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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평화포럼] 2차 정책포럼 <개성공단의 문화충돌과 갈등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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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평화포럼] 2차 정책포럼 <개성공단의 문화충돌과 갈등 해결>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7- 23:24

[2015-2차 정책포럼]

개성공단의 문화 충돌과 갈등 해결

 

 

• 일시: 9월 17일(목) 오후 2시-4시 30분
• 장소: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지하1층) ▶오시는 길 
• 주최: 시민평화포럼
• 후원: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 문의: 시민평화포럼 사무국(02-733-3509, [email protected])

 

프로그램  

[1부] 
사회: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발제1: 개성공단의 사람들 / 김진향 KAIST 미래전략대학원 연구교수, 전 개성공단 기업지원부장
발제2: 개성공단의 앞날 /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

 

[2부]
사회: 정현곤 세교연구소 선임연구원
모듬토론 및 발표

전체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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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평화활동가대회 참가 신청 안내 2018 평화활동가대회 in 백령도 “물범에겐 NLL은 없다”   우리나라 최북단의 섬 백령도...
금, 2018/09/21-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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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민혁명 이후 국가권력-탈북민 관계의 재구성

평화체제 이행기에 탈북민 통합, 어떻게 이룰 것인가?

일시: 2018년 10월 23일(화) 오후 2시 ~ 5시 40분 

 

 

분단체제여 안녕!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위해 한반도의 급전환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의 얼음은 아직 녹지 않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분단의 얼음이 가장 두껍게 깔려있는 지점이 바로 탈북민분야입니다.

 

본 세미나는 그간 뒤틀려온 국가와 탈북민사회 간의 관계를 촛불정부에서 정상화하지 않는다면

탈북민들은 건강한 시민사회와 유리되면서 고립된 집단으로 게토화할 것이라는 위기의식 하에 기획되었습니다.

 

과거 10년간의 탈북민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국정원의 정치적 동원, 통일부의 보호, 북한붕괴론과 신통일역군 이데올로기’의 기묘한 혼합물일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에 직면해있습니다. 

  

본 세미나는 만연했던 탈북민의 탈남현상, 2000년대 새로운 간첩공급원으로 등장한 탈북민들, 관제시위나 국정원댓글꾼화. 

이같은 분단정치가 낳은 현상들의 근본 원인을 밝히고 탈북민들이 우리 시민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정책의 전환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분단체제의 해체와 새로운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준비하는데 작으나마 기여하는 자리에 많은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개요

일시 : 2018년 10월 23일(화) 오후 2시 ~ 5시 40분 

장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프로그램

14:00 ~ 14:20 개회식 

  • 개회사 : 한만길(남북시민통합연구회 회장)
  • 기조발제 : 평화체제이행기 남북시민통합의 길 / 전태국 (강원대 명예교수)

 

14:20 ~ 15:30 세션 1. 분단체제의 국가권력과 탈북민 

  • 사회 : 한만길 (흥사단) 
  • 발제1. 탈남한 탈북민들, 그들은 왜 대한민국을 떠났나? '북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영화이야기 / 최중호(영화감독)
  • 발제2. 2000년대의 탈북민 간첩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변상철 (지금여기에)
  • 발제3. 탈북민의 신민적 정치참여를 보는 네가지 시각과 향후 전망 / 김화순 (한신대)

 

15:40 ~ 17:00 세션 2. 분야별 패널토의 "포섭과 배제의 동학 : 한국사회에서 탈북민은 어떻게 타자화 되었는가?"

  • 사회 : 박정은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 국가보안법과 탈북민 / 강곤(인권저널)
  • 탈북민 사회의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 허영철(직장인, 김책공대)
  • 쓸쓸한 이방인과 새로운 통합담론의 필요성 / 문유진 (북한대학원)
  • 탈북인의 정체서에 대한 생각 / 김숙임(조각보)
  • 탈북 청소년, 시민으로 성장하려면 / 한만길(흥사단)
  • 탈북민은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나 / 이민영(고려사이버대)
  • 정착지원 서비스 전달체계와 거버넌스, 이렇게 바꾸자 / 김화순(한신대)

 

17:00 ~ 17:40 종합토론 : 평화체제 이행기에 탈북민의 통합, 어떻게 이룰 것인가

 

주최 : 시민평화포럼, 남북시민통합연구회

문의 : 시민평화포럼 (02-734-3924, [email protected]

 

참가신청하기 >> 

금, 2018/10/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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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에 관한 협정(안)

 

2018년 9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협정안 작성과 제안 배경과 취지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겉돌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입구라고 일컬어져온 ‘종전선언’과 비핵화의 초기 조치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완전한 핵 신고’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의 이견이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북미관계의 신뢰 게임이 아니라 다시 불신 게임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미국 내에선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최대의 압박”이 다시 회자되고 있고, 북한은 미국이 또다시 ‘선 비핵화’로 회귀한 것이 아니냐는 강한 불신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분리된 방식으로 접근해왔다. 하지만 그 한계는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7월 6-7일 북미고위급 회담에서 나타난 것처럼 분리된 상태로는 병행이 잘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선선언과 핵 신고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북한은 이미 북미공동성명의 초기 조치를 이행한 만큼 이제는 미국이 종전선언으로 성의를 보일 차례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미국은 핵무기를 포함한 완전한 핵 신고부터 먼저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종전선언과 핵 신고는 평화체제와 비핵화의 초기 단계에 해당된다. 초기 단계에도 이렇듯 병행된 진전이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과 이에 상응하는 비핵화 조치들, 그리고 평화협정의 이행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 완료는 더더욱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새롭고도 창의적이며 담대한 접근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는 ‘합쳐진 병행’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합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령 종전선언과 완전한 핵 신고를 하나의 선언문에 담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고, 북한의 핵 신고 제출을 사전에 확약받고 종전선언을 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 개시를 선언하는 것과 북한의 핵 신고를 병행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평화협정을 2단계로 나누어 1단계 기본(잠정) 평화협정과 북한의 검증 수용을 포함한 획기적인 비핵화 조치의 동시적 이행도 타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북미 관계정상화를 포함한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를 하나로 합쳐서 추진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본 보고서에서 제안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에 관한 협정’이 그 방식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제안은 판문점 선언과 북미공동성명의 합의 사항과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법적 구속력을 갖춘 일괄타결과 구체적이고 가시적이며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이행조치를 포함한 협정이야말로 “완전하고 신속한” 이행을 가능케 하는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느냐’는 오랜 논란과 “비핵화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셈”이라는 의구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하나를 해결하는 것도 어려운데, 두 가지를 섞는 것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비핵화가 어려운 핵심적인 이유는 평화체제에 획기적인 진전이 없기 때문이고, 그 역의 관계도 성립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기한 방식은 문제 해결을 더 용이하고도 신속하게 할 수 있다. 

 

기실 조속히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체제에 가시적인 결과들을 하나둘씩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북한이 안심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명예롭게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다. 또한 평화체제 프로세스는 북한에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체결 당사국들과 아시아 및 세계 평화에 크게 이바지하는 ‘국제적 공공재’에 해당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은 남북미중 4개국의 역사적 책무이자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여는 데에 반드시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에 관한 협정(안) 초안

 

 

전문

대한민국(한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 미합중국(미국), 중화인민공화국(중국) 4개국 대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을 대체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협상을 가졌다. 

 

4개국은 남북 정상간의 4.27 판문점 선언과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채택된 북미공동성명의 역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의를 환기하였다. 

 

4개국은 20세기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65년째 이어져온 정전체제를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1.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식

(1) 4개국은 본 협정이 체결된 2019년 00월 00일부로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정전이 되었던 한국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음을 선언한다. 

 

(2) 교전 상태의 종식은 영구히 적용된다. 

 

(3) 군사정전협정은 본 협정의 발효 즉시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다만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는 본 협정 발효 이후 90일 이내의 해체 절차를 밟는다. 

 

2. 관계정상화와 한반도 통일

4개국은 1990년 한소 수교와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들 양국간의 우호협력과 호혜 발전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해왔음을 평가한다. 동시에 조선과 미국, 조선과 일본이 아직 공식적인 국교 수립이 도달하지 못한 점에 유의한다. 

 

(1) 조선과 미국은 상호 주권 존중과 평등, 그리고 호혜의 정신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위한 교섭에 착수하며 대사급 관계 수립을 2020년까지 완료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우선적인 조치로 연락사무소와 이익 대표부 설치를 추진한다. 또한 양국 관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조미관계에 관한 조약’ 체결해 2019년까지 양국의 헌법적 절차를 완료하기로 했다.  한국과 중국은 이러한 노력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하기로 했다. 

 

(2) 한국과 미국과 중국은 평양선언에 입각해 국교정상화를 위한 조선과 일본의 노력을 적극 지지하며 조속한 국교 수립을 위한 협력을 다하기로 했다.  

 

(3) 남과 북은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남북정상선언, 4.27 판문점 선언 등의 합의 정신에 따라 평화적인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남과 북은 본 협정 체결 6개월 이내에 기본 조약을 체결·비준하기로 했다. 미국과 중국은 남과 북이 평화적 통일을 실현할 권리를 존중하고 이러한 노력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하기로 했다. 

 

3. 불가침

4개국은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 방지가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는 물론이고 세계 평화에도 긴요하다는 점에 숙지하면서 상호간의 일체의 무력 불사용을 포함해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남과 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데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판문점 선언을 거듭 확인하였고 미국과 중국은 이를 지지하였다.

 

(2) 미국은 “안전 담보를 제공할 것을 확언”한 북미공동성명을 거듭 확인하였고, 여기에는 어떠한 형태의 무력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도 포함된다. 조선도 이와 동일하게 약속했다. 

 

(3)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내에서, 한반도로부터, 한반도를 향해 일체의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한반도 밖에서의 상호간의 무력 갈등이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결과에 유의하면서 무력 갈등 예방과 분쟁 발생시 평화적인 해결 절차를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4.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1) 조선은 2020년까지 모든 핵무기 및 핵물질을 국외로 반출해 폐기하기로 공약했다. 여타 국가들은 이러한 공약을 적극 환영하면서 조선의 핵무기 폐기 완료 시점을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이 국외로 반출된 시점으로 간주하는 데에 합의했다. 1차적으로 조선은 이미 신고한  핵무기와 핵물질의 50%를 본 협정 발효 30일 이내에 국외로 반출키로 했다. 

 

(2) 조선은 본 협정 발효 후 7일 이내에 과도기적 지위로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협정에 복귀하기로 약속했다. 

 

(3) 상기한 핵무기와 핵물질 이외의 조선의 핵 폐기 대상과 방식과 시한은 여타 회담에서 결정된 바를 따르기로 하였다.

 

(4)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비핵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5) 한국과 미국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해온 확장 억제 철수 논의에 착수하고, 조선의 핵무기 폐기 완료와 함께 핵우산을 공식적으로 철수하기로 했다. 

 

(6) 한반도 비핵화 조치는 검증가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조선은 NPT와 IAEA 복귀 즉시 이들 조약에 따른 국제적 기준의 검증을 수용하기로 했다. 조선은 검증에 협력하기 위해 본 협정 발효 90일 이내에 IAEA 추가 의정서 서명․비준을 완료하기로 했다. 또한 한국 내 핵무기 부재를 확인하기 위한 조선의 사찰 요구시 한국과 미국은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7)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안전보장을 위해 남과 북에 소극적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을 남과 북의 영토, 영해, 영공에 배치 및 전개와 경유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러시아와 영국과 프랑스까지 포함한 5대 핵보유국의 의무 사항으로 규정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의안을 추진키로 했다. 

 

(8) 조선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원칙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고, 여타 당사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명했다. 동시에 조선은 핵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여타 국가들은 이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9)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준수하기로 했다. 

 

(10) 4개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6자회담의 여타 참가국들의 참여와 협력이 긴요하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6자회담의 재개와 정례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6자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를 동북아 비핵지대로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키로 했다.  

 

5. 정전체제 관련 기구의 해체와 평화 관리기구의 신설

 

4개국은 군사정전협정에 따라 설치된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그리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설치된 유엔 사령부가 정전체제의 안정적인 유지관리라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했음으로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1)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는 본 협정 발효 90일 이내에 공식 해체하기로 했다.

 

(2) 본 협정의 준수를 관리·감시하고 갈등 예방 및 분쟁 조정을 위해 한반도 평화관리 위원회를 본 협정 발효 90일 이내에 판문점에 설치하기로 했다. 본 위원회는 5인의 공동위원장으로 구성되며 5인의 공동위원장은 4개국 대표와 유엔 사무총장이 추천한 인사로 구성하기로 했다. 본 위원회의 구체적인 구성과 역할은 별도의 합의에 따른다. 

 

(3) 일본에 있는 후방 사령부를 포함한 유엔 사령부는 본 협정 발효 90일 이내에 공식 해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4개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소집과 결의를 요청 추진키로 합의했다. 

 

6. 경계선 획정 및 평화지대 설치

 

경계선이라 함은 남과 북이 각기 독립적인 주권 국가이면서도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라는 데에 따른 명칭이다.

 

(1) 육상의 경계선은 군사정전협정의 조항에 따른다. 

 

(2) 해상의 경계선은 동해의 북방한계선을 경계선으로 삼기로 결정했으며, 서해의 경계선은 남과 북의 합의에 따르기로 합의했다. 남과 북은 판문점 선언의 정신에 따라 최종적인 서해 경계선 획정 때까지 북방한계선을 존중하기로 했다.  

 

(3) 공중의 경계선은 육상과 해상의 경계선의 상공으로 설정한다. 

 

(4)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는 판문점 선언을 거듭 확인했고 미국과 중국은 이에 대한 지지와 협력을 약속했다. 

 

(5) 경계선을 기준으로 양측 20km를 일체의 군용기에 대한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한다. 이에 대한 예외 규정은 한반도 평화관리 위원회에서 논의키로 했다.  

 

(6) 한강하구 수역의 개방과 이용은 남과 북의 합의에 따른다. 

 

7.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

 

4개국은 세계에서 가장 군사적 밀집도가 높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구축과 단계적 군축의 실현이야말로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1) 4개국은 6월 20일 한미 양국의 연합훈련 중단 발표가 한반도 신뢰구축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상기하였다.

 

(2)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 연합 훈련 유예 선언은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3) 북한과 중국은 일체의 연합훈련을 실시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4) 군사훈련의 규모와 성격에 대해서는 남북미 3자 군사위원회에서 논의·합의하기로 하였다.

 

(5) 한국과 미국은 일체의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배치하거나 전개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공약하였다. 전략 자산 목록은 남북미 군사위원회에서 결정키로 하였다. 

 

(6) 남과 북은 “단계적 군축” 합의를 조속하고 실질적으로 이행키로 합의하였다. 군축의 대상과 규모는 남과 북의 합의에 따르기로 했으며, 미국과 중국은 이를 존중키로 하였다. 

 

(7) 4개국은 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에 주둔하는 것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감축도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8)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남과 북과 미국은 3자 군사위원회를 30일 이내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남북미 군사위원회의 역할과 구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부속 합의서에 담기로 하였다. 

 

(9) 남과 북은 90일 이내에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기로 했다. 미국은 한반도 지역에 매설된 대인지뢰 제거에 협조하기로 하였다.

 

(10) 조선은 180일 이내에 화학무기금지협약에 가입하기로 했다.  

 

8. 전후처리와 추모 

 

(1) 4개국은 전쟁 당시 실종자, 사망자, 포로 등 인도적인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 미국은 6.12 북미공동성명 4항의 합의에 따라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조선의 노력에 사의를 표했으며, 양국은 유해 발굴 및 송환을 유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4개국은 유해 발굴 및 송환을 위한 협력을 증진·확대하기로 했다.  

 

(2) 4개국은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 세계와 후 세대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비무장지대에 세계평화공원을 설치하기로 했다. 

 

9. 발효

본 협정은 협정문 서명과 교환 즉시 발효된다.

 

 

* 이 보고서는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Friedrich-Ebert-Stiftung) 한국사무소의 지원으로 시민평화포럼이 진행 중인 ‘2018 평화보고서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자료집 [원문보기/다운로드

 
목, 2018/09/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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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환기의 중국 한반도전략 : 변화 및 과제

 

 

2018년 10월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1. 개혁개방 이후 중국 한반도전략 - 현상유지전략으로의 전환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한반도전략은 북중관계를 축으로 해서 한편에서는 미국의 영향력 확장을 억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련의 대중압박을 완화시키는 것을 추구했다. 중국은 한국을 자신과 동맹관계에 있는 북한과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자신의 적대세력인 미국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대상으로만 인식했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은 1972년 2월 마오쩌둥과 닉슨이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하고 중미가 전략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가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미 전략적 협력은 중국의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우려를 감소시켰으며, 동시에 미국과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한반도에서 긴장 고조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수사적으로는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을 지지하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분단의 안정적 관리에 더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으며 한반도 현상유지전략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중관계에 대한 고려 때문에 중국이 당장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움직이기는 어려웠고 분단의 안정적 관리를 지향하는 현상유지전략을 적극적으로 천명할 수도 없었다.

 

1978년 시작된 개혁개방은 북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한국과 관계개선에 나설 필요성을 증가시켰다. 첫째, 개혁개방에 유리한 국제환경 조성이 이 시기 중국 대외전략의 핵심목표가 되었고 한반도 안정과 한국과의 관계개선이 중국에게 더 중요해졌다. 둘째, 해외에서 경제발전을 위한 자원을 끌어들이는 것 역시 개혁개방 초기 대외전략의 주요 목표가 되었는데, 한국은 중국에게 주요 투자원천이자 교역상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국가였다. 중국은 1980년대 초반부터 간접교역의 길을 열기 시작했고, 비정치적 교류도 시작되었다. 1980년대까지는 중국은 북중관계를 고려해 한국과의 교류를 계속 경제·문화 영역에 제한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문화 교류의 확대는 정치교류의 필요성을 계속 증가시켰다. 한중관계의 결정적인 계기는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변화로부터 왔다. 이 변화는 사회주의 체제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냉전체제의 붕괴로 이어졌고, 그 와중에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이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중국이 계속 외면하기는 힘들었다. 북한도 1991년 남북한 UN 동시가입을 수용함으로써 중국이 한국과 정치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치적 조건은 더 무르익었다.

 

중국이 1992년 8월 한국과의 수교를 결정한 데에는 경제적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소련 및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중국의 체제안전에 대한 우려를 증가시켰다. 중국도 1989년 천안문사태라는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이러한 상황 변화 속에서 중국공산당 내부에서는 정치적 통제는 물론이고 계획경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증가했다. 일시적으로는 이러한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되었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경제발전이 이루어져야만 중국 사회주의체제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1991년부터 개혁개방을 더 가속화시킬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2년 초에는 소위 “남순강화”라는 그의 생애에서 마지막 공개 활동을 통해 이러한 입장을 더 분명하게 중국공산당 지도부와 중국인민들에게 전달했다. 중국공산당도 사회주의시장경제론을 채택하는 등 더 적극적인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을 천명하고 경제성장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자신의 명운을 건 이 정책을 성공을 위해서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했다. 한국과 수교결정도 그 일환이었다. 

 

이로써 중국은 한반도 분단상황의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정전상태에서의 남북분단, 주한미군 등의 현상을 유지하는 가운데 자신의 국가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을 정치적으로 확인했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당분간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질서를 인정한다는 의미도 포함했다. 동시에 이 전략에는 북한, 한국 모두와 외교관계를 가진 나라로서 이들과의 관계를 모두 안정적으로 발전시킨다면 장기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도 더 높일 수 있다는 기대도 담겨 있다. 그 이후의 진전 과정을 보면 이러한 목표가 어느 정도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의 관계는 경제, 정치 모든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고, 한국에게 중국은 미국에 못지않게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한중수교 이후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으나 1999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최고위급으로는 한중수교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2000년 5월에는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한 이후 고위급 상호방문이 재개되는 등 북중관계도 개선되어갔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중국에서 진행되었던 것이 중국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 증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었다. 그러나 순탄하게 진전되는 것처럼 보였던 중국의 한반도전략은 곧 새로운 딜레마에 직면했다. 

 

2. 북한 핵능력 강화와 현상유지전략의 딜레마

중국의 현상유지 전략은 치명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북한을 외교적 고립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고 북한의 체제안전에 대한 우려를 크게 증가시켰다. 한중수교가 북한의 체제안전에 대한 우려를 해소시킬 수 있는 조치, 예를 들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미수교 등과 같이 진행되거나 이를 촉진할 수 있었다면 한반도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조치들의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한중수교를 추진했고 미국과 한국의 선택은 점차 북한과의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보다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것으로 기울어졌다.  1990년대 북한은 고립된 상황에서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는 극도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북한은 중국의 자신의 체제안전에 대한 전면적인 지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했고, 안보전략에서 더 극단적인 자주노선을 추진했다. 이 전략의 핵심이 핵개발이었다. 1999년 이후 북중관계의 개선은 이념이나 전략적 목표 등에 대한 공동인식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 측면에서 이익이 합치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 가능했다.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 확장을 저지하고 미국과 직접 대치하는 상황을 피하게 하는 완충지역으로서의 북한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었다. 북한도 체제안전에 필수적 자원을 도입하는 데 가장 안정적인 통로를 제공하고 그 나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신을 지원할 수 있는 드문 나라 중 하나인 중국과의 관계를 계속 악화시킬 수는 없었다. 이와 같은 실리적 고려가 양국관계의 개선을 추동했지만 양자 사이의 불신, 특히 북한의 중국에 대한 불신이 근본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전환은 양국관계에서 소위 “전통적 친선관계”의 성격이 약화되고 실리적 성격이 강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미사일 능력을 강화해왔다는 것이 그 뚜렷한 증거이다. 이는 북한이 자신에게 불리한 현상을 변경시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북한에게 핵무기는 체제안전의 보장을 위한 일련의 목표들(미국과의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등)을 달성하기 위한 협상카드이자, 그 자체로 체제안전에 대한 중요한 보장책이다. 초기에는 협상카드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 특히 2002~3년 발생한 2차 북핵위기 이후 북한은 초보적 수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카드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고자 시도했고, 6자회담의 형식으로 진행된 협상은 2005년 ‘9.19 공동선언’이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6자회담이 진행되던 시기에는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협상의 목표로 인정했기 때문에 북중 사이의 입장차이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처리하는 데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등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이 세 원칙이 같이 추구할 수 있었다. 특히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현상유지전략의 연속을 의미하며, 세 원칙 중에 가장 핵심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9.19 공동선언’이 실행과정에서 좌초되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북미 적대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은 핵능력을 빠르게 고도화시켰고 점차 핵보유 자체를 중요한 국가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2013년 김정은은 “경제와 핵무력 건설의 병진”이라는 방침을 제출했다. 반면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가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중국도 북한의 체제가 계속 유지되는 것을 바라지만 이는 핵무기가 아니라 다른 수단에 의해 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생각에는 큰 차이가 생겼다.

중국에게 더 심각한 문제는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점차 어려워진 것이다. 한편에서는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내세우며 핵군축을 주장하고, 핵·미사일 실험을 반복하며 핵무기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갔다. 이에 미국과 한국이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면서 한반도에서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출현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2016년 2월 왕이 외교부장이 소위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활동과 한미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의 병행)”을 주장하는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며 상황을 안정화시키고자 했으나, 2017년 하반기까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계속 고조되었다. 중국이 주장한 3대 원칙의 실현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한반도 안정과 한반도 비핵화가 점차 상충하고 중국은 이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시진핑체제가 출범한 이후 중국은 점차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재개에,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억제하는 데 더 주력하는 방향으로 한반도 전략을 전환했다. 북한에 대한 국제제재에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태도를 취했고, 관광중단 등 독자제재도 실행했다. 중국은 이러한 압박이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고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 과정에 중국은 큰 전략적 손실을 보았다. 

 

첫째, 대북제재의 강화는 당연히 북중관계를 악화시켰다. 2018년 11월 시진핑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은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 송타오는 김정은을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송타오가 빈손으로 귀국한 직후인 2017년 11월 29일 북한은 ICBM 발사 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다. 둘째, 미국과 한국은 북핵문제를 빌미로 중국이 자신의 전략적 이익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간주했던 사드의 한국배치를 결정하고 진행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이 한국에 일련의 보복조치를 취하면서 한중관계도 큰 타격을 받았다. 셋째,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강화되었다. 트럼프 정부는 2017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중국을 러시아와 함께 “수정주의적”국가로 지칭하고 경쟁자로 규정했다.  미국에게 신형대국관계를 발전시키자고 제안해왔던 중국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보고서가 아닐 수 없었다. 2018년 들어서면서 상황은 무역, 타이완 문제 등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중미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했던 것인데 이마저 어려워진 것은 전략적으로 큰 실패가 아닐 수 없었다.   

 

중국 한반도 전략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은 자신이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고려해 북한에 대한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있는 상황에서, 정작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직접 대화를 추진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차이나 패싱”을 둘러싼 논란이 출현했다. “차이나 패싱”이라는 것은 과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이 왜소화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중국은 왜 이렇게 피동적 처지에 빠지게 된 것일까? 단기적으로는 미국, 즉 트럼프행정부가 직접 북한과의 협상에 개시할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북미 사이의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북미 대화는 중국의 중재 등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고도화되면서 미국이 북한과 직접협상에 나설 유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소홀히 한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중국의 중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며, 과거 3자대화나 6자회담은 모두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진행된 것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반도에서 현상유지를 추구하지만 현상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을 해결하지 못한 데 있다. 비핵화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북한의 체제안전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북한을 고립시키고 있는 현상을 변경시킬 의지와 능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결국 핵으로 체제안전을 확보하려는 시도에 나서는 북한과 이에 대해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미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몰려왔다. 그렇다면 이제 중국은 자신의 한반도전략이 직면한 어려움에서 어떻게 벗어나려고 할 것인가? 

 

3. 한반도 전환과 중국의 새로운 한반도전략

중국의 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는 김정은이 중국을 세 차례 방문해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잦아들었다. 지금은 시진핑의 방북이 추진되는 등 북중관계는 완연한 회복세에 있다. 특히 2018년 6월 19일 3차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의 북중관계에 대한 “세 개의 불변(三個不變)”이라는 원칙을 밝혔다. 이 원칙은 “앞으로 국제와 지역 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든지 중국공산당과 중국정부의 중조관계를 공공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확고한 입장, 중국인민의 조선인민에 대한 우호적 감정, 중국의 사회주의조선에 대한 지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는 내용이다. 이중 “사회주의조선”에 대한 지지는 북한의 체제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북중이 냉전 시기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어느 정도 복원한 인상을 주고 있다. 실제로 최고지도자의 발언, 의전 등이 정상적 국가간 관계를 뛰어넘는 면이 있다. 중국은 이를 지렛대로 삼아 최근 약화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회복해가고 있다. 이것이 한반도전략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규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한국,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원하지는 않고 있다. 

 

현재 북중관계의 발전이 한국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다. 한국정부가 이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부정적 요인으로 보지 않고 있다. 물론 종전선언 당사자 문제가 한중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중국은 한국정부가 추진한 3자 종전선언에 민감하고 비판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점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 등에 중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3자 종선선언이 정치적 선언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정부도 8월 들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의 발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조기에 성과를 내는 방안으로 3자 종전선언을 추진했지만 중국이 참여하는 4자 종전선언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국이 종전선언에 대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촉진하는 마중물로서의 역할을 주목하기보다 주도권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경우 여전히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북중관계의 진전이 중미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복잡하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대중정책, 즉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공세가 중간선거 이후에 약화될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북중협력을 미국의 공세에 대응한다는 식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북중관계의 복원도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로 돌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북한의 입장변화에 중국의 역할이 있었음을 강조할 것이다. 북한도 미국이나 한국이 자신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 트럼프는 계속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북중관계 강화가 북한의 협상 레버리지를 강화해 북미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고, 이러한 불만 표출을 통해 북한에게 중국의 지원을 믿고 비핵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말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실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하기는 하지만 최근 북미간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는 것은 북미간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지 중국의 방해가 주요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향후 진전은 북미협상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가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와 동북아의 상황이 여전히 유동적인 상황에서 중국의 성급하게 한반도전략의 중점을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중국에게 북중관계의 개선은 한반도에서 핵미사일 문제가 더 악화되지 않고 정세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는 과정에 자신의 역할을 제고하기 위한 전술적 대응이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현상유지를 위한 동력이 다시 복원된다면, 즉 북한의 전진과 교착을 반복하는 비핵화 과정이 새로운 정상상태가 된다면 이러한 전술적 대응만으로도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며 북한과 한국 모두와 협력관계를 진전시켜간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중국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첫째 문제는 한반도 상황의 상황이 언제든지 다시 불안정해지고 최근 중국이 직면했던 딜레마에 다시 빠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문제는 최근 새롭게 제기된 문제를 중미 사이의 전략적 갈등이 본격화되고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공세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중국의 한반도전략의 중점이 계속 북한으로 이동하고 북한카드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냉전적 균열이 다시 출현하는 것은 중국도 원하는 상황이 아니다. 이처럼 난감한 상황이 다시 직면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한반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들(정전상태, 북미간 적대적 관계, 한반도의 군비경쟁 등)이 제거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는 2005년 ‘9.19 선언’ 이후 “항구적 평화메커니즘”이라고 지칭되어 왔다. 중국은 수사적으로는 이에 대한 지지를 밝혀 왔지만 이를 위해 자신의 외교적 자원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인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최근 정세변화는 이제 중국의 한반도전략이 현상유지를 넘어서는 비전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 중국이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응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 이 보고서는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Friedrich-Ebert-Stiftung) 한국사무소의 지원으로 시민평화포럼이 진행 중인 ‘2018 평화보고서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되었습니다.  

 
4차 평화보고서 [원문보기/다운로드
 

 

English Version >> 

화, 2018/10/2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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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평화포럼 정책포럼 

북한의 인도적 위기와 남북협력의 길

일시 : 2021년 8월 23일(월) 오후 2시, 온라인 공간 ZOOM 

 

코로나19 방역으로 국경 봉쇄가 장기화 되면서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식량농업기구(FAO)·국제농업개발기금(IFAD)·유엔아동기금(UNICEF)·세계식량계획(WFP)·세계보건기구(WHO)가 발간한 <세계 식량 안보와 영양수준 2021> 보고서는 2018~2020년 북한의 영양부족 인구는 총 1,09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2.4%에 달한다고 밝히며, 북한을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국가로 재지정하였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지난 6월 중순 열린 노동당 회의에서 식량난을 공식 인정하였습니다. 지난 7월 13일 열린 유엔 고위급정치포럼(HLPF)에서는 식량난과 백신 등 의약품 부족을 인정한 자발적 국가 검토 보고서(VNR)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제출한 VNR에 따르면, 내부 수요를 위해 매년 700만톤의 곡물이 필요하지만, 2018년엔 495만톤을 생산해 10년 사이 최저치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552만톤에 그쳤습니다.

 

한편, 북한은 코백스(COVAX)를 통해 백신 170만여회분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공급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북한의 인도적 위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이에 북한의 인도적 위기 상황을 짚어보고, 꽉 막힌 남북협력을 어떻게 풀 수 있는지, 시민사회는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프로그램  

사회  박정은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발제1 북한의 자발적 국가 검토(VNR) 보고서를 통해 본 북한의 인도적 위기 현황  /  홍제환(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발제2 코로나19 백신과 남북 보건의료 협력 방향 / 신영전 (한양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발제3 북한의 인도적 위기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미래 /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토론1 박창일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평화3000 운영위원장)

토론2 최혜경 (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

전체 토론

 


주최 시민평화포럼

후원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문의 시민평화포럼 (02-723-4250, [email protected]

 

자료집 [https://docs.google.com/document/d/1ohhnvgvVdYGU5HbpGPsYOEvBgvcJP7xXtT3e...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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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ivilpeaceforum.org/" target="_blank" rel="nofollow">시민평화포럼은 2008년 10월 1일 창립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부설기관으로 평화와 통일에 대해 시민과 단체, 전문가가 자유롭게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입니다. 현장 활동가와 전문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담론과 정책 및 운동의 대안을 만들고, 국내외 연대를 통해 소통과 협력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통일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단체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화, 2021/08/24-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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