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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얼마를 벌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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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얼마를 벌어야 하나요?

익명 (미확인) | 월, 2015/12/21- 14:14

희망제작소는 2016년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시민 관점의 정책제안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은 일’의 기준을 찾는 설문조사를 위한 것입니다. 설문결과는 전문가토론을 거쳐 ‘2016 정책제안 보고서’에 반영됩니다.

[기획연재] 좋은 일, 공정한 노동④ 얼마나 길게 일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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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FX(외환거래)로 월 1,000만원 벌 수 있는 투자비법’, ‘월세 1,000만원 받는 슈퍼 직장인들’, ‘나의 꿈 월세로 1,000만원 벌기’, ‘단타매매로 하루 80만원 벌기’, ‘죽을 때까지 월 300만원’….서점 경제 코너에서 판매 중인 책 제목들이다. “월 얼마를 벌어야 충분한가?”에 대한 이 시대의 생각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취업포털 기업들이 때때로 하는 설문조사에서도 그런 기준들이 보인다. 인쿠르트의 2015년 10월 조사에서 취업준비생들은 대졸 신입 연봉으로 평균 3,320만원을 희망했다. 6월 잡코리아 설문에서 취업준비생은 첫 월급 액수로 평균 199만원을 원했다.

2014년 3월 취업포털 사람인 조사에서는 직장인 응답자의 65.6%가 지금 받는 연봉이 능력 대비 낮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얼마를 더 받고 싶은지” 묻자 가장 많은 응답자가 “400만~600만원”이라고 했다. 1,000만원~1,500만원을 더 받고 싶다는 사람도 10%가 넘었다. 지금 하는 일의 대가가 그만큼 높아야 한다는 것인지, 그저 많을 수록 좋은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적당히 벌고 잘 산다는 것은?

2014년 임금근로자 평균 연봉(고용노동부 자료)은 3,240만원이었다. 평균치가 아닌 중간치, 즉 전체를 일렬로 세웠을 때 가운데 수치는 2,465만원이다. 그 차이가 큰 것은 일부 소득 상위층의 연봉액이 상대적으로 아주 크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상반기 임금근로자 중 월 100만원 미만을 받는 근로자는 11.9%, 100만~200만원을 받는 근로자는 36.4%였다. 절반에 가까운 비율(48.3%)이 200만원 미만을 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의식이 크지 않은 것은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이 버는 것은 당연하다’, ‘너도 노력하면 그만큼 벌 수 있다’는 생각, 즉 능력주의(meritocracy)가 사회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위의 책 제목처럼 외환거래, 경매, 주식 단타매매를 통해서라도 소득을 보전하려는 열망들은 그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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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임금은 어떻게 정해져야 할까? 어떤 일을 하고 얼마를 벌어야 할까? 점점 더 말하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어떤 기준은 필요하다. 얼마를 벌어야 하는지 말하지 않고서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좋은 일’을 찾는 사람은 ‘얼마를 벌고자 하는지’에 대한 기준부터 세워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진선(35) 십년후연구소 연구원과 황호진(46) 사회혁신공간 데어 사회혁신기금추진단 팀장이다. 안정적인, 상대적으로 고연봉을 받는 직장을 다니다 ‘새롭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 스스로 그만뒀다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이다.

특히 김 연구원은 최근 ‘적당히 벌고 잘 살기’라는 책을 펴냈다. 지난 12월 14일 서울 중구 스페이스노아에서 함께 만났을 때 주제를 이 제목처럼 ‘적당히 벌어 잘 산다는 것’으로 한정했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사람부터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고 싶은 사람까지 무한정 넓은 스펙트럼을 다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적당히 번다’와 ‘잘 산다’의 개념 안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일’과 ‘좋은 삶’의 기준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직장 그만두고 2년 반째 ‘좋은 삶’ 탐색 중

김 연구원은 ‘(재)아름다운가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2년여 후에 네이버에 입사해서 7년 반 동안 사회공헌부문에서 일했다. 2013년 5월 퇴사한 이후에 대해서는 “2년 반 동안 반백수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뜻 맞는 사람들과 십년후연구소를 만들어 몇몇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인문학공동체에서 요가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여전히 ‘좋은 삶’, ‘새로운 일’에 대한 탐색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회사를 그만둘 때는 일단 잠시 동안이라도 자유시간을 가져본 뒤에 새 직장을 알아보자는 생각이었죠.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10여 년 직장생활로 저축한 돈이 얼마간 있고 사는 집이 전세라서 주거비가 덜 들긴 했지만요. ‘월 100만원씩 쓴다면 얼마나 버틸까?’ 하고 계산해 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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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 동안 주된 소득 없이 지내온 데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좋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전일제 임금노동이 아닌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데 기울고 있다”고 했다. 다만, ‘월 100만원씩 쓰면서’는 아니다. 소비를 포함한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일하는 방식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생활비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소비의 욕구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김 연구원은 “옷 구입비가 가장 크게 줄었다”고 했다. 회사 다닐 때는 더 거리낌 없이 소비를 했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당시에 느낀 그 소비의 욕망이 스트레스에서 왔다는 것을 의식했었기 때문”이라면서 “돈을 써서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진짜 필요한 일을 걸러낼 수 있어야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제가 직장 그만둔 뒤로 여러 친구, 동료들이 고민을 털어놓아요. 자신도 그만두고 싶고, 다른 일을 찾고 싶은데 그럴 여유가 없다고요. 제가 볼 때 아예 여유가 없지는 않아요. 소비를 줄이면 가능한데, 거기 얽매여서 ‘좋은 삶’, ‘좋은 일’을 탐색할 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불안정한 삶 지탱하는 ‘관계망’ 만들고 싶다”

소비 방식과 별개로 불규칙한 수입은 그 자체로 삶을 불안정하게 한다. 김 연구원도 그 문제를 고민한다. 그래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신뢰’를 기반으로 먹거리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급‧수요를 맞춰가는 것처럼, 일과 삶에 있어서도 신뢰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비슷한 일을 프리랜서로 하는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일거리를 나누고 조정하는 식의 방식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십년후 연구소의 '화이트루프 쿨 시티'  프로젝트 활동으로 옥탑방 옥상에  페인트를 칠하는 모습. 김진선 연구원 제공

▲십년후 연구소의 ‘화이트루프 쿨 시티’ 프로젝트 활동으로 옥탑방 옥상에 페인트를 칠하는 모습. 김진선 연구원 제공

십년후연구소에서 김 연구원이 담당하고 있는 ‘화이트루프 쿨 시티’(White Roof Cool City) 프로젝트는 본래 건물 옥상에 흰 페인트를 칠하면 태양광선을 85%까지 반사시킬 수 있다는 데 착안해서 여름철 전기 사용을 줄이도록 하는 활동이다. 그동안은 캠페인 형식이었지만 앞으로는 옥상 방수시공을 더한 비즈니스로 발전시켜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려고 한다. 위의 ‘관계망’ 만들기 중 첫 걸음인 셈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인천 검암동의 생활자치 커뮤니티 ‘우리동네사람’(우동사)에서 살고 있다. 아직 정식 거주자는 아니고 3개월간 시범적으로 살아보는 것이다. 방 세 칸짜리 빌라 세 채에 18명이 함께 사는 일종의 ‘주거공동체’인데, 1,800만원의 출자금을 내고 들어간 뒤에는 월 10만원만 내면 된다. 삼시세끼 해먹을 수 있는 재료와 전기‧수도‧인터넷 등 이용료가 다 포함된 금액이다.

여기서 살아보는 이유에 대해 김 연구원은 “월 50만 원 이하로 사는 모델을 찾고 있는 중”이라면서 “우동사 사람들을 보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 같은 집에 사는 6명 중에서 1명을 빼고는 전일제 노동을 하지 않아요. 나머지는 백수거나 저처럼 반백수라서 대낮에 함께 밥을 차려 먹는 일도 자연스러워요. 그렇지만 각자 재능들이 있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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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주거 형태가 저변에서 확산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 연구원도 “월세만으로 30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도시 생활에서는 소비의 자유가 없는 셈”이라면서 “누구나 적정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주거 문제의 대안과 적정 소득, 기본소득 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20년차, ‘가치관’ 문제로 사직

황호진 팀장은 대학 졸업 후 증권회사에 입사한 뒤로 지난해까지 증권계에서만 딱 20년 일했다. 아내는 전업주부고, 중학생과 초등학생의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관두고 싶다고 관둘 수 없는’ 전형적인 유형의 직장인이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5월 직장을 그만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가치관의 문제’였다. 증권시장의 역할을 알면 알수록 ‘금융자본주의의 모순’을 더 선명하게 느꼈던 것이다. “나가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연했는데 2014년에 결정적 계기를 맞았다.
“세월호 사건에 유독 큰 충격을 받았나 봐요. ‘이렇게 살 필요가 어디 있나, 걸어가다가 오늘 죽을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단을 내리게 됐습니다.”

소득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위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 가족들의 소비 수준이 비교적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화점 쇼핑을 거의 해본 적 없을 정도다. 아내는 그의 결정을 지지해줬고, 큰아들은 사교육을 안 시키기로 서약을 해야 입학할 수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크게 돈 들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사표를 낸다는 게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이틀 정도는 사무실에서 자리에 앉아있지 못 할 만큼 안절부절 못 했어요. 그만큼 직장생활이 제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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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그만두고 하고 싶던 일은 게스트하우스 운영이었다. 강릉에 여러 차례 내려가서 부지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또 다른 관심은 사회적기업이었는데, 2014년 9월에 한신대학교 사회적기업 리더과정을 수강하면서 ‘금융권 경력을 살려서 새로운 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6월 과정을 수료한 뒤 몇몇 곳에 지원서를 넣은 끝에 지금의 직장에서 사회적기업 대상 소액대출 심사와 재무컨설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황 팀장은 “지금도 대학 동창,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면 주말에 골프 친 얘기, 해외여행 다녀온 얘기, 자녀들 학원비 이야기만 하고, ‘아무리 벌어도 늘 모자란다’고들 한다”면서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지 못 한다면 다른 일을 시도할 수 없다”고 했다.

안전망 취약한 사회에선 직장 선택의 자유가 없다

그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 학부모들을 만나면서, 이전 지인들과만 교류할 때는 알 수 없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또 지난해 제주도 배낭여행을 가서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귤 농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제주도에 장기간 머무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매이지 않은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요즘 재무컨설팅을 위해 만나는 사회적기업 사람들도 자극을 줍니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프로젝트 단위로 뭉쳤다가 흩어졌다 하면서 능력껏 살아가는 모습이 신선하더라고요.”

▲황호진 팀장이 사회혁신 데어 사회혁신기금추진단에서 '소셜멘토링 잇다' 조윤진 대표에게 재무 컨설팅 하는 모습. 황호진 팀장 제공

▲황호진 팀장이 사회혁신 데어 사회혁신기금추진단에서 ‘소셜멘토링 잇다’ 조윤진 대표에게 재무 컨설팅 하는 모습. 황호진 팀장 제공

그 역시 문제의식은 느낀다. “저는 직장 다니면서 모아놓은 게 있고, 어쨌든 내밀 수 있는 이력이 있으니까 이렇게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었겠죠. 지금 우리 사회 일자리의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임금 수준이 낮은데, 그런 일자리밖에 경험하지 못 한 후배 세대에게 ‘다른 삶을 꿈꿀 여유를 가지라’고 조언하는 건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지역별 적정 생활비 임금에 반영 필요”

또 다른 문제는 역시 임금이다. 금융권 중에서도 임금 수준이 높은 증권계에서 20년을 일하다보니 그만둘 당시 연봉이 높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그 5분의 1 수준이다.
그는 서울에서 4인 가구가 살기 위한 적정 생활비가 월 387만원, 최저 생활비가 295만원(서울연구원 2015년 자료)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일하는 것도 좋지만 최저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일부 대기업, 금융계 직원이 아니어도 일하는 사람이라면 적정 생활비는 벌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는 여전히 직장만한 보험이 없다”며 “생계를 유지하려면 대기업, 정규직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실질적으로는 직장 선택의 자유도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른 듯 비슷했다. ‘얼마를 버는지’는 중요하긴 하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지’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얼마를 쓰는지’에 대해 성찰하지 않으면 직장을,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없다. 또한 공통적인 것은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져야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김 연구원은 “적당히 벌고 잘 산다는 기준은 각자 다 다를 텐데, ‘좋은 삶을 영위할 만큼 적당히 버는 것’이 제가 찾은 기준이다”라면서 “각자 답을 찾기 위해 탐색하고 실험할 수 있도록 사회가 좀 더 열려있었으면, 잠시 동안이라도 기댈 언덕이 주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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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팀장은 “연봉이 높아도 자기 일에 대해 불만이 많고, 적게 받는 사람은 왜 적은지, 얼마나 적은지를 알기 어려운 사회 구조”를 지적하면서 “각자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지역별로 적정 생계비에 대한 현실적인 조사가 이뤄졌으면 하고, 최저임금이 아니라 적정 생활임금을 보장해 주는 기업이 많아지도록 인증제도 등이 있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무엇을 요구해야 ‘좋은 일’, ‘좋은 삶’ 될까?

두 사람의 경우를 사회 전반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인정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소비의 자유’도 없고 ‘직장 선택의 자유’도 없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많다. 도시에서는 특히 그렇다. 서울에서의 최저생활비가 1인 기준 162만원이라는데 일하는 사람 중 3분의 1이 100만원 이하를 번다면, 청년층에서는 적지 않은 비율이 ‘최저’보다 낮은 수준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위의 책에서 “이와 같은 한국의 분배 구조는 정의롭지 못 한 것”이라면서 “한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 정의로운 분배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혁되어야 하며, 국민이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불평등의 근원은 임금 격차이며, 이를 야기한 고용 격차, 기업 간 불균형의 책임은 ‘재벌 대기업’에게 있다고 개혁 요구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임금 격차가 줄어들도록,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최저임금에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임금을 보장하도록, 불합리한 하청구조가 개선되도록, 복지를 통한 재분배가 이뤄지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능력주의’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능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어떤 일을 하면 얼마를 벌어야 하느냐’는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신경제학재단(NEF) 싱크탱크’는 2009년 여러 직업의 사회적 가치와 임금을 비교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병원 청소부들은 일반적으로 최소임금을 받지만 임금의 10배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 반대로 런던 금융권의 투자은행가는 금융활동의 손실을 고려하면 임금의 7배만큼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오언 존스 저 ‘차브’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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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처럼, ‘능력’이 없어서 고임금 직장에 진입하지 못 했으면 최저생계비만큼도 못 버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인식이 깨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임금격차가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김민아 노동법률원 새날 노무사는 “1990년대까지 대부분 기업의 임금체계였던 호봉제는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한 우리나라에서 생애주기에 따른 지출수요를 반영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였다”면서 “호봉제가 사라져가는 추세에 맞춰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임금노동자들의 삶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즉, 완전연봉제 또는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는 발전된 것이고 호봉제는 구시대적인 것처럼 여겨온 것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얼마를 버느냐’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소비를 줄이면서 새 일을 찾아나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고, 우리 사회 전반의 임금격차와 불안정성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돌아봤다.

두 이야기는 다른 것 같지만 연결된다. 지극히 적은 수의,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고소득 일자리’에 대한 집중을 멈추자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구조와 능력주의를 그대로 둔 채로 ‘월 얼마’에만 초점을 맞추면 외환거래, 주식 단타매매, 건물 경매로라도 그 금액만 맞추면 된다는 유혹만 많아질 뿐이다.
그보다는 ‘적당히 벌어서 잘 살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정의, 즉 ‘좋은 삶’의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삶을 채우기 위한 ‘좋은 일’을 찾아야 한다.

희망제작소가 이 연재 시리즈와 아래의 설문조사를 통해 ‘좋은 일’의 상(像)을 찾아보자고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각자 원하는 일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이를 최대한 모아보면 ‘이런 요건들이 갖춰진 일이 좋은 일’이라는 공감대가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요구는 보다 단순명료해질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좋은 일’이 많아지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한다면 하나를 만들어도 ‘좋은 일’로 만들도록, 기업을 지원한다면 ‘좋은 일’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곳을 지원하도록 요구하면 된다. 그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언제나 그렇듯,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달려있다.

글_황세원(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_이우기(사진작가)‧우성희(시민사업그룹 연구원 / [email protected])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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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 역시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대도시,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내 고향에는 그 흔한 슈퍼 하나 없었다. 대신 이장님이 가정집 한 편에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 버스는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각에만 오갔다. 혹여라도 늦잠자서 첫차를 놓치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 등교해야 했다.

2018년 3월, 희망제작소는 평창동 시대를 마무리하고 성산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새 터전에서 희망제작소는 ‘모든 시민이 연구자인 시대’를 실현하려 합니다. 생활 현장을 실험실로 만들고, 그 현장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시민이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수송동과 평창동에서 희망제작소는 여러 실험을 했고, 이를 통해 많은 시민을 만났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우리 사회의 어떤 요구에서 탄생했을까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시민과 함께 어떤 변화를 만들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글은 총 다섯 번에 걸쳐 연재됩니다.

* 밀레니얼세대(millenials) :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정보기술(IT)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을 겪어 평균 소득이 낮으며 대학 학자금 부담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결혼을 미루고 내 집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 (출처 :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기획연재] 마이 밀레니얼 다이어리 : ① 내 고향은 ‘식민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 역시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대도시,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내 고향에는 그 흔한 슈퍼 하나 없었다. 대신 이장님이 가정집 한 편에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 버스는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각에만 오갔다. 혹여라도 늦잠자서 첫차를 놓치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 등교해야 했다.
차를 타고 50여 분 달려야 당도할 수 있는 ‘시내’라고 불리는 곳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곳에는 작은 규모나마 병원과 슈퍼, 음식점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장이라도 보러 가는 날에는 신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길거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불편은 당연한 것?

고등학교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아버지가 암으로 쓰러지셨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항암 치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치료가 끝난 후에도 추적 관찰을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했다. 병원에 가는 날에 아버지는 다른 일정을 일절 잡지 않았다. 이동에만 왕복 다섯 시간, 대기와 진료시간까지 합치면 일곱 시간이 넘게 걸리다 보니 하루를 꼬박 반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호자 역할로 아버지 따라 병원에 가는 날에는 다른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평생을 시골에서만 자라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게 됐지만, 그곳이 어떤 세계인지 살필 겨를 없이 병원만 찍고 집에 돌아가기 바빴다. 우리 부녀의 하루는 돌아볼 여유 없이 그 어느 때보다 잽싸게 지나갔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도시로 ‘유학’을 가게 됐다. 고향에는 4년제는 물론 2, 3년제 대학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라는 것을 하게 됐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보다 생활비가 배로 들었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고달픈 생활이 이어졌지만 ‘유학’ 온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아니, 당연하지 않았다

그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의심을 품게 된 것은 친구가 아프면서부터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병원에서 이상 징후 소견을 들은 친구는 그다음 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했고 한 주 뒤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는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후에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애인과 데이트도 했다. 밤늦은 시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책을 읽는다고도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하루를 꼬박 반납하면서 아버지와 서울 병원을 오갔을 때가 떠올랐다. 미묘한 이질감과 박탈감이 몰려왔다. 돌이켜보니 병원뿐만이 아니었다. 수능시험을 본 후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겠다고 서울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공연 관람비는 2만 원이었지만 왕복 교통비는 4만 원에 달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 하지만 서울에서는 왕복 2천 원이면 공연장과 집을 오갈 수 있다 했다. 내 고향에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서울에는 4년제만 해도 60여 개에 달한다.
아!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그렇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은 당연한 게 아니었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던 것들은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교육, 의료, 문화, 일자리 등 내 삶의 궤적과 직결된 모든 것이 대도시, 특히 서울에 집중돼 있었다. 그렇다보니 지역에서 나고 자란 내 생활은 철저히 대도시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지방은 식민지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 서울러(서울사람)과 지방러(지방사람)의 차이 / 트위터 갈무리

▲ 서울러(서울사람)과 지방러(지방사람)의 차이 / 트위터 갈무리

식민지의 삶은 ‘여전히’ 유효

지금 내 일터는 서울에 있다. 생활터전 역시 서울이다. 부모님은 대도시에서 일하는 자식을 자랑스러워 하시지만, 화려한 싱글은 영화에서나 가능할 뿐 1인 가구의 삶이 녹록할 리 없다. 언제라도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가서도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
이제는 병원에 가기 위해 하루를 꼬박 쓰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왕복 3천 원의 교통비로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내가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그대로 겪고 있을 것이다. 주체와 대상만 바뀔 뿐 현상은 그대로다. 근본적인 것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식민지의 삶은 유효하다.
그간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역대 정권의 빠지지 않는 공약과 과제였다. 하지만 성과는 늘 미약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지방분권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헌법 개정안에 이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친구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이 사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몇 년이 되었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 2라서 뜯어고쳐야 한다는 말은 나에게도 어려운 내용이다. 하지만 지방분권, 즉 분산이 필요하다는 것은 저런 설명 없이도 잘 알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지역 간 격차가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집중

민선 5기 이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분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곳이 지방정부이다보니, 현안에 따라 기민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성과도 있었다. 포켓몬고 게임이 속초, 고성, 양양 등지에서만 가능하던 때에, 속초시는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했고 해외에 ‘속초’라는 지역을 널리 알렸다. 전주시는 ‘한옥마을’이라는 자산을 근처 남부시장과 엮어 전통시장 살리기에 성공했다. 모두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장 많은 것을 바꾸거나 격차를 한순간에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과 중앙에 몰려있는 것들을 분산하려 계속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그 출발이 지방분권이 되길 바란다. 이번에는 부디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내 고향이 더는 식민지라는 단어와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나는 농어촌에서 나고 자란 것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추억은 내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지역 간 격차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한국에서 미국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레고리 헨더슨은 “파리가 곧 프랑스이듯이, 서울이 곧 한국이다”라며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된 한국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지요.

희망제작소는 2006년 창립 이래, 지역 문제에 꾸준히 천착해 왔습니다. 지역은 우리 삶의 자양분이고 국가의 중심이며, 지역이 살아야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역과 중앙의 균등한 발전을 도모하고 지방자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 대표 활동
– 목민관클럽 : 지방자치 혁신을 고민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연구모임입니다. 정기포럼과 소식지 발간 등으로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으며, 희망제작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기)
– 협치 아카데미 : 지역의 정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데 주민과 행정이 함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치 아카데미와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했습니다. (사례 보기)
– 지방분권 매니페스토 운동 :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방분권을 위한 7대 과제 실천서약(매니페스토) 운동을 펼쳤습니다. 약 120여 명의 여야 후보가 서명하였습니다. (자세히 보기)
– 주민참여예산교육 :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의무화되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주민이 더욱 쉽게 제도를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매해 각 지역 특성에 맞춘 주민참여예산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례 보기)
– 지역리더교육 : 통·반장, 자치위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민을 지원했습니다.
– 목민관학교 :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과 교육의원 출마 희망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아카데미입니다. 2008년부터 총 7기에 걸쳐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약 170여 명의 역량 있는 지역사회리더를 발굴, 양성하였습니다. (사례 보기)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설정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현실에 기초하여 창조되었음을 밝힙니다.

– 글 : 최은영 | 커뮤니케이션센터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8/01/1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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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골 개골 당근밭의 청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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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밭에서 풀을 뽑고 있는 데 가만 보니 반가운 녀석이 있네요. 청개구리 한 마리가 놀러왔왔네요.
조용석 경남 산청연합회 황매골지회 생산자

 

올해도 조합원들과 함께 논학교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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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살림경기서남부 조합원 일곱 가정과 일 년 동안 논 생태를 조사하는 논학교와 벼농사체험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그 첫 번째 만남은 볍씨 넣기로 시작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 많은 분들이 함께하지 못해 마스크를 쓴 소수 정예 사람들만 볍씨 넣기를 진행했습니다. 먼저 포트모판에 볍씨를 3~5알 씩 넣고 복토(흙으로 덮기)를 해 주었습니다. 물을 준 뒤, 모판을 쌓아 놓았다가 논으로 옮겼습니다. 땀 흘린 만큼 점심은 맛이 좋았고요. 쑥인절미를 먹으며 일정을 끝냈습니다. 다음번에는 손모내기로 모를 심을 예정입니다.

김경희 충남 예산 자연농회 생산자

화, 2016/05/3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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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희망제작소, 중국의 르핑재단, 일본의 니폰재단이 함께 모여 한중일 삼국 및 아시아 지역의 사회혁신을 증진하기 위해 동아시아사회혁신협의체를 결성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워크숍을 통해 만난 팬 리 중국 르핑재단 수석자문으로부터 이 협의체의 의미와 배경,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보았습니다. 한글 번역문과 영어 원문을 함께 싣습니다.


동아시아사회혁신협의체(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s, 이하 EASII)의 시작

아시아에서 사회혁신이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식품안전이 최대 이슈인 베이징 인근에서는 소비자-농민 주축의 에코 벤처농업이 뜨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통근자들을 위해 빅테이터를 대폭 활용한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위탁가정에서 자라는 10대 청소년의 복지를 위해 최초로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사회혁신협의체(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s) 워크숍에서는 바로 이런 사회혁신의 성과들이 소개되었다.

동아시아사회혁신협의체는 이렇듯 한중일 삼국 및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사회혁신을 소개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결성되었다. 사회혁신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사회적기업가와 비영리조직, 사회투자자들과 같이 사회를 바꾸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여러 단위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목표 아래 중국의 르핑재단, 일본의 니폰재단, 그리고 한국의 희망제작소가 함께 뜻을 같이 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주요 경제주체인 중국, 일본, 한국은 삼국은 환경 오염, 고령화사회와 같이 공통적으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다. 한중일 삼국은 각기 새로운 혁신 프로젝트와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사회문제들을 해결해왔지만,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사회적 욕구, 문화, 환경에 적합한 긍정적인 사회 변화에 대한 개념과 연구, 그리고 이론은 부족한 상태이다. 동아시아의 사회혁신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서로의 아이디어와 가치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융합과정을 통해 각 분야와 지역을 포괄하는 통합적 파급력(Collective Impact: 특정 사회문제의 이해관계자가 모두 모여 문제의 총체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 동아시아사회혁신협의체(EASII)가 선구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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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II 은 2015년 7월 도쿄에서 첫 시작을 알렸다. 2차 워크숍은 11월 5일 서울에서 2015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GSEF(Global Social Economy Forum)와 공동으로 개최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한중일 삼국 사회혁신의 최근 동향과 사례를 공유하고 공통적으로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소개된 각 나라의 엄청난 창의성과 눈에 띄는 결단력은 서로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사회혁신에 대한 의지를 불어넣었다. 동시에 우리가 분명히 느낀 바는,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한 조직에 의해서 이끌어진 사회혁신이라 할 지라도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문제들을 오롯이 홀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섹터의 사회혁신가들이 만나고, 서로 영감을 얻고,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정부-시민섹터 협업이라든지 비영리조직의 연대의 영역을 넘어서는 체계적인 접근과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EASII는 연구와 네트워크 단위로서 동아시아의 사회혁신 섹터 협업을 이끌고, 새로운 생각과 모델에 기초한 사회투자 해결책을 모색하고, 동아시아의 필요와 환경과 문화에 기여하는 사회혁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스탠포드 사회혁신센터(The Stanford Center for Social Innovation)는 사회혁신을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사회혁신은 고정된 하나의 이념이 아닌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그 의의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세워진 르핑사회적기업가재단은 EASII와 함께 함으로써 중국과 동아시아에 더 큰 임팩트를 만들고, 더 많은 사회혁신가와 솔루션메이커들과 함께 하기를 열망한다.

글_팬 리 (수석자문위원, 르핑사회적기업가재단 / 글로벌링크이니셔티브 공동창립자)

Korea + Japan+China + Social Innovation = Infinite Possibilities
—The Launch of 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EASII)

Social Innovation is an emerging field that takes many different forms, from a consumer-farmer supported eco-agriculture venture in a suburb area of Beijing where food safety is the biggest concern, to the use of big data by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to bring more convenience to millions of commuters, to the first social impact bond initiative in Japan to help teenagers in foster care have a better life. These are a few of the examples discussed at the 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 (EASII) workshop held in Seoul in November 2015.

The 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 is a collaborative venture aimed at creating and supporting a robust social innovation movement in China, Japan, Korea and elsewhere. Launched by the LePing Social Entrepreneur Foundation (China), the Nippon Foundation (Japan) and the Hope Institute (Korea), the initiative aims to play a critical role in raising awareness about social innovation and promoting an environment that helps social enterprises, nonprofit organizations, impact investors and other change agencies achieve greater impact.

As the three major economies of East Asia, China, Japan and Korea face many of the same urgent social challenges, ranging from an aging society to pollution, and each has its own unique innovative projects and ideas on how to resolve them. The region lacks a shared base of concepts, research and theories of positive social change that can fit the needs, culture and environment of the three countries. To take social innovation in East Asia to the next level requires active exchanges of ideas and values as well as integration and collective impact that crosses sectors and the region. Here, EASII can play a pioneering role.

The inaugural EASII workshop was held in July in Tokyo 2015; a second workshop convened in Seoul in November 2015 in partnership with The 2015 Global Social Economy Forum. Participants shared the latest trends and practices in social innovation in the three countries as well as the challenges they face. We were inspired and encouraged by the creativity and determination evident in the case studies from the three countries. At the same time, it became clear that isolated efforts led by even the best and brightest organizations cannot solve the complex social problems that exist today. We need to create a market for social innovation where cross-sector players meet, get inspired and work together. This will require systematic approaches and a new type of leadership that goes beyond “government-social sector collaboration” or “nonprofit alliances”. With this goal in mind, EASII will serve as an accountable research body and network hub by working closely with leading cross-sector organizations active in social innovation in East Asia and globally to develop new concepts, benchmarks and solutions to challenges for social investment and social innovation that will serve the needs, culture and environment of East Asian countries.

The Stanford Center for Social Innovation defines social innovation as a novel solution to a social problem that is more effective, efficient, sustainable, or just than present solutions. Social innovation is a continuing process rather than an ideology. As a foundation established with the mission of leveraging social capital to help the poor, Leping Social Entrepreneur Foundation is committed to making a bigger impact in China as well as East Asia, and is eager for more innovators and solution makers to join EASII.

Fan Li (Senior Advisor, LePing Social Entrepreneur Foundation; Co-founder, Global Links Initiative)

화, 2015/12/0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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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소식지 588호 [한살림 짓는 사람들]

양식이 아니라

‘바다 농사’ 입니다

 

장석 거제 중앙씨푸드 생산자 이야기

 

굴이 자라는 바다는 인류가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에 가장 친근한 방식으로 이루어낸 아름다운
풍경이며, 믿은직한 대안이다

 

장석 거제 중앙씨푸드 생산자

 

일반적인 수산물 양식과는 다르게 굴 양식은 사료, 항생제, 염산 등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들이 일체 필요 없다. 굴은 바다가 오롯이 키우기에, 거제 중앙씨푸드에서 대표를 맡고 있는 장석 생산자는 ‘굴 농사’라 불러 달라고 했다.

중앙씨푸드는 굴을 생산하고 포장해 한살림에 ‘남해안 생굴’과 ‘냉동굴’을 공급하고 있다. 생산부터 포장, 유통까지 책임 있게 관리해,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생산지이다.

굴은 바닷가에서 캐서 먹는 것으로만 알던 1960년대 후반, 장석 생산자의 선친께서 우리나라에서는 선도적으로 굴 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본래 문학도였던 장석 생산자는 거제도 바닷가로 돌아와 아버지를 도와 굴 농사를 개척했다.

거제·통영 일대 바닷가는 적당한 수온에 플랑크톤이 풍부한 청정해역으로 굴 농사를 짓기에는 제격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거제도 해변은 자갈이 선명하게 보이고, 바다내음 머금은 공기가 한없이 상쾌해, 미세먼지 없이 저 멀리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굴 수확은 가을부터 이듬해 5월 늦봄까지 이어진다.
거제·통영 일대가 가장 많이 바쁜 때이다. 아침 7시가 넘으면 바다 양식장이나 박신(굴 까기)공장이나 활기가 넘친다. 바다에서는 연신 작업뗏목으로 굴을 끌어 올리고, 작업뗏목의 굴은 뭍의 박신공장으로 옮겨져, 여성작업자 100여 명이 신속하게 굴을 까낸다. 신선함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딱딱한 외피를 벗은 우유빛깔 굴은 다시 가공공장으로 옮겨져 엄격한 기준으로 세척·포장돼 얼음과 함께 보냉상자에 담긴다.

굴은 바다와 거제도에 활기를 불어넣고, 지역주민들에게 귀중한 수입원이 되어왔다. 요즘은 인근 마을 어머니들만으로는 일손이 많이 달려서 통영시내에서 통근버스를 운영하며 여성작업자들의 출퇴근 편의를 돕는다.

“우리나라 실정에 더 많이 드리지 못해 안타깝지만, 그래도 굴을 드시는 한살림조합원들께서 그 노고는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석 생산자는 우리가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굴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루종일 굴을 수확하고, 까고, 씻고, 포장하는 사람들 덕분임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외에도 일본, 중국, 유럽, 미국 등지에서 굴을 생산하지만 이렇게 맛있고 깨끗한 굴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좋은 굴을 풍부하게 생산하려면 청정해역과 다수의 숙련된 작업자, 엄격한 시설, 물류 등 제반 조건이 잘 맞아야 하는데, 좀처럼 맞춰지기가 어렵다고 한다.

다진 마늘, 고춧가루에 맛있게 무친 생굴을 한 입 베어 물 때 거제도 푸른 바다와 함께 굴을 생산한 사람들을 떠올린다면 더 특별한 맛으로 기억 될 것 같다.

 

장석 생산자는 1985년부터 거제도 바다와 함께 굴 농사를 지어왔다.
공동체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와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에서 이사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변화에도 힘쓰고 있다.

 

 

생굴, 안심하고 먹어도 되나요?

 

올해 초 노로바이러스가 발견되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지만, 거제·통영일대는 대대로 청정한 바다입니다. 지역의 산업기반으로써 지자체가 앞장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 이후에 거제·통영일대는 해역을 지나다니는 관리선의 간이화장실과 양식장의 바다 화장실을 보강하고, 하수종말처리장도 추가로 건설하고 있습니다.

굴은 지역의 생명줄이기에 주민들이 더 조심합니다. 일 년에 한 번씩 미국 FDA에서 직접 와서 바다도 검사하고, 공장도 검사하는데, 올해 3월에도 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생물로 먹는 식품이기 때문에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까지도 한 달에 한번 이상 수질검사를 하면서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푸른 바다 내음 담아

보내는 제철 선물

한살림 굴

 

한살림 남해안 굴

오늘날 수산양식은 물고기를 잡아서 다시 물고기를 먹이는 방식으로 작은 잡어까지 남획해 바다생태를 망가뜨린다.

무분별한 남획은 어족자원을 고갈시켜 국제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굴 농사는 사료, 항생제 등 일체의 투입 없이 바다라는 밭이 오롯하게 내어주는 선물이다.

중앙씨푸드는 복잡한 유통과정 없이 직영 및 계약재배 방식으로 생산단계부터 포장, 유통까지 국제기준에 맞춰 책임 있게 관리해, 한살림조합원에게 신선하고 오동통한 굴을 공급한다.

영양도 풍부하지만 소화도 잘 돼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는 굴. 가장 맛있게 살이 오르는 겨울철에 생물로 먹으면 풍부한 바다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수, 2017/11/2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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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당 장애평등교육 후기>

 

지난 5월 서울시당 신입당원교육에 이은 당원 심화교육으로 서울시당 장애평등교육을 진행했습니다교육은 정윤상 노동당 장애인위원회 위원장님이 오셔서 진행해주셨습니다약 20여 명의 당원 분들이 모여 함께 교육을 듣고평등문화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날 교육에서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장애인 차별 사례장애인운동의 역사여성 장애인의 인권문제에 대해 살펴보는 등 여러 주제들을 다뤘습니다더 나아가 당 내의 장애인 차별사례를 살펴보면서 실질적인 당 내의 평등문화에 대한 고민까지 해보는 알찬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를 들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라는 말은집회현장에서 자주 접하는 말일 것입니다하지만 이 말은오직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의 언어입니다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장애인을 배제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시급한 문제입니다.

 

서울시당에서는 장애평등교육 이후로도 평등문화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며 여러 교육들을 진행 할 예정입니다당 안팎의 평등문화에 대한 고민을 되도록 많은 당원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관심 갖고 참석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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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6/2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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