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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세상 읽기]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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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세상 읽기]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익명 (미확인) | 화, 2015/11/03- 19:00

“경제는 원래 영원히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상원의원이자 경제학자인 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릭대 교수는 제6회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해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성장의 중단’은 경제학자로서는 떠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성장이 멈추면, 즉 생산과 소비가 끊임없이 늘어나지 않으면 재앙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다.

나는 얼른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언제까지 성장해야 충분합니까?” 그의 책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How Much is Enough?)를 떠올리며 던진 질문이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수십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이하에서 3만달러에 육박하는 데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런데도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청년 일자리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성장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니라면 이제 저성장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전략을 세워야 할까요?” 설명을 덧붙였다.

“그것은 무엇을 위한 충분함인가에 달려 있습니다.”(Enough for What?) 그가 대답했다.

“올바른 질문은 성장함으로써 그 공동체가 갖고 있는 필요가 해결되는가에 있습니다. 성장만으로는 불평등 같은 여러 사회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판명이 났습니다. 다른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정말로 답하려면, 먼저 그 공동체가 원하는 필요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공동체가 함께 정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맞춰 그런 삶을 창출할 수 있는 경제를 떠올려야 하고, 그런 경제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경제성장 자체가 절대적인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를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성찰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국 사회는 방향을 잃었다.

이 나라는 오랜 기간 경제성장이라는 단일한 과제를 놓고 씨름했다. 성장률이 높아지고 소득이 늘면 더 좋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데로 생각이 모아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뒤돌아보니, 불과 수십년 만에 1인당 소득이 수십배, 수백배 늘었는데도 ‘헬조선’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사회문제는 심각해졌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국가경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잘 버텼는데도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 나라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싸워서 얻어내기도 했다. 민주주의 제도를 잘 만들어 두면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공동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싸워서 얻어낸 민주주의 제도와 그렇게 선출한 대표자들은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이 나라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가지를 함께 달성한 거의 유일한 나라인데 그런 자신감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지금이야말로 삶의 목표, 사회의 목표를 놓고 근본적인 토론을 해야 할 시기다.

실은 이런 공론을 만들어야 하는 게 정치와 언론이다. 공동체가 무엇을 좋은 삶과 좋은 사회라고 여기는지를 토론하도록 의제를 만들어가는 게 언론의 사명이고, 토론에 참여하며 국가의 새로운 목표를 도출하고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게 정치의 사명이다. 예컨대 국민들에게 무엇이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드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라의 자랑스러움을 알려주는 교과서를 직접 쓰겠다고 나서는 대신 말이다.

무엇이 좋은 삶인가. 그 삶을 달성하려면 어떤 사회가 필요한가. 얼마나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며 성장 이외의 다른 가치들은 어떤 것이 필요한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정치가 우리에게 필요한가. 그 정치를 누가 하는 것이 맞는가.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 한겨레 / 2015.11.03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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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와 제주도를 잇따라 다녀왔다. 광주에서는 희망제작소 후원자 모임이 열렸다. 제주에서는 70여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여 정기적으로 지역정책을 토론하는 목민관포럼이 열렸다. 그 두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다녀오는 길에 두 지역의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광주에서는 일자리가 이슈다.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은 광주를 자동차 100만대가 생산되는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현재는 60여만대가 생산되고 있다.

어떻게 가능할까? 언론에 ‘반값 일자리’라고 냉소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던 바로 그 방법이다. 현재 현대기아차보다 임금수준이 낮은, 평균 연봉 4000만~5000만원을 주는 공장을 증설하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미 국내 공장 증설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 되돌려 다시 국내에 투자하도록 만들자는 이야기다. 현재보다 낮은 임금으로 많이 고용하는 체계를 갖추자는 이야기다.

박병규 광주광역시 사회통합추진단장은 좀 더 나간 이야기를 했다. 아예 혁신적인 자동차산업을 새로 일으키자는 제안이다. 전기자동차에 초점을 맞춰 친환경 자동차를 생산하는 새로운 공장을 세우자는 내용이다. 전세계 자동차시장은 흔들리고 있다. 미국 전기차 생산기업인 테슬라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디젤차의 환경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조작을 일삼다가 발각돼 홍역을 겪고 있다. 이럴 때 아예 미래에 닻을 미리 내려두는 게 낫지 않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10년 뒤에도 수요가 있는 100만대를 생산하자는 주장이다.

이 생산을 제대로 된 사회책임기업이 하면 더 좋겠다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기업과 지방정부가 함께 투자해 시민기업으로 출발하고, 노사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며 운영해 지배구조와 노사관계에서도 모범을 보여주는 기업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제주에서는 환경이 문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도를 2030년까지 탄소없는 섬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제주는 한편으로 친환경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게도 무분별한 관광객 유치와 난개발로 홍역을 겪고 있기도 하다. 한해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값싼 여행지로 전락하고 있다. 싼 값의 패키지상품으로 이용하며 쓰레기만 버리고 쇼핑하는 단체관광객 중심의 여행지가 됐다.

여기서 벗어나야 친환경 청정지역의 꿈도 가능하다. 관광산업을 성장시키더라도 방향은 가족 중심, 자유여행객 중심의 여행지로 가야 한다. 한 철 다녀가는 관광객의 주머니를 노린 뜨내기 장사치가 모인 섬이 아니라, 꾸준히 다녀가는 수준 높은 관광객들에게 제공할 고급서비스와 문화를 생산하는 섬이 되어야 한다. 사실 그래야 난개발도 막을 수 있고, 괜찮은 일자리도 생긴다.

제주에서 환경은 산업과 직접 연결된다. ‘탄소없는 섬’ 계획에는 전기자동차가 한 축을 이룬다. 섬이고 이동거리가 길지 않다는 특징 덕에 아직 최고속도와 힘에 한계가 있는 전기자동차도 주요 교통수단이 될 수 있다. 올해 안에 1500대를 보급하려는 계획이다.

같은 맥락에서 신재생에너지 역시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를 수 있다. 원전이 생산한 전기가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로부터 해저케이블을 타고 제주로 온다. 풍력,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이런 송전시스템에서 벗어나겠다는 게 제주의 생각이다.

두 지역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런 꿈을 꿔 봤다. 광주에 전기자동차 생산공장이 생겨난다. 시민과 기업이 같이 투자한 사회책임기업이 운영한다. 제주는 친환경 교통수단만 다니는 섬이 된다. 충전소 인프라가 전 지역에 깔리고 최신형 전기자동차가 거리마다 나타난다. 광주의 전기차가 제주로 팔려나가고, 또한 남해에 있는 수천개의 작은 섬에 보급된다. 이를 기반으로 광주의 전기차가 중국으로, 미국으로 진출한다.

제주의 관광객들은 버스를 대절해 다니는 값싼 단체여행객에서 자유여행으로 새로움을 만끽하는 해외 고급여행객으로 변화한다. 전기차와 같은 새로운 물건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전기자동차와 관련된 서비스 인력, 고급 자유여행객을 위한 새로운 문화체험사업 등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 광주에는 젊은이들이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대신, 자동차 기술을 배워 공장에 취업하며 새로운 중산층을 형성한다. 임금이 지금의 현대기아차보다 낮더라도 지식과 평판에서라면 뒤지지 않는 기업이 우뚝 선다.

한국 경제는 굳히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기존 재벌체제는 ‘이대로’를 외치는 듯하다. ‘신수종사업’은 말만 무성할 뿐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성장의 경험과 함께 꿈꾸는 경험, 변화하는 경험 자체를 잃어버릴까 두렵다.

잇따라 방문했던 광주와 제주, 두 개의 꿈을 이어붙여본 이유는 거기 있다. 이렇게 이어붙여보다 보면, 지금은 잊혀진 것만 같은 ‘대한민국의 꿈’에까지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나는 여전히 꿈꾸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 뉴스토마토 / 2015.10.22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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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5/10/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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