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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병기 타고 ‘4대강 전투’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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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병기 타고 ‘4대강 전투’ 계속하겠습니다

익명 (미확인) | 목, 2015/09/03- 10:32

▲ 흰옷을 녹조에 담근 뒤 줄에 매달아 놓았다. ⓒ 권우성

[투명카약-낙동에 살어리랏다⑬]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독자들의 성원으로 '김종술 투명카약 선물하기' 프로젝트 목표액을 훨씬 초과 달성했습니다. 이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지난 8월 24일부터 2박3일동안 진행한 '낙동에 살어리랏다' 현장 탐사, 기획 보도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낙동에 살어리랏다' 현장 기획 기사를 통해 모금한 후원금은 김종술 기자의 4대강 취재비로 전달합니다. 이번 기획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환경운동연합의 공동 프로젝트였습니다. [편집자말]    [caption id="attachment_153046" align="aligncenter" width="600" class=" "]▲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탐사활동을 벌였다.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투명카약을 타고 낙동강 녹조 위를 지나고 있다. ⓒ 권우성 ▲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탐사활동을 벌였다.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투명카약을 타고 낙동강 녹조 위를 지나고 있다. ⓒ 권우성[/caption]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 취재 첫날부터 열받았습니다. 지난 8월 24일 아침, 도동서원(대구 달성군) 앞은 녹조 곤죽이 된 채 시궁창 냄새를 풍기면서 죽고 있었습니다. 제 차로 달려가서 플라스틱 양동이를 가져왔습니다. 양동이에 한 가득 녹조를 채워서 선착장 바닥에 냅다 패대기쳤습니다. 이 한 컷의 사진은 'MB여, 라떼 받아라!'라는 제목으로 SNS를 타고 퍼져 나갔습니다. 1000만 원 넘게 후원금이...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10만인클럽 회원인 김종술입니다. '김종술에게 투명카약 선물하기' 캠페인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지난 보름 동안 많은 독자분들이 제게 후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제게 쪽지를 보내 "카약 한 개를 후원하겠다"고 제안한 조선소 사장님도 계십니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초 300만 원을 목표로 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362%의 달성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430명이 1085만 원의 후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동안의 많은 분들의 성원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기획한 2박 3일간의 낙동강 탐사보도를 마쳤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10만인클럽 회원인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에게도 투명카약을 선물했고, 그 투명카약을 타고 그와 함께 돌아본 낙동강 탐사는 지금까지 4대강에서 보아왔던 것과 비교할 때 최악이었습니다. 썩은 강물은 죽처럼 변했습니다. 거미줄을 쳐 놓은 듯 끈적거리는 녹색 끈끈이들은 강의 생명들을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어부의 그물은 물고기 대신 큰빗이끼벌레와 죽은 물고기로 가득했습니다. 보에 물을 가두는 바람에 집단으로 죽은 버드나무 군락은 한여름 공포 영화에서나 봄직한 괴기스런 세트장이었습니다.   사실 지난 6월에도 최근 20여 명의 대규모 취재단을 꾸려 '금강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큰빗이끼벌레는 발에 채일 정도로 가는 곳마다 발목을 잡았습니다.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무등산 수박만한 이끼벌레부터 가로막힌 강물과 지천을 가득 채웠던 녹조, 앙상하게 뼈만 남아 버린 죽은 나무들, 시꺼먼 펄흙에서 꿈틀거리며 사람들을 경악시켰던 실지렁이와 깔따구 유충까지... 3년만에 온 강의 변화치고는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왔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3047" align="aligncenter" width="800" class=" "]▲ 초대형 큰빗이끼벌레, 합친 몸체의 크기가 무려 3m50cm, 공주보 상류 1킬로미터 지점에서 발견. ⓒ 이희훈 ▲ 초대형 큰빗이끼벌레, 합친 몸체의 크기가 무려 3m50cm, 공주보 상류 1킬로미터 지점에서 발견. ⓒ 이희훈[/caption]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처럼 금강에서만 살아가는 저는 지치고 힘들 때면 나들이하듯 낙동강, 영산강, 한강을 찾곤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처음 투명카약 펀드 제안을 받고 '설마 가능할까'하는 생각에 몇 번을 망설였습니다.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을 잊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3차례 거절하다 마지못해 수락했습니다. 태풍 불어도, '비밀 병기' 들고 찾은 낙동강 그런데 하루반나절 만에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00만 원 목표가 순식간에 채워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안 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했던 저의 등짝을 죽비로 후려쳤습니다. 펀드의 모금액은 날이 갈수록 쌓였고, 제가 알지 못한 분들도 문자와 전화로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저는 약속대로 낙동강 취재를 기획하고 <오마이뉴스> 상근 및 시민기자로 취재단을 꾸렸습니다. '비밀 병기' 투명카약 두 대를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탐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낙동강으로 떠나기 직전에 남북이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또 중형급 태풍 고니가 300mm 이상 폭우를 동반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았기에 강행했습니다. '낙동에 살어리랏다' 취재 첫 포인트였던 도동서원은 2013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의 현장리포트인 <오마이리버-자전거 탐사> 때에도 상근기자와 시민기자들과 함께 묵었던 곳입니다. 수려한 풍광, 사적 제488호이자 김광필 나무로 통하는 400년 된 은행나무는 지친 자전거 취재단의 몸과 마음을 쓸어내렸습니다. 그 앞 주차장에서 텐트를 치고 밤늦게까지 주민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방문한 그곳은 놀라울 정도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서원의 비경에 빠지기도 전에 도동나루터 강물 앞에서 눈을 감아 버리고 싶었습니다. 투명카약을 타고 들어간 강물은 더 심각했습니다. 노를 저어도 배를 움직이기가 힘이 들 정도로 곤죽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4대강으로 놀러 오라는 정부도 밉지만 낙동강을 찾았던 MB조차 이런 강물을 먹으라고 했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저 옷 입으면 피부병 걸려" [caption id="attachment_153048" align="aligncenter" width="600" class=" "]▲ 흰옷을 녹조에 담근 뒤 줄에 매달아 놓았다. ⓒ 권우성 ▲ 흰옷을 녹조에 담근 뒤 줄에 매달아 놓았다. ⓒ 권우성[/caption] 흰 바지와 티를 강물에 던졌습니다. 천연염색을 하듯 금세 녹조로 물들어 버렸습니다. 녹조물 속에 들어가 녹조를 양동이에 퍼담았습니다. 물에서 나왔더니 흰옷이 녹조로 물이 들었습니다. 투명카약은 심각한 녹조의 상황을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카약 바닥이 온통 녹색으로 훤히 비쳤습니다. 심지어 강에 병풍처럼 둘러친 바위도 녹조로 염색이 됐습니다. 그 죽음의 강에서 우리나라 고유종이자 멸종위기 1급인 흰수마자 현수막을 카약에 매달고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잠시 뒤에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1.5마력짜리 선박이 나타나 강물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배의 머리를 둔치에 처박고 모터보트 스크루를 이용해 녹조를 흐트러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수자원공사에 고용되어 녹조를 밀어내는 제거반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금방 녹조 염색을 마친 옷을 보며, "저 옷 입으면 피부병 걸린다"고 걱정까지 하셨습니다. 첫째날 오후에는 구미보 상류 선산 근처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살아간다는 어부를 만났습니다. 배를 타고 건져 올린 그물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 숨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죽은 물고기와 이끼벌레, 외래종인 블루길과 베스 등이 그물에 간간히 따라 올라왔습니다. 1시간 넘게 어부의 작업을 지켜봤는데, 역시 강은 죽어 있었습니다. 1급수였던 그곳에 녹조가 끼고 낙동강의 최대 쏘가리 어장이라는 곳에서 큰빗이끼벌레와 외래종이...  '이명박근혜'를 위한 녹조 레시피   [caption id="attachment_153049" align="aligncenter" width="600" class=" "]▲ 지난 24일 오후 낙동강에서 구한 녹조와 큰빗이끼벌레로 MB를 위한 특별한 ‘국밥’을 만들었다 ⓒ 권우성 ▲ 지난 24일 오후 낙동강에서 구한 녹조와 큰빗이끼벌레로 MB를 위한 특별한 ‘국밥’을 만들었다 ⓒ 권우성[/caption] 뒷산의 가랑잎보다도 많았다던 그 많은 물고기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1급수였던 물속 그물에 더덕더덕 붙은 큰빗이끼벌레를 따서 '녹조 국밥'을 만들었습니다. 어부의 탄식이 흘러나오는 강가에 앉아서 밥 말아먹듯이 거짓말을 해 온 '이명박근혜'의 국밥을 퍼포먼스 했습니다.  그날 밤, 오전 4시가 되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온몸이 가려웠습니다. 화가 치밀어 녹조물에 들어갔던 대가였습니다. 무릎에도 파스를 붙였습니다. 손발이 뜨거워서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찬물 찜질을 해야만 했습니다. 둘째 날은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아침에 바깥으로 나와보니 태풍 고니가 몰고 온 비가 차량 위에 묶어 놓은 투명카약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차가 신호등에 멈춰설 때마다 카약 속 빗물은 차의 유리창을 때렸습니다. 그렇게 구미보 하류 1.5km 지점의 감천 합수부를 찾았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그곳에 가려고 30kg 가까이 되는 카약을 들고 1km 넘게 걸어서 강물속에 집어넣었는데, 이번에는 수공 직원이 가로막았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서 수문을 개방할 수도 있기에 위험하다는 겁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1km가 넘는 길을 카약을 들고 철수해야 했습니다. 괴기영화 세트장 같이 검게 죽어있는 버드나무들 [caption id="attachment_153050" align="aligncenter" width="600" class=" "]▲ 강정고령보 담수 이후 물이 차올라 버드나무들이 집단으로 수장되었다. ⓒ 이희훈 ▲ 강정고령보 담수 이후 물이 차올라 버드나무들이 집단으로 수장되었다. ⓒ 이희훈[/caption] 경북 왜관 하빈 양수장 앞에 갔더니 바다에서처럼 파도가 쳤습니다. 무섭기도 했습니다. 버드나무 집단 고사지였습니다. 보에 물을 채워서 낙동강의 수위가 올라가서 벌어진 일입니다. 푸른 옷을 입고 있어야 할 버드나무들은 물 위로 목만 내민 채 검게 죽어 있었습니다. 물속은 더 참혹했습니다. 두려움에 도망치듯 괴기영화 세트장같은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마지막 날, 감천 합수부를 다시 찾았습니다. 모래밭을 1km쯤 걸어 들어갔습니다. 3년 전 MB가 수심 6m로 준설을 했던 곳입니다. 낙동강 본류의 과도한 준설로 지천의 모래가 빨려들어가면서 합수부는 모래섬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가는 대자연의 포용력 앞에 선 우리들. 그곳에 뛰어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삼강전망대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낙동강, 그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곳에 투명카약을 띄웠습니다. 강의 유속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빨랐습니다. 온 힘을 다해서 노를 저었지만 카약은 자꾸만 뒤로만 밀립니다. 무릎 정도의 수심에 강물로 뛰어들어 카약을 밀며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물장구도 치고 한바탕 뒹굴었습니다. 낙동강 지킴이의 뜨거운 포옹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노을 지는 강물은 시시각각 변하다가 황금빛을 띠었습니다. 마지막 햇살에 모래사장도 온통 황금 덩어리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름다운 강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2박 3일간의 낙동강 탐사 취재를 마쳤습니다. 제 잔소리에 시달리던 정수근 처장이 저를 살짝 안아줍니다. 제가 금강을 혼자 거닐 때 낙동강을 묵묵하게 지켜온 그의 품이 참 따뜻했습니다. 저는 지금 금강으로 돌아와 강변을 걷고 있습니다. 투명카약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카메라와 취재수첩이 제가 가진 무기의 전부였습니다. 이제 국민 성금으로 만든 비밀병기가 생겼습니다. 제 차의 지붕에 매달린 그 녀석을 힐끗힐끗 볼 때마다 뿌듯합니다. 'MB 4대강'에 맞설 무기이지만, 또 수백 명의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져 오기 때문입니다. 전 이제 금강을 혼자 걷는 일이 없을 겁니다.  조만간 투명 카약 한 개를 들고, 아니 수백 명의 독자들과 함께 세종시부터 서천하굿둑까지 탐사 취재를 하려고 합니다. 투명 카약의 품속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면서 금강의 생생한 모습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혼자는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분들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성금을 보내주시고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예전보다 훨씬 화력이 막강해진 비밀병기를 타고 금강에서 '4대강 전투'를 계속하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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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4_남한강 이포보 모래대신 잡초1

안녕하세요, 환경운동연합 4대강 리포터, 대학생 박서연입니다.

이번에는 남한강으로 실습을 갔는데요​

먼저 전체 동영상을 보여드릴게요^^

[embed]https://youtu.be/hz8XDJH5PQ0[/embed]

남한강에는 아주아주 큰 보가 있었는데요, 그 보 이름이 이포보!

자세한 포스팅은 밑에서 쭉 보시게 될 거예요

 장소를 옮겨서 이포보를 자세히 볼 수 있었어요

파사성 주차장 근처로 가서 본 이포보의 모습이에요

P20150714_104149056_81B9ECB8-DD16-4D36-9C66-E8DCFA46D13C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굉장히 크죠? 제가 한국에서 본 보 중에서 제일 거대해요

사진을 보시면 다리 위에 동그라미들이 쭉 있는걸 알 수 있는데요

이건 백로알을 뜻하는 모양이라고 해요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공룡알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공룡알1

 5년 전, 바로 여기 이 구조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저 위에서 이포보 건설

반대 고공 농성을 벌인 분들이 있어요.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장동빈 경기운동연합 사무처장,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전 위원장,

이렇게 세분이에요. 이 분들과 짧게 인터뷰를 했었는데요~ 동영상에 나오는

분들이 바로 이분들이세요^^ 안타깝지만 이포보 건설은 강행되었어요.

이포보 가운데에 이렇게 동그랗게 만든 부분은

물놀이를 위한 공간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믈놀이장

반원의 테두리에는 보시는 바와 같이 중간 중간에 수문이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다 보니 위에서 떠내려온 흙들이 자연스레 흘러가지 못하고 원 안에 쌓여버렸어요

사진에 보시면 밝은 색으로 크게 보이실텐데요

이게 바로 그 침전물이에요

테두리로 인하여 막혀버렸고, 수문으로 인해 물의 방향이 인위적으로 바뀌어서 이렇게 침전물이 쌓이게 되었어요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믈놀이장 침전물

여기 또한 침전물이 쌓인 걸 볼 수 있죠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믈놀이장 침전물1

원 안에 쌓인 침전물과 계단 중간 중간 쌓여있는 침전물, 이끼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믈놀이장 이끼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믈놀이장 이끼1

여기서 근무하시는 공무원 말씀에 따르면 물놀이를 위해 만들긴 했지만 여기서 물놀이는 못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해요

실제로 출입금지 경고문이 있었네요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믈놀이장 출입금지

"엄마야 누나야"라는 동요를 아시나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 뒷문밖에는 갈 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이 노래에 나오는 '금 모래빛 들'이 바로 이 이포보의 백사장을 말한대요

여기 이포보에는 원래 금모래가 쫙 깔린 백사장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인위적으로 바뀌어 버린 이포보에는 금 모래빛 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무성한 잔디가 자라났어요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모래대신 잡초

20150714_남한강 이포보 모래대신 잡초1

이렇게 망가진 남한강이 다시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염형철 사무총장님의 인터뷰로 마무리를 지을게요^^

염형철(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 "한강의 습지 중 가장 잘 발달된 습지였던 이포습지는 과거에 여울도 있었다.

지금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 중 뭐가 더 나은가는 사람의 선호일 수 있지만,

좋은 생태계, 좋은 강이란 것은 그 강과 생태계 안에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종들이 서식할 수 있느냐이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훨씬 단조롭고 소수의 종들이 살아갈 수밖에 없고

토종이 아닌, 흐르지 않는 물에 사는 외래종들이 여기에 서식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생태적인 관점에선 나쁜 상태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원래의 강의 가치가 더 낫기 때문에 결국에는 돌아가지 않겠나?

그걸 더 빨리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인위적으로 만든 강)이라는 게 얼마나 가겠나?"

 이상 남한강 이포보에서 박서연 4대강 환경연합 리포터였습니다.

리포터 – 경기대 지식재산학과 4학년 박서연

목, 2015/08/0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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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명승지 제19호 '선몽대 일원'의 진면목. 선몽대와 솔숲과 내성천 모래톱이 조화를 이룬 경관미의 백미. 영주댐 공사 전이자 국토부의 하천환경정비사업 전의 선몽대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2009년 선몽대. Ⓒ박용훈

국가명승지에 가해지는 삽질 왜?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처장([email protected])

 

 

너무 쉽게 파헤쳐지는, 생명의 강 내성천

소나무 몇 그루를 심기 위해 강을 횡단하는 임시도로를 가설한다 합니다. 그 강에는 다양한 멸종위기종 야생동물들이 살고, 특히 그 모래톱에는 멸종위기종 1급으로 환경변화에 아주 민감한 흰수마자란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도 모래톱을 마구잡이로 막고 그 위를 횡단하는 임시도로를 놓는 공사를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일대는 모래톱이 너무나 아름다워 국가명승지로 지정된 구간인데도 말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7765" align="aligncenter" width="600"] 임시 가교를 놓기 위한 공사를 벌이고 있다. 강을 가로질러 차량을 통행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국가명승지에서 말이다.Ⓒ대구환경운동연합 임시 가교를 놓기 위한 공사를 벌이고 있다. 강을 가로질러 차량을 통행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국가명승지에서 말이다.Ⓒ대구환경운동연합[/caption] 바로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가 밀어붙이듯이 진행하고 있는 내성천 하천환경정비사업의 내용입니다. 국토부는 강 건너편에 있는 선몽대 솔숲에 몇 그루 고사한 소나무를 대체한다면서 대형 소나무를 열다섯 그루 더 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천환경정비사업에 이미 잘 정리돼 있는 소나무숲의 정비가 들어가 있는 것도 참 이상하지만, 지금 있는 공간에 소나무를, 그것도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를 열다섯 그루 더 채워 넣으면 그 자체로 그 공간이 답답해질 것이란 사실은 조금만 상식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 보더라도 알게 될 사실인데 어떻게 이런 사업이 추진될 수 있을까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7766" align="aligncenter" width="600"]솔숲 사이로 내성천에 들어가 가교 공사를 준비중엔 포크레인이 보인다. 소나무 몇 그루 더 심겠다고 강을 가로지르는 가교를 놓고 있다.Ⓒ대구환경운동연합 솔숲 사이로 내성천에 들어가 가교 공사를 준비중엔 포크레인이 보인다. 소나무 몇 그루 더 심겠다고 강을 가로지르는 가교를 놓고 있다.Ⓒ대구환경운동연합[/caption] 그렇습니다. 이 사업을 위해 국토부는 내성천이란 생태계가 너무나 잘 보존된 이 강을 가로지르는 가설도로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지금 가도를 놓으려 하고 있는 곳은 바로 국가명승지 구간입니다. 국가명승지 제19호는 ‘선몽대 일원’입니다. 선몽대와 명사십리라고 그 앞의 잘 발달된 모래밭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경관미가 바로 국가명승지가 된 이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국토부에 물었습니다. 돌아온 부산지방국토청 하천과 관계자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대구지방환경청과 문화재청의 협의를 받았다. 그리고 소나무만 옮기고 바로 가도를 없앨 계획이다”  

오직 소나무를 옮기기 위해 강에 다리를 놓다

오직 소나무를 옮기기 위해서 가도를 놓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국가명승지 안을 마음대로 가로지르는 가도를 만들어서라도 나무를 이식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내성천의 깃대종이자 멸종위기종 흰수마자가 얼마나 있건 말건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그 사고 자체가 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불도저식 토건사업이 그동안 우리 산하를 얼마나 파괴해왔던가요? 4대강사업이 바로 그런 대표적 사업 아니었던가요? 불가능한, 해서는 안 되는 사업을 오직 한사람의 잘못된 집념으로 밀어붙인 사업이 4대강사업이고, 그에 철저히 복무한 기관이 국토부가 아니었던가요? 국토부가 아니라 ‘국토파괴부’라 불리는 이유인 것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7767" align="aligncenter" width="600"]공사 전 선몽대의 아름다운 모습. 경관미가 백미로 국가명승 제19호로 지정됐다.Ⓒ대구환경운동연합 공사 전 선몽대의 아름다운 모습. 경관미가 백미로 국가명승 제19호로 지정됐다.Ⓒ대구환경운동연합[/caption] 더욱이 문화재청에서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협의 내용에도 가도에 대한 언급도 없었고, 천연기념물 담당자도 막 시작된 공사의 내용도 모르고 있어서, 예천군을 통해서 확인하겠다는 대답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국가명승지 구간을 문화재청의 승인도 없이 공사를 했다는 것으로, 국가명승지를 국토부 마음대로 공사를 했다는 결론입니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이렇게까지 서둘러 공사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생태적 제방공사의 반 생태성

선몽대 맞은편 그러니까 강의 우안의 이른바 ‘완경사 제방공사’를 해놓은 것을 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공사 전 멀쩡한 제방을 포크레인으로 건드려서 제방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나도록 만들어놓았습니다. 수많은 세월 제방에 잘 안착한 식생들을 모두 걷어내고 하얗게 속살이 드러난 그 제방에 다시 식물을 심겠답니다. 아니 자연적으로 잘 자란 식물이 제방을 단단히 잡아메고 있는데 왜 그것들을 다 걷어내고 다시 수많은 예산을 들여서 식물을 심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caption id="attachment_157768" align="aligncenter" width="600"]선몽대 너머로 제방 공사를 새로 해둔 모습이 보인다. 제방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대구환경운동연합 선몽대 너머로 제방 공사를 새로 해둔 모습이 보인다. 제방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대구환경운동연합[/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57769" align="aligncenter" width="600"]멀쩡하고 튼튼하며 생태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는 제방을 포크레인으로 깎아서 이른바 완경사 제방을 만들었다.Ⓒ대구환경운동연합 멀쩡하고 튼튼하며 생태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는 제방을 포크레인으로 깎아서 이른바 완경사 제방을 만들었다.Ⓒ대구환경운동연합[/caption] 이른바 생태적인 제방을 만든다는 이유로, 그동안 멀쩡히 식생과 어우러져 생태적으로 잘 살아있던 제방을 포크레인으로 밀어붙이곤 생태적인 제방을 만든다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국토부입니다. 도대체 내성천 같은 강에서 완경사 제방이란 급조한 제방과 식생 등이 자연스럽게 안착한 오래된 제방 중 어느 것이 더 생태적인가요? 상식적인 판단이 가능한 지점입니다. 이러니 국토파괴부란 비난을 사는 이유이고, “돈을 쓰기 위한 공사를 벌인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인 것입니다. 물론 꼭 필요한 제방공사도 있겠지요? 그러나 내성천에서만큼은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특히 지금 공사를 벌이고 있는 선몽대 맞은편 구간은 더욱 말입니다. 그곳은 이미 튼튼한 제방이 있었고, 그 제방 너머에 보호를 해야 하는 민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 논이 있을 뿐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7770" align="aligncenter" width="600"]공사 전의 자연 제방의 모습. 이것이 더욱 생태적인 제방이 아닌가?Ⓒ대구환경운동연합 공사 전의 자연 제방의 모습. 이것이 더욱 생태적인 제방이 아닌가?Ⓒ대구환경운동연합[/caption] 강이 넓어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수십년에 한번 범람을 하더라도 보상을 해주는 편이 더욱 경제적일 정도입니다. 진정 이 나라 국토를 사랑하는 국토부라면 내성천 같은 자연하천은 인공의 삽질을 가할 것이 아니라, 그대로 보존해서 원형 그대로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국토부가 할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세계 물의 날, 내성천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다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입니다. 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물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주요 물질이자,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생명줄입니다. 따라서 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 중요한 물을 공급하는 공간이 바로 강입니다. 건강하고 맑은 물은 건강한 강에서 나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7771" align="aligncenter" width="600"]국가명승지 제19호 '선몽대 일원'의 진면목. 선몽대와 솔숲과 내성천 모래톱이 조화를 이룬 경관미의 백미. 영주댐 공사 전이자 국토부의 하천환경정비사업 전의 선몽대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2009년 선몽대. Ⓒ박용훈 국가명승지 제19호 '선몽대 일원'의 진면목. 선몽대와 솔숲과 내성천 모래톱이 조화를 이룬 경관미의 백미. 영주댐 공사 전이자 국토부의 하천환경정비사업 전의 선몽대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2009년 선몽대. Ⓒ박용훈[/caption] 건강한 강은 오로지 물만 많은 강이 아니라, 살아 흐르는 강입니다. 모래와 습지가 있는 강이며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사는 강입니다. 바로 내성천과 같은 강이지요. 1300만 영남인의 젖줄인 낙동강에 맑은 물과 모래를 50%씩이나 공급하는 내성천입니다. 영남인들의 생명줄이 내성천에 달려있는 이유입니다. 그런 내성천에 마지막 4대강사업인 영주댐 공사를 벌이는 것도 모자라, 경상북도는 하천재해예방사업이란 명목으로, 국토부는 하천환경정비사업이란 명목으로 별 필요성도 없는 사업을 벌여서 강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모르되, 안해도 그만인 사업은 더 이상 벌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내성천과 같은 자연하천에서는 말입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깃들어 살고 있는 생명의 강 내성천에서는 말입니다. 경상북도와 국토부는 이 기회에 국보급 하천 내성천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해, 내성천에서 더이상 이와 같은 쓸데없는 공사는 벌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수, 2016/03/2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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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1-01

[서명캠페인] 4대강을 토-닥-토-닥 해주세요

<4대강 재자연화 특별법 청원 캠페인>

화, 2016/07/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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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 본 창녕함안보는 평화롭게만 보였다. 엊그제 내린 비와 흐린 날씨가 곤죽 덩어리 녹조를 가렸다. 오랜만에 열린 수문은 시원하게 강물을 뱉어냈다. 윤순태 촬영감독은 함안보가 안전하게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강물 속에 들어갔다. 함안보 바닥이 유실되고 있다는 의혹은 보 건설 이후 계속 제기되고 있다.

▲ 낙동강 창녕함안보

▲ 낙동강 창녕함안보

윤순태 감독 : 가다가 돌 하나 잡았는데 굴러 떨어져갔고, 수심 재 보니까 16.8m 야. 완만한게 아니라 폭 꺼졌어.

박창근 교수 : 콘크리트 끝나는데 말하는거에요?

윤순태 감독 : 네, 무서웠어요

2015072101_02

윤 감독은 수중에서 함안보 바닥을 기어가다가 갑자기 땅이 푹 꺼지는 위험한 상황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6미터여야할 수심이 16미터가 넘었다. 보의 바닥이 유실된 거다. 현장에 있었던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수심이 급격하게 깊어진 지점은 경사가 시작된 곳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4대강 공사는 2012년 마무리됐지만, 함안보는 그 이후 4차례 보수공사를 더 했다. 하지만 아직도 보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강바닥 오염도 심각한 수준이다. 함안보에서 10km 떨어진 본포 취수장 인근에서 길어 올린 흙더미는 일명 저질토, 오염된 흙이다.본포 취수장 물은 주민들에게 식수로 공급된다. 박창근 교수는 “4대강 사업 전에는 오염토가 쌓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강물의 흐름이 거의 없어지면서 표면의 유기물이 가라 앉아 부패하면서 오염토가 쌓이게 됐다

▲ 낙동강 본포 취수장 강바닥에서 퍼올린 흙. 시커멓게 오염돼 악취를 풍겼다.

▲ 낙동강 본포 취수장 강바닥에서 퍼올린 흙. 시커멓게 오염돼 악취를 풍겼다.

오염된 흙은 장소를 가르지 않고 강 전역에 늘고 있다. 누구보다 낙동강을 잘 아는 어민들은 강바닥이 죽어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어민 장덕철 씨(60)는 “작년에는 살아있던 땅이 올해에는 새까맣게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어구를 넣어보면 압니다. 어구가 그냥 썩어가지고 올라와요.
– 정덕철 어민

▲ 낙동강은 어민들의 오랜 삶터였다. 4대강 사업 이후 어민들의 생계는 위협받고 있다.

▲ 낙동강은 어민들의 오랜 삶터였다. 4대강 사업 이후 어민들의 생계는 위협받고 있다.

또 다른 어민 이성호 씨(55)는 카메라 앞에 서자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터뜨렸다. 이성호 씨는 아버지 때부터 낙동강 하류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녹조가 발생했을 때 보에서 수문을 열었잖아요. 저희 어민들이 어구를 밤에 설치해놓거든요. 보를 열어버리면 어구 손실도 억수로 많아요. 수자원에서는 우리 일 아니다 모른다. 책임 회피에요
– 이성호 어민

얼마 잡히지 않는 물고기라도 잡겠다며 설치한 어구는 예고 없이 열린 보의 문 때문에 물살에 휩쓸려 가버린다. 정부기관은 그래도 특별한 대책은 세워주지 않는다. 평생 강을 터전 삼아 살아온 이들에게 낙동강은 4대강 사업 이후 ‘체념의 강’이 됐다. “옛날과 비교하면 95% 물고기가 멸종했다”는 게 어민들의 말이다.

한마디로 엉망입니다. 옛날에 비교해가지고는 거의 90%, 95%, 거의 멸종이라고 보면 되요. 그 정도로 낙동강 환경이 안좋습니다. 어민들로서는 조업해가지고 생계를 해야 하는 판인데, 굉장히 어려움이 있다고 봐야지요.
– 장덕철 어민

낙동강을 오르며 만난 주민 장성기 씨(55). 카메라를 보자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이내 사람 좋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20년. 그가 합천창녕보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고령군 연리들에서 수박농사를 지은 햇수다. 하지만 이제 장 씨는 수박농사를 포기했다.

내가 그런(수박) 농사를 20년 넘게 했어. 하다가 내가 그만뒀지. 도저히 하다가 안되니까. 그래가 요거(오이)라도 해야 밥이라도 먹고 살고 애들 학교라도 시키니까.
– 장성기 농민

장 씨와 같은 마을에 사는 곽상수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함안보 근처 연리들의 수박농사는 4대강 공사 이후 ‘끝이 났다.’ 4대강 공사 이후 높아진 지하수 수위 때문에 농지가 습지화되기 시작했고, 수박농사 수익이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는거다. 수박이 이전에 비해 80%밖에 크지 않았다.

“아, 형님 수박 손 놨구나” 인터뷰를 마치고 손수레를 끌고 나오는 장 씨에게 곽 씨가 말을 붙였다. “그래, 안한다. 이기라도 해야 애들 밥이라도 먹일 거 아이가.” 장 씨는 종전 그 사람 좋은 표정으로 손수레를 끌었다.

▲ 창녕함안보 근처에서 연리에서 자라는 수박의 크기는 4대강 사업 이전에 비해 80%밖에 되지 않는다.

▲ 창녕함안보 근처에서 연리들에서 자라는 수박의 크기는 4대강 사업 이전에 비해 80%밖에 되지 않는다.

어민들도, 농민들도 자신들의 삶이, 생계가 이리 힘들어진 것이 무엇 때문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면서 그들은 매번 “잘은 모르지만”, “전문가는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는 분명하게 기억했고, 자신있게 덧붙였다.

4대강 사업 이후 이렇게 변했습니다.

화, 2015/07/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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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공사 후 곰나루에서 본 금강 하류. ⓒ 이경호

[10만인클럽 현장리포트-금강에 산다 ⑩] 김정섭(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직대)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이 주최하고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주관해서 특별기획 '금강에 살어리랏다'를 진행합니다. 보트를 타고 페이스북 등 SNS 생중계를 하면서 현장을 고발하고 기획 보도를 통해 대안도 모색합니다. 이 기획은 충청남도와 충남연구원이 후원합니다. [편집자말]
[caption id="attachment_151663" align="aligncenter" width="650" class=" "]▲ 4대강 공사 이전의 곰나루 백사장. ⓒ 이경호 ▲ 4대강 공사 이전의 곰나루 백사장. ⓒ 이경호[/caption]
내가 다닌 중학교(충남 공주시 우성면 우성중학교)의 교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단강 감도는 푸른 기슭에, 곰나루 천년어린 역사를 안고..." 비단강은 곧 금강의 풀이인데 그때는 무슨 뜻인지 깊은 생각 없이 불렀다. 한자를 제대로 알기 전에, 금강이 금강산의 금강과 같은가 생각하기도 했다. 막연히 좋은 경치에 금강이라는 말을 쓰는가 하는 생각. 쇠 금자를 쓰는 금강산과 달리 금강은 비단 금자를 쓴다. 요즘은 비단강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으나 옛적에는 한강, 낙동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길다는 금강, 충청남도 중심부를 두루 통과하는 금강을 길게 펼쳐놓은 비단에 비교했던 모양이다. 적벽강, 백마강, 강경강... 연기(오늘의 세종시), 공주 인근에서는 당연히 금강이라고 하는데, 한참 상류인 금산에서는 적벽강이라고 하고, 부여에 이르면 백마강, 논산의 강경강 등 지역 특유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건 다 커서 알았다. 그만큼 자기 지역에서는 뭔가 특별하게 부르고 싶었나 보다. 학창시절 금강에 대한 추억은 먼저 금강교를 떠올리게 된다. 일제 강점기인 1932년에 처음 놓았다는 철교다. 그때까지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옮기면서 지어줬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금강을 이어준 것은 오로지 뱃길이었다. 때로 배다리를 놓아 통행하기도 해서 지금도 해마다 백제문화제 때는 금강을 건너 공산성으로 들어가게 배다리를 재현하고 있다. 공주에서는 금강을 기준으로 강북, 강남이라고 부르는데, 금강은 공주땅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고 있어 충남도의원도 각각 1명씩 뽑고 있다.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가뭄철에는 금강에 흐르는 물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해마다 장마철에는 홍수가 나서 농작물은 물론 사람과 가축의 피해가 컸다. 시뻘건 황토물이 우르릉 쾅쾅 소리를 내며 온갖 물건들 다 싣고 흘렀다. 그때는 비단강의 모습이 아닌 야수의 모습이었다. 장마 진 금강물을 보려고 금강교 위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여 들여 호호탕탕 흘러가던 금강물을 바라보았다. 정안천이 금강과 만나는 전막 부근의 하천에는 잠깐 비가 그치면 사람들이 모여서 떠내려 온 생활도구들을 건지기도 하고 돼지를 건지기도 했다.  1980년 이후 대청댐이 건설된 뒤로는 물난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기억한다.
[caption id="attachment_151664" align="aligncenter" width="650" class=" "]▲ 곰나루 백사장이 있던 곳. 4대강 공사 후 종적을 감췄다. ⓒ 이경호 ▲ 곰나루 백사장이 있던 곳. 4대강 공사 후 종적을 감췄다. ⓒ 이경호[/caption]
둔치는 채소밭 다리가 없던 시절, 웅진동 쪽에는 곰나루가, 공산 쪽에는 산성 나루, 더 아래 옥룡동 쪽으로는 장깃대나루가 형성되어 나룻배가 오갔다. 1932년에 놓은 금강교가 있음에도 1980년대까지 장깃대나루, 청벽나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주를 기준으로 금강 상류인 석장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꼽히는데, 청벽을 바로 지나 맞은편 강변 둔덕에 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좋았음을 증명한다. 주로 강가를 중심으로 살아야 했던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금강은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고등학교시절, 석장리에 살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금암나루에서 배를 타고 맞은편 청벽으로 건너와서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통학을 했다. 1990년까지 쌍신뜰과 정안천 둔치에는 알타리무, 배추, 시금치 같은 채소밭이 성행했다. 공주장날에는 소달구지와 경운기에 이런 농작물을 실은 장꾼들이 금강교를 넘어 다녔다. 큰 버스가 교행하다가 부주의한 행인이 상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연기(세종시)에서 직선으로 달려오던 금강 줄기가 연미산을 만나 크게 왼쪽으로 꺾이면서 곰나루가 형성되고 백사장이 생겼다. 아직 교련 교육을 받던 고등학교시절 곰나루 백사장으로 행군 아니면 소풍을 나왔다. 학교 운동장보다 훨씬 커보였던 곰나루 백사장은 한 끝에 작지 않은 솔밭을 형성시켰다. 시내의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 봄소풍은 대개 곰나루였다. 어쩌다 산성공원(공산성), 왕촌, 연미산으로 가기도 했지만 시내에서 초중고를 다 다닌 친구들은 소풍 하면 곰나루를 떠올린다. 지금도 4대강 공사로 가장 아쉬운 점으로 곰나루 백사장이 사라진 것을 꼽는 공주사람들이 많다. 드넓은 백사장
[caption id="attachment_151665" align="aligncenter" width="650" class=" "]▲ 4대강 공사 전에 곰나루에서 본 금강 하류. ⓒ 이경호 ▲ 4대강 공사 전에 곰나루에서 본 금강 하류. ⓒ 이경호[/caption]
공산성 맞은편 금강백사장(지금은 신관둔치공원)에서 막걸리를 받아다 놓고 놀던 기억도 아련하다. 갈수기에는 공산성 공북루 코앞까지 걸어가서 좁아진 강물을 바라보고 놀았다. 1985년 휴학을 하고 공주사대 학생들과 어울리던 때, 여러 번 금강백사장으로 나갔다. 막걸리를 받아 가서 아직 해가 중천에 있던 시간에 낮술로 시작해서 사방이 어둑해지면 금강교를 건너 맞은편 공산성 누각으로 올라가 강을 내려다보며 술자리를 이어갔다. 양성우 시에 곡을 지은 민중가요를 합창하기도 하고. 금강백사장은 백제문화제가 격년제로 치러지던 때 공주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출발한 행렬이 공주시내를 다 통과해서 금강교를 건너서 백사장까지 와서 거기서 강강수월래 같은 놀이를 하기도 했다. 문화제에 참여한 시내 고등학생들이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어울려서 장난질을 쳤다. 그 시절 유구천, 정안천 등 금강의 발달한 지천에서는 노상 고기잡이가 잘 되었다. 동네마다 고기를 잘 잡는 친구들이 한두 명씩 있었다. '어부'로 불리던 친구들은 지금은 금지된 투망치기 선수였다. 투망 같은 제대로 된 어구가 없어도 냇물 풀숲을 뒤져 곧잘 고기를 잡아왔다. 지금은 어딜 가나 팔뚝만한 베스가 어족을 평정했다지만, 그때는 칠어, 갈갈이, 쏘가리, 모래무지 등이 풍부하게 잡혔다. 여름철에는 해만 뜨면 물가로 천렵 가는 것이 일이었다. 우성면과 사곡면의 경계를 이루는 통천포(동천보)에는 허가 내지 않은 유원지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 야트막한 보가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릴 데도 있고 버드나무숲이 우거진 그늘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아오기를 기다려 집에서 가져간 재료로 갖은 양념을 해서 매운탕을 끓여먹었다. 항상 물고기가 많이 잡히던 그때 먹던 매운탕과 어죽맛은 지금도 내 입맛의 기준이 되었다. 밤늦도록 친구들과 텐트 비슷한 것을 쳐놓고 막걸리 타령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등학교를 우성면 소재지인 동대리에서 다녔던 나는 친구들에게 우리집은 통천포 옆이라고 알기 쉽게 말해주었다. 금강과 어울려 사는 법을 알았다 금강백사장(지금의 신관둔치공원)이나 곰나루백사장, 통천포, 우성초등학교 앞 냇물 같은 곳에는 여름 한 철 작은 해수욕장 유원지가 생겼다. 초등학교 수업만 마치면 냇물 가서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여름철 강물에는 바닥이 갑자기 깊어진 곳이 있어 해마다 꼭 한두 명의 어린아이들이 익사하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는 그 부모들이 멱감다가 죽은 아이의 넋을 건지는 굿을 하기도 했는데 동네어른들은 가까이 가서 보지 못하도록 말렸다. 옛날부터 금강변 풍광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누정이 세워졌다. 연전에 충남향토연구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금강변에는 연기(세종)에 7곳, 공주에 15개, 부여에 18개, 논산 6, 서천 7개 등 60개가 조사되었다. 금강의 풍광과 기암 괴벽, 평야가 잘 보이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금강 8정'으로 연기의 독락정, 금벽정, 한림정, 공주의 쌍수정, 사송정, 벽허정, 안무정, 원산정 등을 지었다고도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금강과 어울려 사는 법을 알았다. 금강은 공주의 온갖 음식점, 다방, 도로, 다리 등은 물론 수많은 단체, 모임들에게 이름을 빌려주었다. 오죽하면 전두환 정권은 1981년 공주사대 학생들의 독서회를 보안법 위반으로 잡아들이면서 '금강회'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을까. 4대강 공사로 생긴 공주보 때문에 막힌 물이 썩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혀를 차는 시민들이 아주 많다. 좋았던 그 시절 풍광과 자연생태계를 추억담으로 들려주는 어른들도 많다. 머지 않아 금강을 살리기 위해 결단을 하는 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물이 다시 흐르는 그때가 되면 이 아름답고 정겨운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누정을 몇 곳 만들었으면 좋겠다.
[caption id="attachment_151666" align="aligncenter" width="650" class=" "]▲ 4대강 공사 후 곰나루에서 본 금강 하류. ⓒ 이경호 ▲ 4대강 공사 후 곰나루에서 본 금강 하류. ⓒ 이경호[/caption]
각주구검의 정신 특히 청벽쪽 구길 강변도로에는 지날 적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포인트가 많다. 나룻배(무동력선)를 이용해서 금강을 남북으로 건너거나, 금강생태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탐사 체험을 미래세대에게 제공하면 좋겠다. 자연생태가 다 복원되기 전, 여름 한철이라도 금강백사장, 곰나루백사장을 한쪽에 복원하고 그 시절을 떠올리는 놀이공간을 시민들에게 마련해주는 건 어떨까. 외려 지금,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칼을 빠뜨리자 배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는 고사)의 정신이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부여사람 신동엽 시인은 "금강, / 옛부터 이곳은 모여 / 썩는 곳 / 망하고, 대신 / 정신을 남기는 곳"이라고 했는데, 역설적으로 고여있는 강물은 미래 생태를 향한 새로운 꿈과 정신을 치열하게 잉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 2015/06/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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