러면서 ‘머리에서 가슴을 지나 발까지 이르는 지성의 여행’, 즉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낼 실천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의 결과가 함축된 표현이 바로 ‘더불어숲’이었다.

죽순은 뿌리 부분이 마디가 짧고 올라갈수록 마디가 점점 길어집니다. 짧은 마디가 만들어내는 강고한 힘이 대나무의 큰 키를 지탱합니다. 깜깜한 땅속에 있는 죽순의 뿌리는 아예 마디 투성이입니다. 그리고 이 대나무밭의 모든 뿌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홍수 때에도 언덕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함께여서 지킬 수 있는 겁니다.
–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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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고인의 철학이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서도록 한 고리는 바로 글씨와 그림이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렸던 편지의 원본들을 그대로 실은 책 <엽서>(1993)에는 20년 수형생활 동안 자신만의 서체와 화풍을 완성시켜간 과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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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체 또는 연대체로 불리는 고인의 서체는 서민적 형식과 민중적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틀이라고 평가받는 경지에까지 올랐다. 고인은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정신을 지향하는 이들의 요청이라면 어떤 대가도 없이 글씨를 써줬다. 4년 전 첫 방송을 시작할 때부터 사용하고 있는 뉴스타파의 제호 글씨도 고인의 붓끝에서 탄생한 것이다.

▲ 고인이 쓴 뉴스타파 제호

▲ 고인이 쓴 뉴스타파 제호

‘시대의 지성’이자 ‘살아있는 양심’으로까지 불린 쇠귀 신영복 선생의 고단했던 75년 삶은 이렇게 마감됐다. 그의 책과 강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수많은 이들이 벌써부터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며 그가 남긴 가르침을 되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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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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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올해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와 노동자대회 등을 주최해 도로교통법과 집시법 위반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돼 조계사에 은신한 지 25일 만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 6월 체포영장이 발부된 후 민주노총 건물에서 생활하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후 16일 조계사로 피신했다.

한상균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25분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과 함께 은신해 있던 관음전을 나왔다. 대웅전에서 절을 올린 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으로 이동해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한 위원장은 생명평화법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5일 동안 고통과 불편을 감내하여 주신 조계종과 조계사 스님, 신도님들께 감사드린다”며 “무엇보다 이천만 노동자들의 생존이 걸린 노동개악을 막기 위한 활동에 함께 하겠다 하신 조계종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어 “저를 구속시키고 민주노총에 대한 사상 유례없는 탄압을 한다 하더라도 노동개악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왜냐하면 이것은 전 국민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노동자 서민을 다 죽이고 재벌과 한편임을 선언한 반노동 반민생 새누리당 정권을 총선과 대선에서 전 민중과 함께 심판해낼 것”이라며 “민주노총은 노동재앙, 국민대재앙을 불러 올 노동개악을 막기 위해 이천만 노동자의 생존을 걸고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총파업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16일 새누리당이 발의한 ‘노동 5법’을 저지하기 위해 총파업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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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역개발 사업을 통해 본인 소유의 부동산 가치를 끌어올린 것뿐만 아니라 후원회장이나 종친의 부동산에도 영향을 준 사례가 드러났다. 산업 단지 부지에 후원회장의 땅이 포함되거나 연구 단지 개발 예정지 인근에 종친들의 땅이 분포돼 있는 경우가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1. 후원회장의 수상한 섬…시장 개발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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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방선거 당시, 거제 시장에 출마한 권민호 후보의 후원회장은 김00 씨였다. 김 씨는 권민호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고 4개월 뒤, 거제 사곡만에 있는 사두섬을 매입했다. 김 씨가 산 땅 면적은 2만529m2로 당시 매입가격은 9억 원이었다. 김 씨는 “내 땅을 담보로 8억 원을 대출 받아 샀다”면서 “그물 야적장 목적으로 섬을 샀으나, 허가가 나지 않아 운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권 시장 당선 직후 매입자금의 대부분을 융자를 통해 마련해서 땅을 샀다는 점이나 매입 이후 땅을 방치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섬 매입 목적이 투기가 아니었느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

권 시장이 산업단지 예정지를 당초 덕곡에서 사곡으로 변경한 과정도 의문이다. 타당성 조사를 통해 애초 거제시 덕곡으로 선정된 산업단지를 권 시장이 갑작스럽게 사곡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산업단지 조성은 권민호 시장의 2010년 지방선거의 대표 공약이었다. 권 시장은 거제시장에 당선 되자, 6억원을 들여 산업단지 입지선정 타당성 조사를 착수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6월, 거제시는 용역 보고서를 통해 “4개 입후보지 중 덕곡을 최종 입지로 선정한다”며 “환경, 기술, 경제적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측면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 시장은 이 같은 결정을 번복했다. 권 시장은 2013년 1월, 기자회견을 열고 “덕곡은 실수요자 접촉과 주민 보상 협의의 어려움이 있다”며 “사곡을 산업단지 최적지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변경에 당시 거제시의원들은 반발했다. 한기수 거제시의원은 “세금을 들여 만든 용역 결과를 무시한 처사”라고 항의했지만, 권 시장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거제시 국가산업단지 사업추진단은 사곡 단지 토지보상비로 3700여억 원을 책정했다. 토지 보상 대상지는 234만 7천여m2로, 평균 토지보상비는 m2당 15만 7천 원에 이른다. 이 금액은 2010년 김씨가 사두섬 매입 당시 구입한 금액, m2당 4만3천여 원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가격이다. 이대로 토지보상이 진행된다면 김 씨는 9억 원에 매입한 땅을 30억 이상 받고 되팔 수 있게 된다. 6년만에 3배 이상의 시세 차익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현재 거제시는 국토교통부에 사곡 산업단지 건설 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거제시는 올해 안으로 국토교통부의 승인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는 특혜 논란에 대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며 “후원회장 당시에는 산업단지 공약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민호 시장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그렇게 할 일이 없냐”는 말로 답변을 거부했다.

2. 각별한 애정… 문중 땅 인근에 연구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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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영 수원시장은 지난 2014년 4월, 기자회견을 열어 성균관대 수원캠퍼스내 식물원에 과학 연구 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1조2천억 원을 투입해 식물원에 35만평 규모의 연구 개발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염 시장은 “1만6천여개의 일자리와 연간 1조6천여억 원의 경제효과가 창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는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으로 이같은 계획이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거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문제는 개발 부지 500미터 인근에 염 시장 종친들의 땅 2만7천여m2가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염시장 종친들의 땅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으며, 땅 위로 송전선이 지나가고 있다. 현재로선 가치가 거의 없는 땅이다.

하지만 과학 단지 조성이 완료되면, 개발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과학 단지 조성이 계획대로 된다면, 개발제한구역 해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서 “주민들도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염 시장은 종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해왔다. 자서전 <염태영의 아름다운 약속>을 보면, 염 시장은 문중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창시절을 보낸 것으로 나와 있다. 그는 책에서 “장학금을 받아들고 나는 다짐했다, 세상에 좋은 일로 꼭 환원하리라, 이 장학금보다 몇 배로 되돌려 주리라”고 썼다. 또 그는 2010년 수원시장에 당선되자, 자신의 종친 할아버지를 시장 취임식에 초대하기도 했다.

염태영 시장 측은 종친 땅 논란에 대해 “송전탑 이전 없이는 지가 변동은 없을 것”이라며 “연구 단지 조성은 단기 계획이 아닌 장기 계획으로 준비한 것으로 수원시의 과학단지 조성과 종친들의 부동산은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취재: 강민수 한상진
촬영: 김수영
편집: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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