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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안보개발국가를 넘어, 평화복지국가로(12/4 13:00~18:30 홍대 앞 가톨릭청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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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안보개발국가를 넘어, 평화복지국가로(12/4 13:00~18:30 홍대 앞 가톨릭청년회관)

익명 (미확인) | 금, 2015/11/27- 10:53

심포지엄 안보개발국가를 넘어, 평화복지국가로

 

초대합니다. 

 

'한반도의 분단 현실 속에서 복지국가는 어떻게 가능한가?’ 참여사회연구소는 2012년부터 이 화두를 풀기 위해 분단과 민주주의, 평화와 복지국가 건설과의 관계를 연구해오고 있습니다. 

 

한국사회 발전의 선결조건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의 실현만이 강조되거나,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한반도 분단과 무관하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켜나가는 과정이 한국사회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한국사회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공진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담론 또는 이론으로서 평화복지국가의 가능성을 점검하고, 독일의 경험을 참고하여 정치·경제·사회·복지 등에 있어서 체제전환과 통합, 통일을 위한 한국의 과제들을 폭넓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쪼록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하시어 한반도의 평화와 복지국가에 대한 참여사회연구소의 고민을 함께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2015년 11월
민주주의의 퇴행을 지켜보며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윤홍식

 

[심포지엄] 

안보개발국가를 넘어, 평화복지국가로 - 독일의 경험과 한국의 과제

- 일시: 2015년 12월 4일(금) 오후 1시-6시30분

- 장소: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3층 바실리오홀 > 오시는 길

- 주최: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 참가등록 http://goo.gl/forms/GJ24kfBxco

 

심포지엄 프로그램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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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 이후 평화복지국가 기획의 과제

 

김건우 |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주적이 누구입니까?” 지난 대선 한 TV토론회에서 던져진 질문이다. 이 물음은 흡사 신앙고백처럼 주적고백을 요청한다. 적국을 말하는데 머뭇거리거나 답을 하지 못하면 의심받고, 적과 내통한 자 또는 적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고백문답은 북한이라는 ‘적’과 만성적으로 대치하면서 나타난 ‘반공신앙’의 교리문답이기도 하다. 이단을 색출하려는 이 문답은 내부의 전쟁을 전제로 한다. 남과 북은 서로를 적으로 간주해 항구적인 전쟁상태를 지속해왔고, 절멸의 공포 때문에 각각은 내부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해왔다. 이 내부의 전쟁, 일종의 상상적 내전이라 부를 수 있는 상태는 ‘대한민국의 국체보전’을 명분으로 만들어진 국가보안법 등에 의해 재생산되어왔다. 이 법에 따르면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제1조)를 처벌할 수 있다. 이는 ‘목적’(또는 사상)이라는 증명 불가능한(또는 반증 불가능한) 근거를 통해 자유로운 ‘결사’를 부정함으로써 시민을 개인으로 파편화한다는 걸 의미한다. 일종의 반공규율이 일상화된 사회가 조성되는 것인데, 이 질서는 비밀정보기관, 치안기구 등 억압적 국가장치에 의해 유지·작동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헌법을 종속시킨 국가보안법 우위의 일상화된 반공규율에 의해 구조적·문화적 폭력이 점증한 상태인 분단체제, 즉 일종의 예외상태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반공주의·분단체제에 기인한 안보국가 기획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주권자의 결단을 상례화하는 정치질서를 법 제도화시킴으로서 가능했던 것이다.

 

안보국가 기획(분단체제)의 정치신앙이었던 반공주의는 그야말로 어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초월적 이념이었다. 반공주의에 기반한 정치세력은 박정희라는 유령을 국면마다 소환했고, 북한은 절대적 악의 형상으로 재현되었다. 식민지 조선과 그 일대에서 형성되어 남한에 정착한 공산주의·사회주의세력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궤멸했고, 이후 반주변부의 위상을 갖게 된 남한에서 좌파는 권력자원으로부터 만성적으로 배제되어왔다. 피로 써내려간 노동·민중운동사가 그러하듯, 노동자는 이렇다 할 민주노조를 가질 수 없었고 ‘노동조합=좌익(내부의 적)’의 등식아래 노동조합은 반체제적인 행동으로 간주되어 탄압 당했다. 노동자들의 결사는 언제나 공안이슈였고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전쟁으로 유비되었다. 이렇듯 반공주의 우위의 사회질서는 내부의 적을 곳곳에서 발견·생성해내었고, 이를 자양분 삼은 보수세력의 정치권력 독점화는 굳어져갔다. 

 

반공주의와 평화복지국가 기획의 관계

이후 한국사회는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정치적 민주화를 획득했다. 대표를 직접 선출할 권리를 얻었고 행정부는 군부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민주노조가 건설되었다. 사회전반에 걸쳐 정치참여의 자유가 확대되었다. 80년대 중후반 이후로 진행된 일련의 민주화는 시민권의 확장을 가져다주었지만, 반공주의는 여전히 내부의 적을 색출해내고 있었다. 반공주의의 정치적 토대로서 한반도 정세 또한, 정치세력의 교체기 마다 부침을 거듭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를 전후로 목격된 노골적인 부패와 유착, 정보기관을 동원한 정치조작 그리고 세월호 사건 등 지속적으로 발생한 ‘정치의 실패’는 일정한 균열을 낳았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국가기구에 대한 불만과 국가의 공백에 대한 불안은 변화의 열망으로 치환되어 2016-17년 촛불항쟁으로 폭발했다. 그리고 촛불광장에서 발견된 수많은 시민은 모두 삶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수달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광장의 정치는 비가역적 효과를 낳았다. 게다가 최근 한반도 정세의 긴장완화로 인한 항구적 평화에 대한 기대와 보수정당은 몰락에 가까운 패퇴를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개혁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는 ‘낡은 보수’ 즉, 반공주의에 기반한 정치의 불가능, 더 이상 반공주의를 통한 ‘공포의 동원’, ‘배제의 정치’가 작동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속적 단절로 인해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공고히 구축된 분단체제의 해체를 상상할 공간이 개방되었다.

 

그렇다면 상술한 내용처럼 반공주의의 해소를 통해 시민적 권리의 확장이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평화복지국가 기획 또한, 그것의 성립 조건으로 안보국가의 종언과 반공주의·분단체제의 극복을 말한다. 곧, 복지국가 또는 복지체제로의 이행이 지연되는 원인은 반공주의 우위의 질서, 그로부터 파생된 건설주체(정당-노동조합의 정치연합)의 미성숙 및 정치자본의 불균등 등에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나아가 외재적 조건으로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비롯한 평화체제의 구축)도 중요하지만 복지체제가 국가 내부로부터 형성될 수밖에 없고 (재)분배라는 것이 ‘정치’의 대상이라면 복지담론의 이념적 장애물인 반공주의의 해소는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타당하다면 현재 국내외로 벌어지고 있는 평화체제 논의와 반공주의를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보수 세력의 축소 그리고 자유주의 세력으로의 정치재편은 평화복지국가 성립의 가능성을 이중으로 떠받쳐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화복지국가의 장애물이 국내외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공주의를 예외적이거나 역사특수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성의 문법 위에서 생각한다면 좀 다른 결과를 떠올릴 수 있다. 반공주의의 해소가 곧바로 남한 내부의 증오의 정치의 중단을, 그리하여 한국적 복지체제의 구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즉, 시효 만료될 반공주의는 또 다른 증오의 정치에게 자리를 내어줄 여지가 매우 크다.

 

반공주의 이후 증오의 정치의 분출

근대국가는 소유권와 민족공동체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이는 민족적 동일성으로 기획된 ‘상상의 공동체’인데, 내부의 다양한 차이(계급, 성별, 종족, 종교, 인종 등)를 민족(=국민)으로 봉합·통합·은폐하여 적대를 감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의 반격’이라고 일컬어지는 20세기 말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정치의 조건을 변화시켰다. 금융은 민족적 틀을 뛰어넘는 법인자본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민족적 통제로부터 벗어났고, 세계 전역에서 노동의 불안전성이 심화, 생산으로부터 배제된 과잉인구를 증가시켰다. 신자유주의적 전환 이후 민족국가의 약화는 ‘배제의 공포’와 ‘포섭의 희망’을 통해 불안전한 개인을 탄생시킨다. 이 개인은 자기계발 담론에 포획된 불안전한 자기-경영주체다. 촛불항쟁 이후 여러 부문에서 개혁이 시도되고 있지만 만성화된 경제위기로 인한 ‘위기관리의 위기’는 개혁적 시도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는 민족의 이름으로 국민을 동원, 통합, 호명하지 않으며 많은 이들은 정치로부터 대표되지 못하고 완전히 소외된다. 구조적인 경제위기, 노동으로부터의 배제(착취될 기회의 박탈), 이를 관리하지 못하는 제도정치의 위기는 결국 ‘민족’이 봉합하고 있던 갈등이 정치공동체의 통제를 초과하는 극단적 폭력과 집단적 증오를 동반하는 계기를 형성한다. 특히 부정적 방식으로 ‘남성성’을 지탱해온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위기에 처하면서 남성성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폭력에 호소하는 여성혐오로 목격되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사회의 복잡성 증대로 드러나는 다원적 적대를 초과하는 화해 불가능한 적대 또는 나누어질 수 없는 갈등(정체성들 사이의 적대)의 분출을 예고한다.

 

적대를 무한정 생산하지만 국가 내부모순을 은폐하는 양가적 속성의 이데올로기인 반공주의가 희석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반공주의가 적을 생산하는 증오 정치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 신자유주의적 전환 이후 촉진된 민족적 동일성의 균열의 틈에서 발생하는 정체성 기반의 적대도 이와 문법적 유사성을 띈다. 정체성을 기반으로 적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신자유주의적 자기-경영적 주체화가 차별을 정당화 또는 ‘주어진 것’으로 자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단적 폭력의 가능성은 오히려 증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공주의와 공명했던 치안기구의 물리적 폭력은 축소되었지만, 구조적·문화적 폭력은 도리어 점증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폭력을 목격하고 있다. 최근 예멘 난민의 제주도 입국으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젠더와 종교, 국적(=시민권), 노동을 교차하며 쟁점화되고 있다. 난민을 낭만화해 ‘보호’와 ‘인도’를 요청하는 이들은 공포를 느끼거나 난민지위 획득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이슬람에 대한 오해이며 그러한 공포 또한 허위라고 말한다. 물론 불안의 심연인 ‘이웃’을 마냥 사랑하라고 말 할 수 없을뿐더러 실재하는 공포의 현존에 대해 허위라 말하기엔 곤란함이 있다. 하지만 난민의 권력위계, 젠더구성, 종교적 특성 등을 고려해 ‘덜 위험한 난민’, 또는 ‘안전한 난민’만을 수용한다는 것만큼 곤란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외부남성으로부터 자국여성을 보호해야한다는 논리는 논박할 여지없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다. 또한, ‘시민권과 동의어가 된 국적’ 없는 이들을 시민적 권리의 주체로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 ‘위험한 존재’와 ‘위험하지 않은 존재’를 나눈다는 것은 반공주의의 실체인 국가보안법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여성 대 비여성(또는 나머지)’의 대립구도, 즉 정체성 정치는 당사자 이외의 다른 정체성의 부정은 정치의 중단을 초래한다. 단순 대립구도 정립이 갖는 정치적 효과와는 별개로 배타적 정체성 주장은 증오를 기반으로 한 극단적 폭력의 거울쌍이다. 타자(=적)의 제거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욱이 우리는 이미 또 다른 형태의 난민인 탈북자, 조선족, 자이니치(在日)를 알고 있다. 그리고 200만 명에 가까운 이주노동자(또는 미등록 체류자)까지. 이러한 논란의 중심엔 ‘시민=국적자’(시민권=국적) 등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 국가의 시민은 본질적으로 국민으로 존재하며 시민이 곧 국민으로 한정되는 만큼 비국민은 정치의 바깥에 놓인다. 근대 정치공동체가 오랜 시간 유지·존속할 수 있었던 것도 민족적 동일성에 기반한 ‘국민’주체로의 통합에 있었다. 정치적 주체인 시민이 곧 국적자와 동일하다는 것은 비국적자는 곧 비시민이라는 말이다. 일종의 내부의 외부 혹은 내부의 식민지인데 이러한 경계의 한계는 폭력을 동반한 정체성 정치의 토대를 이룬다. 신자유주의적 전환 이후 해체되는 민족 경계의 틈새로 극단적 폭력의 정체성 정치가 발호하고 있음은 유럽의 경험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근대정치의 탄생은 곧 정치와 종교의 분리였지만, 다시 종교라는 나뉠 수 없는 정체성이 정치신앙으로 귀환했다. 이를 난민과 무슬림의 무차별적 수용 때문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국경을 허물고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가했지만, 역설적으로 자유로워진 만큼 국경 주위는 높은 장벽(‘시민권=국적’의 강화)이 세워지고 있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증오의 이상화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이후 국가 자율성의 침식으로 나타나는 ‘전능한 자의 무기력’ 즉, 국가의 무능력, 그리고 더 이상 국가를 통제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무기력에 따른 정치의 공백과 실종의 결과다. 집합적인 정치적 무기력의 효과는 불안과 공포이며 자기 우선(또는 “국민 우선”)의 논리와 함께 타자의 배제를 요청하는 정치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유럽에서 분출하는 반이민 정서는 극우정당의 정치세력화의 기반이 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위기 또한 이민법을 둘러싸고 있으며, 심지어 극우를 표방하지 않는 정당들까지도 반이민법을 받아들이는 실정이다.

 

운동으로서의 평화복지국가

반공주의가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을 때, 많은 이들은 국적자임에도 ‘빨갱이’, ‘종북’ 등 비시민으로 호명되었다. 국민이라는 경계는 보편성을 갖고 있지만 공동체의 위험이 될 만한 사상적 혐의를 받는 국민은 타자와 동일시되어 또는 증오의 대상이 되어 비시민으로 배제되어왔다. 반공주의가 일정부분 철회된 현재에도 이 배제의 논리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오히려 다양한 정체성을 가로지르며 나타난다. 국민이라는 경계, 민족이라는 경계가 느슨해짐으로써 감춰져왔던 적대적 정체성 정치가 드러나고 있다. 촛불광장의 정치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최근 발생하는 다양한 정체성 정치는 이미 이를 초과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적 권리의 확대는 국민이라는 경계를 넘어설 때 가능하다. 상술한 내용을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라고 본다면, 앞으로 우리는 국민국가적 시민권을 탈구축하는 새로운 시민권을 상상해야 한다. 특히 분단체제의 해체와 남북간 교류 가능성의 증대는 ‘북한인’이라는 타자의 시민권을 강제적으로 고려하게 한다.

 

주지하듯 평화복지국가 기획의 조건은 반공주의와 분단체제의 해체였다. 외재적 폭력상태인 분단체제와 내재적 폭력상태인 반공주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제는 폭력을 동반하는 적대·증오의 정체성 정치와 배제의 일반화의 중단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지, 어떻게 감축시킬지, 국민국가적 시민권을 넘어서는 시민권을 어떻게 발명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평화복지국가 기획은 반공주의를 이후, 지금의 국민국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정체성 정치와 적대의 문제를 또 다른 장애물로 인식해야한다. 그 중심엔 ‘국민’이라는 경계가 있다. 평화복지국가 기획이 반공주의에 기반한 반공국가 해체를 성립의 이데올로기적 조건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국경의 민주화, 즉 ‘국(적)민’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적 시민권의 구축을 그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평화복지국가 기획은 어떤 완성될 국가모델 또는 결과적 형태라기보다 과정적 차원이 될 것이다. 애초에 평화복지국가는 일국적 차원에서 달성할 수 없는 ‘평화’라는 개념과 ‘국가’의 결합이라는 차원에서 모순적이다. 평화복지국가는 개념적으로도 하나의 국가형태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복지국가가 지칭하는 평화가 비전쟁 상태 즉, 물리적 폭력이 제거된 상태로서의 최소주의적 평화가 아닌 구조적·문화적 폭력을 감축시키는, 그리고 그러한 폭력의 조건(혹은 원인)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 기획은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하나의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동춘. (2011). “냉전, 반공주의 질서와 한국의 전쟁정치: 국가폭력의 행사와 법치의 한계” 『경제와 사회』 99:333-336

윤홍식. (2013). 『평화복지국가: 분단과 전쟁을 넘어 새로운 복지국가를 상상하다』. 참여사회연구소 기획. 서울: 이매진

이병천, 구갑우, 윤홍식. (2016). 『안보개발국가를 넘어 평화복지국가뢰: 독일의 경험과 한국의 과제』. 참여사회연구소 기획. 서울: 사회평론아카데미

진태원. (2017).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을 위하여』. 서울: 그린비

Balibar, É. (2010). 『우리, 유럽의 시민들?: 세계화와 민주주의의 재발명』. 진태원 옮김. 서울: 후마니타스(원서출판 2001)

일, 2018/07/0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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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복지학회 추계학술대회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X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라운드 테이블

<평화복지국가의 지향과 과제>

 

한반도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낙관할 수 없지만, 평화의 방향을 향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지향해야할 국가의 상으로 평화복지국가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반공주의와 공모해온 개발주의는 한국의 분배체제의 실험과 전진을 가로막아왔습니다.

신자유주의하에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성장우위의 논리에 가로막혀있습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려는 일군의 노력은 반공주의하에 '빨갱이'로 단죄되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분배)는 반공을 벗어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평화의 훈풍이 감도는 한반도에서 평화국가 X 복지국가의 가능성을 상상해 봅니다.

 

일시 | 2018.10.26

장소 | 전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318호

문의 | 참여사회연구소 02-6712-5248, [email protected]

 

 

참여사회연구소 라운드테이블

   

 

월, 2018/10/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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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포럼] 노동개혁과 정치

'9·15노사정합의' 이후 박근혜 정부는 일방적으로 소위 ‘노동개혁’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청년고용을 볼모로 한 노동개혁 및 임금피크제 도입이라는 부조리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참여사회연구소는 10월 26일(월) 오후 7시,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참여사회포럼] "노동개혁과 정치"를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우리 사회 대다수 일반 시민들의 일자리와 생존에 직결되는 노동개혁 문제가 현재 우리의 현실정치에서 어떻게 작동·변화해 왔는지 점검하고, 정부·여당의 노동개혁안에 대한 정치와 노동계, 시민사회의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준비되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안'은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 조건을 악화시킬 것이 너무나 분명하고, 특히 청년고용을 볼모로 도입하려고 하는 임금피크제는 그 효과조차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새로운 사회갈등 및 세대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성주, 노동현안에 대한 공적논의 및 해결의 주도권 되찾아야

 

발제를 맡은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은 이번 노사정합의는 올해 초부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노사정위원회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 과제가 지난여름부터 '노동시장 개혁', 나아가 '노동개혁'이라는 더 큰 의제로 대체되었음을 지적했다. 즉 기존의 '정규직 대 비정규직'이라는 갈등의 구도가 그것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대기업 정규직 대 청년실업자'로 바뀌었고, 진보개혁진영과 노동계가 대응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조 소장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노동현안에 대한 공적논의 및 해결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구체적 대안으로 개별가입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권 보호, 근로계약 관련 법제도 개선안 추진, 실업안전망 개혁, 노사정위원회 개편을 제시했다.

 

박창규, 노동개혁은 악화되는 경제적 분배현실에 대한 변명거리

 

토론에 나선 박창규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번 '노동개혁' 사례에서 보듯이 사회현안을 정치 의제화하는 능력에서 진보개혁 정치세력이 보수 정치세력에게 열세라며, 이번 정부·여당의 노동시장 개악 시도가 단순히 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집권기 동안 개선되지 않거나 악화된 경제적 분배현실에 대한 변명거리를 이 의제를 통해 찾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번 노동시장 개악 시도는 앞으로 큰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것이기에 진보개혁 정치세력, 노동계, 시민사회는 적극 대응해야 하고, 기존의 '노동개혁이 아닌 재벌개혁' 프레임에 대해 다시 점검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노동친화적 노동시장 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치전략 및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남신, 어렵지만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고민해야

 

함께 토론에 나선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동과 노동자의 현실, 특히 노동정치에 있어서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민주노조운동의 한 축인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의 첫 번째 시도가 실패했고 제2의 시도를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 90%의 노동자들의 현실과 불만을 살펴보면,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노동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의 주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현장에서 싸우지만, 막상 해결이 되어도 이후에는 일선에서 사라지고 이후에도 해당 문제와 관련하여 제도개선이나 정치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비정규직, 청년, 여성 노동자들과 중소 영세 자영업자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까지도 포괄하는 정치참여의 구조를 만들어 철저히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노동과 시민사회가 함께 만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날 토론회에서 발제자 및 토론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번 노동개혁이 현실화되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은 바로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라는 사실과 임금피크제의 허구성을 다시 한 번 환기, 강조했다. 어차피 임금피크제가 실시된다고 하더라고 적용되는 일자리(노동자)도 소수일 뿐만 아니라 정년까지 일하는 노동자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전반에 대한 자기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내놓아야

 

그리고 발제자와 토론자뿐만 아니라 포럼 참석자들도 노동계와 시민사회를 포함한 진보개혁진영에서도 청년고용과 일자리를 포괄하는 노동시장 전반에 대한 자기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내놓아야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이번에는 자본과 정부·여당에게 '프레임 전쟁'에서 졌다고 할 수 있다. 재벌개혁이 결코 노동개혁의 '카운터 프레임'으로 제시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기적으로 그렇게 수용되었다. 자본과 정부·여당은 일자리에 청년까지 포함시켜서 '노동개혁 프레임' 공세를 펼쳤는데,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적절하게 대응했는가, 아니면 더 나아가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돌아봐야할 여지가 많다고 자평했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가 주최하는 참여사회포럼은 시민사회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위해 마련되었다. 참여사회포럼은 매월 실시되며, 공개포럼의 경우 주요 내용은 이후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이슈페이퍼'로 정리되어 배포될 예정이다.

 

○ 10월 [참여사회포럼] "노동개혁과 정치"
- 일시 : 2015년 10월 26일(월) 19~21시
- 장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 사회자 : 김윤철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발제자 :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 토론자 : 박창규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월, 2015/10/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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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 논문공모전 수상결과

 

 

 

참여사회연구소 <2018 민주주의 논문공모전> 수상 공고

 

참여사회연구소는 민주주의를 연구하고 시민사회운동을 고민하는 젊은 연구자와 활동가를 대상으로 논문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참가자들 가운데 엄정한 심사를 통해 아래와 같이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우수작

허준기(고려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 윤세라(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

- 2016-17년 촛불혁명의 정치적 기회구조와 시민사회운동 확장에 관한 연구

 

장려작

이은주(성공회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 민주적 거버넌스의 실질화를 위한 핵심 요인으로 시민사회의 ‘협력적 대항력’에 대한 고찰

 

수상작은 <시민과 세계>33호(2018년 하반기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문의
02-6712-5248, [email protected]
수, 2018/10/3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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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김형용 | 월간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다시금 출발선이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6·15 남북 공동선언 때, 이미 우리는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더 나아가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남북 각자의 제안에 공통성이 있으므로 상호 협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해 나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약속은 쉬웠고 이행은 어려웠다. 정권이 바뀌고, 남쪽의 보수는 권력쟁취를 위해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를 되살려 내었다. 북쪽은 체제 안정의 수단으로 선군정치를 계승하였고, 위협적으로 미사일과 핵실험 그리고 군사적 도발을 통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켜왔다. 결국 올해 초만 해도 한반도에서 북미간 군사적 충돌은 현실로 다가오는 듯하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4월 27일 갑작스런 남북의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을 위한 6·15 선언이 있었던 그 때로 시간을 다시금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6월 12일 드디어 70년의 냉전이 녹아내리기 시작하였다. 역사적 북미회담이 개최되고 미국의 대통령은 이제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남쪽의 운전자가 북한의 비핵화를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세계가 평화체제에 동승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평화체제가 정착되면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 경계를 허무는 경제 협력이 활발해질 것이다. 경제 협력은 동시에 사회적 체제 통합의 논의를 이끌 것이고, 다시금 분배와 재분배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적 체제로서 평화복지국가를 기대해 본다. 본 호에서 윤홍식 교수는 그동안 한반도의 남북갈등이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발달을 심각하게 저해하였다고 보았다. 근대화 과정에서 반공주의가 복지국가 세력의 성장을 억압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화체제의 도래는 복지국가 주체를 다시금 사회 전반에 등장시키는 기회를 마련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고통 받는 비정규직, 청년, 여성, 자영업자, 농민 등이 대안 세력으로 등장해야 한다. 이제야 이들이 자유롭게 발언하는 공간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복지국가는 이들의 정치적 참여에 의해 그 모습이 결정된다. 또한 우리는 북한 사회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민기채 교수는 북한의 사회보장제도를 소개하면서 어찌 보면 사회주의 체제에서 복지가 더욱 촘촘한 국가책임 제도를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화복지국가의 구상은 제도의 우열을 떠나 서로 다른 두 체제의 제도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황규성 연구위원은 통일 독일의 경험에서부터 국가간 통합에 있어 복지국가의 중요성에 주목하였다. 독일은 통일 과정에서 생활수준 균등화 대원칙을 견지하였고 이에 복지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것이다. 김건우 참여사회연구소 간사는 평화복지국가 구상에 있어 북한인이라는 타자의 시민권 뿐 아니라, 시민적 권리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상상해 보자라고 제안하였다. 

 

항상 기회는 많지 않았다. 새로운 창이 열린 지금이 한반도의 새로운 비전을 설계할 적기이다.

일, 2018/07/0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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