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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복지는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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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복지는 포퓰리즘이다

익명 (미확인) | 일, 2015/11/22- 19:20

복지는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 우리말로는 ‘대중주의’ 정도로 번역될 이 용어가 최근 서울시의 청년수당을 비난하는 근거로 또 회자되고 있다.

 

이 말이 그렇게도 저급한 정치나 정책을 말하는 걸까? 사실 일반적인 정의는 그렇지 않다. “특권층과의 투쟁에서 보통 사람들의 권리와 힘을 지지하는 정치적 원칙”이라고 프린스턴대학의 용어집은 풀이하고 있다. 캠브리지사전에서는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사상,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말은 1891년 미국에서 결성된 ‘인민당’이 처음 사용하였다. 누진소득세, 상원의원 직선제, 독점기업 규제 등을 주창하며 대지주가 아니라 소작농을, 기업가가 아니라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면서 당원들 스스로를 포퓰리스트라 부른 데서 연유했다. 이런 포퓰리즘 정신이 녹아있는 것으로 인류사의 가장 숭고한 혁명인 프랑스 대혁명부터 미국의 독립전쟁이 꼽히고 있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선진국에서 시민 일반의 권리와 의지를 대변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평가된다.

 

결국 포퓰리즘은 대중 일반의 욕구와 바람이 외면당하고 차단되어 그들의 삶과 생활이 온통 불안과 고통으로 점철될 때 ‘다시 대중 속으로!’라는 자각을 하게끔 만드는 건강한 정치적 선언이다. 권력을 누리고 민의를 왜곡하는 엘리트 특권층의 시각을 벗어나 대중 일반이 갖고 있는 보통의 생각과 바람에 직접적으로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요체이기도 하다.

 

이 포퓰리즘이란 용어가 한국에서 고생하고 있다. 대담한 복지를 두고 일부 반복지론자들이 “빨갱이식”이라는 녹슨 칼 대신 최근에 꺼내든 것이 “포퓰리즘”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불편해하는 복지란, 대중들의 권리에 주목하고 항상 대중의 욕구와 바람에 기초하여 설계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에 기반한다, 선심성이나 무책임, 무모함을 강조하는 ‘오염된’ 포퓰리즘이 아니라 민주의의의 원리로 돌아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절실함을 담아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설계하는 ‘제대로 된’ 포퓰리즘 말이다.

 

서울시의 청년수당만 해도 그렇다. 중앙정부는 그간 학계와 시민단체, 청년단체들이 주창해온 청년실업수당제도나 청년고용할당제 등을 외면해 왔다. 대신 매우 까다로운 절차와 경직된 참여 과정을 거치게 하고 최장 6개월, 연간 2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하는 소위 ‘취업 성공 패키지’라는 소극적인 제도를 도입해버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대부분은 일찍부터 청년에 대한 종합적인 안전망으로 실업보험이나 실업수당제를 운영해 오고 있다. 수당의 지원 기간도 제한이 없거나 그 수준도 월 100만원에 달하는 이런 정책과 ‘취업 성공 패키지’는 대조적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청년네트워크를 구성하여 129회의 팀별 모임을 갖고 18개의 정책 의제를 발굴해왔다. 올해 1월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하고 청년정책위원회, 청년의회 등을 개최하여 서울 청년들의 소리를 직접 들어왔다. 그 결과의 하나로 마침내 내년 3,000명의 청년들에게 총 90억원을 투입하여 서울청년활동지원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소극적 중앙정부정책의 빈 곳과 까다로운 접근성과 모호한 성과를 넘어보기 위해 시범적 성격의 사업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과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복지부가 총출동하여, 중앙정부 정책과 중복되니 불허할 것이 뻔한데도 자신들과 반드시 협의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 정책의 수립과정이요 내용이다. 이것이 반복지 진영이 모두 달려들어 포퓰리즘이라 거세게 비난하는 정책이다.

 

그래 맞다.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은 분명 포퓰리즘이다. 청년대중들에게 묻고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여 만든 정책이란 점에서 ‘진정한’ 포퓰리즘 정책의 전형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책을 무책임과 낭비라는 이미지로 덧칠하려는 의도를 갖고 포퓰리즘의 올바른 뜻을 오염시키지 마시라. 근본적으로 모든 복지는 포퓰리즘이다.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 이 글은 2015년 11월 22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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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7. 8. 8)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도 증세 카드를 꺼냈다. 증세 없이는 복지가 가능하지 않다는 시민사회 진영의 당연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졌지만, 그 정도 증세로 복지국가 건설은커녕 대통령의 공약도 충족시킬 수 없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증세안이 나오자 ‘세금폭탄’론이 또다시 등장했다. 조세가 재산권 침해라 보는 세력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성장을 통해 전체 경제 파이를 늘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성장이 곧 고용과 복지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도 충분히 확인했다. 그래서 공공지출의 확대를 통해 고용을 확대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지, 장차 어떤 사회경제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그것은 누가,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더 내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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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복지를 원하면 그만큼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갈수록 복지수요와 요구는 증가하는데 거기에 비례해 세금을 내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점에 어려움이 있다. 많은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정부의 공정한 법집행에 대한 사회적 신뢰,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풀겠다는 사회적 연대의식 등이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시사인)

한국의 조세부담률, 사회복지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로 지목하는 북유럽 국가는 모두 조세부담률이 높고 공공 사회지출의 비중이 매우 높다.

그리고 사회 양극화로 갈등이 심한 나라 대부분은 조세부담률이 낮은데, 그것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실제로 할 수 있는 재원이 부족해서 각자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은 취약한 복지를 자선과 기부로 메운다.

자본주의 국가들을 단순하게 분류하면 높은 조세로 공공복지를 유지하는 나라와, 낮은 조세로 인한 사회 파괴의 위험을 자선과 기부로 막는 나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북유럽 복지 자본주의가 전자라면 미국·영국 등 앵글로색슨형 자선자본주의는 후자에 속한다.

당연히 중북부 유럽 국가들이 삶의 질이 높고 사회통합성도 높다. 조세부담률이 낮다는 점에서 한국은 영미형 국가에 가깝지만, 자선이나 기부도 이들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는 점에서, 아직 이런 국가의 반열에 들어서지 못했다.

즉 복지, 교육, 의료, 주거의 상당 부분을 사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능력 있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 간의 격차와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 이른바 ‘수저 계급론’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한국은 가족책임, 가족투자 국가다. 국가나 사회에 대한 낮은 신뢰 수준과 공공서비스의 부족이 가족주의를 강화해왔다. 큰 부자들이 반칙으로 돈을 벌어도 세금도 잘 내지 않고 사회적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에, 작은 부자들도 재산을 무조건 자식에게 물려주려 한다.

국가의 공공 인프라 확대로 거저 얻은 부동산 재산이 자녀들에게 편법으로 상속되는 것이 가장 정의롭지 않은 일이다. 재벌, 언론, 사학, 대형교회 등 사실상 공공적 성격을 가진 기관이 한 가족에게 독점, 상속되는 행태는 한국 사회의 천박한 수준을 말해준다.

어쨌든 낮은 조세, 낮은 사회지출 국가인 한국이 하루아침에 복지국가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중위 조세부담, 중위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기부를 어렵게 만드는 제도와 법을 손봐서 ‘사회적 상속’의 관행을 확산해야 한다.

조세부담률이 높거나 기부가 활성화된 나라들은 모두 국민의 정치 참여율이 높거나 신뢰 수준이 높다. 즉 국민이 정치과정에서 배제되지 않고, 정부를 믿어야 자발적으로 세금도 내고 기부도 한다는 이야기다.

작은 부는 노력과 행운의 결과지만, 큰 부는 모두 국가나 사회의 인프라로 얻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중위의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사법정의 수립, 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립, 그리고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대기업에 대한 각종 특혜나 조세감면 조치를 없애야 하고, 불로소득을 엄격히 추징해야 하며, 불법 편법 상속 관행을 막아야 한다.

또한 국민의 80%는 지금보다 소득세와 소비세를 더 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는 물론 토지보유세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한편 한국처럼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나라에서는 사회적 역량 강화를 위해 자선보다는 공공영역에 대한 기부를 더 격려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문화인들이 정부 지원에만 의존할 경우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사건 같은 것이 일어난다. 문화, 교육, 학술 영역의 재단 설립이 확대되어야 사회가 튼튼해진다.

정부는 조세와 기부를 점진적으로 높여 후진적인 가족투자 국가에서 사회연대 국가로 이행하기 위한 로드맵을 보여주어야 한다.

목, 2017/08/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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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돈...나랏돈은  권력의 눈먼 돈인가? "공평한 세금으로 복지는 늘리고 불평등은 줄이고!"

지난 9월 8일, 정부가 발표한 2016년 예산안에는 세수를 늘릴 생각도 복지 늘릴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한국은 세금과 복지를 통한 재분배가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부실자원외교로 혈세를 낭비한 권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불평등한 세금을 공평과세하여 복지를 늘리는 것에 대한 시원하고 화끈한 맥주파티를 열었습니다. 

 

공평한 세금으로 복지는 늘리고 불평등은 줄이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가능할까요?

국회에 제출된 내년 정부 예산안은 국회 심의를 거쳐 12월 2일에 확정될 예정입니다. 참여연대는 예산안이 제대로 심사되는지 똑똑히 지켜보겠습니다. 

20151002_9월의 집중사업_세금낭비 조세개혁.jpg

활동 자세히보기

 

 

금, 2015/10/0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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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100억 원 이상 공사 직접시공제 유예 대책, 건설업 혁신 아니다!- 직접시공제 없는 적...
목, 2016/09/2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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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정치의 길, 박원순의 길

미래가치의 성공은 정치공학적 행보로 얻어지지 않는다

 

최택용 콜리젠스 정치연구소장

 

신년 모임에서 머리 아픈 정치 이야기를 하지말자고 하는 지인을 종종 본다. 그러나 어느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시민들보다도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치 이야기를 즐긴다고 한다. 그 지인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과 분열', '계층, 집단의 이해관계 충돌', '민생과 무관한 정치'를 개선하지 못하는 '여의도 정치의 비생산성'에 짜증을 내는 것이다.

 

정치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하여 바꾸어야 할 영역이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는 상식과 합리의 눈으로 봤을 때 혐오스러운 문제를 고치지 않고 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촛불 시민혁명+대통령 탄핵+대통령 선거' 과정을 거쳐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지만, 촛불 시민혁명의 정신을 구현하려는 여의도 정치권의 응답은 들리지 않는다.

 

정권을 빼앗긴 제1야당은 과거식 '적대적 공존 체제'로 환원하기 위한 '모든 것의 정쟁화'를 추구하고, 제2야당과 제3야당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생존하기 위한 정치정략적 이합집산에 여념이 없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야당들의 공세와 발목 잡기를 극복하는 능력과 정치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정치개혁, 검찰개혁, 경제개혁은 물론이고 촛불 시민혁명 정신을 반영한 개헌 추진은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2018년 정치권의 최대 관심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다. 그 중에서도 서울시장 선거를 향한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은 지대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3선 도전 여부를 둘러싼 설왕설래는 몇 달째 이어져오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박원순 시장에게 서울시장 출마가 아닌 다른 길을 압박하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것을 고려할 때 이례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여의도 정치 문법'으로 볼 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서울시장직을 둘러싼 '여의도 정치'의 시각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것도 '여의도 정치'를 바꾸는데 보탬이 되리라 본다.

 

여의도 정치가 박원순에게 권했던 두 가지 길

 

첫째, 보궐선거 출마를 통하여 여의도 국회에 진입하기를 권했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의 취약한 당내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 의원 배지를 달고 여의도 국회에 들어오라는 권유였다. 지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원순이 고전했던 이유가 당내 조직의 부재였다는 그럴듯한 이유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촛불혁명시대를 받아 안는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시장의 길이 될 수 있을까? 전술했듯이 여의도 야당은 촛불시민혁명 정신을 구현하는 개혁노선으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경쟁할 의지가 전혀 없다. 특히 국회 116석의 제1야당은 촛불 시민혁명 정신에 역행하는 왜곡된 이념 대립과 대결 정치를 또다시 추구하면서 국민 분열을 통한 지지층 복원을 꾀하고 있다. 정당정치개혁과 정책 경쟁을 통한 국민신뢰 회복이라는 정도(正道)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이런 퇴행적 정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개혁입법을 추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이 자체개혁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도록 견인하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야당들이 촛불 시민혁명 정신과 미래가치에 무관심하고 낡은 정치를 지속하는 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과 선거 승리는 보장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내부가 현상유지에 머문다고 해도 더불어민주당 뒤에 버티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에 따른 낙수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여의도 정당정치는 촛불 시민혁명 전과 바뀐 것이 없다. 촛불 시민혁명 정신이 무엇인가? 오작동 되고 있는 대의정치를 바로잡고 시민주권이 구현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오작동 되고 있는 대의정치는 시민주권, 당원주권에 근거하지 않고 기득권과 특권에 의거하여 움직이는 정당 자체의 비민주적 한계에 기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정당들 간의 대립과 정쟁이 우리 여의도 국회의 현실이었다. 현재의 정당별 의석 분포가 이러한 현실을 바꾸는 것을 더 어렵게 하는 조건이다.

 

박원순은 여의도 정당정치를 경험한 바가 없다. 시민운동 출신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된 박원순은 여의도 정당들과 이익을 나누는 것에 능숙하지 못하다. 서울시장직을 여의도 정치인으로 교체하는 것에 더불어민주당 일부 정치인조차도 적극 찬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박원순을 여의도 정치인으로 순치(馴致)시키고 싶은 것이다.

 

박원순에게 현 여의도 정치에 진입할 것을 권유하는 것, 시민정치와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꿈꾸는 박원순을 여의도 정치문법에 익숙한 정치인으로 길들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116석의 자유한국당을 견인할 수 없는 121석의 더불어민주당에 박원순 한사람이 더 추가된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박원순에게 여의도 정치인이 되어 당내 세력을 키워서 대통령이 되라는 정치공학적 요청일 수는 있겠다.

 

그것은 성공하는 여의도 정치인의 길은 될지언정 박원순의 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경남도지사 출마를 권유했다. 민주당내에서 박원순에게 이 길을 권한 사람들의 논리는 이러했다.

 

'당을 위해서 험지 경남에 나가달라. 승리할 경우에 부울경 지역을 되찾는 주역이 되어서 정치적 존재감이 극대화된다. 고향인 경남지역 기반까지 획득하여 대선후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박원순 시장의 참모진이 이런 정치적 실익을 모를 리는 없다. 그러나 이런 이벤트 형식의 정치공학적 행보에 기대어 대권행보를 하는 것을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은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험지 출마'라는 무가치한 여의도식 정치 이벤트와 본질적으로 다른 '국가균형 발전, 지방분권'을 위한 결단으로 수도 서울을 떠나서 경남도지사에 출마하는 것은 고려했다고 본다. 박원순 시장에게서 그런 취지의 자문을 요청받은 학계, 문화계 지인들의 증언도 존재한다. 한국사회 불균형, 불평등 해소라는 국가백년대계와 밀접하게 연관된 '국가균형 발전, 지방분권'이라는 명분을 앞에 두고 고민했으리라.

 

그러나 경남도지사 출마를 '험지 출마를 통한 대권 이벤트'로 접근하는 정치공학적 당내 시각, 동일한 프레임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접하고 박원순은 경남도지사 출마를 고려할 수 없을 것이다.

 

박원순의 길

 

2011년 박원순 시장이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때 상황이 떠오른다.

 

불가역적이라고 생각했던 한국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무상급식' 저지를 정치적 에스컬레이터로 삼은 전임 시장의 승부수로 인해서 서울시가 대혼란에 빠졌던 시기였다. 당선된 직후부터 박원순 서울시는 국정원 공작에 시달렸고, 지방정부 서울시를 지원해야 할 중앙정부는 오히려 서울시를 견제하기 바빴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점철된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도 그런 기조는 이어졌다.

 

그런 정권 아래에서 6년 임기를 야당 서울시장으로 보낸 박원순이 얻은 긍정평가 64.5%, 부정평가 29.5%라는 성적표는 믿기 힘들 정도이다. 그것은 박원순이 여의도 정치를 능숙하게 구사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자유한국당 출신 시장들은 물론이고 그 이전 민주당 출신 시장들과도 다른 가치로 서울시정을 펼쳤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박원순이 여의도 정치를 경험하거나 국회의원 경력을 거쳐서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면 이런 행정적 성공을 거두기 힘들었을 것이다.

 

촛불 시민혁명이 남긴 유산과 희망은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시의 검증된 인재와 정책을 사용하겠다고 공언했고, 실천하고 있다. 서울시가 정부에 건의한 과제의 59%가 문재인정부의 공약과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도 서울시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적극 지원하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시민들의 삶에 이식하는 첨병이 되어야 한다. 서울시와 정부는 성공과 실패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시민운동가 박원순 시장이 이제야 촛불 시민혁명 정부인 문재인 정부를 만났다. 문재인 정부를 성공시키고 미래로 향하는 서울시의 변화를 불가역적으로 만드는 일,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박원순이 다음 대통령이 되든 말든 간에 박원순의 길은 미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여의도에서 자기 계보와 조직을 만들고, 험지에 도전하는 모험수를 던지고, 지역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이런 여의도식 정치에 소질도 없고 경험도 없다. 그러므로 박원순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여의도 정치를 따라하더라도 대통령이 될 수가 없다. 시민을 위하여,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하여 박원순의 길을 가야한다.

 

세상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권력은 기득권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여의도 국회와 정당들의 모습이다. 여의도 정치가 스스로 만든 자기모순을 해결하지 못하여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서 수술을 해주었다. 그러나 급속 마취에서 깨어난 여의도 정치는 이전과 다르지 않은 행태로 정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를 시민주권 지방정부, 민주주의 서울 플랫폼, 사람중심 도시, 평화와 환경의 도시로 이끌어야 한다. 역대 광역 지방정부 중에서 '미래 가치'를 제시하며 행정을 펼치고 성공을 거둔 경우는 드물다. 시민주권, 혁신, 소통, 도시재생, 태양의 도시... 박원순 시장은 이 미래가치를 앞으로 4년 동안 더 확고하게 성공시킬 의무가 있다.

 

변화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낡은 것은 새 것이 등장할 때 사라지거나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면 빛을 만들어야 한다. 어둠 속에서 적응하려고 애쓴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이 여의도 정치의 전복을 꿈꾸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길이 아닐까?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화, 2018/01/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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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시민단체와 손잡고 '식품 방사능 검사' 확대 실시 (아시아경제)

서울시는 시민단체와 함께 시중 유통식품과 학교급식 재료에 대한 방사능 수거·검사를 확대한다고 1일 밝혔다.

협약에 따라 ‘식품 중 방사능 모니터링단’을 모집해 유통식품 100건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동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시민이 의심하는 방사능 식품에 대한 검사도 공동 추진한다. 

지난 29일 시는 방사능 감시 시민단체모임인 ‘시민방사능감시센터’와 ▲시중 유통식품 방사능 기획 검사 ▲방사능 관련 정보 수집·공유 ▲시민 방사능 검사 청구제 공동 추진 ▲시민 교육·홍보 등을 골자로 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참여시민단체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두레생협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총 8곳이다. 


아래 주소에서 기사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43017081431014

월, 2016/05/0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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