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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네 번째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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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네 번째 자백

익명 (미확인) | 화, 2015/10/20- 21:59

홍강철 씨는 북한에서 탈북브로커로 일하다 2013년 9월 본인 스스로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북한 보위사령부의 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라고 자백했습니다. 그는 합신센터가 2008년 설립된 이후 북한의 지령을 받고 위장탈북한 간첩이라는 자백을 한 14번째 탈북자입니다.

검찰은 유우성 씨 간첩증거조작 사건으로 대검 진상규명팀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던 날 이 사건을 발표했습니다.

‘보위사 직파 간첩 적발!’ 보수언론은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다시 국정원과 검찰의 목을 옥죄고 있습니다. 2014년 9월 1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만약 2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된다면 ‘유우성 사건’ 이후에도 국정원이 간첩조작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뉴스타파는 사건의 진실을 1년 6개월 동안 추적했습니다.

▲ 2013년 6월, 홍강철 씨가 박 씨 모녀를 데리고 천신만고 끝에 탈북에 성공한 직후의 모습

▲ 2013년 6월, 홍강철 씨가 박 씨 모녀를 데리고 천신만고 끝에 탈북에 성공한 직후의 모습

탈북브로커 홍강철, 탈북하다

위 사진은 홍강철 씨가 박 모 씨와 그녀의 딸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으로 탈북한 직후에 찍은 것입니다. 지금보다 많이 야위고 거친 얼굴이지만 무사히 탈북했다는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이 때만 해도 그는 간첩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홍 씨가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그가 북한 보위부 정보원이며 탈북브로커를 납치하려 했다는 첩보가 국정원에 접수된 상태였습니다. 제보한 사람은 납치될 뻔 했다는 브로커 유 모 씨였습니다.

유 씨는 홍강철 씨 일행이 중국으로 나오면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막상 연락이 오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홍 씨가 자신을 납치하려 한다는 정황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홍 씨와 박 씨 모녀가 다른 브로커와 선을 대 떠나자 유 씨는 박 씨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박 씨 어머니는 결국 유 씨를 고소했습니다. 유 씨는 벌금 5백만 원을 선고받았는데, 이 사건 뒤 홍강철 씨를 보위부 정보원이라고 제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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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강철씨가 당시 입던 생활복 차림으로 상황을 재연하는 장면. 홍 씨는 합신센터의 독방에서 135일 동안 지독한 신문을 당한다.

합신센터 독방 135일, 간첩이 되다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관들에게 신문을 받던 상황을 재연하는 홍강철 씨입니다. 당시 입던 생활복을 그대로 입고 있습니다. 홍 씨는 합동신문센터에서 135일 간 독방 조사를 받았습니다. ‘보위사 정보원이 아니냐’는 한 가지 질문을 일주일 내내 받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조사관들의 의도에 맞는 답변을 하면 담배도 주고 술도 줬다고 합니다. 그는 끝 없는 신문 과정에서 허위자백도 많이 했고, 번복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홍강철 씨의 혐의 중에는 ‘통일애국세력의 사상 동향을 파악하고 보고한다’는 것도 있습니다. 그 혐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홍강철 씨는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홍강철 씨가 결국 번복하지 않고 간첩임을 인정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가족을 데려다 주겠다’는 국정원 간부의 약속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간부가 ‘우리는 평양에 있는 사람도 데려다 주는데 국경지역에 있는 너희 가족 못 데려다주겠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홍강철 씨는 북한 보위사령부 간부의 지시에 따라 탈북브로커 유 모 씨를 납치하려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우리는 해외 전문가에게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시스템이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허위자백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리처드 레오 샌프란시스코 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80일 간의 신문, 독방 수용, 자백의 대가를 약속하는 등의 시스템은 허위자백 가능성을 매우 높인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모든 문명국가처럼’ 한국도 독방 수용 금지, 신문 기간을 줄일 것, 변호인 접근 허용, 모든 신문에 대한 영상 촬영 및 보존 등 허위자백을 막기 위한 대책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 1심 무죄 석방 직후 민변 사무실 옥상에서 첫 담배를 피우고 있다

▲ 1심 무죄 석방 직후 민변 사무실 옥상에서 첫 담배를 피우고 있다

무죄를 받다

홍강철 씨에 의하면 국정원은 홍 씨 사건을 언론에 알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이 압수수색 당하던 날 검찰이 보위사 직파 간첩을 적발했다며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를 했고, 구치소에 있던 홍 씨는 펄펄 뛰었습니다. 검사는 사과를 했지만 그 언론플레이는 결과적으로 ‘민들레(민들레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 소속 변호인단에 이 사건을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민들레 소속 장경욱 변호사는 홍강철 씨를 면회했고, 그로부터 ‘모든 것이 조작’이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 뒤 5달 동안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진 끝에 홍강철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나온 뒤 홍강철 씨가 가장 먼저 원한 것은? 담배였습니다.

▲ 마흔 세살 생일 날 민들레 회원들로부터 케익을 받은 홍강철 씨

▲ 마흔 세살 생일 날 민들레 회원들로부터 케익을 받은 홍강철 씨

얼마나 많은 간첩조작 희생자가 있는 것일까

홍강철 씨는 지금 평화롭게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날을 기다리며 재판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를 완전히 간첩 혐의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민들레’ 변호인단은 오늘도 바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홍강철 씨 말고도 열 세 명이 합동신문센터에서 자백한 뒤 간첩이 됐다는 것입니다. 홍강철 씨는 유우성 씨가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던 2013년 8월에 합동신문센터에 들어갔습니다. 즉 합신센터의 조사관들은 자신들이 조작한 유우성 씨의 여동생 유가려 씨의 허위자백이 법정에서 산산히 깨지는 것을 본 뒤 홍강철 씨를 신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찰하지 않았고, 홍강철 씨는 간첩으로 기소된 뒤 무죄판결을 받는, 유우성 씨와 똑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유우성 사건이 있은 뒤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뉴스타파가 취재한 것만 해도 이경애 씨 사건, 북에서 준 패치를 붙이고 거짓말탐지기를 속였다는 이시은 씨 사건, 그리고 합동신문센터에서 간첩이라는 자백을 하고 자살했다는 한종수 씨 사건 등 3건이나 됩니다. 이런 현실은 열세 명의 탈북자 위장 간첩 사례들을 전수 조사해 간첩조작 여부를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습니다.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돕는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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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돕는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민들레 소속 변호사들은 아무런 보수도 없이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만약 민들레에 좀 더 힘이 실린다면 국정원은 아마 간첩조작 같은 구시대적 행태를 반복하는 게 어려워질 겁니다.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사법절차 끝에 유죄판결을 받아 수감된 희생자들의 재심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간첩조작의 주범들을 찾아내 처벌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민들레의 활동 목표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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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출연자

  • 진행 : 안진걸 협동사무처장 (참여연대)
  • 고정출연 : 한상희 교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 이슈손님 : 장유식 변호사(행정감시센터 소장)

 

20151124-참팟21-테러방지법-장유식.jpg

 

참팟 21회 / 테러방지법? 국정원 날개법일 뿐!

 

지난 11월 13일에 있었던 파리 테러 발생후, 국회에서 다시금 '테러방지법' 제정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느닷없이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S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감추고서...'"라는 발언으로 마스크와 후드가 복면으로, 시위참가자를 IS에 비유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다가는 '집시법'에 '얼굴을 가리고 참가하면 안된다'는 웃지 못할 조항까지 들어갈 수도 있겠습니다. 

 

'테러방지법' 제정안이 담고 있는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들여다 보면 '테러의 규정에 대한 자의적 해석', '국정원의 권한 강화', '쉽게 국민 감찰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사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로 인해 테러 대상국이 될수 있다고 해도 국정원의 주된 활동방향은 내국인 사찰이 아니라 해외 정보 수집입니다. 쓸데 없이 선거 개입, 정치 사찰, 국민 사찰 하는 인력을 그들이 말하는 '대테러 정보' 수집에 쏟는다면 충분히 지금의 국정원으로도 테러방지가 가능 할 것입니다. 

 

테러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미국과 유럽의 서방 국가들이 '법'이 없어서 테러를 막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그렇게 국민의 안전이 걱정된다면 쓸데 없는 비밀주의에 묻혀서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국정원을 제 위치로 돌리는 일 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참여연대 팟캐스트에서 '국정원 날개법'일 뿐인 테러방지법의 숨겨진 속셈을 확인하세요.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005?e=21833322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CAQVxr

 

 

 

같이 보기

 

 

 

 

 

수, 2015/11/2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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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영국 페이퍼 컴퍼니 552억 원에 인수
인수 4년만에 자본 전액 감액, 수백억 원 날려

2011년 포스코가 인수한 영국 등록 법인이 영국 공시자료 상으로 자산이 전혀 없는 페이퍼 컴퍼니라는 사실이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 유출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포스코의 해외법인 인수 과정을 보여주는 모색 폰세카 내부 자료는 계약서와 각종 증서, 이메일 등 수백 건에 달한다.

문제의 법인은 EPC Equities(이피씨). 영국 런던 인근에 주소지(Invision House, Wilbury Way, Hitchin, Herts, SG4 0TW, U.K)를 두고 있는 유한책임회사(LLP)다. 모색 폰세카 내부 자료와 포스코 공시자료에 따르면 2011년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은 이 회사의 지주회사 격인 파나마 소재 S&K홀딩으로부터 각각 50%(394억 원), 20%(157억 원)의 지분을 인수했다. 또 2014년에는 남은 지분 30% 중 10%(약 59억 원)의 지분을 추가로 인수했다. 모색 폰세카는 이피씨 측의 법률대리인 자격으로 이 계약에 참여했다. 포스코는 이 법인의 지분을 사들일 당시 ‘남미 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을 인수 이유로 밝힌 바 있다.

법인 설립지인 영국 국세청에 ‘자산 없는 휴면법인’으로 신고

그러나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를 보면 이피씨가 영국의 기업등록관청인 컴퍼니 하우스(Companies House)와 영국 국세청(HM revenue&customs)에 세금 관련 신고를 하면서 스스로 실적이 전혀 없는 회사라는 내용의 서류를 제출한 사실이 확인된다. 연간 재무제표와 세금신고서(Tax Return)에 두 기업 모두 Dormant, 즉 휴면법인이라고 기재돼 있다.

▲ 컴퍼니 하우스(왼쪽)와 영국 국세청(오른쪽) 서류

▲ 컴퍼니 하우스(왼쪽)와 영국 국세청(오른쪽) 서류

포스코가 인수하기 전인 2009년부터 최근까지 자산(고정자산, 유동자산)이나 영업실적이 전혀 없었다고 매년 신고했다.

포스코가 인수한 뒤 이 기업의 실적도 의문 투성이다. 포스코건설과 엔지니어링이 552억 원을 들여 사들인 이피씨는 4년만에 완전히 껍데기 회사가 됐다. 2013년과 2014년, 두 번에 걸쳐 장부가액을 감액한 결과다. 그러나 사실상 껍데기 회사가 된 직후에도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은 S&K가 갖고 있던 이피씨의 지분 30% 중 10%를 추가로 매입했다. 자산감액과 지분 추가 인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뉴스타파는 이 의문을 밝힐 단서도 모색 폰세카의 유출자료에서 찾아냈다. 바로 포스코가 이피씨의 대주주였던 S&K와 맺은 지분 인수 계약서다.

▲ 포스코와 S&K의 지분 인수 계약서

▲ 포스코와 S&K의 지분 인수 계약서

계약서에 따르면, 포스코는 2011년 첫 지분 인수 계약 당시 이미 S&K로부터 이피씨의 지분 100%를 2017년까지 모두 인수하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이뤄진 지분 10% 추가 인수는 이 계약에 따른 것이었다.

지분 매도자인 S&K는 ‘땅짚고 헤엄치기’ 계약

그런데 계약서에서 이상한 점이 확인됐다. 사실상의 페이퍼 컴퍼니인 이 법인의 추가 지분을 인수하면서 포스코에 불리한 계약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기 때문.

2017년까지 매입하게 돼 있는 마지막 지분 20%의 경우, 이피씨의 경영이 아무리 나빠져도 매도자인 S&K는 최초 책정 가격, 즉 2011년 매도가격의 90% 이상을 보장받도록 계약이 설계돼 있다. 심지어 법인이 합병되거나 청산될 경우에도 포스코는 남은 지분 20%를 1272만 달러, 우리 돈 148억여 원을 주고 인수해야 하는 조건까지 포함돼 있었다.

같은 회사인데 공시내용 200배 차이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의 공시내용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이피시에 대한 두 회사의 공시내용이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같은 회사인데도 매출, 순이익 등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2012년의 경우, 포스코건설은 이피씨의 총자산이 366억여 원, 순손실은 1억 4000여만 원이라고 밝혔는데, 같은 회사에 대해 포스코 엔지니어링은 676억여 원의 총자산과 330억 원의 순손실이 났다고 공시하고 있다. 같은 회사인데 같은 회계연도의 손손실 액수가 200배 넘게 차이가 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포스코의 공시내용에 의문을 제기했다.

같은 회사에 대한 공시인데, 자산과 손익이 다른 수치가 기재됐다는 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 김경율 회계사

인수 당시 포스코 건설 대표이사, “그런 회사 모른다”

뉴스타파는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포스코에 질의서를 보냈다. 포스코측은 뉴스타파 보도 당일인 8일 오후 6시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EPC에쿼티스 자회사인 페루 현지법인이 수행하는 발전소 프로젝트의 손실로 EPC에쿼티스 지분가치가 하락 되어, 당사는 회계기준에 따라 EPC에쿼티스의 투자주식을 감액 처리했다. S&K와의 계약은 공정계약이다. 공시내용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단순한 업무 착오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2011년 최초 인수 계약 당시 포스코건설의 대표이사였던 정동화 전 포스코 건설 부회장은 “그런 회사는 모른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정 전 부회장은 2011년 인수 계약 당시 포스코건설 측 대표 자격으로 모색 폰세카에 여권사본까지 제출한 바 있다.

한편 포스코는 한때 세계 1위(조강생산량) 철강기업이었으나 최근엔 5위권으로 위상이 추락했다. 2008년 4조 원 넘는 순이익을 냈지만 지난해엔 적자로 돌아섰다. 50만 원대를 유지하던 주가도 20만 원대로 추락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 이후 진행된 무차별적인 인수합병이 경영 부실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포스코는 2008년 이후 전세계에서 총 63개의 법인을 사들이거나 설립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매년 적자를 내며 포스코의 부실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진행된 검찰수사 과정에서 해외비자금 조성, 주요 임원들의 횡령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금, 2016/04/0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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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인 2013년 7월 18일, 충남 태안 해병대캠프에서 5명의 고등학생이 목숨을 잃었던 참사를 기억하십니까. 아이들이 훈련을 받던 바닷가는 이제 진입금지 구역이 됐고, 사람이 찾지 않은 해변가는 흉물스런 쓰레기만 널려있습니다. 재판을 끝으로 사건은 마무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요. 뉴스타파가 태안해병대캠프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부모, 당시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아르바이트 노동자, 캠프를 운영했던 하청업체와 원청업체 관계자들을 모두 만나봤습니다. 누구에게 5명의 목숨에 대한 책임이 있을까요. 그리고 누가 책임을 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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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식 씨 (故 이병학 군 아버지)

이후식 씨가 취재진에게 보여준 것은 수백 개의 문서들이었습니다. 이 씨가 직접 경찰서, 군청 등 사건 관련 부처를 쫓아다니면서 얻어낸 문서, 이 씨가 직접 기록한 사건일지, 그리고 의문점들이 빼곡히 적힌 종이들이었습니다. 이 씨는 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6개월 동안 3만km 넘게 운전을 했다고 합니다. 1,2심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 씨는 뭔가 잘못돼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는 걸 느낀 겁니다. 이 씨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포기했습니다.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봐요.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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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보조교관이 ‘최고형’ 받아

2년 전 공주사대부고는 숙박업체인 한영티앤와이와 2학년생 198명의 병영체험활동 계약을 맺습니다. 한영티앤와이는 여행사인 케이코오롱트래블에 하청을 줍니다. 케이코오롱트래블은 해병대 출신들을 모아 이른바 교육팀을 꾸렸습니다. 장태수, 박기태 씨 등 해병대 출신들이 교육팀에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고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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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재판은 사고 1년 6개월 만에야 마무리됐습니다. 원청과 하청 관계자,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 6명이 처벌을 받았습니다.

원청업체 한영티앤와이

대표/오00 –징역 6월(수상레저안전법 위반)
이사/김00 –금고 1년(업무상과실치사)

하청업체 케이코오롱트래블

대표/김00-불기소
이사/김00-금고 1년 6월(업무상과실치사)
본부장/이00-금고 2년(업무상과실치사)

아르바이트 노동자/박기태(가명)-금고 2년 6월(업무상과실치사)
아르바이트 노동자/장태수(가명)-금고 1년 4월(업무상과실치사)

재판결과 아르바이트로 ‘보조교관’ 역할을 한 박기태 씨(가명)가 가장 무거운 형을 받았습니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금고 2년6월’ 형을 선고받고 현재 교도소에 복역중입니다. 같이 현장에 있었던 다른 아르바이트 노동자 장태수 씨(가명)도 1년4월 형을 받아 만기 출소했습니다. 원청업체 대표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아닌 수상레저안전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고,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했던 하청업체 대표는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2 장태수 씨(아르바이트 ‘보조교관’)

뉴스타파 취재진은 당시 사고 현장의 보조교관으로 일했던 장태수 씨(가명)를 직접 만났습니다. 1년4개월을 복역한 뒤 지난해 11월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한 상태였습니다. 장 씨는 사고가 난 2013년 창업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직을 위해 잠시 쉬던 중 해병대 후배로부터 온 전화 한 통화가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A: 장태수 해병님. 요즘 뭐하십니까.
장씨: 잠깐 쉬고 있어. 여행이나 갔다오려고.
A: 아 그러십니까. 해병대 캠프 알바 자리가 하나 있는데요. 장태수 해병님은 와서 서 있기만 하면 되는겁니다.
장씨: 나 자격증 없는데? 교육받아서 자격증 따야 하는거 아니야?
A: 아닙니다. 여기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 다 있고. 장태수 해병님은 오셔서 놀다 가시면 됩니다.

장태수 씨는 청소년지도사 자격증도 없었고 해병대에서 교관 활동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아르바이트 보조교관으로 일하게 된 겁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자격증 있는 청소년지도사는 단 한명도 없었고, 그나마 해병대 교관 출신인 주교관도 다른 조의 훈련을 챙기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였습니다. 마무리 훈련을 진행한 장태수 씨 등은 해병대를 나왔을 뿐 현지 현지 바다의 지형도 모르는 비전문가였습니다.

물이 빠지던 간조 시각, 수심이 갑자기 변할 수 있는 곳까지 들어선 80여 명의 아이들. 순간 들이닥친 큰 파도. 그러나 구명보트는 멀리 있었고, 위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숙련된 전문가도 없었습니다. 장 씨의 눈 앞에서 5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해 말 출소한 장 씨는 취직할 곳이 없었습니다. 전과 기록을 갖고 이력서를 낼 수 없었습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 그가 택한 것은 공사장의 일용직 노동이었습니다. 포항, 속초, 대전 등 현장이 있는 곳은 닥치는 대로 다녔습니다. 지금은 위험하지만 일당이 높은 야간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도 서른이 넘은 성인인데…자식이 죽은 부모가 다섯이나 있잖아요. 내가 부모였으면 난 반 죽여놨겠다, 교도소에서 작성한 반성문에 이렇게 물었어요. 너의 자녀나 친척, 지인들이 이런 일 당했다면 법적으로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냐고.

#3 하청업체 (아이들 교육을 담당할 알바생 고용)

당시 하청업체였던 케이코오롱트래블 대표는 취재진과 통화를 거절했습니다.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영업 중이었습니다. 직원은 취재진에게 “저희랑 (태안 참사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청을 맡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저희가 (직접) 행사(진행)한 것도 아니고, 뭐가 관련이 있다는 거냐”고 말했다. 장태수 씨 등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하청업체로부터 직접 임금을 받았습니다.

장태수 씨처럼 경험도 자격도 없는 사람들을 고용했던 이 하청업체의 행태에 대해 태안에서는 사고 전부터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태안에서 만난 다른 사설 캠프장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부분 업체들이 경력자 쓰는데 거기만 이상하게 그런 (알바)애들 많이 써요. 그때 내가 그랬어요. 야, 애들 이렇게 써서 책임질 수 있어? 너도 자식키우는 놈이? 야, 애들 이렇게 하다 죽인다.

장태수 씨도 “알바생인 내가 문제제기를 할 순 없었다”며, “사고 당시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한 사람의 전문가만 있었어도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사고를 수사했던 해경은 하청업체 대표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바 있습니다. 검찰은 그러나 하청업체 대표는 현장에서 직접 교육을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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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원청업체 (공주사대부고와 직접 캠프 계약)

그럼 원청업체인 한영티앤와이는 왜 “위험하게 교육한다”는 평판을 받던 하청업체와 계약을 한 걸까. 당시 태안에는 해병대 캠프를 운영할 수 있는 업체가 4군데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태안에서 사고 당시 한영티앤와이에서 일했던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 이유를 아주 간단하게 말합니다.

이유는 돈 때문이죠.
싸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싸니까…

원청업체 대표는 알바생들이 처벌받았던 업무상과실치사가 아니라 수상레저안전법으로 금고 6개월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영티앤와이의 모(母)기업에 복직해 상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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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캠프 참사의 진짜 원인은?

고등학생 5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2년. 유가족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훈련시켰던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아직 감옥에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출소 뒤에 갈 곳을 잃었습니다.

사고 당시 아르바이트 보조교관이 저지른 과실은 눈에 잘 보입니다. 하지만 진짜 사고의 원인은 보고 밝혀내려는 의지가 없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경험도 자격도 없는 사람들을 고용했던 업체들은 처벌을 받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처벌을 받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취재/김새봄
영상취재/신승진
재연/윤석민, 이상원, 3기 하계연수생 안병욱 외 9명
성우/윤동기
편집/윤석민

수, 2015/07/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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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기습적인 음주 단속에 항의하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돼 세 번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부부가 6년 간의 법정 다툼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청주지방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구창모)는 지난 8월 19일 충북 충주에 사는 박 철(53) 씨의 위증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박 씨의 위증 증거로 삼은 경찰관들의 진술을 신빙하기 어렵고, 사건을 촬영한 동영상 만으로는 공소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후 6년 만에 첫 무죄 판결

박 씨는 지난 2009년 경찰의 기습적인 음주 단속에 항의하다 경찰의 팔을 꺾어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입건됐고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 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 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부인 최옥자 씨가 위증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교육공무원직에서 파면되고, 박 씨가 다시 아내의 재판에 증인으로 섰다가 위증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4월 1심에서 벌금 5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 박 씨 부부는 세 번 기소돼 이번 항소심 전까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 박 씨 부부는 세 번 기소돼 이번 항소심 전까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박 씨의 위증 혐의를 다룬 항소심 재판부가 기존의 유죄 증거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사건 당일 경찰이 촬영한 동영상이 오히려 박 씨의 무죄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인정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박 씨와 변호인은 동영상만 보아도 박 씨가 경찰의 팔을 꺾은 게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다고 주장했지만 이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화질을 개선한 사건 당일 동영상 화면.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화질을 개선한 사건 당일 동영상 화면.

사건 동영상, 유죄 증거에서 무죄 입증 증거로 바뀌어

이번 재판부는 박 씨 변호인의 요청을 수용해 이 동영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영상의 화질을 개선하고 속도를 6분의 1로 느리게 편집한 영상을 제출받았다. 이 영상을 토대로 다시 박 씨의 동작을 검증한 재판부는 박 씨가 사건 당시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상체를 뒤로 젖히고 있는 점 △시선을 해당 경찰관이 아닌 다른 경찰관들의 얼굴에 두고 있는 점 △오른팔이 꺾여 비명을 질렀다는 경찰이 왼손에 들고 있던 메모지를 떨어뜨리거나 놓아 버리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박 씨가 경찰의 팔을 잡아 비틀거나 한 일이 없음에도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가 폭행을 당한 것인 양 행동한 것으로 볼 여지가 높을 뿐”이라고 판시했다. 박 씨가 경찰의 팔을 꺾은 게 아니라 오히려 경찰이 ‘헐리우드 액션’을 했다는 쪽으로 무게를 실은 것이다.

“경찰의 진술도 신빙성 없다”

재판부는 또한 팔이 꺾였다고 주장하는 경찰관과 동료 경찰관의 진술이 신빙하기 어려워 유죄 증거로 삼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해당 경찰관은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팔을 꺾이고 난 후 넘어졌다는 점과 양팔에 상처가 났다는 진술 등을 번복했다. 또 이번 재판에서는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겁이 나 비명을 질렀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결코 사소하다고 볼 수 없는 상당히 의미 있는 부분 부분에서 수시로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며 “경찰의 변화무쌍한 진술은 함부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밝혔다.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동료 경찰관도 박 철 씨 공무집행방해 사건 1심에서는 “‘악’ 소리가 나서 보니까 팔이 꺾어져 있었다”고 말했다가 아내 최옥자 씨 위증 사건 항소심에서는 “‘악’ 소리가 나서 본 것이 아니고 그 때 옆에 있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모호한 취지로 진술을 번복한 뒤 이 사건 범행을 봤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변모되어 가는 증인의 진술 중 어느 하나를 액면으로 믿을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 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박철, 최옥자 씨 부부

▲ 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박철, 최옥자 씨 부부

“6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동작 검증”

앞서 뉴스타파는 지난해 12월 박 씨 부부의 사연을 취재하며 국내 유명 모션캡처 업체에 동작 감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경찰의 움직임은 정상적으로 팔이 꺾였을 때 나오는 동작이 아니라는 답을 얻었다. 박 씨가 경찰의 팔을 비틀어 꺾었다면 손목, 팔꿈치, 어깨 순으로 몸이 돌아가는 것이 정상인데 영상에서는 경찰관의 어깨와 머리가 먼저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경찰 스스로 허리를 구부렸다고 보는 쪽이 더 합리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 관련 기사 :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2014.12.19)

아내 최옥자 씨의 위증 사건 항소심부터 이 사건을 변호한 안혜정 변호사는 “동영상에 대한 의견서를 쓸 때 좀 더 동작에 대해 자세히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주고, 생각을 전환하게 해준 것이 뉴스타파의 보도였다”고 말했다.

보도 후 8개월 만에 취재진과 다시 만난 박 철 씨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필요한 각오는 질길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인 것 같다”며 “질기면 여건도 변화하고 터널의 끝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최옥자 씨는 “뉴스타파 보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과 변호사님, 힘든 데도 잘 버텨준 아들, 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박 씨 부부는 이번 무죄 판결이 대법에서 확정되면 앞서 유죄 판결을 받은 두 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 관련 칼럼 :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풀리지 않는 의문들

수, 2015/08/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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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토토 사업자인 케이토토(대표 손준철)에 투자했던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앙회)가 올해 안에 투자 지분을 모두 매각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5월 케이토토의 주주 중 한 곳인 케이비즈사모투자전문회사(이하 케이비즈 사모펀드)에 60억 원을 투자한 중앙회는 출자 지분을 올해 모두 매각하겠다는 계획이다. 중앙회는 당초 케이비즈 사모펀드 운용사인 트루벤인베스트먼트(대표 구본진, 이하 트루벤)와 106억 원을 투자하기로 약정했지만 실제 투자한 금액은 60억 원 가량이다.

중소기업청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중앙회가 2014년 5월 케이비즈 출자와 사모투자 전문회사 설립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60억 2천만 원이다. 2015년과 지난해에는 펀드 운용사 트루벤에 보수로 각각 1억 5천만 원과 1억 3천만 원을 지급했다.

<표> 중소기업중앙회가 케이비즈 사모펀드에 투자한 내역

투자시점 투자금액(억 원) 비고
2014.5.23 60.2 (주)케이비즈 출자금액 및 사모투자전문회사 설립비용 등
2015.6.26 1.5 운용사 보수
2016.1.14 1.3 운용사 보수

▲ 출처 : 중소기업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 

중소기업중앙회, 케이토토 투자 지분 연내 매각 방침

중앙회는 스포츠토토 투자 건으로 최근까지 아무런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 2014년 중앙회가 트루벤으로부터 처음 스포츠토토 사업 제안을 받았을 때 트루벤 측이 밝힌 수익률은 24.2%였다. 그러나 사업 투자가 최종 결정될 당시 기대 수익률은 11.2%로 떨어졌고, 최근까지 배당을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표> 중소기업중앙회가 케이비즈 사모펀드 투자로 거둔 수익률

사업 제안을 받았을 당시 수익률 24.2%
최초 사업투자 결정 당시 기대수익률 11.2%
사업 개시 시점부터 현재까지 연도별 수익률 없음

▲ 출처 : 중소기업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

중앙회는 김기문 회장(제이에스티나 회장) 시절 스포츠토토 사업 투자를 결정했는데 사업 초기 부터 논란이 많았다. 투자의 적정성 여부 등을 두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됐는데 지난해 중소기업청이 실시한 감사에서 일부 의혹은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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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제안 받을 때 수익률 24.2%, 최근까지 수익은 없어

지난해 8월 중소기업청이 공개한 중소기업중앙회 감사결과 보고서에는 중앙회가 케이비즈 사모펀드에 투자한 경과가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 있다. 중기청의 감사 결과 내용을 일부 옮기면 다음과 같다.

2014년 1월 중앙회의 A경영기획본부장 및 B팀장이 체육진흥투표권 공모사업에 참여 권유를 받고, 권유 내용을 당시 김기문 중앙회장에게 보고한 이후, 중앙회 관련자는 2014년 1월 C 회장 D 및 E대표이사를 찾아가서 사업전반에 대해 청취했다.

당시 A경영기획본부장은 중앙회 재정이 좋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형편이 아니어서 중앙회 차원의 참여가 곤란하다는 보고를 하였고, 김기문 중앙회장은 투자기회가 좋으니 다른 경로로 참여를 검토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2014년 2월 말에 최종적으로 김기문 중앙회장이 노란우산공제에서 대체투자로 할 것을 지시하였고, A경영기획본부장은 F공제사업단장에게 이러한 결정 사실을 전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 중소기업중앙회에 대한 중소기업청 감사 결과 보고서 발췌

<중소기업중앙회의 케이비즈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 경과>

2014.2 투자제안서 접수
2014.3.25 케이비즈 사모펀드 정관 작성 (투자계약 체결)
2014.3.26 체육진흥투표권 발생사업(스포츠토토) 수탁사업자 입찰공고(입찰 마감 5.8)
2014.5.13 (주)케이토토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2014.5.22 노란우산공제 대체투자위원회 서면 결의
2014.5.23 케이비즈 사모펀드에 출자금 납입
2014.7~2015.8 우선협상자 선정 관련 소송 진행, 대법원 결정
2015.7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수탁사업 개시

▲ 출처 : 2016년 중소기업중앙회에 대한 중소기업청의 감사 결과 보고서

결국 중앙회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스포츠토토 수탁사업자 선정 공고 하루 전인 2014년 3월 25일 트루벤인베스트먼트와 케이비즈 정관을 작성했다. 투자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투자계약 체결 2개월 후 뒤늦게 투자위 서면 심의

문제는 중앙회가 소기업·소상공인의 폐업이나 사망 등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퇴직연금 성격의 사회안전망인 노란우산공제기금을 대체투자위원회의 논의도 거치지않고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이다. 당초 투자 약정 금액은 106억 원으로 적지 않은 규모였다. 이 투자건에 대해 중앙회가 대체투자위원회에 서면 결의한 것은 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2개월이 지난 2014년 5월 22일로 투자금액을 집행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중소기업청의 감사 내용에 대해 김기문 전 중앙회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부인했다. 김 전 회장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비상근이라 결재 권한이 없고, 경영기획본부장이 그런 (투자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면 노란우산공제 쪽에 한번 얘기해봐라 이 정도였지 내가 하라 마라 할 이유가 없다”며 “대체투자위원회에서 결론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중앙회 측에 투자 지분을 처분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 문의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금, 2017/02/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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