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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다큐]노조가 없어지면 행복할거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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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다큐]노조가 없어지면 행복할거란 당신에게

익명 (미확인) | 수, 2015/11/18- 17:18

최근 국내 언론에서 오바마의 노조지지 발언이 여러차례 소개되었습니다. 특히 9월 8일 노동절 연설에서는 매우 노골적으로 노조 가입을 권하기까지 했습니다.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2015년 9월 8일 노동절, 오바마 연설-

발언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한 나라의 대통령, 그것도 미국의 대통령 발언치고는 낯선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오바마가 노조 지지를 부르짖는 데는 오래된 이유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미국의 ‘노조 역사’가 그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노조의 역사는 미국 ‘중산층’의 역사와 일치합니다. 노조가 흥하면 중산층도 흥했고, 반대로 노조가 쇠락하면 중산층도 쇠락의 길을 걸었죠.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노조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향상시키는데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노조의 임금인상 노력을 통해 중산층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더불어 흔히 ‘사내 복지’라고 불리는 주택, 대중교통, 의료시설 확충 등에 애쓰는 노조의 활동 역시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에 도움을 주게 되죠.

하지만 1981년 이러한 노조 활동에 강력한 제동이 걸리게 됩니다. 미국항공관제사 노조(PATCO)의 파업에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레이건이 ‘참가자 전원 해고’라는 초강수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레이건은 불과 파업 4시간 만에 레이건은 다음과 같은 경고 메시지를 보냅니다.

48시간 내로 돌아오라.
그렇지 않은 관제사는 모두 해고되며,
재고용은 없다.

그리고 정확히 48시간 뒤 복귀하지 않은 관제사 11,345명은 전원 해고 처리 되고 그들이 일하던 자리엔 대체인력이 투입 됩니다. 미국 노조사에 그야말로 획을 그은(?) 사건이었죠. 특히 미국항공관제사 노조는 과거 대선에서 레이건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그 충격 여파는 미국 모든 노조에 급속하게 전파 됩니다.

이후 미국 노조는 자연스레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동시에 미국의 중산층 역시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노조 가입률은 떨어지고 중산층 비율도 함께 떨어지는 것이죠. 반면 상위 10% 소득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일반 근로자 대비 대기업 총수들의 수익이 1965년 20배에서 2013년엔 무려 296배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빈부 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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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바로 이 ‘쇠락한 중산층’의 회복을 공약으로 걸고 당선된 대통령입니다. 당연히 중산층 쇠락의 주요 원인인 쇠락한 노조의 회복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노조의 쇠락을 그대로 둔 채로 중산층 회복을 이룰 수는 없음을 미국의 역사가 증명하고 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사회가 처한 빈부 격차 증가와 양극화 그리고 중산층의 몰락은 노조의 쇠락과 맥을 함께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언론들은 노조 부흥을 이야기하기는커녕 노조를 여전히 경제 성장의 걸림돌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심지어 여당의 대표는 노조가 쇠파이프만 휘두르지 않았다면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되었을거라며 노조 혐오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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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고 이는 OECD 최하위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언론은 드뭅니다. 그래서일까요? 마치 노조가 없어지면 행복해질 것처럼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노조가 없으면 파업도 없을 것이고, 파업이 없으면 대기업이 성장할 것이고, 대기업이 성장하면 국가 경제도 성장해서 그 덕에 자신도 부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게만 되면 하늘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부가 뚝 하고 떨어질까요? 그에 대한 답은 오바마의 발언으로 대신해 봅니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에서는,
이 나라를 성장시키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유일한 방법은
백만장자, 억만장자의 세금을 깎아주고
금융기관과 오염원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고 하늘만 올려다보면서 어딘가에서
번영이 뚝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식이다.

-2015년 9월 8일 노동절, 오바마 연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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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뉴스테이, 무엇이 문제인가’ 이슈리포트 발표

 

각종 택지·세제 지원 특혜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높은 임대료

중산층 위한 ‘주거’정책 아닌, 민간 임대사업자만 배불리는 ‘산업’정책

공급촉진지구 지정 예정 ‘영등포 뉴스테이’ 분석을 통해 본 문제점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실행위원장: 조형수 변호사)는 2016년1월18일 <박근혜 정부의 뉴스테이, 무엇이 문제인가> 이슈리포트를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는 중산층의 주거안정과 부동산 경기활성화를 목적으로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뉴스테이는 중산층을 위한 주거 정책이라기보다, 오로지 민간임대사업자의 이윤 추구에만 초점이 맞춰진 산업 정책에 훨씬 가깝다. 2015년8월 개정된‘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민간임대사업자는 주택도시기금 및 택지 지원, 조세감면, 용적률·건폐율 특례, 그린벨트 해제 및 공유재산을 제공하는 공급촉진지구 지정 등 온갖 특혜를 보장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테이는 기존의 공공주택에 적용되는 최소한의 공적 규제조차 받지 않으며, 서울 지역의 경우 임대료는 8분위 이상의 고소득층만이 부담 가능한 수준에서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진정 서민·중산층의 주거안정을 이끌기 위해서는 LH의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확대하고, 뉴스테이에도 공적 규제를 적용해 정책의 수요계층이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임대료를 재조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토교통부는 2016년 주거안정강화 계획을 통해 뉴스테이 공급을 기존 계획보다 2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2016년1월14일 업무보고를 통해 뉴스테이 공급촉진지구 8곳을 지정했다. 참여연대는 공급촉진지구에 포함된 서울문래지구‘영등포 뉴스테이’예정 사업을 분석했다. 애초에 문래지구는 공동주택이 들어설 수 없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손쉽게 건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근 아파트의 용적률을 훨씬 상회하며, 임대료는 주변 지역보다 높게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 김희국 의원이 2015년 국정감사를 통해 국토부와 한국감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영등포 뉴스테이의 경우 임대료는 84㎡ 기준 보증금 1억 원, 월세 119만원에 달하는데, 이는 소득 9분위 이상만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정부가 목표로 삼은 정책 대상은 중산층이지만, 실제 수요계층은 이와 일치하지 않는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비롯된 전월세 대란이 전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LH의 부채 감축을 명목으로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축소하는 동시에, 부동산 경기활성화를 목표로 기업형 임대사업자를 육성하는 정책에만 골몰하고 있다. 여태껏 뉴스테이에 제기된 수많은 문제점에 대한 공적 규제를 사전에 마련하지 않는다면, 기업형 임대사업자만 배불리며, 서민·중산층의 주거안정에 역행하는 잘못된 정책으로 전락할 것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뉴스테이에 공적 규제를 적용해, 정책의 수요계층이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임대료를 재조정하고, LH의 부체 문제를 해결해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 붙임자료

1. <박근혜 정부의 뉴스테이, 무엇이 문제인가> 이슈리포트

 

 

 

 

월, 2016/01/1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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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근로감독관이 노사분규가 있는 기업의 사측 노무담당 간부와 술자리를 갖고 노조를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 자문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근로감독관은 술자리에서 산별노조를 기업별노조를 바꾸는 방법, 법적인 문제 없이 직원을 해고하는 방법 등을 사측에 조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근로감독관은 사측의 말문을 열기 위해 만난 자리였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의 마지막 기대 저버린 ‘잘못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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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 저녁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서 근무하는 박 모 감독관은 오스람코리아의 인사총무부장 박 모 씨와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한 치킨집에서 만났다. 당시 박 감독관은 오스람코리아 노조의 진정을 받아 해당 사업장을 감독하는 중이었다.

독일계 조명 제조업체인 오스람코리아는 지난해 10월 회사가 일방적인 희망퇴직 공고를 낸 이후 극심한 노사 대립을 겪고 있다. 지난 2월에 시작된 단체협약 협상은 13차례의 교섭을 갖고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가 노조 사무실 제공과 타임오프제 준수 등 기본적인 요구 사항만을 반영한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사측은 이마저 모두 거절한 상황이다.

조동윤 금속노조 경기지부 오스람코리아분회장은 근로감독관과 사측 노무담당자의 만남에 대해 “그동안 상식 밖의 버티기를 하는 회사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보니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생각마저 든다”라고 말했다.

사측에 컨설팅…“노조는 기업노조로, 해고는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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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의 술자리가 문제가 된 이유는 근로감독관의 부적절한 발언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금속노조 산하의 분회로 있는 오스람 코리아 노조를 기업노조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대화 내용은 같은 술집에 있던 금속노조 지역 간부가 우연히 듣게 됐고, 이후 외부에 알려졌다.

목격자의 진술과 <뉴스타파>의 취재 내용을 종합해보면, 박 감독관은 노조 때문에 회사 운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박 부장의 호소에 대해 “△제 2 노조를 만들어 노조를 와해시키는 곳도 많지만 그런 식으로 가면 일이 더 힘들어진다. △금속노조로 있다가 완전히 바뀌어서 기업노조가 된 ‘동서공업’처럼 천천히 가라”는 구체적인 자문을 했다. 또 이와 관련된 자료를 직접 제공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박 감독관이 언급한 동서공업은 2008년 직장폐쇄까지 가는 등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은 사업장이다. 직장폐쇄 기간 동안 사측은 일부 조합원들을 회유해 노-노 갈등을 야기한 바 있다. 결국 파업 이후 동서공업 노조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운영됐다. 이 과정에서 파업을 주도한 15명의 노조원이 정리해고 되는 등 노동계에서는 대표적인 노조 탄압 사례로 거론되는 사건이다.

또 박 감독관은 노조 간부에 대한 해고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자문을 했다. 박 부장이 노조 간부의 해고 문제를 거론하자 박 감독관은 “△절차를 잘 거쳐 (해고를) 해야 한다. △일단 징계위원회 구성과 심사위원 선정을 잘하고 천천히 하라. △징계자에게는 원래 해고 처분을 받아야 하지만 한 단계 낮춰가는 것이라고 말하라.”고 조언했다.  ‘노사의 신뢰를 함께 받을 수 있도록 엄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라’는 근로감독관의 집무규정을 현저히 벗어난 발언이다.

박 근로감독관 “말문 열어보려 만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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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을 만난 박 감독관은 문제의 술자리가 사측의 말문을 열기 위해 자신이 먼저 제안한 자리였다고 해명했다. 오히려 회사가 직장폐쇄나 용역 동원 같은 강제적인 방법을 쓰기 전에 교섭을 통해 해결하라고 설득하려 했다는 것이다.

박 감독관은 문제의 대화가 있었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른바 ‘노조 탄압 컨설팅’을 하겠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오스람 코리아 측이 노동부의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을 피워 사태가 커졌다는 점에 대해 훈계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진의가 왜곡돼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박 감독관은 이 문제와 관련해 고용노동부의 자체 감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취재진은 이날 술자리에 앞서 이훈원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장과 오스람코리아 상무이사까지 참석한 별도의 식사자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이뤄진 이 식사 자리에 대해 이 지청장은 “업무가 풀리지 않아 그 사람들(오스람코리아 사측)의 속내를 들어보려 먼저 제안한 자리였다”며 “상대가 외국계 계열사의 임원이라고 해서 지위를 생각해 해당 식당을 이용했다. 비용은 모두 안산지청에서 지출했다”고 해명했다.

‘노조탄압 징크스’ 겪는 반월-시화공단…사측-노동부 밀회 한번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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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여 개의 중소사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반월-시화공단(현재 ‘안산-시흥스마트허브’)은 노조 탄압 사건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지역 노동활동가 사이에서는 “2, 3년마다 굵직한 노동 탄압 사건이 발생한다는 징크스가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실제 1990년대부터 이 지역에서 노조 결성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직장 폐쇄와 용역에 의한 폭력 사태 등 극단적인 노사분규가 벌어져 왔다. 그때마다 산별노조 탈퇴와 노조 해산 등 사실상 노조가 무력화 되는 수순으로 사태가 마무리돼 왔다는 것도 특징이다. 때문에 이 지역의 노조조직률은 전국 평균인 9.8%에 크게 미치지 못한 1%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드러난 사측과 근로감독관의 은밀한 만남은 이 지역 노조 탄압의 역사가 정부 감독 기관의 묵인 하에 이뤄져 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목, 2015/07/2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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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는 ‘밥심’으로 일하는 롯데마트 직원들의 지대한 관심사인 식당밥 개선문제를 계속 제기해왔습니다.
회사는 지난해 11월 한국노총 노동조합과 단체협약 교섭에서 2017년부터 3680원(기존 3080원)으로 식사단가를 인상할 것을 합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약속된 1월 식당밥값 인상은 지켜지지 않았고, 2월에서야 이행되었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기존 식당밥에 대한 불만이 퍽이나 많았습니다. 마트식당 식사질에 대한 고충은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년 건의되는 직원고충이었습니다.
민주노조는 무엇보다 회사에 식사질 개선문제를 해결할것을 요구해왔습니다. 현실 물가에 비해 식사단가가 낮은 까닭도 밥의 질과 메뉴가 나아질수없는 주요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현재 롯데마트에는 7개 계약업체가 지역별로 107개 기존점포에 직원들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식당미운영점포와 백화점식당운영 점포를 제외하면, 롯데마트 전체 직원들의 점심저녁밥이 그 몇몇 업체의 식당운영에 달려있는 상황입니다.
식사단가 관련한 회사의 자료에 따르면, 업체식사단가가 낮게는 3200원에서 높게는 4200원까지 점포별로 차이가 많이 납니다. 물론 점포별 직원식당 이용객수에 따라서 적정운영비가 다를 수 있을것입니다.
민주노조는 각 업체와 매 점포마다 그 비용과 식사단가책정이 적절히 되었는지 그리고 예산집행이 바르게 되고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회사는 직원식당에 대한 관리감독을 잘하고, 회계감사보고도 제대로 받아야할 것입니다.
이제 식사단가가 어느정도 인상된 만큼, 민주노조는 현장으로부터 제보되고 접수되는 현장민원을 회사에 적극적으로 피력하여 반드시 식사질이 개선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금, 2017/02/1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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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는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3.1 운동으로 폭발한 민심에 놀란 일제는 힘으로만 누르는 무단 통치 대신 회유책을 병행하는 문화통치를 시작했고, 이로 인해 조선인들은 ‘나도 노력하면 일본인이 될 수 있다!’는 일제의 기만적 전술에 서서히 물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일제가 친일파를 본격적으로 양성(?)하는 것 역시 바로 이 시기부터입니다.

일부 명망가들 역시 상황 논리에 기대거나 체념하는 방식의 주장을 합니다. 일제는 너무 강하고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강대국의 동정을 얻어 독립을 이루자는 이승만의 외교론, 식민지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치를 이루자는 이광수의 자치론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전혀 다른 방식의 독립을 주장한 스물한 살 청년이 있었습니다.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쟁취하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 민중은 능히 적과 싸워  이길 힘이 있다.

그가 다름 아닌 의열단 단장 김원봉입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등장하는 바로 그 인물입니다. 기성세대와 달리 절망적 현실에 주눅 들지 않았던 그의 당당한 태도는 조국의 독립에 목말랐던 조선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수많은 청년들은 그와 함께 무장투쟁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김원봉을 중심으로 한 의열단은 우선 자신들의 타깃을 명확하게 규정합니다.

1. 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2. 일본 천황 및 각 관공리
3. 정탐노, 매국적
4. 적의 일체 시설물

일단 타깃이 정해지면 깔끔한 양복을 차려 입고 준비한 폭탄과 권총, 태극기 그리고 종이 한 장을 품고 홀연히 경성과 동경으로 떠나게 됩니다. 요인 암살과 일제 중요 기관 폭파가 이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1923년 1월 12일. 문화통치로 길들여진 잠잠한 경성 한 복판에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집니다. 온갖 고문이 가해졌던 종로경찰서에 누군가가 폭탄을 투척한 것입니다.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경찰부장 우마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기자들에게 설명을 합니다.

“민심이 너무 평온하기 때문에 일부러 과격한 독립파 사람들이 어찌할 수가 없어서 최후수단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외다. 민심동요는 별로 근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마노는 민심 동요를 우려하여 보도 금지 조치를 내리고 즉시 정복 순사 1,000여 명을 풀어 수색을 지시합니다. 그렇게 10일 만에 경찰이 찾아낸 범인은 32살의 철물점 주인 출신인 의열단원 김상옥이었습니다. 의열단원 중에서도 명 저격수였던 김상옥은 권총을 양손에 쥐고 일본 경찰 400여 명을 상대로 무려 3시간이나 총격전을 벌이다 마지막 남은 한발을 자신에게 겨누고 숨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최후까지 권총을 두 손으로 쥐고 바른 손에는 사망한 후에도
둘째 손가락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걸고 권총을 힘 있게 쥐고 있었다며
여하간 범인은 처음에 발에 총을 맞았으나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것과 최후까지 총을 쥐고 죽은 것을 보면 매우 대담한 사람이라고 말하더라.
(동아일보 1923년 1월 23일 ‘세군데 총을 맞고도 죽은 후에도 총을 쥐고 있어’)

1926년 12월 28일에는 토지수탈의 중심이었던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이 투척됩니다. 도심 한복판인 을지로, 그것도 백주 대낮에 말이죠. 심지어 뒤쫓는 경찰 7명을 권총으로 사살한 이 역시 의열단원인 나석주였습니다. 그는 자결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

의열단원들의 맹활약으로 인해 일제는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 잡기에 혈안이 됩니다. 암살과 폭파 자체가 일제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는 없었지만, 자존감을 잃어가는 당시 조선인들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원봉은 심지어 김구보다 더 높은 현상금이 걸리게 됩니다. 현재 금액으로 치면 약 320억 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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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920년부터 1929년까지 조선총독부, 종로경찰서, 부산경찰서, 동양척식회사, 심지어는 동경의 황궁에까지 폭탄이 투척됩니다. 폭탄을 투척한 이들은 모두가 상하이에서 온 의열단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양복 품속에 거사를 위한 무기(총, 폭탄)와 태극기만이 아니라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종이는 단재 신채호가 김원봉의 부탁을 받아 작성한 의열단선언(조선혁명선언)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이루고 싶었던 세상과, 그 세상을 이루기 위해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 장의 종이에 6,400자의 글자로 담겨져 있습니다. 다음은 그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잡고
암살, 파괴, 폭동으로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치(해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단기 4256년 1월 의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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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의사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의거를 한 자리는 현재 1호선 종각 역 종각지하 쇼핑센터 8번 출구 바로 앞입니다. 그 앞엔 아주 작은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수, 2015/08/1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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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월급을 받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나
2016.04.28 17:50:08
[기고] 4월 28일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에 부쳐
"어느 누구도 집에 월급을 가져가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아야 한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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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백악관에서 성명이 발표 됩니다. 4월 28일 노동자 추모의 날을 기리는 추모 성명에는 유독 새겨들을 만한 말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재능있고,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노동력을 자랑합니다. 노동자들은 우리의 가정에 전기를 들어오게 하며 우리의 가족이 먹을 식량을 생산합니다. 그들은 고층빌딩을 세우고, 상품을 시장에 수송하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제품들을 만들어 냅니다. 아울러, 그들은 우리 경제의 중추를 형성합니다. 국가로서, 우리는 이러한 핵심적인 일을 수행하는 남성과 여성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매년 200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나라, 대한민국을 사는 노동자들은 어떨까요? 쉴 새 없이 고층 빌딩을 쌓아올리고, 수많은 가전제품과 신선한 먹거리를 생산합니다. 그런 그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그러게 조심하지 그랬어."

우리는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합니다. 사용자와 노동계약을 맺은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 노동계약의 숨겨진 의무가 하나 더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노동자에게 성실하게 노동할 의무를 부여하는 동시에 사업주에게는 안전배려의 의무가 부여됩니다. 들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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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하다가 다치면 스스로 잘못 여부를 따지면서 주눅이 듭니다. 혹시 병원에 다니게 되어 보상을 받고 싶어도 회사에 누가 될까봐 산재보험 신청을 꺼립니다. 신청을 하고 싶어도 회사에서 회유를 합니다. 

"그냥 공상(회사가 치료비를 내는 방식) 처리 해줄게." 

산재보험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일을 하다가 다치면 무조건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사고나 질병은 산재 통계에서 자취를 감추고, 산재보험 통계는 마치 한국이 매우 건강하고 안전한 나라인 것처럼 보여주는 근거가 됩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숨겨진 사고와 질병들은 더 큰 사건을 만들어냅니다. 바로 죽음이죠. 하루에 5~6명이 일을 하다가 죽습니다. 이번 4월도 그랬습니다. 

지난 4월 11일 45세의 노동자가 컨테이너 스툴과 고소차 사이에 협착돼 사망했습니다. 이어 4월 18일, 37세의 노동자가 굴착기 엔진덮개와 붐대 사이에 협착돼 사망합니다. 4월 19일 54세의 노동자가 지게차 앞바퀴에 깔려 사망합니다. 모두 한 회사입니다. 올해 3월과 2월에도 사망사고가 1건씩 있어 올해 총 5명의 노동자가 한 사업장에서 사망했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사망 1위에 빛납니다. 아무리 그런 '노동안전 후진국'이래도 이건 심하지 않나요? 위의 5명이 사망한 기업, 현대중공업은 2015년 3명, 2014년 9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을 하는 건가요? 아니면 죽음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건가요?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일하다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 숫자가 약간씩 줄기는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OECD 1등 국가죠. 10년 전에 비해 경제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져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지만, 후진적인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정규직 노동자를 새로 뽑지 않고 그 자리를 하청노동자로 채웠기 때문입니다. 원청 노동자들이 꺼려하는 위험 작업을 하청노동자는 묵묵히 할 수밖에 없었고, 외주화된 위험은 하청노동자의 사망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를 제일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2013년 여수 대림산업 폭발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하청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현대중공업도, 전체 노동자의 60%가 하청업체 소속이며 올해 사망한 5명의 노동자 중에 3명이 하청소속입니다.

치명적인 노동 현장 사고를 줄이려는 방안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첫째, 노동자 사망이나 사망에 준하는 사고가 빈발하는 사업장은 하청을 금지하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게 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기업(대부분은 원청)에서 예방에 관한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 안전경영을 하겠다며 3000억 원을 투입하고 협력사 안전요원을 2배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냈습니다. 회장을 포함하여 임직원 4000명이 모여 '안전결의대회'도 열었습니다.(물론 올해도 비슷한 걸 했죠) 

그렇게 했는데도 올해 오히려 사고 사망자수가 증가하는 것을 보면, 현재와 같은 원·하청 구조에서는 사고 발생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소설 <성채>의 주인공 앤드루 맨슨은 장티푸스의 원인을 하수도로 지목하고 이를 개선하려고 하지만 실패합니다. 결국, 하수도를 폭파하고 이로 인해 새로운 하수구가 건설되면서 그 마을의 장티푸스를 해결합니다. 이처럼 도저히 해결책이 없다면 기존의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이 즈음에서 다시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를 생각합니다. 

둘째, 기존의 원·하청 구조를 도저히 바꿀 수가 없다면 정부가 원청의 하청에 대한 산업안전책임을 강화시키고 이를 감독해야 합니다. '투명 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고용노동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자료를 보면 2014년 6월 기준으로 산업안전 근로감독관 실무인력은 972명이고, 근로감독관 1인이 담당하는 사업장 수가 1736개입니다. 하루 1개의 회사만 감독한대도 4년이 넘어야 다 돌아볼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사업장 위험 불시점검, 내부고발(신고자 철저한 보호) 등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고, 궁극적으로 근로감독관의 수도 늘려야 합니다. 

동시에 중요한 법이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기업살인법이 있습니다.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죽는 일은 위험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고 보는 거죠. 당연히 기업에 중한 책임을 물립니다. 실제 그 법이 효과를 발휘하여, 한국에서 노동자 10명이 죽을 때, 이 법이 있는 영국에선 1명의 노동자가 죽습니다. 한국에선 현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이름으로 입법 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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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의 예를 다시 들겠습니다. 2014년 4월에도 노동자가 연달아 3명이 죽었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현대중공업의 대표이사를 고발했죠. 그 뒤에도 사망이 이어져, 그 해에만 9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고발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무죄, 현대중공업 기업 벌금 1500만 원. 이정도 처벌이면 하루에 몇 억씩 버는 기업에서 위험을 제거할 이유가 있을까요? 하루빨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되기를 빕니다. 

마지막으로 원·하청 구조도 바꿀 수 없고, 노동부 기업 감독 활동도 늘릴 수 없고, 기업의 보상책임도 강화할 수 없다면, 차라리 노동자에게 다 맡기면 어떨까요. 노동자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먼저 중‧고등학교 때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중요과목으로 채택해 공부하게 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협의회에 미리 참가해보는 실습을 하며 MSDS(물질안전보건자료)와 보호구 산업안전보건규칙을 알 수 있는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취직하면 '유니언숍'에 의해 100% 노동조합 조합원이 되게 하는 겁니다. 이건 대안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일을 하다가 죽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진지한 질문입니다. 

1970년 전태일이 분신하자, 그의 친구가 되지 못했던 대학생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공장으로 가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건 개선에 헌신했습니다. 1988년 열다섯 살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하자 우리 사회의 전문가, 노동운동이 연대하여 노동자건강권 운동을 펼쳤습니다. 원진레이온이라는 섬유회사의 대규모 직업병의 비극(반드시 한번 검색해 보시길)을 거치며 원진전문병원이 건립됐고, MSDS(물질안전보건자료)가 도입 되었습니다. 삼성전자 백혈병 싸움을 시작으로 하는 싸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일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노동자와 직업병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을 잊지 않았고, 그들과 함께 투쟁했으며 한 걸음씩 나아간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16년 4월 28일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에, 아직도 1년에 2000명이 일을 하다가 죽는 대한민국의 막막한 현실 속에서 우리 시대의 과제를 떠올려 봅니다. 세월호 사건 2년, 일터 안에서 밖으로 뻗어가는 위험에 속수무책인 대한민국을 봅니다. 그 큰 사건의 진실조차 오리무중인 여기에서, 사회를 구하려는 방법, 노동자를 구하려는 방법, 우리를 구하려는 방법, 당신은 무어라 생각하시나요?

월, 2016/05/0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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