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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선을 넘은 청년대책 무산시도! 지방교부세 삭감 시행령 통과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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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선을 넘은 청년대책 무산시도! 지방교부세 삭감 시행령 통과 규탄!

익명 (미확인) | 수, 2015/12/02- 15:31

선을 넘은 청년배당·청년수당 등 청년대책 무산 시도! 지방교부세 삭감 시행령 통과 규탄 !  

‘제대로 된' 청년정책 도입 촉구 제 청년·민생·시민단체 긴급 기자회견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015년 12월 2일(수) 오전 11시 30분,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민달팽이유니온,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빚쟁이유니온(준), 청년유니온, 한국청년연합(KYC), 금융정의연대, 청년광장, 청년참여연대, 대학고발자, 참여연대, 민변민생경제위원회, 민생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서울유통상인연합회, 전국세입자협회, 서울세입자협회,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맘편히장사하고싶은상인들의모임(맘상모), 서울노동광장,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500개단체),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50개단체)

 

20151202_기자회견_선을넘은청년대책무산시도!지방교부세삭감시행령통과규탄!_ (7)

 

[기자회견문]


청년을 모욕하는 정치공세 중단하고 제대로 된 청년정책 도입하라!


사회진입에 곤란함을 겪는 청년들의 구직활동과 생활안정을 지원하기 위한 서울시의 청년수당을 무산시키기 위한 정부·여당의 무분별한 정치 공세가 선을 넘고 있다. 포퓰리즘, 아편, 표 매수 행위 등의 발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급기야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정종섭 장관은 청년수당을 ‘범죄’라고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고 있는 ‘새로운 청년정책’에 대해 발전적인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청년수당을 볼모로 원색적인 정치공세를 일삼으며 청년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정부·여당의 태도 앞에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 


돌이켜보면 정부는 노동개악, 공적연금 개혁, 국정교과서 등을 밀어붙일 때마다 청년을 위한다는 명분을 빼놓지 않았다. 대통령은 지난 국회연설에서 청년을 32번이나 언급했다. 최근 청년수당을 둘러 싼 야만적인 논란을 통해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청년사랑’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확인한다. 

 

현 정부가 보여야 할 올바른 태도는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외면해온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청년부터 은퇴자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 안전망을 튼튼히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지방정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도 모자랄 판에 범죄를 운운하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이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정책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요구해 온 청년, 시민, 주권자의 삶에 대한 모욕이다. 정종섭 장관은 자신의 몰상식한 발언에 대해 책임 있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청년수당 논란의 본질은 복지정책을 정비한다는 구실로 지방정부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중앙정부의 막무가내식 국정운영이다. 청년실업, 고용불안, 주거빈곤, 가계부채 등 국가적 과제를 해결함에 있어 중앙정부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며, 각 지역의 상황과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지방정부와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가로막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은 현 정부의 오만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능력을 감추기 위한 갑질도 이만하면 됐다. 정부는 독단적인 시행령 개정을 즉각 철회하라.


정부의 유능함은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필요에 주목하고 귀 기울이는 절실한 태도에서부터 나온다. 청년과 사회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삶의 위기는 국가정책의 진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회참여·일자리·주거·부채·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청년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또한 일상이 된 고용불안에 대항하기 위해 촘촘한 일자리 안전망을 도입해야 한다. 우리는 청년의 삶을 모욕하는 정부·여당의 정치공세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대로 된 정책의 실현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용돈발언! 아편발언! 범죄발언! 선을 넘은 정치공세 즉각 사과하라!

고용불안! 복지불안! 자치불안! 독단적인 결정을 당장 철회하라!

종합적인 청년정책! 새로운 일자리안전망! 제대로 된 청년정책 즉각 도입하라!


2015년 12월 2일

기자회견 참석자 일동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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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참여연대, 성차별적인 표준국어대사전의 페미니스트 정의 삭제 요구

청년참여연대, 성차별적인 표준국어대사전의 ‘페미니스트’ 정의 삭제 요구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라는 페미니스트 정의, 성차별과 오해 조장해

시민 2,000여명의 연서명으로 항의 공문 제출

 

청년참여연대는 오늘 3월 8일, 국립국어원에 ‘페미니스트’의 현 정의 2항, 「예전에,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완전 삭제 또는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항의 공문과 시민 2천여명의 연서명을 제출했다.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페미니스트’의 정의를 「예전에,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청년참여연대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성차별을 조장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성평등에 걸맞는 의미로 바꿔야한다고 밝혔다. 청년참여연대의 시민교육 프로그램인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참가자들은 지난 2월부터 국립국어원의 잘못된 성 인식에 우려를 표하며 ‘페미니스트’ 정의 2항 삭제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2월 6일부터 3월 7일까지 진행된 서명 운동에는 온라인으로 1,166명, 오프라인에서 897명이 참여해 총 2,063명의 시민이 동참했다.

 

청년참여연대는 앞으로도 우리사회의 성차별적 인식을 없애고, 청년세대뿐만아니라 사회 전체의 성평등 문화 확대를 위해 활동할 것이다.

 

 

 

▣ 붙임1 : 공문

 

페미니스트 정의 2항의 삭제 및 전면 수정을 요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청년참여연대는 청년문제를 다루는 참여연대 부설기관입니다.

 

최근 미투운동을 통해 문화계, 정치계 등 사회 곳곳에서 남성중심적인 사회 문화에 억압받고 상처받아온 여성들의 저항의 목소리와 성평등을 외치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사태를 뼈아프게 반성하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장 먼저 직시해야 할 것은 우리사회가 여성을 바라봐온 사회적인 성, 그리고 그 성의 정의(正義) 확립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제대로 된 정의일 것입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페미니스트’를 「예전에,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위 정의는 남녀 간의 사회적 우열을 당연시하는 잘못된 성 인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위자가 됨으로써, 남성은 능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인 존재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차별의 간극을 줄임으로써 성평등을 추구하려는 페미니즘의 본래 의미와는 동떨어져 있으며, 성차별을 조장합니다. 뿐만아니라 우리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성평등의 과제와도 맞지 않습니다.  

반면, 케임브리지 사전은 페미니스트(feminist)를 “페미니즘을 주장하며 사회 문화적으로 여성의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a person who believes in feminism, and tries to achieve change that helps women to get equal opportunities and treatment)”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소개 페이지에서 송철의 원장은 “한국어가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는 소통의 도구로 잘 작동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여성인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이때, 페미니즘은 이 시대를 설명하는 인식이며 과제가 되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고집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현 정의 2항은 더이상 대중의 인식을 반영하지도, 이 시대를 설명하지도, 나아가 송철의 원장이 말한 소통의 도구도 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청년참여연대는 현 페미니스트 정의 2항의 삭제 및 전면 수정을 요구하며, 우리의 요구에 공감한 2,063명 시민의 서명을 첨부합니다. 끝

 

 

보도자료 [원문보기 / 다운로드]

목, 2018/03/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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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노동 연속강좌 - 카드뉴스> 변화하는 노동현실을 이해하고 청년노동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개설 된 청년노동 연속강좌가 다음주부터 첫 강의로 시작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수강 가능 인원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양해바랍니다 ㅠ) * 대상 : 청년노동 문제에 관심있는 누구나 (회당 선착순 25명) * 일정 : 강연 프로그램 참조 * 시간 : 매 회 저녁 7시 * 장소 : 신촌전철역 인근 위지안 (서울시 마포구 고산길6) * 수강료 : 회당 1만원 (조합원은 5천원) * 문의 : 02-735-0261 (청년유니온) * 신청 : bit.ly/청년노동연속강연 (수강료 입금이 이루어져야 신청이 확정됩니다) (계좌 : 794001-04-113589, 국민은행, 청년유니온) * 강연 프로그램 (전체 수강이 아닌 개별강좌 신청도 가능합니다.) 1강 : 9월 21일 목요일 <최저임금 7530원, 쟁점과 과제> 박영삼 (더불어민주당 서형수 의원실 정책보좌관) 2강 : 9월 28일 목요일 <유럽과 한국의 청년보장 제도> 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3강 : 10월 12일 목요일 <노동시간 단축 의제의 쟁점과 전망> 강성태(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4강 : 10월 26일 목요일 <사회적 노동조합으로 보는 청년유니온의 이해> 유형근(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5강 : 10월 31일 화요일 <노동시장 변화의 이해와 새로운 노동정책> 장지연(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월, 2017/09/1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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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증진법 시행의 의미와 과제

 

이기연 |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대우교수


새 정신보건법, 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정신보건법 만큼 파란 만장한 법은 없을 것이다. 1995년 제정 이래 20여 년간 15차례 이상 개정작업이 이루어져 일명 ‘누더기법’이라 칭하기도 한다. 많은 개정작업의 역사가 있었기에 이번 전면개정을 통해 ‘의료법의 특별법’, ‘사회방위법’이라는 오명을 벗고 과연 환골탈태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새 정신보건법, 즉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증진법)은 급박하게 추진되었다는 비판과 이해당사자들의 반대 등 잡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와 재활’에서 ‘복지와 인권’으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시행 직전까지도 언론을 통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정신보건법이 그 제정 배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보호의 근거를 확보하기보다는 사회방어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명칭이 바뀌고 치료와 보호의 범위를 넘어 권익보호와 복지서비스 제공까지 포괄적이고 발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강제입원의 위험성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는 근거는 다양하다. 의료라는 이름으로 환자의 인신구속을 합법화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인 동시에, 보호입원과 강제적 인신구속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 긴장관계는 쉽게 정리되기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이들 논란의 대부분은 강제입원요건을 강화한 조항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특히 ‘언론을 통한 논란’은 결국 새 정신보건법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이해되고 있으며 또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가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사의 제목을 중심으로 볼 때 “정신질환자 강제 입원 어려워진다”라는 담백한 전달에서부터, “정신보건법 개정안, 인권보호법인가, 인권침해법인가?”라는 선정적 질문을 통해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오히려 "인권과 건강권을 침해" 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전파하는 기사까지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정신보건법 개정안 후폭풍? 환자 대란 발생 한다”, “퇴원대란 우려 정신보건법 개정안, 치료 필요한 환자 방치할 뿐", “5월 시행 정신보건법 개정안 논란, 강제입원 막으려다 10만 정신질환자 치료 놓칠라” 라는 제목으로 정신보건법이 시행되면 10만 정신질환자가 입원이 어려워 치료시기를 놓치게 될 뿐 아니라 기존에 입원해 있던 정신질환자 중 개정된 입원요건에 맞지 않는 경우 대대적인 퇴원이 불가피하여 엄청난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로 쏟아져 나오는 ‘대란’이 야기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나마 “정신질환자 1만 9,000명 사회복귀 임박…치료 도울 시스템은 태부족”이라는 기사가 유일하게 사회복귀를 위한 시스템이 부족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 내용은 ‘환자대란’이라는 표현으로 불안유발 및 사회방어적인 입장을 부추기고 10만 정신질환자가 치료시기를 놓치게 될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또한 새 정신보건법이 치료와 보호에서 진일보하여 인권과 복지를 강조한 것과 달리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오히려 방치하여 개정 이전 상태로 역행 하고 있음을 시사하거나 ‘인권침해법’이라 단정 한다. 

 

이렇듯 일방적으로 새 정신보건법을 비판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내용들은 주로 신경정신의학계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신경정신의학계의 비판 취지는 정신보건법이 의사를 ‘잠재적 범법자’로 보는 ‘악법’ 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행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는 정신보건법의 가벼움”, “실행 불가능한 정신보건법 개정안, 전면 수정해야”, “'정신보건법 개정안' 시행 앞두고 졸속 추진 논란”, “현실 무시한 정신보건법 개정안‥산으로 간다?”, “실효성 논란 있는 정신보건법 개정안” 이므로 “정신보건법 개정안, 최단 기간 내 재개정해야” 하며, “정신보건복지법을 다시 개정하라!”고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정신건강증진법, ‘새로운’ 정신보건법인가 ‘최근의’ 정신보건법인가?

시행을 앞두고 언론을 통해 부각되고 있는 이슈들은 결국 다양한 형태의 입원과 입원 연장과정의 주요 장치들이 과도한 행동낭비를 초래하여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와 정신건강심의위원회의 기능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비상시 기구로 운영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분명히 존재한다.

 

가장 선정적인 내용은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을 소환하는 대목이다. “'잉크도 안 말랐는데' 정신보건법 개정안 구설수…묻지 마 살인 후 관심 증폭”,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1년” 이라는 제목들이다. 개정된 정신보건법 조차 ‘혐오범죄’ 혹은 ‘정신질환자의 범죄’로부터 우리 사회를 보호하거나 안전케 하지 못한다고 하며 사회적 불안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사회적 낙인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편 “정신보건법 개정안 '뜨거운 감자'”, “'정신보건법 개정안' 갈등 여전”, “정신보건법 개정안 시행 전부터 ‘시끌’…정부·의료계 대립각”, “정신보건법 개정안 재개정 요구, 사실상 '묵살’”, “정신보건법 개정안…학회 vs 정부, 팽팽한 대립각” 등의 제목으로 신경정신의학계와 보건복지부의 갈등이나 불협화음을 강조하는 기사도 다수 있다. 결과적으로 “정신보건법 개정안 고심하던 복지부…‘예외규정’ 삽입” 등의 제목을 통해 신경정신의학계의 압력으로 정부가 이에 굴복 혹은 후퇴한 입장 등 의료 이해당사자와 보건복지부의 대립각이나 역학관계에 초점을 둔 기사들이 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한 부분에는 “WHO, 한국 정신보건법 개정안 지지”라는 제목으로 강제입원 비중이 높은 한국에 대해 지속적으로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에 근거하여 강제입원 폐지를 위한 노력을 권고해 온 세계보건기구(WHO)의 평가적 입장을 제시함으로써 새 정신보건법에 힘을 실어주는 기사도 있다. 한편, 새로운 정신보건법의 진일보한 인권적 측면을 강조한 것은 “정신병 강제입원, 20년 만에 인권 앞에 서다”라는 제목이 유일하다. 지역사회의 역할과 관련하여, 지역사회의 움직임을 보도한 경우는 서울과 경기도의 상황이 유일하다. "정신보건법 개정안, 지자체도 큰 걱정" 이며, “정신질환자 ‘광역대책망’ 구성”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새 정신보건법의 시행 첫 날인 2017년 5월 30일이 지났다. 이후에 언론에 등장한 새 정신보건법과 관련한 기사는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전문의 진단요건 완화 논란” 이라는 기사를 통해 시행 전 날 새로운 법 적용의 한시적 유예조치를 취한 보건복지부가 새 정신보건법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오늘 정신보건법 시행···환자 퇴원대란 촉각...政↔醫, 상반기 최대 공방전···정책 성패여부 초미 관심”1)이라는 기사에서는 ‘정신보건학계 관계자’의 말을 빌어 “결국 퇴원대란이 이번 정책 성패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며 “의료계 우려가 현실이 될지, 아니면 복지부 주장대로 기우에 그칠지 지켜봐야 한다”고 전한다. 이어 “퇴원대란 여부는 아마도 제도 시행 3개월 후부터 확인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 기간 동안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추이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보도함으로써 정작 정신질환자의 범죄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불식시켜야한다는 기존의 신경정신의학계의 주장2)이나 옹호적 입장과는 달리 우리를 당혹 혹은 경악하게 하는 언사를 전달한다. 

 

그러나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일단 준법진단 하겠다”는 표현으로 준법투쟁을 연상시키고 있으며, “누가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의 결정권자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의료현장의 자구적 대안으로서의 사법입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이와 함께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보호라는 당면한 과제를 수행하는데 “정신질환자 치료·케어할 인프라 너무 부족” 이라는 제목으로 현실적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 본 언론을 통한 새 정신보건법과 관련한 다양한 논란의 주요 생산자는 신경정신의학계이며 정신장애인 당사자나 가족, 다른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는 적극적으로 발화되지 않았거나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편향은 어쩌면 새 정신보건법의 탄생 이유이자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할 방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 즉 새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증진법으로 환골탈태할 것인지, 여전히 ‘새롭지’도 않고 또 다른 개정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인 ‘최근의’ 정신보건법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인지의 시험대에 놓여 있다. 언론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강제입원 혹은 (입원)치료의 필요성에 비해 권익보호와 복지서비스제공에 대한 논의는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취약하다. 이에 대한 대응과 준비, 구체적인 노력을 어떻게 기울여야하는지에 대해 공론화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 효율성 담론이나 사회방어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신보건법이 지향하고자 하는 제정 목적에 초점을 옮겨갈 필요가 있다. 


정신건강 증진에서 정신건강 역량강화로

총 89조로 구성된 새 정신보건법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강제입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에 근거하여, 강제입원 폐지를 위한 장기적 노력과 함께 정신질환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정신건강복지법의 제정 목적에 있다. 이를 위해 정신질환자의 재활 외에 복지와 권리보장을 선언하고 있으며, 그 기본이념에서도 자기결정권과 정책결정에 참여할 권리, 필요한 도움을 선택할 권리를 명시하였다. 정신질환자 개념 정의에 있어서도 의료적·진단적 범주가 아닌 증상과 장애를 위주로 구성하여 의료적 접근 대신 기능적·사회적 접근을 시사한다. 즉 정신질환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은 장애인복지법에서 말하는 장애개념에 가까워졌고 치료의 대상이 아닌 특별한 정체성을 가진 인격, 즉 법적 주체를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적에 걸맞게 과연 지역사회와 복지시스템은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보호 및 정신건강증진과 관련한 현실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인권보호 및 삶의 질은 차치하고라도 기존에 우리나라 만성정신질환자 중에서 결코 충분하다고 볼 수 없는, 최소한의 지역사회 보호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소위 ‘등록관리대상자’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지역사회 보호시스템 안에서 사례관리를 필요로 하는 추정치의 약 20% 이내3)이며 나머지 중증정신질환자들은 사실 상 퇴원을 하여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있으나 정신보건 인프라를 통한 최소한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들은 최근에 강화되고 있는 공공영역의 사례관리시스템에 편입되어 도움을 받고 있거나 더 많은 사람들은 지역사회에서 소위 ‘민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역사회에서는 이러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희망복지지원단이나 최근의 읍면동복지허브화 사업 수행 및 지원인력으로 정신보건전문요원의 배치를 적극 시도하기도 하였다. 즉 정신보건 전달체계나 인프라 만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수요를 지역사회복지의 영역에서 개입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새로운 정신보건법이 작동되도록 올해 부분적으로 필요한 인력을 충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나 절대적인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또한 새로운 정신보건법에서는 공공영역 사례관리시스템과의 연계나 협력 혹은 통합방안에 대한 구성이 전혀 제시되지 않아서 변화하는 복지영역의 환경과 무관하게 혹은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진 법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새 정신보건법이 복지와 인권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당사자인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고 또 반영하고 있는가? 정신질환자들이 어떠한 삶의 경로를, 어떠한 사회적 서비스 이용 궤적을 거치고 있는지 당사자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는가? 아무리 법이 전면 개정되고 목적으로 선포하고 있더라도 우리는 당사자를 존중하고 그 입장에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려고 하는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여전히 정신질환자들은 법 집행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권의 토대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 즉 인간을 정중하게 대하라는 의미로서 이해된다. 그 사람이 어떠한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이므로 존엄한 대우를 받으면서 자신의 생존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인가?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이유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그 설계를 완성해가는 삶을 살아가길 기대한다. 즉 그 방식 자체가 완벽하거나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의미부여하고 자신이 선택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것은 소위 비장애인의 삶에만 적용하고 있으며, 장애인의 삶은 예외적인 것으로 둔다. 

 

법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인간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도 자신의 믿음과 신념이 반영된 것이므로 이성뿐 아니라 감정 역시 법이나 정책이라는 공적 판단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 한다. 즉 감정을 배제한 법이 성립할 수 없지만 특히 혐오와 수치심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혐오와 수치심의 순기능도 존재하지만 이것이 취약한 집단을 향할 때 차별과 배제를 낳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에 바탕 하는 자유주의 사회라면 혹은 그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라면 자신과 타인의 유한성과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편 그녀는 인간의 역량은 “한 사람이 타고난 능력과 재능인 동시에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환경에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집합”으로 확장하여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스바움은 자신의 역량이론4)을 펼치면서 궁극적으로 개개인의 내면적 역량만이 아니라 결합역량, 즉 외부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오늘 우리의 현실에 적용한다면 정신질환자의 자기결정 능력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자기결정역량을 강화하고 개인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기 위한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보람 있는 일을 한다면 정부는 제몫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누스바움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국가는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정책보다 건강역량 증진을 정치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한두 개의 건강 관련 정책을 개발해 모든 국민에게 적용하는 방식이 아닌, 개개인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과정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국가의 역할을 되물으며 어떤 정책을 선택하고 실행할 것인지의 방향을 가늠케 한다.

 

내용적으로는 인권보호와 삶의 질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신건강증진법에서 여전히 국가의 가부장주의적 개입 의지가 희미하게 베어 나오고 있으며, 그 개입을 추동하거나 현실화할 수 있는 자원 투입이나 인프라 확충의 가능성 역시 아직은 멀게만 느껴진다. 자유는 무료가 아니다. 자원의 결여는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달성하거나 향유할 수 없다. 즉 자원 없이 자유도 없다. 따라서 정신건강을 증진하는 정책이 아니라 정신건강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으로의 변화를 통해 개인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는 의지의 천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제 막 문을 연 ‘정신건강증진법’의 문을 다시 나와 ‘정신건강역량강화법’을 주문하는 것은 너무 이른 것인가?

 


1) http://www.dailymedi.com/detail.php?number=819104&thread=22r01

2)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정신장애인의 범죄율에 비해 10%에 지나는 않는 다는 것이 대검찰청 범죄분석보고서(2011)로 주로 인용되고 있음.

3)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사업보고서(2015). 7쪽.

4)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지음. 한상연 옮김. 2015. 『역량의 창조』. 서울:돌베개.

목, 2017/06/2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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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김성욱 |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복지정책과 제도는 한 공동체와 그 구성원을 대하는 당대의 이해(理解)를 반영한다. 따라서 정책과 제도를 보면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부조제도는 복잡하기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제도이다. 수급신청자 가구 뿐 아니라 수급가구의 법적 부양의무자의 주민등록정보에서부터 가구원 전체의 소득과 재산, 민감한 금융정보와 출입국 기록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수급자격을 부과할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보의 양과 범위는 어떤 사정기관도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방대하다.  

 

왜 우리는 다른 어떤 나라도 하지 않는 복잡한 제도를 운영하게 되었을까. 사실 우리 공공부조제도 형성사를 돌아보면, 가난에 몸부림치다 국가의 원조를 요청한 자가 있더라도 긴급한 구호를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몰래 숨겨놓은 소득과 재산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지배되었다. 단순히 현금소득만 없고 몇십억대 집에서 살고 있는 자산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신청자의 자녀가 대기업에 다니는 고소득자임에도 불구하고 파렴치하게 국가의 도움을 요청한 자라고 미루어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혹여 있을지 모를 부도덕한 신청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물론 이런 사례는 전 세계에서 손쉽게 발견되지만, 부정수급자가 있다면 추후에 환수하고 적절한 처벌을 가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다. 어쩌면 부정한 신청자에게 복지를 제공했다는 비난이 두려운 정책입안자와 공무원들의 보신주의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에 우리는 지역, 성, 가구원 수, 소득유형, 주거형태, 질병의 정도, 노동가능능력, 장애여부, 직종, 부양의무 등 온갖 판정기준과 예상사례들로 만든 엄청난 ‘경우의 수’를 제도에 반영하고자 했으며, 결국 수급자격이 있는지 여부조차도 사회복지전담공무원 개인이 처리할 수 없는 복잡한 제도괴물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그래서 정부는 매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수급자격 판정용 슈퍼컴퓨터와 전담조직을 별도로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수십년 연락이 끊인 자식의 소득으로 수급권이 박탈된 노인의 음독자살이나 ‘송파 세모녀’와 같이 국가지원을 받지 못한 가족의 동반자살과 같은 안타까운 기사를 끊임없이 목격하는 사회에 살게 되었다.

 

다시 환기하자면, 제도는 당대의 이해를 반영한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이러한 아이러니는 제도적 합리성의 오류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면 답은 우리에게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의지가 있는가. 사회의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는 개인과 가족의 역사와 고통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보다 우리는 서로 신뢰하는가. 

 

이번 호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기준을 기획으로 한다. 이는 가족이 일차적인 생계의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국가가 정한 부양의무자가 일정 수준 이상이라면 피부양자는 사회적 구호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짧은 지면에 다 열거하기도 어려운 문제와 사회적 아픔을 가진 대표적인 독소조항이긴 하나, 대표적으로 법적쟁점과 사각지대 문제 그리고 폐지여부와 관련한 쟁점을 중심으로 세 가지 주제를 준비했다. 돌이켜보면 부양의무자기준이 그나마 세간의 관심이라도 받은 경우는 정권이 바뀌면서 시민사회의 요구가 응집되고 생계형 가족동반자살과 같은 극단적 사건이 발생할 때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이슈가 부상하면 자연스럽게 다음을 기약하지도 못한 채 잊혀져갔다. 모쪼록 이번 복지동향이 부양의무자기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들의 관심과 고민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화, 2017/08/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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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16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5년 7월 6일(월)부터 8월 6일(목)까지 5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26명의 10~20대 청년친구들이 함께 참여하는데, 이 5주 동안 우리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친구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직접행동을 기획하고 진행함으로써 미래의 청년시민운동가로 커나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후기는 강성준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방중마다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20150728_청년공익활동가학교16기_빚을내도빛나지못하는청년_한영섭강연

 

오전 강의인 '빚을 내도 빛이 나지 않는 청년'의 경우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강의였다.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자주 들어본 이야기들이 있다. 바로 금융자본주의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물론 오전 강의의 강연 역시 이 논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다만 본인이 신선하게 느낀 부분은 그 금융 문제의 안에서 청년 세대를 보조해보자는 논지의 주장이었다. 물론 그라민 은행과 같은 신개념 금융 논의가 존재했지만, 국내에서 결은 다르지만, 금융 공간 안에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시민사회의 시도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계점 역시 존재한다. 지금까지의 강연들을 보았을 때 시민사회의 활동 단계는 당사자들의 결집 - 사회의 관심 - 추가적 결집 - 이후의 결과 도모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여 졌다. 그러나 '빚쟁이 유니온'이라는 강연 내용에 있어서 과연 누가 "나는 빚쟁이다!"라고 외치며 사회에 주목을 끌려고 할지가 의문이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빚쟁이'라는 사회적 낙인에 대한 추가적 피해와, 사회의 관심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빚쟁이'라는 소재에 대한 사회의 냉소가 조직화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강연자 역시 이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그 지점에서 고민은 계속 하고 있지만, 다른 사업에 있어서 청년 세대에게 금융적 지원을 더 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크기 때문에 위 문제는 숙려를 더욱 진행하며 현재의 사업을 유지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50728_청년공익활동가학교16기_빚을내도빛나지못하는청년_한영섭강연

 

어쩌면 매우 무책임한 발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강연자의 금융 운동에 대해 깊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 금융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없는 청년세대에게 진입하기 힘든 기존 금융권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제2금융권과 같은 공간 보다는 대안적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는 시도에 대해서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돈이라는 소재가 인간이라는 주체까지 좀 먹어가는 현실 속에서, 돈 보다 인간에 더 큰 무게를 둔 금융 운동은 분명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좋은 단서를 강연자가 소개했는데, 자율 이율과 대출의 용이함을 이용해 대출만 받고 상환을 하지 않는 사례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상환률은 90%에 육박하며, 자율 이율 역시 천차만별이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수준의 이율은 들어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강연은 금융이라는 화폐에 의한 관계보다, 인간이라는 관계가 더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준, 정말 '신선한' 강연이었다.

월, 2015/08/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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