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달군네 사진관] 철조망 넘어 능소화

지역

[달군네 사진관] 철조망 넘어 능소화

익명 (미확인) | 금, 2015/10/16- 16:12
IMG_7105.JPG


[철조망 넘어 능소화]

녹이 슬어 부서지는 철조망을
언젠가는 저 꽃이 안아 주리라

쇠가시를 세우는게 평화가 아니라
안아주고 감싸는게 평화의 시작이다.


------

[달군네사진관]은 사진가 달군님의 사진과 짧은 글을 올립니다. 달군님은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그에 대한 기록을 사진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강화 남단에 ‘여차리 물꽝’이라 불리는 무지하게 넓은 폐양식장이 하나 있다. 농사지을 물이 부족한 섬이다 보니 논배미 옆에 빗물이라도 받아 놓으려고 파놓은 둠벙을 ‘물꽝’이라 한다. 강화도 사투리인지 옛말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강화도 농사꾼들은 다 아는 말이다. 여차리 물꽝은 농사용이 아니라 새우 양식장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물꽝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으나, 어쨌건 새 보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탐조 사이트 중 하나다. 지금은 이곳에서 함초 재배를 하고 있다. 봄, 가을 이동시기에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엄청난 규모의 도요물떼새들과 저어새 무리를 볼 수 있다. 갯벌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새들에게는 만조 시에 쉴 곳이 필요하다. 갈매기나 오리처럼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놈들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저어새나 도요물떼새처럼 헤엄이 능숙하지 않은 놈들은 특히 더 그렇다. 
예전에는 육지와 갯벌, 자연하천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넓은 염습지가 있어 이런 곳이 새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그러나 갯벌이 매립되고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물과 뭍의 소통은 끊어지고, 콘크리트 제방과 아스팔트 길이 들어섰다. 새들도 쉴 곳을 잃었다. 
그나마 갯벌가의 폐양식장들이 휴식처를 잃은 새들에게 쉴 곳을 제공한다. 지난 5월 초부터 검은머리물떼새가 여차리 물꽝에 둥지를 틀었다. 몸길이 45cm 내외로 꽤 큰 축에 속하는 검은머리물떼새는 흑백 대비가 선명한 몸통과 붉고 긴 부리를 가지고 있어 눈에 잘 띄는 새이다. 굵고 두툼한 주홍색 부리를 조개나 굴의 껍질 틈으로 밀어 넣어 속살을 꺼내 먹는다고 영어권 나라에서는 ‘굴잡이새(oystercatcher)’라고 부른다. 얼핏 까치를 닮아 강화도 어부들은 물까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 4~6월 사이, 한 배에 두세 개의 알을 낳아 28~33일간 품고 새끼가 나오면 한 달 정도 길러 내보낸다. 부화한 새끼는 젖은 털이 마르면 바로 움직이며 먹이활동을 한다. 새들은 털 없이 눈도 뜨지 못한 채 태어나는 부류와 털을 달고 나오자마자 눈을 뜨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앞엣것을 ‘만성성’, 뒤엣것을 ‘조성성’이라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딱새 같은 대부분의 참새목, 딱따구리류 등이 만성성인데 한 달 정도 부모가 먹여 키워야 한다. 이 시기 이런 류의 어미들을 보면 털도 지저분하고 부스스한 게 추레해 보인다. 그만큼 새끼 키우기가 쉽지 않은 거다. 반면 닭이나 오리류처럼 털이 있는 채로 태어나는 놈들은 알에서 깨어난 뒤 1~2시간이면 바로 걸어 다니며 먹이활동을 할 수 있다. 
어쨌거나 검은머리물떼새의 번식 사실을 먼저 알게 된 강화탐조클럽 회원들은 한 달 이상 ‘쉬쉬~’ 하며 관찰해 왔다. 인터넷 카페에도, 회원들의 소통 마당인 SNS에도, 심지어 모니터링 어플인 갯벌키퍼스에도 사진을 올리지 않고 함구했다. 소위 ‘찍사’들 때문이다. ‘찍사’는 사진 찍는 사람들을 뜻하는 요샛말인데, 우리는 멸시와 비아냥의 뉘앙스를 담아 쓰곤 한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자연 학대’ 사진들, 그리고 그런 사진을 SNS에 올리고 의기양양해 하는 철부지들 때문이다. 5~6월만 되면, 전국의 주요 번식지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 은밀하게 숨겨진 둥지를 찍기 위해 주변의 나뭇가지를 쳐 내는 것은 예사고, 야행성인 수리부엉이 새끼를 찍겠답시고 둥지에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위협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쇠제비갈매기 어미와 새끼를 함께 찍기 위해 새끼 다리에 줄을 묶어놓은 찍사들의 만행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언젠가 한 사진동호회 SNS에 꾀꼬리 둥지 사진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어미 꾀꼬리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순간을 ‘잘 잡은’ 사진으로, 보는 순간 “와, 예쁘다!”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찰랑찰랑한 나뭇가지 끝에 둥지를 만드는 꾀꼬리는 가지 끝 Y자로 갈라지는 양쪽을 단단히 묶어 둥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한다. 둥지를 튼튼히 고정하기 위해 사람들이 버린 비닐 끈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는 한쪽 가지가 보이질 않았다. 자세히 보니 둥지를 지탱해주는 한쪽 가지가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의해 잘려져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았다. 내 사진 속 둥지는 주변의 나뭇잎들이 엄폐해 주는 곳에 잘 숨겨져 있었다. 문제의 사진에는 ‘피사체를 가리는’ 나뭇잎이 남아 있질 않아 어미와 새끼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꾀꼬리는 보통 3~4개의 알을 낳는데 그 둥지에서는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순전히 짐작으로만 이 사진 뒤에 도사린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1) 누군가 사진 찍기 좋은 꾀꼬리 둥지를 찾았다.
2) (비싼 돈 들여 사들인) 사진기를 설치해 놓고 보니 나뭇잎이 가리고 특히 둥지 한쪽의 가지가 들려 새끼를 가린다.
3) 사다리와 톱을 가져와 둥지로 접근해서 한쪽 가지를 잘라 버리고 주변 이파리들을 모두 훑어 버린다.
4) 놀란 새끼들이 둥지에서 뛰쳐나왔고, 그중 2~3마리는 추락사한다.
5) 불행 중 다행으로 남아 있는 새끼 한 마리에게 어미가 먹이를 먹인다. 새끼와 어미가 잘 배치되게 앵글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이 단계가 끝이 아니다. 다음이 더욱 중요하다. 
6) SNS에 사진을 올리고, 멋진 글을 적는다. 위 사진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새들의 육추(새끼를 키우는 것) 장면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집니다.” (나는 가증스러움에 머리끝이 찡해졌다.)
7) 환호와 감탄의 댓글이 줄줄줄~ 달린다.
8) 장소를 묻는 비밀댓글이 이어지고, 며칠 후 둥지 주변은 전국에서 달려온 찍사들의 셔터 소리로 요란하다.
꾀꼬기&둥지_01.jpg
꾀꼬리는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끝의 Y자로 갈라지는 곳에 양쪽을 단단히 묶어 둥지를 만든다.

꾀꼬기&둥지_02.jpg
둥지 주변에 잎이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뻗어 나와야 할 가지도 잘렸고, 새끼는 한 마리밖에 없다.
꾀꼬리&둥지_03.jpg
경계음을 내며 긴장하는 어미와 새끼. 주변에 늘어선 찍사들의 요란한 대포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얼마 전에 한 선배와 여차리 물꽝에 위장텐트를 치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오랫동안 새를 관찰하고 찍어 온 그는, 아름다운 생태사진으로 잘 알려진 이다. 나도 여러 가지 이유로 새의 사진을 찍는다. 예뻐서, 교육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모니터링을 위해서, 아주 가끔은 자랑하고 싶어서…. 그 선배에게 어떻게 하면 새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지 물어봤다. 바로 돌아온 답은 ‘위장텐트를 치라’는 것. 자신이 찍은 좋은 사진들은 모두 위장텐트를 치고 비박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란다. 이어진 말이 더 재미있다. “아무리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있어도 새들은 위장텐트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다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텐트 안의 사람이 자신을 해칠 의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스스름없이 행동해. 서로 신뢰관계가 형성되고 나면 전화통화를 해도, 움직이다가 텐트가 들썩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위장텐트는 새를 속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새에게 접근할 때 갖추어야 할 예의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는 둥지 사진을 찍을 때는 ‘영정사진’을 찍지 말라고도 했다. 둥지 사진을 찍겠다고 주변을 훼손하거나 어미 새의 포란과 육추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게 되면 결국 그 새끼는 부화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자라나기 힘들다. 새끼를 품거나 먹이는 사진을 제아무리 감동적으로 찍었다 하더라도 그 새끼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결국 ‘영정사진’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20여분 쯤 지나자, 텐트에 경계심을 보이던 어미가 돌아와 알을 품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까이서 검은머리물떼새의 포란 과정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놀랍고 흥미로웠다. 텐트 안에서 검은머리물떼새를 지켜보면서, 새들의 은밀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나의 욕망과 ‘내가 경멸하는 찍사’들의 욕망이 다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보았다. 나는 치열한 환경주의자가 아니다. 평균적인 수준의 생태·윤리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호기심 때문에 둥지를 찾아다니거나 훔쳐보기도 한다. 오히려 과도한 도덕적 기준보다는 현실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의 둥지를 훔쳐보지 마라’가 아니라 ‘어떻게 훔쳐 볼 건인지’ 올바른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새들마다 접근 거리가 다르고, 민감도도 다르고, 둥지를 만드는 방법이나 위치도 다르다. 이러한 새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어미 새가 위협을 느끼지 않고, 태어날 새끼들의 성장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새들의 번식 생태를 관찰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은머리물떼새&둥지_01-vert.jpg

여차리 물꽝. 지금은 함초밭으로 사용하고 있어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함초를 다치지 않게 들어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면허증이 없는 사람은 운전을 할 수 없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 운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법의 기준과 절차에 따라 면허증을 따야만 합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다. 새를 보는 면허증 제도는 있으면 안 될까? 유럽 어딘가는 낚시 면허증(Fishing Licence) 제도가 있다고 한다. 라이센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어종이나 수질에 따라 비용과 포획시기, 크기, 포획 가능한 마리 수가 정해져 있다. 잡아서는 안 되는 어종도 있고, 잡았다가 놓아주어야 하는 어종도 있다. 오염된 곳이나 보후구역에서는 낚시를 할 수 없다. 새를 위협하지 않고 관찰하는 방법에 대해 필수교육을 받고,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더라도 정해 놓은 규칙을 위반하면 벌금 정도는 부과할 수 있는 제도 같은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영정사진’처럼 못된 사진을 찾아내어 그 사진에 어떤 비열한 짓이 도사리고 있는지 ‘까발리고’ 폭로하는 자발적인 활동도 필요하겠다. 야조회 같은 전국적인 네트워크 차원에서 세부적인 규범을 만들어서 알리고 홍보하는 것은 어떨까.

캐나다_fishing_License.jpg

캐나다의 Fishing license(2105년 8월 기준)
새들이 둥지를 떠나는 것을 ‘이소’라고 한다. 검은머리물떼새는 이소 직전 사라져 버렸다. 어미들은 보이지만 새끼들이 보이지 않는다. 너구리라도 탄 걸까? 강탐 회원들의 한 달간의 응원이 있었지만, 새끼들의 운명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만큼 야생은 엄혹하고 때론 잔인하다. 그 냉혹함에 우리마저 거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 이 글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 주관적 견해일 뿐입니다. ‘내로남불’이라고 욕해도 상관없지만 생태지평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필자 소개>





여상경  생태교육허브물새알 협동조합 관리자






강화로 흘러들어와서 어쩌다 새를 보기 시작, 덕분에 심심치 않게 시간 보내며 남은 여생을 준비하고 있는...




화, 2020/06/23- 19:46
8
0
 1.jpg
소화기에 두꺼운 비닐 재질의 대북 삐라(전단)가 들어있던 바다거북, 수염과 내장 등 곳곳에서 폐그물 조각 등 크고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된 참고래 새끼.

2.jpg

3.jpg

 
언젠가부터 플라스틱 쓰레기가 잔뜩 들어있는, 또는 폐그물 등에 걸려 안타깝게 죽어간 해양동물의 사체는 포털 사이트의 첫 화면을 장식하는 단골 뉴스가 되었습니다. 이런 뉴스에는 으레 달리는 댓글들이 있습니다. 누리꾼들 중에는 “인간이 미안해”, “인간은 지구를 좀먹는 기생충 같다” 같은 댓글을 다는 이들이 많고, 여기에 좋아요를 누르는 이들도 많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난해부터는 “지구가 인간을 없애 스스로 정화하려고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창궐시킨 것 같다, 코로나19는 지구의 백혈구가 아닐까” 같은 댓글도 심심치 않게 달리고 합니다.
4.jpg
 글의 서두에 언급한 바다거북과 참고래는 각각 2018년 4월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과 2020년 1월 제주 한림항에서 실시된 부검 현장에서 목격한 해양생물들의 사례입니다. 바다거북과 참고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는 운 좋게도 두 동물을 대상으로 한 국내 첫 과학적 부검 연구 현장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국립생태원에서 진행된 바다거북 부검 연구는 생태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생태원, 충북대, 전남대, 세계자연기금(WWF), 여수 한화아쿠아플라넷 등의 해양생물 연구자, 수의사, 사육사 등 1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습니다. 2016년과 2017년 국내 연안에서 발견된 거북의 폐사체 중 4구를 부검하고, 조직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다거북은 국내에 서식하는 대형 해양생물 가운데 보호대상 생물로 지정된 종이지만 아직까지 바다거북의 생태는 베일에 가려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많은 기관들이 모여 협업하면서 바다거북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참고래 부검 연구 역시 비슷합니다. 당시 연구에는 제주대, 한양대, 세계자연기금(WWF),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등이 참여했는데 국내에서 다수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과학적 부검 연구는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두 연구사례를 다룬 제 기사들에도 어김없이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물론 댓글 몇십개, 몇백개가 달린다고 당장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확인할 때마다 다소의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직은 우리 인류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또 할 마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게재가 시작된 ‘플라스틱 중독사회’ 기획을 취재하면서 저는 지금까지보다 좀 더 많이 해양생물들에게, 그리고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미안함은 바로 우리가 흔히 미세플라스틱(마이크로플라스틱)이라고 부르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 그리고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초미세플라스틱(나노플라스틱)이 지닌 잠재적 위험성 때문에 생긴 감정이었습니다.

 미세플라스틱은 일반적으로 5㎜ 미만 크기의 플라스틱 조각을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상존하지만,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심각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유엔환경계획(UNEP)은 2014년 미세플라스틱 오염을 전 세계 10대 환경문제 중 하나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플라스틱 중독사회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후배 기자와 함께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오염의 실태와 생태계, 그리고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국내외의 학술논문 및 보고서 70여편을 검토해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미세플라스틱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놀라게 되는 내용들을 논문에서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미세플라스틱의 정의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 과학자들은 대체로 미세플라스틱을 ‘크기가 100nm(나노미터) 이상, 5㎜ 미만인 플라스틱’으로 정의합니다. 또 많은 학자들이 나노플라스틱(초미세플라스틱)의 정의를 1nm(나노미터) 이상, 100nm 미만이라는 것에 동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세플라스틱의 하한이 100nm가 됐습니다. 100nm는 머리카락 굵기의 500분의 1 정도 길이입니다.

 미세플라스틱은 발생 원인에 따라 1차 미세플라스틱과 2차 미세플라스틱으로 나뉩니다. 1차 미세플라스틱은 의도적으로 만든 미세플라스틱이다. 치약, 세안제, 화장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알갱이가 대표적입니다. 2차 미세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제품과 파편이 풍화·마모되며 생긴 것입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미세플라스틱 대부분은 2차 미세플라스틱입니다.

 인간 활동에 의해 생성된 미세플라스틱은 이미 지구 전체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해양은 이미 미세플라스틱 오염으로 ‘플라스틱수프’가 됐다는 말도 나옵니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오염이 매년 해양생태계에 입히는 피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30억달러(14조3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극지방에 내리는 눈, 미국의 국립공원 지역에 내리는 비에도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돼 있다는 연구결과들도 나와있습니다.

 지하수와 수돗물, 생수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됩니다. 국내의 경우 금강, 낙동강, 한강의 물과 어류에서 미세플라스틱이 확인됐고, 일부 정수장에서도 확인이 된 바 있습니다. 국립생태원 연구진이 지난해 금강의 어류와 물을 분석했더니 폴리에스터와 폴리비닐클로라이드 등 미세플라스틱 5종류가 검출됐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금강 상류부터 하류까지 최소 3종류(폴리에스터,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가 잔존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부경대 연구진이 2019년 국립환경과학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낙동강 물과 어류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습니다. 강물에서는 1㎥당 112~152개, 어류에서는 누치 한 마리당 4.3개, 밀자개 3.5개, 메기 1.7개, 붕어 0.9개 등이 검출됐습니다. 한강 본류(잠실수중보~한남대교)에서도 1㎥당 최대 2.2개의 미세플라스틱이 확인됐습니다. 또 국내 수돗물의 미세플라스틱 실태를 조사한 결과, 24개 정수장 중 21개 정수장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3개 정수장에서는 1리터당 각각 0.2개, 0.4개, 0.6개가 검출됐습니다.

 어패류를 포함한 다양한 해양생물뿐 아니라 닭, 꿀, 맥주, 천일염, 생수, 의약품 등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은 확인됐습니다. 이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인간이 배설한 대변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과대학 연구진은 지난해 국적이 서로 다른 지원자 8명을 대상으로 미세플라스틱 검출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음식 제한 없이 약 1주일 동안 자유롭게 음식을 먹도록 하고, 그 기간 동안 이들의 대변 시료를 채취해 미세플라스틱을 분석했습니다. 실험 결과 모든 참가자의 대변에서 1g당 18~172개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습니다.

 유럽에서 조개류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연간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의 수는 통계적으로 약 1만1000개로 추산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있습니다. 대체로 유럽인들보다 조개류를 많이 먹는 한국인의 경우는 더 많은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연 중에 널리 퍼져있는 미세플라스틱에 대해 이번 취재를 계기로 좀 더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미세플라스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합성섬유로 만든 옷을 세탁할 때마다, 플라스틱 병을 열고 닫을 때마다, 비닐을 뜯을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루에도 수 차례, 수십 차례 하게 되는 행동들이 자연으로 미세플라스틱을 배출시키는 행동들이었던 것입니다. 아예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이상 자연을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시키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특히 자연환경에 있는 2차 미세플라스틱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형태는 미세섬유입니다. 해양 심층수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미세플라스틱 쓰레기 역시 미세섬유입니다. 북극의 한대수역 심해에서 채취한 시료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의 대부분(약 95%)은 미세섬유였습니다.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유럽 해양에서 발견된 미세플라스틱의 60~80%를 섬유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합성섬유로 만든 의류제품 한 벌을 세탁할 때마다 약 1900개 이상의 미세섬유 조각이 방출되며 그중 일부는 세탁기에서 여과되기에 너무 작아 배수구로 배출된다고 합니다.

 타이어 분진도 주요한 미세플라스틱 중 하나입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은 자국 내 미세플라스틱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이 타이어 마모로 인한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타이어에서 갈려 나온 플라스틱 조각은 비와 바람에 쓸려 강으로, 바다로 향합니다. 해상무역의 비중이 큰 한국의 경우 선박수송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가장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넣으면 코팅된 플라스틱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는 것과 흔히 쓰는 폴리프로필렌 소재의 아기용 젖병에 뜨거운 물을 넣을 경우 많은 양의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폴리프로필렌은 국내에서 음식 배달용기로도 널리 사용되는 재질입니다.

 비닐을 뜯거나 플라스틱 병의 뚜껑을 여는 매우 사소한 행동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인류 모두는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있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미세플라스틱이 생태계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에 대한 연구는 걸음마 단계지만, 미세플라스틱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그 또한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이 먹이사슬에서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된 해양생물들을 먹는 ‘최종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2021012201002359000208491.jpg


 미세플라스틱의 생태계 영향은 크게 두 범주로 나뉩니다. 첫째는 미세플라스틱 입자 자체가 미치는 물리적 영향입니다. 미세플라스틱의 물리적 영향으로 대표적인 것은 미세플라스틱 섭취로 인한 영양 감소, 내부 장기 손상, 염증 반응 등입니다. 생물의 체내에 들어온 미세플라스틱은 소화기 내부에 상처를 입히고, 소화작용을 약화시켜 질병 발생률과 사망률을 높일 우려가 있습니다. 특히 플라스틱 입자가 작을수록 더 위험합니다. 입자가 작을수록 생체조직의 장벽을 통과해 혈관이나 모세혈관에 침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미세플라스틱의 화학적 영향입니다. 미세플라스틱에 포함된 첨가제가 침출되면서 생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에 포함된 첨가제 중 프탈레이트, 비스페놀A 등은 대표적인 내분비계교란물질(환경호르몬)입니다. 비스페놀A는 갑상선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고, 생식 독성과 발달장애 및 심혈관계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프탈레이트는 생식계 발달장애, 기형 등 다양한 독성을 유발합니다.

 미세플라스틱은 다른 유해물질을 옮기는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영국 플리머스대학 연구팀은 미세플라스틱이 DDT 등 여러 오염물질을 흡착해 담수에서 해양으로 옮겼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미 짧은꼬리슴새에서는 첨가제인 폴리브롬화 디페닐에테르(PBDE)가 발견된 바 있으며 홍합, 물벼룩, 제브라피시 등에서는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해 체내에 비스페놀A(BPA)의 농도가 더 증가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를 흡착한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 일본 송사리에게서는 간 독성 등의 이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PAHs는 한번 흡수되면 체내에 축적되고, 암과 돌연변이를 유발하고, 생식능력을 저해합니다.

 폴리프로필렌 입자는 주변 해수보다 10만배에서 100만배가량 높은 농도로 발암물질인 폴리염화바이페닐(PCB)과 맹독성 농약인 DDT의 대사산물인 DDE를 축적할 수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습니다. PCB는 여러 동물의 면역체계, 생식능력, 및 신경계에 독성을 초래하고, 간에 손상을 줄 수 있으며, 암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미세플라스틱에는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s)이 주변 바닷물보다 최대 1만~10만배가량 높은 농도로 축적되기도 합니다.

 미세플라스틱에는 니켈, 납, 카드뮴 같은 중금속도 흡착됩니다.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풍화된 미세플라스틱은 원래의 플라스틱보다 중금속 흡착도가 1.5~25배가량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납은 어린이에 대한 인지능력, 신경행동학적 이상 및 발달장애를 유발하며, 수은은 신장독성과 신경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드뮴은 폐암과 기관지암을 유발하며, 크롬은 만성 노출 시 폐암, 호흡기 천공이나 위축증, 피부궤양을 유발합니다.

 미세플라스틱은 자연으로 배출된 뒤 더 잘게 쪼개져 초미세플라스틱이 되는데 이로 인한 생태계 오염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스웨덴 룬드대 연구진은 2017년 어류가 섭취한 극히 작은 초미세플라스틱 입자들이 뇌까지 침투해 뇌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비록 실험실에서 수행된 연구지만 인간에서도 초미세플라스틱이 뇌나 다른 장기에 침투해 악영향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학계에서는 인체에 침투한 미세플라스틱과 여기서 나온 첨가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건강 영향으로 피부자극, 호흡기 문제, 심혈관 질환, 소화기 문제 및 생식 저해효과 등을 거론하고 있습니한다.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잠재적인 세포 독성을 나타낼 수 있음이 확인됐고, 미세플라스틱이 체내에서 세포막, 태반을 넘어갈 수 있으며, 세포 손상, 염증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특히 초미세플라스틱은 생체의 막을 관통해 동물의 혈액세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UNEP는 2016년 5월 보고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에서 “나노 크기의 미세플라스틱은 태반과 뇌를 포함한 모든 기관 속으로 침투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또 스위스 프리부르대학 연구진은 2019년 폴리스티렌 기반의 초미세플라스틱을 다양한 인간세포에 처리하여 분석한 결과 면역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습니다. 초미세플라스틱이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까지 침투해 세포 활성을 저하시키고 다른 물질에 의한 독성을 증폭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섬유 형태의 미세플라스틱은 폐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 미세플라스틱과 첨가제, 잔류성유기오염물질, 중금속 등이 사람의 체내 어디에 쌓이고, 어떻게 작용하며, 얼마나 쌓여야 악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 연구는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앞서 언급한 연구들 역시 동물실험이나 사람의 세포를 대상으로 한 실험들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의 독성과 인체 악영향을 명확히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이는 미세플라스틱이 유해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직 충분한 연구결과가 축적되지 않아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아직 인체 유해성 여부가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전예방주의 원칙에 따라 생태계와 인류가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해 겪게될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전예방주의 원칙은 다수의 건강 또는 환경에 대한 위협이 존재하는 경우 그에 관한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하더라도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매년 막대한 양이 자연으로 배출되고 있는 미세·초미세플라스틱은 일단 자연 중으로 배출되면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다시 수거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결국 미세플라스틱 문제의 해법은 현재로선 자연 중으로 최대한 배출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생활 속에서의 작은 실천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
<김기범 기자의 사람과 자연>은 필자가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한 사람과 동물,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지면에 다 담지 못했지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필자소개> 
김기범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 / 경향신문사 기자
2006년 경향신문 입사했고, 2013년 환경부를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동물면 담당을 맡고 있으며 환경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2020년 3월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수, 2021/01/27- 02:09
6
0
갯벌은 수많은 생명들을 먹여 살린다. 갯벌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생물로 사람과 새가 있다. 특히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며 살아가는 이동철새들에게 갯벌은 더없이 중요한 삶의 터전이다. 전 세계 120여 종의 도요물떼새 중에서 대략 60여 종이 월동지와 번식지를 오가는 중에 한국의 갯벌을 이용한다. 도요새 중에서 제일 몸집이 큰 종으로 알락꼬리마도요란 놈이 있다. 유명한 가수가 부른 노래 제목에도 등장하는 바로 그 마도요다. 말조개, 말백합, 말냉이처럼 동물이나 식물 이름에 ‘말(馬)’ 자가 들어가면 몸집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놈은 도요새 중에서 제일 크고 꼬리도 알록달록하다는 뜻이겠다. 큰 몸집만큼 긴 부리가 둥그렇게 구부러져 있어 아주 독특하게 생긴 알락꼬리마도요는 전 세계의 생존개체가 30,000여 마리에 불과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Red List)에 ‘위기종(EN)’으로 등재되어 있다.1) 필리핀, 호주 등지에서 월동2)하고 유라시아 중북부 툰드라 지대에서 번식하는 알락꼬리마도요를 우리나라에서는 번식지로 올라가는 봄철과 월동지로 내려가는 가을철에 잠깐 볼 수 있다. 이런 새들을 ‘나그네 새’라고 하는데 알락꼬리마도요는 우리나라 갯벌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나그네 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비행능력이다. 호주에서 긴 월동기간을 보낸 이들은 기온이 올라가고 해가 길어지면 본능적으로 이동 시기가 다가왔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 만든 어떤 디지털시계보다 정확하고 섬세한 생체시계가 이들에게 때가 왔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동 시기가 가까워지면 이들은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한다. 어떤 놈들은 자기 몸무게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지방을 저장한다. 출발 직전의 도요새를 만져보면 마치 물풍선처럼 출렁일 정도라고 한다. 언제든지 연소할 수 있는 고효율 연료로 꽉 채워둔 상태인 것이다.

드디어 출발 시간! 대집단을 이루어 출발 준비를 마친 알락꼬리마도요의 비행이 시작된다. 호주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한반도까지의 거리는 대략 8,000Km. 이 먼 거리를 이들은 한 번도 쉬지도, 먹지도, 자지도 않고 논스톱으로 날아온다.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 아닐 수 없다. 혹시 폭풍우라도 만나게 된다면 이들의 여정은 목숨을 건 사투가 된다. 대략 20일이면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에 도착하는데 이때쯤이면 몸무게가 40% 이상 줄어들게 된다. 완전한 탈진상태, 바로 먹이를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심각한 상태가 된다. 어떤 조류학자는 “도요새들은 갯벌에 다리보다 부리가 먼저 닿는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그만큼 이들의 상태가 화급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은 이들에게 완벽한 먹이터와 휴식처를 제공한다. 이들은 우리 갯벌에 보름에서 한 달가량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를 보충한 뒤 다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번식지로 이동한다.
0500001.png
요즘 강화갯벌은 알락꼬리마도요의 울음소리로 요란하다. 번식을 마치고 내려가는 선발대들이 도착하기 시작한 것이다.3) 갯벌 위를 느긋하게 거닐며 긴 부리로 칠게 구멍을 쑤셔대다가 부리 끝에 게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구부러진 부리로 요리조리 파 헤쳐 끝내 잡아내고 만다. 작은 게는 한 입에 꿀꺽, 좀 크다 싶으면 다리를 물고 흔들어 다리를 끊어낸 뒤 몸통부터 먹고 디저트로 다리를 주워 먹는다.
크기조절_0500002.png
2019년 1월 1일, 호주의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WA) 브룸(Broome,) 노던 테러토리(NT) 다윈 항(Darwin Harbour), 퀸즐랜드(QLD) 모레톤 베이(Moreton Bay), 빅토리아(VIC) 웨스턴 포트 만(Western Port Bay)에서 출발한 알락꼬리마도요의 위성추적 데이터. 

알락꼬리마도요 한 마리가 대략 10분에 4마리 꼴로 하루 수백 마리의 칠게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강화갯벌에는 알락꼬리마도요 외에도 큰뒷부리도요며 중부리도요며 학도요며 알락도요며 좀도요며 민물도요며 검은머리물떼새며 개꿩이며 검은가슴물떼새며 수십 종, 수만 마리의 도요물떼새들이 활보하고 있다. 그야말로 새들의 천국이다. 강화갯벌을 경유하는 도요물떼새 수만 마리가 하루에 수백 마리씩 잡아먹는데도 강화갯벌에는 칠게가 득실거린다. 수만 마리의 새들과 사람을 먹이고도 강화갯벌의 생태계는 끄떡없다는 이야기다. 이 얼마나 놀라운 생명력이고 생산력인가. 
만약 우리나라 갯벌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갯벌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휴식하지 못한 채 번식지로 향하는 장거리 비행은 생사를 넘나드는 죽음의 여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설령 구사일생으로 번식지에 도착한들 제대로 번식이나 할 수 있을까. 영양소가 부족하면 산란율이 떨어지고, 난각의 두께가 얇아져 알 내부로 세균이 침투해 정상적으로 부화하지 못한다. 많은 연구결과들이 알락꼬리마도요의 주된 위협으로 황해 갯벌의 감소를 가리키고 있다. 알락꼬리마도요만이 아니다. 호주에서 매년 11만 마리 이상 관찰되던 붉은어깨도요는 몇 년 사이에 9만 마리가 실종되었다. 새만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새만금 갯벌에 지천으로 깔려 있던 조개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개발주의자들이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이라며 침을 튀기던 새만금은 세계 최대의 생태계 무덤이 되어 버렸다. 북상 시기에 전 세계 개체 수의 80%가 황해를 이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놓고 볼 때, 번식을 앞둔 알락꼬리마도요에게 우리나라 갯벌이 얼마나 중요한 공간일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새들마다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는 거리가 다르다. 참새나 제비처럼 사람 근처에서 맴도는 새들이 있는가 하면, 뜸부기같은 새들은 사람 그림자만 봐도 숨어 버린다. 알락꼬리마도요는 30~100미터 이내에, 심지어 250미터 이내에 사람이 들어오면 날아가 버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새들은 한 번 날 때마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휴식하거나 먹이를 먹어야 할 시간을 회피 비행을 위해 써버린다면 그만큼 손해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영양소 섭취는커녕 안정적인 휴식조차 어렵게 된다. 

최근 들어, ‘걷는 길’을 조성하는 게 유행인 듯하다. 제주 올레길이 뜨면서 여기도 나들길, 저기도 둘레길, 다양한 이름의 트래킹 코스를 만들고 있다. 특히 바닷가의 제방에는 이런 걷는 길들이 많다. 강화도에도 ‘강화나들길’이라는 트래킹 코스가 있다. 고즈넉한 들판과 마을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길들이 도시인들에게 매력인가 보다.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강화나들길을 걷곤 한다. 난개발보다는 이런 트래킹 코스를 만드는 게 조금 더 생태적인 것 같아 좋긴 하다. 그런데 이 코스 중에 초지진에서 분오리돈대로 이어지는 8코스 이름이 ‘철새 보러 가는 길’이다. 해안도로를 만들면서 철새들을 쫓아냈던 길…, 그나마 시간이 지나고 해안도로 바깥으로 펄이 높아지면서 갯벌 상부에 넓은 염생식물 군락이 형성되기도 해서 새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다. 이제는 트래킹 코스를 만들어 휴식하는 철새들을 쫓아내고 있다. 이 길은 태생이 ‘철새 쫓아낸 길’이었고, 지금은 관광객들을 동원해서 ‘철새 쫓아내는 길’로 만들고 있다. 강화도만이 아니다. 전국의 풍광 좋은 해안가 ‘걷는 길’ 중 열에 서넛은 필시 ‘철새 쫓아내는 길’일 것이다. 
크기조절_0500003.JPG
강화나들길. ‘철새보러 가는 길’ 외에도 강화나들길 코스의 절반 이상이 해안가에 만들어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갯벌에서 쉬고 있는 새들을 만나면 환호하며 새들을 날리곤 한다.
‘우잇~ 우잇~ 우히히히히히히이이잇~’ 물이 드는 갯벌가에서 알락꼬리마도요의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물소리, 바람소리를 뚫고 창공에 울러 퍼지는 그 소리에 고단한 순례자의 비애가 묻어나는 건 나만의 감상일까. 한쪽에서는 갯벌을 메우고, 한쪽에서는 갯벌을 복원하고, 한때 갯벌 매립에 앞장섰던 기관이 지금은 갯벌 복원의 기수가 되어 온 나라 갯벌을 다시 건드리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역설이 인간세상에서 펼쳐지는 사이 알락꼬리마도요의 고단한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지구 순례자 알락꼬리마도요의 위대한 비행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크기조절_0500004.JPG
매년 30,000km가량을 이동하는 알락꼬리마도요. 이들의 이동선상에 위치한 황해갯벌은 이들의 고단한 여정을 가능케 해주는 생명선과 같은 곳이다.
크기조절_0500005.JPG
사람의 간섭만 없다면 갯벌은 새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의 공간이 된다. 사람을 피해 갯벌 안쪽으로 이동한 도요새들은 물이 차오르면 이내 날아올라야 한다. 헤엄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발 좀 쉬자!
크기조절_0500006.JPG
알락꼬리마도요들이 강화갯벌에서 칠게를 잡아먹고 있다.

<각주>
1) 21세기 초에는 38,000여 개체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00마리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추정치도 있다. 호주에서는 최근 30년간 30~49%씩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와 함께, 가장 중요한 중간기착지인 한국 갯벌의 상황 악화 등으로 머지않아 더 심각한 멸종위기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2015년에는 IUCN 적색목록 ‘VU(취약)’ 등급에서 ‘EN(위기)’ 등급으로 멸종 위험의 등급이 상향 조정되었다. 
2) 전 세계 개체의 약 1/4가량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에서, 나머지 개체들은 대부분 호주에서 월동한다. 소수 개체가 우리나라를 비롯, 일본, 중국 등지에서 겨울을 나기도 한다.

3) 선발대들은 7월부터 호주에서 관찰되며 8월 중순~말까지 최대 무리가 도착하는데, 어미들보다 뒤늦게 번식지에서 출발하는 유조들은 12월 경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

<필자 소개>


여상경  생태교육허브물새알 협동조합 관리자



강화로 흘러들어와서 어쩌다 새를 보기 시작, 덕분에 심심치 않게 시간 보내며 남은 여생을 준비하고 있는...

화, 2020/07/28- 19:49
6
0
제주도에는 모두 5개의 해양도립공원과 1개의 육상도립공원이 있다. 이중 가장 최근에 지정된 도립공원인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화산섬인 제주도에 존재하는 독특한 생태계이다. 곶자왈이란 대규모의 용암지대이면서 식생의 다양성을 높게 하는 함몰지 등 다양한 미소환경을 보여주고 있어서 제주도 곶자왈 식생의 가치는 더욱 크다. 또한 곶자왈은 과거에 제주도민들의 삶의 현장이 되었던 곳으로 중요하다. 버려진 땅이 아니고 숯가마터, 마소방목장 등으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크기_그림01.jpg
교래곶자왈_조천·함덕곶자왈지역(2018년 10월)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2011년에 제주의 대표적인 자연자원인 곶자왈의 체계적인 보전 및 관리와 체험 및 학습의 장, 지속가능한 이용공간 마련을 위해 지정되었다. 위치는 서귀포시 대정읍 애듀시티로 178이며, 면적은 1,546,757㎡에 이른다. 


곶자왈 
제주도 곶자왈의 전체 면적은 110㎢로 제주도 면적의 약 6%를 차지한다. 곶자왈은 제주도의 동·서부지역에 비교적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크게 4부분으로 나눠진다. 서부지역에는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이 있는 한경·안덕곶자왈지역과 애월곶자왈지역 그리고 동부지역에는 비자림으로 유명한 구좌·성산곶자왈지역과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선흘곶자왈이 포함된 조천·함덕곶자왈지역으로 구분한다.

제주도는 2016년에 ‘제주특별자치도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를 지정하여, 곶자왈 지역을 효과적으로 보전·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곶자왈 지역의 자연환경적 자원과 역사·문화적 자원을 보전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였다. 이 조례에 따르면 5년마다 곶자왈 보전을 위한 기본계획과 곶자왈의 자연생태 및 사회·경제적 현황조사를 실시하기로 되어 있다.

크기_그림02.jpg

비자림_구좌·성산곶자왈지역(2015년 2월)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자연공원법』  제4조 제1항에 근거하여 2011년 12월 30일 지정되었다. 이곳은 대정읍 신평리, 구억리, 보성리에 포함되어 있다. 공원은 공원자연보존지구(1,436,992㎡)와 공원자연환경지구(44,825㎡)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 신평리마을회, 개인 소유로 되어 있다. 운영은 2015년부터 신평리마을회가 맡아서 하고 있다.


도립공원의 보전 및 관리
곶자왈도립공원에 있는 보호자원은 동식물자원과 역사문화자원으로 구분되며, 멸종위기야생동·식물로는 개가시나무,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조롱이가 있다. 그리고 포유류는 노루, 오소리, 제주족제비 등 7종, 조류는 황조롱이, 꿩 등 7종, 양서·파충류는 줄장지뱀 등 6종, 곤충류는 무당벌레 등 106종이 보호자원으로 조사되어 있다. 역사문화자원으로는 석축시설 10기, 숯가마 1기, 천연동굴(궤) 4개소가 있다. 곶자왈도립공원에서는 2019년 4월부터 11월까지 월1회 모니터링단을 모집 및 운영하여 곶자왈 보전에 시민들의 침여를 독려하고 있다. 

정광중 교수에 따르면 전체 곶자왈 92.56㎢ 중 20.6㎢(22.3%)가 다른 형태로 이용되고 있으며, 영어교육도시 등 택지개발에 의한 곶자왈 파괴도 있다고 한다. 현재 곶자왈도립공원 주변으로 영어교육도시가 위치하고 있어 생태계 연결성, 생태계 교란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크기_그림04.jpg

제주곶자왈도립공원_한경·안덕곶자왈지역(2018년 9월)


도립공원의 교육 및 이용
곶자왈도립공원에서는 정기적인 숲해설과 비정기적인 숲생태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정기적인 숲해설은 하루 2회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진행되며 20명 이내로 숲해설사가 동행하여 곶자왈 내부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된다. 비정기적인 숲생태교육은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또는 개인이나 부모와 같은 성인 대상으로 구분된다. 주요 교육은 생태미술과 생태놀이이며, 계절에 따라 ‘봄찾기’, ‘여름에 만나는 곤충들’, ‘가을숲’, ‘겨율 숲에도 생명이’ 등과 같이 내용을 구성하여 진행한다. 개인이나 부모들에게는 ‘산림치유’, ‘아이와 숲에서 노는 방법’ 등과 같이 대상의 특징과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 내용을 마련하여 진행한다. 2019년에는 곶자왈신평생태학교에서 진행되는 ‘숲놀이터’ 12회, 곶자왈 탐방코스에서 팀으로 구성된 참가자들이 미션을 해결해나가며 곶자왈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에코엔티어링’이 4회 진행되었다. 

곶자왈도립공원에서 이용가능한 시설로는 탐방안내소, 곶자왈전망대, 휴게쉼터(5개소), 곶자왈탐방로, 주차장, 곶자왈신평생태학교가 있다. 


크기_그림03.jpg

금산공원_애월곶자왈지역(2018년 7월)


마치며
곶자왈은 이름처럼 나무가 빼곡히 우거진 숲, 울퉁불퉁 다니기 험한 숲이라는 이미지도 있지만, 제도적으로 보호받는 지역이자 제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지역이다. 

누군가 나에게 제주도에 살면서 가장 많이 가보고,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비자림, 노꼬메오름, 금산공원 정도를 답할 것 같은데 이곳들이 모두 ‘곶자왈’이다. 제주도에서 곶자왈이 정말 중요한 지역이고, 앞으로도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자료를 찾아보던 2018년에는 곶자왈도립공원 차원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나 정기조사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2019년에 시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모니터링단을 운영하였다니 매우 반가웠다. 또한 제주도는 환경보전중기기본계획(2016~2020)을 통해 곶자왈 국·공유화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직접 애쓰는 시민단체들의 활동도 지지하고 있다.

여전히 우려스러운 점은 곶자왈도립공원 주변으로 영어교육도시가 위치하고 있으며, 다른 곶자왈도 지역 개발계획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곶자왈 경계지역에 대한 생태계 교란, 주변 곶자왈 지역과의 연결성 문제,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영향 등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관심 가져야 할 것이다. 

--- 
<각주>
1) 본 글은 동국대학교 생태환경연구소에서 발행된 생태환경논집 제6권 제2호(2018)에 투고한 본인의 논문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의 보전 및 이용”을 바탕으로 재정리하였다. 
2) 환경부, 「곶자왈 보전 및 현명한 이용대책 마련 연구」, 2012
3) 정광중 제주대 교수, 발표 ‘곶자왈의 인문사회자원의 현황과 보전을 위한 제언’

------

<섬에서 삶>은 필자가 제주에 내려와서 살고 정착하기까지 2년 동안 지내면서 겪은 제주의 환경, 생태, 생활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이승은 전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제주도민


생태지평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대학원에서 환경과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제주도로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화, 2020/04/28- 20:57
5
0
긴다리소똥구리, 점박이물범, 수원청개구리, 초원수리, 두루미, 물방개, 수달, 참수리······ 
모두 멸종위기종, 또는 천연기념물로서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는 생물들입니다. 이 동물들을 포함해 50여종의 법정보호종이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된 지역이 있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상식적인 답변은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개발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며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한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초등학생에게 물어도 이견이 없을 이런 답변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무리한 개발행위가 진행되면서 심각한 환경 훼손이 발생한 지역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미래 세대로부터 삶의 터전을 빼앗는 개발행위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추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 정부 내에 착공을 해야 한다며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가 무리하게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임진강 하구 장단반도 일대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DMZ생태연구소, 파주환경운동연합, 환경과생명을지키는교사모임 등 이 지역의 생물상을 10년 이상 조사해온 단체들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는 약 50여종의 법정보호종이 발견됐습니다. 민간인통제구역인 데다 곳곳에 지뢰가 매설돼 있어 극히 제한적인 조사만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법정보호종이 발견된 것입니다.

모두 희귀하고, 귀중한 동물들이지만 특히 긴다리소똥구리는 1990년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뒤 두번째로 발견된 것이기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곤충입니다. DMZ생태연구소는 지난해부터 서부 민간인통제구역 내 경기 파주에서 실시한 생물상 조사에서 소똥구리류 2종을 발견했습니다. DMZ생태연구소는 홍석영 연구원이 해당 지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긴다리소똥구리와 애기뿔소똥구리를 멧돼지, 고라니 등 포유동물의 배설물에서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동물 배설물로 경단 모양을 만드는 습성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곤충이기도 합니다. 연구소 측은 소똥구리류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발견 일시와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긴다리소똥구리 2020-06-05 10.45.48-1.jpg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서부권의 경기 파주에서 확인된 긴다리소똥구리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두 소똥구리류 곤충 가운데 긴다리소똥구리는 1990년 강원도 철원과 양구에서 확인된 것을 마지막으로 분포가 확인되지 않다가 23년 뒤인 2013년에야 다시 발견된 종입니다. 국내에선 사실상 멸종된 종으로 여겨지고 있는 곤충이기도 합니다. 또 애기뿔쇠똥구리는 과거 한반도 전역의 목초지에서 볼 수 있는 곤충이었지만 현재는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확인되고 있는 멸종위기 곤충입니다. 이처럼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소똥구리가 민통선 이북 DMZ(비무장지대) 서부에서 발견된 것에 대해 DMZ생태연구소 측은 그만큼 DMZ의 생태계가 인위적인 요인으로 인한 교란을 덜 받아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애기뿔소똥구리_20200816_181358964.jpg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서부권의 경기 파주에서 확인된 애기뿔소똥구리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특히 소똥구리는 정부가 멸종위기종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수입해와 증식시키려는 곤충이기도 합니다. 환경부는 앞서 2019년 소똥구리 200마리를 몽골에서 수입해 증식 연구에 착수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처럼 정부 한쪽에서는 예산을 들여 복원하려는 곤충의 서식지를 또 다른 정부 부처에선 필요하지도 않은 고속도로를 건설해 훼손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단반도 일대에 국토부가 설치하려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는 문산읍에서 장단면 도라산역까지 11.8㎞ 구간입니다. 국토부가 왕복 4차로의 고속도로를 설치하려 하는 이 구간은 통일이 되거나, 남북 간 교류, 협력이 활성화되기 전까진 교통량이 전무할 수밖에 없는 지역입니다. 남북 관계가 극도로 경색돼 있는 현재로선 검토할 필요조차 없는 노선인 것이지요. 하지만 파주지역 환경단체들에 따르면 국토부는 “현 정부 임기 내에 착공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이 도로의 건설을 막무가내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토부와 한국도로공사가 “현 정부 임기 내 반드시 착공이 필요하다”면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에 대한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 조치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서를 환경부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앞서 지난 5월 환경부는 한국도로공사가 제출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서’에 대해 환경 훼손 우려가 적은 노선을 택하는 등 내용으로 조건부 동의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파주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비무장지대(DMZ) 인근 생태계 파괴를 용인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당시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와 파주·북파주 어촌계는 성명을 내고 “정부는 DMZ 일원의 생태를 망가뜨리고 농어민 생존의 터전을 빼앗는 고속도로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게다가 이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면제 받은 채 추진되는 ‘묻지마’ 개발사업 중 하나입니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막대한 예산을 낭비한다는 점에서 육지의 4대강사업 중 하나라는 비판을 받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기획재정부는 2018년 국토교통부가 남북철도경협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신청을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우려를 낳고 있는 조건부 동의 처리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지난 7월 환경부에 보냈습니다.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처리를 개발주체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일각에서는 같은 정부 부처인 국토부가 환경부를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조건부 동의, 부동의 처리 등에 대해 개발주체가 수용하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긴 하다”거 합니다. 하지만 환경부로서는 자존심을 구기는 일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장단반도 일대가 포함된 서부 민통선 지역은 소똥구리뿐 아니라 멸종위기 조류 12종이 상시적으로 관찰되고,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의 주요 서식지역과도 중첩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지역에 많이 남아있는 둠벙들은 국내의 주요 보호지역 못지 않는 생물다양성을 간직하고 있는 습지로서 보호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DMZ생태연구소는 지난달 학술지 ‘환경과 생태’에 서부 민통선 북쪽 지역의 둠벙 가운데 경기 파주에 있는 둠벙 143곳을 선정해 생물상을 조사한 결과 총 59과 192종의 저서무척추동물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2018년 8월 15일부터 9월 22일까지 둠벙의 생물상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저서무척추동물이란 곤충, 조개류 등 가운데 물속 바닥이나 수초 주변에 사는 척추가 없는 동물을 말합니다. 둠벙은 전통적인 농법에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지하수를 가두어 만든 인공습지를 말합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서부 민통선 둠벙들에서는 연천 물거미서식지(26과 60종), 강화 매화마름군락지(29과 48종), 대암산 용늪(36과 61종), 울주 무제치늪(23과 64종), 창녕 우포늪(59과 135종) 등 정부·지자체가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습지들보다 더 많은 생물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보호대상인 제주 동백동산습지(22과 60종), 제주 물영아리습지(26과 58종) 역시 서부 민통선 둠벙들보다 적은 수의 저서무척추동물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다. 조사 면적, 시기 및 반복 횟수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일대 둠벙이 국내 주요 보호습지에 준하거나 더 높은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종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192종은 국내 논 생태계에 서식하는 저서무척추동물 중 물벼룩류와 선충류를 제외한 200종의 96%에 달하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국내 습지에 서식하는 저서무척동물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DMZ_9957 (1).JPG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서부권의 둠벙에서 확인된 물방개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이처럼 장단반도 일대의 개발이 상식적으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증거들이 속속 공개되고, 불필요한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한국도로공사는 환경단체들에 공동조사단을 제안하는 등 어떻게든 개발사업을 정당화하려는 명분 쌓기에 나선 상태입니다. 환경부가 지난 8월 전문가, 환경단체와 생태계 공동조사, 상생협의체 구성 등의 조건을 달자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공동조사를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도로공사의 제안을 일축하고, 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파주환경운동연합과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파주지회는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에 대한 ‘공동조사’에 참여할 수 없음을 밝힌다”며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노선은 전 구간 지뢰지역으로 조사를 할 수 없는 곳인데 공동조사를 한다는 것은 기만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들 단체는 “(생태적으로) 소중한 곳에 대해 고속도로 건설을 강행하기 위한 공동조사에 참여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지역주민과 전국의 환경단체, DMZ와 민간인통제구역을 소중히 여기는 국제사회와 협력해 이 지역 농어민의 생존과 생태환경을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의 지적처럼 한국 사회는 현재 ‘필요하지도 않은 고속도로’와 ‘다양한 멸종위기 생물의 보고’ 중 어느쪽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물어볼 필요도 없는 어리석은 질문 앞에 놓이게 된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 부끄러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선택되는 답변은 상식적인 쪽이길 기대해 봅니다. 고속도로 건설 백지화라는 선택이 내려져야만 한국 사회는 4대강사업을 비롯한 온갖 인위적 환경재앙으로부터 조금이나마 교훈을 얻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김기범 기자의 사람과 자연>은 필자가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한 사람과 동물,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지면에 다 담지 못했지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필자소개> 
김기범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 / 경향신문사 기자
2006년 경향신문 입사했고, 2013년 환경부를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동물면 담당을 맡고 있으며 환경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2020년 3월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화, 2020/09/29- 00:40
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