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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4편 : 항일의 불꽃, 박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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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4편 : 항일의 불꽃, 박차정

익명 (미확인) | 금, 2016/01/08- 18:47

동래일신여학교 재학 당시 차별적인 식민 교육에 항거해 동맹 휴학을 주도하는가 하면 항일여성운동의 전국적인 통일기관인 ‘근우회’에서 활동하며 개혁적인 여성해방과 민족해방의 길을 모색했던 박차정. 서울지역 11개 여학교를 비밀리에 조직해 1930년 1월 대규모 학생시위를 주도한 박차정은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한 박차정은 1930년 의열단에 합류했고, 이를 이끌던 독립운동의 거두 김원봉과 결혼해 사랑과 혁명의 길을 함께 걷는다. 1935년, 의열단 등 좌우 독립운동단체 5개를 통합한 조선민족혁명당이 창당하자 박차정은 남경조선부녀회를 결성해 조선 여성들이 총단결하여 민족독립과 여성해방을 쟁취할 것을 독려한다. 이는 박차정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이념이었다.

우리 조선 부녀를 현재 봉건적 노예제도 하에
속박하고 있는 것도 일본 제국주의이고
또 우리를 민족적으로 박해하고 있는 것도 일본제국주의이다.
우리들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지 않는다면
우리 부녀는 봉건제도의 속박 식민지적 박해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남경조선부녀회 선언문 中-

1938년 조선의용대 창설 후 부녀복무단 단장으로 활약하며 항일투쟁의 선봉에 선 박차정은 1939년 2월, 곤륜산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1944년 34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자주독립과 민주혁명을 이룬 통일조국이라는 박차정의 못다 이룬 꿈은, 그러나 김원봉 또한 보지 못했다. 연합국의 힘으로 해방된 조국은 미군정의 주도권 하에 있었고 소용돌이치는 해방정국 안에서 독립운동가 김원봉은 친일경찰 노덕술에 체포돼 참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한다. 역사의 모순이 빚어낸 참상이었다.

분단과 이념의 대립 속에서 지워진 역사. 박차정은 사후 50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고, 김원봉은 광복 70주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남과 북 그 어느 곳에서도 독립운동가로 살았던 삶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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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지지가 없었다면, 매년 이렇게 많은 성과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국제앰네스티가 전 세계 사람들과 지역사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의 참여와 결의, 그리고 끊임없는 지지 덕분이었습니다. 올 상반기도 여러분의 도움으로 다음과 같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WORKING FOR INDIVIDUALS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

1. 감비아의 야당 지도자 석방되다

1월 30일, 3년이 넘는 앰네스티 캠페인 활동 끝에 감비아의 야당 정치가 아마두 산네흐(Amadou Sanneh)와 말랑 파티(Malang Fatty), 알하기 삼부 파티(Alhagie Sambou Fatty) 형제가 마침내 석방되었다. 아마두 산네흐는 석방 후 이틀 만에 새로운 감비아 정부의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야흐야 자메흐(Yahya Jammeh) 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1월 말 사임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감비아 정부는 마침내 활로를 찾게 됐다.

국제앰네스티의 활동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앰네스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수감된 사람들 모두가 앰네스티의 활동에 매우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마두 산네흐

아마두 산네흐, 국제앰네스티 양심수이였고 재정경제부 장관에 취임했다.

2. 이란에서 사형을 면한 사람들

살라르 샤디자디와 하미드 아흐마디

트위터와 편지를 통해서 수천 명이 이란 정부에 호소한 덕분에 최소 사형수 2명이 목숨을 구했다. 2월 15일, 앰네스티 지지자들이 이란 정부를 압박한 결과 하미드 아흐마디(Hamid Ahmadi)가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취소되었다. 4월 25일에는 15세에 불과한 나이에 사형을 선고받았던 살라르 샤디자디(Salar Shadizadi)가 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전세계 지지자들이 신속하게 행동에 나선 덕분에 살라르는 수 차례 사형이 집행될 위기에서 벗어났고, 결국 10년간의 수감 생활 끝에 4월 석방될 수 있었다.

3. 우즈베키스탄의 최장기수 언론인 석방되다

무하마드 베크자노프와 딸

2월 22일, 우즈베키스탄의 무하마드 베크자노프(Muhammad Bekzhanov)가 17년만에 마침내 석방되었다. 그는 세계 언론인 중에서는 최장기 복역수로, 1999년 수감되어 ‘반국가적’ 범죄 혐의를 자백시키려는 정부에 고문당했다. 앰네스티의 2015년 편지쓰기 캠페인인 ‘Write for Rights’과 이후의 캠페인을 통해 전세계 수만 명이 편지로 무하마드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압박 덕분에, 마침내 무하마드는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4. 말레이시아 사형수, 종신형으로 감형되다

샤흐룰 가족들이 그가 수감된 교도소 앞에 모였다.

전 세계 수천 명이 편지와 엽서를 통해 샤흐룰 이자니 빈 수파르만(Shahrul Izani bin Suparman)의 사형 선고를 취소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이 호소는 성과를 거뒀다. 2월 27일, 샤흐룰의 사형 선고는 종신형으로 대체되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뉴질랜드에서 나이지리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온 수천 통의 편지와 엽서 덕분에 샤흐룰의 감형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11년간 독방 구금 끝에 일반 감방으로 다시 이감시키기도 했다. 샤흐룰은 2030년 석방될 예정이지만, 그의 선처 호소가 받아들여질 경우 석방 시기는 2021년까지 앞당겨질 수 있다. 전 세계 앰네스티 지지자들의 노력 덕분에 가족들은 머지않아 샤흐룰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5. 첼시 매닝 석방되다

징역 3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던 첼시 매닝은 오바마 전 정부가 1월 갑작스레 석방을 결정하면서 5월 17일 풀려났다. 첼시는 기밀정보 유출 혐의로 구금되었는데, 그렇게 공개된 정보에는 미군이 전쟁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자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앰네스티는 정의와 자유, 진실, 존엄이 인정되지 않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그런 앰네스티의 활동을 지지합니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존엄을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투명성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첼시 매닝, 2015년 Write for Rights 캠페인을 통해 전세계 2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첼시의 석방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6. 여러분의 메시지가 인생을 바꾸다

전 세계 앰네스티 지지자들은 2016년 ‘Write for Rights’를 통해 전에 없이 훌륭한 결과를 보여줬다. 편지와 이메일, 트윗 등을 통해 총 4,660,774건이라는 놀라운 수의 참여를 기록한 것이다.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 덕분에 캠페인 사례의 주인공들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찾아올 수 있었다.

국제앰네스티에서 전달해 주는 편지들을 보면 절로 눈물이 나요. 나와 내 아버지, 우리 가족을 믿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게 될 때마다 더욱 강해지는 기분입니다.

주헤르 토흐티, 중국에 수감된 교수 일함 토흐티의 딸

HOLDING BUSINESSES TO ACCOUNT
기업의 책무성 강화 활동

7. 팜유 농장 인권침해에 대응한 기업들

인도네시아의 대형 팜유 농장에서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는 국제앰네스티의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팜유 유통업체인 윌마르(Wilmar)는 보고서에서 밝혀진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2개월 행동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윌마르에서 팜유를 구입하는 유니레버(Unilever), 피앤지(P&G) 등의 기업들은 이전보다 더욱 투명하게 생산활동에 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관련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앰네스티가 제기한 우려사항을 윌마르에 직접 전달했다고도 밝혔다. 윌마르에서 팜유를 구입하는 벤앤제리(Ben&Jerry’s) 아이스크림은 앰네스티 지지자들의 항의 트윗이 쇄도하자, 결국 자사 제품의 원료에서 팜유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자사에서 구입하는 팜유가 노동 착취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

8. 대기업, 코발트 채굴 관련 항의에 귀를 기울이다

벨기에의 어린이들부터 캐나다,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등의 지지자들까지, 전세계 수만 명이 대형 전자업체들을 상대로 자사의 휴대폰에 아동노동 착취의 산물이 포함되었는지 확인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편지와 트윗, 탄원서명, 거리 시위를 통해 애플(Apple)과 삼성, 화웨이(Hwawei) 등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코발트 공급망의 인권침해 여부를 확인하라고 촉구했다. 가장 먼저 애플이 국제기준에 따라 자사의 코발트 제련소를 모두 공개했다. 소니가 그 뒤를 따라, 자사의 코발트 공급망에 대한 상세정보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항의 메시지가 폭주하자 난처해진 삼성과 화웨이는 메시지 작성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답변을 보냈다. 삼성은 앰네스티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 애플 스토어 앞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DOING GROUNDBREAKING RESEARCH
획기적인 연구 조사 활동

9. 디지털 분석으로 이집트의 거짓말 밝혀내다

4월, 국제앰네스티 조사 결과 이집트 정부군 소속 군인들이 비무장 상태였던 포로 최소 7명을 불법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살해된 포로 중에는 17세 소년도 포함되어 있었다. 앰네스티는 사건 당시 촬영한 영상을 분석하고, 이집트 군이 정식 공개한 사진 및 유투브 영상과 비교한 후, 관련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결과, 선제 발포한 ‘테러리스트’를 사살한 것이라는 군의 주장과는 정반대임을 밝혀냈다.

10. 디지털 보도 기술로 인권침해 현실을 알리다

1월, 앰네스티는 시리아의 사이드나야 교도소를 쌍방향 디지털 다큐멘터리로 구현하면서 선보인 놀라운 디지털 보도기술로 영광스러운 피버디-페이스북상을 수상했다. 해당 사이트는 사이드나야(Saydnaya)에서 탈출한 전 수감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용자들은 이를 통해 수백 명이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는 군사 교도소 사이드나야의 악명 높은 실체를 처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앰네스티가 시리아에 있는 사이드나야 군사 교도소를 웹 플렛폼에서 구현했다.

CAMPAIGNING FOR SYSTEMIC CHANGE
제도적 개선을 위한 캠페인 활동

11. 아일랜드, 낙태 비범죄화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다

전 세계 수만 명이 앰네스티의 2015년 ‘그녀는 범죄자가 아니다(She is #notacriminal)’ 캠페인에 참여해, 낙태 수술을 하거나 받는 것을 범죄화해서는 안 된다고 아일랜드 정부에 촉구했다. 결국 4월, 일반 시민 99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구성하는 아일랜드 시민의회에서 필요할 경우 합법적으로 낙태를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데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던졌다. 시민의회의 이러한 낙태 관련법 개정 권고는 국회로 전달될 예정이다. 앰네스티 아일랜드지부가 최근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아일랜드 국민의 80% 이상이 낙태금지법 개정을 논의할 때는 여성의 건강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의회의 표결 결과는 이러한 여론을 반영한 것이었다.

아일랜드의 낙태금지법안에 반대하는 퍼포먼스

12. 대만 대법원, 결혼평등 인정하다

2017년 5월, 대만에서 동성결혼을 위해 시민들이 모였다.

지난 5월 대만 대법원에서 결혼평등을 인정한다고 판결하면서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국가가 될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전 세계 40개국의 앰네스티 지지자들은 대만 정부에 [“예” 라고 말해주세요(say yes)]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앰네스티 대만지부와 현지 파트너 단체들이 주최한 대규모 집회를 통해 역사적인 발걸음을 떼게 될 대만 정부의 결정을 전세계인들이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만 정부는 2년 안에 이 판결을 법제화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앰네스티는 올 여름 관련 캠페인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해, 더 빠른 시일 안에 합법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월, 2017/08/1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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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혹은 포르노

지난 1월, KT가 제공하는 올레TV의 VOD 서비스에서 “성폭행 영화” 카테고리에 ‘위안부’ 소재의 영화 <귀향>이 검색결과로 나타나서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사람들의 이용행태에 따라 자동완성 되어 제공되는 알고리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만큼 “성폭행 영화”를 많은 사용자가 검색했다는 뜻이 되고 그 결과값으로 ‘위안부’ 소재의 영화가 서비스된 것은 어쨌든 결과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평생의 상처와 고통이 누군가에는 강간 포르노로 소비된다는 의미이며, 또는 어떤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의 방점을 오로지 ‘강간’에만 두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모순적인 것은, <귀향>이 ‘위안부’ 문제에 분노하는 7만 5천명의 성금으로 제작비의 절반을 댔으며, 영화사는 수익금을 피해자에게 기부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의’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이 소비되는 한 행태는 ‘선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왜 그런걸까.

영화 <귀향>은 개봉 당시에도 피해 상황을 불필요하게 구체적으로 재현한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가해자의 잔인함과 사건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강간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가? 오히려 피해 사실을 볼거리로 전락시키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게 된 셈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선한 의도가 방법과 결과의 선함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강간 장면의 과도한 리얼리티와 강조된 가학성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우려까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눈길>이 선택한 방식은 현명하다. <눈길>과 <귀향>의 차이는 하민지의 글 「위안부 할머니를 보는 두 가지 시선;영화 <귀향>과 <눈길>이 피해를 다루는 방식에 잘 정리되어 있다)

영화 <눈길> 스틸 이미지

영화 <눈길>은 성폭력 피해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 호평을 얻고 있다

영화 <귀향>에서 발생한 이런 오류는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가장 일반적인 관점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조선의 순결한 소녀들을 짓밟은 짐승 같은 일본놈들’의 프레임. 이 이미지 속에서 피해자는 항상 무고하고 무력한 어린 여자로 타자화 되어있으며, 분노의 메커니즘은 오로지 민족주의의 틀 안에서만 작동한다. 이런 류의 분노는 고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에서조차 흔히 볼 수 있는 수준 낮은 분노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300> 같은) ‘우리가 외적으로부터 우리 땅을 지키지 못하면 자식들은 노예로 끌려가고 아내와 딸은 강간 당할 것이다’라는 공포와 자기협박의 기제. 여기서 여성은 남성적 전쟁의 약탈과 수탈의 대상이자 전리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우,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빠지게 되는 함정은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 당한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의감에 도취되기 쉽다는 점이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의 땔감으로써 ‘위안부’ 문제를 도구로써 필요로 할 뿐인 것은 아닌지 자문(自問)해야 한다.

 

한일 문제로서의 ‘위안부’가 아닌
전쟁 폭력과 노예제로서의 인권 문제로 다뤄야 하는 중요한 이유

결국 우리는 이것을 민족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인권 문제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논해야 한다. 여성들이 전쟁 중 일본 군대에 조직적으로 인신매매 되어 노예로서 성적으로 착취 당한 사건. 이것을 한국과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바라봐야한다. 이 관점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한국인만 분노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분노하는 천인공노할 범죄가 된다. 이를테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분노하고 연대하는 것이 유태인만이 아닌 것처럼. 이것이 미국과 독일 등 일본군의 범죄와 관련이 없는 해외의 장소에도 소녀상을 세울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더욱 그럴 수 있는 근거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강제동원한 여성은 20만명에 달하며 피해자는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동티모르, 베트남, 태국, 버마, 미국인까지 있다는 점도 있다.

미 하원 에니 팔레오마베가 의원

미국 하원은 2007년 채택했던 결의안에서 “잔혹성과 규모 면에서 전례가 없는 20세기 최대규모의 인신매매”라고 규탄했다.

 

다큐멘터리 <어폴로지>는 한국의 길원옥, 중국의 차오,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까지 3개국의 피해 생존자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일본 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본을 덮쳤을 때 해당 소식을 전하는 뉴스 기사의 포털 댓글란에는 정말 많이 순화해서 ‘천벌 받았다’라든가 ‘고소하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베스트 추천을 받았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배 당시의 과거사를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고, 일본 사람들이 죽어도 상관 없다는 논리의 글이 다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런 악플을 단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자 중에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생존 할머니도 있다는 점이다.

전쟁 때 ‘위안부’로 끌려갔는데,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다 싶어 기차에서 뛰어내린 적도 있어. 하지만 쓰나미로 엄청나게 떠내려갔을 때는 정말 슬펐어. 인감도장도, 아무것도 없잖아.

송신도 할머니

“전쟁도 쓰나미도 삶을 빼앗지는 못해”

송신도 할머니는 1922년 충청남도 출생으로, 열여섯살때인 1938년 대전에서 중국 우창으로 끌려갔다. 1946년 이후에는 일본 미야기현에서 살았다. 동일본 대지진때 쓰나미로 집이 쓸려 나가면서 모든 것을 잃고 간신히 애견 ‘마리코’만 데리고 목숨을 구했다. 송신도 할머니는 재일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중 유일하게 재판을 통해 원고로 싸운 적도 있다.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식민지 전쟁 시대를 살아낸 여성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엮은 책

우리나라로 돌아가려 해도 도망칠 수가 없었어. 기차도 망가졌지, 중국말도 일본말도 모르지. 도중에 총에 맞으면 끝장인걸, 뭘.

일본 패망 당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상태였고 여전히 국가는 그들을 지켜줄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송신도 할머니처럼, 생존자들은 중국에 남거나 살기 위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 그냥 거기에 남아 살게 된 경우도 많다. 이 생존자들은 (놀랍지 않게도) 한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이나 관심도 받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타국에서 남은 평생을 살아왔다. 이런 사람들을 망각하고 ‘일본에 사는 사람 = 일본인 = 사과하지 않으니 죽어도 된다’ 라는 논리는 얼마나 척박하고 어리석으며 또한 저열한가.

 

군인은 죽으면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조선 계집은 죽었다 해도 나라에 돌아갈 수 없었어.

 

2016년 4월에 구마모토현에 강진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생존자인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는 우리는 일본 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구마모토에 위로금을 보냈다. 고작 인터넷 악플을 다는 것으로 ‘애국’한다고 믿는 사람들에 굳이 비하지 않아도 그 높은 마음을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70년 전의 과거사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피해자가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인권 문제라는 관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전쟁 중 여성이 노예로 강제동원되어 성착취 당하는 역사는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과 2010년대 IS에 의해 계속해r서 재발하고 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강간과 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시 성폭력은 여성을 남성에게 제공되는 연료처럼 소모해왔다. 한국 할머니라서가 아니라, 불쌍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도구 취급을 받고 권리와 존엄을 침해 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가해자들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이것은 인권의 문제다. 단 한순간도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다.

목, 2017/03/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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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평화 필드워크 소감문

수원 KYC 문화재지킴이
영복여자고등학교 1학년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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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
된 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덕분에 광화문 광장에 들러 사진으로만 보던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장군의 동상을볼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웅장하고 기품있는 모습에 오늘 할 체험이 기대되었고, 광장 여기저기에 걸려있는 태극기들에 광복 70주년의 감동이 밀려 왔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세월호 합동 분양소가 있어 우리 일행은 국화꽃으로 추모하였다.
일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교복을 입은 모습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매주 수요일이면 블라인드를 내린다는 일본 대사관은 오늘도 어김없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앞 평화로에는 폭염 속에서도 학생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대사관을 향해 있는 힘껏 외치고 있었다. “할머니, 힘내세요!” “일본은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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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뿐 만 아니라 방학을 맞아 많은 학생들이 미리 와서 정성스레 만든 플랜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나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것 같아 할머니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겨울 방학에는 반 친구들과 함께 수요집회에 동참해보고 싶다.

버스로 서대문 형무소로 이동하던 중 창밖에 독립문이 보여 신기한 마음에 “독립문이다!” 하고 외쳤는데, 식사 후 생각지도 않게 그곳에 들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독립문이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는데, 파리의 개선문을 본 따 독립협회가 국민 모금으로 지은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문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독립문 옆에 독립협회의 큰 축이신 서재필선생님의 동상이 있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서대문 형무소였다. 서대문 형무소는 1908년에 건립되어
1987년까지 실제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이 곳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모진 고문을 받다 돌아가셨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팠다.
민족 저항실에서 그 사진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한 분 한 분 당당하고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내가 그 분들의 후손인 것이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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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을 나와 판옵티콘 구조의 11옥사에 들어섰다. 내 방만큼 좁은 공간에서 적게는 7명, 많게는 30명이 수감생활을 함께 했다고 한다. 비인간적인 일제의 탄압에 화가 치밀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곳은 사형장이었다. 이 곳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 분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신념을 꺾지 않으신 그 분들의 숭고한 죽음 앞에 눈물이 난다. 다함께 추모비에서 추모를 하며 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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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현재는 경찰청 인권센터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고문실인 5층은 긴창문으로 되어 있고, 나선형 계단과 층수를 알 수 없도록 만든 구조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무섭고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날은 덥고, 모처럼 맞이한 방학에 이렇게 뜻 깊은 곳들을 방문하고 참여하게 되어 뿌듯한 마음과 더불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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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5/08/2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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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과 한국여성재단이 함께하는
<2017년 공간문화개선사업>

– 1차 선정 결과 발표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의 공간’을 지원하는 <2017년 공간문화개선사업> 1차 선정 단체(시설)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2017년 공간문화개선사업>에 보내주신 관심과 참여 감사드리며, 1차 선정 단체(시설)에게는 2차 심사 준비와 관련하여 별도로 안내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문의] 지원사업팀 김수현 과장(Tel. 02-336-6385)

 

———————————– 아 래 ———————————–

 

[1차 선정 단체(시설) 명단]

※ 1차 서류심사에 선정된 단체(시설) 중 2차 서류심사와 현장심사를 통해 최종 지원 단체(시설)이 선정됩니다.

NO. 단체(시설) 지역
1 경주여성노동자회 경북
2 기장열린상담소 부산
3 대전자모원 대전
4 동대전장애인성폭력상담소 대전
5 목포YWCA 전남
6 생각나무BB센터 서울
7 수원일하는여성회 경기
8 수지의집 대구
9 에벤에셀모자원 충남
10 이산모자원 전북
11 인천여성단체협의회(부설 가정.성폭력상담소) 인천
12 인천한부모가족지원센터 인천
13 전주푸른여자단기청소년쉼터 전북
14 평택성폭력상담소 경기
15 한국여성의전화 서울

 

월, 2017/04/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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