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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조국이 버린 사람들 (20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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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조국이 버린 사람들 (2015.12.29)

익명 (미확인) | 월, 2016/01/04- 17:02

http://newstapa.org/30959

 

박정희와 김기춘, 그리고 재일동포 간첩조작 피해자들

우리는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잊은 지 오래다. 그러나 여기 그 시대를 화석처럼 몸에 새긴 채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재일동포 간첩 조작 피해자들이다. 조국을 알고 싶어 한국에 유학 온 재일동포 유학생들은 박정희 정권에게는 잠재적인 간첩일 뿐이었다. 그들은 중앙정보부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김기춘, 그는 검찰총장, 국회의원, 장관을 거쳐 정권의 사실상 2인자인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역임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주류다. 그런데 그의 출세 가도를 탄탄하게 해주었던 초기 경력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라는 무시무시한 직책이 있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35살이던 74년부터 79년까지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숱한 간첩사건을 수사했다. 이 프로그램은 그가 그 시절 수사했던 사건들 중 최대 규모의 간첩단 사건인 11.22 사건에 대한 40년 만의 회고록이다.

대한뉴스 자료에는 새파랗게 젊은 김기춘 국장이 ‘학원침투간첩단사건’을 발표하는 모습이 나온다.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노출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는 대한뉴스가 김기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꽤 오래 들려준다. 그 김기춘의 목소리 위에 11명의 재일동포 학생들 사진이 나열된다. 김기춘 씨는 국회의원 시절이던 200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권 침해를 하는 수사를 한 적 없다. 내가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내가 다룬 사건은 과거사 진상규명 대상이 아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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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40년 만에 김기춘 씨가 간첩으로 발표했던 주인공들을 찾아봤다. 그들은 대부분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하나같이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당한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는 것을 인정받았다. 피해자들의 육체와 정신에는 그 때 고문이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한 쪽에서는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들에 무죄가 내려지고 다른 한 쪽에서는 고문 수사의 책임자가 정권의 2인자로 승승장구하는 모순적 상황이 계속돼 온 것이다.

우리는 운명처럼 김기춘 씨를 만나게 되었다. 마치 수십 년 전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울부짖던 영혼들이 그의 등을 떠밀어 우리 카메라 앞에 앉힌 것처럼.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그는 ‘법원이 한 일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쏟아지는 질문에 무엇이건 반사적으로 ‘나는 아니다’고 답했다. 반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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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를 몸에 새긴 화석, 김승효

김승효. 그는 40년 전 역사에서 받은 피해를 고스란히 몸에 새긴 채 살아오다 화석처럼 발견됐다. 그는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망가졌다. 81년 출소해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정신이상이었다. 가족들은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뉴스타파 카메라 앞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가슴 아프다고. 너무 가슴 아파 죽고 싶었다고. 박정희가 모든 것을 조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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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간첩사건 연루자는 100여 명에 이르는데 그중 30명이 재심을 신청했다. 그중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은 21명이다. 여전히 많은 재일동포 피해자들은 한국을 두려워하고 한국 법을 믿지 못한다. 돌아가서 죽은 사람도 많고, 이름을 바꾸고 숨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우리 사회가 고문 조작의 주역들을 처벌하지 않는 한 이 땅에서 유사한 조작은 계속될 것이다. 역사의 가해자들을 낱낱이 들춰내고, 또렷이 기억하지 않는 한 그들의 대한민국은 계속될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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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보위사령부에서 간첩으로 직파됐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 홍강철씨가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서울 고법 형사4부(최재형 부장판사)는 2월 19일 핵심 증거들의 증거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신빙성도 없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이로써 유우성 씨 사건에 이어 두번째로 탈북자에 대한 간첩조작이 법원에 의해 사실상 공인됐습니다.  

홍 씨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는 이번 사건도 합신센터에서 허위자백을 통해 만들어진 간첩조작이라는 것이 판결을 통해 명백하게 밝혀졌다고 평가했습니다. 홍 씨는 앞으로 합신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독방조사를 없애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습니다.

홍강철 씨는 북한에서 탈북브로커로 일하다 2013년 9월 한국에 들어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은 끝에 북한 보위사령부의 지령을 받고 들어온 간첩이라고 자백했습니다. 국정원은 유우성 씨 간첩증거조작 의혹으로 검찰이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던  2014년 3월 10일 홍 씨 사건을 전격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종편 채널 등 보수언론은 ‘증거조작 사건에도 불구하고 탈북자 간첩은 있고 국정원은 필요하다’고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러나 보도를 본 민들레(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 변호인단이 홍강철 씨를 면회하고 국정원 증거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이 사건도 조작됐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홍 씨는 변호인단에 “국정원이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다주고 돈과 집, 직장도 주겠다며 약속해서 허위자백을 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뉴스타파는 홍강철 씨 사건을 지난 2년 간 취재해왔습니다. 뉴스타파가 만든 다큐멘터리 ‘열네번째 자백‘을 보면 국정원이 벌인 간첩조작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열네번째 자백이’란 홍 씨가 합동신문센터에서 ‘나는 간첩’이라고 자백한 열 네번째 사람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아직 많은 탈북자 간첩조작 피해자들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금, 2016/02/1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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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조사로 청와대 공작정치 실체 규명해야 

공작정치는 민주공화국, 삼권분립, 법치주의 등 헌법원리 훼손한 것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죄, 국정원법 위반 수사해야 

 

20161227_토론회_청와대공작정치대응방안모색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통해 박근혜 정권이 청와대 수석회의를 통해 정권에 비판적인 이들에 대한 탄압을 사전에 기획하고 보복을 진행해왔다는 것이 하나 둘 확인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개혁시민연대, 예술인소셜유니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언론∙문화예술∙노동∙시민단체들은 박주민의원(더불어민주당), 이재정의원(더불어민주당), 김성식의원(국민의당), 추혜선의원(정의당), 민중연합당 등과 함께 오늘(12/27, 화) 오전 10시「청와대 공작정치 사례를 통해 본 국정농단,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청와대 공작정치 피해사례 발표 및 대응방안 모색 」토론회를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의 사회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개최했다.

 

발제를 맡은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은 “국정원이나 경찰 등의 공안기관에 의한 사찰(査察)이나 공작(工作)은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적 반대자나 비판자를 탄압하는 독재정치 하의 비정상적인 행정의 전형으로 상징화 되어 있는데, 박근혜 정권에서는 그러한 사찰과 공작을 국정의 사령탑인 청와대가 주도했다”고 비판했다. 김 부회장은 공작정치의 대상이 된 인물이나 대상도 다양하다고 소개했다. 

대통령을 풍자하거나 세월호 사건을 다룬 영화 등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탄압을 지시하고, 문화계 좌파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문화행정의 수혜대상에서 배제시키고, 전교조, 민변 등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에 대해서는 법외노조화, 변호사 개인 변론활동의 문제점을 파헤쳐 법무부와 검찰을 통해 수사나 징계를 추진하도록 하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고 밝혔다. 또한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의 고위공직자를 사찰하고 통제되지 않는 권력과 공직자에 대해서는 사생활과 비리를 통해 길들이기도 시도하고, 비판 언론이나 인터넷 비판 글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세무조사 등의 탄압과 검열을 하였다고 소개했다. 

 

김 부회장은 공작정치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헌법 원리인 민주공화국과 삼권분립, 법치행정의 원리를 훼손하는 것이고,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의 범죄행위라고 비판하고 수사를 촉구했다. 또한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국정원과 경찰이 팀을 짜서 고위공직자, 지방자치단체장, 정치인, 종교계, 언론 등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을 하도록 지시한 것은 국정원법에서 정한 업무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국정원법 위반이라며, 김기춘 전 실장 등에 대해서 국정원법 위반에 대한 교사죄 등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공작정치 척결하기 위해서는 행정조직 내부의 충성문화를 척결하고, 행정조직간의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통한 합리적 행정문화가 정착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의 지방자치화를 전제로 검사장 직선제 등 검찰 고위간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제도를 도입하고, 경찰도 지금처럼 정보, 경비, 보안 등 공안부분이 지나치게 비대한 형태를 고리사채, 불법다단계, 불법경비업체 등 민생침해사범 등에 대한 단속과 예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화 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KBS, MBC 등 정권의 정치적 외압에 취약한 공영방송의 이사구성 방식의 개혁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부회장은 무엇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정조사에 고 김영한 업무일지를 분석한 언론노조나 민변 변호사들을 참고인으로 출석시켜, 고 김영한 수석의 업무일지에 기재된 내용이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구체적인 사실과 연결시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해산, 판사의 재임용 인사, 정치적 재판 등에 청와대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려 했고, 실제로 사법작용이 이러한 공작정치에 의해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수사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61227_토론회_청와대공작정치대응방안모색 (2)

 

이날 토론회에서는 언론계, 문화예술계, 법조계 및 민변, 전교조, 세월호, 통합진보당 해산, 민간인 사찰 등에 대한 정치공작 사례발표도 이어졌다.

 

김동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KBS 이사회 사장 임명 개입, 비선실세 의혹 보도를 한 시시저널/일요신문에 대한 지시사항, 세계일보 정윤회 문건 등 보도 관련 지시사항,  YTN 해고자 동향 파악 지시 등 업무일지에 드러난 언론통제 관련 부분을 소개하며 이는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 뿐 아니라 방송법에서 보장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장지연 문화의 문제들 공동좌장(PD)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비호, 홍성담 화백에 대한 사찰 및 광주비엔날레 개입, 다이빙벨 상영 방해 및 부산국제영화제 감사, 블랙리스트 작성 및 검열 지시 등의 사례를 소개하고, 박근혜 정권이 겉으로는 문화융성을 내세우면서도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상영, 공연, 전시 등을 방해하고 각종 지원사업과 모태펀드 심사에서 배제하여 창작의 기반을 무너뜨리려 했다고 비판했다. 

 

송아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대법관 임명 및 헌법재판소 결정 개입, 민변 회원에 대한 징계 추진, 민변 회원의 수임내역 및 자금 사찰, 민변 집행부 및 주요 시국사건 변호인에 대한 사찰 등 법조계, 민변 등을 통제하려 한 내용을 소개하고,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 행사 시도는 법치주의·민주주의적 기본질서·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반(反)헌법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2014년 6월 15일(일)부터 2014년 12월 1일(월)까지 170일 중에서 43일, 4일에 한 번 꼴로 전교조 동향 점검 및 탄압 논의를 진행했으며, 주 내용은 전교조 ‘법외노조화’와 탄압,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보교육감 옥죄기 등이라고 소개했다. 
  
김진이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전 조사관은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 ‘세월호’ 언급은 83일, 유병언 관련 24일, 산케이 및 7시간 관련 20여일에 걸쳐 이루어졌고, 구체적 내용은 세월호 일반적 내용과 특별법, 유가족과 피해자, 7시간 및 산케이 관련, 유병언 수사 관련, 다이빙벨 관련, 감사원 감사(세월호 관련)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김진이 전 조사관은 최근에 속속 나오고 있는 의혹과 증언,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 등을 바탕으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재구성 및 진상규명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재연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은 업무일지가 작성된 7개월 동안 통합진보당 관련 언급은 45군데에 달하며,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헌법재판소 사이에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한 커넥션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헌법재판소가 청와대 권력의 아바타처럼 움직였다는 충격적인 정황들은 수사를 통해 그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야 하고, 관련 인물들을 빠짐없이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정책활동가는 사이버 검열과 사찰, 종교계 사찰,  민간인 사찰, 국가정보원 관련 등을 소개했다. 장 정책활동가는 정권이 사이버 공간에서 국민들의 표현물을 억압하기 위해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명박 정부 이후로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으나 그간 아무런 개선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국민 표현의 자유 증진과 정부 비판에 대한 보장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적폐 해소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발제와 사례발표에 이어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해 대응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토론회 개요

 

○ 일시 및 장소 : 2016년 12월 27일(화), 오전10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

 
○ 주최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개혁시민연대, 예술인소셜유니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박주민의원(더불어민주당), 이재정의원(더불어민주당), 김성식의원(국민의당), 추혜선의원(정의당), 민중연합당

 

○ 순서

- 사회 : 하태훈(참여연대 공동대표)

 

<발제>

- 청와대 정치공작 어떻게 추진되었나? / 김남근(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회장)

 

<사례발표> 
- 언론계 /  김동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 문화예술계 / 장지연 PD  
- 법조계 / 송아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전교조 /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
- 세월호 / 김진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팀장
- 통합진보당 해산 / 김재연 전 통합진보당 의원
- 민간인사찰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종합토론> 
박주민의원(더불어민주당), 한상희(건국대 교수)

 

 

수, 2016/12/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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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세월호 관련 공적 서훈 16명 확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와 관련된 공적으로 경찰과 청와대 파견 공무원 등에게 훈포장을 수여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파악된 수훈자는 16명이며, 2014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수여됐다. 인명구조 지원 근무 수행 중 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소방공무원 5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적 사유는 세월호 참사에 잘 대응했다는 것이다.

▲ 세월호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광장. 광장 뒤 편으로 청와대가 보인다.

▲ 세월호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광장. 광장 뒤 편으로 청와대가 보인다.

세월호 관련 ‘충실한 자료 준비’와 ‘원활한 대국회 활동 기여’로 청와대 파견근무 공무원 포상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에서 파견 근무를 하던 조홍남 국무조정실 국장은 2014년 12월 31일 근정포장을 받았다. 행정자치부가 공개한 조 국장의 공적 사유는 ‘2014년 우수공무원 포상’으로만 돼 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입수한 조 국장의 구체적인 공적 사유는 “국회 세월호 사고 국정조사, 국정감사, 운영위 및 예결위의 현안 질의에 대한 충실한 자료 준비와 대응으로 대통령 비서실의 원활한 대국회 활동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그의 공적과 전혀 달랐다. 2014년 6월부터 7월 사이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열렸는데, 당시 청와대는 야당 특위 위원들이 요청한 자료에 대해 거의 대부분 제출을 거부했다. 특위 위원들이 요구한 자료 중에는 참사 당일 대통령 보고 상세 내역과 대통령 참석 회의 내역 등 참사 초기 청와대의 대응 조치를 규명하고 참사의 진상을 밝히는 데 필수적인 자료가 많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대통령 신변 경호상 등의 이유로 해당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비협조로 당시 세월호 국정조사는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조 국장은 당시 대통령 비서실에서 대국회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충실한 자료 준비’ 등의 공적 사유로 조 국장에게 포장을 수여했다.

▲ 지난 2014년 7월 10일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당시 청와대 기관보고에 참석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비서진. 청와대는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2개월 동안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등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 지난 2014년 7월 10일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당시 청와대 기관보고에 참석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비서진. 청와대는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2개월 동안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등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세월호 참사 ‘완벽한 상황유지’가 공적사유?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단원 경찰서장이었던 구장회 총경도 근정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2014년 10월 21일에 근정포장을 받았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그의 공적 사유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완벽한 상황유지 및 국민안전 확보를 위한 공감치안 실현” 등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포장을 받기 5개월 전, 단원 경찰서 형사들이 유가족을 미행한 사실이 드러나 당시 구장회 서장이 공개 사과하는 일이 일어났다. 2014년 5월 19일 단원 경찰서 정보보안과 소속 경찰 2명이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던 유가족들을 몰래 미행하면서 동향을 파악하려다 발각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구 전 서장은 물론 최동해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유가족들에게 공개 사과했다.

그런데 5개월 후 최동해 전 청장의 추천으로 구 전 서장이 근정포장을 받은 것이다. 그의 공적에 ‘세월호 참사 완벽한 상황 유지’라는 문구가 나온다. 여기에는 유가족들의 동향 파악과 미행도 포함돼 있었던 것일까? 뉴스타파는 안산단원 경찰서를 찾아, ‘완벽한 상황유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밖에 세월호 관련 공적으로 훈장을 받은 이들의 공적 사유에는 “세월호 집회 등 안정적인 집회 관리”, “유병균 등 세월호 관련자 검거”, “세월호 실종자 수색”, “세월호 사고에 따른 신속한 지원”, “세월호 침몰 사건 신속한 수사”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대 약점이다. 아직 참사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9명의 미수습자가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공무원들에게 훈장을 준 의도는 뭘까?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도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 세월호 특조위의 확고한 입장인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는 이미 끝난 거야”라는 말을 세월호 서훈을 통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충청북도 청주 청남대에 있는 역대 대통령 동상. 역대 대통령들은 통치의 수단으로 훈장을 활용했다.

▲ 충청북도 청주 청남대에 있는 역대 대통령 동상. 역대 대통령들은 통치의 수단으로 훈장을 활용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재임 12년 동안, 자신과 부통령 이시영 이외엔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에게 일체 건국훈장을 수여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독립운동하면 떠오르는 김구와 안중근, 윤봉길 등을 철저하게 외면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독립운동가에게 본격적으로 건국훈장을 수여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 부터다. 하지만 박정희는 친일파에게도 각종 훈장을 무더기로 수여했다. 그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전두환과 노태우는 ‘조세의 날’ 훈포상을 통해 재벌 총수들에게 본격적으로 훈장을 주기 시작했다. 무엇을 노렸을까? 이명박이 재임 5개월 짜리 단명 장관들에게도 퇴임 후 훈장을 준 사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뉴스타파 특별기획 ‘훈장과 권력’ 4부 <훈장, 정권의 수사학>편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 집권자들이 훈장을 통치의 수단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 집중 추적했다.

자세한 내용은 특집 다큐멘터리와 ‘훈장과 권력’ 특별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금, 2016/08/19-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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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ement in Support of Korean Historians’ Protest against Planned Renationalization of History Textbooks 한국 역사학자들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지지하는 성명서 If you are a university/college professor, lecturer, or instructor whose research or teaching involves Korea and if you are affiliated with an institution outside South Korea, then please consider signing the following statement which expresses ...

 

 

3) 한국 역사학자들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지지하는 성명서

 우리는 대한민국(이하 한국)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을 우려하며 이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우리는 해외 대학에서 한국사 관련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는 교수들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역사교과서는 다양한 의견과 분석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전문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정부의 국정화 계획은 지난 몇년 간 자유로운 발언의 기회와 학문공동체의 자유를 억압해 온 정부 정책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과거는 결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서술은 새로운 질문들이 제기되면서 계속 변화해 갑니다. 역사는 정밀한 과학과 다릅니다. 역사는 전문 역사학자들의 다양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역사에 단일한 해석을 적용해서 ‘올바른’ 역사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에 기반한 사회에서 역사는 특정 소수의 입장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경험을 포괄해야만 합니다. 한국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학생들에게 소개함으로써, 학생들은 과거의 역사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배울 수 있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궁극적으로 소신있는 한국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함께 세계 정치경제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의 위상이 한국인은 물론 해외에 있는 관찰자들에게도 자명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계획은 민주국가로서 인정받은 한국의 국제적 명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를 둘러싼 지역 내부의 분쟁에서 한국의 도덕적 기반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해외 대학의 한국학 교수들인 우리 서명자들은 한국정부가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전유하는 것을 그만 두고, 다양한 견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 역사교육의 탈정치화에 힘써주기를 촉구합니다. 또한, 우리는 한국정부가 학문공동체의 자유를 존중하고 국내외의 한국학 교수들의 지식생산과 보급에 개입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 바깥에서 많은 사람들이 현재 국정교과서 논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정부가 21세기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에 걸맞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4) Signatories (154, in surname alphabetical order)

서명자(154명, 성 알파벳 순)

Avram Agov (Langara College)

Ji-Hyun Ahn (University of Washington, Tacoma)

Juhn Ahn (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

Yonson Ahn (University of Frankfurt)

Jong Chol An (University of Tuebingen)

Jinsoo An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Don Baker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Jonathan W. Best (Wesleyan University)

Adam Bohnet (King’s University College at Western University)

Gregg Brazinsky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Remco Breuker (Leiden University)

Soo-yong Byun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aul S. Cha (University of Hong Kong)

Vipan Chandra (Wheaton College)

Kornel Chang (Rutgers University, Newark)

Seung-Eun Chang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Erica Cho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Haewon Cho (University of Pennsylvania)

Hangtae Cho (University of Minnesota)

Heekyoung Cho (University of Washington)

Hichang Cho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Yonjoo Cho (Indiana University)

Ellie Choi (Cornell University)

Hyaeweol Choi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Jungbong Choi (New York University)

Yoonsun Choi (University of Chicago)

Hae Yeon Choo (University of Toronto)

Steven Chung (Princeton University)

Donald N. Clark (Trinity University)

Bruce Cumings (University of Chicago)

Koen De Ceuster (Leiden University)

John P. DiMoia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John B. Duncan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Stephen Epstein (Victoria University of Wellington)

Kevin Gray (University Sussex)

James H. Grayson (University of Sheffield)

Laam Hae (York University)

Ju Hui Judy Han (University of Toronto)

Kwangsoo Han (Community College of Baltimore County)

Martin Hart-Landsberg (Lewis and Clark College)

Todd A. Henry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Christine Hong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

Mickey H. Hong (Los Angeles City College)

Theodore Hughes (Columbia University)

Nam-lin Hur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Dongyoun Hwang (Soka University of America)

Kyung Moon Hwang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Ryota Ishikawa (Ritsumeikan University)

Andrew David Jackson (University of Copenhagen)

Roger L. Janelli (Indiana University)

Areum Jeong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Kelly Y. Jeong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

Ji-Yeon O. Jo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Chapel Hill)

Ji-Young Jung (University of Pennsylvania)

Jiwook Jung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Kyungja Jung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Moon-Ho Jung (University of Washington)

Jennifer Jung-Kim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Hong Kal (York University)

George L. Kallander (Syracuse University)

Hugh Kang (University of Hawai‘i)

Inkyu Kang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Jaeho Kang (SOAS, University of London)

Jiyeon Kang (University of Iowa)

Anders Karlsson (SOAS, University of London)

George Katsiaficas (Wentworth Institute of Technology)

Laurel Kendall (Columbia University)

Changhyun Kim (Singapore Management University)

Cheehyung Harrison Kim (University of Missouri)

Daeyeol Kim (INaLCO, Université Sorbonne Paris Cité)

Heeyon Kim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Hongkyung Kim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Stony Brook)

Immanuel Kim (Binghamton University)

Jaeeun Kim (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

Janice C. H. Kim (York University)

Jina Kim (Smith College)

Jungwon Kim (Columbia University)

Kyu Hyun Kim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Kyung Hyun Kim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Minju Kim (Claremont McKenna College)

Minku Kim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Monica Kim (New York University)

Sangbok Kim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Seon Mi Kim (Ramapo College of New Jersey)

Sonja Kim (Binghamton University)

Soohee Kim (University of Washington)

Su Yun Kim (University of Hong Kong)

Sun-Chul Kim (Emory University)

Sun Joo Kim (Harvard University)

Suntae Kim (Boston College)

Suzy Kim (Rutgers University)

Thomas P. Kim (Scripps College)

Wooksoo Kim (University at Buffalo,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Jessie Kindig (Indiana University)

Ross King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Kijoo Ko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June Hee Kwon (New York University)

Nayoung Aimee Kwon (Duke University)

Kirk W. Larsen (Brigham Young University)

Cheol-Sung Lee (University of Chicago)

Hyangjin Lee (Rikkyo University)

Hyo Sang Lee (Indiana University)

Namhee Lee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Sangjoon Lee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Seung-joon Lee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Yoonkyung Lee (Binghamton University)

James B. Lewis (Wolfson College, University of Oxford)

Ramsay Liem (Boston College)

Sungyun Lim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Roald H. Maliangkay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Richard D. McBride II (Brigham Young University-Hawai‘i)

Owen Miller (SOAS, University of London)

Yongsoon Min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Tessa Morris-Suzuki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Justyna Najbar-Miller (University of Warsaw)

Hwasook Nam (University of Washington)

Yunju Nam (University at Buffalo,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Bonnie Bongwan Cho Oh (Georgetown University)

Robert Oppenheim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Osamu Ota (Doshisha University)

Hyung Il Pai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Albert L. Park (Claremont McKenna College)

Eugene Y. Park (University of Pennsylvania)

Hyun Ok Park (York University)

Jin Y. Park (American University)

Junghee Park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Kyong Park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So Jeong Park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Soon Won Park (American University)

Mark Peterson (Brigham Young University)

Michael J. Pettid (Binghamton University)

Jelena Prokopljevic (Autonoma University of Barcelona)

Robert C. Provine (University of Maryland)

Jooyeon Rhe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Michael Robinson (Indiana University)

Rebecca N. Ruhlen (Davidson College)

Andre Schmid (University of Toronto)

Michael D. Shin (University of Cambridge)

Edward J. Shultz (University of Hawai‘i)

Codruta Sîntionean (Babes-Bolyai University)

Heejeong Sohn (Stony Brook University)

Clark W. Sorensen (University of Washington)

Serk-Bae Suh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Victor A. Ten (Moscow State Regional University)

Vladimir Tikhonov (University of Oslo)

John Treat (Yale University)

EunYoung Won (University of Washington)

Hyeyoung Woo (Portland State University)

Hwajin Yang (Singapore Management University)

Jaehoon Yeon (SOAS, University of London)

Kyung-Eun Yoon (University of Maryland, Baltimore County)

Seungjoo Yoon (Carleton College)

Jong-sung You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Ji-Yeon Yuh (Northwestern University)

월, 2015/10/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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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근혜와 비선실세 최순실이 만들어낸 사상초유의 국정농단에 온 국민은 분노했다.

4개월에 걸친 검찰과 특검 수사로 박근혜 정권의 민낯이 드러났다. 수사결과, 대통령은 최순실의 영업사원에 불과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문제로 불거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의 딸 박근혜와 목사 최태민으로 시작된 관계가, 대통령 박근혜와 최태민의 딸 최순실의 관계로 이어졌다. 그러나 박근혜는 마지막까지 의혹을 부인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두 달간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관계를 추적했다. 이들의 관계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확보했고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모았다. 그 결과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가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얽히고 설켜 살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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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육영수 숭모회’ 회장을 지낸 이순희(89)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제자다. 1937년 문경보통학교에서 박정희를 처음 만났다. 박정희 육영수 기념사업회에도 참여했던 그는 스승인 박정희의 공적을 기리고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1990년에는 박정희 지지자 등을 모아 숭모회라는 단체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씨는 박정희의 자녀들과는 그리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1990년에는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을 재단에서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이 씨가 스승의 딸에게 등을 돌린 건 모두 최태민 목사 때문이었다. 그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등에 업고 육영재단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했다. 이 씨에 이어 숭모회 회장을 맡았던 이영도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1980년대 최태민은 육영재단에 아방궁을 차려놓고 전횡을 일삼았다. 내부에서 반발이 많았다. 육영재단을 지키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의 유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최태민을 박근혜로부터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숭모회를 만들었다.”

(이영도 / 전 숭모회 회장)

박근혜를 육영재단에서 쫓아내기 1년 전인 1989년 11월, 이순희 씨는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에게 최태민의 전횡을 지적하는 편지를 보냈다. ‘큰 영애님’으로 시작하는 6장 분량의 편지에는 박정희 유가족의 생활과 육영재단 문제를 걱정하는 이 씨의 간절한 마음이 빼곡히 담겼다.

“최 회장(최태민) 님에 대하여,

최 회장님이 큰 영애(박근혜)를 진실로 위하신다면, 표면에 나서서 누구하고든 큰 영애와 화합을 해 협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셔야 할 것입니다. 최 회장님이 큰 영애(박근혜)님의 막후인물로서 큰 영애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으로 (육영재단 직원들은) 생각들을 하고 별에별 말들을 다하고…”

(이순희 전 숭모회 회장의 편지 / 1989년 11월)

전 박정희 숭모회장이 남긴 4시간 30분 육성증언

초등학교 시절부터 박정희와 인연을 맺고, 또 그 자녀들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이순희 씨는 2012년 대선 직전, 4시간 30분 분량의 육성 증언을 남겼다. 이 씨가 보고 들었던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 육영재단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고스란히 담겼다. 처음 공개되는 이 증언은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이 씨는 1989년 경 최태민을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박근혜와 최태민이 육영재단에서 같은 방을 썼다. 그 방에서 최태민을 처음 만났다. 방에 들어가니 최태민은 다리를 티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손님이 찾아왔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자빠져 있었다.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희 전 숭모회 회장 육성 증언)

이씨의 눈에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절대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박근혜는 최태민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했다. ‘최태민이 대체 뭐냐’고 따져 물었더니, 박근혜는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 말을 안 들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순희 전 숭모회 회장 육성 증언)

이 씨는 경북 문경에 소재한 박정희 기념관 ‘청운각’ 문제로도 박근혜, 최태민과 갈등을 빚었다. 청운각은 1930년대 박정희가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 하숙했던 집이다. 1983년경 이순희 씨가 사비를 들여 사들여 박정희 대통령의 영정과 제단을 설치한 뒤 일반에 개방했다.

 그런데 1989년 8월, 박정희 육영수 추모사업회가 보낸 한 장의 통고문이 갈등을 일으켰다.  통고문을 보낸 사람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였다. 통고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청운각에 걸린)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정과 제단을 철거하고, 이 통고를 무시하면 청운각에 대한 폐문조치를 하겠다.”

(박정희 육영수 기념사업회 통고문/ 1989년 8월)

박근혜는 왜 기념관에 걸린 아버지의 영정을 치우라고 했을까. 통고문을 받은 뒤 화가 난 이순희 씨는  박근혜를 찾아가 따져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놀라웠다. 박근혜는 모두 최태민의 뜻이니, 그냥 시키는대로 하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한다. 우상숭배이니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최태민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이순희 씨는 느꼈다.

“(박근혜가 하는 말이) 저기 최태민이 기분이 상해가 있으니까 그냥 시키는대로 하라고 했다. 최태민의 기분이 좀 좋아지면 다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우상숭배니까 하지 말라고…”

(이순희 전 숭모회 회장 증언 / 1989년)

이 씨의 주장은 다른 육영재단 관계자의 증언과도 유사했다. 겉으로는 박근혜가 이사장이었지만, 육영재단이나 박정희 추모사업회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 건 최태민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이사장은 아무 것도 몰랐어요. 최태민이 시키는대로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조OO 전 육영재단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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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는 서울 신당동의 박정희 대통령 자택. 5.16 쿠데타가 기획됐고

대통령이 되기 전 박정희 일가가 살았던 집이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직후 청와대를 떠난 20대의 박근혜는 두 동생과 함께 이 집으로 돌아왔다. 1982년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 이 집에 살았다. 그런데 그 후 이 집을 지키고 관리한 건 최태민이었다. 최태민은 조카인 최용석 씨에게 관리를 맡겼다. 최용석 씨는 1989년 4월부터 1990년 11월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신당동으로 이사하기 전인 1986년, 최용석 씨는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던 영남대에서도 일했다. 역시 큰아버지인 최태민이 시킨 일이었다. 그가 맡았던 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 관리. 대부분 박근혜가 영남대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었다. 박근혜에게 최태민은,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까지도 맡길 수 있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최태민과의 관계 때문에 여러번 곤욕을 치렀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청문회 때는 최태민과의 사이에 자녀가 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박근혜는 발끈했다.  

“(최태민과의 사이에) 만약 애가 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그 애를 데리고 와도 좋습니다. 제가 DNA 검사도 다 해 주겠어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청문회)

그러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계속됐다. 박근혜와 최태민이 의심을 살만한 관계를 가져왔다는 목격담이 쏟아졌다. 모두 1980년대 후반, 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던 때의 증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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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 청문회에서 박근혜는 최순실과의 관계도 부인했다. 최순실 씨가 소유한 수백억원 대 재산이 육영재단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자, “천부당만부당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응수했다. 그러나 대통령 박근혜와 최순실이 공모한 국정농단이 확인되면서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와의 끊을 수 없는 40년 인연은 결국 베일을 벗었다. 지난 1월 16일 헌법재판소에 출석한 최순실은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재판관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한때는 대학시절에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했고, 많이 좋아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옆에 있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순실 헌법재판소 증언 / 2017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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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태민이 처음 만난 건 1975년경이다.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직후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안 돼 대한구국선교단이란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이후 이 단체를 모태로 구국여성봉사단(새마음 봉사단)이 만들어졌다. 박근혜와 최태민은 총재, 명예총재 같은 직함을 가지고 활동했다.

이들이 같이 움직일 당시 근거지로 삼았던 곳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이었다. 박근혜가 총재로 있던 구국여성봉사단 본부가 있던 곳이다. 박근혜와 최태민은 이 곳에 노인전문병원인 새마음종합병원을 설립해 운영했다.

폐쇄등기부 등본을 확인해 봤더니, 1977년 구국여성봉사단이 이 땅을 증여받은 걸로 나왔다. 증여한 사람은 최태민. 최태민은 증여 한 해 전인 1976년 이 땅을 매입했다. 당시 이 부동산의 감정평가액은 10억 2천만원이었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무려 300억원이 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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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여성봉사단에 기증된 이후 이 땅의 소유주는 여러번 바뀌었다. 하지만 모두 박근혜, 최태민이 지배, 운영하는 법인이었다. 이 땅을 최종적으로 매각하면서 생긴 자금은 1985년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이 유치원을 설립할 당시 초기 자금으로 들어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박근혜와 최태민이 공동 소유한 거액의 자금은 최순실 재산 형성의 종잣돈이었던 셈이 된다. 박근혜-최태민-최순실로 이어진 경제공동체를 설명해 줄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 없다.  

구국여성봉사단 자금이 최순실 재산의 시드머니?  

그렇다면 박근혜와 최태민은 어떻게 자금을 조달해 구국봉사단을 만들고 부동산을 사들였던 것일까. 그 단서는 1979년 만들어진 중앙정보부의 일명 ‘최태민 보고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던 이 보고서에는 최태민이 돈을 모은 과정과 방법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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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최태민 보고서

“1975년 4월 29일 박근혜의 후원으로 자신의 심복 및 사이비 종교인 중심으로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하고 총재로 취임하여 구국선교를 빙자, 매사 박근혜 명의를 매명하여 이권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금품징수 등 이권단체로 치부.”

1978년 7월 14일 운영비 조달목적으로 대한통운 (주) 회장 최원석 등 10명의 실업인을 운영위원으로 위촉, 운영위원회를 발족한 이래 계속 증원하여 1979년 10월에는 국내 재벌급 실업인을 거의 망라한 60명선에 육박, 1인당 입단찬조비 2000~5000만원에다 매월 200만원씩 운영자금을 조달.”

(중앙정보부 ‘최태민 보고서’ / 1979년)

최태민의 비서였던 채병률 씨의 증언도 최태민 보고서 내용을 뒷받침한다. 채 씨는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구국봉사단을 만들던 1975년 경, 최태민이 기업 대표들에게서 7억원이 넘는 거액을 모았다”고 주장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이 된 박근혜가 재벌기업을 협박해 700억 원 넘는 돈을 뜯어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을 설립한 뒤, 최순실이 운영케 해 막대한 이권을 챙겨준 것과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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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박근혜를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몰아낼 당시, 이순희 숭모회장은 전국을 돌며 최태민 일가의 재산을 조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는 최태민이 육영재단 이사장인 박근혜를 좌지우지하면서 육영재단 자금을 빼돌려 부를 축적했다고 의심했다. 이 씨는 최태민의 호적등본을 단서로 가계도를 만들었고,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확인해 가며 최태민 일가의 재산형성 과정을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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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든 이 보고서는 최태민 일가의 재산관계를 추적한 첫 민간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씨가 만든 보고서에는 최태민과 부인 임선이 소유 부동산은 물론 최순득, 장석칠 등 최태민의 딸과 사위 명의의 재산목록도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이 씨는 보고서 말미에 “최태민 일가가 뚜렷한 소득원이 없이 강남 요지의 주택과 빌딩을 취득했다”고 적었다.

뉴스타파는 이순희 씨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최태민의 아들 최재석 씨를 찾아가 인터뷰했다.

최 씨는 최태민과 그의 넷째 부인 사이에서 1954년 태어난 사람으로 최순실의 이복오빠다. 그는 최태민이 박근혜와 함께 운영한 구국여성봉사단, 영남대 등에서 많은 돈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구국봉사단을 운영하던 1970년대 후반이 최태민 일가에게는 그야말로 꽃 피는 봄날이었다고 말했다. 이순희 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구국여성봉사단에서 그 자산이 (우리집으로) 넘어왔다. 영남대학 같은 곳에서도 많은 돈이 들어왔다. 그 돈으로 땅도 사기도 했다. 1975년도부터 우리 집은 잘 살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꽃피는 봄날이었다. 아버지가 가져온 돈이 족히 1000억 원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재석 / 최태민 아들)

 최재석 씨는 최태민이 살아 생전 그 많은 돈으로 박근혜를 대통령 만드는데 쓰려고 했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내놨다. 박근혜 대통령만들기 프로젝트가 가동됐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금고에 쌓아놓은 돈, 외화, 금덩어리들을 보여주면서 ‘박근혜를 대통령 만드는데  선거자금이 1조 정도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같은 말을 많이 하셨다.”

(최재석 / 최태민 아들)

최태민과 가까웠던 전기영 목사의 증언도 비슷했다. 전 목사는 1980년대 초부터 최태민과 10년 이상 교류했던 사람이다.  

“최태민 씨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됩니다. 전국에 있는 70만명 근화봉사단 단원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들 겁니다. 목사님이 총책임을 맡아 주십시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조흥은행 안국동 지점에 13억이 있으니 그 돈을 쓰면 된다고 했다.”

(전기영 목사 / 최태민 지인)

최태민은 1994년 5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3년 뒤인 1997년, 박근혜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정치인이 된 뒤에도 박근혜 곁에는 언제나 최태민의 그림자가 있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과 그의 남편 정윤회가 박근혜의 선거를 도왔다. 최순실의 모친인 임선이 씨도 대구로 내려가 선거를 지휘했다. 선거 자금은 최순실 측이 마련했다. 임선이 씨의 운전기사였던 A 씨는 지난해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임선이의 지시를 받고 박근혜 쪽에 돈을 실어 날랐다. 2억5000만 원 정도를 가방에 나눠 들고 가지고 갔다. 박근혜와 임선이 씨가 같이 쓰던 아파트로 돈을 갖다 줬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들의 증언은 모두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가 사실상 한 몸처럼 경제공동체를 꾸려왔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1975년 구국선교단을 만들 때부터, 또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 사이의 재산공유가 계속됐음을 확인시켜 준다.  

대통령 박근혜는 최태민의 딸 최순실에게 국가기밀을 유출했을 뿐 아니라, 서로 공모해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 박근혜가 주도한 미르와 K스포츠 두 재단에 200억 원 넘는 돈을 출연하고, 추가로 최순실 측에 236억 원을 갖다 바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제3자 뇌물) 혐의로 구속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와 최순실 일가의 경제공동체 문제는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뇌관이었다. 사건의 본질을 관통하는 혐의일 뿐 아니라,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결정적인 혐의가 됐다. 특검이 수사기간 내내 이 문제에 매달려 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최순실은 여전히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마치 입을 맞춘 듯 움직였다. 지난달 25일, 박근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 헌재에 제출한 서면 최후변론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희한하게 경제공동체라는 말을 (특검이) 만들어 냈는데, 모두 거짓말이다. 엮어도 너무 어거지로 엮었다.”

(박근혜 대통령 / 1월 25일 정규재 인터뷰)

“최순실은 지난 40년간 옷가지 등 소소한 일 도와준 사람이다. 대통령 선거 등 치르며 저의 메시지를 전했다.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 2월 27일 헌법재판소 최후변론)

그러나 박근혜가 최순실과 공모해 각종 이권에 개입한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대통령의 주장은 설자리를 잃었다.

이제 남은 건 뇌물을 받은 사람, 즉 대통령 박근혜를 처벌하는 것이다. 수사기간의 한계로 특검이 못했다면, 검찰이 다시 해야 한다. 박근혜-최태민-최순실로 40년 간 이어져 온 기괴한 혹세무민과 사상 초유 국정농단의 뿌리와 그 비호세력도 철저히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에 다시 정의가 설 수 있다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


취재·연출 : 한상진 강민수

내레이션 : 안종덕

촬영 : 최형석 김기철 신영철

편집 : 박서영

수, 2017/03/0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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