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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네 사진관] 철조망 넘어 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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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네 사진관] 철조망 넘어 능소화

익명 (미확인) | 금, 2015/10/1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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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 넘어 능소화]

녹이 슬어 부서지는 철조망을
언젠가는 저 꽃이 안아 주리라

쇠가시를 세우는게 평화가 아니라
안아주고 감싸는게 평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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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네사진관]은 사진가 달군님의 사진과 짧은 글을 올립니다. 달군님은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그에 대한 기록을 사진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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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조류의 유리창 충돌 흔적.
지난 12월31일, 강화탐조클럽이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해 온 ‘With Birds: 100일 탐조대회’가 막을 내렸다. 말 그대로 100일간의 긴 여정을 마친 것이다.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 탐조대회로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대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이 탐조대회는 기간보다 더 특별한 점이 있다. 대회 우승자들에게 특별한 상품이 없고, 대신 새를 본 만큼 돈을 내야 한다. 1종 당 1,000원씩, 많이 보면 볼수록 많은 돈을 내야 하는 탐조대회다. 조금 길지만 이 대회의 설명글을 인용해 보자.

“1분에 15마리, 1시간에 913마리, 하루에 22,000마리의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혀 죽습니다. 
국내에서 1년에 800만 마리 이상의 새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만 연간 3억5천에서 9억9천 마리가 같은 이유로 죽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펼쳐진 멋진 풍광을 감상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바닷가 카페,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예쁜 숲속 펜션, 고속도로의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높게 세워놓은 방음벽 등은 사람에게 편리함과 쉼을 주지만, 새들에게는 죽음의 벽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이 새도, 이미 죽음의 벽을 경험했거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운이 좋은 극소수가 이 벽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그 벽 아래에서 사체로 발견될 것입니다. 이번 탐조대회는 내 눈앞에 보이는 바로 이 새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록한 새가 무사할 수 있도록, 더 이상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부하신 기부금으로 새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10종을 기록하신다면, 가로 1미터, 세로 1미터의 버드세이버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돈 내는 탐조대회
돈 내는 탐조대회는 과연 성공했을까? 글쎄…, 보기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성공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0일 동안 모두 14명이 참여해 188종, 1140개의 기록을 남겼다. 물론 100일이라는 기간을 감안한다면 아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모두 96만 원이 모였다. 어떤 이는 자기 기록에 ‘나누기 0.1’을 해서 얹어 냈고, 어떤 이는 (비록 목표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애초 목표했던 종수만큼 계산해서 냈고, 또 어떤 이는 대회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작년 한 해 동안 관찰한 종수만큼 계산해서 내기도 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5×10 버드세이버’를 구입하여 버드세이버 부착활동을 하고 있는 환경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많은 이들이 관심과 성원을 보여주었고, 역시 새를 보는 사람들이 새를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계기였다. 

올해에는 세부적인 규정을 조금 다듬어 더 넓게 진행해 볼 수 있겠다. 예컨대, 탐조대회 참가자와 후원자를 함께 모집해서 진행하는 것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대회 참가자 A를 후원하는 B를 함께 모집하여 종당 각 1,000원씩 2,000원을 모금할 수 있다. 기부금을 두 배로 모을 수 있다는 점 외에도 평소에 새를 보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어도 새를 위한 마음을 낼 수 있다. 

방식이 조금 달랐지만, 생태지평에서 주관한 ‘2020 갯벌키퍼스 빅이어: 새를 구하는 탐조’도 비슷한 취지의 전국 규모 행사였다. 이 행사에는 69명이 참여하여 8,880개의 기록을 남겼고, 최고 기록자는 무려 199종을 관찰했다. 올해는 이런 행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과 규모로, 마구 열렸으면 좋겠다. 강화탐조클럽은 올해 전시회의 주제를 ‘죽음: 가장 혐오스런 전시회(가)’로 잡았다. 유리창 충돌, 로드 킬, 중독, 사냥 등 인간 때문에 죽어간 다양한 생명들의 참혹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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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로 죽은 까투리.
건축물의 획기적 전환점 VS 죽음의 덫
유리는 언제 발명되었을까? 그 시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로 유리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본격적인 생산과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기원전 5세기경 이집트 시기라는 데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묘지에서 발굴된 유물 외에 유리를 만드는 과정이 그려진 벽화도 발견됐다. 초기의 조잡했던 기술은 ‘입으로 불어서 모양을 만드는 방법(glass blowing)’을 개발한 로마를 거치며 발전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과 함께 판유리가 대량 생산되면서 건축 기법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제1회 만국박람회장은 유리가 건축물에 어떤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아낌없이 보여준 건축물이다. 개최년도와 같은 1851피트 길이의, 수정궁(The Crystal Palace)이라 불린 이 건물은 대영제국의 위세를 만방에 과시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이후 유리는 건축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가 되었다. 건물 내부에서의 조망을 보장하면서도 외부와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 건축물의 외관은 거의 유리로 덮여 있다고 해도 될 만큼 많은 유리가 사용된다. 건축물 외에도 우리 생활 구석구석 유리가 사용되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다. 눈이 나쁜 내가 쓰는 안경도 그렇고, 버드워처들의 필수품인 쌍안경도 유리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유리지만, 새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덫이 된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국립생태원에서 발행한 ‘야생조류와 유리창 충돌’이라는 보고서를 볼 것을 권한다. 유리창 외에도 새들에게 치명적인 인공구조물은 많다. 전깃줄이나 철책, 조명, 그리고 그물 등이 그렇다. 철원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들의 폐사 원인 중 전선이나 철책에 충돌해서 일어난 사고가 4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만약 사람과 새들이 한자리에 모여 유리의 문제점에 대해 ‘끝장토론’을 가진다면, 그 토론은 어떻게 끝날까? 토론의 주체들이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면, 쉽게 끝날지도 모른다. ‘편리’와 ‘생존’의 대립점 앞에서 ‘편리’를 옹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두 주체가 동등한 발언권과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힘 센 지배자인 인간은 새들의 죽음과 자신의 편리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필요한 것은 대안이 아니라 관심
그런데 인공구조물 때문에 죽어가는 새를 구하기 위해서 정작 인간이 포기해야 할 것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약간의 노력과 비용만 들인다면 인공구조물 충돌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도는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5×10 규칙’에 따라 도트 스티커를 붙여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크릴 물감으로 점을 찍어도 된다. 필름이나 테이프를 10cm 미만 간격으로 붙이거나 그냥 줄만 늘어뜨리는 것도 커다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궁금하다면 https://www.birdsavers.com/를 참고하시라). 투명 유리를 불투명 유리로 교체하거나, 아니면 유리창을 멋진 이미지로 꽉 채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때 유행했던 맹금류 스티커는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새들이 맹금류로 인식하지 않고, 그저 장애물 정도로 인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넒은 유리창에 딸랑 한 두 장 붙여놓는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새들이 빠져나갈 틈이 없다고 느낄 수 있게 촘촘하게 붙인다면 효과가 있다). 

최근에는 사람은 볼 수 없는 자외선 영역을 새들은 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자외선반사코팅유리도 개발됐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투명한 유리창이지만 새들의 눈에는 복잡한 그물망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여 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새들의 유리창 충돌과 죽음에 대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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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충돌방지 스티커를 구입할 수 없다면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서 ‘5×10’ 규격에 맞게 점을 찍어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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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테이핑을 하지 않고, 줄을 늘어뜨리기만 해도 유리창 충돌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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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nilux라는 이름의 자외선 반사 코팅 유리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무늬가 새들에게 보이도록 하여 유리창 충돌을 방지한다. 
편리함을 버린 사람들
미국 포틀랜드의 집주인들은 새를 비롯해 수많은 야생생물을 자신의 뒤뜰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풀을 싹 치고 정원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 멋진 정원등을 설치하는 대신, 부러져 넘어진 나무는 나무대로, 오래되어 썩은 통나무는 통나무대로 그대로 남겨둔다. 낙엽도 굳이 쓸어 모아 태워버리지 않고, 다양한 덤불과 관목, 교목이 어우러져 정원이라기보다는 작은 숲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 부러지거나 썩은 통나무는 다양한 새들과 곤충들의 서식지로 남겨두고, 박쥐를 위한 둥지상자를 달아주거나, 나그네새들의 이동 시기에는 조명을 줄이거나 없애준다. 당연히 유리창 충돌을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노력을 돕기 위해 오듀본 협회와 지역 환경단체들이 함께 ‘뒤뜰서식지인증프로그램(Backyard Habitat Certification Program)’을 운영하고 있는데, 6,000명이 넘는 집주인들이 이 인증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들의 경험과 노력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뒤뜰을 ‘아주 자연적인 준 야생상태’로 유지하고 싶어 한다. 올봄에 잠시 들은 올빼미 소리나 근처에 살고 있는 다람쥐를 발견하곤 크게 기뻐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종류의 새나 곤충을 관찰하고, 전에 보지 못했던 거미를 발견하면 즐거움을 느낀다. 더운 여름밤에 크게 노래하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그들이 안정된 서식지를 찾았음에 안도하고, 죽은 호두나무를 딱따구리들이 둥지로 이용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해 한다. 벌새가 새로운 둥지를 짓는 것을 보면 곧 만나게 될 새끼들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잊고 있었던 토종식물과 곤충, 그리고 조류 사이의 연관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준 이 프로그램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생물의 본능적 요구가 아닐까. 유리창은 우리에게 안락함과 안전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무서운 맹수나 파충류를 ‘소심하게’ 그러나 꽤 자세하게 관찰할 수도 있는 것은 그들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튼튼한 유리벽 때문이다. 결국 유리가 가로막아 준 동물원은 사람의 요구에 맞게 연출되고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 유리로 대표되는 편리한 도구들은 사람과 자연 사이를 가로막은, 쉽게 넘기 힘든 장벽이다. 그런 점에서, 유리창을 깨버릴 수 있는 용기야말로 자연을 온전하게 조우할 수 있는 출발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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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서식지인증프로그램(Backyard Habitat Certification Program, 이하 BHCP)’은 야생동물의 서식지 조성, 조명이나 유리창 충돌, 고양이 같은 야생동물에 대한 위협요소 제거 등 자연스런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몇 가지 요소를 단순하게 제시한다. 이중 1~3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그에 맞는 인증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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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들을 위한 인공둥지를 설치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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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지거나 넘어져 푸석푸석해진 통나무는 양치식물이나 곤충들의 훌륭한 서식공간이 되고, 자연스레 새와 같은 상위포식자들에게 제공되는 훌륭한 먹이창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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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통에 흘러내린 빗물도 오랜 시간 고여 있다가 조금씩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면 새들에게 훌륭한 급수대나 둥지터를 제공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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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의 대명사인 고양이는 최고의 야생조류 사냥꾼이다. 특히 번식기가 되면 어린 새끼들이 많이 희생되는데, BHCP는 고양이를 실내에서 살도록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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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여상경  생태교육허브물새알 협동조합 관리자



강화로 흘러들어와서 어쩌다 새를 보기 시작, 덕분에 심심치 않게 시간 보내며 남은 여생을 준비하고 있는...

월, 2021/01/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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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물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국내 수족관에서 사육 중이던 고래류 중 두 마리가 잇따라 폐사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먼저 7월 18일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의 돌고래 ‘고아롱’이 폐사했고, 다음으로 같은달 20일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의 벨루가(흰고래) 3마리 중 수컷 ‘루이’의 폐사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두 수족관은 이들 고래류의 죽음이 급작스러운 것이었다며 부검을 통해 사인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고아롱과 루이의 죽음은 수족관에서 고래류를 사육하고, 전시하는 것에 반대해온 동물보호단체,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고래류 사육 금지 및 사육 개체의 방류, 또는 바다쉼터 마련’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두 고래류의 폐사 소식은 이들이 죽음으로써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바로 우리 둘을 끝으로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좁은 수족관에서 생을 마치는 고래류가 없어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이들 두 개체가 폐사한 시기는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비롯해 불법 포획된 후 돌고래쇼에 동원되다 방류된 돌고래들이 바다로 돌아간 7월 18일이 지난 지 며칠 안 된 때이기도 했습니다. 7월 18일은 일부 돌고래 연구자들과 동물보호단체·환경단체 활동가 들이 제돌이 방류를 기념해 ‘제돌절’이라고 부르는 날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거의 매년 이 시기에 제돌절을 기념해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얘기들을 기사로 소개해 왔습니다. 남방큰돌고래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부터 어떤 위협에 직면해 있는지, 또 제주에서 어디에 가면 돌고래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은지 등에 대한 기사들이었습니다. 올해에도 남방큰돌고래들에 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7월 초 며칠 동안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다녀왔고, 운 좋게 제돌이와 춘삼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개체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암컷까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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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포착된 남방큰돌고래 춘삼이와 다른 남방큰돌고래들의 모습.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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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포착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다른 남방큰돌고래의 모습.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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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다른 남방큰돌고래들 앞에서 헤엄치고 있는 새끼 남방큰돌고래의 모습. ©김기범 기자

그리고 7월 17일을 시작으로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제돌이 방류 7주년, 한국의 돌고래들 안녕하십니까’라는 기획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는 ‘10년 간 절반이 죽어갔다···돌고래 수족관은 잔인한 수용소'라는 기사였습니다.

보통 기자들은 기획기사 첫회를 단독기사로 시작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독자들은 물론 관련 시민단체, 정부 부처, 학계, 관련 기업 등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이번 돌고래 기획에서 어떤 내용으로 1회를 시작할까 고민하다 문득 최근 몇 년 간 수족관 돌고래의 폐사가 확인된 일이 많았고, 저 역시 폐사 소식을 알리는 기사를 쓴 적이 많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한 국회의원실을 통해 해양수산부가 집계한 국내 수족관 돌고래 현황을 받아보았는데 폐사율은 제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높았습니다. 해양수산부가 단순히 나열만 해놓은 사육 현황을 제가 직접 합산해 폐사율을 계산해 보니 절반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습니다. 2020년 7월 17일 현재 국내 수족관 8곳에서 전체 61개체 중 29개체가 폐사해  폐사율이 47.54%에 달했던 것입니다.

고기나 알, 가죽 등을 위해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의 경우라도 만약 폐사율이 절반에 가깝다면 사육하기에 적합한 동물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까요. 하물며 인간과 영장류 외에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확인된 유일한 동물인 돌고래처럼 매우 지능이 높은 동물의 폐사율이 이만큼 높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즉, 절반에 가까운 폐사율만 봐도 고래류는 수족관에서 키우기에 적합한 동물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수족관들은 돌고래들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변명만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 말이 진실이라 해도 고래류를 수족관에서 키우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해 보살펴도 절반이 죽어나가는 것이 수족관 돌고래의 현실이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수족관에서 죽어간 고래류들이 대체로 10~20세 안팎의 비교적 젊은 개체들인 점을 보아도 고래류의 수족관 사육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힘을 얻게 됩니다. 야생에서 돌고래와 벨루가의 수명이 상황마다 다르지만 30~50세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와있는 것을 감안하면 수족관 사육이 이들의 수명을 크게 단축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가 보도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앞서 언급한 고아롱과 루이의 폐사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두 개체의 죽음으로 인해 해수부 자료를 토대로 집계한 폐사율은 50%를 넘어섰습니다. 전체 61개체 중 31개체가 죽으면서 폐사율이 50.82%로 증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정을 바꿔 원래 기획기사에 쓰려던 기사들에 앞서 두 돌고래의 폐사에 대한 기사들을 먼저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에게 현재 어떤 위협이 존재하고, 또 어떤 위협은 해소되었는지, 어떤 이들이 돌고래들을 지키려 애쓰고 있는지,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려 했으나 일단은 뒤로 미뤄놓은 상태입니다.

고아롱과 루이의 잇따른 폐사 소식을 접한 것은 기획기사 첫 회에서 주요하게 사용한 폐사율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래류가 국내 수족관에 갇혀지내다 죽어갔는지 쉽게 전달하기 위해 폐사율이라는 수치를 사용했지만, 그 안타까운 죽음들을 단순히 수치로 정리해 버려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31차례에 달하는 죽음 중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어느 죽음도 해당 고래류의 무한한 가능성을 끝내버리는 일이 아닌 경우가 있었을까요. 바다로 돌아가 잘 적응해 살고 있는 데다 출산 소식도 전해주고 있는 남방큰돌고래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벨루가 루이의 폐사 소식이 알려지기 하루 전 기획기사 중 두번째로 게재한 ‘7마리가 돌아갔는데 9마리가 늘어났다,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바로 대부분의 방류된 개체가 야생에 잘 적응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을 간략하게만 소개해 드리면 7마리가 돌아갔다는 것은 제돌, 삼팔, 춘삼, 태산, 복순, 금등, 대포 등 모두 7마리가 방류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9마리가 늘어났다는 것은 방류한 개체들이 모두 4마리의 새끼를 낳은 것과 방류 후 모습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금등, 대포를 줄어든 것으로 잡아 계산한 결과입니다. 즉, 주 남방큰돌고래의 방류를 통한 개체 수 변화는 ‘7+4-2=9’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사 내용 중에도 들어있지만 7마리의 방류를 통해 9마리가 늘어나면서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전체 개체 수의 10%에 가까운 수가 방류와 방류 개체의 출산을 통해 추가되는 성과를 낳은 것입니다.

사실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류를 시작으로 불법 포획된 뒤 돌고래쇼에 동원되어온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성과가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의 동물권에 대한 인식, 특히 돌고래를 포함한 해양포유류에 대한 인식 역시 동시에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돌고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인지 돌고래와 벨루가를 수입해 쇼나 체험 프로그램 등에 이용하는 시설들이 잇따라 생겨난 것도 한국 사회의 현주소였습니다. 부당하게 갇혀있던 이들을 사회적응과정을 거쳐 석방할 정도로 인식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해외에서 죄수를 데려와 구경거리로 삼는 야만적인 문화가 상존하는 것도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부디 고아롱과 루이 두 개체의 죽음이 이런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 국내 수족관에 있던 모든 고래류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족관들이 고래류 방류를 방해하는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방류를 추진하고, 바다쉼터 마련에 나서면서 생태적인 기관으로 거듭나는 기회를 잡게 될 것도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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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의 사람과 자연>은 필자가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한 사람과 동물,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지면에 다 담지 못했지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필자 소개>

김기범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 / 경향신문사 기자


2006년 경향신문 입사했고, 2013년 환경부를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동물면 담당을 맡고 있으며 환경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2020년 3월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화, 2020/07/2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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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갯벌」은 서천갯벌(충남 서천)과 고창갯벌(전북 고창), 신안갯벌(전남 신안), 보성-순천갯벌(전남 보성·순천) 등 총 4개로 구성된 연속유산(1,284.11㎢)으로, 해양수산부의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지역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1,154개소)은 크게 세계자연유산(218개소)과 세계문화유산(897개소), 복합유산(39개소)으로 구분되며 한국의 갯벌은 세계자연유산에 해당한다.


한국의 갯벌에 대해 세계유산위원회는 “지구 생물 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지 중 하나이며, 특히,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로서 가치가 크므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인정된다”라고 평가했다. 


한국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 결과는 세계적 수준의 타이틀을 얻은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제 갯벌은 인류 공동의 자연유산이 되었다. 항구적인 보전이 약속된 것이다. 이제 한국 정부가 갯벌을 책임있게 보전해야 하는 의무를 공식적으로 지게된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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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약 25년 전부터 본격화된 한국 습지보전운동의 귀중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1996년 호즈 브리즈번에서 열린 제6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 참가를 계기로 한국의 습지보전운동은 본격화되었다. 


1998년 영산강 4단계 간척사업 전면 백지화, 1999년 습지보전법 제정, 2001년부터 갯벌 습지보호지역의 지정 시작, 2007년 서천 장항갯벌 매립 백지화, 2018년 갯벌 습지보호지역 전면 확대 등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2010년 신안 갯벌 습지보호지역 지정, 2013년 등재 기준 및 대상지역 확정, 2015년 등재추진단 구성 및 탁월한 보편적 가치 연구, 2016년부터 주민공동체 참여를 위한 지역설명회 및 와덴해 답사, 2019년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작성 및 제출, 2019년 IUCN 현지실사 등이 진행되었다. 갯벌의 세계유산등재는 이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된 습지보전운동의 성과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갯벌 및 그 주변지역의 지속가능한 관리와 복원에 관한 법률(갯벌법) 등 제도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여전히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인 시화호와 새만금 간척사업이라는, 갯벌의 가치를 두고 벌어졌던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통해 우리 국민들의 갯벌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한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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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지평은 한국의 갯벌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심에는 20년 넘게 갯벌을 지켜오면서 세계유산 등재과정에 핵심적으로 역할을 수행한 전승수 소장님과 갯벌해양팀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번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4개 갯벌지역에서 출발했으나, 이는 2단계 작업을 통해 더 확대해야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또 다시 주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번 등재는 향후 한국 갯벌을 넘어 한반도 갯벌, 황해 갯벌의 항구적인 보전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생태지평은 그 길에 앞장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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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명호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화, 2021/08/2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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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어새 조사 때문에 볼음도를 다시 찾았다. 물때를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여러 곳을 찾아야 했던 터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차창 밖으로 한 무리의 참새 떼가 날았다. 와! 참새, 하는데 하얀 점이 하나 보인다. 흰 참새였다. 흰 참새라는 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얀색 병에 걸린 참새다.
보통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하얀색 동물을 알비노라고 하는데, 원인과 증상에 따라 알비노(albino)와 루시스틱(leucistic)으로 구분된다. 알비노는 ‘백색증(Albinism)’에 걸린 동물로, 유전자 결함 때문에 멜라닌 색소가 제대로 생성되지 못해 피부, 머리카락, 홍채 등에 색소가 없거나 부족하게 된다. 반면 루시스틱이 나타나는 ‘백변증(leucism)’은 유전자는 정상이지만, 수정란이 세포분열하고 분화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나타난다. 알비노는 체색이나 무늬가 없어지고 눈 색깔이 붉은 경우가 많지만, 루시스틱은 무늬의 색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고 옅어지거나 일부만 흰색을 띄며, 눈동자도 원래의 색깔을 유지한다. 볼음도의 흰 참새는 눈 색깔을 보아하니 루시스틱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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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은 사람은 물론 모든 동물에게서 드물게 나타나는데, 옛날에는 이런 동물이 나타나면 병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불길하거나 상서로운 징조로 여겼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백색증에 걸린 동물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예종 임금(1469년 2월) 때, 궁궐 후원에 몸통이 온통 흰색인 까마귀가 날아들었다. 까마귀도 불길한데, 흰색이라니…, 예종은 변고라고 여겼지만 신하들은 상서롭고 드문 경사라며 하례를 올렸다고 한다. 이외에도 흰 암소와 까치(세종), 흰 사슴(세조), 흰 꿩(연산군) 등 여러 알비노(또는 루시스틱)가 등장하는데, 임금마다 이에 대한 대처가 달랐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길흉을 선택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는 춘천에서 흰 참새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기사를 찾아보니, 화제의 주인공이 된 것은 흰 참새라기보다는 이럴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찍사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찍사들이 흰 참새를 유인하기 위해 들깨나 좁쌀을 마구 뿌려댔기 때문이다. "하얀 참새에게 먹이 좀 주지 마세요.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도록 제발 그냥 좀 놔 주세요. 어린 새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요." 보다 못한 주민들은 이런 호소문까지 내걸어야 했다. 물론 불청객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다.
희다고 다 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백로류나 저어새, 고니 등은 모두 흰색이다. 익히 흰색으로 알고 있으니 이들이 다른 색을 띄게 되면 오히려 놀랄 일이다. 자신의 경험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사람들은 당황해 한다. 흰색 고니(Swan, 백조)만 봐 왔던 사람들이 호주에서 흑고니(Cygnus atratus)를 처음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병적인 기독교 세계관에 사로잡힌 초기 개척자들은 ‘악마의 사자’라며 흑고니를 대량 학살하기까지 했다. 영화 <블랙스완>에서도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그래서 통제불능인 캐릭터 ‘흑조’가 등장한다. 사회학에서는 발생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을 블랙스완이라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자. 애초 태어나길 까맣게 태어난 흑고니가 문젠가, 아니면 모든 고니는 하얗다는 선을 그어놓고 맹신하는 인식이 문제일까?
강화도에서는 흰기러기(Chen caerulescens)도 드물게 관찰된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기러기와 달리 온몸이 하얗고 부리가 분홍색인 흰기러기는, 나 같은 초보 버드워처들에겐 횡재가 아닐 수 없다. 알라스카와 캐나다의 툰드라 지역에서 번식하는 흰기러기는 주로 북아메리카에서 월동하고 극히 소수의 무리가 일본과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나마 한국전쟁 이후에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수십 년이 지난 1995년부터 다시 관찰되기 시작했다. 철원에서 무려 11마리가 처음 발견된 이후 매년 몇 마리씩 여러 지역에서 관찰되고 있다. 수십 년 만에 갑자기 흰기러기가 출현한 이유가 무얼까? 1995년 2월 10일자, 연합뉴스에 그 단초가 될 기사가 있다. 1993년부터 미·일·러 공동 프로젝트 팀이 아시아 지역에 도래하는 기러기가 흰기러기를 데리고 남하할 수 있도록, 쇠기러기 둥지에 흰기러기 알을 넣어 품게 하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근거로 내막을 추적한 이종렬 생태사진작가는 그가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방송에서 “(이 프로젝트 팀이) 흰기러기의 최대 번식지인 알래스카의 랭겔 섬에서 채집한 흰기러기 알 100개 중 41개를 쇠기러기 둥지 6곳에 넣었다.”며 이 같은 ‘흰기러기 수양부모 맺어주기’ 작전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종렬 작가는 최근 들어 부쩍 관찰되고 있는 흰기러기 잡종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쇠기러기의 둥지에서 태어난 흰기러기, 태어나는 순간 본 어미의 모습과 주변에 있는 친척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쇠기러기로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고 자연스레 다른 쇠기러기와 짝도 맺었을 것이다.
종이 달라도 유전적으로 친척 관계에 있는 근연종 사이에서는 생식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말과 당나귀 사이에 태어난 노새나 호랑이와 사자 사이의 라이거 등이 그러한데 대부분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드물긴 하지만, 야생에서도 이처럼 종을 뛰어넘는 잡종 교배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집단적으로 여러 종이 섞여 월동, 번식하는 오리류들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보통 양쪽의 특징을 다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강화탐조클럽 회원들이 정기 탐조를 하던 중 발견한 이상한 오리,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가 반반 씩 섞인 오리가 그랬다. 우린 이놈을 ‘흰뺨청둥오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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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정용훈
강화도 남단의 저어새 번식지인 각시바위 인근 갯벌을 뒤지다보면 독특한 저어새들을 볼 때가 있다. 쟤가 노랑부리야? 그냥 저어새야? 헷갈리는 놈들이 보인다. 부리는 분명 저어새인데, 눈은 부리 바깥에 콩알처럼 콕 찍혀 있다거나, 또는 그 반대의 모습을 한 저어새가 보이기도 한다.
10여 년 전, 둥지 모니터링을 위해 각시바위에 설치했던 카메라에서 놀라운 사진이 나왔다. 수컷 노랑부리저어새와 암컷 저어새가 함께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름철새인 저어새와 겨울철새인 노랑부리저어새는 번식지는 물론 월동지가 판이하게 다른데다, 이들이 함께 섞이는 것은 늦가을 무렵 짧은 시기이다. 그런데 꽃 피는 따뜻한 봄날 이 한 쌍이 한 자리에 있으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기에 노랑부리저어새는 우리나라보다 북쪽인 유라시아 어디선가 한창 짝짓기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생태적인 습성 이런 것 다 무시하고 소설을 써 보면 이렇다.
“어느 늦가을, 각시바위 인근 갯벌에서 저어새 한 무리가 부리를 휘저으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마침 얼마 전부터 남하해 있던 노랑부리저어새 무리도 합류했다. 무리가 이리저리 섞였고, 외진 갯골에 떨어져서 정신없이 부리를 휘젓던 여자1호와 남자1호의 부리가 서로 부딪혔다. 두 남녀는 눈이 맞았고, ‘썸’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미로운 순간은 잠시, 곧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멀리 대만으로 떠나야 하는 여자1호, 올 겨울을 이곳에서 정착해야 할 남자1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종의 강의 존재했다. 다시 만날 기약조차 힘든 상황에서 남자1호는 자신의 가족과 결별하고 여자1호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 함께 대만으로 떠나 겨울을 보낸 이들은 이듬해 다시 각시바위로 돌아와 마침내 짝짓기에 성공한다.”
저어새 족과 노랑부리저어새 족 사이에 이루어진 최초의(?) 이종 결혼이다. 이후 각시바위 주변에서는 한여름에도 노랑부리저어새를 찾을 수 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노랑부리저어새를 닮은 저어새, 저어새를 닮은 노랑부리저어새를 말이다. 매년 각시바위를 찾아 꾸준히 번식을 이어가던 원조 노랑부리저어새는 작년부터 보이질 않는다. 사고가 난 건지, 다른 짝을 찾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걱정스럽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건 지금은 그들 부부의 자식들이 각시바위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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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정용훈
사람들은 하이브리드를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려 한다. 저어새라고 부르면 노랑부리저어새가 섭섭하고, 노랑부리저어새라고 부르자니 저어새가 걸린다. 우리가 이렇듯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정작 당사자들은 무어라 부르든 상관없다는 듯 평화롭게 어울려 살고 있다. 눈 모양이나 색깔이 어떻고, 피부색이 어떻고, 특정 깃털의 색깔이 어떻고…,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고 구별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야생에서는 단순하고 명쾌한 구별법만 알면 된다. 먹을 수 있는 건가, 아닌가? 내가 피해야 할 놈인가, 아닌가? 그 외에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렇게 섞이고 어울려 살아갈 뿐이다.
굳이 나눠 가르고, 조그마한 차이라도 발견하면 호들갑을 떨거나 차별하는 것은 인간만의 특징이다. 나아가 자기 것만 옳다는 생각, 이것이 생각에 멈추지 않고 다른 존재의 특성에 대해서 간섭하기 시작하면 폭력으로 발전한다. 다른 성,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름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인간의 역사에 악성종양처럼 존재해왔다. 십자군의 이름으로, 마녀사냥의 명분으로, 제국의 깃발을 앞세우고 저질러온 온갖 폭력의 이면에는 ‘다름의 차별화’와 이를 악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사회적으로 위험시되거나 배척되곤 하는 ‘블랙스완’의 도발적이고 관능적이며 통제 불능인 성향은, 사실 매우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특성이다. ‘다른 특성’을 ‘틀린 것’으로가 아니라 ‘독특한 것’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순 없을까.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닌 이상, 자연 상태에서는 천편일률적이고 획일적인 것이 존재할 수 없다. 무지개 깃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세상이지만, 세상은 무지개 색깔보다 훨씬 다양하고 섬세한 컬러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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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여상경  생태교육허브물새알 협동조합 관리자



강화로 흘러들어와서 어쩌다 새를 보기 시작, 덕분에 심심치 않게 시간 보내며 남은 여생을 준비하고 있는...

월, 2020/10/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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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남단에 ‘여차리 물꽝’이라 불리는 무지하게 넓은 폐양식장이 하나 있다. 농사지을 물이 부족한 섬이다 보니 논배미 옆에 빗물이라도 받아 놓으려고 파놓은 둠벙을 ‘물꽝’이라 한다. 강화도 사투리인지 옛말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강화도 농사꾼들은 다 아는 말이다. 여차리 물꽝은 농사용이 아니라 새우 양식장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물꽝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으나, 어쨌건 새 보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탐조 사이트 중 하나다. 지금은 이곳에서 함초 재배를 하고 있다. 봄, 가을 이동시기에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엄청난 규모의 도요물떼새들과 저어새 무리를 볼 수 있다. 갯벌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새들에게는 만조 시에 쉴 곳이 필요하다. 갈매기나 오리처럼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놈들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저어새나 도요물떼새처럼 헤엄이 능숙하지 않은 놈들은 특히 더 그렇다. 
예전에는 육지와 갯벌, 자연하천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넓은 염습지가 있어 이런 곳이 새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그러나 갯벌이 매립되고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물과 뭍의 소통은 끊어지고, 콘크리트 제방과 아스팔트 길이 들어섰다. 새들도 쉴 곳을 잃었다. 
그나마 갯벌가의 폐양식장들이 휴식처를 잃은 새들에게 쉴 곳을 제공한다. 지난 5월 초부터 검은머리물떼새가 여차리 물꽝에 둥지를 틀었다. 몸길이 45cm 내외로 꽤 큰 축에 속하는 검은머리물떼새는 흑백 대비가 선명한 몸통과 붉고 긴 부리를 가지고 있어 눈에 잘 띄는 새이다. 굵고 두툼한 주홍색 부리를 조개나 굴의 껍질 틈으로 밀어 넣어 속살을 꺼내 먹는다고 영어권 나라에서는 ‘굴잡이새(oystercatcher)’라고 부른다. 얼핏 까치를 닮아 강화도 어부들은 물까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 4~6월 사이, 한 배에 두세 개의 알을 낳아 28~33일간 품고 새끼가 나오면 한 달 정도 길러 내보낸다. 부화한 새끼는 젖은 털이 마르면 바로 움직이며 먹이활동을 한다. 새들은 털 없이 눈도 뜨지 못한 채 태어나는 부류와 털을 달고 나오자마자 눈을 뜨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앞엣것을 ‘만성성’, 뒤엣것을 ‘조성성’이라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딱새 같은 대부분의 참새목, 딱따구리류 등이 만성성인데 한 달 정도 부모가 먹여 키워야 한다. 이 시기 이런 류의 어미들을 보면 털도 지저분하고 부스스한 게 추레해 보인다. 그만큼 새끼 키우기가 쉽지 않은 거다. 반면 닭이나 오리류처럼 털이 있는 채로 태어나는 놈들은 알에서 깨어난 뒤 1~2시간이면 바로 걸어 다니며 먹이활동을 할 수 있다. 
어쨌거나 검은머리물떼새의 번식 사실을 먼저 알게 된 강화탐조클럽 회원들은 한 달 이상 ‘쉬쉬~’ 하며 관찰해 왔다. 인터넷 카페에도, 회원들의 소통 마당인 SNS에도, 심지어 모니터링 어플인 갯벌키퍼스에도 사진을 올리지 않고 함구했다. 소위 ‘찍사’들 때문이다. ‘찍사’는 사진 찍는 사람들을 뜻하는 요샛말인데, 우리는 멸시와 비아냥의 뉘앙스를 담아 쓰곤 한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자연 학대’ 사진들, 그리고 그런 사진을 SNS에 올리고 의기양양해 하는 철부지들 때문이다. 5~6월만 되면, 전국의 주요 번식지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 은밀하게 숨겨진 둥지를 찍기 위해 주변의 나뭇가지를 쳐 내는 것은 예사고, 야행성인 수리부엉이 새끼를 찍겠답시고 둥지에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위협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쇠제비갈매기 어미와 새끼를 함께 찍기 위해 새끼 다리에 줄을 묶어놓은 찍사들의 만행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언젠가 한 사진동호회 SNS에 꾀꼬리 둥지 사진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어미 꾀꼬리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순간을 ‘잘 잡은’ 사진으로, 보는 순간 “와, 예쁘다!”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찰랑찰랑한 나뭇가지 끝에 둥지를 만드는 꾀꼬리는 가지 끝 Y자로 갈라지는 양쪽을 단단히 묶어 둥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한다. 둥지를 튼튼히 고정하기 위해 사람들이 버린 비닐 끈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는 한쪽 가지가 보이질 않았다. 자세히 보니 둥지를 지탱해주는 한쪽 가지가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의해 잘려져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았다. 내 사진 속 둥지는 주변의 나뭇잎들이 엄폐해 주는 곳에 잘 숨겨져 있었다. 문제의 사진에는 ‘피사체를 가리는’ 나뭇잎이 남아 있질 않아 어미와 새끼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꾀꼬리는 보통 3~4개의 알을 낳는데 그 둥지에서는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순전히 짐작으로만 이 사진 뒤에 도사린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1) 누군가 사진 찍기 좋은 꾀꼬리 둥지를 찾았다.
2) (비싼 돈 들여 사들인) 사진기를 설치해 놓고 보니 나뭇잎이 가리고 특히 둥지 한쪽의 가지가 들려 새끼를 가린다.
3) 사다리와 톱을 가져와 둥지로 접근해서 한쪽 가지를 잘라 버리고 주변 이파리들을 모두 훑어 버린다.
4) 놀란 새끼들이 둥지에서 뛰쳐나왔고, 그중 2~3마리는 추락사한다.
5) 불행 중 다행으로 남아 있는 새끼 한 마리에게 어미가 먹이를 먹인다. 새끼와 어미가 잘 배치되게 앵글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이 단계가 끝이 아니다. 다음이 더욱 중요하다. 
6) SNS에 사진을 올리고, 멋진 글을 적는다. 위 사진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새들의 육추(새끼를 키우는 것) 장면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집니다.” (나는 가증스러움에 머리끝이 찡해졌다.)
7) 환호와 감탄의 댓글이 줄줄줄~ 달린다.
8) 장소를 묻는 비밀댓글이 이어지고, 며칠 후 둥지 주변은 전국에서 달려온 찍사들의 셔터 소리로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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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는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끝의 Y자로 갈라지는 곳에 양쪽을 단단히 묶어 둥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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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주변에 잎이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뻗어 나와야 할 가지도 잘렸고, 새끼는 한 마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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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음을 내며 긴장하는 어미와 새끼. 주변에 늘어선 찍사들의 요란한 대포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얼마 전에 한 선배와 여차리 물꽝에 위장텐트를 치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오랫동안 새를 관찰하고 찍어 온 그는, 아름다운 생태사진으로 잘 알려진 이다. 나도 여러 가지 이유로 새의 사진을 찍는다. 예뻐서, 교육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모니터링을 위해서, 아주 가끔은 자랑하고 싶어서…. 그 선배에게 어떻게 하면 새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지 물어봤다. 바로 돌아온 답은 ‘위장텐트를 치라’는 것. 자신이 찍은 좋은 사진들은 모두 위장텐트를 치고 비박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란다. 이어진 말이 더 재미있다. “아무리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있어도 새들은 위장텐트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다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텐트 안의 사람이 자신을 해칠 의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스스름없이 행동해. 서로 신뢰관계가 형성되고 나면 전화통화를 해도, 움직이다가 텐트가 들썩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위장텐트는 새를 속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새에게 접근할 때 갖추어야 할 예의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는 둥지 사진을 찍을 때는 ‘영정사진’을 찍지 말라고도 했다. 둥지 사진을 찍겠다고 주변을 훼손하거나 어미 새의 포란과 육추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게 되면 결국 그 새끼는 부화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자라나기 힘들다. 새끼를 품거나 먹이는 사진을 제아무리 감동적으로 찍었다 하더라도 그 새끼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결국 ‘영정사진’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20여분 쯤 지나자, 텐트에 경계심을 보이던 어미가 돌아와 알을 품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까이서 검은머리물떼새의 포란 과정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놀랍고 흥미로웠다. 텐트 안에서 검은머리물떼새를 지켜보면서, 새들의 은밀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나의 욕망과 ‘내가 경멸하는 찍사’들의 욕망이 다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보았다. 나는 치열한 환경주의자가 아니다. 평균적인 수준의 생태·윤리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호기심 때문에 둥지를 찾아다니거나 훔쳐보기도 한다. 오히려 과도한 도덕적 기준보다는 현실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의 둥지를 훔쳐보지 마라’가 아니라 ‘어떻게 훔쳐 볼 건인지’ 올바른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새들마다 접근 거리가 다르고, 민감도도 다르고, 둥지를 만드는 방법이나 위치도 다르다. 이러한 새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어미 새가 위협을 느끼지 않고, 태어날 새끼들의 성장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새들의 번식 생태를 관찰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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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리 물꽝. 지금은 함초밭으로 사용하고 있어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함초를 다치지 않게 들어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면허증이 없는 사람은 운전을 할 수 없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 운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법의 기준과 절차에 따라 면허증을 따야만 합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다. 새를 보는 면허증 제도는 있으면 안 될까? 유럽 어딘가는 낚시 면허증(Fishing Licence) 제도가 있다고 한다. 라이센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어종이나 수질에 따라 비용과 포획시기, 크기, 포획 가능한 마리 수가 정해져 있다. 잡아서는 안 되는 어종도 있고, 잡았다가 놓아주어야 하는 어종도 있다. 오염된 곳이나 보후구역에서는 낚시를 할 수 없다. 새를 위협하지 않고 관찰하는 방법에 대해 필수교육을 받고,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더라도 정해 놓은 규칙을 위반하면 벌금 정도는 부과할 수 있는 제도 같은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영정사진’처럼 못된 사진을 찾아내어 그 사진에 어떤 비열한 짓이 도사리고 있는지 ‘까발리고’ 폭로하는 자발적인 활동도 필요하겠다. 야조회 같은 전국적인 네트워크 차원에서 세부적인 규범을 만들어서 알리고 홍보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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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Fishing license(2105년 8월 기준)
새들이 둥지를 떠나는 것을 ‘이소’라고 한다. 검은머리물떼새는 이소 직전 사라져 버렸다. 어미들은 보이지만 새끼들이 보이지 않는다. 너구리라도 탄 걸까? 강탐 회원들의 한 달간의 응원이 있었지만, 새끼들의 운명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만큼 야생은 엄혹하고 때론 잔인하다. 그 냉혹함에 우리마저 거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 이 글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 주관적 견해일 뿐입니다. ‘내로남불’이라고 욕해도 상관없지만 생태지평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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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여상경  생태교육허브물새알 협동조합 관리자






강화로 흘러들어와서 어쩌다 새를 보기 시작, 덕분에 심심치 않게 시간 보내며 남은 여생을 준비하고 있는...




화, 2020/06/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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